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인문

[스크랩] 21세기에 보는 20세기 사상지도 (5) /하이데거/자크라캉/미셸 푸코

doll eye 2018. 7. 4. 17:57

- 지금, 여기, 나… 이것이 ‘존재’다
ㆍ하이데거 (1889 ~ 1976)


지식인의 정치참여는 온당한가?

굳이 안 될 이유야 없지만 나치 같은 범죄적 세력에 참가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그러면 지식인의 정치적 의사와 그의 이론적 견해 사이에 필연적 연관이 있을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정치참여의 정당성 여부는 대개 분명한 연관이 있는 경우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더 문제가 되곤 한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정치지향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적 견해가 반드시 나치 지지로 귀결되는지를 둘러싸고는 의견이 분분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마지못해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총장을 맡았고, 유대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임무가

성공하자 총장직을 그만두었고, 적어도 허위에 사로잡힌 열정 때문에 나치를 지지했지만 곧 그 환상에서 벗어났다고

믿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노년의 하이데거는 자신의 가르침을 거부한 나치 때문에 독일인이 자신들의 운명을 이끌 힘을 잃게 된 것이며 그 역시

나치의 희생자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방대한 독서량과 독특한 사유로 에른스트 카시러와의 논쟁에서 승리했고, 현대 서구사상에 놀랄 만큼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 유독 정치와 정치적 사유의 영역에서만 순진했다는 것이 진실일까?

사실은 달랐다. 그는 총장이 되기 위해 로비를 했고, 대학개조에 적극적이었으며, 순회연설은 늘 히틀러 만세로 끝맺곤

했다.

총장을 그만두었을 때도 그의 옷깃에는 나치를 상징하는 핀이 꽂혀 있었고, 제자 칼 뢰비트에게는 <존재와 시간>에 등장

하는 개념과 자기의 정치개입의 관계를 설명해주기까지 했다.



나치 지지는 윤리적인 문제도 낳았다.

부자관계에 비할 만큼 유대가 깊었던 스승 에드문트 후설을 배신(1940년대 초 <존재와 시간>에 포함된 후설에 대한 헌사를 삭제했다가 나중에 슬쩍 끼워 넣었다)했고, 평생의 벗이었고 지적 동료였던 야스퍼스의 부인과 끝내 자신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던 제자이자 연인 한나 아렌트를 외면했으며, 동료교수 헤르만 슈타우딩거와 제자 에두아르트 바움가르텐을 정치적인 이유로 탄핵했다. 그들은 유대인이었다.

나치 지지는 용서받기 힘든 과거였다.

적어도 하이데거의 초기 사상에 대해서만은 지지를 포기하지 않았던 야스퍼스조차 그가 대학 강단에 서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도덕적 평가만이 중요했다면 하이데거의 사유는 아무런 영향을 행사할 수 없었을 테지만, 그는 20세기에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남았다.

놀랍게도 그의 지적 영향력을 절대적으로 인정한 사람들 중에는 가장 좌익적이며 최근의 철학적 사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이데거의 지적 영향력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좌우익 모두에 대해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역사적인 면에서만 보면 하이데거 옹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하이데거와의 이론적 유사성에 대한 동의를 구했다가 거절까지 당했던) 사르트르는 누구보다 인상적인 언사로

하이데거의 사상을 변호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철학자의 사상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 자신의 사상을 발견하게 된다면, 만일 우리가 새로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기술과 방법들을 다른 철학자에게 요구하게 된다면 그것이 우리가 그의 이론을 전부 신봉한다는 것을 의미하겠는가?

마르크스는 헤겔로부터 변증법을 빌려 왔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론>을 프로이센 공국의 저작이라 말하겠는가?”

사르트르의 변호는 설득력이 있다.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려 할 때 그의 모든 것, 예컨대 사생활이나 악행까지 모두 배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이데거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고 믿은 사람들은 그의 행위와 사유 사이의 연관성을 배제하거나, 적어도 재구성하려고 시도했다.

들뢰즈, 데리다, 푸코, 라캉 등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들은 하이데거의 친나치 행적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으면서도 그의 영향을 벗어나려고 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그것을 새로운 형태로 재현하거나, 그의 사상에서 받은 영감을 자기의 이론 구성에 사용하는 데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하이데거의 제자로 만들었을까?

