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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근철 1

doll eye 2018. 10. 31. 17:23

한철연 철학사 
- 우리 눈으로 본 서양근대철학사 -

1부 이성과 경험 

1강 근대란 무엇인가? 희극의 재탄생: 베이컨, 갈릴레이, 뉴턴 (11월 10일, 최종덕 상지대 교수) 
2강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의심하라 - 근대적 자아의 탄생: 데카르트 (11월 17일, 이병창동아대 명예교수) 
3강 자연과 자유의 화해는 가능한가? - 근대의 탈 근대적 사유: 스피노자 (11월 24일, 조현진 숭실대 외래교수) 
4강 이성의 꿈을 완성하다 - 논리와 컴퓨터의 유토피아: 라이프니츠 (12월 1일, 김성우상지대 겸임교수) 
5강 괴수 조종 매뉴얼 - 홉스의 리바이어던: 기계론의 정치학 (12월 8일, 한길석 군산대 외래교수) 
6강 시민정부와 재산권 - 자유주의 정치학: 로크(12월 15일, 박영균 건국대 HK교수)
7강 건전한 지성은 회의로 끝난다 - 개인주의 인식론: 흄(12월 22일, 남기호 연세대 외래교수) 

2부 계몽과 정신의 모험 

8강 자유로운 주인이 되는 이성국가를 꿈꾸다 - 사회계약론 넘어가기: 루소 (1월 5일, 김광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9강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속의 도덕법칙 - 근대철학의 종합: 칸트 1(1월 12일, 강지은 건국대 외래교수) 
10강 세계시민은 가능하다? - 근대에서 현대로의 변화 이념: 칸트 2 (1월 19일, 박지용경희대 객원교수) 
11강 세계의 비밀을 밝히는 변증법을 제시하다. - 근대철학의 완성: 헤겔 1 (1월 26일, 이관형 서울과학기술대 외래교수) 
12강 새로운 시대를 여는가? - 세계시민사상에 대한 철학자의 고뇌: 헤겔 2 (2월 2일, 이정은 연세대 외래교수)     





베이컨에서 뉴턴으로 - 근대란 무엇인가? 희극의 재탄생

[우리 눈으로 본 서양근대철학사]<1>최종덕 상지대 교수

베이컨에서 뉴턴으로 - 근대란 무엇인가? 희극의 재탄생

무용(無用)의 힘으로 그 어떤 실용보다 권능을 발휘하는 철학의 가치를 알고 싶은 젊은이들, 현실의 모순을 고민하며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시민 등 50여 명이 지난 10일 저녁 프레시안 강의실에 모였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프레시안이 함께 연 서양근대철학사 강좌를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모두 12차례에 걸쳐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에 열리는 이 강좌의 강연 내용을 한철연 조배준 간사의 글을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


오늘날의 철학은 분과된 학문체계 속에서 아직 혼수상태에 빠져 있지만, 다소 심하게 말하면 대학에서는 박제화된 채로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밥벌이를 위해 여전히 열심히 사상담론 수입유통업자 노릇을 자처하며 그 대를 이어가고 있다. 신비화된 도그마를 통하지 않고 우리의 눈으로 이 세계를 조망하려는 것이 근대라는 역사적 시공간의 기원이듯이, 철학사 또한 이 땅에 살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의 눈으로 다시 구성되고 새롭게 쓰여져야 할 것이다. 철학함의 관점이 결코 절대화·정식화될 수 없다면, 철학사도 대상화된 상품이나 관상식물화된 케케묵은 고담준론이 되어서는 안 된다. 관상식물은 맑고 싱그럽기나 하지.

인간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운행할 뿐인 정지된 세계는 '비극'을 낳는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문제와 손을 잡지 못하는 철학은 인류 지성사의 기념비, 전설만 남은 죽은 지식들의 거대한 무덤이 될 뿐이다. 오늘 이 세계에서 문제화된 문제는 나 자신이 오늘 고통스럽고 불안하고 화가 나는 풀릴 것 같지 않은 그 소소한 문제들의 근원과 연결되어 있다. '나'라는 존재는 저 먼 공간에서 온 우주의 역사, 인류의 장구한 진화와 자기 깨우침의 역사를 이미 포함하고 있다. 세계와 인간의 그 망각된 관계는 소외와 회의감, 무력감을 줄 뿐이다.

이 철학 강좌는 죽은 철학자들이 가졌던 당대의 문제의식들을 통해 오늘날의 문제들을 내 힘으로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기획되었다. 그리고 이 연재 글은 나중에 책으로 묶여 나올 강좌이지만 먼저 강좌의 뒷이야기를 독자들과 조금이나마 나누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시대 변화를 반영하며 우리의 역사적 현실을 사상적으로 역추적해보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고 그것을 다시 나만의 질문으로 만들어 내보자. 본래 철학함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니던가. 

▲ 열강 중인 최종덕 상지대 교수 ⓒ프레시안

비극에서 희극으로, 혹은 지배의 철학에서 자유의 철학으로

첫 강의에서는 절대화되고 결정된 방식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플라톤 철학에 대한 비극적 인식의 비유로 고대 희곡의 '비극'이 사용되었다. '차갑고 건조하고 색깔이 없는' 세계에서는 오직 완전하고 독립적인 존재만 상정되는데, 그 이데아의 세계에서 자연과 인간의 다채로운 삶은 늘 종속되고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적어도 우리가 'modern'이라고 부르는 시대를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 

비극적인 세계는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한 법칙적 운행구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고 그 절대적인 세계의 질서에 개입할 수 없다면 인간은 소외되고 회의감에 빠지며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곳은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갈등과 아픔, 고민과 우연들에 섭동하거나 공조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절대적이고 완전한 세계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을 알면서도 그 벽을 뛰어 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주체는 희극적인 세계의 출발점이며, 그 안엔 숭고미가 짙게 흐른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세계는 끊임없이 모든 사물들이 변화하고 뭇 생명들이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곳이며, 따뜻하고 축축하고 다채로우며 모순이 산재해 있고 목적도 끝도 없는 곳이다. 그 리얼한 세계를 바로 보기 위해, 그 세계에 다가가서 스스로 관찰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질서와 원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바로 최종덕 교수가 말하는 희극의 재탄생, 근대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자꾸 근대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고 그 역사적 시대가 만들어낸 가치들의 총체인 근대성과 근대철학에 물음을 던지는가. 바로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규정하고 현대사회를 구성한 첫 번째 단추로서 역사적 변곡점이기 때문이 아닐까. 

세계를 구성하는 최초이자 궁극적인 요소(arche)와 그 운행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물질적인 질료성을 거부하고 완전한 존재가 실재하는 세계를 설정하고, 그 세계에 조금이라도 접근하기 위해 인간이 수학적이고 기하하적인 이성의 지배를 받도록 만든 플라톤은 비극의 창시자이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쪽 세계를 엿보는 인간의 인식 도구로 과학적 사유를 열어 놓으며 동시에 '희극'의 틈도 열어 놓았다. 중세의 역사는 기도를 통한 구원의 믿음을 통해 완전한 비극을 방지했지만, 신의 세계가 인간의 합리화된 언어와 인식의 영역 안에서 설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시 희극을 봉쇄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베이컨은 세계에 대한 경험적인 인식의 가능성을 열어 놓으며 근대의 포문을 열었다. 신비화된 존재만이 주체로 우뚝 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 주체가 되어 그 존재를 객체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새로운 인식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인류 역사의 진보이자 자신과 세계를 스스로의 힘으로 인식하려는 거대한 운동이었다. 4가지 정신의 우상을 비판하는 베이컨의 사상은 신과 형이상학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노력한 이후 수백년간의 인간 등정의 역사를 예감하는 것이었다. 이어 인간이 스스로 자연을 지배하는 방법론을 정립하는데 뉴턴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그것이 바로 서구 근대과학의 탄생이었다. 그를 위대하게 평가하는 것은 수학적으로 표시되는 물질로부터 비물리적인 의지를 제거시켰다는 점에 있다. 

뉴턴은 인간의 인식을 배제하려 하지 않고 인간의 명확한 인식을 가로 막는 우상들을 배제하려고 했다. 또한 그는 생명의 세계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이 세계 가운데 물질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물질을 기하학적 대상으로 치환했다. 그런 점에서 근대가 남긴 문제들이 단순히 뉴턴의 기계적인 세계관에서 연유한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자유와 영혼을 제외한 일체의 생명적인 것도 기계적인 것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보았지만, 뉴턴은 오직 경험적으로 탐구 가능한 사물의 운동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비극'과 '희극'의 세계관은 완성된 존재자만이 자유로운 세계에서 자유로운 존재자의 세계로, 아폴론적 세계로부터 디오니소스적 세계로, 파르메니데스의 정지된 세계로부터 헤라클레이토스의 운동하는 세계로, 플라톤의 이상적 세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적 세계로의 이행이라는 측면에서 고대 그리스적 세계관에 이미 축적되어 있던 두 세계관이자, 서양철학사의 태초부터 그 변화의 방향이 이미 새겨져 있던 예언이었다. 신의 권능을 믿는 대신 수학적 이성의 생각하는 힘을 믿는 세계, 미리 만들어진 '정답'을 거부하고 진정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로고스를 찾아가고 사회적으로 구성한 세계, 그것이 700만년 인류 역사상 초유의 사태를 매일 만들어가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기원이다.

그런데 근대의 과학혁명에서 산업혁명으로 이전되는 가장 중요한 계기이자 근대의 가장 중요한 동력은 자본의 축적이었다. 자본의 팽창과 과학기술의 산업화는 서로를 순환적으로 촉진시켰다. 자본은 국가권력과 결합하여 인간과 자연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실질적인 존재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자본을 비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세계관은 오늘날 주류 철학이 되었다. 그것은 일제강점 시대에 주입된 은둔과 순응, 체념을 은연중에 강요하는 노장사상에 대한 오늘날 일반적 해석처럼, 지배자들과 기득권층을 위한 철학이다. 한편 19세기 이후 서양의 물리적·경제적 힘에 제압당한 동양은 서양의 시간적 틀이 절대적인 것인양 그것에 끼워 맞춰 자신들의 역사를 구분하고 동시대를 규정했다. 

