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통신이 무엇이기에 과학기술계에서 이토록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양자통신 시대가 도래하면 해킹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통신이 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정보통신 분야 패러다임이 확 바뀐다는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들의 움직임을 다루는 양자역학에서는 크게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첫 번째가 양자 얽힘, 두 번째가 양자 중첩이다. 과학자들은 이 특성을 활용해 양자통신은 물론 양자컴퓨터도 개발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먼저 양자통신은 양자 얽힘을 이용한다. 양자 얽힘이란 두 개 입자가 강한 상관성을 가지면 아무리 멀리 떨어뜨려놔도 한쪽이 반응하면 다른 한쪽도 즉각 반응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파이온'이라는 소립자를 두 개로 쪼개면 전자와 양전자로 나뉜다. 이때 전자와 양전자는 짝을 이루는 얽힘 상태가 되면서 전자의 스핀(각운동량)이 위를 향하면 동시에 양전자의 스핀은 아래를 향하게 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양자 얽힘 관계에 있는 두 입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향을 미친다. 한상욱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양자정보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중국 묵자위성은 양자 얽힘을 이용해 서로 다른 곳에서 비밀키를 나눠 갖고, 이를 이용해 양자정보를 송수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자위성 묵자는 베이징에 있는 싱룽 기지국과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그라츠 기지국에 양자 얽힘을 이용해 양자 암호키를 공유했다. 세 곳의 양자암호는 얽힘 상태가 돼 연동되고 빛 알갱이인 '광자'에 정보를 담아 전송하는 방식이다.
양자통신이 갖고 있는 또 다른 장점은 여기서 나온다. 광자 한 개에 정보를 담아 전달하는 것이다. 정보를 전달할 때 송신자와 수신자는 일정한 형태를 갖고 있는 편광필터와 측정필터를 이용한다. 편광필터는 수평·수직·대각선 형태다. 광자가 이를 통과하면 일종의 진동을 갖는다. 즉 수평 형태 편광자를 통과한 광자는 수평 형태의 진동을 띤다. 수신자는 측정필터를 통해 이를 수신한다. 만약 대각선 형태의 진동을 갖고 있는 광자를 보냈는데 수신자가 수평·수직 형태의 측정필터로 측정하면 수신 정확도는 50%로 떨어진다. 수신자와 송신자는 주고받은 광자 중에서 편광 방식이 같은 광자만 추려내 정보를 확인한다. 만약 중간에 누군가 도청을 하기 위해 필터를 이용하게 되면 광자 상태가 변하게 되고 이를 수신하는 수신자 입장에서는 오류율이 증가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상욱 책임연구원은 "오류율이 11% 이상이면 누군가 도청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광자는 중간에 누군가 확인하려고 하면 정보가 깨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도청 시도가 있으면 암호키 자체가 손상되면서 내용을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양자 암호는 무작위로 생성되고 딱 한 번만 읽을 수 있어 이를 공유하고 있는 송신자와 수신자만이 정보를 읽을 수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양자통신은 복제나 감청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차세대 통신기술로 꼽힌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금융과 군사 등 분야에 양자통신을 적용하려고 시도하는 이유다.
