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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철-2

doll eye 2018. 10. 19. 21:09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존재와 무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7> 사르트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존재와 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존재와 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는 1960년대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1980년에 죽었지만 사르트르 동시대와 이후의 사상가들에게는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으로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1937~)의 경우처럼 현대에 주목받는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럼 지금 사르트르가 다시 부활하는 것인가? 부활의 여부는 모르더라도 확실한 것은 사르트르는 큰 저수지와 같은 존재로서 어디에도 물을 댈 수 있는 사상을 담은 철학자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는 2013년을 사르트르와 함께 시작했다. 이순웅 교수는 이 강의를 통해 사르트르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폭넓고 다양한 얘기를 담은 철학자임을 알려줬다. 사실 사르트르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서 미진했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실존주의자'라는 이름으로 사르트르를 떠올리지만 사실 그는 현대철학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 사르트르ⓒ위키피디아

사르트르의 철학 

사르트르의 철학에는 베르그송의 영향이 많았다. 지속의 개념이 그것이다. 공간화한 규칙적 시간은 의식 속에서 느끼는 참된 시간(지속)과 다르다는 것은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세계를 설명할 때 필연성이 아닌 우연성으로 설명한다.

사르트르 철학은 넓게 보면 의식의 철학이고 주체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의 현상학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현상학은 대상을 향해 있는 의식으로서 대상과 관계 맺는, '무엇인가와 관계 맺는 의식'을 말한다. 예를 들면 '코기토(cogito)' 명제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자동사의 'think'가 아닌, '~에 대해서 생각'하는 'think of'의 의미이다. 이후 사르트르의 현상학에서는 후설과는 다른 몇 가지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사르트르와 관련하여 궁금한 부분은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등장하면서 사르트르의 철학이 퇴색 되었는지의 문제이다. '구조주의(Structuralism)'는 인간이 주체가 아니다. 인간의 죽음을 선언한 것이 구조주의이다. '포스트구조주의(Post-Structuralism)'는 구조주의의 문제의식을 계승하는 것인데 이순웅 교수는 'post'를 '후기'로 번역할 때와 '탈(脫)'로 번역할 때의 의미가 조금 다르다고 한다. 

'후기 구조주의'로 번역하면 주체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얘기하지 않는 면이 있다. 예를 들어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주체에 대해 거의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럴 경우 주체가 없어 자칫 허무하고 공허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탈구조주의'는 '주체'를 상대적으로 중요시 하여 '후기 구조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담아낼 수 없는 것들을 얘기한다. 지젝(Slavoj zizek, 1949~)이나 바디우 같은 경우이다. 그러나 구조주의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구조주의자들은 구조를 장악하지 못하면 인간의 주체에 대해서도 장악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르트르의 인간관과 『존재와 무』 

사르트르 철학의 중심은 인간이다. 사르트르는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은 왜 잔혹해졌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과연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잔혹한 존재인가?' 그리고 '잔혹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를 두고 사르트르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인간의 삶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집중을 하게 된다.

그런데 전쟁이라는 것은 국가 간의 싸움이다. 그리고 세계대전은 유럽을 위시한 서구 제국주의 사이의 대결이었고 식민지라는 시장을 쟁탈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이 전쟁에서 제국주의의 대상이 된 식민지 국가의 입장은 배제되어 있었다. 결국 지배국가인 자본주의국가 간의 싸움이었지 우리가 영화나 소설에서 쉽게 읽었던 것처럼 정의의 연합군과 세계를 지배하려던 악마 같은 독재국가의 대결이 아니다. 결코 선과 악의 대결은 아니었던 것이다.

사르트르는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인간은 과연 어떤 인간이며 자본주의를 사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했다. 이런 면은 사르트르가 소련의 스탈린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은 한 단초가 되기도 한다. 사르트르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보았고 이 계기가 인간의 문제에 대해 천착해 가는 과정이면서 기폭제가 되었다. 『존재와 무』(1943)에서 사르트르는 인간은 잔혹한 존재라서 절망하지만 동시에 인간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끈을 놓지 않는다. 그의 책에는 이런 이중적인 문제의식이 보인다. 

『존재와 무』에서 사르트르가 말하는 인간관은 그 이전의 저작인 『구토』(1938)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책에서 사르트르는 평생 몸 편히 살 수 있는 '이자 생활자'인 주인공 '로캉탱(Roquentin)'이 자기 존재의 '무상성(無償性)'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주인공은 이른바 이중적 상태의 인간이다. 이자만 타먹는 무노동의 밥벌레와 같은 자신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노동을 할 수 있는 도시 속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

사르트르는 이런 인간은 '죽은 인간'과 같다고 했다. 그러나 주인공 로캉탱은 여기서 벗어나려는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다. 사르트르는 여기에 희망을 건다. 그리고 사르트르는 정신적 자유의 무상성과 의식의 명석함을 자각하는 과정에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인간을 정신적으로는 자유롭지만 자각하는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conscience적 존재'라는 말로 표현한다. '구토'는 이 의식이 '존재' 그 자체와 대면한 때에 반응하는 것이다.

인간존재의 의미와 실존 

'현상학(phenomenology)'에서 말하는 의식은 '무엇에 관한 의식'이다. '의식'과 '의식의 대상'이 있다. 이 둘의 관계를 규명하고 해석하는 것이 현상학이다. 또는 존재를 '지향하는 의식'이라고 한다. 의식에는 '지향성'이 있는 것이다. 의식은 '존재'가 있는 한 '존재'를 지향하는 의식이기도 해서, '구토'는 '존재의 출현'과 '존재를 지향하는 의식의 출현' 두 가지가 서로 겹쳐진 체험이 된다. 

존재의 우연성이란 필연성과 반대의 의미이다. 미리 정해져 있는 방향에 의해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진리의 체계와 법칙을 상징한다. 간단한 예로 우리가 알고 있는 3단 논법의 체계가 필연성의 체계를 축약해 놓은 것이다. 여기에는 변화와 유동적인 방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필연성의 세계는 유신론적 세계질서와 관계한다.

이쯤에서 신이 미리 세계를 '설계(design)'했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이순웅 교수는 "신 존재 증명에는 '목적론적 증명'이 있는데 어떤 사물의 설계자를 상정하고 그 사물의 완성을 'end'라고 할 때, 'end'의 어원은 '목적'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끝'이란 '신의 목적'에 도달했다는 뜻이 된다. 기독교의 종말론은 결국 신의 목적을 향한 기독교인들의 '기다림'이 중심이 되는 것으로, 한 때 유행했던 '휴거(携擧, rapture)' 따위의 소동이 바로 이것이다. 

사르트르는 신이 설계한 세계의 특성으로서 목적, 본질은 없으며 신의 존재 자체를 거부한다. 사르트르는 보통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인간이 우연 그 자체인 어떤 존재와 만나고, 인간은 한결같이 우연을 지향하는 의식 그것으로 있으며, 따라서 인간도 또 우연으로서 무상인 것이 된다. 존재한다는 것은 그저 단순히 거기에 있다는 것을 말하며 존재에는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가 없다. 존재에는 원인도 없으며 목적도 없는 것이다. 인간은 우연과 무상적 존재로서 인간이다. 인간은 정해진 길을 따라 순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무한히 선택하고 결단해야만 하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사르트르에게는 본질보다 '실존'이 우선한다. 

자유와 초월의 추구 

사르트르는 어떻게 하면 자유를 잃지 않고, 자유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의 존재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사르트르 철학은 자유와 존재, 사실(거기에 있는 것)과 초월(transcendance, 무언가 되기 위해 자신을 만드는 능력)의 결합을 얻으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자유는 인간이 인간에 대한 유일한 입법자라는 것을 알고 인간은 늘 현재의 자신을 넘어서며 살아가며 자신을 둘러싼 대상을 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자유는 이 '초월성'과 '주체성'의 결합으로 성립하며 이 두 가지의 결합이야말로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헛된 '기투(企投 또는 投企, projeter)'라고 사르트르는 명명한다. 

사르트르는 초월을 추구하지만 초현실주의자는 아니다. 초현실주의는 다만 부정만 할 뿐, 건설할 만한 적극적인 제안을 갖고 있지 않다. 주관과 객관 둘 다 부정하며 그 두 가지를 교차시켜 '혼합'시킬 뿐, 조금도 '종합'하려 하지 않는다. 사르트르는 초현실주의를 비판하며 그저 '불가능'을 꾀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후설 현상학과의 차이 

후설에 의하면 "의식이란 그 자신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을 찾고 지향하고, 무언가를 향하려고 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의식이란 그 본성상 대상을 지향하는 것"이다. 후설의 지향대상은 의식에 의해 파악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의식의 내용도 의식 내부에 있는 것, 의식에 내재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 생각에 반대한다. 대상이 의식에 의해 지탱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의식 바깥에 있다. 이것이 후설과 사르트르의 현상학 입장에 대한 차이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대상은 의식 바깥에 있는 것이므로 의식으로부터 불거져 나온 쓸모없는 것이다. 따라서 무언가 의식의 본질에 규정되지 않은 우연·무상인 것이다. 누가 결정했든지 간에 (신이든 인간이든) 어떻게 어떤 일이든 먼저 일반적인 본질이 있고, 거기에 맞추어 삶의 방법을 생각하는 본질주의 그 자체를 거부한다. 

사르트르는 후설의 현상학에 영향을 받았지만 후설과 구별되는 사르트르 현상학의 특징은 ① '대상이 의식 밖에 있다는 것', ② '본질에 대한 거부', ③ '본질적인 직관(intuition: 실험, 관찰을 통한 감각적 경험을 작동시켜 알아내는 앎의 상태)에 대한 반대' 등을 들 수 있다.


▲ 존재와 무ⓒwww.library.usyd.edu.au

『존재와 무』에서 존재의 세 영역 

사르트르는 존재에 있어 세 가지 영역을 설정한다. 먼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즉자존재(卽自存在, Being-in-itself)'와 '대자존재(對自存在, Being-for-itself)'가 그것이다. 인간은 '즉자존재'로도 살 수 있고 '대자존재'로도 살 수 있다. 『구토』에서 로캉탱처럼 즉자의 무상성을 취한 채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자유로이 사는 것도 가능하고, 반면 인간은 즉자존재의 우연성에 도전하여 이 우연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마주 놓고, 자신의 의미를 만들어 스스로 입법하고, 자기가 자기를 만들어 가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는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간단히 이 세상의 존재를 나누어 볼 때, '인간(나, 타자)-사물'로 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지만, '나-타자-사물'로 보면 세 가지가 된다. 즉자존재는 타자를 설정하지 않아서, 예를 들어 속이 꽉 찬 쇠구슬에 비유할 수 있는데 자기라는 존재가 자기 자신 안에 있다. 자기 충족적인 존재로서 다른 것과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다. 개는 의식이 없어서 고민도 없다. 이것은 즉자존재다. 반면에 대자존재로서 인간은 텅 빈, 비어 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대자존재는 무엇인가? 대자존재는 '자기를 존재 바깥에 두는' 존재이다. 비어있다는 것이 중요한데,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순웅 교수는 '의식'이 있다는 것은 자신이 비어 있는 결핍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자' 존재는 늘 '결여자'이며 동시에 '가능성'과 짝이 되어 존재한다. 인간은 내가 나를 항상 변신시켜 나가고, 바깥으로 던져야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도록 매개하는 존재가 타자이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끊을 수가 없다. 『구토』에서 로캉탱이 대자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상업도시'를 바라보며 나에게 다른 사람들의 삶이 없음을 자각하고 '구토'를 통해 그 자각에 대해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순웅 교수는 "'need'라는 말은 필요를 의미하지만 '결핍'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어서 결핍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변화, 운동, 미래, 발전은 없다"고 한다. 즉 우리는 결핍을 알기 때문에 필요성을 자각하는 것이다. 또 대자존재의 대자의 번역인 '對自'와 'Being-for-itself'의 'for'의 의미는 자기 자신을 밖으로 내 던지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자기 자신을 위하는 존재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존재ㆍ실재ㆍ현존이라는 의미의 'existence'의 어원은 라틴어 'existere'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ex(~로 부터)'+'sistere(서다, 존립하다)'의 합성어이다. 자기 자신을 자기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뜻이 본래 의미이다.

사르트르는 초현실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이상적인 상태로, 대자의 가능성을 잃는 법 없이, 동시에 즉자의 존재성과 일치하는 상태, '대자-즉자'의 상태를 바랐다. 그러나 인간은 기투가 실현되었다고 해도 기투의 실현과 동시에 가치를 잃는다. 따라서 대자인 채로 즉자인 것, 가치를 보존하면서 실현을 쟁취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실현의 어느 부분에는 가치가 없고, 가치의 어느 부분에는 실현이 없다. 존재와 가치가 일치된 것은 신의 경우이다. 신은 죽어있으면서 살아있는 존재인데, 인간은 이 상태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인간은 대자-즉자의 양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유를 향한 기투를 멈출 수 없고, 가치의 존재성을 바라는 것을 그칠 수 없다. 실현을 기대하지 않는 이 이로움 없는 노력을 두고 사르트르는 '인간은 하나의 이롭지 못한 수난(passion)'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대타존재(對他存在, Being-for-Others)'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로서의 존재를 말한다. '타인'은 '타자(他者)' 자체로서 떨어져 나간 존재가 아니다. '타자'는 '나'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인간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타인이란 나와 똑같은 개체로 자유로운 주체이다. 그래서 서로 '시선'을 주고받는다. 

이 때 자유로운 가능성을 가진 두 주체는 '시선'을 주고, 받는 것의 대립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둘은 서로 주체가 되기를 원한다. 일종의 투쟁 관계이다. 사르트르는 이 경우 다른 한쪽의 인물은 '시선'의 대상이 되어 '물화(物化)'되고, 사물과 같은 것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 경우 두 개체의 자유가 공존할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이순웅 교수는 다음과 같은 예를 제시한다. 

"나는 지금 방 안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일을 보고 싶다는 유혹에 져서, 열쇠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본다. …… 나는 열중해 있었고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갑자기 복도에서 소리가 들려와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자 누군가가 서서 나에게 '시선'을 주며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순간적으로 전신이 부끄러움 덩어리로 바뀐 것을 발견한다. 여기에는 '타자'가 서 있었다." 

이순웅 교수는 여기서 말하는 '시선'이 푸코(Michel Paul Foucault, 1926~1984)가 말하는 시선과 유사하다고 한다. 근대인은 자발적 복종을 오히려 자유롭다고 여기는데 권력자가 누구보다 먼저 '시선'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실에서 내가 타자와 맺고 있는 관계의 실상이다. 이 때 타자는 '나'와 '나 자신'을 연결해 주는 필수불가결한 매개자가 된다. 인간은 여기서 내가 타자와 동화되거나 타자를 초월하거나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이 대타존재에 대한 논의는 사르트르의 도덕론을 내포한다.

대타존재에 있어서 가령 남성이 '시선'을 독점하고, 자유를 독차지한다면, 여성은 '물(物)'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르트르는 "마치 '지옥이란 바로 타자를 일컫는 것'이다"라고 했다.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의 원형감옥 '판옵티콘(Panopticon)'은 대타존재로서의 인간이 권력구조에서 어떻게 위치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구도가 사르트르에게는 인간과 인간의 차원에서 서로 시선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하려는 개체의 투쟁으로 해석되는 것이고 푸코로 계승되면서 권력과 시선의 주체 관계로 해석되는 것이다.


▲ 이순웅 숭실대 외래교수ⓒ한국철학사상연구회

사르트르 철학의 의의와 한계 

사르트르는 철학자로서는 유일하게 지난 한 세기 동안 문화의 아이콘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사르트르의 철학 강의나 그가 행보하는 자리에는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었고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와는 관계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 많은 변화를 유발시키기도 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많은 철학자들이 사르트르를 극복했다고 하지만 사실 사르트르는 극복되지 않았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 1908~1961)나 푸코의 얘기들도 모두 사르트르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주체의 문제도 그렇다. 현대철학에서는 주체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관점이다. 구조주의에서 주체는 죽었다고 말했고 포스트구조주의도 주체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랭 바디우는 '후사건적 주체(後事件的 主體)'라는 말로 어떤 사건 이후 형성되는 주체에 대해 언급한다. 

예를 들어 세계대전의 경우 이기적 욕망으로 계산적 이성을 가진 자들끼리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전쟁 자체를 통해 세상이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았고 비약적인 발전도 없었다. 문제는 이 사건 전반의 모든 내용을 화해와 담합이라는 봉합 없이, 끝까지 놓지 않고 계속해서 재평가의 가능성을 들이대는 것이 중요하다. 폭 넓게 보면 과거 동학혁명이나,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의지의 인간들이 이런 일을 수행하고 이들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중심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이상은 이들로부터 올 수 있다. 이런 부분 역시 사르트르의 영향이 없지 않다.

사르트르가 얘기한 자유와 초월은 티치아노(Vecellio Tiziano, 1488?~1576)가 그린 '마르시아스((Marsyas)'의 표정에 나타나는 듯하다. 신에게 도전하여 살갗이 벗겨지는 형벌을 받고 있는 마르시아스의 표정은 역설적으로 아주 평온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1905년 북경에서 찍혔다고 전해지는 '백 조각으로 찢겨 죽는 형벌(cent morceaux)'이라는 사진에서 형벌을 받는 죄수는 전혀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무언가 초월하여 황홀경에 빠진 듯하다. 살아있으면서 죽어있는 상태가 바로 이런 것인가? 

이순웅 교수는 사르트르의 '대자-즉자적 삶'은 사실 고문의 고통을 감내해야 할 만큼 어려운 사안일 것이라고 한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늘 피할 수 없는 선택과 결단은 이렇게 어렵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인간의 의식이 깨어있어 이런 어려운 선택과 결단을 할 수 있는지 그 상태를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점에 있다. 이것이 아마 사르트르가 말하는 자유의 경지가 아닐까, 말하자면 목적과 본질이 없어 끝이 없는 여행을 떠나는 자유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10강 : 2013년 1월 29일 레비나스 : 타자의 얼굴과 환대의 윤리 (문성원, 부산대 교수)


11강 : 2월 5일 푸코: 근대 이성의 본질을 폭로하다 - 광기, 권력, 폭력 (박민미, 대진대 외래교수) 

12강 : 2월 12일 들뢰즈 : 들뢰즈의 반복과 영원회귀 (김범수,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 화가의 시선과 몸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8> 메를로-퐁티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 화가의 시선과 몸     
 
화가의 시선과 몸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와 함께 20세기 새로운 철학의 지평을 열었던 사람이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 1908~1961)이다. 메를로-퐁티 철학의 핵심 키워드는 '몸'이다. 그의 철학은 이른바 '몸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몸철학'을 가장 정교하게 잘 제시한 것이 메를로-퐁티이다.