근대인은 하늘의 반짝이는 별이 나그네의 길을 안내하는 낭만적 세계와 푸른 숲과 어머니 자궁으로서의 지구와 직접 조우하는 자유로움을 잃어버린 대신에 풍요와 편리와 감각적 쾌락을 충분히 얻었다. 세계를 분해하고 횡단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게 되었지만, 결국 그들이 여전히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그것으로 볼 수 없는 따뜻하고 축축하고 다채로운 안식처가 아닐까. 결코 상품화시킬 수 없는, 그 무엇 말이다. 
현대 생태위기와 인간위기의 정체 

어디까지나 '근대'라는 시공간은 신의 비밀이 담긴 이 세계의 질서와 법칙을 인간이 살짝 엿보고 그 열매를 얻어낸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눈으로 그 세계를 관찰하고 그들의 언어와 기호로 운행의 법칙을 만들어 온 역사였다. 그런 점에서 강좌에서 어느 질문자가 표현한 '비극과 희극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세계관이 요청되고 있다. 하지만 그 거대한 역사의 물결을 관조하기 위해선 우선 당면한 이 땅의 문제들부터 찬찬히 들여다보고 낮은 곳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리라.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이곳엔 연역법으로 치장한 채 질문과 다른 목소리를 배제하는 가짜 법칙과 우상들이 상징권력을 휘두르며 환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근대의 깨우침이 세계를 요리하기 위해 우리에게 쥐어 준 '칼'인 연역법은 정치가 아닌 수학에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플라톤적 사유와 히틀러, 그리고 이 땅의 '가카'가 공유하는 것이 있다면 독재적 사유방식일 것이다. 존재자를 신비화시키고 현실 전체를 점령하려는 권력의지가 만들어 온 어두운 역사는 기도를 통한 구원의 믿음이 절대적이던 중세보다 더 참혹하다.

또한 현대 생태위기와 인간위기의 근본 원인을 데카르트나 뉴턴의 근대적 세계관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사상사적으로나 비겁한 일이다. 또한 그것은 산업화되고 금융화된 자본의 탐욕과 그것을 분유한 근대인의 욕망 구조를 화폐의 물신성처럼 누구나 알면서도 모두가 모르게 은폐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근대의 기원을 잘 이해한다고 해서 근대가 처한 전반적인 문명 위기의 해법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본을 위한 권력을 직시하고 자본의 이윤을 위해 소외된 우리들 대다수의 삶을 주체적으로 찾아가기 위해 이 철학 강좌는 계속될 것이다. 

'꼼수'와 '국익'이 아직도 먹히는 대한민국에서 한미FTA의 묻지마식 국회 통과를 다시 생각한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 우리를 체념하게 만드는 것들, 고민하고 번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온갖 억압과 유혹과 싸울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근대'에 살고 있다. 

* 다음 번 강의는 17일 저녁 7시 30분,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의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의심하라 - 근대적 자아의 탄생 : 데카르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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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의심하라-근대적 자아의 탄생: 데카르트
[우리 눈으로 본 서양근대철학사]<2>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의심하라-근대적 자아의 탄생: 데카르트
저녁에 듣는 철학 수업

지난 주 첫 시간에 이어 두 번째 강의가 11월 17일(목) 7시 30분 프레시안 강의실에서 열렸다. 40년 가까이 철학을 공부하고 오랫동안 대학에서 강의한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의 눈에도 강의실을 가득 메운 수강생들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의 생활인들이 철학사 공부를 하겠다고 늦은 저녁에 모여 있는 그 풍경 자체만으로도 왠지 훈훈하다.

누구는 저녁밥도 못 먹고 퇴근하자마자 땀나게 뛰어왔고, 다른 누구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졸음과 싸우기도 한다. 그렇지만 수강생들의 열의를 반영하듯 강의실에는 간간이 터지는 웃음 속에서도 2시간 동안 팽팽한 진지함이 감돈다. 강사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이해하는 과정과 철학자의 생각에 접근해서 내 생각을 담아내는 과정이 동시에 일어나야 하니 말이다. 

지난 첫 시간에는, 서구 지성사에서 플라톤주의를 타파하고 세계를 귀납적으로 인식하려는 지적 의지가 거대한 문명사적 변화를 태동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이데아라는 절대성과 완전성을 상정하여 실재와 본질을 신비화하고, 땅 위의 개체 사물들을 열등한 것으로 보았던 플라톤적 사유를 갈릴레이-베이컨-뉴턴으로 상징되는 근대인들이 어떻게 극복하려고 했는지 살펴보았다. 

참된 판단, 확실한 인식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한 맥락에 이어서 이번 두 번째 강의에서는 이병창 교수의 안내로, 베이컨과는 달리 연역적 방법을 통해 근대철학의 토대를 닦은 르네 데카르트(1596~1650)의 철학과 그 사상적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자 했다. 이 교수는 먼저 데카르트가 살았던 시대는 "종교와 자연과학의 대립이 부상하던 시대였으며", "귀족과 신흥 상업자본가 사이의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또한 종교 내부에서 구교와 신교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30년 전쟁'이 있던 "전환기의 시대"였다고 규정했다. 이처럼 전 유럽이 황폐화된 전쟁 속에서 데카르트도 병영생활을 체험했는데, 그는 이러한 대혼란과 대립의 시대를 겪으며 "견고하고 참된 판단", "확실하고 의심할 수 없는 인식"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하게 되었다.

홀로 생각하는 주체의 견고한 독립성에서 자신의 철학적 초석을 발견한 데카르트는 흔히 이원론적ㆍ합리론적ㆍ기계론적 사유를 정식화시킨 철학자로 얘기된다. 이병창 교수는 데카르트의 문제의식이 "관념과 물질의 대립"이라는 딜레마 위에서 "세계라는 인식 대상을 양화"시키고, 그것에 대한 "인식을 증명가능한 방법론으로 체계화"시키려 했던 것으로 파악한다. 데카르트는 "수학의 공리처럼 자명한 것 위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처럼 추론을 통해 인식"되는 명증한 학문, "통일과학으로서의 진리를 발견하는 철학"을 지향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모든 정신 활동 속에서 확실하고 참된 판단"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는데, 데카르트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정신을 지도하는 규칙들"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인식의 대상을 한정하려 했고, 직관과 연역으로만 탐구하려 했고, 모호한 것들을 만들어 내는 인간이 가진 감각의 기만을 제거해 나가려고 했다. 집중력과 치열함이 돋보이는 <방법서설>에서 데카르트는,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유명한 코기토 명제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라는 '진리'를 그는 철학의 제1원리로 삼았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것 같은 의심의 최종 단계"에 이르러서야, 그는 '생각하는 주체인 나'와 '지금 존재하고 있는 나'가 같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를 통해 데카르트는 세계와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려는 기나긴 역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는데, 이러한 방법은 과연 그가 희망했듯이 인식의 오류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병창 교수는 데카르트가 근대로 가는 길을 닦으면서 당시 산적한 지적 장벽을 허물었지만, 그 장벽의 잔해들은 "보다 더 많은 과제를 남기며 난제를 제기"했다고 말한다. "산수적 양과 기하학적 양을 통합하여 만물을 좌표 속에 자리 잡게" 만들면 세계는 내 손 안에 들어올 수 있을까? "연속적인 실재 세계를 불연속적으로 구분하고 미세하게 분절"하여 인식할 수 있고, '송과선(松果腺)'이라고 하는 교섭기관을 통해 "육체와 정신이 만날" 수 있다면, 물질과 영혼의 화해는 가능해지는가? 관념적 탐구와 정신의 훈육을 통해 "자유의지의 기초"를 밝힐 수 있는가? 후대의 계속되는 물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인식을 단단한 지평 위에 올려 놓으려 했던 데카르트의 뜻대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물질세계를 움직이는 진리(인과 법칙)를 찾아 그것을 학문으로 정립하기 위해 끝없이 고민하고 회의하는 인간이었던 데카르트는 근대적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대는 여전히 강력한 종교의 권위와 전제정치 속에서 눈치를 보며 과학연구의 발표를 중단할 수밖에 없던 시대였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인간을 번뇌에 빠지게 하는 정념과 욕망의 알레고리에서 벗어나 "정신이 대자연과 합일되는 경지를 추구"하기도 했다. 그는 잘 알기 위해 자유로워지고 싶었을까, 아니면 자유로워지기 위해 잘 알고 싶었을까?

데카르트적 인간과 자유의지 

이병창 교수에 따르면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좌표 속에 넣고 이해"하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너울거리는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고 "거기에 이끌려 살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데카르트가 생각한 자유는 물질세계에 대한 명석판명한 관념과 결합될 수 있는 "인간 정신의 합목적적인 활동으로서의 자유의지"였다. 오늘날 우리 근대인이 가진 관념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코기토' 명제에서 출발하는 이론적 난제들 못지않게, 데카르트는 여전히 중요한 실천적 난제이지만 삶 속에서 착종되어 있는 '개인'과 '자유'라는 문제도 전해 주었다. 

그런데 이병창 교수에 따르면, "자신의 삶 속에서 자유를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 데카르트적 삶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삶은 근대인의 삶을 해석하는 중요한 기초가 되기도 하리라. "감각과 이성 사이에서" 육체와 정신을 "동시에 자극하려고 하는 의지"를 보았기에 데카르트는 인식론에 관한 관념 탐구를 통해 "자유의지가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승인 된다고 해서 인간은 고깃덩어리의 상태로 전락하지 않는 존엄한 존재자로서 바로 설 수 있는가. 현실 속에서 실천적으로 계속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정념을 버리면 자유가 보인다고?  

