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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 레비 스트로스.라캉.알튀세.푸코

doll eye 2018. 7. 4. 17:24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 이정우 강의


구조주의란 무엇인가1(레비-스트로스)



1강 구조주의적 사유 양식

- 지난 반세기를 돌아다볼 때 사유의 대상에 있어서나, 양태에 있어서나, 글쓰기에 있어서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구조주의의 등장은 서구적 사유의 양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담론사 전체에서 굵은

획을 그었다.

그 이유를 미리 설명하기보다는 개별적인 사상가들을 다루면서 그 때마다 맥락을 설명할 것이다.

- 구조주의적 사유 양태란 무엇인가를 개념적이고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전에 우선 구체적인 하나의 예를 듦으로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하나의 예: 토테미즘


- 토테미즘의 예:

토테미즘이라는 현상은 옛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에 대해 기존에 제시된 이론들과 구조주의 이론의 차이를 살펴봄으로써 구조주의적 사유 양식이 무엇인가를 직관적

으로 이해해 보자.

-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을 혼동하면 안 된다.

애니미즘(物活論)은 세계 전체가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 신성한 힘에 의해 가득 차 있다는, 선사 시대 사람들의 일반

적인 믿음을 말하는 것이고,

토테미즘이란 특정한 한 씨족/부족이 특정한 어떤 존재(특히 동물)와 자신들 사이에 본질적인 관계가 있다고 믿는

현상을 말한다.

- 토테미즘은 처음에는 그저 미개인들의 괴상한 면모라고 가볍게 치부되었으나 인류학(anthropologie), 민족학(ethnologie)

이 본격적으로 발달하면서 그 의미가 다각도로 파헤쳐졌다.
각 씨족들은 자신들의 토템을 먹거나 해치지 않는다. 이것을 금기(taboo)라 한다.

그러나 일정한 시점에서는 - 祭儀時 - 오히려 그것을 죽여서 먹는다.

- 기존의 이론들 중 몇 가지를 보자.

우선 토테미즘을 즉물적으로 해석한 경우가 있다.

거북이를 토템으로 하는 씨족은 진짜 거북이와 비슷하고, 늑대를 토템으로 하는 씨족 은 진짜 늑대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예컨대 후자의 부족은 보름달이 뜨면 늑대로 변한다는 황당한 해석까지 있었다.

이런 해석은 토테미즘을 너무 즉물적으로 해석한 것이며, 거기에는 미개인을 동물과 유사한 존재로 보는 편견이 깃들어

있다.

- 이보다 나은 것으로 이런 즉물적 해석이 아니라 토템을 일종의 상징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이런 생각은 오늘날 OB 베어스, 한화 이글스, 삼성 라이온스 같은 표현들에도 남아 있다.

그러나 앞의 해석이 즉물적인 해석이라면 이 해석은 반대로 너무 현대적인 해석이다.

미개인들이 상징이나 문장(紋章)을 사용했다는 것은 현대인의 생각을 미개인들에게 투영한 것이다.

- 프로이트는 『토템과 타부』(1925)에서 토템 현상을 그의 정신분석학을 가지고서 설명하려 했다.

그는 토템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지고서 설명했으며, 토템과 씨족 사이의 이중적 관계를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愛憎으로 해석했다.

토템은 神=父에 대한 상징이며, 미개인의 토테미즘이란 유아의 신경증과 유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현대인의 정신 상태를 포착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신병리적 개념을 미개인들에게 투사한 전형적인 환원주의적

시각이다.

인간과 사회를 생물학적으로 모두 설명하려는 사회생물학이나 지성사까지도 모두 사회적 맥락의 결과로 설명하려는

사회학적 환원주의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듯이, 어떤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이론을 다른 분야로 무반성적으로 투사

할 때 이런 무리가 발생한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미개인에 대한 실증적 연구와 독립적인 사유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미리 형성된 자신의

이론을 다른 영역에 투사한 것에 불과하다(그의 미학도 마찬가지이다).

- 인류학에서 독보적 경지를 이룬 것으로 평가되는 레비-브륄(Claude L vy-Bruhl) -- 베르그송과도 밀접히 관련된다 -- 은

미개인을 동물과 인간의 중간에 위치하는 존재로 보았다.

다만 그는 미개인도 나름의 독특한 논리, 즉 전논리(pr logique)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예컨대 말과 사물을 동일시하는 것이 그것이다.

어떤 사람의 모형을 만들어놓고서 그것을 송곳으로 찌르면 그 사람의 그 부위가 아프다고 믿는 것이다.

또 만일 누군가가 어떤 악어를 죽였다면, 그 동족 악어들이 그 사람에게 복수하려 한 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레비-브륄은 이런 식의 전논리를 신비적 융합설이라 불렀다.

구분해야 할 것을 기묘하게 융합해서 본다는 뜻이다.

미개인과 어린아이를 유비시키는 생각이다.

여기에는 물론 19세기적인 진화론적 생각이 깔려 있다.

꽁트의 지식 삼단계설(신학적 단계, 형이상학적 단계, 과학적 단계)를 확장시킨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진화론적 구도, 역사에 대한 선형적 발전 구도를 깔고 있으며, 역시 미개 인을 그 자체로서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현대인 특히 서구인 -- 특히 근대적 서구인 -- 의 관점을 짙게 풍기고 있다 하겠다.


구조주의 사유는 바로 이 진화론이라는 사유 모델을 논박한다.

이 점에서 시간적 사유, 역사적 사유, 진화론적 사유가 19세기 이래의 전형적인 사유 패러다임이었다면, 구조주의는

바로 이런 패러다임으로부터 결정적으로 벗어나는, 그것과 대립하는 패러다임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구조 주의의 중요한 담론사적 맥락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레비-브륄의 설명 자체는 흥미로운데가 있다.

레비-브륄의 패러다임이 진화론적, 더 나아가서는 제국주의적 색깔을 짙게 풍기고 있다 해도, 레비-브륄이 지적한

현상 자체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구조주의의 윤리적 동기에 공감한다 해도, 윤리가 사실마저도 부정하면 곤란한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미개인들에게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미개인이냐 현대인이냐에 관계 없이 그런

사유 양태는 늘 나타난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의 많은 후궁들이 별실에 중전의 초상을 걸어놓고서 활시위를 당겼다.

첨단의 과학기술 시대 라고 하는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컴퓨터 점을 보고 부적을 산다.

TV 드라마 "왕건" 에 나오는 최지몽이 전투 결과를 예측하면 어김없이 맞는다(작가가 그렇게 각본을 쓴 다).

더 흥미로운 것은 시인들은 자주 미개인처럼 시를 쓴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전 논리가 사라지고 논리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는 늘 논리와 전논리가 함께 있 는 것이 아닐까.

다만 개개인에 따라, 시대의 분위기에 따라, 담론의 종류에 따라, ... 전논리와 논리가 작동하는 것이 아닌가.

미개인이 진화에서 현대인이 되었다고 하지 만, 우리 시대는 오히려 전논리가 논리를 압도하는 시대는 아닐까.


이런 점에서 레비-브륄의 설명은 그 자체로서는 한계를 드러냈지만, 그가 말한 전논 리 개넘은 다른 맥락에서 볼 때

여전히 흥미로운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인 간 오성의 범주를 극히 합리주의적으로 그려냈지만, 과학이라는 좁은 맥락을 떠나 인 간 자체를 볼 때 전

논리는 논리 옆에 늘 같이 있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이런 관점을 가지고서 문명사 전체를 새롭게 조망하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토테미즘에 대한, 나아가 미개 사회 일반에 대한 설명들 중 구조주의와 더불어 쌍벽 을 이루는, 구조주의가 논박했

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는 매우 중요 한 입장이 기능주의의 입장이다.


위의 입장들은 대개 원주민들에 대한 현장작업/현지조사(field work)가 결여된 채 어 떤 편견을 투영한 면이 강하다.

그러나 기능주의는 인류학/민족학이 본격화되고 자료 가 싸이면서 등장한 이론으로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기능주의는 말 그대로 토템이 그 씨족에 어떤 실질적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즉 그 씨족의 삶에 도움을 주고 그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소박하기 때문에 그만큼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도 대체적으로 세 가지 형태가 있다.


1) 생리학적 기능주의:

어떤 씨족이 특정 동식물을 토템으로 하는 것은 그것이 그 씨족의 중요한 먹거리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 토템을 숭배하고 먹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그 토템의 그들의 생존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좀 묘한 데가 있다.

평소 먹지 않다가 일년에 한두번 제의때만 그것을 잡아먹는다면, 그것이 실질적인 먹거리로서 기능을 하는 것일까?

마치 너무 비싸서 1년에 한두번만 입는 옷을 연상시킨다. 그런 사치품이 먹거리로서 기능을 할 수 있을까?


때로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즉 그것이 먹거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먹으면 안 되는 것, 먹으면 죽는 것이기 때문에 금기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어느 정도 더 설득력이 있으나, 그럴 경우 굳이 그것을 숭배하기까지 해야 할 이유를 알 수 없고 또 때로는

먹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
생리학적 환원주의는 토템을 모든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것, 즉 먹고 사는 것에 관련시킨다는 점에서 얼핏 가장

기본적인 설명 같지만, 토템의 경우 간단하지가 않다.


2) 심리학적 기능주의:

생리학적 기능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해결책을 찾을 때 등장하는 하나의 생각이 심리학적 기능주의이다.

즉 토템이란 실질적인 생리적 도움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심리적 도움을 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토템은 원초적 형태의 神이라고 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히브리 민족의 토템이고, 알라 하나님은 이슬람 민족의 토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설명은 상당히 그럴 듯한데가 있다.

또 미국 대통령의 관저에 콘돌이, 독일의 경우 독수리가, 한국의 경우 봉황이 그려져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이 경우 심리적 도움이란 어떤 개인의 심리에 도움을 준다는 의미보다는 그 씨족 전체의 심리에 도움을 준

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런 설명은 심리학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사회학적이다.


3) 사회학적 기능주의: 그래서 기능주의의 가장 세련된 형태인 사회학적 기능주의가 등장했다.

이 입장은 토템을 자연적-생리적, 심리적인 것으로 보기보다 일단 사회적인 것으로 본다.
이 입장에서 볼 때 토템이란 한 사회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것이 위에서 말한 단순한 紋章 같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실제 그 씨족의 조상을 뜻하며, 때문에 그것에 예배드리고 또 의미있는 날이 되면 (동족의 연속성을 확보한다는

의미에서) 잡아먹음으로써 피를 나누는 것이다.

다시 말해 토템은 씨족의 신체적 생존이 아니라 집단적 정체성을 위해서 기능하는 것이다.

이런 이론은 베버와 더불어 20세기 초를 대표하는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에 의해 제기되었다.

(『종교생활의 기본 형태』, 1912)


그러나 이럴 경우 왜 파리나 모기처럼 열등하고 또 인간을 괴롭히는 동물들까지 토템이 되는가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현대인이 이해하기 힘든 가치론적 배경이 있을 수 있다).


기능주의는 가장 상식적이고 당연한 가정 -- 토템이 그 씨족에게 뭔가 역할을 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라는

가정 -- 에 입각해 있으며, 매우 자명해 보이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 기능주의에 도전해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토템을 해석한 것이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이다.

- 끌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 vi-Strauss, 1908 - )는 20세기 초에 태어나 20세기 중엽에 활동했으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라캉, 바슐라르 등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

전후 프랑스 사상계를 풍미했던 실존주의는 레비-스트로스의 등장으로 구조주의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레비-스트로스는 민족학자로서 브라질을 비롯한 여러 오지를 다니면서 현장 탐사를 했으며, 그 결과를 구조주의라는

새로운 방법론에 입각해 체계적으로 이론화했다.

