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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결정적 다섯 장면.....그때마다 세상이 바뀌었다

doll eye 2021. 3. 23. 23:06

지구 역사 45억년. 박테리아는 35억년 전에 생겨났고 바이러스는 그 이전으로 추정된다. 35만년 전에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 유전자는 8%가 바이러스로부터 왔다. 입자 개수로 치면 인체 구성은 세포가 37조개, 미생물이 세포의 1.3배다. 건강은 마이크로바이옴(미생물 군집)이 있어 유지되는 한편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의 원인이기도 하다. 17세기 `과학혁명` 이후까지도 역병에 대한 이해는 미신에 머물렀다. 재난(Disaster)의 어원은 `나쁜 별(Bad Star)`이었고, 1743년 영국에서 처음 쓰인 인플루엔자(Influenza)도 천상계 행성들의 배열이 지상에 미치는 나쁜 `영향`을 뜻한다. 19세기 후반 박테리아의 존재를 알게 되고 1932년부터 바이러스 실체를 밝히게 되면서 역병의 이해는 과학으로 격상한다. 그러나 첨단 과학 문명이 무색하게도 바이러스에 대한 인간 사회의 공포는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장면1

고대부터 이어진 갖가지 팬데믹은 인구 급감에 따른 사회 변동과 권력 이동, 종교, 문화예술, 가치관을 바꿨고 경제와 무역 통상에 지각변동을 일으켜 세상을 바꿨다. 고대 아테네는 스파르타가 이끈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에서 아테네 역병(장티푸스·발진티푸스)으로 20만~30만명을 잃으면서 패전한다. 로마제국은 안토니우스 역병(천연두·홍역, 165~180년)으로 인구의 25%를 잃었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전쟁터에서 역병으로 죽으면서 팍스 로마나 시대는 저물었다. 이후 성키프리아누스 역병(천연두, 251~266년)과 유스티니아누스 역병(페스트, 541~542년)이 닥친 데다 정치적·종교적 요인이 겹치면서 결국 멸망에 이른다. 로마제국이 역병의 최대 피해국이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유라시아를 잇는 교역의 중심이자 도시화·국제화에 가장 앞섰기 때문이다. 고대 유럽을 휩쓴 팬데믹은 황제 1인 체제의 중앙집권 제국 시대를 무너뜨리고 지방 영주들이 군주로 부상하는 봉건 시대를 열었다.

#장면2

지구 평균 기온이 온화하던 900~1300년 유럽 대륙 인구는 4배가 된다. 그러나 1300년대 소빙하기가 시작되자 가뭄과 홍수, 한파와 폭염, 한여름의 우박 등 극한 기상 현상이 덮쳐 흉년과 기근에다 전염병이 창궐한다. 역사적으로 급격한 기후 변화는 흉작, 기근, 전염병이라는 3종 복합 재앙으로 극심한 사회 혼란과 전쟁까지 유발했다. 14세기 페스트는 인구 대비 최대 사망자를 낸 팬데믹이다. 페스트는 라틴어로 `지독한 병` 또는 `흉한 죽음`을 뜻한다. 1346년 아시아 상선을 탄 쥐벼룩에게 얹혀 온 페스트 박테리아는 3년 사이에 유럽인의 30~60%를 죽였다. 절정기(1346~1353년)에는 세계 인구 5억명 중 유라시아 대륙에서만 최대 2억명이 희생된다. 페스트 치료사들은 까마귀 부리 모양의 대형 마스크를 뒤집어썼는데, 거기에는 효과와는 무관한 허브 치료제가 들어 있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1348년)와 밀라노(1374년)는 항구로 들어오는 배를 40일 동안 격리시키고 검역을 했다. 격리 검역을 뜻하는 쿼런틴(quarantine)은 이탈리아어의 40일(Quaranta Giorni)에서 유래한다. 팬데믹으로 인한 대몰살로 소작농 제도는 와해된다. 일손 부족에 임금 상승으로 지주 계층은 파산하고 도시로 흘러든 소농들은 소상공업 노동자로 변신한다. 봉건제도가 붕괴되고 상업이 활기를 띠자 자본주의가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수도원의 공동생활로 수도사들이 몰살할 지경이 되면서 라틴어를 쓰는 식자층이 줄어들자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쓰는 민족주의 국가가 태동한다. 세제와 화폐제도, 금융 등 자본주의 경제·정치 시스템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한편 서유럽 국가들은 식량 등 원자재를 확보하러 해외로 진출하게 된다.