데카르트는 정념을 제거하면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정념이 제거되면 어쩐지 더 이상 인간으로서 살아감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분노하지 않고서, 사랑하지 않고서 어찌 살아갈까. 며칠 전 국회에서 있었던 '날치기'를 접하면서, 물리적 폭력의 정당성을 독점하고 있는 한 줌도 안 될 상징권력의 횡포를 보면서,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여, 다시 생각하게 된다. 데카르트의 생각, 아니 믿음처럼, '명석판명하게 인식되는 것(만)이 모두 참'인 세상, 정념을 제거하여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세상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아니, 얼마나 재미없고 삭막하고 답답할까. 

수강생들의 질문이 날카롭고 시선이 다양할수록 강의가 더 재미있어지고 활력이 생기리라. 아직 10번이나 남은 근대철학사 강좌가 세계와 삶을 이해하는 눈을 확장시키고, 인문적으로 좀 더 잘 살기 위한 생각의 주춧돌, 다수 인민의 의지를 확장할 주춧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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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 자유의 화해는 가능한가
[우리 눈으로 본 서양근대철학사]<3> 신(神)과 민주주의 : 스피노자
자연과 자유의 화해는 가능한가
스피노자의 재발견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프레시안의 공동기획으로 마련된 <우리 눈으로 본 서양근대철학사>에서 세 번째로 만나볼 철학자는 스피노자(1632-1674)였다. 지난 11월 24일(목)에 있었던 제3강에서 조현진 숭실대 외래교수는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 주장들과 그 현대적 의미'라는 방대한 이야기를 불과 2시간 만에 쉽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수업은,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통합된 이 세계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시도하면서 독특한 세계관을 창조한 스피노자의 사상에 흥미와 호기심을 갖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오늘날 사회정치철학 분야에서 전복적이고 혁신적인 사유의 맹아를 품고 있는 철학자로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 사람은 단연 스피노자다. 스피노자는 현대철학에서 들뢰즈와 네그리 등에 의해 재발견된 철학자이기도 하지만, 근대 인식론 중심의 기존 철학사에서 가장 곡해된 철학자이기도 했다. 수강생의 질문에서도 나왔었지만 중고등학교 도덕윤리 시간에 잠깐 등장했던 스피노자는 흔히 범신론(汎神論)의 주창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현진 교수에 따르면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이러한 왜곡과 단순화는 수 백년 간 계속되어온 오해에 불과하다." 

제2강에서 살펴본 데카르트는 세계의 중심을 '생각하는 자아'로 놓고, 기계론적 세계관과 근대인식론의 문제를 제기했는데, 스피노자는 이를 데카르트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려했다. 조현진 교수가 강의 제목으로 선정한 물음도 바로 "자연과 자유의 화해는 가능한가"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스피노자의 철학에서는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분리에 대한 통합적 설명, 과학과 종교의 상호 인정, 법칙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통섭, 인식론과 정치철학의 화해가 가능하다. 스피노자는 신과 자연에 대해 합리적이고 통일적인 지평에서 설명 가능한 세계관을 창조해냈다는 것이다. 

유대인 공동체에서 파문된 철학자, 종교와 과학을 화해시키다

스피노자는 어려서부터 자신이 속한 유대인 공동체의 엄격한 규율과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순종적이지 않았다. 스피노자는 24살의 나이에 유대인 공동체에서 파문당한 후, "의례의 준수만을 게을리 했을 뿐인데도 '혐오스러운 실천과 그밖의 흉악무도함'이라는 죄목으로 자신을 고발했다"며 유대교 원로들을 비난했다. 

기존 종교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생각은 이후에 금서로 지정되었던 <신학정치론>에서도 이어지는데, 조현진 교수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신(神)을 초자연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생산하는 자연과 동일한 것으로 보려"고 했다. 이러한 면을 '신의 자연화'라고 정리할 수 있다면, 이것은 이른바 기독교의 '의인론적 신관'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의인론적 신관이란 "신이 인간처럼 지성과 의지뿐만 아니라 욕구와 정념 등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신관이 신을 인간중심적 사유의 특징인 '목적론' 속에 집어넣고, "신을 불완전하고 불합리한 존재로 만든다"고 보았기에 기꺼이 거부했다.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법칙을 깨뜨리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기적'을 행하는 신은 스피노자가 보기에 완전하지 않고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결코 자신이 무신론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스피노자가 믿어 의심치 않는 신은 "법칙에 입각해 무한히 많은 것들을 '생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이며, 그가 보기에 "자연이 인간의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다거나 오묘한 설계의 산물이라는 주장"은 합리적이지 않으며 오만하다. 

이런 면에서 스피노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대립하고 있는 과학과 종교, 서로 충돌하는 두 세계관에 대해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과학과 종교는 그 목적과 방법, 관심 대상을 달리하는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에 서로 마찰하거나 대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종교는 자연을 그 설명 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말고, "정의와 자비를 실천하는 도덕적 기능"에 집중하면 된다. 그래서 오늘날 "종교의 눈으로 과학을 읽으려고 하거나, 과학의 눈으로 종교를 읽으려는 시도"들(창조과학-지적설계론, 리처드 도킨스, 테리 이글턴 등)은 서로 다른 언어의 문법을 혼동한 것이며 전혀 무익하다. 스피노자의 생각을 이어 받은 S. J. 굴드의 설명도 과학과 종교는 서로 충돌할 이유가 없는 중첩되지 않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스피노자는 무신론자가 아니다. 다만 그는 기성종교를 신뢰하지 않고 "신의 뜻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철학적 종교"를 믿을 뿐이다. 조현진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분열과 반목을 부추기고 물질주의에 종속된 종교인들, 그들이야말로 신을 팔아먹고 사는 진짜 무신론자들이다." 

완전성을 거부한 철학자, 생태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다.

제1강에서 살펴봤던 '근대적인 것'의 공통점이 어떤 '완전하고 절대적인 것을 상정하는 특권적 존재론에 대한 비판'에 있었다면, 스피노자야말로 완전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조현진 교수가 말하는 스피노자의 인간의 완전성이란 "정신을 가진 존재로서 사유하는 힘과, 몸을 가진 존재로서 활동하는 힘"이다. 또한 불완전성도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 성립하는 것이지 그 자체로 불완전한 것은 없다." 이러한 생각이 가져올 결과는 참으로 혁신적이고 생산적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완전하며" 미리 주어진 정답이나 모델이 없기 때문에 사물들을 차별적으로 보고, 수직적으로 줄 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미리 제시된 본질이나 원형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사물들이 드러내는 그 자체의 "본성과 역량"에 의해서만 평가되는 세계. 그곳에서 인간은 더 이상 만물을 이용하고 지배할 권리를 가진 특권적 존재가 아니라, 들판의 쌀알과 사자와 쥐와 상호보완적이며 수평적인 지위를 가진 신의 현현(顯現)이 된다.

"자연이 인간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보는 발상"과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현대 생태주의에 새로운 대안 윤리를 제공했다. 그런데 조현진 교수에 따르면, "스피노자의 윤리학이 인간의 행복과 구원을 목표로 했으며, 이것은 인간에게만 좋은 것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사상이 생태학의 극단적 형태인 '생태중심주의'에 가깝다고 보기는 힘들다." 즉, 스피노자는 인간중심주의와 생태중심주의라는 양 극단을 모두 극복하고 "제3의 가능성을 생각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등급과 서열을 거부한 철학자, 인권의 정치를 말하다 

스피노자는 앞서 말한 대로 존재의 등급과 서열에 기반을 둔 완전성과 불완전성 개념을 거부한다. 조현진 교수는 "이런 주장은 자의적이고 규격화된 기준에 따라 존재하는 것을 '규정'하려는 추상적 사고방식을 이론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며, 그것의 "정치적 억압 기능에 대한 비판"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1992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멘추 여사는 동성애에 관해 기자의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신은 실수하지 않습니다. 모든 건 자연스러운 거에요." 

스피노자가 보기에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은 욕망과 정념에 대한 통제권이 없기 때문에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진 것처럼 상정하면 안 된다. 조현진 교수는, "유해한 정념(슬픔)의 효과를 줄이고, 더 강한 완전성을 주는 유익한 정념(기쁨)을 증대시켜서 우리의 힘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가"가 스피노자 윤리학의 과제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인간이 가진 "자기보존노력으로서의 코나투스(conatus)"인 욕망에 대해서도 '금욕주의적 모델'이 아니라, "욕망의 흐름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절제하는 제욕주의"를 제시한다. 그런데 그러한 것이 가능하려면 능히 그럴 만한 사회적 환경이 조성될 수 있는 정치적 해법이 요청된다. 그래서 <에티카>에서 스피노자가 말한 "윤리학의 완성은 정치학이다."

스피노자는 국가와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그 이후의 근대철학자들과 달리 '사회계약론'에 의지하여 국가의 안정성을 강조하지 않고, "불안정성과 항상적인 해체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 국가의 발생"을 설명한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국가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힘의 균형"이며, "국가의 안정성이라는 것도 개인들이 가진 힘의 연합이 가져오는 결과이지, 그 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도 "특정한 정치체제, 제도적이고 형식적인 규칙"이 아니라, "국가의 본질 그 자체로서 하나의 원리"라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군주정이든, 귀족정이든, 민주정이든 간에 국가의 정치체제는 언제나 "공통의 이해에 기반한 힘의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 하에서만 지속가능하다. 그래서 그가 보는 민주주의는 공동선의 실현을 위해 힘의 균형과 정치적 안정을 '일시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유동적인 질서일 뿐이다.