레비-스트로스를 통해서 인류학은 처음으로 과학 -- 수학적인 법칙의 발견이라는 뜻에서 -- 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원래 철학 박사인) 레비-스트로스는 과학을 넘어 자신의 인류학에 매우 의미심장한 사상사적 의미를 부여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류학이라는 담론이 매우 중요한 역사적-철학적 함의를 가지게 만들었다.

오늘날 그의 이론이 여러 면에서 비판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레비-스트로스야말로 좁은 의미에서의 현대 사상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구조주의는 기능주의가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데 비해 구조라는 관점에서 사물을 본다.

기능주의는 사물 자체의 실질적 행위, 기능, 목적, 실천 등의 관점에서 사물을 본다면, 구조주의는 사물 하나가 아니라

그 사물이 속해 있는 장 -- 관계들의 장 -- 을 보며 그 장 안에서 그 사물의 위치를 본다.

- 앞의 기능주의적 설명에서 세번째 사회학적 기능주의는 이미 이런 사고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

토템을 상징으로 본다는 것은 그 토템이라는 존재/사물 자체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 토템의 의미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을 뜻한다.

나폴레옹을 기능적 관점에서 보면 왜소하고 볼품없는 사내이다.

그러나 그를 의미의 관점에서 보면 유럽을 뒤흔든 황제이다.

나폴레옹은 사물적으로 보면 왜소한 사내이지만, 기호적으로 보면 엄청난 권력을 지닌 황제라는 기호인 것이다.

기능주의가 사물의 자연적, 물질적 존재에 초점을 맞춘다면, 구조주의는 사물을 기호로, 의미로, 무엇인가를 뜻하는

것으로, 어떤 관계망의 요소로 보는 것이다.(구조주의가 늘 언어학/기호학과 함께 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토템을

상징으로 볼 때 이미 이런 사유의 맹아가 들어 있다.

- 그러나 이런 사유의 본격적인 형태는 구조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가능했다.

소쉬르 언어학의 기본 테제들에 속하는 변별성과 자의성을 보자. 하나의 기호의 의미는 그것에 내재해 있지 않다.

즉 자의적이다.

야옹이를 개라고, 멍멍이를 고양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개라는 기호가 꼭 멍멍 짖는 동물을 가리켜야 할 이유가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즉 기호와 사물의 관계는 자의적

(arbitraire)이다.
그래서 기호의 의미는 변별성을 통해서 결정된다.

만일 개와 고양이라는 기호에 어떤 필연성도 없다면, 중요한 것은 개가 반드시 무엇을, 고양이가 반드시 무엇을 지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물론 우리는 이미 그런 지시 관계가 확립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개와 고양이가 구분된

다는 사실 자체이다.

중위라는 기호에는 내재적 의미가 없다.

그것은 소위와 대위 사이에 존재하는 기호인 것이며, 이 기호들과의 변별적인(diff rentiel) 즉 차이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서만 중위인 것이다.

소쉬르는 언어학에서 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차이라고 말한다.

의미는 현상학이 말하듯이 인간 의식에 의해 구성되는 것도 아니요, 해석학이 말하듯이 숨겨져 있는 것도 아니요,

실증주의가 말하듯이 말과 사물의 일대일 대응 관계를 통해서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의미는 차이들의 놀이를 통해서 성립한다.

- 토템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토템은 하나의 기호이다.

그것은 기능적 의미가 아니라 구조적 의미를 가진다.

즉 자의적이고 변별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토템과 씨족 사이에는 어떤 자연적 인과, 실질적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 관계가 있다는

것이며, 또 각 토템의 의미는 홀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토템들과의 구조적 관계를 통해서 성립한다는 것을

말한다. 북미 오대호 지방의 세 인디언 씨족들은 각각 독수리, 곰, 거북이를 토템으로 가진다.
더 선명한 예는 백곰 토템과 흑곰 토템이다.

이렇게 나뉜다고 해서 한 씨족은 검고 한 씨족은 희지 않다.

사실 백/흑으로 하든, 청/황으로 하든, 물/불로 하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변별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별은 이 두 씨족이 본래의 씨족에서 갈라져 나왔음을 함축한다.

- 기능주의가 비교적 눈에 보이는 기능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구조주의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측면, 어떤 장의 심층

적이고 무의식적인 구조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 점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사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할 수 있다.


결혼 제도


- 레비-스트로스는 마르셀 모스의 영향을 받아 미개 사회를 교환( change)의 관점에서 본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레비-스트로스가 미개 사회를 평형(equilibrium)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을 말한다.

레비-스트로스가 문명 사회를 뜨거운 사회로 보고 미개 사회를 차가운 사회로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이런 관점은 오늘날 여러 면에서 극복되었다.

클라스트르의 인류학이 보여주었듯이, 미개인들의 교환은 그 안에 욕망과 권력의 측면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레비-스트로스가 미개 사회의 결혼 제도를 연구한 성과는 나름대로 여전히 의미를 가진다.

- 미개인들의 교환을 포트라취라 부른다. 그리고 교환의 가장 핵심적인 대상들은 여자, 재물, 언어이다.

이 세 항목을 교환함으로써 미개 사회는 평형을 유지한다. 즉 정체되지도 않고 또 와해되지도 않는다.

- 기본 개념들: 족외혼과 족내혼
제한적 교환과 일반적 교환

- 결혼 제도에서 레비-스트로스가 핵심적으로 관심을 기울인 것은 근친혼의 금지이다.

즉 근친상간(近親相姦)의 금지이다.
근친혼의 금지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문화로 넘어가는 돌쩌귀에 놓여 있다.
왜인가?

레비-스트로스는 자연은 연속적이고 일반적이지만 문화는 불연속적이고 특수하다고 본다.

근친혼 금지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사회의 한 규칙인 한에서 문화적 현상이다.

이 점에서 근친혼 금지는 정확히 인간이 자연에서 문화로 넘어가는 문턱에 위치해 있는 현상이라 하겠다.

- 기존의 설명들은 다소 모호하고 단순하다.

우생학적 설명, 본래적 성향에 입각한 설명. 뒤르켐은 족외혼의 파생물이라 보았다.

그러나 족내혼을 하는 경우도 많다.
레비-스트로스는 관여적 변별(opposition pertinente)이라는 구조주의적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관여적 변별(동북아의 음양 사상도 그 한 형태이다)이 문화의 기본 구조이고, 이 구조에 따라 대칭과 평형이 가능해진다.


교호사촌의 예: 평행 사촌과 교호 사촌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평행 사촌끼리의 결혼은 금지되나 교호사촌의 경우는

허용된다. 왜인가? 남-남, 여-여의 경우 관여적 변별이 허용되지 않으나 남-여, 여-남의 경우는 허용되기 때문이다.
외삼촌의 중요성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외삼촌과 아버지는 서로 관여적 변별을 형성하는 것이다.


신화


- 신화는 레비-스트로스가 전 생애에 걸쳐 몰두한 주제이다.

기존의 신화 이해는

1) 한 사회의 근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2) 자연 현상에 대한 전(前)논리적 해석 방식으로

3) 사회 관계의 반영으로 4) 억압된 감정의 유출로(정신분석학) 제시되었으나, 레비-스트로스는 이 문제 역시 구조적

으로 접근한다.

- 신화란 일종의 메타언어이다.

즉 각 민족의 사유 구조가 투영된 것이다. 따라서 신화의 내용 자체에 어떤 심각한 의미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각 민족이 세계를 바라보는 사유 구조의 형상화인 것이다.

이 점에서 전세계 곳곳의 신화들이 매우 유사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모든 신화들이 특수한 경험이나 내용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인류의 어떤 보편적인 사유 구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비-스트로스는 신화란 "보편적이고 무인격적이고 무시간적인 무의식의 산물"이라고 본다.(그림 1, 2 참조)

- 신화 연구를 통해서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휴머니즘(인간중심주의) 비판을 공고히 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사르트르의 인간중심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세련된 인간주의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그 인간주의는 인생보다 세계를, 인간보다 생명을, 자존심〔자기 사랑〕보다 타자에 대한 존중을 먼저 생각한다"고 말

한다. 이런 그의 입장은 현대 사상의 기본 흐름인 바깥의 사유, 타자의 사유를 잘 나타내고 있다.


현대 사상의 기본 입장은 반(反)주체주의이다.

그것은 곧 궁극적 의미가 주체나 나 속에서 발견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의 작업이 띠고 있는 목적은 "자아를 인류의 우리 속에서 해체하는 것"이고 또 "인류를 자연 속에

통합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 레비-스트로스의 세계는 자연과 문화를 이원적 일원의 구도로, 즉 대위법적 방법에 따라 사유된 세계이다.

그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것을 거대한 대위법적 구조로 파악했으며, 이 점에서 그 자신의 표현대로 초합리

주의(superrationalisme)의 사유를 건설했다.

자연과학자들이 우주를 거대한 수학적 하모니로 보듯이, 레비-스트로스는 문화조차도 그 근저에서는 거대한 수학적

구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특권적 자기 이해를 비판함으로써 인간이란 그 거대한 음악의 한 음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역설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결국 2차 세계대전이라는 극단적인 야만이 표출된 현대 사회, 그리고 타자를 억압함으로써 팽창을

거듭해 온 제국주의 사회가 인간 주체에 대한 지극히 피상적인 이해에 입각해 있음을 폭로하려 한 작업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비판적 음미


-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은 친족체계를 비롯한 미개 사회의 문화가 완벽하게 기호학적으로 코드화되어 있음을 말한다.

이런 생각은 그런 구조가 영원한 전체이자 하나의 순환 체계라는 것, 친족체계를 이루는 요소들이 가역적(可逆的) 관계에

놓인다는 것, 근친혼의 금지는 친족체계의 대칭과 평형을 위한 것이라는 것, 혼인이란 심리적-정치적-경제적 문제이기

이전에 논리적-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말한다.

- 이런 생각의 한계는 현대 사회에서가 아니라 미개 사회 자체 내에서 발견된다.

마샬 살린스는 피지 섬의 한 신화를 제공한 바 있다.
" 최초의 인간은 다만 한 사람이었으며, 늙은 처와 세 딸을 거느리고 비타레비의 서쪽 해안 근처에 살고 있었다. 주

변에는 딸들의 결혼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노인은 처를 죽이고 대신 딸을 처로 맞이하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딸들은 파도에 밀려온 젊고 잘 생긴 이방인을 발견하고, 그를 간호한 후 그와의 결혼을 진행시켰다.

젊은이는 노인에게 식량이 되는 식물의 재배를 답례로 약속하면서 결혼을 신청했다.

노인은 화가 나서 거절하면서, 딸이 탐나면 구체적으로 예의를 갖추도록 요구했다.

젊은이는 자신과 더불어 파도에 밀려온 고래를 생각해내고, 이 땅의 사람들이 고래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이용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고래의 앞이빨 네 개를 뽑아 그것들을 답례품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고래 이빨을 뜻하는 타바라는 이름의 이 젊은이는 신화 가운데의 신화라고 할 수 있을 한 이야기를 꾸며냈다.

숲을 간척해 이 이빨들을 심으면 8일 내에 식량들이 수없이 증산된다는 아야기였다.

이 말에 넘어가 노인은 떨떠름하게 딸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노인은 그 대가로 몇 개의 법을 만들어냈다.