그의 사유에 정말 중요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이데거는 존재(sein, be)와 존재자(존재하는 것, seiendes, is-ness)를 구별했다.

철학은 존재자만을 사유할 뿐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있다며 존재자는 존재에 입각해서 사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존재(sein)란 어떤 것의 존재, ‘있음’을 의미했고, 존재자(seiendes)란 존재하는 ‘그 무엇’, ‘있는 것’이었다.

요컨대 그가 보기에 사람들이 존재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존재가 아니라 존재하는 어떤 것, 존재자였고, 존재자는 단지 주어져 있을 뿐, 뭐라 설명하든 결국은 우연한 것 이상으로 나갈 수 없었다.

존재와 존재자를 구분하면 사태가 달라질까?

그는 진리를 대상과 개념의 일치로서만이 아니라 실체의 본질이 드러나는 과정이라고 이해했다.

전자는 우연히 얻어질 수도 있지만 후자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존재자의 진리가 존재에 있는 한 존재자는 존재로부터 의미를 부여받은 필연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경험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존재자란 존재의 실현이었기 때문이다.

존재는 자신을 드러낼 특정한 장소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실현되어 특정한 형태를 갖는 존재자가 된다.

이처럼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하이데거는 존재를 의미하는 단어 sein에 관사 da를 붙여 dasein, 현존재라고 불렀다.

현존재는 항상 ‘거기(da)’, 즉 특정한 장소에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현실적인 존재이며, 장소(공간)를 내포하는데,

장소의 본질은 시간이다. 현존은 ‘지금-여기’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세계는 공간과 시간에 의해 그 형태를 얻게 되는 것이다.

또한 현존재는 세계 내에 존재하는 ‘세계-내-존재’로서 관계를 통해 실현된다.

세계는 상대적이다. 공간조차도 멀면서 동시에 가까울 수 있다.

타인과 관계하는 이상 자아는 자신과 더불어 있는 타인의 요구에 종속되어 존재한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있는 나이며, 타인과 공통적인 존재양식을 갖지만 그것은 나 자신의 고유한 현존재를 망각하는 비본래적인 존재양식이다.

타인은 몰개성적이고 익명성을 갖는 집단으로서의 대중이며, 그것이 바로 타인의 힘이다. (대중성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

하는)

인간은 평균화를 벗어나지 못하며, 잡담, 낙서, 호기심에 빠져 고유의 현존재성이 퇴락한 결과가 자기소외다.

타인에게 지배된 세계에 몰입함으로써 자기와 세계의 사멸을 망각하고 비본래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자기의 실존과 실존의 근본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사회, 산업사회의 불행은 여기서 시작된다.

타인에게 지배되는 현존재는 죽어야 할 운명이다.

죽음은 현존재의 특성, 거기에 있음을 포기하게 하는 절대적 지평, 현존재의 끝이지만 하이데거는 죽음조차 존재의 한 방식으로 이해했고, 존재 가능한 방식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였다.

그가 부활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과 세계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죽음을-향한-진의적 있음’을 마주하라는 그의 요청은 존재가 부여한 현존재의 진의성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타인에게 지배당한 상태로부터 자신을 회복하라는 의미다.

이 요청은 결단을 요구한다.

하이데거는 독일의 현존재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아마도 서구의 위기(죽음)에서 부활은 진의성의 회복, 즉 존재문제로의 회귀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지리적 중심, 유럽 언어의 시원적 언어인 독일어, 이러한 요소들에서 하이데거는 독일의 운명, 서구의 몰락 속에서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독일의 사명을 발견했다.

하지만 나치는 하이데거의 제안을 거부했고, 자신을 희생자로 생각한 하이데거는 나치가 자신의 해법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독일인이 자신의 운명과 만나게 될 길을 막아버렸다고 믿었다.

존재는 사라졌고 구원이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노년으로 갈수록 하이데거는 더욱 신비주의에 빠져들었다.

이것이 그에게서 독일 보수혁명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되는 이유다.

하이데거가 통합유럽이라는 동시대의 유토피아에 현혹되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들은 하이데거의 실천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 철학도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진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이 거꾸로 서있고, 따라서 그대로 쓸 수는 없다고 했다.

그 말은 하이데거에게도 해당된다.