스피노자를 이해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되물을 수 있다. "아직도 국가의 안정, 국익, 자유민주주의적 정통성, 법질서 수호 같은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사탕발림과 호통에 속고, 쫄고 있습니까?"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그 모든 권위와 힘의 근거는 무엇인지 시민들이 늘 되물을 수 있어야 한다. 

"내게 철학할 자유를 달라" 

안경 렌즈 깎는 일로 생계를 이어 가면서도 스피노자는 "철학할 자유가 침해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철학교수직을 거절할 만큼 자신만의 삶의 원칙과 정신의 자유로운 경지를 중시했다. 위대한 철학자들의 공통점은 넓고 깊은 사유를 펼치면서도 자신의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말과 행동이 따로 돌아가거나 사상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온 몸으로 자신의 지적 성과물을 밀고 나갔었기에 그들의 어려운 책을 읽고 토론하는데 소중한 젊음의 시간을 쏟아도 덜 억울하리라. 

아, 그런데 스피노자만큼 철학책을 쉽게 쓴 사람도 흔치 않다. 물론 쉽게 읽힌다고 해서 저자의 생각을 잘 이해하고 소통하고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철학은 자기만족에 들떠서 남 앞에서 주워섬기는 지식, 실용적으로 써먹기에 급급한 지식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의 주인이 되어 생각해보는 생동하는 활동 그 자체이다. 그래서 철학은 어렵지만 재미있는 것이 아닐까! 

* 12월 1일에는 김성우 상지대 겸임교수가 제4강 '이성의 꿈을 완성하다-논리와 컴퓨터의 유토피아: 라이프니츠'를 강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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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 컴퓨터의 유토피아 : 라이프니츠
[우리 눈으로 본 서양근대철학사]<4> 이성의 꿈을 완성하다
논리와 컴퓨터의 유토피아 : 라이프니츠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한 <우리 눈으로 본 서양근대철학사> 강좌 4번째 수업에서는 김성우 상지대 교양학부 겸임교수가 라이프니츠의 철학에 대한 재해석의 가능성과 현대철학과의 접합 지점에 대해 강의했다. 스피노자 철학을 살펴봤던 지난 3강이 스피노자의 생일인 11월 24일에 있었는데, 이번 4강 수업일은 한국 언론 역사에서 치욕적인 날로 기록될 종편채널이 개국한 12월 1일이라는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의 인사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꿈꾸는 한국사회에 대한 지속적인 지배력 행사에 어떻게 맞서 싸울까. 필자는 라이프니츠의 철학에서 세계와 역사를 보는 어떤 새로운 관점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 하며 김성우 교수의 강의 속으로 빠져들었다. 

조화와 화해를 추구한 라이프니츠의 철학 

데카르트와 스피노자가 '철학할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하는 은둔과 고독의 철학자였다면,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는 궁정과 왕립학술원을 중심으로 사교적이며 세속적인 일에도 활발히 활동한 철학자였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정치고문, 외교관, 도서관장, 엔지니어, 수학자, 물리학자, 신학자로도 활동했다. 라이프니츠는 대표적인 저작을 많이 남기지 않았지만, 정치가들 및 지식인들과 주고받은 15,000여 통에 이르는 서신을 통해 오늘날 그의 사상을 재구성해볼 수 있다. 

김성우 교수는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조화와 화해의 철학'으로 요약한다. 라이프니츠의 말처럼 그의 철학은 "통일성에 의해서 보충된 다양성으로서의 조화"를 추구했다. 그는 당대의 변화와 지속되어 온 전통의 조화를 고민한 역사의식을 가진 철학자였고, 분열된 기독교의 소통과 화해, 유럽의 정치적인 통합, 그리고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기계론 철학의 사상적 조화를 시도했다. 더 나아가 유럽 너머의 지역에서도 조화를 통한 세계평화를 꿈꾸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예정된 조화", "보편적인 조화의 체계"는 어떻게 가능한가. 

홀로 존재하는 실체적 형상들, 모나드 

라이프니츠는 독일 관념론 철학의 출발점으로 그의 사상은 제자인 볼프에 의해 형이상학적 체계로 정립되어 독일 대학에서 정규 커리큘럼으로 정착되었다. 후대의 칸트는 로크를 모든 것을 감성화한 철학자로, 반대로 라이프니츠를 모든 것을 지성화한 철학자로 규정한다. 라이프니츠는 지각에 의한 인식 경험이라는 영국 경험론의 기초를 비판하며, 세계의 진정한 실체를 인간이 외부의 실체를 인식하는 방법에서 찾으려고 했는데, 나중에 헤겔은 이러한 그의 사상을 '지성의 형이상학'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말하는 지성(知性, 영어 understanding, 독일어 Verstand, 불어 entendement)은 라틴어 intellectus에서 온 말로 흔히 '오성(悟性)'으로 잘못 불리어지기도 하는데, 사물이나 언어를 형식논리를 통해 분석하는 이성을 말한다. 사변 이성보다 한 차원 낮은 단계의 이성을 가리킨다. 물론 헤겔은 라이프니츠의 그 '지성의 형이상학'에 대해 지성의 범주가 분리되고 사물들 사이의 관계성이 제한되며, 절대적 통일은 지양되어 개별자들의 상호매개는 신에 의해서만 가능해진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라이프니츠가 독일 관념론에서 맨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그의 철학이 인식 주관 외부에 있는 실체를 주체의 관점에서 정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주체는 자체 안에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역동적이고 자발적이며 자유로운 존재이다. 이런 식으로 그는 기계론적으로 완벽하게 틀 짜여진 세계상을 구성하면서도 그 배후에 있는 목적론적인 생명의 세계를 함께 들여다보려고 했다.  


김성우 교수는 라이프니츠가 "유일한 보편 정신, 스피노자 식의 유일실체론, 홉스식의 원자론이 아니라," 물리적이지 않은 "형이상학적인 하나의 점으로서, 일자, 하나, 개별 영혼들"을 실체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라이프니츠하면 떠오르는 '모나드(monad)'라는 것이다. 이 모나드는 스콜라 철학의 전통에 들어 있던 실체적 형상이라는 목적론적 개념을 부활시킨 것인데, 스피노자 철학에서 거대한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것이 되어버린 개별자의 정체성 문제를 극복하고, 데카르트가 던져 놓은 문제인 마음과 몸의 상호작용이라는 문제점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연결시키려는 이성의 꿈 

헤겔, 하이데거, 러셀, 들뢰즈와 같은 대가들과 마찬가지로 라이프니츠는 서구 철학사와 지성사를 학문의 대상으로 삼아 기존의 표준화된 해석을 거부하여 '근대라는 세계의 기초공사'를 담당했다. 그는 "사유를 형식화하고 세계의 운동 원리에 대한 합리적 재구성을 시도"했는데, 스피노자와 달리 우주의 본성에 대한 설명 속에서 인간이 향유하는 전통적인 형태의 자유의지를 옹호했다. 또한 유일한 실체와 동일한 스피노자의 신(神) 개념과 달리, 라이프니츠의 신은 모든 가능한 세계들 중에서 최선의 것을 염두에 두고, 가능성들 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는 자유로운 행위자였다. 

또한 미분과 적분의 원리를 발견하고 컴퓨터를 만들 때 밑바닥에 깔려 있는 디지털 언어의 밑그림을 제공했던 라이프니츠는 영미 분석철학과 기호논리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사유의 보편적인 형식으로서 논리학은 모든 과학에 앞서는데", 보편적인 기호법을 기반으로 하는 보편 언어에 대한 그의 생각은 후대에 "러셀을 필두로 하는 현대의 기호논리학과 이상 언어 연구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앞서 말한 라이프니츠의 '지성의 형이상학'이 이상적인 형식 논리학에서부터 나오고, "이러한 논리학은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기호법, 수학, 보편학문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분석적 사유는 논리 계산으로 이어졌으며 오늘날 컴퓨터의 기초가 된 논리적인 이상 언어의 바탕이 되었다. 

김성우 교수는 강의 제목을 '이성의 꿈을 완성하다, 논리와 컴퓨터의 유토피아'로 잡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모든 판단은 분석판단" 즉, 모든 판단 작용은 주어를 분석하면 그 안에 있던 술어가 도출되는 분석판단이며, 모든 문제는 분석적인 계산으로 해결할 수 있다. "계산하면 답이 나오게 되어 있다는 이러한 근대 '이성의 꿈'이 실현된 것이 컴퓨터라는 것"이다. 

한편 러셀은 라이프니츠에 대해 "논리학을 형이상학을 여는 열쇠로 사용한 철학자의 가장 좋은 예"라고 말했는데, 다른 반대편에는 "형이상학을 논리학의 근원으로 보는 하이데거 식의 해석"이 있다. 그는 근대성의 해체를 위해 논리-진리-주체라는 전통 형이상학의 의미들을 해체하고 그것을 설명할 새로운 언어로서, 라이프니츠의 계산적인 언어가 아니라, "기존 언어를 비틀고 뒤트는 해체 실험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드러내는 시적 언어"를 활용한다.


김성우 교수는 "포스트모던 철학을 대표하는 들뢰즈도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을 자신의 노마드(nomad) 사상으로 변형시켰다"고 말한다. 즉, "들뢰즈가 그의 존재론에서 말하는 접힘과 펼침은 새로운 체계의 살아있는 기계를 구상한 라이프니츠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들뢰즈가 말한 바로크 예술의 근본 특징으로 볼 수 있는 그러한 '포개짐과 펼쳐짐'은 '상이하게 접혀 있으며 얼마간 포개진' 기계들을 부품들로 가지는 무한한 기계"라는 라이프니츠 식의 모델인 것이다. 

