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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1세기에 보는 20세기 사상지도 (4) /가뉴팽/호이징가/레비나스

doll eye 2018. 7. 4. 17:57

“인문과학은 여전히 가능하다”


ㆍ가뉴팽 (1923 ~ 2006)


20세기는 인문과학의 탄생기이면서 전성기인 동시에 노쇠기이기도 했다.

늦둥이로 태어나 장래가 촉망되는 기대주였는데 너무 일찍 조로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불과 한 세기 만에!

프랑스 인문과학자 장 가뉴팽의 한 제자가 최근 자신의 책에서 20세기의 인문과학을 평한 것을 요약하자면 그렇다.

다소 도발적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가뉴팽의 사상을 이해하고 나면.

그렇다면 이제 인문과학은 불가능해진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어찌 보면 가뉴팽이 그가 바친 평생의 학문여정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오히려 “인문과학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럼 평범하다 못해 싱겁기까지 한 이 명제에서 가뉴팽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이 답을 위해서는 인문과학의 정의에 관한 질문부터 던져야 할 것이다.

인문과학이 무엇이기에 20세기에 만들어져 세계를 뒤덮을 기세를 올리며 성장했다가 금방 쇠퇴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활이 가능한 것일까?


하나의 독립된 학문 체계로서 과학의 시작은 17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것은 종교로부터 과학이 점차로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하는 시기로 천문학과 물리학의 탄생과 함께한다.

물론 이 시기 전에도 천체와 사물의 원리는 늘 철학자들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17세기 이후의 과학자들은 이전의 철학자들이 사물을 보는 방법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바로 가설과 검증 사이의 끝없는 대화가 그것이다.

이렇게 해서 철학자들의 ‘~주의’나 ‘도그마’는 더 이상 과학에 끼어들 여지가 없게 된다.

(과학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경향신문 2011년 12월24일자 ‘21세기에 보는 20세기 사상지도 : 토마스 쿤’ 참조)

플라톤주의자나 니체주의자는 있어도 뉴턴주의자나 아인슈타인주의자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무엇에 대한 과학이라는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 즉 대상이 아닌 방법론으로서의

과학을 말해야 한다.

그것이 자연과학을 이전에 있었던 자연철학과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인문과학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답은 이미 나온 것이다.

인간의 제반 문화를 학문의 “대상으로서 다룬다”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그것은 이미 소피스트들 이후로 계속 해 왔다) 인간을 학문 대상으로서 “어떻게” 다루느냐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한다.

인문과학은 인간의 제반 문화를 과학적으로 다루는 학문으로, ‘인문’은 대상이고 ‘과학’은 방법론인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가 흔히 문학, 사학, 철학(속칭 ‘문사철’)을 아우르는 개념인 ‘인문학’은 영어로 ‘Humanities’라고 부른다.

이는 바로 인간적인 것들(문화)을 다룬다는 말로 소피스트 전통 이후 전개되었던 고대 그리스의 인본주의 사상을 다시 부활시킨다는 의미다.

‘인문학’은 르네상스(재탄생) 이후의 인본주의 사상을 바탕에 깐 학문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을 학문의 대상으로 과학적으로 다루는 ‘인문과학’과는 엄밀하게 구별돼야 한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인문과학’의 최초의 시도는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의 실증주의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은 신학적-형이상학적-실증적 단계를 거쳐 발전해 나간다.

따라서 인간에 관한 탐구도 같은 여정을 거쳐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실증적, 즉 과학적인 접근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인문과학이 바로 사회학이다.

콩트의 사회학이 물론 현대 사회학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렇다 해도 왜 사회학일까?

바로 인간의 모습이 실증적으로 관찰되려면 구체적 시간과 공간 안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령 실체로서의 ‘문학’은 없으며 실증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한국문학’이거나 ‘영문학’, 또는 ‘현대문학’이거나 ‘중세문학’일 뿐이다.

더 넓게 말해서 ‘언어’라는 것은 없고 실증적으로 있는 것은 ‘한국어’, ‘영어’, ‘불어’ 등이다.

즉 인문과학의 조건은 바로 실증적, 다른 말로 역사적 맥락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성립된다.