양자통신과 달리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방식인 디지털 신호는 도청에 취약하다. 디지털 신호는 빛이 있으면 '1', 빛이 없으면 '0'으로 정한 뒤 이 신호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 신호에서 빛은 수십만 개 광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과정에서 도청자는 수백~수천 개 광자를 빼낸 뒤 이를 해독하는 것이 가능하다. 송·수신자는 자신들이 주고받은 신호가 도청을 당했는지도 알기 어렵다. 한상욱 책임연구원은 "양자통신 기술은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으로 이야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보 보안을 위해 반드시 개발해야 하는 기술"이라며 "기술 종속을 막기 위해서라도 기초부터 꾸준히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자 중첩은 꿈의 컴퓨터로 불리는 '양자컴퓨터'에 적용된다. IBM, 구글, 인텔 등 글로벌 IT 첨병들이 양자컴퓨터를 시장에 내놓기 위한 주도권 다툼에 뛰어들고 있다. 학술지 '네이처'는 양자컴퓨터를 2018년을 이끌 주요 기술로 꼽았고, 미국 환경청(EPA)은 2024년께 관련 시장 규모가 1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에는 양자컴퓨터가 실제 구현되면 비트코인 채굴은 식은 죽 먹기가 되고, 비트코인 암호화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와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계산 속도가 특징인 차세대 컴퓨터다. 1946년 등장한 세계 최초 디지털 컴퓨터 '애니악'은 단순한 문제 해결조차 버거워했다. 그러나 컴퓨터는 진화를 거듭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PC 모습을 띠게 됐고, PC보다 계산 속도가 수백~수천 배 빠른 초고속·초대형 슈퍼컴퓨터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양자컴퓨터가 상용화하면 이 슈퍼컴퓨터가 150년 걸려 계산할 양을 단 4분 만에 끝마칠 수 있다고 한다.
넘어야 할 산은 이게 끝이 아니다. 오류를 잡아내는 것도 큰 숙제다. IBM은 최근 5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시험해본 결과 여전히 시스템 오류가 발견됐다고 밝힌 바 있다. 양자 프로세서 칩이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완전하게 격리돼야 하는데 큐비트가 소음에 민감하다보니 조건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연산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조영욱 선임연구원은 "양자컴퓨터도 고도로 복잡한 연산을 하다보면 실수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오류를 보정하려면 또 다른 큐비트 기술과 비용이 추가로 필요해진다"며 "이게 완성돼야 비로소 결점을 견디는(fault-tolerant) 양자컴퓨터가 탄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양자컴퓨터 연구허브인 '국립양자기술 프로그램'에 따르면 양자컴퓨터가 200큐비트급 정도 되면 제한적이나마 응용 가능한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양자컴퓨터가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AI)을 비롯해 기계학습, 신약 개발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 학습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고, 복잡한 물질의 분자 구조나 화학 상호작용도 빠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스마트폰·TV·서랍 속의 USB…알쏭달쏭 양자원리 우리 주변에 있었네
1900년 가을, 당시 42세였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빛에너지는 연속적이지 않고 덩어리로 돼 있다"며 '양자화된 세상'을 처음 이야기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들의 움직임을 다룬 '양자역학'의 출발을 알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어렵다.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너무 어려워서 나도 잘 모른다"고 말한다. 미국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자 과학 대중화에 앞장섰던 리처드 파인먼 역시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양자역학이 어렵다 보니 이를 일반인에게 설명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과학자들에게 "일반인을 위해 쉽게 설명해달라"고 부탁하기 미안할 정도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양자역학은 이미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든 상태로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돼버렸다. 과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가 가까이 두고 쓰는 스마트폰, TV 등의 전자제품이 대표적이다. 반도체는 전기가 통하는 도체와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의 중간 형태를 띤 물질이다. 도체가 되려면 물질을 이루고 있는 원자에 존재하는 전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물질은 도체와 부도체로 나뉘지만, 불순물 등을 첨가하면 부도체를 도체로 만들 수 있다. 양자역학을 이용해 이 원리를 파악한 과학자들은 1947년 트랜지스터를 만들어냈다. 트랜지스터는 스마트폰을 비롯해 우리가 쓰는 모든 제품에 사용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화학제품 역시 양자역학 없이 만들어질 수 없다. 수많은 원자, 분자들이 결합한 화학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자들의 특성을 알아야만 한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원자들은 특정한 개수의 전자만을 가질 수 있다. 리튬이 전자 3개, 베릴륨은 전자 4개, 붕소는 전자 5개 등이다.
양자역학 창시자로 불리는 에르빈 슈뢰딩거는 1944년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생명 역시 원자나 분자 수준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1953년 DNA 분자구조를 밝혀냈고 현재 뇌과학을 비롯해 유전공학 등 수많은 생명공학 분야에서 양자역학이 적용되고 있다.
[원호섭 기자 /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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