근대적 사고의 원형을 통해 탈근대를 이해하기 

김성우 교수는 '라이프니츠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전통과 근대의 조화를 추구한 그에게서 근대적 사유의 한계가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강의를 마치며 수강생들에게 앞으로 근현대 서양철학을 공부할 때 계속 해서 고민할 수 있는 근본 질문들을 제시했다. 존재, 신, 자아, 논리라는 각각의 관점에서 즉, '주체'의 관점에서 외부의 '실체'를 의문시하고 문제화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사유를 수학적으로 구성하고 인식하려 했던 근대 계몽주의의 계산적 이성은 이른바 '도구적 합리성'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주체'와 '구조'를 함께 사고하는 방식, 또는 '힘(내용)'과 '형식'을 함께 바라보는 관점이 여전히 근대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들뢰즈 같은 현대철학의 존재론은 라이프니츠 철학에서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는가? 모든 것을 분할하여 이해하는 것에 익숙한 오늘날, 전체를 보려는 사고인 '변증법적 사유'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난해하고 머리 아픈 질문들이지만, 김교수의 말처럼 철학적 사고의 훈련은 철학사를 재구성하여 읽으려는 노력에서 시작할 것이다. 끝으로 김 교수는 "실존하는 것이 철학함이다"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전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어떻게 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데 철학 공부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기초 공부를 통해 사상사의 흐름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제4강은 어려운 개념어가 난무하고 근현대철학사를 종횡무진 누비는 강의로 인해 철학사에 대한 지식이 빈약한 수강생들은 다른 강의에 비해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라이프니츠를 통해 근대의 영광과 한계를 동시에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수강생들은 미처 다 이해하지 못한 30쪽의 두꺼운 강의자료와 라이프니츠의 주저인『모나드론Monadologia』의 요약본을 통해 그가 이해했고, 구성하려 했던 근대세계에 보다 깊이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5강은 12월 8일(목) 한길석 군산대 외래교수가 과수 조종 매뉴얼 - 홉스의 리바이어던 : 기계론의 정치학을 주제로 강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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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수 조종 매뉴얼 : 홉스의 <리바이어던>
[우리 눈으로 본 서양근대철학사]<5> 기계론의 정치학
괴수 조종 매뉴얼 : 홉스의 <리바이어던>
홉스가 되묻는다, 오늘날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한 주례강좌 <우리 눈으로 본 서양근대철학사>는 이제 중반부에 접어들었고, 수강생들도 서로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제5강은 이번 강사진 중 가장 젊고, '핫한' 감각을 지닌 한길석 군산대 외래교수의 진행으로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의 『리바이어던』에 대해 살펴봤다. 그는 '리바이어던의 세계상'을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드라마, 애니메이션, TV광고 등을 활용해 수강생들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홉스는 사회계약론을 언급할 때 맨 처음 등장하는 철학자이지만 한국에서 그 자체로 진지하게 연구되지는 않는 것 같다. 또한 홉스는 순자의 성악설에 비견될 만한 인성론을 전개한 서양의 철학자로 오해 받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날 다시 홉스를 읽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근대 자유주의 국가의 탄생은 이렇다'라는 홉스의 주장, 아니 믿음은 다시 이렇게 되묻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 우리에게 '국가'란, 그 '상징권력'의 힘이란, 공권력의 이름으로 독점되는 '폭력'이란, 국가가 호위하는 '자본의 운동'이란, 대체 무엇인가?

리바이어던이라는 괴수 로봇에 권리를 위임하라 

홉스가 구약성서 속의 바다 괴물인 '리바이어던'을 국가에 비유한 이 책의 원제는 『리바이어던, 혹은 교회 및 세속적 공동체의 질료와 형상 및 권력(Leviathan, or The Matter, Forme and Power of a Common-Wealth Ecclesiastical and Civil, 1651)』이다. 이 책은 인간, 국가, 기독교 국가, 어둠의 나라의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 홉스는 세속 공동체의 최고 형태인 국가를 '코먼웰스(commonwealth)'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civitas나 state가 아니라 "자기보존과 권리보호를 위한 복지공동체"로서의 이러한 국가 개념은, '부(富, wealth)'를 지속적으로 보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안전공동체 시스템을 넘어서서 이미 자동축적의 단계인 '자본'의 형태와 그것의 한 극단인 전체주의를 예감하고 있다. 

홉스가 "인간이 국가를 필요로 하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 가상으로 설정한"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한정된 재화를 가지기 위해 서로를 '적'으로 간주한다. 홉스는 이러한 상태에 대해 "인간은 그들 모두를 위압하는 공통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전쟁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이 전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라고 말한다. 이제 홉스는 자연법에 따라 '사회계약론'을 구성한다. 가혹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합리적인 인간들은 "자기보존의 욕구를 평화롭게 성취하기 위한 평화를 추구하고,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는 계약을 맺게 되고, 계약을 맺은 다음에는 그것을 준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이익이 보존되기 위해 맺은 사회계약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힘을 지닌 기구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복지공동체(Commonwealth)로서의 국가"인 것이다. 
▲ 리바이어던

'인간은 자기가 만든 것만 잘 알 수 있다'는 경험론자 홉스의 신념과 오직 '실용'을 위한 사고실험으로 만들어진 이러한 '인공적 신', '지상의 신'인 '리바이어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정한 출력이 나올 수 있어야 하는" 메카니즘이다. 이러한 기계론에 근거하여 탄생한 홉스의 '리바이어던'이라는 국가 체제를 한길석 교수는 "기계 괴수"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홉스가 구상한 근대 국가의 계약 모델과 부르주아 시민계급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법이 담긴 이 책은 곧, "괴수 조종 매뉴얼"이 된다. 

『리바이어던』초판 표지에 실린 그림을 보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자이크처럼 결집해서 거대한 지배자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가 구현된다면, 홉스의 바람처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 받고, 권리와 자유를 누리며 평화롭고 복된 삶을 살 수 있을까. 아니면 폭군 아래에서 사는 것보다 더 억압적이고 부자유스럽지만, 그것을 잘 인식하지도 못한 체, 우리를 현혹시키는 '새로운 상품을 소비하는 쾌락'에 하루의 피로를 잊으며 살게 될까. 그 결과가 그 양자 사이에 어디쯤 있는지는 지난 수백 년의 인류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홉스의 두 얼굴 사이에 숨은 함정 

홉스는 식민지 개척으로 인해 금이 대량으로 유입된 대항해시대 이후 영국에서 절대왕권과 의회가 격렬히 충돌하던 혼란기를 살았다. 왕의 암살, 처형, 내전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이 시기에 홉스는 평화와 안정을 희구하며 자신의 정치 이론을 제시했다. 크롬웰의 공화정을 피해 망명지에서 완성한 『리바이어던』은 훗날 왕이 되는 찰스2세에게 바쳐졌다. 한길석 교수에 따르면 홉스는 이 책에서 "시민의 안전을 위해 강력한 주권자의 절대적 권력을 정당화"했지만, 찰스2세는 "군주의 절대적 권력은 오직 시민의 보호를 목표로 할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절대 왕정의 지지자'라는 측면과 더불어 홉스는 '근대 자유주의 이론의 창시자'라는 얼굴도 갖고 있다. 그는 "자기보존의 권리라는 시민의 자연권을 옹호하고 자유, 이익,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리바이어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국가, 혹은 그것의 의인화로서의 주권자(군주)의 절대적 권리를 승인했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덕을 함양시키는 과정이 바로 '정치'라는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적 정치관을 던져 버린 근대는 정치와 윤리가 분리된 세계였다. 사회계약론에 기초한 근대국가도 '이익' 중심의 '인간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듀라셀 건전지 광고' 속의 귀여운 토끼들은 각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권리를 주장하지만 결국 하나의 토끼에서 분유한 똑같은 복제물들일 뿐이며, 그것들이 연합하여 만들어내는 거대한 형상도 동일자들의 합체일 뿐이다.

홉스가 설정한 개인들은 이기심을 그 핵심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협력을 하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한 연대를 할 뿐이다. 그들은 서로를 대체할 수 있는 부속품일 뿐이며, 그들의 유일한 꿈은 스스로 '최고의 상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세계상 안에서는 '나와 너의 관계'가 사라지고, '나와 나의 투쟁'만이 남는다. 나 아닌 것들을 모두 '나'로 만들어 버리는 탐욕이 결국, 승리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고 하지 마라, 이익이 되는 것이 곧 옳은 것이다.

국가가 개인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 위험 사회가 증폭시킨 그러한 존재방식 속에서, 전체의 이익이 늘어나면 나의 이익도 함께 늘어날 것이라는 환상 속에서, 국익이 나와 너를 포함하는 우리 모두의 이익이라는 착각 속에서, 우리는 결국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인민의 '저항권'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홉스의 바람과 상상으로 만들어진 '리바이어던' 모델은 오늘날의 근대 세계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지만, 이제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그 '이념' 속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실제적이고 필연적인 힘을 갖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홉스의 국가 모델과 '기계의 정치'를 넘어 '인간의 정치'로

한길석 교수는 "이러한 홉스의 국가 모델을 가장 극단으로 밀어붙인 '결과'가 바로 20세기 전반의 '제국주의-전쟁-전체주의-전쟁'으로 이어지는 근대 최대의 절정 또는 최악으로서의 파국"이었다고 말한다.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홉스식 모델을 비판했듯이, "자본 축적의 무제한적 과정은, 증가하는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무제한적 [강제] 권력을 가진 정치 구조"를 요청하게 되고, 그것이 바로 『리바이어던』출간 3세기가 되기도 전에 실현된 전체주의 정부라는 것이다. 