20세기 초반은 이처럼 실증주의에 바탕을 둔 인문과학이 탄생해 각 분야의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시기다.

그럼 새로운 인문과학의 이러한 착상은 그 후 탄생할 제반 인문과학의 시대를 위한 축복이었을까?

오히려 재앙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소쉬르는 언어학의 대상을 추상적 의미의 언어(랑가주)가 아니라 실증적 의미의 언어(랑그)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랑가주와 같은 “다양하고, 잡다하며” “여러 영역에 걸쳐있는” 혼재된 것들은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랑그처럼 “특정한 일부분”이면서 “랑가주의 사회적 산물인 동시에 개개인이 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집단이 채택한 필요한

약정의 총체”여야 학문(언어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쉬르 언어학의 기발하고 독창적인 다른 많은 발견들에도 불구하고 ‘랑그’가 언어학의 대상이 된다는 지극히 실증주의적인 발상 때문에 20세기 상당수의 언어학자들이 “언어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라는 명제를 아무 거리낌 없이 남발하게 만들어 버렸다.

언어란 인식 대상들에 대한 관념화의 수단이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쉬르의 영향을 받은 라캉(욕망은 곧 타자의 욕망)이나 푸코(모든 학문 체계는 특정 사회적 맥락에서

가능) 등에게까지 이러한 실증주의의 잔재들이 남게 된다.

그 결과 모든 인문과학은 사회학으로 집결되고 개별 학문 간의 변별성과 고유성이 모호한 상황에서 급기야는 인문과학이

통섭이라는 이름 하에 생물학, 물리학 등의 자연과학으로 환원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에 태어나 철학을 밀어내고 인문학 패러다임의 터줏대감 자리를 차지하던 인문과학이 인문학

위기의 주범으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지경에 몰린 것이다.

가뉴팽은 바로 이 점을 일관되게 지적했던 인물이다.

그럼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

모든 인문과학들이 각자의 고유 영역과 일관성을 보장받으려면 우선 이들을 옭아매는 학제적 구조(disciplinary system)부터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한다.

이미 대학의 학과 단위는 학문적(scientific) 단위가 아닌 결사적(incorporated) 단위, 또는 실용적(pragmatic) 단위로 편재

또는 재편되고 있다.

대학의 실증주의화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 학문의 부활, 인문학의 위기 타개를 위해서는 대학의 학과 단위를 현재와 같이 실증적으로 주어진 구체적 대상들 중심의 학제편성이 아니라 내적 일관성에 따라 주어진 고유한 대상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들로의 재편이 필요하다.

인문학의 위기를 불러온 근본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인문학의 부활을 위한 제도 개선은 겉핥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문과학의 활동 또한 교조주의적인 주장으로만 이루어지는가? 그렇지 않다.

가뉴팽은 그의 거의 모든 커리어를 이론가이면서 임상실험가로 활동했다.

현재로서 인문과학의 과학적 조건은 바로 임상실험이라는 프로이트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프로이트가 말한 ‘깨진 수정체’(broken crystal)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수정체는 아무렇게나 깨지지 않고 결을 따라 깨진다.

하지만 깨지기 전에 우리는 수정체의 결을 볼 수가 없다.

깨진 후에 그 모양과 방향을 봤을 때 우리는 비로소 수정체의 결과 구조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깨진 인간이라 할 수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임상실험은 학자들로 하여금 공허한 주장을 금하게 하고 과학적 가설에 대한 검증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렇게 자연현상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문화현상들을 각각의 고유한 이론적 틀로 설명하고 다시 임상학적

검증을 통해 수정 또는 확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문’+‘과학’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가뉴팽은 구조주의의 자양분을 받았으되 그 한계를 지적하고 구조주의자들이 소홀히 했던 구조의 내부를 들여 봤다는 점에서 후기구조주의자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후기구조주의에서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던 구조(상징계) 이전의 세계(상상계)와 구조 이후의 세계(실재계) 사이의 연관 관계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모델로 풀어냈다는 점에서는 후기구조주의까지 넘어선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과학 모델에서 무엇보다 큰 장점은 하나의 일관된 이론적 틀로 임상검증 과정을 통해 전 인문과학을 포괄하는 종합

이론 체계(매개이론, Theory of the Mediation)를 구성했다는 점이다.

