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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봄....매일경제

doll eye 2017. 5. 13. 21:26

존재의 가벼움을 인정하는 용기 - 홍경택 작품 ‘Pens-1’과 영화 ‘프라하의 봄’

  • 입력 : 2017.04.17 22:35:07    수정 : 2017.04.17 22:37:24 

이견이 없는 한국미술의 스타작가 홍경택의 ‘pens 1’은 형형색색의 펜들이 화면을 가득 메운 작품이다. 마치 멸균이라도 된 것처럼 오차 없이 명료한 화면은 플라스틱 공산품의 선명함을 인상에 더욱 각인시킨다. 작가는 가벼움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밀란 쿤데라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작가의 관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서로 다른 공산품들이 운집해 있듯 삶의 모양이란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형태와 색으로 존재한다. 삶의 외피는 그토록 가볍지만, 가볍게 지나치기에는 도처에 발견되는 생의 무게가 개인의 어깨를 뻐근하게 짓누른다. 각자의 무게를 지고 타인의 삶을 관조하며 살아가는 생의 모습은 각기 다른 펜이 모인 화면처럼 무거우면서도 한없이 가볍다. 가벼움과 무거움, 생의 기저에 흐르는 이 명료한 이중성은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한 영화 ‘프라하의 봄’에서 예민하게 다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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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택. Pens 1. 259 x 581cm. oil on canvas. 1995-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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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봄’은 필립 카우먼 감독의 섬세하고 우아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운동으로 명명되는 ‘프라하의 봄’은 그 이름만으로 가볍지만은 않은 시대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다. 물론 소설이 영화화 될 때의 우려가 그러하듯 밀란 쿤데라 원작의 첨예한 표현이 때로 겉핥기식으로 지나가는 아쉬움이 있기는 해도, 특정 상황에 집중한 강렬한 연출은 오랜 잔상을 남긴다.

영화는 어느 정도 원작 소설을 읽을 필요가 있는 영화로, 역사적 배경을 간과할 수 없다. 자유민주화 운동이 지식인을 중심으로 물결 일던 1960년대의 체코슬로바키아와 이를 무력으로 저지하려던 소련. 그 이념적 대립이 공기를 얼리던 시대에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의사 토마스는 아이러니하게도 깃털처럼 가벼운 삶을 영위한다. 영화를 아우르는 섹슈얼리티는 이 삶의 ‘가벼움’을 충실하게 설명하면서 실존의 문제를 담담히 그려낸다.

토마스는 출장 중 무작정 그를 따라나선 시골의 웨이트리스 테레사와 결혼을 하지만 여성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토마스를 이해하는 이는 작가로 활동하는 사비나다. 둘은 서로에게도,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은 채 서로를 이해하며 가벼움을 만끽하는 관계를 이어나간다. 사비나에게도 사랑을 나누는 유부남 연인 프란츠가 있었지만, 정작 모든 것을 버리고 기쁜 마음으로 자신을 찾은 프란츠를 가볍게 떠나버린다.

태생적으로 가벼움을 갈망하는 둘이지만, 시대의 공기와 그 이념에 저항하는 토마스의 모습은 가벼움-무거움을 대치시키는 이중적 기제로 화면을 넘나든다. 소련의 침공과 무력한 개인의 갈등 속에 이들은 스위스로 망명을 갔다가 다시 프라하로 돌아와 격랑의 시간을 견뎌낸다.

토마스와 테레사는 결국 이념과는 상관없는 듯한 한적한 시골 마을로 떠난다. 그리고 한동안은 평화로운 환경에서 현재를 충만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밤 토마스와 테레사는 왈츠를 추러 나가게 되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로 한꺼번에 목숨을 잃게 된다. 갑작스런 죽음이 주는 허무함은 이들은 생의 의미에 대한 해결하지 못한 질문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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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이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초벌그림 같은 것이다.’ - 밀란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

우리는 단 한 번을 산다. 한번밖에 살지 못한다는 전제 하에 개인이 느낀 삶의 무게는 역사의 층위에서 가볍게 부유해 흩어져 버린다.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끊임없이 갈등했던 토마스와 테레사가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였듯, 삶은 결국 각기 다른 가벼운 펜이 겹쳐져 빼곡하게 서있는 필기구 꽂이 풍경 같다.

우리는 가벼운 삶을 때로 지나친 무게로 인지하며 타자를 향한, 타자로 부터의 시선에서 가볍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서로 공생하는 이들의 차이를 인정하고, 타자를 관조하듯 긴 역사 속 나의 생의 무게를 객관화해볼 때, 그 무게는 생각보다 가볍게 홀연 사라질 수 있다. 때론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인지할 때에 어깨위에 층층이 쌓인 삶의 더께가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



[김지희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