그 근대 국가 모델의 '조종 매뉴얼'은 자본 혹은 자본의 변호인으로서 국가에 의한 모든 것의 '규격화'와 '상품화'로 요약된다. 그 존재양식은 "인간이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방식, 즉 문화적 가치처럼 상품화할 수 없는 것 까지도 모조리 상품화"한다. 그것이 "농촌, 노동자, 식민지, 인간의 일상과 욕망까지" 먹어 치우고 "잠식되지 않은 부의 신천지로 발견한 곳은 결국 인간의 문화였으며, 그것을 시장화하는 것이 인간을 최종 식민화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마침내, 그것은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것을 욕망하는 진짜 '괴물'이 되는데, 여기서 '그것(It)'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 해명하는 것이 '근대의 그늘'을 이해하고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열쇠가 될 것이다. 미래를 암울하게 그린 요즘 SF영화 속에서는 생명의 약동성, 자유의지, 기억, 의식, 양심, 시간 등 인간에게 휴머니티를 구성할 수 있게 해주는 그 어떤 것도 이제 남아 있지 않다. 

한길석 교수는 "권리 보호 기계"로서의 홉스의 국가관은 결국 "'너' 없는 정치의 파국"을 몰고 왔다고 말한다. 동일자로서의 '나'와 다른 모든 타자로서의 '너'를 인정하지 않는 '단수(單數)적 관점'이 이 모든 파국을 낳게 했다면, '복수(複數)적 관점'의 회복을 통해 우리는 상호이해와 인정을 가능케 하는 '상호주관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수강생의 질문에 대해 한 교수는 "그것은 상대를 나와 같은 욕구를 가진 사물,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수단"으로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하고 충돌하더라도 협의하고 양보하면 갈등 해소가 가능한 대화의 상대자"로 만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길석 교수는 끝으로 이러한 '기계의 정치'를 넘어, "인간다운 삶의 회복을 윙한 정치"를 벌여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국가 자체를 지금 당장 없앨 수도 없습니다. 다만 국가를 최고의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보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고, 전체의 이름으로 대다수를 희생시키는 정치를 떨쳐내야 합니다. 새로운 정치는 당장의 이익이 덜 보이더라도 약자를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덧셈만 있는 근대의 계산법'으로는 계산이 안 되는, 이익으로 환산이 안 되는 저마다의 욕망들의 충돌에 관심을 기울이는 정치여야 합니다."

* 15일에는 박영균 건국대 HK교수가 '6강 - 시민정부와 재산권 - 자유주의 정치학 : 로크 '를 강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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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의 시민정부와 재산권
[우리 눈으로 본 서양근대철학사]<6> 자유주의 정치학
로크의 시민정부와 재산권
지난 15일에는 서양근대철학사 제6강으로 박영균 건국대 HK교수의 존 로크에 대한 강연이 있었다.

로크,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한 주례강좌 <우리 눈으로 본 서양근대철학사>의 제6강에서는 박영균 건국대 HK교수의 강의로 계몽철학 및 경험론철학의 원조로 일컬어지는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의 정치사상에 대해 주로 살펴보았다. 박영균 교수에 따르면 "로크의 시민정부론을 읽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로크를 '보수적'으로 읽는데 익숙해서 '혁명적'으로 읽지는 않는다." 이러한 로크에 대한 자유주의적 독해는 "대표를 선출하여 통치를 위임하는 대의제적 민주주의만을 민주주의로" 간주하고, 인간의 (경제적) 자유를 신장하기 위해 국가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태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근대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주권재민의 원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도출하는데, 그들에게 있어 '국가'란 자유로운 이익 추구 활동을 보장하고 사유재산을 지속적으로 보호하는 장치로서의 '필요악'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와 '정당정치의 위기'를 말하면서 사람들은 여전히 로크에게서 새로운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 인간의 일생보다 "사회-정치-경제 시스템의 수명은 훨씬 길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의 체제를 당연하고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다. 박영균 교수는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경험을 진리로 간주하는 소박한 유물론자들이기 때문에 역사가 만들어낸 '시대적 간극'을 망각하기 쉽고, 현재의 가치와 욕망, 삶의 양식이 당연한 것이라고 느낀다"고 말한다.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으로서의 역사'이므로 현재 우리의 삶의 방식이 이후 세월이 흘러 어떻게 변화될지 아무도 모르듯이, 320여 년 전의 로크도 지금의 사회가 이런 식으로 흘러 갈 것이라고 아마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명예혁명의 철학자' 로크를 새롭게 읽기 위해서는 "우선 '근대 부르주아 혁명'의 배경에서 당시 로크의 혁명적인 면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그런데 로크가 그랬던 것처럼 그 혁명적인 사유를 당대에서 벼리기 위해서는 강의 말미에 박 교수는 전복적인 상상력을 주문했다. 오늘날 너무나 진부해져버린 민주주의의 현실과 한계를 직시하고, 견고하게 굳어져버린 국가 이데올로기의 틀을 돌파하고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기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새롭게 탄생한 자본주의적 인간, 사회계약론을 구상하다

로크의 정치철학이 집중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정부에 관한 두 가지 논고(Two Treaties of Goverment)』(한국에서는 『통치론』으로 번역)가 출판된 것은 영국 명예혁명 이후인 1689년이었지만, 그가 이 책을 저술한 것은 1683년이었다. 로크는 명예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혁명 이전에 혁명을 선동하고 촉구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이다. 그는 영국 정부가 유럽 전역에 지명 수배한 84명의 반역자들 중 한 사람이기도 했다. 로크의 정치철학은 혁명의 기운이 팽배하고 "산업혁명을 목전에 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승리가 이미 명백해지던 시대 속에서 사회-경제적 권력을 장악한 부르주아의 정치 이념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성장하던 부르주아적 세계는 더 이상 공동체라는 공간과 경작을 통해 "토지에 긴박되어 있는 개체들"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 세계의 새로운 주인은 "자유롭게 대지를 가로지르며 자신의 욕망에 따라 스스로 행동하며, 더 이상 '경제외적 강제력'이 작동하지 않는 인격적으로 자유로운 자들이었다." 이제 안전의 지속과 부를 향한 인간의 욕망은 탐욕스러운 '사적 소유의 욕망'이 되었으며, 생산활동은 '경제적 규칙'을 따라 이루어졌다. 신분 질서를 중심으로 '인신적 구속'이 강하던 봉건적 공동체와 달리 새롭게 출현한 자본주의는 "동등한 개체들이 사적이고 물질적인 유인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였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이전 사회에 비해 훨씬 더 높은 '해체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해체의 위험성'에 주목한 사람이 홉스라면, '경제적 유인동기'에 주목한 사람이 로크였다. 이들의 '근대 사회계약론'이라는 정치철학의 패러다임이 가진 특징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기인한다. 그 새로운 정치 전략은 더 이상 고대 그리스나 로마처럼 "윤리적 덕성이나 도덕적 가치, 인간적인 유대에 호소하지 않는다." '계약'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철저하게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로서 '국가와 정치'는 이제 거래 행위의 산물로서 간주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이성'은 자신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해 '계산'을 통해 '자연상태'가 아닌 '사회상태'를 지향하게 될 것인데 이것이 바로 근대 합리성의 요체이다. 자본주의적 인간에게 '이성'이란, '옳음'과 같은 진리에 대한 인식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소유권을 확보하고 확대하는 데 보다 '좋음'을 찾는 계산적인 인식능력인 것이다. 그리고 이 이성적 능력이란, 식민지역 원주민들의 자연권과 삶의 양식은 가볍게 무시하고 그들을 학살하거나 그들의 소유물을 착취하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 '능력'이기도 하다. 자신의 '노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고 사회 전체의 부를 증대했다면 '그 땅과 그 땅 위의 모든 것은 모두 네 것이니라'라는 암묵적 합의가 이제 새로운 '진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소유권의 정당화'가 로크 통치론의 핵심이라면, 사회계약론은 근대 정치구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선(善)과 공공성을 위해 정치가 작동하지 않고 최대의 효율성을 내기 위한 합리성으로만 작동되는 정치, 정치 사회에 경제 문제를 삽입하여 경제 운용을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정치, '정치에 장착된 경제'를 넘어 '경제를 위한 정치'가 이루어지게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구성하는 개체가 백성(subject) 또는 신민이었다면, 로크의 국가를 구성하는 것은 자유적 주체로서의 시민(citizen) 또는 공민이었다. 또한 홉스에게서 양도된 다수의 권리는 초월성(군주)에 양도되었기 때문에 그 다수는 계약의 당사자가 될 수 없었지만, 로크는 주권자들의 자연적 권리를 "계약을 통해 위임 받아 대표성(대의제)으로 '외재화'했다." 또한 "로크주의자들은 홉스와 달리 '전쟁상태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공통의 재판관'이 없는 '불편함'을 정치사회로 이행하는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민주 정부 설립의 목적을 밝히기 위한 로크의 논리는 궁극적으로 배타적인 '재산권의 보존'을 향해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는 사적 이익의 추구와 공동체적 규제가 계속 충돌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 사회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사익과 공익, 사사로운 것(res privata)과 공공적인 것(res publica) 사이의 긴장과 충돌"이 상존한다. 그런데 이러한 대립을 "단순히 공/사 간의 갈등으로만 다룬다면 우리는 홉스와 로크가 당면했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갈등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했었기 때문인데, 자본주의 사회가 제기하는 문제의 독특함은 이런 공/사 간의 갈등이 "처음으로 사회 전체 즉,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경제적이고 사적인 이해관계 속에서 일반화되었다"는 점에 있다. 소유권에 근거하여 구성된 정치사회는 '근대'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배경'인 것이다. 

욕망에 봉사하면서 욕망을 조절하는 이성적 국가는 가능한가

지난 강의에서 살펴봤듯이 홉스는 국가를 가리키는 말로 '코먼웰스(commonwealth)'를 사용하는 반면 로크는 이 용어를 사용하는 데 단서를 달았다. 홉스의 '코먼웰스'가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위해 조직된 국가로서 사적 주권이나 이해보다 '공공적 이해와 공공적 질서'를 보다 중시한다면, 로크의 '키비타스'적 의미가 강조된 국가는 "'공공적인 것'이 '사사로운 것'을 압도할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공적 이성'을 지닌 자로서의 시민의 자율성에 우선권"이 있는 정치공동체였다. 