1990년대 들어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두와 페미니즘 운동 등이 활발해지면서 이즈음 '몸'이라는 화두가 부각되기 시작했는데, 1990년대 후반에는 '몸'이 인문ㆍ사회과학적인 담론에 있어 핵심 키워드로 작용했다. 이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보통 '정신과 이성'은 남성적인 것과 관계하지만 몸을 바탕으로 한 '감각'은 여성성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전반적인 구도에서 봤을 때 이성이 일으키는 부작용을 충분히 가정할 수 있고 몸을 통해 이성을 근본적으로 한계 지을 수 있다는 사유의 단초를 마련했다고 평가 된다.

이 배경에 메를로-퐁티의 '몸철학'이 있다. 인간의 정신과 의식을 사유의 중심으로 삼지 않았고 몸의 '감각'을 중요시 했다는 점은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이 욕망을 통해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의 '코기토(cogito)' 중심의 철학적 사유를 전환시켰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몸철학의 관점에서,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무의식의 바탕은 몸이다.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 아래 물에 잠긴 큰 얼음덩이와 같다. 메를로-퐁티는 정신과 의식 보다는 몸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여덟 번째 시간에는 '몸과 살, 그리고 세계'라는 제목 아래 메를로-퐁티가 얘기했던 몸철학의 세계를 경험했다. 메를로-퐁티의 특징 중 하나는 사유의 출발점을 과학적 합리성을 담보한 이론이나 철학적 반성으로 보지 않고 구체적으로 주어져 있는 삶의 현장이라고 했던 점이다. 메를로-퐁티의 몸철학을 전공한 조광제 교수는 "수업이 진행되는 지금 이 공간이 철학적 사유가 시작되는 장이면서 동시에 앞에서 말하는 자와 앉아서 듣는 자가 서로 감각적 소통이 가능함을 몸소 느끼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 메를로-퐁티ⓒ위키피디아

메를로-퐁티 사유의 출발점 

메를로-퐁티가 『행동의 구조』에서 밝히고 있는 '현상의 장'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여기서 그는 '실재적인 빛(lumière réelle)'과 '현상적인 빛(lumière phénoménale)'의 구분을 통해 객관적인 과학 세계와 현상세계 간의 대립을 이해시키고 있다. 가령 벽에 둥근 광점(光點, spotlight)이 나타나 여기저기 위치를 바꿔 옮긴다면 그것을 보고 있는 '나'는 광점이 주위를 끄는 대로 그것을 향해 시선의 방향을 돌릴 것이다. 이 때 광점의 움직임은 나의 행동(시선의 움직임)을 유발한다. 이런 설명은 현상 그대로를 설명하는 것이다.

과학은 이런 특징을 외현으로 취급하고 그 아래 다른 종류의 실재가 있어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재적인 빛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광점을 비추고 다시 반사되어 내 눈의 망막과 시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된 대상을 보게 만드는 실재적인 빛은 나(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자극은 실재적인 빛이고 이 자극이 주어지면 반응(결과로서 행동)을 한다.[자극→반응;행동(결과)] 하지만 실제로는 이 반응이 자극이 되어 다시 우리의 반응을 촉구하는 것이다.[반응→자극(반응)]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현상의 장'에서 볼 때 과학적인 실재의 빛이 되는 순수한 자극은 없다. 자극이 이미 반응이다.

과학은 '실재적인 빛'을 연구하는 것이고 '실제'로 우리가 보는 것들은 과학의 실재적 빛이 아니라 '현상적인 빛'을 얘기한다. 우리가 지각하는 빛이란 실재적인 빛이 아니라 현상적인 빛이다. 실제 우리의 행동이 이루어지는 장은 과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객관적이고 실재적인 순수한 '물리적 사태(事態)'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적인 '현상의 장' 속에 들어온 후에 과학을 연구한다. 

메를로-퐁티가 말하는 사유의 출발점은 배후의 어떤 객관적 실재가 아니고 직접 보고 만지는 현상의 장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현상학적 태도이다. 과학주의적 태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질량, 속도, 힘, 가속도 등의 개념을 다룬다. 물리학적 세계에서는 색과 소리, 밝고 어둡다는 개념도 없다. 이런 것은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모든 감각을 쏙 빼버린 순수 이론적인 세계를 진짜 세계(진리의 세계)라고 배워 왔지만 이런 것을 넘어서지 못하면 우리의 생각이 현실을 떠나버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과학적 태도가 아닌, 현상에서 출발해보자는 입장이 메를로-퐁티 사유의 시작이다.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그리고 '반성철학' 

우리가 직접 체험하는 이 '현상의 장'은 과학에서 말하는 객관적 실재도 아니고 의식철학에서 말하는 순수 의식의 세계도 아니다. 흔히 주관과 객관을 나누어 세계를 설명하려 하지만 현상에서는 주관과 객관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없다. 

메를로-퐁티는 기존의 '반성(反省)철학'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코기토' 명제와 관련해서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나'가 반성철학의 모습이다. '반성'은 근대철학을 규정하는 기초인데, 이 때 '명석 판별함'의 기준이 되는 것이 반성이고 이 반성을 통해 진리를 알 수 있다. 메를로-퐁티는 반성을 통해 명석 판별함을 찾고 명석 판별함을 통해 반성이 진리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성주의'라고 규정했다. 

지성주의 관점에서는 진리를 구현하는 체계 바깥의 세계를 도저히 입증해낼 길이 없다. 여기서 '반성=의식'이 되고, '의식=자기의식'이 된다. 결국 '반성=자기의식'이다. 지성주의는 자기의식을 바탕으로 모든 진리를 만들어 낸다. 이것이 데카르트다. 그리고 자기의식을 최대로 발달시켜 절대지에 이르는 것을 말한 사람이 헤겔(Hegel, 1770~1831)이고, 자기의식 '나는 생각한다(Ich denke)'를 중요하게 여겨서 온 세계를 구성하는 총론적 의식을 중시한 것이 칸트(Kant, 1724~1804)이다. 

이런 것들을 고전주의시대의 지식 형태라고 보는 인물이 푸코(Foucault, 1926~1984)이다. 푸코는 17~18세기를 '고전주의시대'라고 했다. 푸코는 고전주의의 근본형태는 '재현(representation)'에 있다고 했고 재현은 '표상'이며 표상은 '의식의 표상'이다. '의식'과 '반성' 중심으로 일체의 모든 지식을 말하던 시대가 바로 고전주의시대이다. 고전주의시대의 '에피스테메(épistémè)'가 표상이고 재현이다. 푸코에 의하면 그러다가 19세기 초중반부터 근대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지식에 있어 의식과 반성이라는 구도가 깨지게 된다.

조광제 교수는 푸코의 이런 구분에는 반(反)지성주의ㆍ의식주의ㆍ반성주의ㆍ재현주의가 들어있다고 하면서 비(非)반성적 영역, 혹은 선(先)반성적 영역을 앞에서도 언급했던 빙산에 비유한다. "빙산의 일각 밑의 몸체가 되는 바탕이 있다. 빙산의 일각은 반성의 영역이다. 빙산의 일각='의식(정신)'이고, 몸체가 되는 바탕='몸'이다. 헤겔은 '감각적 확실성(무엇인지는 모르고 그냥 확실히 보이는 것)'에서부터 절대적인 상태에 이르는 체계적 단계를 말하지만 메를로-퐁티는 이런 반성적 과정 이전에 사유와 철학은 바탕이 되는 몸에서 출발함을 주장한다."

몸과 지각의 근원성 

'현상의 장'은 행동이 중심이다. 그리고 '지각'과 '현상'의 관계에서 보면 현상의 장이 곧 '지각의 장'이 된다. 모든 철학은 몸의 지각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조광제 교수는 우리는 '몸'이라고 하면 정신보다 하찮은 존재, 혹은 그 아래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사실 그렇다. 우리는 정신을 주체로, 몸을 대상이나 그 다음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본다면 몸은 나에게 '저항적인 존재'이다. 앞에서 말한 반성은 정신으로 생각한다. 정신으로 생각만 한다면 순간 에베레스트 정상에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정신적 자유이다. 인간은 정신은 자유로운데 몸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저항이 있어야 자유가 있는 법이다. 맘대로 아무렇게나 자유로움을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참된 자유인가? 주체와 대상을 의미하는 영어 'subject'와 'object'를 보자. 먼저 'object'는 '대상'이란 뜻이지만 동사로는 '반대하다', '이의를 제기하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subject'는 '주체'를 뜻하지만 원 뜻은 '신하'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대상이라는 것은 저항적인 존재가 될 수 있고 주체는 대상의 아래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주체는 대상에 의해 영향 받는다는 말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길거리를 걷다가 장애물 있으면 피해 간다. 장애물이 우리를 피할 수는 없다. 장애물이 걷는 주체의 행동을 유발시킨다. 그렇다면 실제에서는 주체가 대상을 만들지 않고 대상이 주체를 만들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철학에서 이것이 전도되었다. 철학에서는 주체가 온갖 대상을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관념론이다. 주체는 대상에 의해서 규정된다는 실제적인 것을 무시하면 현실감각이 없어진다. 관념론이 그렇지 않은가? 관념론은 대상을 무시한다. 사회적인 힘을 무시하면 현실에서 떠나게 된다. 그리고 황당한 생각이 시작된다. 예를 들어 염력, 초능력에 대한 상상력과 집착은 '황당한 주체에 대한 신화'이다. 현실을 보면 주체는 사회적 힘에 의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사회의 변화와 새로운 대상들인 자동차, 전화기, 세탁기, 스마트폰까지, 대상이 주체(인간)를 만들어 가는 것을 우린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데카르트 이후 주관과 객관을 분리하면서 항상 주체와 대상(객체)이라는 존재적 위치를 부여했다. 조광제 교수는 보통 강의실에서 강사를 주체, 학생들은 대상이라고 여기지만 이러한 이분법적 관점으로는 도저히 접근해서 분석할 수 없는 것이 몸이라는 존재라고 한다. 특히 강사의 정신이 강의하는지 아니면 몸이 강의하는지에 대해 물으면서 앎에 대한 정의와 운동과 감각에 대한 얘기를 이어갔다. 

앎에는 두 가지가 있다. ① '~ 임을 안다'(지식, 이론, 표상)는 것과 ② '~ 할 줄 안다'(실천, 변형, 노동, 놀이 등)는 앎이다. ①의 경우에는 '주체=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②의 경우 '주체=몸'이다. 몸은 행동의 주체로서 행동은 감각+운동의 두 가지로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운동에 따라 감각의 내용이 달라지지만 감각에 따라서도 운동이 달라진다. 대상의 움직임을 자기의 시선이 쫓기도 하고 차 경적 소리에 사람이 몸을 피하기도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연주자는 오만가지 인상을 다 쓴다. 인상을 쓴다는 것은 얼굴의 운동이다. 왜 운동할까? 최상의 소리를 지금 내고 있는데 그 감각을 조금이라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조금만 운동에 신경을 덜 쓰면 감각이 바뀌어 최상의 소리가 깨진다. 온몸이 운동을 해서 바이올린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미세하기 이를 데 없는 감각'과 이에 대응하는 '미세하기 이를 데 없는 운동', 이런 것이 행동을 설명하는데 같이 얘기되어야 할 것들이다.

'인생을 사는 맛'이라는 말이 있다.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생을 사는 이유는 '감각'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하면 그 사회는 '전면적이고 심오한 감각을 갖춘 인간들을 사회적 형식으로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마르크스가 말한 그 사회는 다양하게 미세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다양하게 모두 존재할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그래서 인생은 감각과 운동이고 이것은 '향유'이다. 

몸의 감각과 운동을 통한 행동은 지각과 결합되어 있음을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지각 할 때 행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무런 지각을 하지 않는 행동은 예를 들면, 등산할 때 절벽에서 조심조심 걷던 걸음을 평지에 내려와서도 똑같이 하는 것이다.

또 행동은 정신에 앞서 있다. 흔히 우리가 심리학을 말하는데 심리학은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상심리(abnormal psychology)' 즉 비정상 심리는 말 그대로 정신이 이상해서 연구하는 게 아니다. 행동이 이상해서 그렇다. 조광제 교수는 "만약 정신이 이상하다고 평가 받는 사람이 있는데 행동은 전혀 문제없다면 심리적으로 전혀 문제없는 거다. 그런데 어떤 인간이 하루에 5000번 웃는다고 치자. 이상하다. 이런 사람이 심리학에서 이상 심리의 연구대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행동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철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동철학이다. 정신과 이론의 논리에 대해서만 얘기하다보면 행동에 대해서는 다 놓치게 된다. 행동에 따라 인간 존재가 달라지는 것을 잡아내야 철학이 시작된다.
▲ 『지각의 현상학(Phenomenologie de la perception)』 과 조광제의『몸의 세계 세계의몸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몸틀'이라는 개념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예전에 느꼈던 감각 운동이 차곡차곡 축적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웬만한 감각이 들어와도 충격 받지 않는다. 행동이라는 것은 그냥 지나가지 않고 차곡차곡 축적된다. 감각의 축적이다. 그러면 몸이 점점 바뀐다. 이것은 일정한 방식으로 쌓이는데 메를로-퐁티는 이를 '몸틀(le schema corporel)'이라고 한다. 한자식으로 말하면 '신체도식(身體圖式)'이라고 하겠다. 

메를로-퐁티식으로 말하면 '자전거를 탈 줄 안다는 것'은 '자전거를 탈 줄 아는 몸틀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과 같다. 몸틀은 한번 정해지면 오래간다. 그런데 이 몸틀은 처음에 한 동작을 할 때 온 몸이 그 동작에 집중해야 어떤 하나의 행위가 가능해진다. 자전거 배울 때도 그렇지만 글을 쓸 때는 글 쓰는 몸틀, 책을 읽을 때는 책 읽는 몸틀에 맞아야 한다. 그 행위의 몸틀이 만들어져야 가능하다. 온 몸이 그 몸틀에 따라서 집중되는 것이다. 이제 온 신경을 쓰던 정신의 집중이 몸으로 들어옴으로써 몸틀이 만들어진다. 이것을 '체득(體得)'이라고 한다.

행동은 반드시 어떤 상황 속에서 하게 된다. 상황은 과제이다. 우리는 행동을 통해 과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상황에는 반드시 타인(타자)들이 있다. 과제는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 몸과 과제와 상황은 각각 구조가 있어서 그것이 일치가 되면 몸틀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몸틀을 미리 갖추지 못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이때 사람은 '생각'하게 된다. 생각은 더 효율적인 행동을 위해 하는 것이다.

몸은 항상 주어진 상황에 잘 적응하려 한다. 이것을 메를로-퐁티는 '세계에의 존재(l'être-au- monde)'라고 한다. 세계 속에 있으면서 세계를 통해 하나가 되려는 과정에 있다는 것. 또 그 과정에서 벗어나길 거부한다. 메를로-퐁티는 이것을 '상황 지어진 존재'라고 한다. 힘이 들면 숨이 가빠지는 것이 그 아주 쉬운 예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계속 역동적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복합적인 세계이다. 주어지는 상황에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 그래서 기존의 몸틀 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계속 새로운 몸틀을 만들어 간다. 한 인간에는 여러 몸틀이 만들어져 있고 또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있다. 이것을 '가소성(plasticity)'이라고 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아주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늑대소년을 상기해보자. 인간은 계속해서 자신의 몸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이다.

들뢰즈(Deleuze, 1925~1995)가 베르그송(Bergson, 1859~1941)에게서 가져온 중요한 개념 중 'intensité'라는 개념이 있다. '강도', '강밀도' 등으로 번역되는데 감각이 밀도가 높아지면 강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강도는 어떤 몸틀을 갖추느냐에 따라 다르고 또 인간의 삶은 전혀 달라진다. 천재라고 소문난 예술가들은 그 방면으로 엄청난 몸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보다 인간들 사이의 차이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조광제 교수는 몸틀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본주의는 한 인간을 특정한 몇 가지 몸틀 만을 가지고 살도록 만든다고 한다. 이런 것을 반영한 작품이 찰리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1936)이다. TV프로에 나오는 달인(전문직)들을 보면 그 전문 분야에 대한 몸틀이 정말이지 대단하다. 하지만 10년 이상 그것만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하나의 몸틀은 강도가 높아지지만 여러 몸틀이 결핍된다. 그러면 몸은 왜곡된 형태로 변하게 된다.

"나는 내 몸이다" : 습관과 체화  

"나는 내 몸이다"이라는 말이 있다. 이 때 내 몸은 계속해서 새롭게 몸틀을 갖추게 되고 새롭게 운동하는 그 몸이다. 몸틀은 자기 무의식적이다. 몸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말이다. 내 몸은 구체적이고 복합적인 자아이기 때문에 내 몸은 나의 의식에 다 체크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의식으로는 알 수 없는 내 몸이 작동하면서 나를 형성한다. 이 때 자아는 정신적 차원의 자아가 아니다. 메를로-퐁티는 정신적 차원에서 말하는 자아를 '허공의 자아'라고 한다.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자아이다.

메를로-퐁티는 몸은 복합적이기에 근본적으로 '불투명(opacité)'하다고 했다. 데카르트는 명석 판별함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았는데 의식으로 '투명(transparence)'하게 주어지는 것만 진리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메를로-퐁티는 불투명한 것이야말로 진리라고 했다. 낯낯이 밝혀지는 것이 진리가 아니다. 불투명한 것이 역량을 발휘한다. 불투명을 정신분석학에서는 트라우마, 무의식의 상태라고 설명할 것이다. 몸 철학적으로 트라우마를 설명하면, 삶의 과거 어떤 지점에서 특정하고 이상스럽게 강력한 감각이 와서 순식간에 몸틀을 만들어 버린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잠복해 있다가 유사한 상황이 나오면 증상이 나타난다.