첫째, 이후 고래 이빨은 그 영웅(젊은이)의 이름을 따 타바라고 부른다. 둘

째, 결혼에의 답례로 이 고래 이빨을 주어야 한다.

셋째, 이후 파도에 밀려오는 자들이 있으면 죽여서 먹는다."

- 우리는 이 신화에서 바깥의 문제를 발견한다.

레비-스트로스에게 모든 결혼은 평형의 문제이기 때문에 평형을 이루는 체계 내의 문제이며, 바깥은 고려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신화 -- 중요한 것은 이런 유의 신화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 에서 젊은이는 외부에서 오며,

따라서 교환은 성립하지 않는다.

- 또 하나 여기에서 권력의 문제를 짚어볼 수 있다. 구조주의적 사유에서 권력이란 곧 자리의 분포를 말한다.

그러나 피지의 신화는 "권력이란 바깥에서 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건국 신화에서 권력이란 원칙상 단 한번 발생한다. 따라서 불가역적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주체의 바깥을 보았지만, 그 바깥의 바깥을 보지는 못했다.

- 젊은이와 딸의 결혼은 결코 평화로운 교환과 평형의 관계가 아니라 권력의 관계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혼은 자연의 문제 -- 자연과 문화의 경계선의 문제 -- 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정치적 문제인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비대칭적인 결혼을 실패한 결혼으로 봄으로써 자신의 이론 구조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 레비-스트로스의 한계를 통해서 우리는 구조의 바깥을 생각하게 된다. 구조의 바깥, 코드의 바깥에는 무엇이 있을까?

거기에는 카오스와 욕망이 있다.

구조란 궁극적인 것이 아니다.

궁극적인 것은 카오스와 욕망이다.

구조/코스모스는 이 욕망/카오스를 길들인 것이다.

그러나 욕망과 카오스는 결코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으며 안정된 듯한 구조/코스모스 아래에는 늘 욕망과 카오스가

물결치고 있다.

- 1968년에 발생한 대대적인 혁명은 구조주의적 세계관에 큰 타격을 가했다.

이제 레비-스트로스가 이야기한 구조주의는, 마치 자연과학에서 표면적인 안정성과 법칙성 아래에서 분자들의 요동이

발견되었듯이, 그리고 혼돈으로부터의 질서가 이야기되듯이, 세계의 어느 한 층위, 한 테두리 내에서의 이해로 전락했다.

그러나 구조주의적 사유 양식 -- 주체보다 구조를, 실체보다 관계를, 내용보다 구조를 파악하는 방식 -- 은 이후의 사상

들에도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친다.


참고 문헌

『슬픈 열대』, 한길사
레비-스트로스가 브라질 대륙을 여행했던 결과를 기행문 방식으로 적어놓은 책.

가장 기본적인 책이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교양 서적으로 필독서이다.

『야생의 사고』, 한길사
레비-스트로스 사유의 사상적, 철학적 측면을 볼 수 있는 책.

저자가 사르트르를 비판하면서 메를로-퐁티에게 공감을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김형효, 『구조주의의 사유체계와 사상』, 인간사랑
레비-스트로스의 사상을 매우 자세하게 해설해 주고 있다.


이정우, 『인간의 얼굴』, 민음사, 5장
레비-스트로스 사유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구조주의란 무엇인가2(라캉)


라캉과 거울 단계


-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은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레비-스트로스, 바슐라르 등과 더불어 20세기 중엽에 활동

했다.

구조주의 정신분석학의 대표자로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구조주의적 맥락에서 새롭게 재창조했으며, 거기에 인간

존재에 대한 중요한 철학적 성찰을 가미함으로써 현대 사상의 핵심 인물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 라캉은 소쉬르 언어학의 성과를 정신분석학적 맥락으로 끌어들인다.

지난 강의들에서 보았듯이, 구조주의 언어학의 중요한 원리는 언어의 자의성 및 변별화(diff rentiation)를 통한 의미 형성

이다.

라캉 역시 이런 성과들을 받아들이지만, 그는 한편으로 소쉬르 언어학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고 다른 한편으로 언어의

문제를 정신분석학과 관련시켰다.

- 라캉의 사유는 깡길렘, 푸코가 그렇듯이 정상과 비정상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깡길렘과 푸코가 한 사회, 한 시대가 비정상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어떤 논리, 개념, 장치들, 배경들을 깔고서

그런 구분을 행하는가에 관심이 있다면(인식론적-과학사적 관점), 라캉은 처음부터 모든 인간은 비정상이라고, 더

정확히 말해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아픈 존재인 것이다.

이 점에서 라캉은 레비-스트로스의 투명한 합리주의와 대조된다.

그러나 라캉은 그 아픔이 일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본 점에서 역시 구조주의자이다.

- 정신분석학은 무의식 개념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가 의식하는 세계, 의식으로 하는 경험 아래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내면 세계, 무의식으로 하는 경험에 놓여 있다.

라캉에게서 무의식은 어린 아기가 상징의 세계, 표상의 세계에 진입하면서 형성된다.

그러한 진입 이전의 세계, 즉 아기와 엄마만이 존재하는 세계가 그후의 세계 즉 상징과 표상의 세계에 억눌리면서 무의식

이 형성된다.

즉 우리는 의식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아래에는 어린 시절의 그러한 진입과 더불어 의식 아래로 들어갔으나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실질적으로 주체를 지배하는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 의식 세계가 상징의 세계, 표상의 세계라면 그 세계는 필연적으로 기표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표는 기의와 맞물린다. 그러나 라캉에게서는 소쉬스에게서처럼 기표와 기의가 일대일 대응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존재와 사유의 일치라는 고전적인 전제 위에서 활동했던 소쉬르와 기표와 기의의 미끄러짐, 떠다니는 기표에

대해 이야기한 라캉 사이에는 거대한 담론사적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기표는 그 안에 어떤 경험 내용을 담고 있다.

"눈이 내린다"라는 기표는 눈이 내리는 현상(지시 대상) 및 그 현상에 대한 경험 내용(기의)을 담고 있다.

그러나 라캉은 기표와 기의가 흔히 일치하지 않음을 말한다.

정치가가 "저는 대권 욕심이 없습니다"라고 극구 강조하는 것은 사실 은근히 대권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조심할 것은 이 정치가가 지금 의식적으로 거짓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그 사람은 자신이 욕심이 없다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무의식 속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기표와 기의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에서 선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일치하지 않는가? 바로 무의식 때문이다.

기표는 대권 주자에 나가고 싶지 않다는 그 정치가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지만, 대권 주자의 무의식의 움직임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라캉에게 인간이란, 병자든 아니든, 기본적으로 이런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의식과 기표, 그리고 그 기표가 명시적으로 가리키는 기의의 세계가 있는 반면, 무의식에서의 움직임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 무의식은 그것( a)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그것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라캉은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를 뒤집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고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라캉은 근대 철학의 대전제인 주체의 투명성, 주체가 주어졌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주체의 밑에는 그것이 무의식이

존재하며 주체는 주어진 것이기보다 형성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주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거울 단계

- 어린 아기의 주체 형성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가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라고 한다.

어린 아기는 아직 신체적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 이를 조각난 몸의 환상이라 한다.

이는 생물학적으로는 상상이지만 심리학적으로는 환상이 아니며, 누구나 겪게 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환상은 후에 정신분열증이 생길 수 있는 잠재적 바탕을 이룬다)
이 조각난 몸의 환상은 거울 단계에서 극복된다. 거울 단계에서 아기는 거울에 비친 영상을 보고서(또는 어머니나 다른

아기들에게 비친 자신을 보고서) 동일화(identification)의 과정을 겪는다.

아기는 동일화를 통해서 조각난 몸의 단계를 극복한다. 이 단계가 거울 단계/국면이다.

- 그러나 이 단계는 아직 본격적인 주체가 형성되지 않은 단계이다.

아기는 아직 이자(二者)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때에 아기는 아직 상징의 세계에 들어간 것이 아니며, 엄마와 자기를, 다른 아기와 자기를 혼동하는 전이성(transitivit )의 단계이다.

이 단계는 아기가 자신과 세계를 연속적으로 이해하는 단계이며, 라캉은 이 단계를 상상적 단계라 부른다.
이 단계는 나르시스의 단계이기도 하다.

물 속의 자기 영상에 반했던 나르시스처럼 이 단계의 인간에게는 아직 타인, 상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단계는 매우 행복한 단계이다.

그러나 아기는 이제 이런 상상계로부터 상징계로 건너가게 되며, 이 과정을 통해서 본격적인 한 인간, 주체가 형성된다.

- 아기는 타인의 세계, 사회 세계에 들어가며, 그 결정적인 측면은 곧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다.

라캉은 이 차원을 상징계라고 부른다.

이것은 달리 말해 아기가 이제 기표들의 세계로 진입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기표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오히려 기표들의 장 속에서 주체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주체의 형성은 곧 상징계로의 진입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란 타인과의 관계 하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징계에로의 진입은 자기 소외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제 아기는 상징계라는 타자, 사회라는 타자 속에 들어가면 동일시의 환상에서 깨어나 차가운 자기소외의 장으로 들어

선다.(→ 욕망을 욕망하기 설명)

나르시즘의 단계, 거울 단계는 곧 상상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 사이에 존재하며, 그 단계를 통과함으로써 아기는 이제

자기와 타자를 뚜렷이 구분하면서 하나의 주체로서 정립된다.

그러나 이 구분은 자신을 독립적인 존재로서 세운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징계에서 어떤 자리를 잡는다는 것을 뜻한다.

- 레비-스트로스는 근친혼의 금지야말로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문화로 이행하게 한다고 말했다.

연속적 자연으로부터 불연속적 규범으로 넘어옴으로써 혈연과 결혼이 구분된다.

라캉에게서는 바로 거울 단계가 이 자연과 문화의 돌쩌귀 역할을 한다.

- 라캉의 사상은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함축을 띤다.

주체가 자기동일적 투명성의 존재가 아니라 자기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타자 즉 상징계를 통해 형성된다는 것은 근대적

주체 개념과는 판이한 주체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코기토가 해체된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

- 아기는 이자 관계에서 삼자 관계로 넘어간다. 이 때 아버지가 출현한다. 그러나 이 아버지는 상징계의 은유이다.

따라서 아버지가 없는 고아의 경우라도 상관없다.

아버지는 곧 法의 세계이며 달콤한 상상계와 대비되는 차가운 상징계를 상징한다.

아버지가 등장한다는 것은 곧 아기가 상징계로 진입한다는 것을 뜻한다.

-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건너가면서 균열(die Spaltung)이 생긴다. 그 과정을 통해서 무의식이 구조화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이름이다. 이름이 주체를 결정한다.

"O you are?" 언표행위( nonciation)의 주체와 언표되는( nonc ) 주체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후자의 승리가 발생한다.

그림 보기

- 이 과정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작용한다.

즉 인간의 원초적 욕망인 리비도/성욕이 규범에 종속된다.

오이디푸스가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했듯이, 아기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증오한다.
아기에게 어머니는 하나의 결핍으로서 나타난다. 즉 어머니에게는 남근(phallus)가 결핍되어 있다.

이 때의 남근은 생리학적인 남근이 아니라 아버지의 상징, 법의 상징, 상징계의 상징이다.

어머니가 욕망하는 것이 바로 이 팔루스이다.

아기는 바로 어머니의 팔루스가 되고자 한다.

즉 자신을 팔루스에 동일화한다.

아기는 어머니의 결핍을 채움으로써 어머니와 더불와 충족한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 아버지의 이름(nom)/기표는 곧 아버지의 안돼(non)이다.