가뉴팽을 더 알고 싶다면

2006년에 펜을 내려놓고 영면에 들어간 장 가뉴팽의 사상을 접할 수 있는 자료는 현재 불어, 독일어, 영어 등 서양 언어로는 다양하게 나와 있지만 불행히도 아직 한국에는 출판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인문학 연구 기관인 대안연구공동체의 한 분과에서 가뉴팽의 사상을 연구하면서 그 저서의 번역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연구에 참여할 문은 열려 있다. 이 글에서 언급한 소쉬르 언어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반언어학 강의>(최승언 옮김, 민음사)를 읽는 것이 좋다.
또 현대 과학철학의 줄기를 알기 쉽게 설명해 놓은 책으로 앨런 차머스의 <현대의 과학철학>(신인철·신중섭 옮김, 서광사)을 권한다.



<임상훈 | 대안연구공동체 연구위원>




- 놀아라, 그것이 문화가 될지니


ㆍ호이징가 (1872 ~ 1945)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요의 일부분들이다. 하지만 이 세 곡을 같은 자리에서 듣는 기회는 드물지 않을까?

첫 번째 노래는 1970년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작사, 작곡한 것으로 발표된 ‘새마을 운동’, 두 번째 노래는 당시 권력과

최극단에 서있던 한 저항시인의 시에 1980년대에 곡을 붙인 ‘타는 목마름으로’다.

각각 근대화, 민주화라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시대적 소명이 처절하게 묻어있는 ‘진지한’ 곡들이다. 필자와 비슷한 세대라면 1960, 70년대 유년시절을 겪으면서 단체소풍 가서 ‘새마을 운동’류의 ‘건전가요’ 한 곡 정도는 불러줘야 똘똘한 어린이였고,

1970, 80년대 대학시절을 겪으면서 술자리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같은 ‘민중가요’ 한 곡 정도는 부를 수 있어야 고민하는

청춘으로 통했다.


하지만 세 번째 곡은 왠지 우리 정서상 진지하게 부르기에 민망한 감이 있다.

구전되어 오던 것을 1950년대에 개사해서 곡을 붙인 것으로 알려진 이 곡은 실제로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퇴폐가요’로 낙인 찍혀 금지당해야 했다.

이렇게 같은 가요지만 신성한 노동을 찬양하는 ‘건전가요’나 시대적 고민을 토해내는 ‘민중가요’와 달리 ‘놀자판’ 딱지가 붙은 ‘퇴폐가요’들이 전하는 말은 한마디로 “일하지도, 생각하지도 말고 놀아보자”는 얘기다.

어느 세대에서도 환영 받기 어려운 이데올로기였다.

그런데 이 곡이 21세기 들어 한 젊은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되고 영화삽입곡으로까지 쓰였다. 금지곡은커녕 기성세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젊어서 노세, 멋진 미래 위해!”라고 감칠맛 나게 불러내는 이 가수의 선동은 20대에겐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이 무슨 일인가! 늙어지면 못 노니 미래를 위해 젊어서 놀자니!

삶의 진지함을 조롱하는 듯한 이 놀이의 선동. 40, 50대가 이해할 수 없는 이 사고의 변화는 어찌 보면 60, 70대가 40, 50대를 이해할 수 없는 것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성장이냐 분배냐의 대립, 국가의 영광이냐 개인의 인권이냐의 대립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이다.

요컨대 과거의 모든 이데올로기를 아우르는 진지함에 대한 놀이의 반란이다.

근자에 보이는 보수와 진보를 모두 당황하게 만든 새로운 잠재적 정치세력의 출현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20대의 눈에는 기성세대의 근엄함 뒤에 있는 경직과 위선은 한낱 조롱거리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 한국사회의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에 이은 새로운 ‘문화 세대’의 아이콘, ‘놀이’이다.