조광제 교수는 그래서 '습관'이 중요하다고 한다. 세계 속에 살다보니까 몸이 바뀌는 것이다. 조광제 교수는 세계와 몸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① 세계는 몸을 구조화 한다. 그리고 ② 구조화된 몸이 세계를 재구성한다. 이 때 구조화 되었다는 것은 몸틀을 갖추게 되었다는 말이다. 내가 어떤 몸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세상이 달라지고 그 속에서 운동하는 것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요가나 국선도 수련을 해보니까 정말 좋다고 추천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 사람에게는 요가나 국선도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가 들어왔고 그 몸에 요가와 국선도를 하는 몸틀이 갖추어지다 보니까 세계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동시 상호교환'이다. 메를로-퐁티는 이를 공동체적 의미에서 '집단적 몸'이라고 한다. 만약 흔히 말하듯이 세계는 객관적이고 몸은 주관적이라고 해보자 이렇게 되면 상호교환이 안 된다. 

'체화(體化)'라는 개념이 있다. '체현', '육화'라고도 한다. 우리가 어떤 과제를 수행해야하는데 몸이 따라가지 못하면 생각을 한다. 생각이 올라왔다가 몸틀을 갖추면 올라왔던 생각은 다시 사라진다. 그런데 이때 그 생각은 어디로 갔을까? 바로 몸에 체화되었다. 몸1ㆍ2ㆍ3(...), 의식1ㆍ2ㆍ3(...)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몸1이 의식1을 바꾸고 의식1이 몸2로 체화된다. 몸2는 체화된 의식을 바탕으로 의식2를 바꾸고 몸3으로 체화된다. 이것이 반복된다. 결국 의식은 몸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조광제 교수는 이걸 설명할 때 메를로-퐁티는 아메바를 예로 든다고 한다. 아메바가 환경이 좋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상황이 바뀌면 몸을 옮기는데, 방식은 자기 몸을 한 쪽으로 쭉 늘어뜨려 몸을 옮기고 나면 다시 예전의 형태를 회복한다. 이때 늘어지는 아메바의 일부를 허족(虛足)ㆍ위족(僞足)이라고 한다. 

우리 인간에게 정신과 의식은 허족ㆍ위족과 같다. 필요가 있을 때는 쭉 뻗어 발휘했다가 필요가 없으면 거둔다. 그래서 정신적 사유를 하거나 의식하고 있을 때에는 에너지가 분산되어 감각이 약해진다. 그러나 '몰입' 상황은 대체적으로 감각적인 것에 몰두할 때다. 이때는 정신과 사유가 없는 상태이다. 예를 들어 섹스를 할 때, 이렇게 하면 좋을까, 저렇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면 사실 잘 안 된다. 그냥 미쳐버려야 잘되는 것이다. 가장 감각적인 상태가 되어 생각하지 않는 도취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 몰입은 순수한 몸이 된다는 것이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고 했지만 생각의 궁극적인 목적은 '감각의 향유'이다. 조광제 교수는 내 몸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면서 또 어떤 감각적인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염두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각은 재미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생각을 너무 오래하다 보니까 생각하기 위해 살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생각을 생각하기 위해 생각했던 것이 '근대'이다. 이렇게 되면 데카르트는 혹 생각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인간이 늘 생각한다는 것은 그만큼 항상 새로운 감각, 운동, 상황에서 내 존재를 계속 역동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내 존재는 갇혀 있지 않고 결정론적이지 않으며 변화의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향해 계속 나가는 존재이다. 

인간의 몸틀은 어떤 특별한 중심이 되는 몸틀이 없다. 파시즘적인 전제적 형태의 피라미드 체계가 아니다. 필요에 의해서는 서로의 위치와 배치를 바꾸기도 한다. 몸은 그래서 탈중심적인 존재이다. 메를로-퐁티는 "각각의 나는 다른 모든 나의 교차점이다"라고 했다. 세상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회ㆍ역사 등등의 복합적 영향을 받으며 내 몸이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내 몸은 내가 의식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인간들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 조광제, (사)철학아카데미 운영위원ⓒ한국철학사상연구회

몸에서 살로 : '살존재론' 

몸을 철학적 사유의 바탕으로 삼는다는 것은 몸 바깥에 있는 모든 세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고 세계와 항상 접촉한다는 것은 서로 감각적인 것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몸들은 감각적인 방식으로 주어진다. 왜 하필이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감각적으로 들어올까? 우리는 감각하면서도 감각되는 자이다. '본다는 것'과 '보인다는 것', 악수처럼 '만진다는 것'과 '만져진다는 것' — '봄을 본다는 것', '만짐을 만진다는 것' 이런 것이 몸의 성격이다. 몸은 주체이면서 동시에 대상이다. 몸은 내 안의 개별적인 몸이 아니라 세계와 항상 소통하고 있는 것이고 소통은 감각을 통해서 한다.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들끼리 보고 만지고 만져지는 것은 설명이 가능하지만 인간과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할까? 

이 부분에서 메를로-퐁티는 화가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에게 영향을 받았다. 세잔은 "풍경이 내 속에서 자신을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Le paysage se pense en moi, et je suis sa conscience)"라고 했다. 세잔은 풍경을 한참 쳐다보다가 풍경이 자기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을 받으면서 "풍경이 내 속에 자기를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라는 일종의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감각적 세계를 경험한 것으로 보인다. 메를로-퐁티는 이를 바탕으로 '몸의 나르시시즘(Narcissism)'을 말했다. 

조광제 교수는 "보이는 것이 보는 나를 가득 채우고 있으며 보는 나는 온데간데없고 보이는 대상이 꽉 나를 채우고 있다. 사실 보는 나도 그런 것을 원한다. 본다는 것은 보이는 것이 오히려 주체가 된다. 보이는 대상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내가 사물을 만질 대 만져지는 것은 사물이 오히려 나를 만지는 것이다. 이런 나르시시즘적인 감각의 소통이 어떻게 가능하냐면 메를로-퐁티는 모든 존재는 살로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메를로-퐁티는 '감각덩어리(masso du sensible)'라는 말을 했다. 덩어리는 사물이다. 사물이 감각으로 덩어리져 있다는 것인데, 색도 알고 보면 시각 중심의 색 덩어리이다. 색은 사물의 표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물을 자르면 그 단면에도 색이 있다. 사물은 모두 색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물을 인식적으로 규정하지만 감각적으로 만져서 단단하게, 혹 물렁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사물 그 자체'라고 한다. 일종의 감각적 유물론이다.

마르크스가 자유를 얘기할 때 기본으로 접근하는 것이 감각이다. 노동이라는 것은 감각적인 소통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것을 좀 더 존재론적인 '살'이라는 개념으로 심화시킨 것이 메를로-퐁티이다. 그래서 우주의 살, 세계의 살, 보는 자의 살, 보이는 것의 살 등의 얘기를 한다. 

여기에 플라톤(Plato)의 이데아는 보이지 않는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는 '가지적[可知的, 가지적인 것(noēton)]'으로 오로지 이성에 의해서만 파악되는 것이다. 이데아는 아이러니 하게도 색이 없다. 예를 들어 빨강의 이데아는 전혀 빨갛지 않다. 이러한 플라톤의 사유를 끌어다 놓은 것이 과학적 세계이고 물리학적 세계인데 이것과 정반대로 보는 것이 메를로-퐁티의 '살존재론'이다. 이것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핵심 내용이다. 살존재론은 예술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1943)에서 "애무는 몸을 살로 바꾼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몸은 노동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도구를 사용할 때 우리는 손을 이용해 도구를 잡는다. 그러나 애무는 노동과 다르다. 무엇을 도구적으로 잡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애무는 도구적인 몸이 도구성을 벗고 순수 감각적인 상태로 변하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우리 인간은 살이 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살이 된다'는 것은 사르트르의 경우 '즉자(卽自)'와 하나가 된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사르트르는 인간이 완전한 살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아무리 다양한 많은 시도를 해도 완전한 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간은 알았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내가 살이 되는 만큼 파트너를 살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사르트르는 살이라는 개념을 인간에게만 적용한 것이다. 

메를로-퐁티는 이것을 전 우주에 확대 적용시켜 온 우주가 애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살이라는 것은 늘 감각하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모든 각 존재는 살의 상태에 있다. 모든 사물의 근본적인 존재의 상태는 살의 상태라는 것. 그래서 온 우주는 살로 되어있는데 이 살은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다. 온 우주는 살이라는 단 하나의 원소로 되어있다. 메를로-퐁티는 이것을 '살일원론'이라고 명명한다. 우주의 정신과 물질도 살의 변형태이고 몸도 살의 변형태이다. 스피노자(Spinoza, 1632~1677)의 신=자연=실체는 메를로-퐁티가 말한, 살이 다양한 양태로 변함을 언급한 것이다. 

조광제 교수는 메를로-퐁티가 살일원론을 다 말하지는 못하고 죽었지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교직-교차' 장에 보면 이에 대한 원론이 나오고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말년에 쓴 『눈과 정신』에 메를로-퐁티의 회화론이 보인다고 한다. 회화는 살을 만나고 살을 접촉하면서 그 살을 그려내는 것이다. 순수 감각적인 상태를 회화라고 본다. 곧 존재를 그려내는 것이다. 그래서 메를로-퐁티의 회화론은 '존재론적인 회화론'이다. 조광제 교수는 회화론적 존재론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한다. 

하늘의 별을 보고 바람을 맞으며 시적 감성을 느끼는 것은 온 우주가 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속에 빨려 들어가 나르시시즘을 느끼는 것이다. 온 우주가 나고, 내가 우주가 됨을 느낀다. 이것이 메를로-퐁티의 후기 살존재론이다. 유물론 치고는 매우 감각적이다. 감각적 유물론이라고 말할 만한데 유물론에서 물질은 순수 객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메를로-퐁티에게 순수 객관적인 것은 찾을 수 없다. 

메를로-퐁티에게 순수 객관적인 것은 없다. 주관적인 것은 의식이나 정신이 아니고 몸이다. 이것이 들뢰즈에 가게 되면 감각론으로 나오는데 『감각의 논리』(1984)에 보면 신경체계에 대한 설명에서 따가움과 같은 신체적 고통의 순간, 신경을 통해 느끼는 감각이 진짜 감각이라고 한다. 이것이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 1992)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통해 극적으로 구현되었다는 것이다. 메를로-퐁티의 살존재론을 들뢰즈는 극단적으로 풀어냈다고 할 수 있다. 『감각의 논리』에서 감각은 세계의 존재라고 한다. 메를로-퐁티가 영향을 끼친 푸코나 들뢰즈는 이런 감각론에 기초하고 있다. 

메를로-퐁티의 순수 감각적인 상태로서 세상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면 평소에는 별 느낌 없이 보던 예술 작품을 볼 때도 뭔가 느낌이 달라지고 길을 걷다가 보이는 사물이나 현상들에서도 순수 감각적인 것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예술적인 경지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메를로-퐁티의 살일원론에 입각한 살존재론은 예술존재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11강 : 2월 5일 푸코: 근대 이성의 본질을 폭로하다 - 광기, 권력, 폭력 (박민미, 대진대 외래교수) 



        

                    

 
해체란 무엇인가 - 글쓰기와 차이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9> 데리다
해체란 무엇인가 - 글쓰기와 차이     
 
해체란 무엇인가 

한국사회에서 민주화 운동이 강렬하게 일어났던 1980년대는 맑스-엥겔스의 사회주의 노선에 입각한 이론이 사회적 대안으로 자리 잡았었다. 그러다가 90년대 이후 공안정국이 약화되고 사회 전반에 민주화가 일정 정도 진척되면서부터 과연 유물론적인 입장이 우리사회의 대안으로 기능하기에 적합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한국사회를 설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입을 추구하는 시도가 있었다. 실제로 포스트모더니즘을 통한 여러 대안이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포스트모더니즘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철학자가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이다. 

데리다는 프랑스에서 살고 거기서 죽었지만 태어난 곳은 알제리이다. 이 평범하지 않은 경력은 그가 알제리 출신으로서 프랑스 문화와의 충돌과 차이에서 느끼는 이질감을 통해 자신을 주류 프랑스 사회에 대한 이방인이자 타자라고 여기는 근간이 되었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아홉 번째 시간에 만나 본 철학자 데리다의 이런 생각은 까뮈(Albert Camus, 1913~1960)의 소설 ?이방인?의 내용과 오버랩 된다. 이번 강의를 맡은 이정은 교수는 사람들이 보통 프랑스 사회를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회로 이해하지만 한편으로 인종문제와 같은 첨예한 사안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영향력의 범위 안에서 오히려 폐쇄적이 될 수도 있다고 하면서 데리다는 까뮈가 고발한 프랑스 사회의 모습을 통해 어떤 집단의 규정 밖에 존재하는 인간(이방인)의 실존적 고민이 남의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고 자신에게 진지하게 다가왔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 데리다

타자의 경계를 해체 

데리다는 이방인, 즉 타자의 경계를 '해체'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 해체의 과정에서 타자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그렇지 않다고 하기에도 힘든 그런 지점이 있음을 설명해내고 싶어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방인이나 타자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집단의 규정 안에 있는 인간으로서, 주체와 경계 밖의 타자로서 주체가 아닌 것의 구분은 굉장히 유동적이고 자의적이다. 양자를 구분하는 차이 역시 그렇다. 그렇다면 이 차이는 무엇을 가지고 규정하고 만들어지는가? 

무언가를 둘로 나눌 때 작동하는 차이는 기존의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이 차이를 만드는 근저의 또 다른 '차이'가 있다. 데리다에 의하면 이 차이를 만드는데 작동하는 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다. 그러나 차이를 만들어 내는 '차이'가 작동하는 것은 확실하다. 이방인과 비이방인이 나누어지는 것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고 이것은 기준이 되는 차이에 의해 나누어진다. 

데리다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차이를 근본적으로 반성하면서, 차이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개념적으로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경계를 만드는 기존의 지점은 해체되고, 나누는 기준이 사라지니까 이 모두를 다시 새롭게 규정해야할 상황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데리다는 기존철학사 전체를 한마디로 설명해내려 한다.

탈근대로서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해체주의 

데리다는 포스트모드니즘을 '탈근대'라는 개념으로 규정했고 '해체주의'라는 독자적인 용어를 써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다. 데리다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차이'로서의 근원적인 어떤 것을 얘기하면서 자신의 이런 생각은 예전부터 계속 있어왔던 사유의 전통에서 발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철학사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그 선구적인 인물을 발견하여 지목한 것이 니체(Nietzsche, 1844~1900)와 하이데거(Heidegger, 1889~1976)이다. 그리고 이들을 분석하다보니 자기가 말하는 지점에 더 가까운 사람을 니체라고 봤다. 그런데 이정은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객관적 입장에서 니체를 본다면 오히려 후기구조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더 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것을 해체하는데 그 특징이 있지만 이러한 발상을 가지고도 결과적으로 새로운 구조가 만들어짐을 인정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와 그것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가 존재한다. 데리다는 후자의 입장이다. 이정은 교수는 데리다가 탈근대라는 개념에 이어 다시 해체주의라는 용어를 만들고, "나의 발상은 니체에 연원한다"고 했지만 사실 니체를 잘 들여다보면 데리다가 거부했던, 구조를 깨고 또 깨 봐도 부수적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다는 점을 수용한 사실이 분명 있다고 한다. 푸코의 구조주의에 대한 입장(후기 구조주의)이 이와 같고 이런 발상을 전개시킨 사람들의 계보는 니체-푸코-들뢰즈로 연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리다가 니체를 자기사상의 선구자로 말하는 이유는 먼저 '실체' 개념을 거부했다는 점에 있겠다. 그러나 '실체' 개념에 대한 거부는 니체 이전의 경험론자들이나 고대의 회의론자들도 모두 언급한 얘기다. 데리다에게 있어 니체를 해체주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점은 '인과관계'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보통 '인과관계'는 어떤 학문의 지식체계나 개념체계이던지 간에 그 체계의 기본 틀로 전제된다.

인과관계를 거부 

흄(David Hume, 1711~1776)과 같은 경험론자들에 의하면 개별적 현상과 내가 사고하는 인과개념은 서로 이질적이다. '물건 A'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소리현상 B'가 일어난다는 명제가 있다고 할 때, 'A'와 'B'에 대해서는 인지했지만 다시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경험했는가? 라고 묻는다면 경험론자들은 그 둘 사이의 인과성 자체를 경험한 것은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서로 다른 현상들을 경험한 것뿐이다. 또 경험론자들은 모든 지식은 감각경험으로 환원되지 않으면 지식이라 할 수 없다고 한다. 흄은 인과관계는 필연성이 없지만 인간의 지성이 마치 필연성이 있는 것처럼 여겨서 지식을 만들어내고 학문이라는 체계를 만들어 냈다고 했다. 그리고 니체는 인과관계에는 필연성이 없으므로 반드시 거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정은 교수는 다음같이 설명한다. "예를 들어보자, 사람들이 돌멩이는 단단하다고 하지만 돌멩이의 단단함은 경험의 결과이다. 내가 돌멩이가 단단하다고 느낀 것과 자연물인 돌멩이의 단단함 사이에는 아무 인과관계가 없다. 돌멩이를 만졌을 때 스펀지와 같이 말랑말랑 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돌멩이에 대해 결과적으로 단단하다는 말을 한 것을 돌멩이에 적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 니체의 입장이다. 돌멩이는 단단하다고 본질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돌멩이가 스펀지와 같다고 규정 한다면 이경우도 스펀지와 같다고 느낀 나의 감각과 돌멩이 사이에 인과관계를 적용시켜야 하기 때문에 성립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설명해보면 어떤 존재에 대해 파악하고 개념규정을 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형성'된 것으로서 여기에 인과관계가 성립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결과적인 것은 본질이라고 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왔던 모든 학문, 지식체계나 경험적인 현상들도 실제 대상과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돌멩이가 단단하다는 것은 본질적 규정이 될 수 없다. 

돌멩이는 상황에 따라 단단하게 또는 물렁하게도 느껴질 수 있다. 니체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세상에 있는 인간 외의 모든 존재들은 생물적인 감각에 있어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똑같은 돌멩이도 다른 존재들에게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규정된다. 니체가 말한 '다른 세계'라는 것은 똑같이 보편적으로 규정된 세계를 각각 다르게 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체가 본 세계가 곧 자기의 세계 전부라는 것이다. 똑같은 세계를 경험한 것처럼 보이지만 똑같은 세계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본래의 모습이라는 것은 없고 오직 구성된 결과물만 있다. 인과관계는 없다. 그래서 인과관계로 만들어지는 개념도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고, 그 개념으로 만들어지는 체계도 없다. 