즉 아버지/상징계는 금지로서 등장하다. 무엇의 금지인가? 바로 근친상간의 금지이다.

그것은 곧 연속성에 대한 갈망을 불연속으로 떼어놓는 과정이다.

바로 그런 분리함(s parer)이 있어야 자신이 준비되는(se parere) 것이다.
그런 분리를 거부할 때 아버지/법은 제재를 가하게 되며, 이 때문에 아기는 거세(castration) 공포를 느낀다.(여자아이의

경우는?)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아기는 상징계로 진입하게 되며 자아의 이상(lid al du moi)을 가지게 된다(상상계에

서의 이상적 나 = le Je id al와 구별할 것).

즉 프로이트가 말한 super-ego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비로소 주체가 성립한다.

그러나 이 주체는 상징계에 자리를 잡은 주체이지 상식적 의미에서의 주체가 아니다.

- 상징계로 진입하면서 언표하는 주체와 언표되는 주체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한다.

자아가 억압되고 소외되기 때문이다. 이를 원억압(原抑壓)이라 부른다.

이 억압은 의식적 억압과 구분된다. 이러한 억압은 필연적으로 욕구불만(la frustration)을 불러일으킨다.(이 욕구불만도

의식 차원에서의 욕구불만과는 구분된다) 상징과 도덕이 욕구불만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불일치라 하는 것이 나을 듯이 보이는) 부정(la d n gation)의 개념이 등장한다.

이렇게 도덕과 윤리는 균열, 틈, 입벌림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그림 보기

- 신경증과 정신병은 바로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성립한다. 즉 상징계에 대한 거부(la forclusion)로부터 발생한다.

여성이 잘 걸리는 히스테리는 자신이 거세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발생한다.

남성에게서 잘 발견되는 강박증은 반대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지나친 기대 때문에, 즉 스스로를 계속 팔루스로 생각하

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런 병들에 대한 치료는 기본적으로 상징계에로의 정상적인 진입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림 보기


신경증보다 도가 높은 정신병은 치유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의식, 욕망 운명>

- 지난 시간에는 어린 아기가 어떻게 상징계로, 기표들의 세계로 진입하는가를 이야기했다.

이제 이 기표에 관한 이야기를 좀더 진행시켜 보자.

기표, 무의식, 주체

- 주체는 상징계에 들어감으로써, 기표들의 장에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게 되며, 하나의

인간이, 주체가 된다.

물론 인간, 주체라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는 근대 주체철학의 뉘앙스와 정반대이지만.

요컨대 기표의 상징적 질서가 주체를 구성한다.

이것이 라캉의 기본적인 구조주의적 사유 양식이며 그를 레비-스트로스에 이어준다.

그러나 이 상징계의 구체적인 내용은 레비-스트로스와 현저하게 다르다.

- 라캉은 포우의 도둑맞은 편지를 상세하게 분석한다.

- 이 이야기에서 유심히 볼 것은


1) 귀부인, 대신, 뒤팽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주체성은 이 이야기 전체를 구성하는 디아그람(계열들의 장) 속에서 결정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어떤 상징적 질서 즉 기표(편지)의 장이 존재하고 그 기표의 위치에 따라 상이한 의미와 주체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주체가 주어져 있고 그 주체의 의식으로부터 의미가 나온다는 사유와는 전혀 다른 사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신화소, 음식소 등등이 일정한 정적 구조를 형성하는 레비-스트로스에서와는 달리, 라캉에서 구조는 역동화된다.

도둑맞은 편지에서의 가장 핵심적인 기표인 편지는 여기저기를 옮겨다닌다.

이 옮겨다님(d placement)이 시시각각으로 구조의 구조를 계속 바꾼다.

편지는 나타남과 숨음의 유희를 통해서 계속 의미를 만들어나간다. 기표는 부재(不在)의 상징이며, 부재 즉 일종의 빈칸이 의미를 계속 생성시킨다.

루이스 캐롤의 스나크, "오셀로"의 수건, ... . 들뢰즈는 이런 존재를 우발점(le point al atoire)이라는 개념으로 일반화시킨다. 떠다니는 기표라는 개념은 레비-스트로스에서도 등장하지만 라캉에 이르러 그 의미가 변하게 되는 것이다.

기표가 기의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떠도는 것이다(편지의 내용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기표는 기의에 속박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초월성을 부여받는다.


3) 구조주의자답게 라캉은 인간의 추상적인 본질이나 개별적인 본질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관계만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 관계를 기표가 지배한다.

즉 상징계가 지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표들의 장은 인간의 본성 그 자체를 구성한다.
그런데 여기에 욕망의 개념이 등장한다.

인간은 언제나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타인이 자신에게 똑똑한 사람이기를 요구하면, 자신은 타인의 욕망하는

그것을 욕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욕망이 지향하는 것은 곧 기표이다. 훌륭한 사람이라는 기표가 지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상징계, 같은 구조라 해도 레비-스트로스의 경우와 라캉의 경우는 현저히 다르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가 욕망이라는 기름기가 제거된 수학적이고 명징한 구조라면, 라캉의 구조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욕망 이외의 것이 아니다.

라캉에 이르러 이제 욕망이란 특수한 의미, 부정적인 의미를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본성으로, 세계의 성격 그 자체로

대두된다.

- 요컨대 의식으로부터 기의가 생기고 기의를 나타내기 위해 기표가 존재하는 것(현상학의 입장)이 아니다.

기표들의 장이 존재하고, 그 기표들의 장에 의해 주체가 -- 의식적 주체 이전에 무의식적 주체가 -- 구성되고, 그로부터

의식이 형성되는 것이다.

언어의 법칙이 먼저 존재하고 각개인의 무의식이 그 언어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다.

무의식의 언어학

- 무의식이 언어적 규칙성에 의해 지배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언어적 규칙성은 기표와 기의의 일대일 대응이 무너진 상황에서의 규칙성이라 했다.

그렇다면 그 규칙성은 무엇일가?
한 가지 조심할 것은 기표가 떠다닌다고 말했다 해서, 기표와 기의 사이의 어떤 일정한 관계도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 경우 정신분석학을 과학으로 정립하려 한 라캉의 시도는 좌절될 것이다.

라캉은 구조주의자인 한에서 합리주의자이며, 따라서 구조를 좀더 역동적으로 파악하려 한 것이지 합리적 파악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그럴 경우 구조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구조라는 말을 쓰는 한 문자 그대로 어떤 구조를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라캉에게서 기표와 기의는 일정 지점에서 만난다. 그 지점을 잡아내는 것이 라캉 사유에서 합리주의적 측면이다.

그러나 기표는 궁극적 기의에 끝내 닻을 내리지 못한다.

영원히 알 수 없는 기의의 심연이 놓여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이 라캉이 합리주의에서의 한계를 긋는 부분이다.

- 라캉은 이 언어학적 구조들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은유와 환유라고 생각한다.

은유는 압축이다. 불

타다와 사랑하다는 뜨겁다라는 공통 요소를 함께-중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압축(condensation)이다.

또한 은유는 치환을 특징으로 한다.

부자가 되다가 돼지로 치환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꿈이란 바로 이런 은유의 언어로 되어 있다고 했다.

은유는 동시성을 기반으로 한다.

불타다와 사랑하다 그리고 부자가 되다와 돼지 사이에는 어떤 시간적 선후도 없기 때문이다.
환유는 다르다.

환유는 이행이다.

잔을 들다는 술을 마시다의 환유이다.

잔을 들다와 술을 마시다 사이에는 이행/이동의 관계가 성립한다.

환유에서 두 항은 치환되기보다는 조합된다. 그리고 환유에는 시간적 요인이 개입한다.

잔을 들다는 술을 마시다의 앞에 오며, 또 그래야만 환유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 제유는 부분으로서 전체를 나타내는 경우이다. 사각모는 대학을 나타낸다)

- 무의식에서 은유와 환유는 어떻게 작동하는가?(수식 참조)

- 정신착란증과 정신분열증의 예.

- 정신분석학자는 기표들(예컨대 환자의 말)을 분석함으로써(즉 그 언어적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기의들(그런 말들이

뜻하는 환자의 인생)을 밝혀내고자 한다.

그런데 기표들과 기의들의 관계가 매끈한 일대일 대응을 이루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난점들이 발생한다.

라캉은 모든 열쇄는 결국 기표들이 쥐고 있으며, 우리는 기표들의 무의식적 구조를 분석함으로써만 기의들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한다.

- 기의는 기표에 잡히지 않고 계속 미끄러진다.(그림 참조)

물론 분석가는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면서 기의를 찾아낼 수밖에 없다.

분석가는 기표들이라는 낚시바늘을 던져(그림 참조) 기의들을 낚아낸다.

기표들과 기의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그것이 성공한다(카피통)

그러나 기의는 끝내 그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칸트의 물자체처럼, 메이에르송의 초합리적인 것처럼 저편에

머무른다.

이곳을 라캉은 실재계라고 한다. 그것은 언어에 완전히 포획되지 않는 세계 자체, 인생 자체일 것이다.

라캉의 사유는 상상계에서 출발해 상징계로 가지만 결국 실재계에서 끝난다.

아마 인생의 의미는 영원히 기호로 포착되지 않는 그 무엇인가 보다.

타자, 욕망, 운명

- 프로이트는 "그것이 있던 곳에서 나는 생성하리라(Wo es war, soll ich werden)"고 했다.

나의 생성을 좌우하는 것은 무의식이다. 그것도 어릴 때 형성된 무의식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워즈워드)라는 말은 정신분석학에서 또 다른 뉘앙스를 획득한다.
그것은 나=자아에게 타자이다. 다른 것이다. 그러나 그 타자=다름은 나의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나는 내 안에 나의 타자=무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정신분석학이 던져주는 가장 충격적인 메시지이다.

- 타자란 무엇인가? 타자는 언어, 기표의 장소, 상징계이다.

이 상징계는 어린아이가 상상계에서 그곳으로 옮겨갈 때 어린아이의 무의식에 자리잡는다.

어린아이는 상상계의 달콤함과 환상을 포기하는 대신 상징계 안에서 인간으로서, 주체로서 선다. 또 타자란 상호주체

성의 장이다.

상호주체성은 개별적인 주체들 사이에서 추후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상호주체성의 장 내에서만 주체들은 주체들일 수가 있다.

상징계에 들어서는 동시에 개인들의 무의식에는 상호주체성이 각인된다.
헤겔에게서 한 인간의 주체성은 타자를 통해서만 자아 속의 이상한 자아로서의 타인을 통해서만 형성된다(인정투쟁).

라캉에서도 자아는 자신 속의 이상한 자신으로서의 타자=무의식을 통해서만 형성된다.

상징계는 팔루스이며 상징계를 채우고 있는 욕망은 팔루스에의 욕망이다. 팔루스는 욕망의 기표이다.

욕망은 팔루스라는 기표를 통해서 형성된다.

- 그런데 욕망(d sir)은 욕구(besoin), 갈구/요구(demande)와 다르다.

욕구는 생리학적 필요이지만, 요구는 타인에 대한 간청이다.

어린아기는 사탕을 욕구하지만 엄마의 사랑을 갈구한다.

욕구는 사물들을 향하지만 요구/갈구는 사람들을 향한다.
이에 비해 욕망은 보다 근원적인 것이다. 욕망은 어떤 구체적인 맥락에서의 부재가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에서

온다.

결핍은 어린아기가 어머니의 몸에서 분리되어 나올 때 이미 형성되는 인간의 원초적 조건이다.

