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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싶은 대로만 믿는 당신…'두번째 인격'에 지배당했군요SNS와 군중심리는 어떻게 여론을 움직이나

doll eye 2021. 10. 8. 12:41

◆ 매경 포커스 / 허연의 인문학이 필요한 시간 ◆

'군중심리(Mob mentality)'라는 말을 고안해낸 프랑스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봉은 "인간에게는 '군중'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인격이 있다"고 선언했다.

이런 경우는 주변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멀쩡하던 사람이 군복을 입고 예비군 무리에 들어가는 순간 이해 못할 행동을 하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축구장에만 가면 훌리건이 되는 일을 우리는 목격한다. 군중은 이런 식으로 은인자중한 '개인'을 질식시켜 버린다.

 


여론이 권력인 시대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군중심리는 더 빠르게 더 강력하게 개인을 파괴하고 여론을 만들어낸다.

일부 대중이 만들어낸 집단적 의견이 전체 사회의 정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결국에는 정책까지 바꾼다.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사회관계망서비스)라는 혁명적 미디어는 상상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하면서 공동 의제를 만들고 여론을 탄생시킨다.

물론 SNS는 다른 어떤 국가나 집단이 하지 못한 민주적 발언대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이미 SNS에 빚을 지고 있다. SNS는 낮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렸고, 부당함을 폭로했다. SNS로 인해 누구나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고,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을 모을 수 있다.

하지만 SNS의 놀라운 민주적 평등성 이면에는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SNS는 군중심리라는 이상 현상에 불을 지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때로는 마녀사냥 같은 비이성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로 둔갑돼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SNS의 양면성을 인식하고 분석하는 일은 이제 우리가 맞이한 새로운 시대의 밑그림을 그려 나가는 일이다.

◆ 여론은 군중심리의 다른 이름일까?



SNS는 이 시대 지식인들로 하여금 여론의 본질에 대해, 여론과 미디어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여론은 뭘까.

'여론(Public Opinion)'은 전설적인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먼(1889~1974)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리프먼의 이 책은 100년 전에 쓰였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의 상황에 대입해도 손색이 없을 혜안을 준다.

리프먼은 이런 결론을 내린다.

"사람들은 대부분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먼저 내린 다음에 본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사실 SNS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그릇된 의제 설정 기능이다. SNS는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아 주거나,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기보다는 대중이 내린 판결을 강화시키는 데 더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물론 그 판결이 옳은지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중이 믿고 싶은 걸 강화시켜주고, 대중이 믿고 싶지 않은 것은 도태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흔히 하는 심리실험 중에 '여론'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실험 대상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음악을 들려준다. 음악을 다 들려준 다음 질문을 던진다.

"이 음악의 연주 시간은 얼마일까요?"

질문에 답변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다르게 진행된다. 한 그룹은 서면으로 비밀 답변을 하게 하고, 한 그룹은 차례대로 일어나서 공개적으로 구두 답변을 하게 한다.

두 그룹의 답변은 충격적일 정도로 다르다. 우선 서면으로 비밀 답변을 한 쪽의 대답은 다양한 편차를 드러낸다. 실제 연주 시간은 3분이었지만 답변은 30초부터 5분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로 다르게 나온다. 하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 구두 답변을 하게 한 그룹은 달랐다. 맨 처음 누군가가 '1분 30초'라고 답변하자, 그 이후 모든 답변이 '1분 30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연주 시간은 3분이었는데도 말이다.

이 심리실험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뭘까. 인간의 시간 측정 능력? 아니다. 인간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외로운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현대인들은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남들에게 비치는 나'를 더 의식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 고독을 두려워하는 인간심리의 분출구 SNS



 

군중심리 이론을 정립한 학자들. 왼쪽부터 귀스타브 르봉, 에버렛 딘 마틴, 월터 리프먼.

시카고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던 데이비드 리스먼은 이미 60년 전에 '타인 지향형' 사회를 예측했다. 대중매체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의 '타인 지향'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마치 SNS 시대를 예견한 듯하다.