데리다는 본질적인 돌멩이의 단단함은 없는데, 돌멩이의 단단함이 없다는 그 '지점'만을 말하려 한다. 데리다는 니체가 본질적인 것을 깨는 그 지점을 보았고, 봤던 그것만 말하겠다는 입장이다. 데리다는 항상 인과관계를 가지고 이 세계를 구성하게 되면 구성되는 방식이나 지점마다 여러 개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한계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리고 데리다는 니체가 구조주의적인 맥락이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 개념적인 이성의 체계를 깨고 나서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을 고민하다가 결국 웃음을 날려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평한다.

로고스적 질서를 비판 

'로고스(logos)적 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들은 모두 '이원론적'인 특징으로 전개된다. 남자와 여자, 선과 악, 해와 달, 이성과 비이성, 정상과 비정상 등의 이항대립으로 나누고 이렇게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경계를 설정한 후에 양자에 대해 좋고 나쁨의 가치를 평가하고 대입한다. 정리하면 근대를 비판한다는 것은 모든 로고스적 체계를 가지고 있는 질서에 대한 비판이다. 이것은 인간의 사유에 이분법적 가치평가를 개입시키는 이원론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 로고스적인 질서의 꽃은 철학이다. 데리다는 형이상학적인 모든 철학체계를 비판하고 이와 유사한 모든 학문체계, 개념체계를 비판하겠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고대로부터 이어진 로고스적 전통을 해체시키기 위해서는 현대의 인간과 근접해 있는 근대 철학의 자아 중심, 주체적 철학, 주관주의 요소와 특징을 해체시키는 것이 주요하다고 보았다. - 근대 철학의 정점(Hegel 철학)에서 변곡점이 생겼을 때 프랑스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구조를 통해 철학을 위시한 근대 전반을 비판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 데리다는 근대 전반을 비판하는데 이 비판은 이성비판, 종교비판(신비주의), 선악대립비판, 실체비판, 개념비판(은유) 등 대부분의 영역을 대상으로 한다. 

보통 이성중심주의는 로고스 중심주의이고 로고스 중심주의는 '음성중심주의'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로고스는 인간의 이성으로부터 나오는데 전통적인 생각 안에서 이성은 영혼의 작용이다. 그리고 영혼의 사유는 이성적 작용으로서 밖으로 표출되는데 이 때 표출되는 형태는 '음성'이다. 이 음성은 언어체계를 만들고 이것은 다시 문자로 표현된다. 기존의 철학체계에서는 모든 것이 영혼의 울림이 음성으로 드러나는 것에서 출발하여 음성중심주의적 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완결된다. 음성은 이른바 신의 계시를 상징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가 '신탁'을 받았다는 표현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신적 질서를 뛰어넘지 못하는 전통적인 기존의 철학체계에서는 항상 이성 위에 음성이 있다.

이를 비판하기 위해 '문자중심주의'를 사용하는데, 데리다는 기존과 다르게 새로운 개념의 문자학 만들기를 선언한다. 이른바 '그라마톨로지(Grammatology:신문자학)'이다. 데리다가 말하는 '그라마톨로지'는 새로운 대안의 지평을 드러내는 글쓰기로, '일반적 글쓰기'이다. 차이로 담기지 않는 차이로써 '차연'을 그려내는 과정이다. - 바로 차이를 만들어 내는 차이가 '차연'이다. - 이 차이는 개념적 질서나 로고스적 질서로 잡히지 않는 차이이며 기존의 개념규정으로도 잡히지 않는다. 개념으로 잡히지 않고 언어로 접근도 안 되지만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흔적'(또는 '자취', '발자국')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기존의 개념적 체계를 가지고 접근하기 때문에 그 차이를 잡을 수가 없다. 또 존재 자체를 언어로 설명하려고만 하면 그 경계밖에 있는 차이는 잡히지 않는다. 이런 것을 잡아내려면 새로운 글쓰기로 찾아내야 한다. 
▲ Arthur Bradley의저서 『Derrida's Of Grammatology』 - 표지위에 보이는 발자국, 자취, 흔적

음성과 문자의 사이 

데리다는 음성과 문자의 관계에 있어서 문자가 음성의 영향을 받아 음성을 표현해 내는 수단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음성을 일탈하는 부분도 있다고 한다. 기존의 로고스적인 전통에서는 문자가 음성에 일탈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제거하고 음성에 맞게 만들었지만 데리다가 보기에는 음성과 문자는 각각 따로 작동하는 체계이다. 이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만 기존의 개념으로는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데리다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차이'이면서도 보이지는 않지만 작동하는, 파악되지 않는 무언가 있다고 한 것이다.

우리가 예를 들어 이방인과 비이방인의 개념을 구별하듯이 하려면 둘을 나눌 수 있으면서 눈에 보이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 이 개념은 로고스적인 방법으로써 철학자들이 보여주는 장치이다. 그렇다면 데리다가 말한 잡히지 않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데리다의 용어 '차연'은 'différance'라고 쓰고 프랑스어로 기존의 '차이'라는 말은 'différence'라고 적는다. 이 두 단어의 발음은 [difeʀɑ̃ːs]로 서로 같다. 이정은 교수는 알파벳 'e'와 'a'에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 음성 발음은 같지만 눈으로 보면 이 둘은 분명 다른 단어이다. 데리다는 이 두 단어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고 하면서 동시에 음성중심의 문자 체계는 이 둘의 차이를 드러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음성중심주의의 개념체계 아래에서 '차이-différence'는 있지만 '차연-différance'은 없는 것이 되고 문제가 있어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둘이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며 나중에는 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différence'만 맞다 한다면 이 개념에 맞는 대상만 이성적 질서에 맞는 체계라고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이해체계로 잡히지 않는 모든 것은 거짓이고 틀린 것이 된다. 또 더 나아가 틀렸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는지 조차도 생각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조차도 망각해버린 상태가 되고 만다. 

이정은 교수는 차이에 대해 모순적 질서를 바탕으로 확인해 들어가 보면 이 둘 사이에 경계를 구획하는 '차이'가 있어야 하는데 이 차이조차도 음성중심적인 구조로 진행되다 보니까 그 질서를 벗어나는 것을 간과하게 되었고, 처음엔 알았지만 무시(은폐)하게 되고 더 나아가 시간이 지나면서 무시(은폐)했다는 것조차도 잊어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존재자가 존재에 의해 드러나는 우리 세계의 구성 안에서 단순히 세계가 존재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고 인식하다보니까 마침내 존재에 대한 망각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존재가 망각된 것조차도 모르고 살 수밖에 없던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데리다는 음성과 시각 사이에서 작용하는 흔적을 보여줬다고 했다. 이 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그것은 일반적으로 '신비'라고 인식된다.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비가 곧 성스러움이 되고 성스러움이 신비로운 감정에서 나오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종교가 그 신비주의를 강화하여 사용하는 것을 목도한다. 종교적인 입장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사실 데리다는 종교를 비판하려는 입장에서 이런 얘기들을 했는데 오히려 역으로 그들을 강화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인간은 흔적, 또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그 밑에 있는 그것을 신비로 알아차린다. 

차연의 의미와 상징 

차이를 만드는 근간이 되는 배후의 무엇이며 보이지는 않지만 작용하고 있는 이것을 '차연'이라고 한다. 들리지도 않고 시각적으로 파악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데리다는 음성과 문자를 통해 그 상황을 앞서와 같이 보여주고 있다. 

'차연'에 운동이 있는데 그것이 '자취'('흔적' 혹은 일종의 '발자국'과 같은 이미지)를 만든다. 그러나 자취가 '차연'은 아니다. 이것을 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아우라aura'라고 할 수 있겠다. 차이를 만들어내는 '차연'이 있고 그 차연이 만들어낸 차이를 토대로 철학자들이 사용하는 '동일성과 비동일성', '동일성과 차이' 이런 개념들에 차이들이 작동하고 있고 이 차이에 대해 그 배후에서 차연이 작동하고 있다. 보통의 우리들은 차이까지는 알 수 있지만 '차연'은 잡아내지 못한다. 그리고 마치 있지도 않은 것처럼 처리해 버린다. '차연'이라는 지점은 이성적이거나 감각적인 질서와 체계로 파악이 되지 않는 어떤 지점이다.

데리다는 기존에 만들어 놓은 체계가 앞서의 얘기들을 무시하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런 체계와 개념들의 분류는 정확한 나눔이 아니라 일시적인 경계일 뿐이라고 한다. 데리다가 이런 설명을 한 이유는 différance 'a'를 통해서 'trace'([tʀas]프랑스어:발자국, 자취, 흔적) 와 같은 세계를 설명하려고 하는 의도였으며 이렇게 '차연의 유희'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예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말하려했기 때문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헤겔(Hegel, 1770~1831)도 그랬다.

이정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예를 든다. "헤겔은 우리가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앞에 쇠로 만든 망치가 있다고 치자. 그리고 이 망치에 '물건A'라는 또 다른 이름을 부여하자. 이 '물건A'-망치는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객관적 질료인 쇠를 재료로 만든 물건이다. 단, 만약에 이 물건의 용도와 이름을 정확히 모른다면 우리는 일단 쇠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물건A'-망치는 개별적으로 경험 가능한 대상이다. 이것이 못을 박는 도구인 망치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물건에 쇠붙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쇠붙이라는 이름은 여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순전한 쇳덩어리 '물건B'에도 적용되는 보편적인 이름이 된다. 그랬을 때 내가 개별적으로 경험한 망치로서의 '물건A'와 순전한 쇳덩어리 '물건B' 사이에는 쇠붙이라는 이름의 불일치가 일어나게 된다.('물건B'가 쇠붙이라는 개념에 더 가깝게 일치하는 이름이다)"

"그런데 인간은 감각적으로 경험한 어떤 것을 개념으로 규정하려는 버릇이 있다. 앞에서 예를 든 바에 따르면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것과 개념적인 것 사이에는 불일치가 일어난다. 그래서 인간은 불일치를 극복하고 양자를 연결하여 설명하기 위해 이 사이에 이런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중간개념으로써 쇠붙이 이미지를 부착시키는 기호를 붙여준다. 그리고 기호가 정착되면 이름을 붙인다. 이 때 중간의 매개 고리로서 기호가 만들어지는데 데리다는 그것을 알파벳 소문자 'a'라고 했다. 기호는 감성과도 연결되고 보편적 개념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둘 다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기호가 보편적 개념으로 완전히 전화되는 순간이 오면 기호는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 이 쓸모없는 기호를 헤겔은 죽어있는 무덤 피라미드와 같다고 했고 알파벳 대문자 'A'라고 표현했다. 'A'가 보편적으로 잡히지 않는 어떤 상징적인 장치라는 것이다." 

알고 보면 헤겔조차도 우리가 지금까지 말한, 보편개념으로 잡히지 않는 어떤 지점을 언급한 것이다. 로고스적 체계가 강한 헤겔은 'A'라고 표현했고 이런 사실을 토대로 데리다는 'a'라고 표현했다. 차연으로서 'a'가 음성중심적인 질서에서 사라지고 없어지며 은폐되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곧 'A'는 차연 'a'의 무덤이자 거대한 묘비이다. - 'A'의 삼각 형태는 피라미드(무덤)의 형태와 닮았다. - 죽어있는 무덤이기에 누가 죽어있는지, 더 나아가 죽어있는지조차 모르는 그런 상황이 된다. 데리다는 헤겔이 이것을 'A'라는 기호로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데리다는 자신이 말하려는 이런 상황과 경제학의 차원이 비슷하다고 했다. 문자 'a'의 죽음이 경제학의 차원과 설명하는 것이 닮았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철학자들의 개념 중심적, 로고스 중심적, 의미 중심적 차원을 '제한 경제학'이라고 불렀다. 데리다는 전통 철학자들의 제한 경제학적인 구조를 비판하면서 데리다 자신의 대안으로써 철학을 경제학에 비견하면 실은 '일반 경제학'적인 질서와 같다고 한다. 특히 헤겔에게는 제한 경제학만 있기 때문에 일반 경제학으로 전환하여야만 이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여기에서 일반적 글쓰기가 등장한다. 이것이 새로운 문자학의 이름이다. 물론 데리다의 이런 설명은 무덤의 어원 'oikēsis'와 경제(economy)의 어원인 'oikos'가 서로 동족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에서 출발했다. 

차연이라는 용어의 문제 

차이라는 것은 로고스적인 질서 속에서 나온 용어이다. 그래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차이라는 방식으로 '차연'을 설명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더 세밀하게 보면 데리다는 자기가 말하는 'trace'를 설명하기 위해 '차연'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존재자 배후에 있는 존재의 모습인 '차연'을 사람들은 계속 놓치고 있다는 것.

그런데 데리다 자신도 기존의 철학적 질서에 속에 있는 인간이기에 '차연'이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하다보니 이것이 일정한 개념으로 고착됨을 느꼈다. 자신의 방식이 기존의 체계에서 설명하는 방식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그래서 데리다는 '차연'이라는 용어를 고정시키면 안 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데리다는 '차연'을 '유보', '원문자', '원흔적(공간화&시간유보)', '공간화', '대치', '약', '처녀막', '변두리-흔적-움직임' 등으로 대체한다.

- 예를 들어 '약'이라는 것의 의미는 이렇다. 우리가 약이라고 쓰는 것들 중에는 본래는 독약이라고 불리던 것들도 있고 독약이 아닌 순한 약성을 가진 것이 있을 수도 있다. 현대에도 보면 전문의약품의 경우 투약 대상이 아주 건강하거나 의약품의 효능에 맞는 증상이 아닐 때, 그 상황에서는 100% 약이라고 할 수 없다. 약이라는 용어의 의미 설정은 굉장히 주관적이고 자의적이다. 그래서 이런 용어가 사용되는 영역은 존재자의 질서이지 존재의 질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데리다는 용어를 이렇게 자주 바꾼다.

철학은 상징과 은유에서 출발 

기존의 로고스적인 질서를 통해 만든 개념들은 지극히 자의적이다. 소쉬르(Saussure, 1857~1913)는 언어를 문자로 만든 그 사이에 연결고리가 없어 문자는 지극히 자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언어를 만들기 위한 기표도 자의적이다. 이를 토대로 우리도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들이 자의적임을 주지할 수 있다. 

이정은 교수는 "여자화장실 표시를 볼 때, 그 기표가 여자화장실을 상징함을 알지만 사실 둘 사이에 본질적인 관계는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성과 영혼의 울림 작동도 그렇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표현하는 문자체계인 한글과 영어도 자의적이 된다. 음성과 문자 간에는 자의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자의적인 것을 규정해놓고 절대적이라고 인정하는 태도 자체가 존재의 본래 모습을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근간이 되고, 이른바 우리가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성의 결과물인 언어, 개념, 철학 체계가 모두 자의적인 체계라는 것을 또한 알 수 있다"고 한다. 

데리다에 의하면 철학은 자체가 은유이다. 은유에서 철학이 탄생했고 개념도 은유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철학언어 모두가 수사이다. 다만, 감각적 모습을 가지고 비유적인 모습을 설명했는데 이후 감각적인 개념이 탈각되면서 기존의 것은 마치 비감각적인 개념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착각조차도 지워졌다. 그래서 철학은 이성적ㆍ논리적 개념이라고 인식하지만 알고 보면 철학체계는 모두 은유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감각적인 아픔을 표현할 때 어떤 것에 비유한다. 마찬가지로 철학의 경우 이데아에 대한 설명도 비유에서 시작했다. '동굴의 비유'가 그렇지 않은가. 플라톤의 이데아는 무엇인가? 이정은 교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플라톤의 이데아를 설명할 때 논리적인 설명으로 이해를 못하면 곧잘 태양에 비유해서 설명한다고 한다. "이 세상은 태양이 있어야 빛과 어둠을 구별한다. 모든 존재자의 구별 근거가 태양이고 모든 생명체의 에너지활동의 근원이 태양이다. 마찬가지로 선의 이데아는 태양과 같아서 모든 이데아의 근원이 된다."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가 쉽다. 그러다가 학생들이 선의 이데아를 이해하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양을 잊는다. 잘 살펴보면 학생들은 개념적인 파악 이전에 비유를 통해 대상을 이해했다. 그런데 시험시간이 되면 감각적인 설명이 아닌 논리적인 설명으로 기억하고 답안지를 써내려간다. 그리고 감각적인 설명이 있었는지 조차 잊어버리고 철학은 이성적인 논리체계라고 기억한다. 
▲ 이정은 교수

로고스적 질서에 기생하기 

옛날에 양피지에 쓴 글은 시간이 지나 오래되면 글이 흐릿해지면서 지워지게 된다. 그리고 후대 사람들은 그 위에 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전에 쓴 글의 흔적이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희미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현대미술에서는 시약을 써서 이 사실을 밝혀낸다. 마찬가지로 감각적 체계로 글자 모양이 만들어진 이후에 개념적 체계로 이전의 글 위에 문자를 덧썼다면 개념적 체계 배후에 감각적 체계가 있고 다만 그 감각적 체계는 지워진 것처럼 흔적이 흐릿하게 남을 뿐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의 영역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 데리다는 철학자들이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말하는 텍스트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간극이 보인다고 했다. 헤겔이 보편개념으로 잡히지 않는 어떤 지점의 상징인 기호 'A'를 얘기 했듯이 텍스트 사이에 들어가면 그 간극이 보인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형이상학적 체계 안으로 들어가 형이상학적 체계를 상징하는 거인 위에 '등 타기' 하여 앉아서 얘기하거나 '기생'하여 철학하는 방법을 말한다. - 데리다는 자신을 기생충이라고 비유한다. - 대신 형이상학적 체계를 깨버리거나 죽여 버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기생충은 숙주가 죽으면 자신도 죽기 때문이다. 데리다에게 '차연'은 '기존 형이상학적 질서'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차연'을 얘기하면서 '차연'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차연'을 은폐한 로고스적 질서를 죽이지는 않는다. 또 '차연'은 '차연'만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다. 기존의 텍스트 속에 들어가 줄타기 하면서 얘기해야 한다. 데리다는 로고스 중심주의를 비판하지만 로고스적 질서 안에서 기생하는 기생충으로서 숙주인 로고스적 질서에 일치되지 않고(될 수도 없고) 다만 기생충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알리는 것이다.