인간은 그 최초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며 따라서 그 기억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는다.

그 원초적 결핍으로부터 욕망이 나온다.

- 욕망의 근원적 기의는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욕망하는가?

이미 상징계로 들어선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그래서 욕망의 기표는 팔루스이다.

그러나 욕망 자체는 어디에서 오는가?

팔루스를 욕망하는 것은 주체가 되기 위한 것, 인간이 되기 위한 것, 일종의 타협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정신병을 앓기 때문에 거치는 통과의례이다.

그러나 도대체 욕망이 근원적으로 지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실재계를 영원히 알 수 없듯이 이 또한 알 수 없다.

라캉은 이 곳을 신화의 세계라 부른다.

인간은 어떤 쪼개짐으로써 갈라짐으로써 인간이 된다.

로고스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이 동시에 분열의 경험이라는 것이 인간의 얄궂은 상황이다.

따라서 욕망의 근원적 기의는 그 어떤 쪼개짐도, 갈라짐도 없는 그 어디일 것이다.

이런 욕망을 가지고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라캉적인 의미에서의 운명이다.
라캉은 욕망과 욕구 사이에 충동(pulsion)을 넣는다.

충동은 한편으로 욕구와 유사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성애적(性愛的) 측면을 띤다는 점에서 욕구와는 다르다.

충동은 생리학의 영역에서 정신분석학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존재한다.

- 인간이 욕망의 존재인 한 인간은 번뇌의 존재이다. 도덕이나 윤리는 상징계를 받아들임으로써 성립하며, 따라서

인간의 영원한 번뇌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라캉에게 번뇌를 해결하는 길은 우리가 왜 그렇게 번뇌의 존재일 수밖에 없는지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번뇌의 실체를 알게 되며 그로부터의 공허만 몸부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라캉의 사유는 불교와 접맥된다.



구조주의란 무엇인가3(알튀세)


루이 알튀세 : 맑시즘, 구조주의, 인식론


- 맑시즘은 20세기 철학과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 파장은 다양한 방식으로 퍼져나갔다.

레닌은 러시아 혁명을 통해 소비에트공화국을 건설했으며, 이후 트로츠키, 스탈린 등이 그를 이었다.

그람시는 이탈리아 사회주의의 초석을 놓았으며, 이 전통은 오늘날 네그리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독일에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맑시즘을 다소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었다.

중국에서는 마오처퉁에 의한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했으며,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 ... 등등이 잇달아 성립했다.
프랑스의 경우 PCF(프랑스공산당)가 성립했으며 이 기관을 통해 사회주의 운동이 퍼져나갔다.

프랑스에서는 뚜렷이 대조되는 두 종류의 맑시즘이 전개되었는데, 그 하나는 사르트르, 메를로-퐁티로 대변되는

실존적 맑시즘이고 다른 하나는 알튀세에 의해 대표되는 구조주의적 맑시즘이다.

전자가 맑스를 헤겔과 연계시켜 (교조적 맑시즘에 결여되어 있는) 인간 실존에 대한 변증법적 성찰로 나아갔다면,

후자는 맑스를 헤겔과 날카롭게 대조시키면서 후기 맑스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에 초점을 맞춘다.

- 알튀세의 저작들: 『『자본』을 읽다』(I·II, 공저, 1965),
『맑스를 위하여』(1967),
『레닌과 철학』(1969),
『입장』(1976)
『자본』의 연구에는 마셰리, 발리바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함께 참여했으며 알튀세 학파를 이루었다.


과학과 이데올로기


- 알튀세는 실존적 맑시즘이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인간주의적 맑시즘을 비판하고 맑스를 과학적으로 읽기를 원했다.

이런 맥락에서 당대 사상계의 두 가지 주요 성과, 즉 프로이트-라캉의 정신분석학 및 바슐라르-깡길렘의 인식론을

맑시즘과 접맥시키고자 했다.

- 알튀세는 맑시즘 연구에서 당대까지 결여되어 있던 인식론(과학철학)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은 곧 맑시즘을 메타과학적으로 재정초하려는 야심을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맑시즘 철학과 실제 정치를 이으려 했다.
이런 맥락에서 알튀세는 특히 이론(th orie)이라는 개념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을 행했다.

- 알튀세에게 이론이란 언제나 이론적 실천이다. 그에게 이론과 실천의 이분법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론은 실천의 특수한 한 양상이다.

이론은 이론적 실천인 것이다.

후에 (알튀세의 영향을 받은) 푸코가 담론을 그 자체 하나의 실천으로 보았듯이, 알튀세는 "이론 없이는 혁명적 실천도

없다"는 레닌의 생각을 발전시킨다.

혁명 주체가 자연발생적 단계에서 의식화된 단계에로 이행하는데 이론적 실천은 필수적인 것이다.

- 알튀세에게 가장 기본적인 구분은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구분이다(훗날 푸코, 들뢰즈 등의 집중적인 비판 대상이 됨).

이데올로기는 전(前)과학적 이론이다.


이데올로기란 표상과 관념의 집합이다.

즉 맑스가 말하는 상부구조이다. 그리고 상부구조는 하부구조의 산물이다.

이데올로기란 표상과 관념이 하부구조(경제)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 성립한다.

그 점에서 일종의 환상이다. 그리고 환상으로서의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을 정당화하는 도구로서 기능한다.

계급의식이 결여된, 사적 유물론 및 변증법적 유물론의 시각이 결여된 이전의 사상·철학들은 이런 역할을 해 왔다.

- 이데올로기 즉 일종의 허위의식의 형성을 설명하기 위해 알튀세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도입한다.

프로이트와 라캉은 자아가 자신을 떠받치고 있는 무의식을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주체요 중심으로 착각하는 것을

오인(m connaissance)이라고 했다.

인간은 상징계가 자신의 무의식의 언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상징계란 바로 아버지의 이름이요, 법이다.

라캉에게서 은유적 뉘앙스가 강한 이 개념들이 알튀세에게는 보다 현실적인 사회 저체가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회의 무의식적 법칙성을 깨닫지 못한채 스스로를 주체로서 세운다.

즉 사회적 자아의 허위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알튀세의 사유는 한편으로 이 이데올로기/허위의식을 폭로함으로써 부르주아 사회 및 그 사회를 떠받치는 사상들을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 구조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새로운 혁명이론을 제시하려는 사유이다.

여기에서 알튀세 사유의 구조주의적 측면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 알튀세의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그의 스승인) 바슐라르의 인식론이 짙게 깔려 있다.

바슐라르에 따르면 과학과 전(前)과학은 날카롭게 구분되어야 한다.

전과학은 우리가 세계에 대해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 일상세계 속에서 가지게 되는 표상들, 관념들, 편견들,

한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생각들 등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과학적 인식을 방해하는 인식론적 장애물들이다.

과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인식론적 단절을 이루어야 한다(프리스틀리와 라부아지에 비교).
따라서 상식의 세계와 과학의 세계는 엄밀하게 구분된다.

전자가 이미지들의 세계라면 후자는 개념들의 세계이다.

과학은 경험의 세계와 단절됨으로써만 과학으로서 성립하는 것이다.

- 알튀세는 이런 바슐라르의 입장에 의거해 이데올로기인 헤겔 사유와 과학인 맑스 사유를 구분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이 점에서 맑스로부터 헤겔로 나아갔던 프랑크푸르트 학파, 실존적 맑시즘과 대조된다.

- 알튀세는 초기 맑스와 후기 맑스 사이에는 결정적인 인식론적 단절이 있다고 말한다.

초기 맑스는 경험주의 및 헤겔주의의 그늘에 있었고 때문에 그의 저작들에는 인간 소외가 중심을 차지한다.

즉 아직까지도 자본주의에 대한 감상적인 투쟁이나 인간 해방의 개념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845년의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 및 『독일관념론』을 분기점으로 맑스의 사유는 인식론적 단절을 이룬다. 초기의 자유주의적 인간주의는 사라지고 이제 생산력, 생산관계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이어지며, 이전의 인간주의적

사유들은 상부구조, 이데올로기로서 분석된다. 맑스는 (훗날 바슐라르가 정식화했듯이) 인식이란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

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그런 인식론적

통찰 위에서 자신의 정치경제학을 세울 수 있었다.
알튀세는 흔히 지적되는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이 아니라 맑스 사유에서의 인식론적 단절을 지적함으로써 헤겔과

맑스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알튀세의 인식론


- 과학(양자역학, 생화학, 사적 유물론, ... 등등)과 이데올로기의 구분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런 구분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준은 무엇인가?

알튀세는 이 지점에서 大理論(la Th orie), 이론 일반, 실천 일반의 개념을 제시한다. 즉 다른 이론들(과학들 및 이데올로기들)에 비해 메타차원에 존재하는 대이론을 제시한다.

이 대이론은 곧 변증법적 유물론(= 유물변증법)이다. 그렇다면 대이론은 어떤 기준에서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구분하는가? 대이론은 경험주의, 인간주의, 경제주의를 전과학들로서 비판한다.

- 1) 알튀세는 바슐라르를 따라 경험주의 및 실증주의를 통박한다. 경험론은 한 개인의 의식에 생겨난 감각자료(sense-data)를 출발점으로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원자적 개인의 존재, 개인을 의식으로 추상하는 태도, 감각자료의 이론중립성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을 내포한다.

이 지점에서 알튀세는 인식론적 맥락과 정치적 맥락이 사실상 밀접하게 묶여 있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통찰이다.

다시 말해, 인식론에 있어 추상적 개인의 의식에서 출발하는 사유는 정치에 있어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 개념을

함축한다는 것이다.
알튀세는 인식의 원질료는 감각자료가 아니라 일반성 I(g n ralit I)이라 본다.

일반성 I은 감각자료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복합적)관계의 산물이다.

즉 그것은 한 개인이 추상적으로 경험하는 인식질료가 아니라 집단표상으로서의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거기에는 이미

무수한 사회적 현실이 묻어 있다.

인식이란 추상화된 개인의 감각자료가 아니라 일반성 I에서 출발한다.

- 과학은 인식은 이 일반성 I을 비판함으로써 출발한다.

그 비판은 인식론적 비판인 동시에 정치적 비판이기도 하다.

과학적 인식은 일반성 I과의 인식론적 단절을 통해서 일반성 III에 이른다.

즉 이데올로기에서 과학으로 변모된다.
여기에서 알튀세는 바슐라르를 넘어 일반성 I과 일반성 III 사이에 일반성 II를 삽입시킨다.

이것은 깡길렘의 인식론에 기반한 사유이다.


깡길렘은 바슐라르가 인식론적 단절을 강조한 바슐라르와 달리 이전 이론과 이후 이론 사이에 일종의 완충 지대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 완충 지대는 과학적 이데올로기의 지대로서 한 이론의 한계가 드러났으나 새로운 이론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진화론의 예)

알튀세와 푸코는 깡길렘의 이런 입장을 각자의 맥락으로 변형시켜 받아들인다.

이로부터 알튀세의 일반성 II 개념과 푸코의 지식(savoir) 개념이 등장한다.
일반성 II는 일상성 I을 가공한다. 여기에서 가공한다는 것은 일반성 I에 섞여 있는 인식론적 장애물들을 떨어버리는

과정을 말한다.

일반성 II는 이 과정을 뜻한다.

그것은 재구성(reconstruction)의 과정이다.

이 점에서 일반성 II는 과학사적 개념이기도 하고 인식론적 개념이기도 하다.

경제학적으로 말한다면, 일반성 I은 이론적 실천의 원질료이고, II는 생산수단이고, III은 생산품이다.