이처럼 로크는 홉스와 달리 인간의 욕망이 충분히 인간의 이성에 의해 합리적으로 '조절'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점에서 그를 홉스를 뛰어 넘은 근대 부르주아의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대표자'로 만들었다. 물론 로크는 다수결을 통한 대의제 민주주의 결정 방식을 '다수의 지배'라는 형식 속에서 처리하면서, 누군가의 자연권과 소수자의 권리를 억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 놓았다. 그래서 그는 "개인의 소유권에 대한 보호와 인류 보존의 의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로크는 이념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사적 소유권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와 공공의 부와 선을 우선시하는 '공화주의' 사이를 방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그의 정치철학을 특별히 모순적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로크의 이론에서 인민의 주권을 대표하는 최고의 권력인 "'입법부'에 의해 이 모든 모순은 결국 '소유권'의 혼란을 법적으로 막고 그것을 보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로크의 문제의식이 지닌 특성과 한계가 뚜렷이 드러난다. 그의 정치철학은 "인간의 욕망에 기초하여 사회 전체를 정치적으로 통합"하려는 근대적 기획인 것이다. 레오 스트라우스에 따르면, 로크의 정치철학은 기본적으로 이성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지만 그 사회는 감성이 배제된 사회가 아니라, "가장 강력하고 보편적인 욕망에 봉사하고 그 욕망을 인도"하는 길을 모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로크는 '재산권(소유권)의 보존에 근거한 부의 축적이 사회 전체의 부를 증가시킨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또한 부의 '불평등'에 대해서도 '전체 다수의 최대 쾌락'이라는 공리주의적 논리를 암시하면서 "근면한 노동이 사회 전체의 부를 키워 더 많은 사람들의 부를 만들어낸다며 그것을 정당화"했다. 그런데 로크의 믿음처럼 인간의 이성은 순전히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공적 이성'의 성격을 통해 사회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도 있는가? 만일 홉스가 지적한 것처럼 "'자기보존의 욕망'이 공공복리에 대한 이해보다 더 커서 사회 전체의 해를 무릅쓰고라도 사적 이익을 취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가 대의제의 형식이 인정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직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로크는 이 문제에 대해서 명쾌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의 문제의식은 어디까지나 사유 재산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시민정부의 정치적 형태를 구성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공화주의는 자유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네그리는 근대적 주권 개념의 두 가지 노선 -홉스적 모델과 로크적 모델- 이 서구 정치학의 작동에서 전자는 공화주의로, 후자는 자유주의 전통으로 발전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근대 사회계약론의 귀결인 "루소의 민주주의 공화제도 결국 '총체성의 대표제'로 귀결된 것"은 홉스적인 모델을 닮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영균 교수는 이에 더해, "홉스는 공화주의자는 아니지만 공화주의자 루소의 전신으로 어쩌면 자유주의자 로크의 '외설적 이면'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박 교수가 지젝의 용어를 빌려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주의 혹은 공화주의' 사이의 어떤 정치적 형식을 외피로 한 현대 자본주의가 도달한 것은 결국 '1 대 99'의 사회라는 점이다. 

"미국의 월가 시위와 유럽 젊은이들의 시위는 단순히 빈부격차의 확대나 높은 실업률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저항'은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통치 권력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다. 이제 사람들은 기존의 여당과 야당을 믿지 않는다. "그들이 지목하는 것은 '대의제' 그 자체이다." 박영균 교수는 "현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것은, 주권자의 의지와 판단을 대표에게 위임하는 대의제가 민주주의를 배신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대의제에 의해 선출된 국가의 지배층이 최소한의 공공성마저 포기했기 때문이다. 명실상부하게 '자본의 시녀'가 된 서구의 국가에서는 이제 공화주의적 전통도 모두 무너져 내렸고, 사민주의 전통을 가진 유럽의 국가들조차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렇다면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는 "대의제라는 자유주의 정치체제 자체의 위기", 아니 그것 배후에 있는 소유권을 위해 도출된 자유가 가진 한계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로크는 "공공성의 훼손과 사적 소유의 이기성이 가지는 탐욕의 함정"을 간과했다. 신자유주의가 국가를 자본에 완전하게 종속시키면서 사회적 시민권의 제약, 대의제 시스템의 불안정화, 정당체제로의 이탈을 유발한 것이다. 이 첨단 자본주의의 현장에서 낡은 공화주의의 이념은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다. 

결국 박 교수에 따르면 오늘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보완재' 또는 '대리재'로서 회자되는 "'공화주의'도 자유주의라는 동전의 다른 한 면이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체제의 질주를 가로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박영균 교수는 이러한 비판적 인식의 배경을 이렇게 요약했다. "문제는 단순히 정치의 장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근대의 소유권 자체가 파산하면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로크는 폭압적 정부에 대항하는 인민의 저항권을 말하면서도, 그것의 가장 중요한 근거로 "인민의 재산에 대한 침해"를 들고 있다. 박 교수는 "오늘날의 시점에서 로크의 정치철학이 제안하는 국가란, 오직 부와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소유 욕망을 따라 인류에게 공동으로 부여된 자연권조차 넘어서 향락의 길을 걷고 있는 '외설적 아버지'가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마치 새로운 기대주인 것처럼 담론을 만들어내는 공화주의도 "탐욕스러운 '부의 욕망'만을 질주하는 '외설적인 아버지'의 추한 모습을 감추는 또 다른 이면"이라는 생각은 공화주의 담론에서 아주 논쟁적인 물음이다.

결론적으로 박영균 교수는 탁월한 근대의 합리적 정신이자 근대 부르주아의 대변자인 "'로크의 시민정부론'에서 오늘날의 정치-경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로크를 새롭게 읽기 위해서는 먼저 그를 자유주의의 화신이자 자유지상주의자, 신자유주의의 옹호자로 읽을 때 나타날 편협함을 제거해야 한다. 

웰컴 투 '신자유주의적 세계'!?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두 가지 인식이 결합한 '근대의 꿈'은 테크노피아(기술 유토피아)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꿈은 끊임없이 결핍감을 자극하며 여기 와서 소비하며 이 풍요를 함께 누리자고 손짓한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누군가는 공공성이 사라지고 전 세계 극소수의 자본가를 위해 대다수 가지지 못한 자의 삶이 불행해진다고 염려하지만, 어느 수강생의 질문처럼 매달 받는 월급으로 그럭저럭 나름의 행복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생활인들은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도 살아가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지도 모른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에 포함된 우리의 희망과 기대가 무너졌을 때, 곧 국가와 정부가 자본에 투항하여 부끄러움 없이 백기를 흔드는 것을 보았을 때, 그 희망은 반대편에 서 있던 '이명박'이라는 이름에 집약되어 있는 가치로 퇴행했다. "가장 큰 표차로 이겼지만 실질 득표울은 가장 적었다"는 점에서 그 선거는 대의제 자체가 가진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제는 '악몽'이 된 '고소영'이 다시 '유령'처럼 '노란 손수건'을 불러낸다. 이런 얘기들이 이제 와서 다 쓸데없는 뒷담화일지라도,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반드시 겪어야 하는 역사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가 생산하는 식량의 양은 전체 인류 60억 명의 두 배에 이르는 120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60억명 중 절반이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가며, 그 중 12억 명이 하루 1달러 이하로 기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의 재산은 제3세계 45개 국가의 총생산량에 맞먹으며, 오늘날 토지와 금융자산을 통한 부의 축적은 대부분 탈법과 불법 속에서 행해지는데도 심지어 국가가 이를 보장하며, 설혹 파탄의 위기에서도 국가는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적 자본'을 투입해 대자본을 다시 살립니다. 이것이 애초에 로크가 가정했던 '하느님이 인간에게 공유물로 준 자연권'으로서의 소유권이며, 근면한 노동과 직업적 소명의식으로 무장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입니까?"

3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강의와 질의응답이 이어지자 박영균 교수의 얼굴에는 운동장을 몇 바퀴 뛴 사람처럼 땀이 흥건했다. 처음에는 시니컬해보이는 강사였지만, 그의 진지한 열정은 수강생들의 마음을 열었고, 강사의 논조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수강생들의 숨어 있던 문제의식을 자극하는 이번 강의는 논쟁적이고 몰입도가 높았다. 서양의 근대철학사를 살펴보는 이 강좌가 진행될수록 필자는 점점 오늘날의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선명해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앞으로도 독자분들의 많은 성원과 질책을 바라며 다음 강좌를 기대해본다.

다음 강의는 7강 건전한 지성은 회의로 끝난다 - 개인주의 인식론 : 흄 - 12월 22일 남기호 (연세대 외래교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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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지성은 회의(懷疑)로 끝난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근대철학사]<7> 개인주의 인식론 - 흄

건전한 지성은 회의(懷疑)로 끝난다

"궤변과 망상 외에 아무 것도 없는 그런 책은 불 속에 던져 버려라!"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한 주례강좌 <우리 눈으로 본 서양근대철학사>에서는 '근대'의 지형도를 여러 철학자의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베이컨과 뉴턴에서 시작한 '근대적인 것에 대한 탐사 여행'은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의 대륙합리론을 거쳐 이제 영국경험론 철학의 말미에 이르렀다. 지난 시간에는 홉스와 로크의 사회계약론을 중심으로 한 근대 정치철학의 특성에 대해 살펴봤는데, 자본의 운동과 사유재산을 보장하기 위해 국민국가 체제와 대의민주제의 틀이 확립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시간에는 주로 경험론적 인식론을 살펴볼 차례인데 남기호 연세대 외래교수와 함께 만나 본 철학자는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이었다. 