데리다는 해체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차연'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이런 과정을 보여주는 상황이 '차연'의 상황이 된다. 만약 데리다의 철학을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 1908~1961)의 몸철학과 비교한다면, 몸철학에서는 주체와 객체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육체가 정신을 컨트롤하기도 하는데, 간혹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구분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 애매한 것이 바로 몸이다. 데리다의 해체는 그 구분하기 힘든 상태를 맞닥뜨린 상황에서 몸을 통해 구분하는 절대적인 상태를 깨부수는 것이다. 이성적이거나 비이성적인 상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종의 이분법에 대한 비판으로 작용한다. 쉽게 말하면 메를로-퐁티가 말하는 차원은 차이의 차원에 머물지만 데리다의 '차연'은 그것보다 하나 더 나아가는 개념이라고 설명 가능하다. 메를로-퐁티와 데리다는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데리다가 더 멀리까지 간다.




 
 
타자의 얼굴과 환대의 윤리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10> 레비나스
타자의 얼굴과 환대의 윤리     
 
지금, 철학의 이미지와 레비나스의 철학

"과학에 있어서의 철학은 섹스에 있어서의 포르노그래피와 같습니다. 더 싸고, 더 쉽고, 어떤 사람들은 더 좋아하기는 하죠." 스티브 존스(제레미 스탱룸 편, 김미선 역, 『세계의 과학자 12인, 과학과 세상을 말하다』, 지호, 26~27쪽.)

"멀쩡한 사람도 누구나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묻는다. 그러나 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대체로 정신병자밖에 없다. 누구나 이런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을 진심으로 중대하게 여기는 사람은 정신병자로, 그는 언제나 신념체계를 세우는 사람이다." 대리언 리더(대리언 리더 저, 배성민 역, 『광기』, 까치, 97쪽.)

철학은 무엇일까? 과학에 있어서 철학은, 비유하자면 실제 섹스를 따라가지 못하는 포르노그래피와 같아서 비록 가짜이지만 그 힘든 과학적 발견에 앞서서 세계와 사회의 현상을 풀어주고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자들은 과학 이전에 철학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철학자들이 평가절하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자기 나름의 일관성을 가지고 완벽한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려는 자세가 정신병자와 같은 기준에 서 있다는 점이다. 현실과 부딪힌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철학을 도모하고 세계를 남김없이 설명하려는 철학자들의 일관성은 흡사 정신병자들이 가지는 트라우마 때문이기도 하다.

현대철학은 이런 비판과 맞닿아 있다. 서양에서 근대까지 철학자들은 단순하고 일관적인 원리를 가지고 세계를 설명하려 하였다. 철학자들이 제시하던 세련된 근대적 세계관은 일방적이며 일관적으로 세계를 장악하려했던 시도들로 점철되었다. 서양인들이 이른바 제3세계를 식민지화하려했던 역사의 이면에는 서양인들의 전체성과 인간과 자연을 조작 가능한 것으로 봤던 이성주의에 대한 무비판적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열 번째 시간에는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의 철학을 통해 근대적 세계관과 그 이해의 연장선에서 발생하는 억압되는 타자, 그리고 타자를 장악하는 나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나와 타자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런 현상은 신자유주의의 심화와 함께 우리 사회에 일반화된 모습들이다. 얼마 전 『해체와 윤리 - 변화와 책임의 사회철학』(그린비, 2012.03)을 펴낸 부산대 철학과 문성원 교수는 이 책에서 추상적 원리만 남고 우리 삶의 구체적 현실은 논외가 되어버린 철학이 과연 정체된 현실과 퇴색된 가치를 뛰어넘어 우리 문화와 사회 전반에 변화를 제시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타진하면서 신자유주의 극복의 실마리를 레비나스의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번 레비나스 철학 강좌를 통해 레비나스의 '환대'라는 개념이 우리사회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면모를 명확히 하는 시간을 가졌다. 
▲ 레비나스 ⓒ www.flickr.com

현상학적 전통과 레비나스의 '환대' 

레비나스는 서양철학이 가지고 있는 전체성이라는 거대한 폭력적 성향과 인간의 이성이 인간과 자연의 모든 것을 관장하고 조작할 수 있다는 이성주의의 폐단을 지적한다. 이런 레비나스 시각의 배후에는 현상학적 전통이 자리 잡고 있다. 

현상학이라는 철학 운동의 시발점에 서 있는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은 자연과학적 세계관의 무비판성을 문제시 하며 현상의 근원성과 본질을 탐구한 철학자이다. 특히 인간의 의식과 관련하여 무엇인가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지향적 의식의 구성 작용에 주목했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존재와 관련하여 존재자와 존재 차이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존재자에 매몰되어 있던 서양의 전통을 근원적으로 반성해보려는 시도를 한다. 문성원 교수에 의하면 레비나스에게는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영향력이 가장 컸을 것이라고 한다.

레비나스 보다는 나이가 어리지만 레비나스에게 있어서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레비나스는 후설과 하이데거를 비판하기도 하는데 데리다는 1964년 "폭력과 형이상학"(『글쓰기와 차이』)이라는 글을 통해 레비나스의 철학을 소개하면서 비판한다. 후설과 하이데거의 견지에서 역으로 레비나스의 후설, 하이데거 비판을 반(反)비판하는 작업이었다. 물론 데리다 역시 하이데거의 영향력이 굉장히 강했다.

잠시 데리다의 '해체주의(deconstruction)'를 살펴보면 하나의 문제점이 발견된다. 해체를 통해보면 어떤 철학도 내부 모순을 가지고 있어서 계속 분석하다보면 그 체계는 다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곧 어떤 하나의 개념체계를 가지고 세계를 일관되게 설명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해체 뒤에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해체주의는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인가? 이런 과제가 남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데리다는 '환대'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내세운다. '환대(hospitality)', 즉 '기꺼이 받아들이다'

'환대'라는 개념 뒤에는 근대적 이성주의, 이 세계를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근대적 사고방식에 대한 반성이 있다. 먼저 근대 계몽주의의 계보를 살펴보면 세상을 인간이 합리적으로,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는 노동 모델을 중심으로 근대를 이끌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문성원 교수는 농부 철학자로 유명한 변산공동체의 윤구병 선생이 주장하는 대로 인간의 역사에는 '기르는 문명'과 '만드는 문명'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기르는 문명'에서는 인간이 자연에 의존적이었고 자연은 숭상의 대상(신격화)이었다가, 인간이 머리가 깨고, 기술이 발전(산업혁명)하면서 인간이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의식이 지금까지 연장되고 있다. 이 근대에 들어서 인간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시건방진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런 생각이 인간을 서로 싸우게 만들고 자연까지 망가뜨리는 주된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과 갈등을 내재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많은 철학자들이 사회주의 모델을 제시했는데 80년대 후반 소련을 위시로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그 기반이었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회의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났다. 이 시기 팽배해진 기존 철학의 불완전성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그 대안을 제시했던 철학자가 레비나스이다.

윤리를 제1철학으로, 타자의 호소에 응답하라 

레비나스는 철학에서 '제1의 과제'는 '존재'가 아니고 '윤리'라고 말한다. 여기서 핵심적인 주장은 "죽이지 말라"이다. 1∙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인간들은 죽음의 강을 건너왔다. 실제로 레비나스는 전쟁의 상흔을 가진 인물로써 리투아니아에서 유태인 부모 아래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2차 세계대전 때 두 동생을 나치에 의해 잃은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우리(나)는 유한자이고 그러면서 스스로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여기지만 우리가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제한되어 있어서 우리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우리 바깥의 세계는 넓고 높고 심오하다. 그러기에 우리의 바깥을 마음대로 죽일 수 없다. '타자'는 바깥이고 우리 세계가 포섭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삶은 '타자'에 근거해 있는 것이지 '타자'가 우리 삶에 종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어서 레비나스는 더 적극적으로 "타자가 우리에게 '호소(appeal)'한다면 여기에 '응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세계의 기준으로 보면 '타자'는 약하고 부족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우리(나)의 기준이다. 만약 '타자'가 약자의 얼굴로 호소해 온다면 우리는 거기에 응답해야할 '무한한 책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 때 주체는 지배하는 주체가 아니라 '응답하는 주체'이다. '호소'하는 자에게 '응답'하고 호소하는 자로서의 '타자'와 관계하는 주체이고 더 나아가 '타자'에 의해 형성된 주체이다. 그러므로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의 소리를 듣는다'고 할 때의 중립성을 내세우는 '존재'를 철학의 기본적 카테고리로 삼아서는 우리 삶을 제대로 읽어 나갈 수 없다. 자기중심적이고 계산적인 전체론적 사고방식은 서양의 근대적 발상에서 기원한 사회의 기본적인 이데올로기이다. 이런 입장에서 레비나스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고방식과 통하는 면이 있다. 다른 점은 보다 적극적으로 '타자'의 우선성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동일자와 타자라는 개념 

레비나스는 나와 타자를 '동일자(the same)'와 '타자(the other)'로 나누어 설명한다. '동일자'는 자기는 물론 자기 근처의 남들도 자기와 같아야 한다는 '동일성'을 지향한다. 이 '동일성'은 사실 여러 다채로운 군상들이 살아가는 세상살이에서 가장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다. 똑같은 것을 대한다는 것은 예전의 방식을 현재의 사고와 행위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는 규범까지 '동일화' 시켜 그 안에서 살아간다. 자연과학적 법칙을 발견하고 그것을 인간과 사회에 적용시킨다. 질서정연한 사회다. 세상의 법칙을 안다는 것은 세상을 구성하는 '동일성의 배열'을 잘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으로 대상을 분절시키고 배열해서 규정하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통하는가? 

근대인들은 대체로 '동일성을 강요'하는 것 속에 '자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속에서 그 규칙을 따르면 자유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틀에 맞지 않으면 제외시키고 소멸시킨다. 유럽이 문명과 비문명을 나누어 아프리카나 아시아를 대하던 식민지정책의 태도가 바로 동일자가 지향하는 동일화의 길이다. 서구의 근대적 사고에서 '인격적 개인'이라는 것은 합리적인 '이성'을 가지고서 '이성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는 개인이다. 이들이 합의를 도출하여 균형을 맞추면 서로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이 서양의 정치철학이다. 그러나 이 틀에 맞지 않는 존재는 다 내쳐진다. 이런 문제의 대상은 광기, 정신병자, 소수자 등이며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언급은 서구 문명에 대한 자기비판이었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을 찾다 보니 주요하게 부각되는 개념이 '타자'이다. '타자'는 '동일자'의 틀에 잘 안 들어오는,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대상이다. 이 '타자'는 서구의 근대적 입장에서 자유를 확보하는데 지장이 있는 타자로써 매우 불편한 존재이다. '타자'의 영역은 내가 지배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면 보인다. 그래서 '동일화'의 세계는 '유한의 세계'이다. 테두리를 벗어나면 '타자'의 영역이고 '무한으로서의 타자'의 세계이다. 무한은 끝이 없다. '타자'의 특성은 '무한'이다. 

레비나스에게 있어 타자의 특성 

레비나스가 얘기하는 타자의 정의에 대해 몇 가지로 나누어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 무한으로서의 타자 : 레비나스는 '타자'를 우리의 한계와 틀을 넘어서는 무한하고 '초월(transcendence)'적인 것이라고 했다. 레비나스는 처음에 이 '초월'이라는 말이 신을 떠올리게 하니까 '외월(外越, exscendence)'이라는 말로 바꿔 쓰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다시 '초월'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레비나스는 '타자'를 우리와 같은 선상에서 보면 안 되며 우리보다 높이 봐야한다고 했다. 

• 비(非)지배(non-dominance) : 지배자는 동일적인 것이고 '타자'는 내가 잘 모르는 다른 면모, 새로운 것을 가지고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안정된 상황을 목적으로 하는 테두리 안으로 예상 못하게 다른 것이 넘어온다. 이 때 넘어오는 것을 레비나스에 의하면 막을 수 없다고 한다. 자본과 파워가 있어도 테두리는 언젠가는 무너진다. 유한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자'는 '호소'하고 '명령'한다고 한다. 이것은 결코 타자가 지배한다는 뜻이 아니다. 타자의 호소와 명령은 안 들을 수는 있지만 도망갈 수 없는 것으로서 이것은 마치 '죽음에서 도망갈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리고 '타자'를 극복하려 하지만 '타자'는 이미 내 틀을 벗어나있기 때문에 실제로 '타자'를 극복하지 못한다. 문성원 교수는 마치 예수의 생애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어찌 보면 이런 이율배반적인 결합은 우리에게 이미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 종교라는 의미의 라틴어 'religio'(영어→'religion') : 'religio'는 관계 맺는다는 뜻이다. 종교는 나와 같은 '동일자(the same)'끼리와의 관계가 아니고 '타자(the other)'와의 관계이다.

• 무차별하지 않음(non-in-difference) : '타자'는 나와 다르지만 무관심하게 방치하지 않고 무관심하지 않은 관계가 설정된다. 다르지만 관계 맺지 않을 수가 없다.

• 비대칭성 : '타자'와의 관계는 '상호성'을 넘어선다. 상호성은 장사와 무역에서 거래의 핵심이다. 근대 질서에서 상업성이라는 행위는 동등한 가치의 상품 교환을 기초로 한다. 상호성이 정치로 가면 너와 나는 '같은 권리소유자'라는 것을 기반으로 하여 서로를 합리적 거래를 통해 이해한다. '사회계약'이 그것이다. 사회계약은 상품거래자들의 상호적 거래를 정치질서로 정착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신 상태에서 인간은 같은 동일자들의 세계만 끌어안는다. 그리고 이 속에서 싸움(전쟁)과 경쟁은 끊이지 않게 된다. 정작 'give & take'라는 거래는 확실하지 않다. 이 속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비대칭성'은 더 확실해진다.
▲ 『Le Visage de l'autre』(타자의얼굴)..레비나스의글들을넣어만든그림책자프랑스판

타자의 나타남과 타자의 얼굴 

그렇다면 '타자'와 비대칭적이거나 무관심하지 않으면서 '타자'는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나와의 관계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인간의 활동 영역에서 '본다는 행위(시각)'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에게는 일본을 거쳐서 중역된 말이기는 하지만, 철학의 '철(哲)'자가 의미하는 것처럼 밝게 해서 환하게 비추면 뭔가를 알게 된다. 그러면 훤히 보이는 대상을 '지배'하고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 근대 서구인들의 생각이었다. 전쟁에서 높은 고지를 '점령'하는 이유는 뭘까? 내 눈앞의 것을 모두 발밑에 두고 낱낱이 알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이다. 첨단을 자랑하는 미국의 고공정찰기나 인공위성은 근대의 판옵티콘이 현대화된 것으로 '모든 것을 보는 눈'으로써 미국 제국주의 최전선에서 근무하는 첨병이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청각'을 강조한다. 기존에 강조하던 '시각'은 '지배'와 '점령'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었지만 타자와 같은 불확실한 것을 파악하는 데는 좌표를 직시하는 '시각'보다 '청각'이 더 필요할 수 있다. 공자나 석가, 예수의 '대기설법(對機說法)'이 바로 그렇다. 불확실한 청자의 다양함을 전제하는 방법이다. 세상이 무한하고 '타자'도 무한하니 이에 대응하고 책임지는 방식도 다양해 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청각'의 영역과 관계한다.

그리고 어떤 표현이 그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전부일 수는 없다. 그렇듯 '타자'는 말로 나타난다. 화가가 표현하는 방식은 그 화가의 표현 중 하나이지 그것이 화가 전부를 대변할 수는 없다. 무수히 다른 그림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 표현 하나하나에 그 화가의 정신이 들어가 있다. 그것을 '참가(attendance ≠ participation)'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레비나스는 '타자'가 우리에게 '얼굴'로 다가온다고 했다. 사진과 같은 어떤 형태의 시각적 현상이 아니라 '나타남'이다. 또한 얼굴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호소'하고 메시지를 주고 느낌을 전달한다. 레비나스는 '벌거벗은 얼굴'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얼굴을 통해 직접적으로 '타자'와 가리지 않고 만난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말로 옮기면 '현현(顯現, manifestation∙epiphany)'이라할 수 있겠다. 낯선 자가 매개 없이 직접적으로 내개 다가와 호소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동일자와 타자, 그리고 향유 

앞에서도 언급했던 '동일자'와 '타자'라는 개념어는 『전체성과 무한』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 '동일자'는 '유한자'가 되고 '무한자'는 '타자'가 된다. 레비나스는 동일자는 항상 테두리 바깥의 타자를 향한 형이상학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때 형이상학적 욕망은 대문자 'D'를 써서 'Desire'로 표기한다. 욕구(need)로써의 '욕망(desire)'과 구별한다. 당장의 결핍을 전제하지 않고서 하는 욕망으로, 예를 들어 높고 멋진 산악의 풍경이나 경외감이 드는 광경을 목격할 때 드는 인간의 감정 상태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동일자의 속성인 유한은 무한에서 '분리(seperation)'된 것이다. 이 때 말하는 분리는 무한이 전체이고 부분이 유한자여서 전체에서 부분이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다. 문성원 교수는 "마치 불교의 설명처럼, 눈을 감거나 우리가 살다 죽으면 경험하는 그 세계가 사라지는 것과 같이, 내가 경험하는 세계, 전체화 할 수 있는 세계가 분리이다."라고 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전체는 '유한자'에게서만 만들어지는 것으로 '동일자'들이 모든 것을 '동일화' 시키는 것을 두고 전체화 했다고 이해하기 쉽지만 레비나스의 시각에서는 '동일자'의 성립 자체가 분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안과 밖을 구분했을 때 동일화된 테두리가 전체가 되어 동일화 되지 않은 밖을 분리시키는 것은 성립될 수 없다. 역으로 무한이 전체이고 부분이 유한자라는 이해도 성립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전체라는 개념을 상정하는 유한이 있어서 무한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무한은 전체라는 개념이 있을 수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 '무한'이 있음으로 해서 '유한'과 '무한'이 생겨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의 분리이다. 그것이 레비나스에게 있어 '안과 밖(interiority & exteriority)'의 성립이다.