-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일반성 II가 바슐라르에서처럼 천재들의 놀라운 작업을 통해서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구조주의자인 알튀세는 이런 주체주의적 설명을 거부한다.

역사는 생산양식(= 생산력 + 생산관계)이 변해 온 과정이며, 따라서 생산수단으로서의 일반성 II 역시 이런 지평에서 이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인식의 역사 역시 일반적인 역사의 지평에서 이해되며, 알튀세의 인식론서에는 인식 주체가 소멸하게 된다.

인식 주체 이전에 문제틀(probl matique)이 있다.

주체는 이 문제틀 어디엔가 자리잡음으로써 주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문제틀은 과학적 문제틀로 바뀌는 것이다.

이것은 곧 이론적 실천이 경험적 실천, 기술적 실천을 비롯한 이데올로기적 실천을 가공하는 과정이다.

- 일반성 III이 경험 세계로부터의 단절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경험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인식은 경험으로부터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에로 내려와야 현실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알튀세는 현실의 구체(le concret-r alit )과 사유의 구체(le concret-de-pens e)를 구분한다.

- 이와 같은 인식론에는 바슐라르 못지 않게 스피노자의 사유가 깔려 있다(그래서 바슐라르는 진정한 스피노자주의자로

불린다).

스피노자에게서 사유는 주체의 행위가 아니다.

주체의 사유 행위가 사유의 한 변양태이다.

그래서 알튀세는 스피노자에 입각해 구조주의적 맑시즘을 펼쳤다고 할 수 있다.

- 2) 알튀세는 또한 구조주의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현상학적 인간주의 역시 비판한다.

인간이 의식적 존재이며 주체적 존재라는 생각은 앞에서 보았듯이 환상이며,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 형성되는 생각이다.

하부구조의 작용을 깨닫지 못하고 상부구조의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성립하는 관념론이 인간주의인 것이다.

- 3) 그렇다고 알튀세가 하부구조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이론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또한 경제주의를 비판한다.

여기에서 경제주의란 교조화된 맑시즘으로서 모든 역점을 경제에 두는 스탈린적 맑시즘이다.

알튀세는 이 경제주의를 또한 기계주의라고도 부르며 또 생산주의라고도 부른다. (스탈린이 그랬듯이)

생산력의 증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생각, 그리고 경제적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일방적이고 단선적

으로 결정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런 생각은 인과율에서의 단순함과 역사철학에서의 선형성을 전제한다.

알튀세는 이런 생각을 통속적 맑시즘이라고 부르며 이 맑시즘이 강조하는 경제 결정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알튀세 역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심금들(instances) 중에서 경제적 심급이 최종 심금임을 말한다.

그러나 한 사회의 지배적인 모순이 반드시 경제적인 것은 아니다.

이로부터 알튀세는 중층결정(surd termination)에 의한 모순에 관한 이론을 전개하게 된다


모순과 중층결정


- 알튀세가 교조적 맑시즘의 경제결정주의를 비판했음을 보았다.

그렇다면 알튀세는 어떤 인과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알튀세는 중층결정(surd termination)을 제시한다.

- 알튀세는 모순과 중층결정에 대해 논한다. 헤겔에게서 세계는 정신(Geist) 또는 절대정신의 자기전개이다.

즉 궁극적 실체는 절대정신이며 그 절대정신이 스스로를 조금씩 전개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그 전개는 밋밋한 펼쳐짐이 아니라 (오늘날의 개념으로 하면) 특이성들을 내포하는 즉 마디들을 내포하는 전개

이다.

그 마디들을 헤겔은 계기(Moment)라 부른다.
그런데 이 계기는 다름 아닌 모순들이다. 역사의 원동력은 모순(Widerspruch)이다.

두 개의 모순이 갈등과 투쟁을 일으키고 그 갈등과 투쟁을 통해서 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가 도래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절대정신을 스스로를 전개하는 것이다.

역사란 바로 이렇게 절대정신이 스스로를 펼치는 과정(Geschehen)이다.


알튀세는 이런 헤겔의 사유를 비판하며 특히 그 총체성 개념이 비판된다.

헤겔에게서 시간과 모순이 강조되지만 절대정신 속에 이미 새겨져 있는 각본에 따라 펼쳐지는 시간과 모순은 진정한

시간과 모순이 아닌 것이다.

헤겔에게 세계는 절대정신이 외화되고 소외된 것이며(따라서 헤겔에게서 세계는 근본적으로 마이너스로 표상된다.

기독교와 비교),

따라서 세계의 전개는 적극적인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회복의 성격을 띤다.

그렇기 때문에 계기들과 모순들을 그들 자체로서 다루어지기보다는 이미 짜여진 실타래의 매듭들로서만 기능하게 된다.

- 알튀세는 이런 헤겔의 모순론과 맑스의 모순론을 다르다고 본다.

우선 헤겔에게서 실재는 정신/이성이며 정신/이성의 운동이 역사이다. 그러나 맑스에게서 실재는 물질이며 물질의 운동

이 역사이다(이 때 사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을 구분할 것).

헤겔이 실재로 본 것은 맑스에게서는 상부구조에 불과하다.
헤겔의 총체성은 결국 사회와 역사를 등질화하고 단순화한다.

때문에 알튀세는 사회적 복수성(multiplicit )과 복합성(complexit )을 자체로서 다루어야 한다고 본다.

알튀세는 이런 맥락에서 구조화된 사회 전체(un tout social structur )에 대해 언급한다.

여기에서 사회 전체라는 말은 명목적 의미를 가진다.

즉 헤겔의 총체성과 다르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구조화된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곧 한 사회가 여러 계열들/심급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계열들/심급들의 복수성과 복잡성을 상세히 파헤쳐야

함을 뜻한다.


다른 한편으로 알튀세는 자유주의/자본주의에서 강조하는 개인과 사적 소유 개념 역시 비판한다.

근대 정치철학에서의 개인 즉 소유권을 가진 경제적 주체로서의 개인은 그릇된 개념이다.

각각의 개인은 이미 자본주의 사회 전체의 구조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며, 개인이 모여 사회가 된다는 근대 주체철학적

사유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요컨대 알튀세는 한편으로 헤겔적인 총체성을 비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를 비판한다.

결과적으로 사회와 역사는 형이상학적 총체성이나 개인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미 구조화된, 여러 계열들/심급들이 일정

한 관계들의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 사회는 여러 결정성들(d terminations)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총체이다.

알튀세는 여기에 복수성과 복잡성 외에 비동등성(in galit )을 도입한다.

이것은 상식적인 의미에서의 불평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계열들/심급들의 위상이 동등하지 않음을 뜻한다.

때문에 각 심급들에서의 모순 역시 동등하지 않다.

그래서 결국 알튀세에게 있어 모순은 복합적-구조적-비동등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마오처뚱은 주모순(主矛盾)과 부모순(副矛盾)을 나누었으나, 알튀세는 이런 구분을 좀더 다원화고 좀더 역동화한다.

사회의 여러 모순들은 때로 역할을 바꾸고, 또 때로 교차함으로써 응축되기도 한다.

알튀세는 이를 라캉을 따라 변위(d placement), 응축(condensation)이라 부른다.

- 알튀세는 모순과 중층결정에 대한 이론을 통해서 러시아 혁명을 분석한다.

왜 맑스의 예상과 달리 후진국인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는가?
헤겔적 총체성의 거부와 비동등성, 복수성, 복잡성의 원리에 따라 알튀세는 당대 러시아가 여러 가지 형태의 실천양식

들로 분절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지식인들의 이데올로기적 실천양식, 혁명가들의 정치적 실천양식, 사제들의 종교적 실천양식, 지주들의 봉건적 실천

양식 등이 그것이다.

이런 여러 실천양식들이 중층적 모순을 형성하고 중층결정을 통해서 러시아 혁명을 낳았다는 것이다.

- 그러나 알튀세는 실천양식들, 심급들, 계열들의 복수성, 그리고 맥락에 따라 변하는 비동등성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최종 심급은 경제적 심급이라고 말한다.

즉 경제중심주의의 단순한 인과는 거부하지만, 그럼에도 최종적인 심급은 역시 경제적 심급인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심급은 어떤 방식으로 최종 심급으로서 작동하는가?

경제는 다른 심급들에 단적으로 직접 작용하지 않는다.

마치 프로이트에서 성욕이 직접 나타나지 않고 꿈이나 착오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나타나듯이, 경제도 복잡한 중층결정을

통해서 우회적 원인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구조적 인과를 알튀세는 환유로 묘사한다.

이런 환유적 인과는 말하자면 부재하는 원인의 효과, 결과들 속에서의 원인의 내재이다.

결과들 속에는 경제적 심급이 눈에 보이지 않게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에서의 내재적 인과론과 비교할 만하다.

- 모순과 중층결정에 대한 알튀세의 분석은 현대 사상에서 매우 소중한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여전히 맑시즘을 절대시하는 비과학적인 요소가 깃들어 있고, 또 (복수성과 복잡성의 개념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거의 스피노자의 신의 자리에 해당하는) 결정적인 위치에 놓여 있음을 볼 수 있다.

알튀세의 분석을 충분히 습득하되, 사상적으로 보다 자유로운 입장에서(즉 처음부터 맑스를 전제하지 않고 - 그러나 맑스가 고전적이고 기초적인 사상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보다 다원적이고(즉 분석의 단위를 界로 잡는 것 - 그러나 계급 개념도 여전히 유효하다) 역동적인(보다 최근의

존재론들을 동원한) 분석이 요청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과 주체의 문제


알튀세가 현대 사상에 남긴 또 하나의 결정적인 공헌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는 개념이며, 이 개념을 매개한 주체론

이다. 이 이론은 지금도 살아 있는 하나의 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알튀세는 국가론에서 기구들을 분석한다.

즉 추상적인 권력 개념이나 사법적인 개념들이 아니라 실질적인(material이라는 말의 모든 뜻에서) 기구들을 분석한다.

이것은 후에 등장하는 푸코의 전략들이나 들뢰즈와 가타리의 배치들과도 상통하는 개념이다.
국가는 지배를 위해서 기구들/장치들을 필요로 한다.

기구들에는 억압 기구들과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이 있다.

억압 기구들에는 군대, 경찰, 법 등이 있고,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에는 공장, 병원, 학교, 교회, 언론, 정치, 감옥, ... 등등이

있다.

억압 기구들은 무력에 기반해 있지만,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이하 이데올로기 기구들로 약함)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생각나게 하는 면이 있다.

- 1) 몇 가지 기초적인 사항들의 점검.

- 헤겔의 총체성과 맑스의 사회적 전체를 구별하기

- 하부구조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통일인 경제적 토대이며, 상부구조는 법률-정치(법과 국가)와 이데올로기(종교, 윤리,

정치, 문화, ... )로 구성된다.

- 고전적인 맑시즘에서의 건물의 비유는 부적절하다. → 상부구조의 존재의 본질과 본성을 특징짓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고 필요한 것은 재생산의 관점에 입각해서이다.
재생산의 관점이란 곧 생산 조건들의 관점이다. 여기에서 생산 조건들은 곧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조건들이다.

- 고전적인 맑시즘에서 국가는 억압적 장치이다. 경찰, 재판소, 감옥, 군대, 내각과 행정부 등이 모두 억압 장치들이다.
국가권력과 국가기구들을 구분하자.

국가권력은 계급투쟁의 대상이지만, 국가기구들은 또 다른 분석의 대상이다.

국가권력만으로는 사회와 역사를 분석할 수 없다. 국가기구들을 분석해야 한다.
국가기구들은 억압기구들로 환원되지 않으며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을 고려해야 한다.