과거에 노는 것은 퇴폐적이고 비생산적이라는 관념에서 보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천진난만한 사고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놀던’ 아이들이 ‘범생이’들의 부러움 속에 시장의 한복판을 점령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지 않은가! 10대의 우상과 장래희망은 이미 대통령이나 과학자가 아닌 가수, 배우, 운동선수이다.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놀이가 21세기를 이해해야 할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되었다면, 문화의 한 중심에, 더 구체적으로 산업의 한 중심에 서 있다면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학자가 이러한 예측을 했던가? 여기서 우리는 20세기 초, 특히 당시로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낯선 분야에 선구자적 저작을 남겼던 네덜란드의 역사학자이자 문화학자 요한 호이징가를 언급하려 한다.

요한 호이징가는 19세기 말 네덜란드의 흐로닝언에서 태어났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는 일곱 살 무렵 흐로닝언에 들어온 카니발 행렬을 보면서 그 광경에 매료되어 평생을 의례, 축제,

놀이 연구에 빠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첫 대표작은 중세가 저물어 가면서 근대의 여명이 시작되는 14~15세기 유럽사회의 모습을

수려한 문체로 그려낸 <중세의 가을>이었다.

이 작품에서 그가 보여주려는 것은 한 사회가 그 수명이 다해갈 때, 바닥 깊숙한 곳에서 스며 나오는 새 기운의 확산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 표면에서는 애처로울 만큼이나 진부한 과거의 담론이 화려한 색깔로 덧칠된다는 것이다.

1919년 발표되어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이 작품 이후 1938년 내놓은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이 바로 지금 소개하려는 <호모 루덴스>이다.

우리말로 ‘유희의 인간’이라는 의미의 이 신조어는 그를 일약 세기적 문화이론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모든 문화 속에 나타나는 유희의 기능에 주목하면서 고대 이후 어떠한 사회를 막론하고 문화의 동력은

바로 이러한 유희의 정신이 구체화되는 놀이와 그 다양한 양태에 있다고 단언한다.

‘놀이’의 반대편에는 ‘진지함’이 있다.

진지함은 인간의 합리적이고 공리주의적인 생산 활동인 ‘노동’과 관계가 있으며, 호이징가에 따르면 이러한 진지한 노동이 인간으로 하여금 창조적 발상을 가로막고 진부한 패턴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놀이를 할 때, 더욱 창조적이고 생산적이 되며 이것이 문화를 만들어오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놀이’와 ‘노동’의 관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일하는 것은 미덕이고 놀고 쉬는 것은 악덕이라는 가치관 속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노동은 신성하고, 인간은 일을 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윤리적 가치판단이 일반화되어 있다.

실제로 인간은 노동의 대가로 풍요로운 삶을 영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노동과 반대되는 놀이 또는 여가는 생산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호이징가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그는 ‘놀이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고 한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 볼 수 있을까?

호이징가의 이론을 좀 더 다른 차원의 모델로 이해해보자.

노동에는 두 측면이 있다. 예컨대 우리가 일을 할 때, 일 자체의 메커니즘이 있고 그 목적으로서의 대상이 있다.

(mechanism-telos)

예를 들면 장인이 호미를 만드는 것은 밭을 갈기 위한 것이며, 목수가 집을 짓는 것은 안락한 삶의 공간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호미 제작-밭 경작’ 또는 ‘건축-주거공간’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노동의 두 면을 구성한다.

그런데 우리는 암암리에 서로 대등한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두 측면 중에서 목적 중심적 노동관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노동의 결과만을 중시하며 노동 자체는 등한시되고 심지어는 멸시되는 환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호이징가의 진단에 의하면 이것이 심화되는 것이 바로 19세기 이후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산업화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19세기 이후의 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소외계층으로 전락을 했으며, 왜 공산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비효율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

‘노동이 성스럽다’는 프로파간다는 반향 없는 외침일 뿐, 의미가 없다.

목적을 잊고 (또는 경감하고) 노동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노동관의 전환 없이는 노동 자체의 의미와 재미보다는 그 결과의 효용성과 가치만이 중요시되며 따라서 어떠한 임무도 그 자체에서 나오는 성취감보다는 타당성, 유용성의 잣대에서만이

판단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모든 행위는 그 자체로서의 가치는 상실되고 수단으로서 발생하는 가치만이 유효한 것이 된다.