하이데거를 더 알고 싶다면

하이데거의 주저 <존재와 시간>에 대한 해설서로는 <존재와 시간 강의>(소광희, 문예출판사), <쉽게 풀어쓴 하이데거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그 영향>(이기상, 누멘)이 읽을 만하다.
두 사람 모두 <존재와 시간>의 번역자이기 때문에 내용은 신뢰할 수 있다.
다만 후자가 하이데거의 현재성과 의의를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는 반면, 전자는 텍스트 해설에 더 충실하다.
하이데거와 나치의 관계를 주제로 쓴 책은 <하이데거는 나치였는가>(박찬국, 철학과현실사), <하이데거와 나치즘>(박찬국, 문예출판사), <하이데거와 나치>(제프 콜린스, 이제이북스)를 들 수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나는 철학자다 : 부르디외의 하이데거론>(이매진)은 하이데거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서술된 아마도
거의 유일한 책일 것이다.
<니체, 횔덜린, 하이데거, 그리고 게르만 신화>(최상욱, 서광사), <보수혁명-독일 지식인들의 허무주의적 이상>(전진성, 책세상), <낭만주의의 뿌리>(이사야 벌린, 이제이북스)는 독일 지식인의 사유를 암암리에 지배했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김동수 | 대안연구공동체 연구위원>




-  하고 싶은대로, 네 욕망에 따라 행동하라
ㆍ자크 라캉 (1901 ~ 1981)


총선이 막 끝났으니 선거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겠다.

간과되고 있지만 선거권은 아무에게나 부여되지 않는다.

나이, 국적, 범죄 경력, 심신 장애 등을 이유로 선거권을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선거의 주인, 유권자가 될 권리는 법이 정해놓은 테두리를 넘지 않은 자들에게만 주어진다.

이제 말하려는 라캉의 ‘주체’는 선거권과 무관하지 않다.

주체는 무엇보다 법·질서에 복종하겠다고 맹세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영어 사전에서 주체(subject)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주인과 하인 그리고 환자라는 의미가 나온다.

하인임을 인정할 때라야 주인 행세를 할 수 있다는 모순. 라캉에게 주체는 그런 것이다.

주체 : 라캉의 이론은 난해하다기보다는 이해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나의 <에크리>(ecrits는 글 모음집이라는 뜻)는 읽히지 않기 위해서 쓰였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글(언어)이라는 상징을 통해서는 그것을 넘어서는 상상(이미지)과 실재(물자체)를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식을 집중해서 <에크리>를 읽을수록 그것이 말하는 진실로부터 그만큼 멀어지는지도 모른다.

라캉은 수수께끼의 탑을 쌓았다.

가장 아래에 괴어 놓은 돌이 무의식이라면 그 정점에 실재라는 (이해) 불가능의 돌을 올렸다.

따라서 그의 글은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해가 끼어든다.

이 글도 어쩌면 오해와 이해의 사이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렴 어떠랴. 어차피 글이란 라캉의 말대로 오해되기 위해 쓰이는 것이거늘.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의 안개가 걷히고 나니 눈앞에 세 개의 섬이 보인다.

그러나 썰물이 빠져나가고 나면 분리된 것으로 보였던 섬들이 사실은 하나의 섬에서 솟은 세 봉우리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라캉은 주체의 이론가다.

그가 말하는 주체는 데카르트의 코기토로 대변되는 철학적 주체(근대 이성의 주체로 라캉은 이것을 자아로 파악한다)와는 사뭇 다르다.

무의식을 강조했던 초기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주창하며 라캉은 무엇보다 주체 개념을 세공해서 발전시켜 왔다.

자아를 강조했던 영미권의 자아심리학과 끝없이 투쟁해 온 라캉이 자아와 대비되는 주체를 강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이다.

그는 주체/무의식을 분석하는 도구로 구조주의 언어학을 사용했지만 언제나 구조가 포섭하지 못하는 잔여물에 주목했고,

언어 사슬에서 벗어나 실재로 도약하려는 주체의 욕동에 주목했다.

이제 라캉이 들려주는 주체 탄생의 비화를 통해서 상상, 상징, 실재가 무엇인가를 짚어보도록 하자.


상상계 : 주체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자아가 선행되어야 한다.