안은 항상 밖을 전제하고 밖과 더불어서 성립하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인간은 분리된 상태로 어떻게 살아나가는지에 대해 설명해 나간다. 그 첫 번째로 제시하는 개념이 '즐김(jouissance)'이다. 하이데거의 경우 '불안' 또는 '죽음을 향한 존재' 등의 얘기를 하는데 레비나스는 하이데거가 인간의 존재 의미를 한계 짓고 규정하려 한다고 하면서 대단히 부정적인 출발이라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불안에서 출발하지 않고 즐김에서 시작한다. 향유이다. 그리고 인간은 어떠한 현실적 상황에 있건 간에 우리의 주위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공기, 물, 기본적 먹거리 등)에 대한 '향유'로 귀결된다고 한다.

문제는 '자연적 향유'의 영역이 항상 '불안정성'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테두리 치고, 재화를 수집하고, 집이 생겨나고, 소유, 노동의 개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동일성을 확보한다. 그래서 내 '집', 내 '영역'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문성원 교수는 이것을 레비나스 고유의 주장이라고만 볼 수 없다고 한다. 하이데거도 이런 얘기를 먼저 했었기 때문이다. 단, 레비나스는 '타자'와 관련짓기 위해 앞서의 언급을 재해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레비나스는 기존 서양철학의 제 문제를 재해석 하여 근사하게 풀어내고 있다. 
▲ 문성원 교수 ⓒ 진보성

응답과 환대 

레비나스에 의하면 '타자'는 내 테두리 밖에 있는 존재이기에 '낯선 자'이지만 내 옆에 붙어 있고 항상 나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이웃'이다. 어찌 보면 같은 한 테두리 안에 있는 이웃들 중에도 나에게는 낯선 부분이 분명 있어서 사실 '이웃'과 '낯선 자'는 다르다고 볼 수도 없다.

문성원 교수는 레비나스가 항상 '호소에 대한 응답(response)'은 곧 '책임(responsibility)'과 관계 지었다고 한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소유하고 나의 혹은 우리의 테두리가 있으니까'라고 생각하면 '타자'와의 관계는 끊기고 자신은 테두리 안에 매몰된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이것은 삶이 아니라 죽은 삶이다. 이에 유일한 소통은 '응답'하는 것이다. 내 집 밖의 타자를 내 집에 맞아들임, 이것이 '환대(hospitality)'이다. '환대'야 말로 우리 삶의 근본적인 자세라고 『전체성과 무한』에서 강조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의 약점은 언제나 내 집의 테두리라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비나스는 나중에 이것을 잘 언급 하지 않는다. 이후 레비나스는 누군가 내 것을 따지기 이전에 '타자'는 이미 나한테 와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내 집이라는 생각과 내 테두리를 고수하려는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레비나스의 환대는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환대'와는 다른 점이 있다. 먼저 계몽주의자의 연결 선상에 있는 칸트는 환대를 '상호적 관계'에서 말한다. 칸트의 환대는 상호적인 관계이다. 남이 나의 집에 오면 '환대'하듯이 나도 남의 집에 가면 '환대'받을 권리가 있다는 '권리의 측면'에서 말한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는 거다. 내 의지의 주장이 입법의 원리에 의해 보편적으로 타당하다는 것. 역지사지로 네가 환대 받고 싶으면 네가 먼저 환대하라는 말이다. 이것은 '조건적 환대'이다. 가장 현실적이고 승률이 높은 태도이다. 'give & take' 전략이랄까. 

그럼 '무조건적 환대'는? 레비나스는 칸트의 방법만 가지고는 삶에 비전이 없다고 생각했다. 레비나스는 '무조건적 환대'가 더 근본적이라고 한다. 마치 부모가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문성원 교수는 물론 자연과학자들이나 진화론자 중에는 무조건적 환대도 'give & take'의 일부분이라 말한다고 하지만 레비나스는 현상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내 입장에서 내 삶의 유의미한 입장은 '무조건적인 환대'라고 보았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환대가 조건적인 환대와 결합해야 제대로 된 '환대'로서 작동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데리다의 『환대에 대하여』가 있다. 

레비나스는 '타자'를 '환대'해야 하는 근거 중 하나는 내가 태어나 이 세상의 테두리 안에서 내 집이 나를 받아주는 것처럼 안락함으로 받아주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듯이 타인을 받아주어야 한다. 레비나스는 그것과 관련하여 받아들이는 것을 '여성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존재와 달리, 존재성을 넘어서 

'존재'에는 이해 '타산적(inter-esse)'인 속성이 있다. 우리가 '존재'에 집착하게 되면 내 것을 지키려하고, 규정하려하면 다툼과 전쟁을 피할 수 없다. 내가 내 집을 차지하면 내 집을 차지하지 못한 사람은 그 영역에서 밀려난다. 이것이 '존재'의 '점령'하며 '독점'하려는 속성이다.

레비나스는 우리가 '독점'한 자리를 말하면서 "태양 아래 나의 자리(Pascal)"에 대해 묻는다. 이 자리는 다른 사람이 내가 거기에 있음으로 해서 밀려난 자리이다. 내가 정규직이 되면 다른 사람은 비정규직이 된다. 이것은 곧 "내가 존재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연결된다. 내가 내 자리를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 일종의 '찬탈'이라는 것이다. 레비나스에게 있어서 영역을 차지하고 점령하고 밀어내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존재와 달리' 살아야 한다. '존재성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존재와 달리'하는 방법은 자신이 차지하는 곳에 대해 버겁게 생각하고 타자에 대해 공경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문성원 교수는 이런 점에서 레비나스가 조금 극단적으로 나간 부분이 분명 있다고 한다. 그래서 레비나스의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은 레비나스의 주장을 거부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또한 실행하기도 어려운 것 아니냐고 한다. 방향은 있는데 따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레비나스가 말한 '존재와 달리 사는 지평'이 가능한지의 여부가 레비나스 철학이 우리에게 남긴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쨌든 여기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 이성의 본질을 폭로하다 - 광기, 권력, 폭력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11> 푸코
근대 이성의 본질을 폭로하다 - 광기, 권력, 폭fur  
 
근대 이성의 본질을 폭로하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누구인가?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마르크스주의가 한발 물러서고 그 대안을 찾아 헤맬 때 미셸 푸코의 철학은 사람들에게 마르크스의 대안으로서 현대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폭로하는 사상적 기준으로 다가왔고 철학적 전개의 중심을 제시했던 인물이다.

푸코가 콜레즈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에 교수로 있을 때 '사상사(The History of Systems of Thought)'를 가르쳤던 사실은 그의 사유가 철학적 쟁점에 대한 논쟁을 동반한 논증에 점철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점이다. 그는 사회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상가였으며 자신의 철학을 연장으로 사용하는 실천의 철학자였다. 마찬가지로 그의 글은 인문학, 사회과학의 많은 영역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열한 번째 시간에는 "나는 내 책이 메스나 폭약, 아니면 지뢰를 파묻는 갱도 같은 것이 되어서 조명탄의 불꽃처럼 한 번 사용된 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과감히 선언했던 푸코의 철학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소수자로서 푸코와 그의 운동 : 미시권력을 파악하기까지

박민미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푸코의 학창시절 외로웠다고 한다. 성적 소수자로서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것을 내면으로 가지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일종의 악이라고 지시되면서 교정의 대상이 되는 성향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푸코는 자신을 기준으로 하는 실존의 문제가 절실했다. 그래서 학창시절에는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병리학처럼 다른 사람의 심리분석을 통해 대상에 병리적 접근을 하는 것과는 다르게 심리적으로 다른 형태의 대안으로서 심리학을 했다. 

푸코는 공산당에 입당한 경험이 있었고, 68혁명 당시에는 프랑스에 없었고 아프리카 튀니지의 튀니스에 있었다. 이것이 그에게는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유럽 외부의 소외되고 배제된 타자이자 주변으로 밀려난 곳에 실제로 있으면서 정치적 변화의 물결을 겪었다. 오히려 프랑스보다 제3세계에서 운동을 지켜보면서 68혁명을 또 다른 입장에서 더 넓고 포괄적으로 억압과 착취, 지배에 저항하는 현실을 보게 된다. 푸코는 68혁명 이후 전 세계의 이슈가 있는 곳에 항상 갔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사르트르, 들뢰즈, 이브몽땅(공산당원), 시몬느 시뇨레 등 투사 동지들이 항상 함께 했다. 

그러다가 1968년 말에 프랑스로 돌아오면서 얼마 후, 1971년 '감옥정보 그룹' 발간을 추진한다. 당시 유럽사회 처벌의 공간이었던 감옥이 어떠한 논리로 사람을 가두는가, 얼마나 처참한 모습으로 배재된 인간들을 주조해내는가를 관찰했다. 감옥에 들어온 사람 중 동성애자로 쫓기다가 감옥에 들어온 후 자살하는 사례, 장발장처럼 생활고에 배고픔에 저지른 범죄에 의해 평생 낙인찍히며 그 사람의 신병을 사회체제가 보장해 주지 않다보니 결국 또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상황에 대해 푸코는 관찰만 한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 지에 대해 자기 스스로 그것을 진술하고 수기를 기록하고 직접 출간하여 사람들에게 널리 공유하게 하는 적극적인 방식을 취한다. 푸코는 '왜 사람들의 영혼이 끊임없이 추적되고 감시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푸코는 자신이 이 사회에 존재하는 것들 중 도저히 관용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열거했다. 그것으로 재판소, 경찰, 병원, 요양소, 학교, 군대, 신문, 텔레비전, 국가를 든다. 이 사회의 기존 질서를 옹호하고 수립 권력에 직접 지배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관과 단체를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권력기관에 대한 이런 파악은 푸코로 하여금 국가와 정부 사법기관 등이 우리를 장악하고 우리를 부자연스럽게 하는 이유는 직접적 체제나 기관이라기보다는 더 미세한 것들이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했다. 내 신체 정신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의 미세한 원인을 푸코는 '미시권력'이라고 한다. 

이런 국가권력현상(power)에서 권력은 거시적 차원은 'state'에 해당하지만, 미시적 차원은 'body'에 해당한다. 우리 몸에 샅샅이 작용하여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차원의 권력을 폭로하는 것이 푸코의 의도이다. 곧 '억압'을 얘기하는 것. 그런데 푸코는 억압만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권력을 얘기한다. 인간의 지식, 앎이라는 영역과 긴밀히 얽혀서 억압당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억압이 아니어서 억압당하는 줄 모르게 만드는 상태의 '미시적 권력'이 항상 작동하고 있다는 것. 푸코는 이것을 폭로한다. 

- 우리의 삶에 모세관처럼 샅샅이 퍼져있는 권력, 곧 현대 권력 -

푸코에게는 시기적으로 학문적 관심도에 따라 고고학기—계보학기—윤리학기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969년 『지식의 고고학』을 썼을 당시까지가 푸코에게 있어서 고고학기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의 문제에 대해 역사학적 관점과 인식의 틀의 입장에서 연구. 푸코 초기의 연구경향을 보인다. 

1972년 『담론의 질서』에서 1975년 『감시와 처벌:감옥의 역사』, 『성의 역사 1:앎의 의지』 이런 책까지, 권력에 집중했던 계보학 시절인데 권력을 폭로하는 활발한 운동 시절이다.

그 이후 1982년 『주체의 해석학』이후 주체에 대해 집중하던 시기로 『성의 역사 2, 3』을 집필하기도 한다. 주체의 양식을 모색하던 시기로 윤리학기라고 할 수 있다.
▲ 푸코

푸코에게 철학의 의미와 사유 여정, 그리고 계보학 

푸코는 철학은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철학은 곧 철학적 활동"이라고 인식한다. 그리고 1984년 죽기 전 『성의 역사 2』에서 철학은 "사고에 대한 사고의 비판 작업"이라고 하기도 한다. "진실의 작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변형시키는 것",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호기심" 등 푸코가 얘기한 철학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실질적으로 푸코 자신의 철학에 해당되면서 푸코 철학의 진면목을 대변하는 말은 "연장통"이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세계를 변형시키는 도구로써의 철학이라고 했다. "나는 내 책이 메스나 폭약, 아니면 지뢰를 파묻는 갱도 같은 것이 되어서 조명탄의 불꽃처럼 한 번 사용된 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는 말이 바로 연장통을 의미한다. 세계를 변혁하고 폭발시키는 연장으로 철학을 사용하겠다는 선언이다.

푸코의 신조로써 철학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호기심이기도 하다. 변형은 자기가 다르게 되는 것이고 곧 생성을 뜻할 것이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가 다르다는 것이 내가 다르게 된다는 말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다른 나로 변한다는 실존적 문제이기 보다는 내가 내 테두리 바깥으로 나가서 타자의 영역으로 간다는 것이다. 변형은 곧 배재되고 소외되었던 타자로 가는 길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규정을 푸코는 '에토스(ethos ; ethics:윤리학)'라고 한다. 자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변형시킬 수 있는 우리 삶의 태도이다. 다른 사람에게 규칙처럼 다가가는 윤리적인 틀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의 활성화로 변형이 가능해진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다. 니체가 신을 왜 죽였을까? 인간을 자기의 행위와 가치에 대해 판단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가둔 신을 죽였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초인(Übermensch)'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초인은 현대인의 모습이어야 하고 그 핵심은 기존의 관습 관행 습관적 사고들에 대해 칼날대고 저항하는 모습이다. 니체는 이런 형태의 삶을 지지했다.

이런 니체 의식의 직접적 계승자는 푸코다. 푸코는 먼저 하이데거를 접하고 하이데거에 의해 해석된 니체를 접하면서 누구나 알고 있다는 보편적 인식 틀을 거부한다. 고고학기의 작업이 그렇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니, 고대, 근대, 현대의 인식 틀인 '에피스테메(episteme)'가 다르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에피스테메는 주어진 한 시기에 인식론적 제 형상, 과학, 형식화된 체계를 발생시키는 담론적 실천의 총체로써 주어진 시대의 제 과학을 담론적 규칙성의 수준에서 분석할 때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관계의 총체를 말한다. 푸코가 고고학기 얻었던 중요한 면모이다. 

『광기의 역사』에서 광기의 개념을 살피며 얻은 고고학시기 결론은 르네상스시기에는 광기를 인간의 중요한 능력으로 여겼다는 점이다. 고전주의시기에는 광인으로 몰고 배제의 대상으로 악과 결부시켰고, 근대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 정신병리학으로 치부했다. 이 때 푸코는 니체의 생각 이어받아서 인간의 광기에 대한 체험으로 질서정연함을 강조하는 아폴론적 사고가 아닌, 인간의 본성을 더욱 강조할 수 있는 디오니소스적 사고를 경험할 수 있었는데, 사람들은 광기를 배제하면서 아폴론적 인간의 이성능력만 발전시켜 형이상학적 철학으로 타락해 갔다는 점에 동조한다. 광기가 중세 때 까지는 인간의 신적인 능력, 신의 계시를 받는 독자적 능력이라 여겨졌는데 이후 '정신착란(déraison;탈 이성상태)'이라고 불려지게 된다. 이성 중심적 사고로 광기를 배제하는 모습이다. 푸코는 광기를 배제하는 이성중심주의가 그들이 말하는 광기에 더 가깝다고 본 것이다. 

'계보학(genealogy)'은 니체가 제시했다. 니체는 계보학을 색상에 비유하면 회색이라고 했다. 같은 사태에 대한 여러 해석의 덧 씌워짐은 회색과 같다. 자명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겹겹의 해석이 깔려있는 것이다. 고로 자명한 사태와 해석은 없다. 계보학은 회색빛의 머리카락을 한 모습이다. 그것은 매사에 꼼꼼하고 끈질기게 자료를 섭렵한다. 그것은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확립된 사실과 일치하는 작은 진실을 축적한다. 계보학은 관념적인 의미현상이나 불확실한 목적론들로 된 메타역사학적 전개와 대립된다. 또 그것은 '기원(Ursprung)'의 추구와 대립된다. 

푸코는 사람들의 겹겹해석을 살피고 기존문헌을 살피면서 문헌 안의 개념 현상, 사물의 본질을 탐색하는데 보편적 본질을 찾지는 않는다. 계보학은 어떤 분류로 갈라져 나왔는가를 살피는 것뿐이다. 기존의 철학자들은 역사학자들이 연구한 것을 차용했지만 푸코 자신은 1차 문헌의 '날 것'을 스스로 탐구하는 것을 지향했다. 기존의 덧씌워진 해석과 개념을 벗겨내려 한 것이다. 대표적 저서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가 계보학 시기에 만들어진 결과물들이다.

'파레지아(parrhesia, 진실을 말하기)'라는 말이 있다. 윤리학기에는 푸코가 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처럼 완성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였던 시기였다. 시대에 종속된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자아로 살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푸코에 따르면 근대인은 자신을 아는 일에 몰두(인식중심)하지만 고대인은 자신을 만드는 일에 몰두(창조중심)한다. 기존 니체의 문제의식이었던 작은 진실을 발견하고 구축해나가는 방향을 추구하면서 우리 삶의 소소한 문제로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것에 대해서 역사를 써보겠다는 것이 푸코의 계보학적 특성이다. 

고고학기에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을 확실히 했다고 한다면 계보학기에는 '장치 dispositif'='장치(apparatus)'라는 개념에 매진했다고 할 수 있다. 영어로 혹은 '배치(arrangement)'라고 번역된다. 이 장치는 우리 사회의 여러 것과 연관하여 마치 기계처럼 이루어져 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현상으로 계속 우리에게 사물처럼 작용한다. 권력과 함께 같이 사용한다. 예를 들면 섹슈얼리티도 장치이고 감옥과 같은 것도 장치이다.

『감시와 처벌』과 규율권력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는 장치를 '규율권력(disciplinary power)'이라고 칭한다. 규율권력은 전체 우리 사회에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작동한다. 여기에 대한 폭로가 『감시와 처벌』의 주 내용이다. 푸코의 저작에는 아주 미세한 지식들이 텍스트에 촘촘히 들어가 있다. 딱 떨어지게 정리하여 규정하기 보다는 애매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읽는 사람이 알아서 가져다가 해석하라는 태도이다. 저자를 지우는 글쓰기 방식이다.