그렇기에 그 행위자 역시 노동의 주체로서의 자격과 역할은 박탈되고 효율성을 위한, 사회의 목적을 위한 부속품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호이징가의 놀이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놀이는 결코 노동과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놀이란 다른 목적을 두고 하는 노동이 아니라 노동 자체가 목적인 노동이다. 즉, 노동의 ‘동력(mechanism)-목적(telos)’ 두

면에서 목적을 잠시 배제한 동력중심의 노동관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노동관은 목적 중심적, 목적 편향적 노동관으로부터 다시 균형을 잡아주는 내적 원동력이다.

노동을 단순한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으면서 그 자체에 공정한 규칙과 의미를 부여한다면 우리는 게임을 하듯 노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의 공부가 일종의 노동이라면 마찬가지 원리로 설명되지 않을까?

공부의 결과를 성적으로, 석차로, 등급으로, 진학할 상급학교로만 환원하지 말고 그 자체에 규칙과 의미를 부여하는 게임

처럼 생각하면, 공부의 ‘진지함’을 경감시키면 훨씬 학생들의 성취감도 높아질 것이다.

노동을 컴퓨터 게임처럼 평등한 규칙과 수준별 레벨, 그리고 원한다면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해주면 노동 앞에 밤새워

붙어 앉아있는 노동 중독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호이징가에 따르면 규칙의 불균형 안에서 우리는 게임에 몰입할 수가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반칙과 비협조만이 따를 뿐이다. 또한 참여자 사이에 수준별 레벨이 맞지 않고 비대칭이 뚜렷하다면 우리는 게임에 참여할 의지를 상실할 뿐이며 이것은 결코 노동의 수단을 위해서도, 목적을 위해서도 원하는 결과가 아닐 것이다.

행위가 가져오는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그 안에서 순수한 즐거움을 추구할 때 인간은 가장 아름답다.

호이징가를 더 알고 싶다면

요한 호이징가의 두 대작 <중세의 가을>(이희승맑시아 옮김, 동서문화사)과 <호모 루덴스>(이종인 옮김, 연암서가)는 모두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있다. 두 권 모두 역사적 가치가 있음에도 문체가 난이하지 않고 읽기 수월하다.
인간 문화에서 놀이의 역할을 좀 더 보고 싶다면 로제 카아와의 <놀이와 인간>(이상률 옮김, 문예출판사)도 읽어 볼만 하다. 호이징가의 이론을 좀 더 체계화하려는 의도가 돋보인다.



<임상훈 | 대안연구공동체 연구위원>



너와 나 ‘마주침’의 윤리학적 사유

ㆍ레비나스 (1906 ~ 1995)


레비나스는 사르트르(1905년생)보다 일년 후, 메를로 퐁티(1908년생)보다 2년 전인 1906년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비교적 최근의 인물로 느껴진다.

사르트르와 메를로 퐁티가 거의 동시대(20세기 중엽)부터 잘 알려지고 연구된 데에 비해, 레비나스는 20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다음 세대에 해당하는 푸코, 들뢰즈, 데리다 등이 활기차게 연구된 연후에야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한 셈이다.

그의 주저인 <총체성과 무한>(1961)도 아직 번역되어 있지 않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예컨대 ‘위키피디아’에서의 레비나스 항목은 (그의 사유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데리다 항목에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소략하다.

그러나 레비나스의 사유는 후설이 일으킨 현상학 혁명의 윤리학적 결실로서, 20세기 후반의 세계 철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레비나스는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로 건너가 철학을 배웠다.

여기에서 모리스 프라딘, 샤를르 블롱델, 모리스 할브바흐스 등과 함께 공부했고, 특히 그의 평생 친구인 모리스 블랑쇼와 만나게 된다.

레비나스는 후설 현상학을 프랑스에 처음 본격적으로 소개한 인물이다.

1940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나치에 의해 포로가 되었으며, 그의 부모형제는 살해되었다.