- 이데올로기 기구들(AIE)은 폭력에 의해 기능하는 억압기구들과 다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이 있다:

종교 AIE, 교육 AIE, 가족 AIE, 법률 AIE, 정치 AIE, 조합 AIE, 매체 AIE, 문화 AIE.
알튀세는 가족-기구와 법률-기구에 특별한 위상을 부여한다.

가족-기구는 생산과 소비의 단위의 역할을 하며, 법률은 한편으로 억압기구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데올로기 기구이다.

- 하나의 억압기구가 존재하는 반면, 다수의 이데올로기 기구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억압기구가 공적이라면, 이데올로기 기구들은 사적이다.

억압기구가 폭력을 통해 작동한다면, 이데올로기 기구들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작동한다.
그럼에도 두 기구들은 상보적이다.

억압기구는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을 동반하며, 이데올로기 기구들은 억압기구를 동반한다.

폭력과 이데올로기는 항상 함께 작동한다.

무게중심이 다를 뿐이다.

- 한편으로 다양한 이데올로기 기구들은 결국 지배계급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직간접적으로 복속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어떤 계급도 이데올로기 기구들 위에서, 그리고 그것들에 헤게모니를 행사함으로써 국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레닌의 예)
계급투쟁은 이데올로기 기구들보다 상위의 개념이다. 계급투쟁은 하부구조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 2) 이데올로기 기구들의 중요성은 그것들이 생산 조건들의 재생산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산 조건들의 재생산은 생산력의 재생산과 생산관계의 재생산을 포함한다.
생산력의 재생산은 다시 노동력의 재생산과 생산수단들(원료, 고정설비, 생산도구 등)의 재생산을 포함한다.

이 문제를 상세하게 파헤친 것이 맑스의 공헌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알튀세는 노동력의 재생산이 더 이상 공장에서의 문제만은 아니며 다른 국가기구들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고 본다.

학교는 대표적이다.

즉 노동력의 재생산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야만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

여기에서 고전적인 경제적 분석들을 넘어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에 대한 분석의 필요성이 제시된다.

이 분석은 곧 생산관계의 재생산에서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의 역할에 관한 분석이다.

- 알튀세는 (서구)전통 사회의 핵심적인 이데올로기 기구가 가족 기구와 교회 기구였다면, 성숙한 자본주의 사회구성체

에서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기구는 가족 기구와 교육 기구라고 생각한다.

정치 기구가 계속 바뀌어도 오히려 이 기구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교육 기구는 노하우들(언어, 산수, ... )과 지배 이데올로기(도덕, 국민윤리, ... )의 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역할들을

가르친다.

피착취자의 역할, 착취의 대리자 역할, 억압의 대리자 역할, 이데올로기 전문가 역할 등등.

- 3) 이데올로기는 결국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주체로서 호명(呼名)한다.
주체는 각 개인들에 의해 자명한 것으로 인지되는데 이 자명함이야말로 다름 아닌 이데올로기의 효과이다.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인지하지만 과학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한다. 이데올로기적 인지는 결국 오인에 불과하다.
대주체, 국가기구들은 사람들을 소주체로 부른다. 이것을 라캉의 "타인의 욕망을 욕망함"과 비교할 수 있다.




구조주의란 무엇인가4(푸코)


미셸 푸코: 담론, 권력, 주체



푸코는 서구 철학사에 있어 가장 독창적인 인물들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것은 그가 이전의 철학에서 본격적으로 문제화하지 못했던 타자들을 처음으로 철학적 수준에서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푸코의 사유는 현대 철학의 역사에 거대한 혁명을 가져왔다.
푸코는 외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의학과 철학을 함께 공부했다.

병리학 학위를 가지고서 한 때 병원에 있기도 했으나 본격적으로 의사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경력이 반영되어 그의 철학 전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학적 관심사에 의해 짙게 물들어 있다.

생애 후반부에는 열렬한 정치적 투사로 활약했으며, 사르트르를 이어서 프랑스 지성계 전체를 이끌었다.

벵센느 대학에 비판적 성격의 실험대학을 만들기도 했다.

말년에는 꼴레주 드 프랑스 교수를 맡았으며, 에이즈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푸코는 동성애자로 태어났으며 때문에 타자의 입장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개인의 감성이나 행동으로 표출하는데 그치지 않고 철학적 사유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푸코만큼 생애와 사유가 완벽하게 합치하는 경우도 드물다.


푸코의 저작들:


『고전 시대에 있어 광기의 역사』(1961)
『임상의학의 탄생』(1963)
『말과 사물』(1966)
『지식의 고고학』(1969)
『감시와 처벌』(1974)
『성의 역사 1: 지식에의 의지』
『성의 역사 2: 쾌락의 선용』
『성의 역사 3: 자기에의 배려』


병리적인 것과 타자의 사유


- 피상적인 인상과는 달리 푸코 사유 전체를 관류하는 것은 하나의 존재론적 관심사이다.

그것은 곧 존재론적 분절(ontological articulation)의 문제 즉 나눔(division)의 문제이다.
세계가 우리에게 드러내는 가장 원초적인 존재론은 多와 運動이다.

그러나 어떤 다이고 어떤 운동인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로부터 존재론적 분절의 문제가 나온다.

이 문제는 연속/불연속의 문제와도 관련된다.


푸코는 이 전통적인 문제를 매우 새로운 방식으로 다룬다.

푸코는 사회-역사적 맥락에서의 모든 나눔들이 명료하지도 않거니와 늘 순수 인식적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 즉 권력의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

나눔은 동일자와 타자를 가른다.

푸코의 사유는 이 타자의 사유 즉 동일자의 바깥에 대한 사유 또는 동일자와 타자를 나누는 경계선/극한에 대한 사유이다.

- 나눔의 체계는 배제(exclusion)의 체계이기도 하다.

푸코의 사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배제의 문제를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푸코는 바깥의 사유이다.

현상학의 내면성을 거부하는 바깥의 사유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푸코에게는 넓은 의미에서의 구조주의자로서의 측면이

있다. 또 푸코는 나눔을 가능하게 하는 경계선을 사유했다는 점에서 경계선에, 극한에 선 사상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푸코는 타자의 문제를 사유하되 그것을 프랑스 인식론의 전통에서 사유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거꾸로 말하면 푸코는 프랑스 인식론을 전혀 다른 길로 이끌어 갔다고 할 수도 있다.
프랑스 인식론은 늘 과학사를 메타적으로 검토해 온 전통이다.

푸코는 바로 이 전통에 서서 정신병리학, 임상의학, 인구학, 우생학, 통계학, 범죄학, 형법학, 법의학, 정신분석학, ... 등등

의 담론들을 분석해 온 것이다.
다시 말해 푸코는 한편으로 타자라는 문제를 다루었으나, 푸코를 푸코이게 해 주는 것은 그가 그 문제를 담론 분석(더

정확하게는 지식의 분석)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다루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푸코가 다룬 지식들을 유심히 보면 대개 인간의 신체/생명 및 법/권력에 관한 담론들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그의 문제의식이 "권력은 신체를 어떻게 다루는가?"라는 것에 집중되어 있음을 뜻한다.

- 담론을 다룬다는 것은 곧 담론의 형성과 변환을 다루는 것이다.

그것은 곧 한 담론, 또는 여러 담론들의 가능성의 조건을 다루는 것이다.

이 점에서 푸코는 선험철학자이지만, 기존의 선험철학들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요컨대 푸코의 철학은 타자의 존재론이자 담론/지식의 인식론이지만, 그의 존재론도 인식론도 기존의 철학들과는 현저

하게 다른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 푸코는 스승인 깡길렘을 따라, 그리고 그 자신의 실존적 체험을 따라 정상과 병리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그 결과 쓰여진 것이 『광기의 역사』이고, 이 책이 현대철학의 문턱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푸코는 여기에서 우선 정의(definition)의 문제를 다룬다. 광기를 정의한다는 것의 아이러니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광기는 늘 합리성(rationality)의 부정으로서 정의되었으며, 합리성의 규정이 바뀌면 그에 따라 광기의 규정도 바뀌어 왔다.

푸코는 정의의 역사성을 강조한다.

요컨대 광기라는 타자는 합리성이라는 동일자를 가능하게 하는 침묵의 거울로서 작용했던 것이다.

푸코는 이 맥락에서 중세의 나병과 고전 시대의 광기를 비교한다.

- 푸코에게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지정학(地政學)이다.

푸코는 타자의 장소들을 탐구한다. 나병환자 수용소, 제네랄 오피탈, 감옥, 제한구역, 빈민가, 홍등가, ... 등등. 논리적

정의와 지리적 장소는 서로 구분되면서도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 definition의 음미.

- 고전 시대의 병원인 제네랄 오피탈은 병자, 농부, 상이군인, 낙오병, 실업자, 극빈학생, 광인 등이 섞여 있는 heterotopia이다. 인간은 자기 의지에 관계없이 분류된다.

부정의 논리를 통해서 분류되는 것이다.

분류는 늘 권력을 함축한다고 푸코는 말한다.
의사의 성격 또한 특이했다. 그들은 의사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사제들이자 공무원들이었다.

그들은 시대의 질서를 이탈한 사람들을 교화하고 교정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낙인, 화형대, 감방, 지하감옥 등을 관리했다.

푸코는 당대의 경제학적 맥락을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 부르주아 사회의 모랄을 지적한다.

- 19세기가 되면서, 특히 프랑스 대혁명 이후(푸코의 역사적 연구에서 프랑스 대혁명은 항상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이해

된다),

유럽에는 휴머니즘이 도래한다.

휴머니즘은 자유·평등·박애를 기조로 새로운 근대 사회를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푸코는 바로 휴머니즘과 근대성(modernity)이야말로 부르주아 계급이 세계를 보다 "세련되게" 통치하려는 장치

였다고 고발한다.

이 세련됨이란 곧 지식들의 건설로 나타난다.

푸코는 이렇게 형성된 현대 사회를 훈육 사회라고 부른다.

- 이런 맥락에서 푸코는 19세기 이래의 정신병리학 및 정신분석학을 검토한다.

푸코는 근대의 정식의학과 정신병리학이 말하는 과학성의 밑바탕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다양한 장치들을 드러낸 것이다.

- 『임상의학의 탄생』과 『말과 사물』은 고전 시대의 인식 체계와 근대의 인식 체계를 대비해 보여 주는 대표적인 저작

들이다.

푸코는 르네상스 시대의 비합리적 사유 체계, 고전 시대의 합리주의, 그리고 근대 이후의 복잡한 발전을 꼼꼼하게 분석함

으로써, 각 시대의 에피스테메들을 드러내고, 그 작업을 통해 인식의 상대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 『말과 사물』(1966)은 같은 해에 출간된 라캉의 『에크리』와 더불어 구조주의의 절정을 이루는 작품으로 널리 회자되

었다.

푸코 자신은 구조주의자라는 명칭에 대해 마뜩치 않아 했고 또 실제 그를 구조주의라는 틀에 가두는 것은 부당하지만, 적

어도 『말과 사물』 및 그 후에 발간된 『지식의 고고학』(1969)은 푸코 사유의 구조주의적인 측면을 뚜렷이 드러내 주는

작품들이다.


