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이슈 칼럼 담론

'생활명품` 저자…취향 전문가 윤광준 사진작가----Interview

doll eye 2020. 3. 6. 18:12

개취입니다. 취존해주시죠."

튀는 취향을 가진 별종들은 종종 곱지 않은 시선을 감내해야만 했다. 지금도 그렇다. 개인의 취향(개취), 취향 존중(취존)이라는 신조어가 방어적으로 쓰이는 이유다.

그러나 최근 이 같은 `별종`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윤광준 작가는 별종을 자처하며 `모두의 별종화`를 주도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국내 최초로 `생활명품 전문가`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는 작은 돋보기부터 연필, 안경테, 의자까지 아끼는 명품이 따로 있다. 그는 사람들이 각자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기르고, 나아가 드러내야 한다고 주문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전 사회적인 불감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이는 좋다는 것을 봐도 좋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인데, 예컨대 이런 식이다. "남들이 다 좋다는 작품이나 여행지, 저는 별 감흥 없던데요." 그는 이 같은 현상의 배경을 취향의 부재에서 찾는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아름답다고 느끼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란 것이다. 애초에 남이 아름답다고 평가하는 게 내 기준에도 철석같이 부합하기 어렵다.


타인의 관점이 강하게 투영된 기준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할 수밖에 없다. 시공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의 공통적 특성이 있겠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미세한 부분에서 선호와 비선호가 명확히 갈린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 `좋은 것`을 취사선택해 삶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결국 모두가 취향이 명확한 `별종`이 될 때 삶의 만족도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윤 작가는 지금껏 열여섯 권의 책을 냈다. 모든 책에서 강조하는 바는 일관된다. "취향이 단단한 사람이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알고,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다채롭다."

최근 `심미안 수업`(지와인 펴냄)을 낸 윤광준 작가를 만나 취향을 기르는 법을 들었다.

―`생활명품 전문가`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내가 책에서 소개한 생활명품들은 "내가 써보니 내 취향에 부합하더라" 하는 물건이다.

값비싼 물건이 아니더라도 나는 이게 이러이러한 이유에서 좋다고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게 생활명품이다. 물건은 물건일 뿐이다. 물건 자체에 엄청난 의미는 없다. 물건을 바라보는 내가 중요하다. 물건에 내 관점이 투영되면 그때 그 물건은 명품으로 가치를 지닌다.

대부분의 물건은 한 번의 쓰임을 다하면 다시는 쓰이지 않는다. 옷장에 옷이 그렇게 많아도 손이 가는 옷은 정해져 있다. 내가 좋아서 자주 입는 옷처럼, 내 판단과 가치관이 선택한 물건으로 곁을 채우면 삶이 더 풍부해질 것이라는 제안을 책을 통해 하는 것이다.

―생활명품의 예시를 들어줄 수 있나.

▷의류에서 예를 들자면 파타고니아를 꼽고 싶다.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아웃도어용 의류를 만드는 브랜드인데, 품질이 좋을 뿐 아니라 윤리적 소비를 지향한다.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옷감이 만들어진다. 한 번 사면 버리지 말고 끝까지 쓰라는 당부도 하더라. 얼마 전 모임 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세 사람이 입고있던 옷이 파타고니아였다. 모두 사회정의와 조화로운 삶의 실천에 앞장선 이들이기도 했다. 필기구 가운데선 파버카스텔이 내 기준에서 최고다. 260년 역사를 가진 독일 필기구 브랜드인데, 오래된 전통을 현재와 조화시켜 끝없는 혁신을 실천하는 게 매력적이다.

―외투, 연필처럼 사소한 물건들에도 의미를 부여하니 색다르다.

▷우리의 삶을 채우는 건 일상의 사소함이 대부분이다. 소홀히 여기기 쉽다. 일상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면 사소한 일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어쩌다 한 번 있는 감탄과 행복을 기다리다 현재를 흘려버리면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매일 쓰고 보고 만지는 물건이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채워져야 하는 이유다.

―생활명품을 가지려면 본인만의 취향이 확고해야겠다.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가서, 취향이란 뭔가.

▷취향은 나만의 기준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야 본인이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수상 소감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가장 개인적인 게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미국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을 옮긴 것인데, 이 문구에 깊이 공감한다. 봉 감독이 성공한 것도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매진해 사적 취향을 완성시킨 게 배경이 됐다. 어떤 사람도 세상만사 모든 것을 다 겪을 수 없다. 따라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작품은 만들 수 없다. 오히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들면 작품이 애매해진다. 봉 감독은 이걸 안 거다.

취향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내재화할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 취향으로 소화하고, 표현해야 한다. 취향이 촘촘한 사회가 세련되고 기품 있는 사회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변화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아직 획일적인 성격이 짙다. 사람들 불안이 높은 게 이 같은 분위기에 한몫했다고 본다. 뭐가 좋은지 모르겠어서 혼란스러울 때 누군가가 `이게 좋다`는 솔루션을 주면 많은 사람이 그리로 쏠릴 수밖에 없다. 봉 감독이 한 말마따나 사람들이 좀 더 본인의 취향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낸 책이 16권에 이른다. 저서들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는 듯하다.