그의 처자식은 블랑쇼의 도움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

1947년에 <실존과 실존자들>, <시간과 타자>를 펴냈고, 1961년에 <총체성과 무한>을, 1974년에는 제2의 주저로 일컬어지는

 <존재와 달리, 본질을 넘어서>를 출간했다. 1995년에 세상을 떠났다.

앵글로색슨적 가치가 지배적인 오늘날 현대 윤리학은 공리주의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윤리학조차도 계산 가능성, 효율성, 자본주의와의 친화성 등을 깔고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덕의 윤리나 칸트적인 의무론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레비나스의 윤리학은 이런 흐름들과 성격을 크게 달리 한다.


레비나스는 윤리학을 ‘제1 철학’으로서 제시한다.

전통적으로 형이상학에 부여된 ‘제1 철학’이라는 말을 윤리학으로 이전시킨 것은 단지 그가 윤리학을 중요시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레비나스는 전통 형이상학의 핵심 주제인 ‘초월성’과 ‘무한’을 바로 윤리의 차원에서 발견하고 있다.

이 점에서 그의 사유는 전통적으로 내려온 ‘도덕형이상학 윤리학의 차원에서 초월성과 무한을 발견한다는 것은 윤리학을

초월성과 무한의 형이상학으로 정초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레비나스는 가장 내재적이고 일상적인 차원에서 초월성과 무한을 발견한다.

전통적으로 우리로부터 가장 먼 것으로 이해되었던 형이상학적 차원이 오히려 가장 가까운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때문에 우리가 이 차원을 잘 알고 있고 또 친근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발 아래 떨어져 있는 것이 눈에 잘 안 들어 오듯이, 오히려 이 차원은 너무나도 가깝기 때문에 우리의 시야를 비켜가 있다.

바로 이 내재적 초월을 현상학적으로 서술하려는 것이 레비나스의 사유이다.

레비나스에게 윤리의 가능조건은 바로 이 차원에 있으며, 그의 윤리학은 바로 이 윤리라는 것의 가능조건을 드러내려 했다는 점에서 “윤리학에 대한 윤리학”(데리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그는 생활 세계적 현상학을 창시한 후설, 그리고 현상학을 우리의 몸 가까이로 가져오고자 했던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 퐁티 같은 철학자들과 같은 궤도 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현상학/해석학 계열의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그렇듯이, 레비나스 역시 하이데거와의 이론적 투쟁을 통해서 자신의 사유를 펼쳤다고 할 수 있다.

이 내재적 초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초월성/무한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사건이다.

이 사건이야말로 윤리학의 가능근거인 상호주체성의 파열이며, 가장 생생한 직접성이며, 현상학이 서술해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은 아직 사유로서 반성되고, 언어로서 표상되고, 개념을 통해 파악되기 이전의 차원, “타자성(otherness)”과 조우하는 사건이다.

따라서 레비나스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인지적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에게서는 “우리가 어떻게 타인의 마음을 아는가?”와 같은 물음은 이차적인 것이다.

레비나스는 후설의 주지주의를 벗어나 만남을 그 직접성에서 포착하고자 한다.

또, 레비나스의 타인은 사르트르에서처럼 응시를 통해서 그와 주체-되기를 겨루어야 하는 존재, 즉 대자존재(의식을 가진

존재, 즉 주체)도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사건은 전-반성적 주체, 주객 분리 이전의 주체(아직 주체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가 겪는 사건이다.

(이 점에서 메를로 퐁티의 사유에 근접한다) 그것은 전-인지적인(pre-cognitive) 마주침, 순수한 “마주침”이다.

이 마주침의 사건은 내가 타인을 만나는 사건, 그를 대상화하고 규정하는 사건, 그와 시선으로 경쟁하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이 내게 마주쳐 오는 사건, 타인이 내게 말을 걸고 나를 부르는 사건이다.

설사 타인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찬가지이다. 타인의 얼굴은 이미 그 자체로서 나를 부른다.

내가 타인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나에게 어떤 타자성으로서 부딪쳐 오는 것이다.

이 마주침(encounter)에서 얻게 되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다.

인지과학에서 논의되는 타입과 토큰을 생각해 보자.