거울 단계로 알려진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시기에 자아가 탄생한다. 거울 속의 이미지를 보고서 “아! 저게 나로구나!” 하고 자기애에 빠져드는 유아.

그러나 라캉이 보기에 그것은 허상에 불과한 이미지를 자기로 오인하는 소외에 불과하다.

불행히도 인간에게 이러한 소외와 착각은 운명이다.

게다가 자기애의 이면에는 자기 파괴가 존재한다. 신화에서 나르시스가 이미지와 자신 사이에 놓인 심연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물속에 몸을 던지는 것뿐이었다.

라캉이 좋아하는 말장난을 해보자면 상상계의 거울(miroir)은 사랑(amour)이면서 동시에 죽음(mourir)이다.

발달 단계를 뜻하는 불어 stade는 무엇보다 투기장(stadium)이다.

엄마-아이의 2자 관계로 표상되는 상상적 층위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결코 평안한 관계가 아니다.

물론 엄마와 아이 모두 이것을 모른다. 언제나 아이 뒤에서 보호·감시하는 어머니의 존재는 아이에게 해롭다.

엄마의 치마폭은 아이를 바람으로부터 막아주기는커녕 질식시킨다.

상상적 2자 관계(dual)는 다름 아닌 사투의 관계(duel)이다.

이처럼 불안정하고 신뢰할 수 없는 자아의 세계에 고착되면 자폐증(정신병)이 발생하는 것이다.

상징계 : 아버지가 개입해 엄마와의 위험한 2자 관계는 붕괴되고 3자 관계가 형성된다.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는 이름/금지(nom/non은 불어에서 동음이의어)로 존재하는 사법적 권위의 상징이다.

아이는 어머니에 대한 욕망(이자 동시에 어머니가 욕망하는 대상, 곧 자신)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금지에 동일시하고 상징적 질서로 들어가 주체로 거듭난다.

이것이 상징적 거세이며 이 과정에서 중요한 상실/결여가 발생한다.

상징적 질서에 입장하는 대가로 자기 존재의 일부(어머니의 욕망)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것이 잃어버린 대상이며 욕망을

야기하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주체는 자신의 존재-결여를 메우기 위해 무언가를 욕망한다.

이 무언가가 통상 대상a/환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욕망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밑 빠진 독’이다.

오디오 파일들의 기기 바꿈질을 생각해보자. 그들이 욕망하는 소리, 소위 원음이란 기기의 재생음이 결코 아니며 그렇다고 공연장에서 듣는 생음악도 아니다.

그것은 뱃속에서 들려오던 어머니의 목소리일 것이기 때문에 바꿈질은 끝이 없고 지름신은 매일 강림한다.

그렇다고 대상의 끝없는 바꿈질(욕망의 환유)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삶을 사는 힘이 되는 것이다. 요컨대 그 결여는 단순한 없음이 아니라 삶의 조건이다.

상징적 질서에서는 비어 있는 공간(결여)이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라캉이 보기에 단어(기표)와 의미(기의) 사이에는 분단선이 그어져 있어 서로 만날 수 없고 따라서 단어는 내용이 없는 결여 그 자체이다.

이처럼 공허한 기표들의 사슬로 구성된 상징적 질서는 완전한 체계를 이루지 못하고 균열의 구멍을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이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구조는 모든 것을 그 안에 담을 수 없고 언제나 무언가가 빠져나간다.

라캉이 통상적인 구조주의와 갈라서는 지점이 이곳이다.

결여가 없는 완전한 존재라고 믿었던 대타자 역시 결여에 시달리는 욕망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될 때 주체의 분리가 시작

된다.

분리(se+parer)의 어원을 분석해보면 ‘자신을 생산한다’는 의미가 드러난다.

이제 주체는 환상 대상이나 대타자의 종속된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유한 욕망이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며 상징적 질서에 구멍으로 간헐적으로 틈입하는 실재와 조우하게 된다.

실재계 : 1960년대 이후 라캉은 실재(real)에 연구를 집중하게 되는데, 실재는 간단히 ‘불가능’으로 정의된다.

“실재, 그것은 불가능이다.” 이것은 프로이트적 사물(혹은 칸트의 물자체)로 결코 알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모호한 정의보다는 상징계로 진입하기 위해 떼어두고 온 존재의 일부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주체는 더 이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사양하고 상실한 대상을 직접 찾아나서는 위험한 시도를 감행한다.

