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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주의 건축의 선봉, 자하 하디드(上)

doll eye 2020. 11. 13. 23:12

[효효아키텍트-61] 우리에게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2014) 건축가로 익숙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1950~2016)는 대표적인 해체주의 건축가이다. 영국 AA(Architectural Association)에서 해체주의 초기 멤버인 렘 쿨하스(Rem Koolhaas·1944~ )로부터 사사하며 1977년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1879~1935)에 관한 논문으로 AA를 졸업한다. 진공 상태에서 진정 사물을 관찰할 수 있다는 말레비치의 슈프리마티즘(suprematism)은 하디드 건축의 기본 철학이 된다. 이후 3년간 렘 쿨하스가 만든 로테르담의 OMA에서 같이 일한다.

하디드는 2007년 8월,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 국제 현상 설계 공모에 '환유의 풍경(Motonomic Landscape)'으로 당선되었다. 이 설계안은 공원과 월드디자인플라자(지하 1층~지상 2층) 건물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기하학적인 물결 무늬를 빚어낸다. 정형화되지 않고 사막의 모래 언덕이나 소용돌이 치는 파도의 물결처럼 군데군데 솟은 형태가 반복되면서 율동감을 주는 형상이다.

이후 DDP로 명명된 이 건축물은 개관 2년 뒤 하디드의 요절로 전 세계 하디드 작품 중 대표작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다만 시공 과정에서 '상상력이 기술을 너무 앞지르고 있어서 그것을 쫓아가느라 시공하는 사람들이 최고의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건물을 때워서 기워내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하디드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태어났고 레바논 베이루트의 아메리칸대학(American University)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베이루트는 중동에서도 아메리칸 컬처에 가장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도시다. 하디드는 1972년 영국으로 건너오기 전부터 서구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디드는 무명 시절, 실내건축가와 디자이너 경력을 쌓았다. 이 과정에서 페인팅과 드로잉은 이후 작품 설계의 주요한 테크닉으로 자리 잡는다. 하디드는 피카소나 브라크, 또는 러시아 구성주의 화법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건축가들에게 중요한 모형 작업은 매우 표현주의적이라는 평가다. 표현주의적 모형은 대개 건물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특별한 재료를 사용하거나 주변에 대해 특정 부분을 물리적 혹은 심리적으로 강조하기도 한다. 특징적인 이미지를 통해 관찰자의 감성적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 건물에 대한 정확한 묘사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전통적인 모델 제작 방법 위에 알레고리(allegory)나 제스처(gesture)적인 색채 등을 첨가해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특징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디자이너로서 루이비통 가방을 실리콘을 사용해 로고를 양각으로 튀어나오게 재해석한 작품은 많이 알려져 있다. 알레시를 위한 커피 세트와 빙산을 닮은 테이블 등 유기적이고 해체주의적인 디자인은 하디드가 어릴 적 보고 자란 변화무쌍한 중동의 모래산 이미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80년 런던에 자신의 사무실을 가지면서 실험적이고 개념적인 건축 아이디어를 도면상에서 시도하는 '페이퍼 아키텍트'로 주목받았다. 1982년 홍콩 시내 전체를 조망하는 빅토리아피크 클럽의 설계 공모에 당선되면서 잠시 관심을 받았으나 대부분 그녀의 안은 지을 수 있는 건물이 아니라거나 예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구현되지 않아 '건축물 없는 건축가'라는 빈정거림을 들어야 했다.

▲ 비트라 소방서(Fire Station at Vitra. 1993) /사진=wikimedia

첫 작품은 나이 40세가 넘어서야 완성된 출세작인 독일 비트라 소방서(Fire Station at Vitra·1993)다. 비트라 소방서는 실험적인 아이디어가 실제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소방서는 수평·수직을 건물 어디에서도, 심지어 바닥에서도 찾을 수 없는 매우 과감한 건물이다. 외형적으로도 건물이라기보다 '건축 조각'에 가까웠다.

홍콩 빅토리아피크의 건축 어휘에 머물던 시기의 비트라 소방서는 예리한 파편들의 평면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모더니즘에 정면 반기를 들었으나 외침에 대한 반향은 미미했다. 소방서가 있는 비트라캠퍼스는 독일의 소도시 바일암라인 북쪽에 위치한 글로벌 가구 회사의 제조공장 단지다. 찰스임스 등 유명 건축가·디자이너의 체어·의자 특허 제조 생산으로 유명하다.