주체철학 비판


- 말과 사물은 유명한 서문으로부터 시작된다. →
푸코는 중국의 백과사전에 대한 이 인용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낸다. →
요컨대 푸코는 주체와 대상의, 인간과 사물의 직접적인 만남은, 적어도 인식의 수준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 사이에 하나의 장, 무의식적 규칙성들의 장, 선험적 질서가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선험적 장(champ transcendantal) -- 객관적 선험 -- 이 사회적, 역사적으로 가변적이라고 생각할 때, 푸코적인

의미에서의 구조주의가 성립한다.
『말과 사물』은

1)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에피스테메(l pist m )의 변환을 그려준다.

2) 그 과정에서 주체의 탄생과 죽음을 논한다.

- 1장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다룬다.

푸코는 이 그림을 분석함으로써 우리에게 오늘날 매우 익숙한 선험적 주체 같은 것은 고전시대에는 없었다는 것을 논한다.

- 2장은 고전시대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그 전단계로서 르네상스 시대의 에피스테메를 논한다: 친화, 조응, 유비,

동감/반감. 르네상스 시대는 상징적 의미가 지배한 시대였다.

- 3장은 고전시대 전반에 대한 논의이다. 봄과 읽음의 관계, 유사성을 통해 본 세계가 무너지는 과정, 언어의 위상 변화

등이 핵심적으로 논의된다.

푸코는 여기에서도 엄밀과학에서의 과학혁명이나 담론공간 하부에서의 경험주의적 담론들이 아니라 그 사이에 존재하는

지식들에 초점을 맞춘다.

- 4, 5, 6장은 고전시대의 지식들, 즉 일반문법, 자연사, 부의 분석이 상세하게 논의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고전시대에는 아직 人間(Homme)이라고 하는 존재는 없었음을 논증한다.

- 7장부터는 2부이다.

7장은 19세기가 되면서 고전시대의 에피스테메가 무너지고 새롭게 등장한 근대적인 에피스테메를 그린다.(3장과 대칭)

칸트에 의한 선험적 주체의 등장, 역사적 시각의 형성과 헤겔 ∼ 베르그송에 이르는 거대 서사의 전개, 근대 문학의 등장,

기호논리학과 해석학의 대립 등이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8장에서는 자연사/박물학에서 생물학으로의 변환, 부의 분석에서 정치경제학으로의 변환, 일반문법에서 비교

언어학으로의 변환을 다룬다.

이제 모든 담론이 말하고, 일하고, 생명체로서 살아가는 인간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 9장은 칸트 이래 실존주의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서구의 주체철학을 다룬다.

푸코는 여기에서 유한성의 문제를 다루며, 이 문제가 어떻게 경험적인 것과 선험적인 것, 코기토와 비사유, 시원의

후퇴와 회귀로 변주되는가를 분석한다.

- 10장은 구조주의를 다루고 있으며, 주체철학의 죽음, 선험적 주체의 죽음을 논한다.

푸코는 『말과 사물』의 부제인 인간과학의 고고학을 처음에는 구조주의의 고고학으로 하려 했다고 한다.

즉 이 책은 결국 구조주의에 대한 메타적 정초의 성격을 띤 책이라 할 수 있다.
구조주의를 통해서 이제 근대적 주체의 죽음이 발생한다.

레비-스트로스는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라는 환상을 해체시켰고, 라캉은 순수 자아라는 환상을 해체시켰다.

알튀세의 사유 역시 인간주의적 맑시즘을 해체시켰다.

푸코는 이제 인간의 죽음을 선언한다.

"바닷가 모래 위에 그려진 얼굴이 파도에 씻기어가듯 인간의 얼굴도 지워지리라."


언표와 담론


- 『말과 사물』이 역사적 성격의 책이라면, 『지식의 고고학』은 논리적 성격의 책이다.

이 책은 푸코가 그 때까지 했던 작업들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작업들을 방법론적으로 정초한 책이다.

그래서 매우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책이다.

- 푸코는 언어를 명제의 관점에서, 상징의 관점에서, 문법의 관점에서, 담화 행위(speech act)에서 보지 않고 언표의

관점에서 본다.

푸코는 언표를 명제, 상징, 문법, 담화 행위 이전에 존재하는, 이것들의 가능성의 조건/장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A, Z, E, R, T의 예.

- 푸코는 언표가 언표일 수 있는 조건으로서 네 가지를 제시한다.


1) 언표는 늘 그 상관자를 가진다.

2) 언표는 늘 주체와 일정한 관계를 맺는다.

3) 언표는 언제나 장을 형성한다.

4) 언표는 물질성을 가진다.

- 보다 조직화된 수준에서의 언표들의 집합은 담론(discours)을 형성한다.

원래 대화를 뜻했으며 또 경우에 따라서는 논구(論究)로 번역되던 이 말이 푸코에 이르러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 『말과 사물』 및 『지식의 고고학』에서 푸코는 대상과 주체가 직접 관계 맺는 전통 철학의 도식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사유틀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지나친 언어중심주의라는 또 정적인 사유라는 한계를 드러내면서, 푸코는 계보학이라는 또 다른

길을 찾아나선다.

타자의 사유=푸코는 『광기의 역사』로부터 『성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타자들이 분리되고 배제 당해 온 역사

를 서술했다.

푸코는 한 시대의 합리성이 어떻게 타자들을 감금했는가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이 점에서 그의 사유는 일차적으로 타자의 사유이다.

담론/지식과 권력=푸코 사유의 본격적인 특징은 그가 타자의 사유를 담론(discours)에 대한 분석, 특히 지식(savoir)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진행시켰다는 점에 있다. 이 점에서 그의 사유는 알튀세, 캉길렘, 세르 등과 통한다.
푸코는 지식을 분석하되 권력과의 연관성 속에서 논한다.

바꿔 말하면 푸코는 권력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논의 대상으로 지식을 선택했다고도 할 수 있다.

주체의 문제=담론, 권력의 문제와 더불어, 아니 이 두 문제를 꿰면서 푸코 사유의 전체를 관류하는 문제는 주체의 문제

이다.

푸코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조건짓는 바탕에 대해 집요하게 사유했고, 인간의 사유와 행위와 언어를 지배하는 객관적

선험 또는 역사적 아프리오리가 무엇인지를 찾았다.

그리고 말년에는 인간이 그런 조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어떻게 스스로를 주체화해 가는지에 관심을 쏟았다.

근대성 비판=푸코 사유를 거시적으로 보면 근대성 비판이라는 성격을 띤다.

또 근대성이라는 것이 서구에서 산출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것은 서구 사회 비판이라는 성격도 띤다.

이 점에서 푸코의 사유는 탈근대-탈서구를 모색하고 있는 비서구 지역의 사유에도 심대한 함축을 가진다.

지식, 권력, 주체=푸코의 첫 번째 대작인 『광기의 역사』(1961)는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광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타자들은 스스로를 스스로가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자들에 의해 규정 당한다.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고전 시대로 넘어가면서 대감금이 발생한다. 푸코는 당대의 합리주의 사상, 절대왕정, 프로테스

탄티즘의 도래, ... 등등이 형성하는 에피스테메 안에서 어떻게 광기가 다루어졌는가를 상세하게 논의한다.
19세기 인권사상(humanism)이 도래하면서 정신병리학을 비롯한 여러 지식들이 등장한다. 푸코는 이것을 발전으로 보기

보다 훈육 사회의 도래, 지식과 권력(특히 생체권력)의 공고한 관계, 부르주아 사회의 특성과 관련시켜 논한다.


푸코의 이 작품은 그에게서 지식, 권력, 주체의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를 이미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광기의 역사』에서의 작업은 2년 후에 출간된 『임상의학의 탄생』(1963)에서도 다루어진다.

이 저작은 『광기의 역사』보다는 더 인식론적인 저작으로서 그 문제의식은 『말과 사물』로 넘어간다.

주체와 언어=『말과 사물』(1966) 및 『지식의 고고학』(1969)은 푸코 사유의 이론적인 측면을 잘 드러내는 저작들이다.

『말과 사물』이 역사적 서술의 형태를 띤다면, 『지식의 고고학』은 논리적 분석의 형태를 띤다.

두 작품은 근본적으로 주체와 언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말과 사물』은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생명, 언어, 노동에 관련된 담론사를 추적하고 있다.

에피스테메를 다룬 대표적인 작품.


르네상스: 해석학과 기호학의 결합. 유사성(ressemblance)을 에피스테메로 봄.
고전 시대: 상징에서 기호로. 가시성의 의미. 분석적 사고.

표상(representation)을 에피스테메로 봄. 자연사(= 박물학), 부의 분석, 일반 문법을 서술.
근대: 기호의 해체. 언어에 따른 여러 가지 담론들의 등장. 생물학, 정치경제학, 비교문법의 탄생. 주체철학의 등장:

유한성의 분석론.
현대: 구조주의의 등장. 선험적 주체의 죽음.


『지식의 고고학』(1969)은 주체 이전의 언어를 논리적으로 탐구하고 있으며, 언표장의 개념과 담론의 개념을 제시

하고 있다.

권력의 계보학=『감시와 처벌』(1974)은 고고학에서 계보학으로 넘어가는 작품이다.

『광기의 역사』에 오히려 가깝다. 근대 훈육 사회를 본격적으로 탐구. 감금의 형태들을 분석함. 이러한 사유는 『성의

역사 1: 지식에의 의지』(1976)로 넘어간다. 성을 지식화하려는 진리에의 의지를 다룸.

새로운 모색=주체의 윤리학=푸코는 원래 『성의 역사』를 6권으로 계획했었다.

그러나 첫째 권을 출간한 1976년 이후 갑자기 푸코는 8년 간의 긴 침묵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세상을 뜨기 바로 전인 1984년 2권인 『쾌락의 善用』과 『자기 돌보기』를 펴낸다.

이 공백은 어떤 의미를 띠는가? 그것은 『쾌락의 선용』에 붙은 매우 긴 서문에서 잘 나타난다.
푸코는 지식-권력의 그물망이 주체들을 어떻게 구성해내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러나 이제 각 개인이 이 그물망으로부터 어떻게 자기를 구성해내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이로부터 주체화(subjectivation)의 개념이 등장했다.
푸코는 자신의 사유를 늘 탈현존시키려(d pr sentifier) 노력했으나, 『쾌락의 선용』에서는 경험을 다시 이야기한다.

경험이란 "어떤 문화에 있어 주체성의 형태들이 지식의 영역들, 규범성의 유형들과 맺는 상관관계"를 의미한다.

달리 말해 푸코는 이 책에서 성을 둘러싼 지식, 권력, 주체의 상관관계를 파헤치고자 했다.


푸코는 여기에서 욕망과 욕망하는 주체에 관한 역사적, 비평적 작업을 시도한다.

이 지점에서 푸코는 욕망론이라는 최근 사유의 흐름에 합류한다.

푸코는 욕망의 해석학, 주체의 해석학, 자기의 해석학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계보학이라는 개념도 여전히 사용한다.

그러나 주체의 윤리학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이것은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 자기의 주체 정립에서의 진리의 놀이들을 다루는 것이다.


푸코는 실존 가꾸기(technologie dexistence), 자기 가꾸기(technologie de soi)도 말한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행동 규칙을 정할 뿐 아니라,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그들의 특이한 존재 속에서 스스로를

변형시키며, 그들의 삶을 어떤 미학적 가치를 지닌, 어떤 양식(style)의 기분에 부합하는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신중하고도 자발적인 실천"이다.

푸코는 이런 실천을 바로 그리스에서 읽어냈다.

그것은 곧 문제구성(probl matisation)과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실천들(pratiques)의 문제이다 .

출처 : 한국 문화의 원류
글쓴이 : 솔롱고 원글보기
메모 : sjanrlfdjtj vjrkqsl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