▷내 책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룬다. `윤광준의 생활명품`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내가 사랑한 공간`에서는 내가 찾는 장소를 담는 식이다. 모든 책에서 내 사적 취향을 얘기하는데, 이 기준을 타인에게 이식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데, 독자인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뭔지`를 묻는 게 목적이다. 내 이야기에 공감하면 취하고, 아니면 버리면 그만이다. 독자들이 책을 읽고 스스로 내면을 탐구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취향에도 위계가 있다는 시각이 있는데.

▷모든 취향은 동등하다. 어느 취향은 고상하고, 어느 취향은 저급하다고 보지 않는다. 소위 삼류라고 일컬어지는 문화도 세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인간의 삶에 필요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어떤 직업은 대단하고, 어떤 직업은 별로라는 고정관념이 강하게 남아 있다. 이것도 결국 취향의 부재와 관련이 있다. 나만의 기준이 약하니 세상의 평가에 쉽게 휩쓸린다. 본인의 선택을 쉽게 내다버릴 준비가 돼 있는 것이다. 세상이 나를 우습게 안다고 해도 나만의 기준을 가장 중심에 놓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자존감은 취향이 없을 때 떨어진다. 취향이 생기면 자존감도 올라간다.

―나만의 취향을 발견하는 방법은.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가장 먼저 내가 관심을 둘 만한 대상을 찾아야 한다. 아는 것보다 몰랐던 것에 관심을 두는 게 좋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의외의 선호를 발견할 수 있다. 타깃을 정했다면 두 번째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포털에서 아무리 대단한 정보를 봐도 한 발짝 나아가 제대로 탐구하지 않으면 금세 휘발해 버리는 것처럼 관심이 가는 것을 나만의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품을 들이는 게 필수적이다. 와인에 관심이 간다면 와인을 공부하고, 와인 파는 곳에 가서 직접 와인을 골라 마셔보는 식이다. 마지막 단계는 반복이다. 이 과정에서 관심을 앎으로 숙성시킬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기간을 물어본다. 얼마나 반복해야 하느냐는 것인데, 무한 반복이 필요하다. 몇 년 하면 된다, 이렇게 무 자르듯 말하기는 어렵다. 반복이 낭비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가장 크게 남는다.

―좋은 사진이란 뭐라고 생각하나.

▷좋은 사진은 거짓말하지 않는 사진이다. 남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사진, 사회적 관계를 위한 사진은 강박적이다. 평소에도 충분히 남들 시선을 신경 쓰면서 사는데, 사진에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는가. 내 마음이 향하는 피사체를 내 눈, 나만의 프레임을 통해 찍으면 좋은 사진이 나온다. 이렇게 찍힌 사진의 공통점은 시대를 초월하는 힘을 가진다는 거다. 세월이 지나서 봤을 때 낡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사진은 어떻게 찍나. 구체적으로 알려달라.

▷사진은 결국 나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찍고 싶은 대상에 대한 출발점이 본인의 내면이어야 한다. 내가 뭘 찍고 싶은지를 고민해보라. 다시 취향 얘기로 돌아간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만의 기준으로 찍으면 된다. 안 좋은 사진의 예를 들자면 외부 기준을 끌어들여 스스로를 억누르고, 정형화된 구도로 정형화된 피사체를 찍는 것이다.

―차기작이 궁금하다.

▷`윤광준의 생활명품` 후속작을 내놓을 계획이다. 또 정원에 대한 책을 구상하고 있다.

―아파트가 보편적인 우리나라에 정원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을 텐데.

▷정원은 개인의 공간적 이상향이라고 볼 수 있다. 공간적 취향을 실천하는 게 정원 꾸미기다. 정원이란 게 꼭 큰 땅이 있어야만 꾸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원은 접시에도 만들 수 있다. 누구나 정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정의하나.

▷병렬형 인간이다. 큰 테이블에 이것저것 관심사를 늘어놓은 모양을 생각하면 된다. 하나만 파고들기보다는 여러 주제를 동시에 바라본다. 작업실 모습도 내 성향하고 똑같다. 사람들은 정신없다 할 수도 있는데, 태생이 자유분방한 것 같다. 병렬형 인간이기에 갖는 장점도 있다. 연결의 가능성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다양한 것을 조망하고 남들이 봤을 때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할 수 있다. 내 직업도 결국 여러 관심사를 수평적으로 펼치고 연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진과 글을 통해 건축, 미술, 음악 등 분야를 아우르는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있으니까.

▶▶He is…

1959년 강원 횡성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사진학과 졸업 후 당시 최고 잡지였던 `마당` `객석` 등에서 일했다. `생활명품`이라는 말을 유행시키며 주변의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취향전문가이자 사진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심미안 수업` `윤광준의 생활명품` `소리의 황홀` `잘 찍은 사진 한 장` 등이 히트했다. 망막박리라는 질병 후유증으로 한쪽 눈 시력을 거의 잃었지만 여전히 안경테에서 연필, 의자까지 삶을 풍요롭게 해줄 소소한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고 있다.

[홍혜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