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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doll eye 2021. 4. 6. 17:29

의술도 중요하지만…내 몸 지켜줄 진짜 명의는

훌륭한 의사는 누구인가

빅5 병원·이름난 의사 만난다고
꼭 내게 맞는 치료 되는건 아냐

영상장비·진단기기 발달한 시대
환자의 이야기 잘 들어주고
치료에 최선 다하면 `좋은 의사`

    • 이병문 기자
    • 입력 : 2021.04.06 16:52:34   수정 : 2021.04.06 17: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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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K 포커스 / 100세 건강 ◆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뱅크]

일선 의료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가 주변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명의(名醫)`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동네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믿음이 안 간다면서 자신이 앓는 질환의 `명의가 누구냐`고 물어본다. 지방 대학병원에서 치료하다가 담당 주치의가 서울의 큰 대학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며 명의 추천을 의뢰한 환자도 있다. 그리고 이들은 말끝에 `빅5 병원 의사`를 선호한다는 단서를 붙이곤 한다. 빅5 병원은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가나다순)을 말한다. 빅5 병원에서 진료받는 환자도 담당 의사가 불친절하고 설명을 잘해주지 않는다면서 `대체 명의`를 소개해 달라고 한다.

내 몸이 아프면 누구나 그 분야 최고 명의에게 치료받고 싶어한다. 이는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과 부탁을 받으면 기자는 난감하다. 이들 유명 병원의 진료 예약과 명의를 만나려면 길게는 1~2년, 짧게는 2~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진료와 수술 경험이 많은 의사가 낫다. 그러나 환자의 고집대로라면 명의의 진료는 고사하고 얼굴도 못 보고 죽을 판이다. 대형 유명 병원의 선호는 사실 선입견과 편견, 정보의 불균형에 의해 생긴 현상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재야에 고수가 많은 것처럼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빅5 S병원 교수를 거쳐 K대 병원 의료원장을 역임한 Y씨는 "똑같은 실수를 해도 환자의 반응이 다르다"면서 "빅5 S병원에서는 `그럴 수 있지`라고 관대한 반응을 보이지만, 다른 대학병원에서는 `어쩔 수 없구먼` 하고 못마땅하게 반응한다"고 말했다.

명의의 사전적 의미는 `이름난 의사`다. 우리가 혼동해 사용하고 있지만 의술이 뛰어난 의사의 정확한 사전적 의미의 단어는 `양의(良醫)`다. 쉽게 말해 다른 의사가 할 수 없는 어려운 치료를 할 수 있는 의사가 명의라는 뜻이다. 사실 의사들은 명의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설령 본인이 명의라 해도 부담스러워한다. 수술 성공률이 높아 유명해진 의사라도 환자마다 상태가 모두 달라 확률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술한 암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려면 암 이외의 당뇨병이나 심장병 환자를 받지 않으면 된다. 이런 점에서 의사로서 갖춰야 할 여러 가지 자질을 지닌 `좋은 의사`를 명의라고 보는 게 옳다.

유방암 명의로 손꼽히는 백남선 이화의료원 국제의료사업단장(전 이대여성암병원장)은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지만 전인적인 의료를 실천하고 외과에서 말하는 `신의 손`을 가진 의사가 명의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 단장은 "의학지식, 질환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 교양과 말투, 상대방을 배려하는 소통 능력, 병원 구성원으로서 다른 직종을 배려하는 태도, 남다른 의술 등이 최소한의 명의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계에는 치료를 잘하는 실력파 의사들이 분명 존재한다. 의사라도 다 같은 의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 요즘처럼 영상 장비와 최첨단 진단 기기에 의존하는 의사들이 늘면서 컴퓨터단층촬영(CT) 또는 자기공명영상(MRI)촬영을 하지 않고는 진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질환이 애매모호할 경우 오진을 내리는 의사도 적지 않다. 큰 수술을 해야 하는 암이나 중증질환, 희귀질환은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병원 2~3곳에서 2차 소견(세컨드 오피니언)을 받아보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환자 대부분은 의사가 내리는 진단과 말이 곧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의사들이 고백하는 자서전이나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의사들에게 물어보면 자신도 모르는 질환이 많고 정확한 치료법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실토한다. 환자가 간혹 의사에게 본인 상태나 정확한 병명에 대해 물어봤을 때 대답을 해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는 의사들이 무뚝뚝하거나 불친절해서 답변해주지 않을 때도 있지만 사실 정확히 몰라서 대답을 안 해주기도 한다. 의사는 신(神)이 아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간일 뿐이다. 따라서 의사는 있는 그대로 환자에게 설명해주고, 환자는 의사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명의는 거의 모두 대학병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착시가 있는 믿음이다. 환자들이 아프면 처음 찾아가는 곳은 주로 동네 개원가(개인 클리닉)라는 1차 의료기관이다. 이곳은 주로 간단한 검사와 함께 환자의 말과 증상에 의존해 진단한다. 진료 후에 처방받은 약을 복용했지만 차도가 없으면 환자는 2차 의료기관인 종합병원이나 전문병원, 3차 의료기관인 대학병원을 가게 된다. 종합·전문병원 또는 대학병원 의사는 환자의 1차 의료기관 진료의뢰서와 함께 잘 갖춰진 검사 장비를 통해 병명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병명이 바뀌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환자가 보면 동네 개원의는 무능하고 대학병원 의사는 명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중에 환자를 보면 경과를 파악할 수 있고 증상도 거의 드러나 전체를 보고 판단할 수 있다. 처음에 진료를 볼 때보다 정보의 양도 달라 진단하기 수월하고 치료도 순탄하게 이뤄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나중에 담당하는 의사는 언제나 명의처럼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 의사 나카야마 유지로는 `의사의 속마음`(반니 출간)이라는 책에서 "나중에 진료한 의사가 보기에 처음에 환자를 본 의사는 진단도 틀리고 예측도 어긋나 얼토당토않은 검사나 치료를 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병명을 정확히 진단하려면 그만큼 시간이라는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크다"며 "절대로 첫 의사를 비판하거나 폄하하지 말라"고 말했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한 명의도 개인 클리닉(1차 의료기관)을 열어 환자를 진료하게 되면 오진 가능성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명의는 이름난 유명한 의사가 아니라 자신과 궁합이 맞는 의사다. 아무리 좋은 치료법이라도 만인에게 모두 효과가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만인에게 좋은 명의는 없다.