푸코는 일부 소수의 사람들만 가는 장소로 인식되는 감옥이라는 것을 기재로 자신의 폭로를 이어나간다. 『감시와 처벌』의 첫 장면은 다음과 같다. 첫 장면은 다미앵의 처형 장면으로 "사형수를 처형대 위에서 가슴, 팔, 넓적다리, 장단지를 드겁게 달군 쇠집게로 고문을 가하고…쇠집게로 지닌 곳에 불로 녹인 납, 펄펄 끓는 기름, 지글지글 끓는 송진, 밀랍과 유황의 용해물을 붓고, 몸은 네 마리 말이 잡아끌어 사지를 절단하게 한 뒤, 손발과 몸은 불태워 없애고 그 재는 바람에 날려버린다." 

그리고 푸코는 판옵티콘을 설명한다. 'Panopticon(pan여기저기 다 있다+optic시각+on~하는 존재) 이것은 중앙 감시망 탑으로 중앙 감시탑에 모든 수감자의 그림자(실루엣)가 다 비쳐서 확인되지만, 중앙의 탑에는 누가 있는지 수감자들이 있는 방에서는 알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비유이며 규율권력(체계) 안에 갇혀 살고 있다는 것이다.
▲ 박민미 교수

『감시와 처벌』의 내용 

1부 신체형 

1. 수형자의 신체 2. 신체형의 호화로움 

신체의 가해지는 고문의 형태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졌지만 좀 더 규칙적이고 법칙적, 유순해진 처벌로 변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신체형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자유주의사회가 되면서 인간의 가치와 권리에 대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인간화의 결과가 신체형의 소멸을 가져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신체형의 소멸의 이유는 형벌의 대상과 목표가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감시와 처벌의 첫 번째 가설이다. 변형된 양상을 설명하자면 작동하는 권력의 작용 방식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권력은 결국 미시적으로 작동하는데 우리의 부자유를 낳는 것은 감옥이라는 장치의 영향이다. 그렇다면 권력은 어떻게 살펴봐야 하는가? 권력의 미시 물리학을 분석하는 체계는 다음과 같다. (1) 권력에 대해서는 폭력과 관념의 대립, 소유권에 대한 비유적 표현, 계약이나 정복의 모형을 버려야 하고, (2) 지식에 대해서는 '이해관계가 있는' 것과 '이해관계가 없는' 것 간의 대립, 인식의 모형과 주체의 우월성을 버려야 한다.

푸코가 이미 감시와 처벌에서 중요하게 보는 시각은 기존의 권력관, 즉 권력을 소유로 보는(혹은 양도 가능한) 사회계약설의 입장이 아니다. 푸코가 보기에 권력은 양도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현상 속에 미세한 망의 장치처럼 작동하는 권력현상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푸코는 권력에 대해 법률로써 규칙적으로 작동하는 국가라는 안정된 기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2부 처벌 

1. 일반화한 처벌 2. 유순해진 처벌 

사람들을 일정한 척도와 기준에 부합하는 과정으로 처벌을 생각한다. 18세기에 관찰되던 현상 중 하나는 형벌의 완화이다. 이렇듯 형벌이 완화되는 것에 대해 푸코는 규율권력은 별도의 메카니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의 흐름과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관계가 권력의 변화를 추구하는 큰 배경 중 하나였다는 것을 말한다.

부르주아 계급의 전략은 두 가지가 있다. 한편으로는 군주권의 자의성에 제한을 가하고(사법개혁과정에서 관철),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이 재산권에 도전하는 것을 제어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사람들에게 처벌의 효과를 분명히 만들어내면서 자신들의 군주에 대한 저항을 가능케 하는 두 가지 사안을 확보하는 데 있었다. 처벌이 유순해지는 과정에는 부르주아 계급이 반드시 개입되어 있었다. 

처벌의 본보기라는 기능은 항상 고려되었다. 신체형 중심의 처벌 제도에서의 본보기는 범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이중적 표현 방법으로서, 범죄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것을 제압하는 군주의 권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후 고전주의시기로 넘어오면서 본보기의 징벌이란 이제 과시적인 의식이 아니고, 범죄를 방지하는 데 뜻을 둔 기호가 되었다.

신체적 형벌에서 유순해진 형벌로의 이행은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라는 측면과 동시에 앞으로 일어날 범죄의 방지를 목표로 하는 전략이 짜여 진 것이었다.

처벌의 방법은 기술적이고 공학적으로 작동한다. 몇 가지를 얘기하면 (1) 가능한 한 자의적이 아닐 것. 법은 사필귀정인 것처럼 보여야 하고, 권력은 부드러운 자연의 힘처럼 자신이 모습이 드러나지 않은 채 작용해야 한다.(법 집행의 필연성) (2) 형벌과 그것의 불이익이라는 표상이 범죄와 범죄에 따르는 쾌락에 관한 표상에 비해서 훨씬 더 선명하도록 해야 한다. (3) 결국 형벌의 시간적 조정과 배분의 효용성이 문제된다. 장기간에 걸친 일련의 권리 박탈 상태는 일시적인 고통의 형벌보다 훨씬 더 죄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4) 징벌은 특히 다른 사람들을, 즉 죄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삼는다.

이런 과정은 모두 사회 관련된 사람들에게 응당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감옥에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5) 그런 점에서 교묘한 경제적 광고 효과가 생겨난다. 범죄가 행해지면 지체 없이 처벌이 따르게 되고, 형벌이 집행되는 현장에 아이들이 찾아올 수 있어야 하고, 그곳에서 시민 교육의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그것이야말로 '법의 정원', 치안 박물관에서의 산교육인 것이다. (6) 그렇게 되면 사회에서 범죄에 관한 전통적인 담론은 전도될 수 있을 것이다. 범죄자를 영웅시하는 찬양 대신에, 가시적 형벌이자, 수다스러운 형벌로서, 모든 것을 입에 올려 설명하고 정당화하고 설득한다. 즉, 모든 징벌은 바로 교훈담이다.



3부 규율 

1. 순종적인 신체로 만들고 2. 효과적인 훈육 방법을 쓰면서 3. 일망감시 방법(판옵티시즘)

고전주의 시대의 신체는 권력의 대상이자 표적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이 발견되었다. 17세기와 18세기를 거치면서 규율이 지배의 일반적 양식이 되었다. 신체의 활동에 대한 면밀한 통제를 가능케 하고, 체력의 지속적인 복종을 확보하며, 체력에 순종-효용의 관계를 강제하는 이러한 방법을 바로 '규율(discipline)'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 규율은 개인을 제조한다. 규율, 훈련의 위계 질서화 된 감시를 통해 권력은 하나의 물건으로서 소유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소유물로서 양도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기계장치처럼 작용한다. 더욱더 교묘하게 '물리적'으로 될수록 표면적으로는 한층 덜 '신체 중심적'으로 되는 그러한 권력인 것이다. - 규율권력 - 

규율 중심적인 장치가 만들어 짐으로써 보이지 않는 곳에 가두어 놓으면서 가두어 놓아진 사람들이 새로운 신체로 변모되는 이른바 '규율적 신체'가 된다.

권력 경제학이라는 말이 있다. 권력이 아주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말이다.

권력 경제학은 처벌에서 이전에는 본보기, 전시와 교육 효과를 노렸으나, 보이지 않는 곳에 가두는 '감옥 장치'(사법기관 및 법률집행 원리와 결부)는 위법자의 고통을 줄이거나 위법자의 인간성을 돌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위법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고통 및 인간성을 돌보는 효과를 낳으며 '인간'이라는 척도, 인간 과학을 작동시킨다. 그러면서도 장시간 동안 위법자의 인체에 영향을 끼치며 강도 높은 규율 권력을 작동시킨다. 그리고 이 '감옥 장치'를 둘러싸고 '행형 장치'(경찰과 같은 관할 영역에 포함)가 있다. 감옥 장치가 위법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행형 장치'는 위법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은 비행자를 대상으로 끊임없이 관찰하고 추적한다. 이 '행형 장치'를 작동시킴으로써 비행자의 정신과 인체에 작동하는 권력 기술을 드리운다. 이 둘은 항상 같이 작용하는 구조에 있다. 그래서 감옥은 단지 감옥에 갇힐 대상인 범법자만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이 부분이 감시와 처벌에서 규율 권력과 관련하여 폭로하는 내용의 핵심이다. 

4부 감옥 

1. 완전하고 준엄한 제도 2. 위법행위와 비행 3. 감옥체계

감옥이라는 것은 처벌이 교훈의 효과에 쓰기보다는 오히려 죄인을 꼭꼭 숨겨둔다. 이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이 푸코이다. 이렇게 해서 작동한, 만들어진 효과는 무엇일까?

이 규율 권력의 핵심적인 모델은 바로 '판옵티콘'이다. 이 권력 기술은 수감자가 스스로 권력의 전달자가 되는 것이다. 물리적 충돌 없이 권력이 영원히 승리하는 모델이다. 이 세계에서 가장 큰 재판 위원회인 전체화 메커니즘 속에서 생산을 증대시키고, 경제를 발전시키며, 교육의 기회를 넓히고, 공중도덕의 수준을 높인다. 이 장치는 감옥장치이면서 행형장치이고 넓게는 예를 들어 군대, 학교, 회사(마치 대기업 삼성과 같은) 등을 포함한다.

여기서 작동하는 '규범(정상, normal)'이라는 척도는 '권력-지식'을 가동시키며 '인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정상적인 인간'을 만들어내려 한다. 그리고 앎을 생산하는 권력을 통해 사람들의 영혼은 자발적으로 권력에 예속화되고,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피지배자 일반에 대한 규범이 법을 대체하여 사람들의 삶 속에서 샅샅이 작동하게 된다. 이것이 규율권력의 사회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규율권력이 항상 사회에서 작동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건, 어디에 있든 간에 이 작동의 방식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규율권력은 특정방식으로 행위 하도록 우리의 신체를 제조하고 있지만 부자연스러움을 느끼면서도 저항의 방법을 찾지 못한다. 미시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미시 물리학적으로 파악될 수 있지만 그 이후 어떻게 해야 하는 지의 문제에 대해 푸코는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테제를 제시한다. 

푸코의 실천적 방식은 감옥을 관찰하고 폭로하며 위법자라고 지칭된 사람들이 끊임없이 말하게 하고 이것을 팸플릿으로 옮긴다. 그리고 감옥의 역사라는 책을 썼다. 모든 사람들의 해방을 위한 실천을 한다기보다는 배제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계보학적으로 증명해 나갔다. 인간을 배제하는 메카니즘에 대해서 드러내고 폭로하는 지식인의 실천을 푸코 스스로 '특수 지식인'이라고 지칭한다. 사르트르가 모든 민중을 대변하는 보편적 지식인의 상을 제시했다고 한다면, 푸코는 자신이 알고 있는 특별한 앎을 총 가동하여 삶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에 저항하게끔 하는 지식인이다. 그 과정은 그의 저술에 집약되어있다. 

푸코의 신자유주의 비판 

사람들은 자신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메카니즘에 살고 있으면서 거기에 젖어 수동적으로 살게 된다. 예속된 삶이다. 스스로 판옵티콘에 갇혀있으면서 갇힘을 모른다. 규율권력은 개인과 개인을 개인화라는 형태로 미세하게 갈라놓고 있다. 비정규직노동자라고 할 때 이 노동자에 대해 관찰하는 세부적인 리스트가 우리를 규제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테스트, 시험, 규정을 들이댄다. 사람들을 서열화하고 있다. 

푸코는 사람들을 세밀화하고 쪼개고 분류하면서 갈라 놓이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차이를 주목한다. 개인화의 면모로 규율권력은 한편 사람을 개인화시킨다. 그러면서 동시에 규율권력은 사람들을 전체화하는 권력이다. 하나의 특정한 규준으로서의 이상으로 사람들을 몰아간다. 그래서 저항 조직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냥 이대로 흘러간다.

이런 사회모습을 『감시와 처벌』에서는 규율권력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이 이후의 저서들에서는 최근 번역된 『안전 영토 인구』 이후에는 규율권력만을 폭로하는데 그치지 않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논리가 펼쳐진다. 신자유주의에서는 1%를 위한 사회나 질서를 지칭하면서 경제나 금융의 문제로만 몰아가는 경향이 있었으나 푸코는 규율권력이라는 모판을 신자유주의 질서에도 적용을 한다. 사람들을 인구차원에서 안전을 내세우며 국가의 통치를 좋은 행위로 포장하고 있고, 그 이면에서는 이 사회의 모든 결과물의 책임을 각각의 당사자 자신에게로 돌린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안에 있는 통치자는 아무런 잘못과 책임이 없다.

이 때 중심되는 비판의 포인트는 '경쟁이 강조되는 사회'에 있다. 자유주의 초기 시대에는 평등과 법의 이념을 강조했다면 신자유주의에서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견제하는 상황으로 내 몬다. 



신자유주의의 핵심 메카니즘인 '경쟁의 질서' 안에서 사람들은 또 하나의 차이가 구획된다. 이전에는 규율사회에서는 한 개인이 정상적 인간에 대해 측정되고 비교되었다면 신자유주의는 타인이라는 관계 속에서 우위의 위치를 가지기 위해 가치 측정되는 형태로 속성이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존 권력모델이라 할 수 있는 한 사회 안에 작동하는 권력이 평등하게 법치아래에서 잘 작동하여 우리 사회가 잘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푸코의 가장 큰 폭로이고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불평등, 차이를 구획하는 권력은 작동하고 있다. 이 때 권력은 비가시적이지만 끝없이 작동하는 장치로서 우리 삶을 부자연스럽게 만들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에 저항하는 길은 무엇인가? 푸코는 '대항 품행'을 든다. 그리고 대항 품행의 실천의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 '파레지아', 즉 '진리 말하기'이다.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다. 사회적 위계, 서열 등의 차이를 무릅쓰고 솔직하게 말하기.

박민미 교수는 장치처럼 작동하는 방식에 저항하는 방법이 혁명이었고, 혹은 제어하는 것이 기존 부르주아 사회, 사회주의 사회까지의 저항의 신념이었다면 현 시대에 저항적 실천의 방식을 물었을 때, 규율권력에서는 현실에 대해 폭로하고 진단하는 특수지식인의 실천이 되겠고, 현실 질서 속에서 사람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전체적인 질서를 자본주의로 집약했다고 할 때 그 저항의 방식은 기존과는 다른 삶을 계획하는 것이다. 이 때 다른 사람과의 차이는 규율권력이 만들어내는 다른 사람과의 차이와 다르다. 규율권력이 만들어내는 차이는 배재를 위한 차이이고 다른 삶을 계획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평균적인 삶과는 다른 차이를 생성해내는 지평이다. 

이 사회가 경쟁 일변도로 가고 인권에 대해 몰이해가 사회에 만연해 있을 때, 서로 연합이라는 것을 조직하면서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주체적 삶을 만들어가는 실천이 중요하다. 

강의 말미에 박민미 교수는 푸코의 평생의 문제의식을 잘 요약한 말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열망"을 거론하면서(『자유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열망』, 정일준 역, 새물결, 1999) 푸코는 사회계약설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권리체계가 있다는 것에 의문을 품었던 것이고, 우리사회가 과연 민주적인 사회인지, 감옥이 신체형에서 과연 유순해 졌는지, 이런 질문들을 계속 하면서 현실에서 우리를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규칙과 질서와 보이지 않는 힘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폭로하는 태도가 푸코 평생의 연구의 핵심적 태도라고 설명했다. 그 실천의 일환으로 오늘의 강연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처럼, 사회에서의 하루 일과가 끝나고 습관적으로 소주잔을 기울이는 대중의 모습과 달리, 철학 강좌를 듣거나 사회의 문제에 대해 공론의 장을 펼치는 이런 모습들도 소소하지만 푸코가 생각했던 자유로워지는 삶의 태도가 아닐까.  




들뢰즈의 반복과 영원회귀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12> 들뢰즈
들뢰즈의 반복과 영원회귀      
 
80년대 마르크스 수용에서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의 변화와 현대 철학

마르크스의 『자본』은 혁명의 시대였던 80년대 중반에 한국에 들어온다. 당시 대학생들은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었고 그 실천을 모색했었다. 그런데 동구권의 몰락이 시작된 89년 이후 90년대 초반에 이런 분위기는 깨진다. 동구권의 몰락은 당시 사회주의적 기조의 지식인은 물론 지성사 전반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르크스를 대체할 사람을 찾기 시작한다. 그 대안이 처음에 하버마스와 푸코, 알튀세르 등이었다. 이어서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일어났고 현재는 프랑스 철학이 현대철학을 대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90년대 알튀세르와 푸코가 등장하면서부터 사람들은 혼란스러워졌다. 이른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는데, 과거 이데올로기와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모습을 보여준다. 학계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이 불지만 한국 사회현상은 이걸 못 쫓아갔다. 그래서 한국의 학자들은 첨단 현대철학의 본령이라 부르는 프랑스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포스토모더니즘이라는 말은 프랑스에서는 1930~40년대에 사용된 말이었다. 당시 한국은 서양의 첨단 학문을 미국을 통해서 들여오다 보니 미국에서 쓰는 말 그대로를 들여왔던 거다.
▲ gilles deleuze

그럼 우리의 이상적인 모습을 담은 이른바 미래학자는 누가 있을까? 찾아봐도 없었다. 여기에 있어서 우리는 지금도 헤어 나오지 못한다. 

2000년대 들어와서 라캉 이후에 학계 전반에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가 유행하게 된다. 우리의 지성사에서 우리는 프랑스 철학자들을 보면서 도대체 주체가 누군가라는 것을 따지곤 한다. 이 주체는 독일적 관점에서는 선험적 자아로서의 주체로 볼 수도 있겠으나 궁극적으로는 사회변혁의 주체이다. 프랑스에서도 따지는 부분이 이거다. 그런데 들뢰즈는 주체가 없다. 그럼 우리는 들뢰즈를 어떻게 봐야할까?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의 마지막 강좌 열두 번째 시간에는 들뢰즈의 철학을 만났다. 특히 이번 강의에서는 니체와 관련된 들뢰즈를 보기로 했다. 

들뢰즈의 철학사 

들뢰즈는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했다. 당시는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던 시기였는데 어린 들뢰즈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던 그의 형이 포로수용소로 가는 길에 불행하게도 총살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그의 삶의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 총살 사건이 있던 곳에서는 프랑스에서 유명한 수리철학자들이 있었는데, 카바이예스와 로트망과 같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쟁의 와중에 그는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고 나중에 소르본느에서 철학을 공부한다. 이 역시 매우 특이한 이력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거의 유일하게 고등사범학교 출신이 아닌 사람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1948년에는 철학 교수자격시험 아그레가시옹을 통과하게 된다. 이후 들뢰즈는 1956년도에 베르그송(Bergson, 1859~1941)에 관한 논문을 쓴다. 그리고 60년대 중반까지 철학사를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한다.