그것은 쾌락원칙(가장 낮은 수준으로 흥분을 유지하려는 목표를 갖는다)이 제시하는 금지선을 넘어 상징계의 매개 없이

사물(실재)과 직접 통교하려는 것이다.

실재는 결여가 없는 충만함이며 따라서 완벽한 만족을 주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궁극의 만족(이것은 긴장이 전혀 없는 죽음일 것이다)과 적정한 거리를 두려는 ‘쾌락’과 대조되는 ‘향유(jouissance)’는 극도의 흥분으로 정의되며 따라서 고통/쾌락, 주체/대상 사이 아무런 구분 없는 ‘물아일체’를 지향한다.

그것은 엄마와 구분 없이 하나가 되려는 것이기에 위험하고 죽음(태아)을 환기한다.

이제 주체는 상징적 질서에 포박당해 부름에 응답하는 수동적 존재이기를 그치고 절대적 만족을 향해 목숨을 거는 영웅을 닮았다. 이것이 라캉이 말하는 욕망의 윤리학이다. “실재가 추동하는 네 욕망에 따라 행동하라.”

마지막으로 상상, 상징, 실재는 상호 연결된 고리의 형태로 존재하며 우열 관계는 없다는 것을 말해두어야 하겠다.

일정 시기가 지나면 각 단계가 완료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매순간 각 계들이 상호 침투하며 하나만 빠져도 모두 붕괴되는 삼위일체의 구조다.

지금 이 순간도 ‘자뻑증’은 수시로 찾아와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고통/쾌락을 즐기기 위해 온갖 해로운 것들(술, 담배, 커피)을 음용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라캉을 더 알고 싶다면

라캉을 심화해서 공부하고 싶다면 당연히 원전을 읽어야 할 것이다.
라캉은 <에크리> 외에 따로 공식 저작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에크리>는 접근하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번역본도 아직 없다. 27년간의 세미나 강의록이 해외에서 일부 편집 출판되었지만 번역된 것으로는 세미나 11권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맹정현/이수련 역, 새물결)이 유일하다.
구어체인 데다 <에크리>보다야 이해할 만하다고 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다. 입문 단계에서 권할 만한 것으로는 김석의 <에크리>(살림)와 <라깡의 재탄생>(김상환/홍준기 편역, 창작과비평사)에서 홍준기의 <라깡 정신분석학의 기초>가 우선 눈에
띈다. 무엇보다 읽기 수월하고 라캉의 주요 개념들을 대체로 무난히 요약해 놓았다.
그 다음으로 <에크리>의 영어 번역자 브루스 핑크의 <라캉의 주체>(이성민 역, 도서출판b)가 읽을 만하다.

<유충현 | 대안연구공동체 연구위원>


-   보편성의 이름으로 자행된 ‘지적 폭력’ 통찰
ㆍ미셸 푸코 (1926 ~ 1984)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이 세상에 있는 동물을 종류 별로 분류해 보자.
세상에는 ①황제의 동물 ②방부 처리된 동물 ③길들여진 동물 ④젖이 나오는 돼지 ⑤인어 ⑥전설상의 동물 ⑦주인 없는 개 ⑧이 분류법에 포함되는 동물 ⑨미친 듯 돌아다니는 동물 ⑩셀 수 없는 동물 ⑪낙타털로 된 가는 붓으로 그려진 동물 ⑫기타 등등 ⑬장독을 깨버린 동물 ⑭저기 저 모기같이 생긴 동물 등 14가지 종류의 동물이 있다.

지금 제시한 이 분류법에서 빠진 동물이 있는가? 없다.
그런데 이 동물 분류법으로 결론을 맺고 나면 틀림없이 신문에 항의 전화가 빗발칠 것이다.
동물을 빠뜨리지 않았는데도 왜 이런 분류법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까?
지금 우리는 내용이 부족하거나 뭔가를 빠뜨려서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라 내용물을 담는 방법이, 세계를 재단하는 방법이 낯설어서 불편한 것이다. 이렇게 내용물이 아니라 그것을 재단하는 틀에 관심을 가지는 것, 틀이 우리의 인식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사고를 구조주의적 사고라고 한다.