타입은 인식 주체가 이미 갖추고 있는 틀이며(칸트로 말해서 선험적 조건), 토큰은 인식 주체에게 마주쳐 오는 사건으로서 타입의 총체성을 뒤흔드는 것이다.

이런 구도는 인식 주체의 틀로 인식질료를 구성해버리는 칸트의 인식론을 넘어, 객관적으로 생성하는 마주침이 주체의 틀을 변형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추상적인 인식 틀로는 결코 환원되지 않은 질(qualia)이 존재한다는 것도 밝혀졌다.

레비나스의 사유는 이런 생각에 일정 정도 조응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대상이라는 인식론적 개념이 아니라 타인이라는 윤리학적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레비나스에서의 마주침은 오히려 들뢰즈의 그것과 가깝다.

들뢰즈에게 마주침이란 ‘타자(the other)’와의 마주침이다.

그리고 들뢰즈에게서도 역시 타자는 (칸트에서처럼) 주체에 의해 구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주체의 경험의 한계를

깨주는 존재이다.

들뢰즈의 사유는 경험을 한계짓고 있는 선험적 조건의 틀 자체를 넘어 경험을 확장해 가는 선험적 경험론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타자와의 마주침’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레비나스는 들뢰즈의 이런 사유를 공유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윤리적인 맥락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경험을 확장해 나가기보다는 마주침이 일어나는 그 원초적 차원을 현상학적으로 포착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 퐁티, 가다머 등도 이런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레비나스는 이들보다 더욱더 원초적인 마주침의 순간에 주목했으며 거기에서 윤리학적 사유를 펼쳐 나갔다.

타인과의 마주침은 혹시 저 사람이 나를 해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경쟁과 질시, 모략 등등으로 점철되기 십상

이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이런 변질이 일어나기 이전의 마주침의 장, 내가 그 무엇으로도 규정하고 판단할 수 없는 어떤 타자성과의 만남, 이 초월성과 무한의 만남의 장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 차원이야말로 모든 형태의 윤리학의 가능조건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가능조건을 사유하는 과정에서 그는 ‘타인의 얼굴’에 관한 다양한 통찰들을 남기고 있으며, 가장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심오한 개념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런 개념화의 중심에서는 또한 책임의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레비나스의 사유는 타인의 얼굴이 내게 던지는 책임(responsibility)의 사유이다.

레비나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극악한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살았으면서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숭고한 윤리의 가능성을 발견한 철학자였다.

레비나스를 더 알고 싶다면

레비나스의 저작들 중에서는 <탈출에 관해서>(김동규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시간과 타자>(강영안 옮김, 문예출판사, 1996), <존재에서 존재자로>(서동욱 옮김, 민음사, 2004), <존재와 다르게, 본질의 저편>(김연숙/박한표 옮김, 인간사랑, 2010), <모리스 블랑쇼에 대하여>(김교신 옮김, 동문선, 2003), <에마뉘엘 레비나스와의 대담>(김응권 옮김, 동문선, 2008) 등이 번역되어 있다. 레비나스에 관한 저작들로는 베른하르트 타우렉의 <레비나스>(변순용 옮김, 인간사랑, 2004), 윤대선의 <레비나스의 타자철학>(문예출판사, 2009), 강영안의 <타인의 얼굴>(문학과지성사, 2005), 마리안느 레스쿠레의 <레비나스 평전>(변광배 외 옮김, 살림, 2006), 박원빈의 <레비나스와 기독교>(북코리아, 2010), 김연숙의 <레비나스의 타자윤리학>(인간사랑, 2001), 콜린 데이비스의 <레비나스: 타자를 향한 욕망>(김성호 옮김, 다산글방, 2001), 황덕형의 <하나님의 타자성: 웨슬리 바르트와 레비나스의 타자성 연구>(서울신학대학교출판부, 2001) 등이 나와 있다. 레비나스 관련 사이트로는 “The Levinas Online Bibliography”, www.web.me.com/joachimduyndam/levinas를 참조하면 된다.


<이정우 | 대안연구공동체 파이데이아 학장>






출처 : 한국 문화의 원류
글쓴이 : 솔롱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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