들뢰즈의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던 철학자는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스피노자(Spinoza, 1632~1677), 베르그송(Bergson, 1859~1941)을 들 수 있다. 들뢰즈가 보기에는 이 세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고 이 공통점이 들뢰즈 사상의 핵심이 된다. 여기서 김범수 교수는 들뢰즈의 철학에 기반한 철학사의 구분은 1930년대와 그 대척점에서 1960년대 이후의 두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고 한다. 

김범수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1930년대는 문화적인 충격과 과도기의 상황을 가진 시대였다. 이 시대에 프랑스 철학계에서는 어떤 일이 생겼는가? 프랑스 철학계는 1930년대부터 60년까지 '3H'의 시대로 요약된다. '3H'란 헤겔(Hegel), 후설(Husserl), 하이데거(Heidegger)를 말한다. 이 시기는 나치가 집권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왜 헤겔인가? 프랑스 내에서 이때까지 헤겔 번역이 안 되었다. 20년대와 30년대는 헤겔 번역본이 없었다. 프랑스는 1930년대까지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번역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실존철학과 함께 헤겔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행사되었던 시기이다. 이때 코제브(Alexandre Kojeve, 1902~1968)의 강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제브는 헤겔을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중심으로 소개하면서, 이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게 했다." 

반면 60년대에는 실존주의 현상학과 대립되는 방향으로 니체와 노골적으로 변형된 마르크스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60년대 이후는 프랑스에서는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을 새롭게 해석하는 견해가 형성되면서 구조주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대표적인 학자는 라캉과 알튀세르 등이 있다. 그리고 '3H'의 대척점에 있는 철학자로 메를로-퐁티와 사르트르를 들 수 있다. 

들뢰즈에 영향을 준 철학자들 :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

30~60년대 : 헤겔, 후설, 하이데거 ↔ 60년대 이후 : 미를로-퐁티, 사르트르

들뢰즈에 영향을 준 철학자 :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 

들뢰즈는 스스로 베르그송주의자임을 밝힌다.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초월성 비판이다. 아울러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 이 세 사람은 초월성에 대해 비판하는데, 초월은 우리의 경험을 넘어서고 '이념(이데아)'을 넘어선 것이다. 이들은 도덕적 '선(善)'의 개념을 넘어서고 비판했다. 

서양철학에서 문제가 되는 점은 확실한 무엇인가를 찾다 보니까 결국 신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헤겔은 '절대정신의 자기전개'를 얘기했는데 절대정신은 결국 신으로 귀결된다. 여기에 선한 개념을 더 붙여서 '세계정신', '신의 정신'이 발현된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을 향해 가는 것이 바로 헤겔 철학의 일면이다. 여기에 대해 비판한 사람이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이다. 

니체는 대놓고 '비극의 가치'에 대해서 얘기한다. 기존의 가치의 기원을 따져서 '가치를 전복'시킨다. 그리고 신을 죽여 버린다. 

스피노자의 경우에는 '실체개념'이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실체'는 바탕과 기저에 깔려있는 것으로 이것이 근대에 와서는 '자존적인 존재'로 바뀐다. 다른 것에 원인 받지 않고 존재한다는 개념을 두고 보면 인간은 자존적 존재는 아니다. 그럼 자존적 존재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자체일 것이고 실체는 곧 '자연자체'이다. 이 실체는 중세 철학에서는 신이었기 때문에 스피노자는 '신적 자연'이라는 말을 한다. 스피노자가 말한 자연에는 초월적인 신이 개입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스피노자는 네덜란드 유태인 공동체에서 퇴출된다.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를 얘기한다. 생명 자체는 가지고 있는 어떤 목적도 없다는 것인데, 이 얘기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을 붕괴시킬 수 있는 요소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쟁에서 헤겔, 후설, 하이데거는 '이성'으로 문제의 해결을 도모한다.

그 해결의 종착점은 '초월성'이고, 곧 '신'이었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광인들을 격리시켰고. 제도권으로 폭력을 통해 감금시켰음을 폭로했다. 이것이 이성의 폭력이었고 광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의 시각이다. 이것은 바깥으로부터의 사유이다. 이 바깥으로부터의 사유를 하는 사람들을 포스트구조주의자라고 얘기한다. 

김범수 교수는 이렇게 보면 프랑스 철학의 계보는 엄밀히 얘기하면 30년대부터의 이성적 전통의 부류와 반대편에 있는 부류가 섞여있는 셈이라고 한다. 실제로 프랑스 철학은 강단철학과 대중철학으로 양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대중철학에는 들뢰즈와 푸코가 자리하고 존재론과 이성적 탐구를 하는 강단철학은 헤겔, 후설, 하이데거가 포함된다고 한다. 이어서 김범수 교수는 "하버마스는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에서 하이데거, 아도르노, 푸코, 데리다와 같은 학자들을 니체를 계승한 탈근대 철학자들로 규정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규정은 프랑스 철학의 진영에서 보자면 반가운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헤겔과 반(反)헤겔의 규정으로 나누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김범수 교수

베르그송주의와 들뢰즈 

데꽁브((Vincent Descombes, 1943년 출생)의 경우 현대철학의 과제를 헤겔 비판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는 하이데거노선에 따르면서 실존주의, 현상학, 해석학 등으로 연결되는 노선과 후기구조주의 노선으로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러한 분류에 따르면 들뢰즈는 후자의 노선에 서 있는 학자이다. 이 시기 들뢰즈는 「구조주의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를 통해 구조주의를 특징을 밝히면서 자신과의 차이를 정리했다. 

들뢰즈는 68혁명 목도 후 국가박사가 되는데 이후 가타리(Felix Guattari, 1930~1992)를 만난다. 들뢰즈는 가타리와 조우하여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공저로 『반-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이 있다. 이후 들뢰즈는 혼자서 몇 권의 책을 출간한다. 문학과 예술에 관한 책이 주류를 이루는데, 마지막 글은 「내재성 : 하나의 생명」이라는 짧은 논문인데, 이 논문은 자신의 존재론을 정리하는 아주 중요한 글이다. 여기서 들뢰즈는 자신의 지적 스승은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임을 밝히고 그 중에서도 베르그송주의를 드러낸다. 들뢰즈는 이 글을 끝으로 1995년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투신한다.

베르그송은 수학에 천재성이 있었지만 수학과 물리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과학사에서 뉴턴에서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지는 실증주의는 '양화(量化, 이성)'를 통해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베르그송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물리적 양화로 설명할 수 없음을 주장한다. 베르그송은 시간이라는 것도 양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자연과학에 대한 비판에는 생물학을 이용했다. 

그런데 들뢰즈는 구조주의자이기는 하지만 라캉의 노선과 다른 구조주의자로서, 들뢰즈는 변화율을 다루는 미분방정식을 통해 베르그송과는 다른 수학에서 나온 개념을 도입한다. 이를테면 '특이점'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특이점'은 다른 것과 교환될 수 없는 독특한 점이다. 김범수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예를 들면 야구를 소재로 한 3D 애니메이션 영화의 모션 캡쳐 촬영이 있다고 치자. 그리고 타자의 운동을 모션 캡쳐 한다고 할 때 이 때 센서들은 타자의 방망이나 팔과 다리 등 운동성이 보이는 곳에 부착될 것이다. 이곳에 부착된 센서들은 배우의 머리에 붙여져 있는 센서와 서로 교환될 수 없는 특이한 성격을 가진다. '특이점'은 이런 비유와 같다. 들뢰즈는 이것을 가지고 '역동적인 생성의 체계'를 설명하려 했다."

베르그송의 원뿔 도식과 들뢰즈 경우에의 변용 

베르그송은 유명한 '원뿔 도식'을 통해 '지속'을 눈덩이에 비유했다. 우리의 기억은 몸속에 계속 복합적으로 쌓여간다는 것이다. 기억의 만들어짐과 이것이 어떻게 현재화 되었는지를 말한 것이 『물질과 기억』이다. 그런데 김범수 교수는 베르그송의 그림은 반만 그린 그림이라고 하면서 이것을 들뢰즈의 철학에서 본다면 마치 거울에 비추어져 있는 원뿔의 모습과 같이 변형시킬 수 있다고 한다. 



위 그림을 보면, 과거의 시간대 부분이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세계'가 될 것이다. 들뢰즈는 '이념(Idée)'을 무의식의 세계에 가져다 놓는다. 들뢰즈가 여기서 말하는 이념은 무의식 세계에서 말하는 '욕구'들을 말하고 이것은 끊임없이 문제를 발생시키는 존재이다.

들뢰즈는 후기에 가면 이념이라는 말 대신에 '욕망'이라는 말을 직접 쓴다. 이 욕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인간은 '욕망하는 기계'가 된다. 이 욕망하는 기계가 제도를 깨부수는 것이 '탈영토화'이다. 탈영토화는 정해져 있는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 탈영토화는 한 번의 '역량'으로 만들어진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을 구조적으로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로 나누었다. 이 때 충동대로 움직이려는 것은 이드이고 초자아는 나를 억압하는 기제이다. 초자아의 억압이 사회적으로 나타나면 법_제도가 된다. 사회문화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반영하지만 법과 시회적인 제도는 초자아가 양심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

이런 제도적인 가치가 있으면 사회적인 금기가 강해진다. 그런데 이 금기는 깨부수어야 할 것이다. 무정부주의자는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이것을 관통해서 나오는 인간형이 '스키조(Schizo)'라는 인간형이다. 일종의 정신 분열자라고 할까. 여기서 말하는 정신 분열자는 임상에서 말하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Übermensch)'이 이것이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같은 인간이다. 

김범수 교수는 니체의 초인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기존의 인식이 너무 잘못되어 있다고 한다. "니체의 초인이 단순히 인간을 넘어서는 뭔가가 아니다. 초인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평범한 인간과 같다. 변화를 통해 늘 '생성'하려고 했던 존재가 바로 초인이다. 슈퍼맨이 아니다. 스키조도 방향 없이 제도적인 억압을 뚫고 지나려는 사람들이다."

위의 그림에서 생성되는 원리는 '반복'이다. 그런데 우측 원뿔(상에 비친 부분)에서도 반복이 일어난다. 이 경우는 '동일성에 의한 반복'이고 좌측 원뿔인 과거는 영역은 '차이나는 것들에 의한 반복'이다. 그리고 '강도'라는 것은 터지려고 꿈틀거리는 것을 말한다. '강도'라는 말은 그 자체로 힘이 들어가 있다. 이 힘들이 응축되어 늘 터져 나오려고 한다. 그리고 현재를 상징하는 가운데의 꼭지점과 비대칭으로 이루어져 늘 '생성'되려고 한다. 강도의 차이는 고도차로 인한 기압의 차로 인해 공기가 순환되는 구조에 있을 때 강도의 차이다. 이것은 빅뱅이라는 비유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이념'과 '차이'가 밖으로 터져나오려하면 '생성'이 되고, 분명 사회적으로 억압하는 기제들이 있는데 그것은 '초월성'이 된다. 사회적인 것은 또한 인간의 무의식적인 것을 반영하는 것이 된다. 

위의 그림은 들뢰즈가 설명하려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 참고로 김범수 교수는 리처드 도킨스가 유전자는 생존기계라고 말했다는 것을 거론하면서 들뢰즈의 철학에 의거한다면 유전자를 생존기계라고 표현한 것은 탁월한 용어 선택이었다고 한다. 들뢰즈는 '초월성의 체계', '재현체계', '표상체계'를 싫어한다. 특히 들뢰즈는 인간에 대해 '유기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기계'라는 말을 쓴다. 이는 가타리도 마찬가지다. 가타리는 인간을 '욕망하는 기계'라고 표현했다. 

들뢰즈가 말하는 이념(Idée)의 의미와 몇 가지 용어들 

프랑스어 'Idée'에서 대문자 'I'를 쓰는 것은 서양철학의 이데아를 의미한다. 들뢰즈는 자신의 철학을 칸트의 철학체계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그대로 대문자를 쓴다. 대신 그 내용과 용어는 완전히 뒤집어서 쓴다. 

'이념(Idée)'의 구성요소는 '강도'와 '미분'이다. 강도는 고도차, 위도차, 압력차처럼 힘으로 가득한 것들이고 이것을 설명해주는 역동적인 수학체계로서 미분이 있다. 미분에는 '차이를 담고 있는 요소'란 의미가 있다. 또 '생물학적 분화의 요소'가 포함되고, '나의 창조적 행위'도 포함된다. 

이 강도와 미분은 힘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가만있지 못하고 터져 나오려는 상태에 있다. 개체인 인간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나도 모르게 어떤 행동을 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것은 '억압' 때문이다. 그 행동은 일종의 '반복 강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과거의 무의식 영역이 현재로 터져 나오려고 하는 것을 존재론적으로 말하면 '반복'이라고 한다. 반복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과거의 '경험과 습관에 의한 반복'이 있고(옷 입은 반복), '새로 생겨난 반복'의 경우가 있다.(헐벗은 반복) '옷 입은 반복'이란 풍성하다는 의미이고 '헐벗은 반복'은 빈약하다는 의미인데 이 때 한 개체가 가지는 '욕망'은 '자발적인 면'이 있는 반면에 '비자발적인 면'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를 만들어가는 또 다른 형태로서의 '개체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들뢰즈의 후기저작으로 가면 '강도는 잔존'하지만 '미분과 이념'에 대한 얘기는 빠진다. 빠진 그 자리를 들뢰즈는 '욕망하는 기계'라는 말로 대신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가타리의 개념이다. 이것을 뚫고 나가는 힘을 '스키조'라고 하고 들뢰즈는 지구 전체를 '알'로 표현한다. '생명이 분화'되기 때문이다. 생명은 '분화'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들뢰즈는 지구를 '기관 없는 신체'에 비유하기도 한다. 들뢰즈는 이런 새로운 개념들이 만들어지면서, 이를 일컬어 '새로운 사유의 인지'라고 했다. 또 그것이 구성되는 속성에 대해서는 '내재성의 평면'이라고 했다. 우리 '경험세계의 응축성'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반대의 지점에는 '표상체계'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재현'과 같고 이것은 '억압하는 것'이다. 정해져 있는 '체계'가 있고 그 체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표상'이다. 어떤 목적이 정해져 있고 그 '합목적성'에 의해 맞춰서 형성되는 것, 즉 '주체'에 대해서 들뢰즈는 비판하는데 여기서 '주체'는 '초월'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이것은 '이념(Idée)'의 정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그림에서 보이는 점선의 영역 미래는 '영원회귀'라고 할 수 있다. 영원회귀는 예전에는 자연의 주기에 맞추는 '동일성의 반복'이라고 보았지만 들뢰즈는 세계에는 같은 것이 없고 생성만이 이루어지고 '생성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개념으로 썼다. 영원히 돌아오는 것은 '생성'이다. 동일한 내가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영원회귀'를 '원형의 반복'이라고 보는 관점은 들뢰즈가 보던 관점 이전의 것이다. 예를 들어 동일한 사태에 의해 80년에 죽은 누군가와 90년대 죽은 누군가는 원형의 반복이다. 이것은 종교적 제례의 의식이나 역사적 사건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반복하는 대상이 '동일'하다. 

그림의 꼭지점 부분 현재는 습관적인 체계에서 과거를 끄집어낸다. 그런데 '비자발적으로 나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 되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생성'이다. 미래를 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젊었을 때 여행을 간다고 가정해보자. 자유롭다. 자유로운 이유는 속박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체계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새로운 뭔가를 시도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내게 된다. 미래의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재성의 존재론 

김범수 교수는 들뢰즈의 서양철학의 탄생과 그 처음의 성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토스(mythos)에서 로고스(logos)로. 이 말은 서양철학의 탄생과 발전을 압축적으로 담은 문구이다. 다시 말해 서양철학은 '확실성'을 추구했고, 이것은 철학의 출발이다. 존재를 연구하는 기본 전제는 변화나 생성이 아니라 '정지'였다. 이것임과 저것임이 동시에 주장되는 것은 존재의 규정으로 말할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추방을 선택하지 않고 독배를 선택했던 이유는 결국 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이것과 저것이 공존하는 세계가 아닌 확실성으로, 존재로 충만한 저 세계에 대한 동경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으면 죽음을 선택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전통에서 '불변'은 '선한 가치'를 담고 있다. 서구 지식인들의 의식에는 불변과 선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봤고, 이를 추구하는 의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세상은 아무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로 가득하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이것이 들뢰즈 철학의 문제의식이다. 기존 철학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는 가장 확실한 것이었다. 가장 잘 규정 할 수 있는 것. 불변의 것, 정지해 있는 것이 가장 선한 것이고 확실한 것이라고 믿었다. 서양철학은 가장 실체적이라는 정지에서부터 출발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도덕적 의미에서 선(善)이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이 '선의 기원'을 따져보자는 것이 들뢰즈가 말하는 '내재성의 원리'이다. 이것은 니체의 계보학에서 왔다. '가치의 기원'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들뢰즈는 내재성의 철학에서 첫 번째로 얘기하는 것이 '사유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이다. 어떤 장소에 몇 명의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인식'의 영역이다. 이것은 사유가 아니다. '사유'는 충격이 오고, 하나의 사건이 만들어지고, 무언가 생성이 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변화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고 거기에 대해 생각해 내는 창조적 과정이 사유'이다. 기존의 관습체계가 아니란 말이다. 만약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지를 기반으로 말한다면 실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할 수 없다. 그 사유체계는 들뢰즈에게 있어서 일종의 나쁜 것이다. 이것을 니체는 '독단적 사유의 이미지'라고 했다. 사유는 사건의 조건과 환경을 따져서 해야 한다. 이것이 푸코가 말한 '바깥으로의 사유'이고 들뢰즈는 바깥으로 나가 사유의 전제조건을 봤던 것이다. 들뢰즈는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 또는 확실성의 확보를 모두 제거하고 이것 없이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통해 우리의 경험으로 응축된 새로운 사유를 하고 적극적 생성에 대해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 들뢰즈의 '내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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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강 : 2월 12일 들뢰즈 : 들뢰즈의 반복과 영원회귀 (김범수,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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