위의 분류법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구조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조와 다르다는 점이다.
주어진 내용은 달라지는 게 없지만 그 내용을 분류하는 구조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그 다른 구조는 바로 우리가 세상을 보는 각자의 틀이다. 이러한 구조, 즉 틀을 벗어나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적어도 관념화된 인식을 이야기한다면….
그런데 그 틀을 조금만 흔들어 놓으면 우리는 이렇게 문화 충격을 겪게 되는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 보자. 저 틀이 이상하고 야만스러운데 우리의 틀은 정상적이고 문화적이라는 사고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틀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보장은 있기나 한 것일까? 누군가가 우리의 틀을 보면서 비웃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있는가? 결국 인간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보편적 인간’의 틀이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생각에 따르면 우리의 것이 정상이라는 그 거만함이야말로 진정으로 야만스러운 사고다.
푸코는 자신의 주저 <말과 사물>의 서문에서 위의 분류법을 예로 들면서 ‘우리’와 ‘남’, 또는 다른 표현으로 ‘동일성’과
‘타자’를 나누고 있는 질서의 폭력을 꿰뚫어 본다.
아르헨티나 소설가 보르헤스의 픽션으로 알려진 이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세상을 보는 법은 오히려 거꾸로,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못 해본 서구인들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는 것이 푸코의 생각이다.
이런 ‘우리’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한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라는 보편성의 개념은 한낱 허구일 뿐이며, 보편성을 추구하는 합리주의는 특정 문화를 대변하는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자아중심주의일 뿐이다.
따라서 보편적 ‘인간’이라는 것은 특정 문화가 다른 문화, 즉 타자에 가하는 폭력일 수밖에 없다. 푸
코가 인간주의, 즉 휴머니즘을 비판하는 것은 바로 이 맥락에서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눈이, ‘나’의 틀이 보편적 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모든 다른 가능성들을 제거할 때만 가능할 뿐이다.

우리는 한민족인가? 우리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들어온 수많은 다른 타자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하나를 위해서 다른 모든 것들을 배제해온 역사, 아니 본질이든 그 무엇이 됐든, 어떤 특정 하나의 개념을 중심으로 놓기 위해 그 외의 다른 것들을 애써 무시해온 역사가 바로 지식의 역사이고, 더 넓게
보면 모든 것의 역사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역사적으로 중세 이후에 나타난 휴머니즘은 ‘본질주의’라는 보다 근원적인 범주 안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가 믿고 있는 인간의 본질에서 벗어난 행위를 하는 것을 우리는 일탈이라고 한다.
변태, 혹은 광기라고도 한다. 이러한 ‘광기’는 따라서 휴머니즘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우리는 휴머니즘을 지키기 위해서 광기를 배척하고 격리하고 감시한다.
하지만 중세 때도 그랬을까? 푸코는 그의 첫 번째 주저인 <광기의 역사>에서 정신병자를 감금하기 시작한 것은 17~18세기부터라고 증언한다.
그 이전에는 광인도 어엿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우리’와 함께 살았다는 것이다.
단지,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달리 보이는 것뿐이지 격리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돈키호테를 생각해 보자. 돈키호테는 기사도들의 무용담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정신이 이상해져 기사복장으로 세상에 나아간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서 좌충우돌하면서도 늘 ‘우리’ 안에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교화 기능을 수행하는 사회 구성원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푸코에 따르면 돈키호테 이후 “반세기도 안 되어 (고전주의 탄생과 함께, 합리주의의 탄생과 함께) 광기는 갇히고
고립되었으며 수용소에, 이성에, 도덕규범에, 그리고 도덕규범의 획일적 어둠에 묻혀버리게 된다”.
이성의 무대, 합리주의의 무대였던 17세기 유럽에서는 ‘표준’ 인간에 어울리지 않은 모든 것들은 예외 없이 격리되기 시작
한다.
정신병자, 기형인, 부랑아, 빈민들은 모두 ‘표준’ 사회에서 격리되고 배제되었으며 본질적인 인간상, 표준적인 인간상을 위해 자신들의 사회적 존재를 말살당해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표준’ 인간이 합리의 이름으로 자신도 모르게 ‘타자’들에게 가하는 폭력의 야만성을 발견한 푸코의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푸코에 따르면 합리주의의 이름으로 ‘타자’를 재단하기 전까지 광인은 초자연적인 ‘다른 세계에서 온 손님’이었을 뿐이다.
중세에서 광인의 위치를 보라! 격리될 이유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환대도 받았다.
하지만 이성의 이름으로, 합리의 이름으로 보편적 인간상을 구축하려는 순간, 광인이 우리와 같은 ‘동일성’을 요구하는 순간, 어느새 그들을 배제하려고 움츠러드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국인 혐오증과 같은 야만적 행태를 보노라면 푸코의 진단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소름이 돋는다.
푸코에 따르면 우리가 그들을 밀어내려 하는 것은 ‘그들이 누군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이 누군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보편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이다.