#장면3

15세기 말 신대륙 정복에 나선 유럽인들은 병력이 아닌 역병 전파로 원주민을 몰살했다.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상륙 때 묻어간 것은 주로 천연두였고 홍역, 독감, 페스트, 말라리아도 섞여 들어갔다. 콜럼버스가 귀환할 때 인디언 여성들이 보복으로 매독을 구대륙에 들여보냈다는 설도 있다. 15세기 말 신대륙 인구는 세계 인구의 10%인 6000만명 정도였으나 콜럼버스 상륙 이후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95%가 사라진다.

1529년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즈텍 제국 수도인 테노치티틀란(현재 멕시코)을 함락한 것도 황제를 비롯해 면역이 없던 아즈텍 종족만을 골라 죽인 천연두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치사율은 70~90%였다. 당시 2000만명이던 아즈텍 인구는 100년 만에 160만명이 된다. 1531년 스페인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병사 168명이 잉카제국의 8만 군대를 무찌른 것도 천연두 바이러스가 해치운 일이다.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은 1562년 천연두를 앓고 곰보 자국 때문에 납과 초산을 섞은 짙은 화장을 해 납에 중독됐다. 그래서 탈모 때문에 붉은 가발을 썼다. 청나라는 세조 순치제가 1661년 천연두로 죽고 이미 곰보가 된 셋째 아들 강희제가 8세에 즉위한다. 한편 조선에서는 초기부터 두역(痘疫·천연두)이 발생하고 17세기 소빙하기에 경신대기근(1670~1671년)과 을병대기근(1695~1696년)으로 260만명이 희생된다.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에 다시 흉년과 괴질(콜레라·두역)로 250만명이 희생된다.

근대사는 천연두 외에 페스트, 콜레라, 독감, 결핵, 말라리아, 홍역 등의 대유행으로 얼룩졌다. 1만여 년 전부터 소·돼지를 가축으로 삼으면서 동물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았고 다시 사람끼리 감염되는 단계로 진화한 것이다. 3세기 동안 중화제국의 위세를 떨친 명나라(1368~1644년)는 1641년 페스트가 창궐한 데다 1644년의 기온 급강하로 흉년이 들어 인구 20~40%가 희생된다. 부정부패로 기아와 질병을 다스리지 못한 명 왕조는 농민 반란과 만주로부터의 청나라 침략에 무너진다. 현재도 발생하고 있는 페스트는 1930년대부터 항생제로 치료가 가능해졌으나 다시 항생제에 대한 내성이 복병이 되고 있다.

감염병은 19세기 미국 지도를 바꿨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선에 실어 신대륙으로 나르면서 황열병도 함께 들어간다. 아이티에서 노예 반란이 일어난 뒤 1801년 나폴레옹은 프랑스 병력을 파병한다. 그러나 황열병으로 병사 5만명 중 3000명만 살아남아 귀국한다. 나폴레옹은 식민지 팽창의 야망을 포기하고 1803년 프랑스령 루이지애나를 1500만달러에 미국에 팔아넘긴다. 역사상 최고 수익을 올린 평화적 영토 거래로 미국 국토는 거의 두 배가 되고 서부 개척 시대가 개막된다.