흄은 경험론 철학을 완성한 계몽철학자이자 회의주의자, 자연주의자, 자유의지와 필연적 법칙의 양립론자, 이성보다 감정을 중시한 센티멘털리스트라는 다양한 면모를 갖고 있다. 또한 그는 영국에 정치적으로 종속된 스코틀랜드 출신으로서 식민지 지식인의 자의식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끊임없이 회의하는 삶을 통해 경험론 철학을 완성하려 했다는 점에서 데카르트와 비교될 수 있다. 데카르트가 "전통적인 지식의 전면적인 부정과 회의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위해 어떠한 회의에도 흔들림 없는 새로운 학문의 기초"를 찾고자 했다면, 흄은 제도화된 교육이나 책이 아니라 "경험과 관찰 속에서 직접 획득할 수 있는 지식만을 참된 지식"으로 간주했다. 

일반적인 교육 방식으로 얻는 지식과 앎에 대해 "극복할 수 없는 혐오감"을 갖게 된 흄은 "교수한테 배울 수 있는 것 치고 책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세상으로 나아가 그 속에서 직접 얻을 수 있는 지식"만을 참된 지식으로 추구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흄에 대해, 남기호 교수는 그에게서 "경험론이 진지하게 추구되고 완결되는 것은 이러한 회의와 자기 학습을 통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부터 '쓰여진 지식'이 아니라 새로운 학문의 발견으로서 "사유의 새로운 장면"을 추구한 흄이 법학 공부를 오래 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평생 독신으로 살며 살아생전 펴낸 많은 철학 저서들이 무시당하고 많은 비방을 받았지만, "역사적 인물을 습관의 피조물로 묘사한" 그의 역사서 『영국사』는 이후 100여 년간 기본 역사서로 사용되기도 했다.

끊임없이 회의하는 삶, 경험을 통해 얻는 살아 있는 지식

인식론의 근본 물음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어떻게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가'이다. 그의 주저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는 제목 그대로 인간의 본성을 지성, 정념, 도덕의 세 관점에서 탐구하고 있다. 그런데 왜 그는 기존 지식에 등을 돌리고 새삼스레 인간 본성을 탐구하려했던 것일까? "수학은 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모른 채 계산에만 몰두한다. 자연과학은 자연 사물을 인간이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고 단지 비교하고 수량화하기만 한다. 종교는 왜 믿어야만 하는지 납득시키지 않은 채 무조건 믿으라고 가르친다." 이 모든 학문적 탐구의 견고한 기반을 찾기 위한 흄의 착상은 인간의 모든 학문이 공통적인 것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 본성 자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학문을 '인간학(Science of Man)'이라 부르고, 물리적 자연이 '경험과 관찰'의 방법으로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다면, 인간 본성에 대한 학문도 같은 방법으로 새로운 철학적 지평이 열릴 것이라는 게 흄의 생각이었다. 무신론자라는 공격에 대한 흄의 대응에서도 그의 관심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드러난다. 남기호 교수에 따르면, 흄이 고민한 것은 "자연 전체의 조화로운 틀을 창조한 지성적인 저자로서의 신"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 본성은 그 자연의 인과 관계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흄은 비물질적인 정신이 세상 속의 물질적인 것을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늘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인간 정신은 육체를 통해 직접 획득한 지식을 갖고, 비물질적인 지식을 간접적으로 발전"시켜 보다 추상화된 고급 지식을 얻는다는 것이다. 

흄이 말하는 '경험(experience)'이란, 바로 물질적인 외부 대상에 대한 비물질적인 인간 정신의 직접적인 지식 획득이다. 이 경험은 우리에게 '지각(perception)'을 가져다주는데, 이것은 다시 외부 대상과 직접 대면하여 우리 내면에(in) 찍힌(press) '인상(impression)'과 생생함이 사라지고 인상의 흔적만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관념(idea)'으로 나뉜다. 흄이 보기에 그 생생함에 있어서는 인상이 언제나 관념보다 선행하며 더 강하고 더 많은 지각을 포함한다. 여기서 남기호 교수는 "흄의 이 설명이 설득력이 아주 강하지 않더라도, 그의 설명에서 분명한 것은 언제나 인상이 관념에 앞선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렇듯이 흄의 경험론은 직접 지각을 통한 인상에 기원을 두지 않는 관념이란 어느 것이나 허구와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는 이런 식으로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회의를 품고 어떤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더라도, 그 관계의 필연성은 경험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경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 관념이 다른 관념을 '자연스럽게' 불러들이는 '관념 연합(association of ideas)'의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인간은 지식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흄의 논리를 따르자면, '비를 맞으면, 옷이 젖는다'는 것도 우리가 반복적 경험을 통해 둘 사이엔 필연적인 인과성이 있다고 습관적으로 믿어왔을 뿐이며, 그 필연성 자체를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흄에게는 인과 관념의 필연적 관계라는 것도 반복적 경험이 습관적으로 만들어낸 "항상적인 결합"일 뿐인 것이다. 

지식도 자아도 모두 회의뿐이니, 신념을 가져라 

궤변처럼 들리기도 하고, '저게 다 뭔 헛소린가'하고 수강생들이 혼란스러워 할 때쯤 남기호 교수는 흄의 경험론 철학이 가지는 존재론적인 성격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저기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는 언제, 누가, 어디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양한 인상을 남긴다. 그래서 흄은 '한 그루의 나무'로 규정될 수 있는 동일성을 유지하며 경험과 무관하게 독립된 '실체(sub-stance)' 자체로 존재하는 대상은 없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모습, 오직 그것만이 존재한다. 무수한 속성과 양태로서 나타나고 재현되는(re-presented) 대상만이 오직 '있다'는 것이다. 

흄이 생각하는 '인간'이란 존재자도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적 허구일 뿐이다. '나'라고 여겨지는 하나의 인간이 보증될 수 없다면, 그가 가진 의지와 사유, 욕망도 모두 한 대상의 것이라고 확증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라는 동일성을 지켜주는 단순 불변의 자아가 허구라면, 스스로를 '순수하게' '나'라고 부를 수 '없는' 인간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밥 먹는 나, 향기를 맡는 나, 분노하는 나, 눈물 고인 나는 항상 어떤 특정한 지각을 지니는 것으로만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행위를 하는 '나'라는 자아와 주체가 보증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흄은 급기야 "인간은 영원히 유동적이며 흔들리는 상이한 지각들의 다발"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나 자신이 지금의 나 자신과 동일한 사람으로 간주될 수는 있어도, 한 번도 나는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남기호 교수는 결국 흄이 생각하는 인간의 '정신'이란 것도 그렇게 쉼 없이 흔들리는 지각 속에 있는 영혼의 능력이며, 스크린에서 어룽거리는 화면처럼 "일종의 극장" 같은 것이다. 또한 인간이 알 수 있는 것도 그렇게 흘러가고 운동하는 세상의 다양한 모습들뿐이다. 이처럼 경험을 통해 지식을 추구하는 것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흄이 도달한 곳은 결국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는 회의적인 세상이다. 이쯤에 이르면, 사람들은 흄의 이러한 세계관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불안하고 분열된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것이다. 그런데 "흄에 의하면 이것은 인간 이성이 처한 운명일 수밖에 없다."

건전한 지성이여, 회의하라! 

"그렇다고 불안에 떨며 살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지식이 궁극적으로 이렇게 상대적인 것이라면, 어떤 것을 맹신할 필요가 없어지지 않습니까? 어떤 진리라고 주장되는 것도 영원히 옳을 수 없고, 그것에 반대되는 진리가 언제든 나올 수 있으니, 오히려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더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요? 자신이 발견한 진리가 한 줌 밖에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관찰하고 실험하며 경험에 기초한 신념을 쌓아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마치 흄이 남기호 교수의 입을 빌려 말하듯이 강의는 끝을 향해 달려갔다.

부당한 사태와 오류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고 그것의 거짓 가능성을 개진하는 것만으로도 감옥에 갈 수 있는 세상이다. '닥치고 한미FTA 발효'에는 '닥치고 투표로 응징'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의 갑갑한 정치 현실이다. 절대적인 선과 악, 절대적인 진보와 보수가 없다면, 회의하고 생각하고, 깨닫고, 분노하고, 다시 회의하는 이 과정 속에서 비로소 '신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때의 신념은 남기호 교수가 말하듯이 "맹종의 대상에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열린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그 기초가 다져지는 신념"일 것이다. 헤겔의 말처럼 "모든 신실한 철학은 회의주의와 하나이다."

열린 감각, 열린 사고, 열린 경험에서 올바른 습관이 길러진다. "그렇다면 습관은 인간 삶의 위대한 안내자"일 수도 있다. "건전한 지성은 언제나 회의할 줄 알며", 그럼에도 비관에 빠지지 않고, 현실의 경험에 기초해 올바른 습관과 삶의 신념을 열심히 다지는 지성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인이란, 박사학위가 있거나 대학교수를 오래 한 사람이 아니라, 그런 지성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남기호 교수가 옮긴 다음과 같은 흄의 말을 마지막으로 적어 본다. "내 생각에 나는 좁은 강어귀를 지나며 많은 여울에 부딪히면서 가까스로 난파를 모면하고 나서도, 여전히 비바람에 시달려 물이 새는 똑같은 배를 타고 무모하게 바다로 나아가려는 사람과 같다. 심지어 이 사람은 이러한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지구를 횡단해보겠다는 드넒은 야심을 지니고 있다."

2012년 첫 강의인 8강 자유로운 주인이 되는 이성국가를 꿈꾸다 : 사회계약론 넘어가기 - 루소 (김광호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는 1월 5일(목)에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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