캔틸레버(cantilever·외팔보)는 하디드의 기본적 디자인 도구다. 중력을 시험하는 떠 있는(floating) 건축에는 캔틸레버가 필수적이다. 소방서는 입구 캐노피에 이어 계단 스텝까지 이 방식을 적용한다.

 

박영우 건축 비평가는 "사선과 사면으로 구성된 동적 형태의 소방서는 몇 년 못 가서 소방관들이 사용을 거부하기도 했다. 현기증도 일으키고 삐딱한 문짝 등 이용하기가 불편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용자들이 사선과 사면에 적응하지 못했다. 공간의 기능과 효율성, 이용자의 편의성 등은 무시하고, 건축가를 위한 건축이다. 실패작"이라고 평한다.

하지만 건축 형태적 측면에서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쉽지가 않다고 덧붙인다. 이후로 비트라 소방서의 디자인을 도입한 건물 형태가 많이 시도되었다. 대학은 물론 건축계에서도 유행이었다. 계속 발전해 소위 비정형 3D 디자인으로 확장되고 있다. 모더니즘이 간과한 공간과 형태들이 비트라 소방서가 제기한 해체주의건축(deconstruction)에 의해 새로이 발견되고 탐구되고 있다고 본다.

세계 건축계에서는 1970년대부터 해체주의가 태동되고 있었다. 수장 피터 아이젠먼(Peter Eisenman·1932~ )은 대니얼 리버스킨드(Daniel Libeskind·1946~ ), AA 스쿨에서 강의를 한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장이 된 프랑스·스위스계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i·1944~ ), AA 출신의 렘 쿨하스 등을 해체주의 초기 멤버로 아우르게 된다.

1970년대 초반 카드보드(cardboard) 아키텍처로 학문적 관심을 끌던 아이젠먼은 당초 르코르뷔제 신봉자였으나 리처드 마이어를 위시한 뉴욕 파이브(New York Five) 멤버들과 건축 철학을 공유하기 어려워지면서 결별한다.

아이젠먼은 건축의 형태를 카테시안 건축(Cartesian Architecture)에서 해방시키겠다는 생각으로 1980년대 뉴욕에서 활동하던 유럽 출신의 추미, 리버스킨드, 렘 쿨하스와 자신이 만든 해체주의 건축의 요람인 IAUS(Institute for Architecture and Urban Studies)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추미는 아이젠먼의 친구인 철학자 데리다의 지원을 받아 1982년 프랑스 파리 라 빌레(La Villette) 공원 설계 경기에서 당선되면서 이름을 알린다. 리버스킨드는 리처드 마이어의 사무실에서 잠깐 일했고 아이젠먼의 IAUS에도 잠시 머물렀다.

AA에서 공부를 시작한 렘 쿨하스는 IAUS에서 객원교수로 머무르며 '정신나간 뉴욕(Delirious New York·1978)'을 집필하였다. 이 책을 통해 메트로폴리스 맨해튼의 건축과 도시를 논하면서 모더니즘의 기능성과 프로그램, 카테시안 건축에 이의를 제기한다. 렘 쿨하스는 뉴욕 맨해튼의 건축적 장치가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에어컨의 기술이라고 역설하며 유럽의 모더니즘과 구별해 이런 자본주의 건축을 '맨해트니즘(Manhattanism)'이라 불렀다. 자신이 만든 로테르담의 OMA에서 AA 제자인 자하 하디드와 같이 일한다.

하디드는 AA에서 강의한 추미를 만나기도 했다. 2000년대 유럽에서 건축 활동은 물론 왕성한 건축 모임의 주객논자 역할을 하던 리버스킨드도 하디드를 자주 만났음이 틀림없다. 데리다의 후기구조주의 철학 이론을 앞세운 해체주의 추종자들은 새로운 형태와 공간(form and space)은 모더니즘을 해체해야지만 발견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이렇듯 AA에서 공부를 한 하디드의 주변에는 해체주의 추종자들이 늘 배회하고 있었다.

[프리랜서 효효]

※참고자료 : 박영우 건축가 블로그, 『「틈」의 다이얼로그』 (구영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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