#장면4

역사상 최단 기간에 최대 사망자를 낸 팬데믹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9년) 말의 스페인 독감이다. 1918년 3월 미국 캔자스시 병영에서 발생해 미군의 참전으로 유럽으로 전파된다. 그리고 1년 반 남짓한 기간에 세계 인구 18억~19억명 중 5억명을 감염시키고 5000만~1억명을 희생시켰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도 1918년 무오년 역병으로 인구 1680만명 중 756만명이 감염돼 14만명이 희생됐다. 팬데믹 관련 통계는 들쭉날쭉한데, 최근 연구일수록 숫자가 커지는 경향이다. 스페인에 독감 바이러스가 들어간 것은 1918년 11월 프랑스로부터였다. 최초의 발원지가 아님에도 `스페인 독감`이 된 것은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은 전시 보도 통제를 했으나 중립국이던 스페인만 독감 보도를 했기 때문이다. 1918년 팬데믹의 병원체는 1997년에야 알래스카 브레빅에서 여성 시신의 폐 조직으로부터 바이러스 RNA 조각을 채취해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H1N1 바이러스로 명명됐다. 조류 독감 바이러스가 돼지와 사람에게 옮겨온 것으로 결론 지었다. 최초의 독감 팬데믹은 1580년 아시아에서 발생했고 1700~1900년 사이에 16차례 대유행했다. 아시아 지역이 위험한 이유는 인구 조밀 상태에서 닭, 오리 등 가금류와 가까이 생활하기 때문이다.

1918년 팬데믹의 미스터리는 한둘이 아니었다. 몇 주일의 짧은 간격으로 1차, 2차, 3차 파동이 발생한 것, 2차 파동에서 눈, 코, 귀에서 피가 흐르는 등 중증으로 악화된 것, 20대 청년들이 많이 희생된 것 등. 그 이유는 바이러스 변이와 여러 바이러스 사이의 융합으로 독한 변종이 나타났고, 신무기로 사용한 독가스가 증세를 악화시켰으며, 영양실조에 결핵이 겹쳤고, 면역 과잉반응의 사이토카인 폭풍이 일어났을 가능성 등이 제시됐다. 독감 후유증으로는 전례 없이 신경정신과 질환이 보고됐다. 특히 베르사유조약 협상에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1919년 4월 독감에 걸린 뒤 독일의 전쟁 배상금을 60억파운드로 결정했다는 일화가 미스터리다. 당초 "악에 대해서는 응징해야 하나 재기할 기회도 줘야 한다"던 그가 딴사람처럼 변해서 조르주 클레망소 프랑스 총리 주장대로 막대한 배상금을 책정했고, 그 때문에 경제 파탄이 또다시 전쟁을 유발할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장면5

2020년 지구촌을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은 2021년 3월 중순 기준 세계 인구 78억명 중 1억2000만명의 확진자에 270만명의 희생자를 냈다. 21세기 팬데믹은 고대 바이러스부터 신종 바이러스까지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고 인수공통 감염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언제냐의 문제일 뿐 팬데믹은 계속 오게 돼 있고 기후 위기와 연관된다. 기후 위기는 환경 오염, 생태계 파괴, 자원 위기, 경제 위기, 보건 안보와 맞물린 복합 위기다. 이번 사태는 그 복합 위기가 거대화·구조화되고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게다가 초융합·초연결·초불확실성의 세상인지라 한 부문에서의 위기가 순식간에 파도처럼 연쇄적으로 번진다.

코로나19 이후 세계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예측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일이다. 이번 팬데믹 사태는 그동안 더디게 진행되던 디지털 전환을 가속시켰다. 앞으로 성장 엔진 확충은 이미 진행되고 있던 4차 산업혁명의 산업 기술에서 출구를 찾게 될 것이다. 산업의 스마트화와 구조 변화, 글로벌 네트워크 다변화가 진행되고, 글로벌 가치사슬의 재구축으로 지역적, 국가 중심적 생태계로 전환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글로벌 복합 위기 극복의 길은 있는가. 4차 산업혁명의 기술 혁신이 글로벌 리스크 해소에 기여하고 국제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때 인류 문명이 지속가능하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지구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숙주(지구)를 위협하는 바이러스에 다름 아니다. 21세기 과학기술 문명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숙주의 생명이 끝남으로써 바이러스도 함께 사멸하는 공동 운명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을 것이다.

 

 

[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 전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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