일본에서 명의로 손꼽히는 아쓰미 가즈히코 도쿄대 의대 명예교수(`의사에게 기대지 않고 사는 법` 저자)는 "어떤 환자에게 명의임에 틀림없지만 다른 환자에게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유명한 대학종합병원의 의사보다 작은 클리닉이나 진료소를 운영하는 의사가 명의로 느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의사와 환자도 따지고 보면 하나의 인간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나무랄 데 없는 경력과 전문지식을 지닌 의사를 찾는다고 해도 의사와 환자가 궁합이 맞지 않는다면 만족할 수 없다. 진찰과 치료를 거듭할수록 만족도가 떨어지면 스트레스가 늘어 건강에 해로울 뿐이다. 물론 의사의 전문분야와 환자의 질환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의 한 연구에서도 "개인에 따라 치료 내용보다 담당 의사가 치료 경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왔다.

만족감을 느낀 환자는 왜 그 의사를 명의로 느끼고 신뢰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이 사람에게 진료를 받고 호전됐다"는 심리적인 안정 때문이다. 특별히 중병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감기처럼 가벼운 병이라도 그 의사에게서 진료를 받고 며칠 동안 조심하라는 따뜻한 말과 함께 처방해 준 약을 복용하면 편안해진다.

명의는 의사 자체보다 환자의 마음속에서 자라난 믿음에서 생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함께 환자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와 위로를 건네는 의사가 치료 자체를 잘하는 의사보다 더 명의로 느껴지는 것도 믿음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공지능(AI)이 의료계에 개혁 폭풍을 몰고 와도 의사의 `공감력`은 더욱 주목받게 될 것이다.

`3분 진료`가 짧다고?…의사에게 하고픈 말 미리 준비를



언제부터 아픈지, 어떤 약 먹는지…
종이에 적어 의료진에 전달하면
정확한 진단 도움되고 시간절약

`30분 대기, 3분 진료`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요즘 많이 개선됐지만 환자의 가장 큰 불만은 긴 대기시간이다.

많은 병·의원에서 진료 예약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환자들은 예약시간에 맞춰 가도 20~30분 이상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미국 `컨슈머 리포트`가 환자 약 4만명, 의사 335명을 대상으로 불만사항을 조사한 결과 1~2위는 각각 30분 이상 대기, 일주일 내 진료 예약 불투명, 3~4위는 의사와 대화시간이 너무 짧고, 검사결과를 즉각 알려주지 않는 것이었다. 미국은 초진 30분, 재진 15~20분인데도 환자들 불만이 많은 모양이다.

최근 들어 일부 대학병원 교수들이 `15분 진료`를 선언하며 진료실 풍경이 바뀌는 추세지만 저부담·저급여·저수가 등 3저(低)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국민건강보험제도 틀 안에서 `3분 진료`는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의료기관은 자선단체가 아니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의료시설에 투자하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이 때문에 수익을 창출하려면 박리다매식으로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볼 수밖에 없는 게 국내 의료시스템의 엄연한 현실이다. 시간에 쫓기는 진료는 의사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얘기다. 의사(교수)는 바쁘다. 진료가 끝나면 컴퓨터에 진료기록을 기재하고 약을 처방하며 다음 외래 예약시간도 잡아야 한다. 또 대기하는 환자의 검사 기록·영상, 질환 관련 서류도 봐야 한다. 조교수나 전공의가 일부 업무를 도와줘도 유명 대학병원 교수는 화장실에 갈 시간조차 없다.

진료는 의사와 환자 간 소통이 중요하다. 소통은 충분한 진료시간이 확보돼야 가능하다. 국내 의료환경을 고려해 의사와 좀 더 많은 대화 시간을 쥐어 짜내려면 환자의 노력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그러려면 병·의원에 가기 전날 여유를 갖고 일목요연하게 용건을 정리해 진료 당일 의사에게 메모지를 전달하는 게 좋다. A4 용지에 어떻게 언제부터 아픈지, 어떤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최근 어떤 음식을 먹었고 어디에 다녀왔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몇 개 항목으로 정리해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의사에게 주면 좀 더 많은 상담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보다 정확한 질환 진단에 도움이 된다. A4 용지를 받아든 의사는 10~20초 동안 읽고 곧바로 진료에 들어갈 수 있다. 3~5분은 짧은 시간 같지만,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 결코 짧지 않다.

명의는 사실 환자가 만든다. 환자가 자신에 대한 증상과 상태를 상세하게 제공하지 않고 진료를 보는 것은 의사에게 "내가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한번 맞혀봐라"는 것과 같다. 국내 의료계에 명의가 많아지려면 의사 본인의 노력과 함께 환자의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이병문 의료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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