다시 푸코의 광기로 돌아가 보자. 푸코에 따르면 ‘미친 사람’이 분류되어 가는 과정에 따라 그 분류자도 변해간다.
17세기에 광인을 결정하는 것은 사법관이었다.
17세기에 광인은 부랑아, 빈민과 같은 여타 소외계층과 마찬가지로 취급됐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오면서 분류법이 새로워진다. 소외 계층은 더욱 세분화되어 분류되고, 광인은 의학적인 ‘치료의
대상’이 된다.
이제는 사법관이 아니라 의사가 광인을 알려 하고, 분류하고, 배제할 권한을 갖게 된 것이다.
덕분에 사회가 더 세련됐는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바꿔 쓰는 것도 가능하다.
더 세련되게 타자를 격리시키고 있다. 지식이 권력 구축에 철저하게 동조하고 있다.

의학은 이제 표준화된 사회를 위한 홍위병 역할을 한다. 인간의 바람직한 몸을 제시한다.
바람직한 몸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은 점점 격리될 위협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이야말로 바로 21세기에 사는 우리의 모습이지 않은가! 남성이 좋아하는 여성의 몸은 표준화되어 가고 있다.
남성도 마찬가지, 뚱뚱하면 지는 거다. 체
중은 그렇다치고 키까지 표준화에서 벗어나면 격리될 위기에 처해 있으니!
요즈음 인터넷이나 신문을 보면 온갖 첨단의학이 총동원돼 늘리고, 줄이고, 키우고, 덧붙이며 표준화를 위해 정신없이
달린다.

20세기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모든 저작과 강의, 사회참여를 통해서 하고자 했던 것은 지식권력들이 사회의 마이너들에게 가하는 폭력과 격리가 얼마나 암암리에 사회 안에 깊이 침투해 있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어쩌면 푸코를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가지지 않을 방법이 없다) 써내려 온 이 글도 어떤 의미에서 지적인 폭력이 아닐까? 푸코가 말년에 긴 침묵을 계속한 것도 이런 고민과 무관하지 않다.

푸코를 더 알고 싶다면

푸코의 주저는 대부분 번역되어 있다. 초기의 대작 <광기의 역사>(이규현 역, 나남, 2003)는 푸코 입문자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말과 사물>(이광래 역, 민음사, 1997)은 말할 나위 없는 푸코의 주저다.
1966년 프랑스에서 바게트만큼이나 많이 팔렸다는 책이다. 과장이 섞여 있겠지만 프랑스인들의 인문학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지식의 고고학>(이정우 역, 민음사, 2000)은 푸코 이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저서다.
<담론의 질서>(이정우 역, 새길, 2011)는 푸코가 콜레주 드 프랑스에 교수로 취임하면서 행한 연설을 엮은 것으로 <지식의 고고학>과 함께 푸코를 이해하는 길잡이다.

그 외에도 <임상의학의 탄생>(홍성민, 인간사랑, 1996), <감시와 처벌>(오생근 역, 나남, 2003), <성의 역사1>(이규현 역
나남, 2004), <성의 역사2>(문경자·신은영 역, 나남, 2004), <성의 역사3>(이영목 역, 나남, 2004)가 있고 해설서로는 디디에 에리봉의 <미셸 푸코>(박정자 역, 그린비, 2012), 이광래의 <미셸 푸코>(민음사, 1989)가 있다.
또한 이정우의 <객관적 선험철학 시론>(그린비, 2011) 중에서 1부 ‘담론의 공간’을 읽어보는 것도 푸코이론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임상훈 | 대안연구공동체 연구위원>





출처 : 한국 문화의 원류
글쓴이 : 솔롱고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