"타인 지향형 사회에서 인간은 일정한 가치관을 갖지 않고 타인이나 세상 흐름에 자기를 맞춰 가면서 살아간다. 타인 지향형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타인의 생각이다. 그 타인들이란 자기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고, 대중매체를 매개로 해 간접적으로 접하게 된 사람들일 수도 있다."

타인 지향형 사회는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그 위력이 점점 강해진다. 미디어를 통해 자기가 속한 사회 전체의 흐름을 시시각각으로 관찰하게 되고, 자신의 모습이 노출되면서 커다란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만들어지며, 사람들은 그 구조 안에서 안정을 찾고자 한다. 초연결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완충지대를 없앤다. 사람들은 타인에 의해 구속되고 상처받게 된다.

리스먼 식으로 본다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고도의 타인 지향형 사회다. 이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고독이다. 자기 내부에서 행복을 찾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인간은 늘 불안하고 고독하다. 타인이 곧 지옥이고 천국이다. 자아는 점점 사라져 간다.

다시 리프먼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그가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이라는 말의 발명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리프먼은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가장 큰 폐해를 설명하기 위해 '스테레오타입'이라는 말을 발명했다.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만든 단순한 이미지를 전체인 것처럼 일반화시킨 관념이 바로 '스테레오타입'이다. 대중은 이런 고정관념을 의심 없이 인정하는 습성이 있다. 두려움 때문이다. 이른바 '정보 왜곡'은 이런 식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SNS는 이런 왜곡된 정보들을 모아 '여론'으로 만들어내는 '악마의 도구'가 되기 쉬운 속성을 지니고 있다. 엄청난 속도의 확산성과 검색 기능 등이 SNS를 점점 더 악마로 만든다.

◆ 여론은 태생적으로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리프먼은 여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여론이 건전해지기 위해서는 그것(여론)이 미디어를 위해 조성돼야 한다. 오늘날과 같이 미디어에 의해 여론이 조성돼서는 안 된다."

쉽게 말하자면 이렇다. 여론은 이미 있다. 그 여론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해 세상에 알리는 것이 미디어의 본질이다. 하지만 미디어가 있지도 않은 여론을 만드는 순간 일은 복잡해질 수 있다.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감당 못할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여론은 미디어에 의해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

SNS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다. 그 도구가 천사가 될지 악마가 될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

니체는 군중(群衆)을 '가축 떼'에 비유한 적이 있다. 사실 많은 사상가가 군중을 좋아하지 않았다. 현명하고 합리적인 개인도 군중 속에 들어가는 순간 추악한 장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회학자였던 에버렛 딘 마틴은 '군중행동(mass behavior)'이라는 한 발 더 깊이 들어간 개념을 제시했다. 그의 일갈은 단호하다.

"군중은 자신들의 원칙을 보편적인 요구 사항인 것처럼 이용한다. 군중은 그런 식으로 거짓 우월감을 얻는다. 보수주의자든 진보주의자든 그들은 군중이 되는 순간 광신도 집단으로 전락한다."

◆ 군중심리는 약자들의 손에 들린 보복용 무기였다



마틴의 사유는 군중의 행동이 영웅 숭배로 이어지는 지점에도 주목한다. 영웅 숭배는 결국 군중의 무의식적인 자기 숭배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주 영웅을 만들어낸다. 사실 그 속내에는 자기 숭배가 숨어 있다. 자기의 욕망을 영웅에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조화로운 성찰이 존재할 자리는 없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적으로 간주하는 자기강화(self-reinforcement)만이 일어난다.

지혜롭고 이성적인 줄 알았던 사람이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집단과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야수로 변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는 이미 군중심리의 숙주가 된 것이다. 내 편이냐 아니냐에 따라 선과 악이 판별되는 사회에 민주주의는 없다.

물론 군중은 역사적으로 뭔가를 해냈다. 마틴의 말대로 "군중심리는 약자들의 손에 들린 보복용 무기"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군중심리가 그릇된 위정자나 종교적·정치적 편향에 이용당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데 있다.

교육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마틴은 인간이 '군중'이라는 강박관념 복합체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개인'이 될 때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조화로운 개인이 결국 민주주의를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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