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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진경 (3) - 포스트구조주의.오리엔탈리즘..페미니즘.현상학

doll eye 2018. 1. 29. 01:36

9. <포스트구조주의> - 관계 속에도 차이는 있다


하나의 틀에 모두 묶는 건 또다른 억압… 타자를 솎아내는 서구의 이성주의에 주목


해체주의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데리다를 포함해서 푸코, 들뢰즈와 가타리, 그리고 후기의 라캉 등이 보통 포스트구조주의에 대해 언급할 때 거명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 사유의 원천에서나, 그 경로에서나 많이 달라서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결코 편안하지는 않은 인물들이다.

푸코는 구조주의자로 시작하지 않았지만, 66년경에는 대표적인 구조주의자가 되었다가, 68년을 거치면서 구조주의에서

벗어난다.

구조주의자였던 적이 없는 들뢰즈는 니체주의자로 시작했는데, 한때는 스피노자주의자로서 구조주의에 호의적으로 다가

갔지만, 70년대 들어와 다시 거기서 멀어진다.

하이데거를 사유의 원천으로 삼은 데리다 역시 구조주의자였던 적은 없는데, 68년 이후 구조주의의 가장 명시적인 비판가로서 부상하며, 이후 해체주의라고 불리는 자신의 영향권을 형성한다.

레비 스트로스와 함께 가장 적극적인 구조주의자 가운데 하나였던 정신분석가 라캉은, 구조주의가 퇴조할 때 거기서 발을 뺐다.

그렇다면 포스트구조주의란 어떤 것인가?


먼저 포스트구조주의는 구조주의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관계 속에서 포착한다.

그러나 구조주의와 달리 관계들의 동형성을 찾으려 하지 않으며, 다양한 현상들의 심층에 숨어 있는 어떤 구조를 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형성이나 동일성으로 귀속되지 않는 차이를 사유하려고 한다.

따라서 관계들의 다양성을 어떤 하나의 척도나 구조로 귀착시키는 게 아니라, 그 다양성 자체도 조그마한 변형 하나만으로도 또다른 다양체로 변이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동일성에 귀속되지 않는 차이 찾아



예를 들어 날아가는 공이 있다. 이 공의 의미는 무엇일까? 공이라고? 맞다, 공은 공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건 동어반복이고, 따라서 틀릴 위험은 없지만, 그 공의 의미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흑인은 흑인이다”를 반복할 뿐이다.

그런데 만약 날아가는 공 앞에 시원하게 뻗은 한국 선수의 발이 있고, 그 공의 뒤에 다른 한국 선수의 발이 연결된다면

어떨까?

이때 우리는 그 공의 의미를 안다. 흔히 그걸 ‘패스’라고 한다. 반면 그 공이 ‘한국 선수의 발→공→일본 선수의 발’과 같은

계열을 그린다면 어떻게 될까? 알다시피 ‘패스 미스’다.

여기서 공의 의미는 앞의 것과 전혀 다르다.

일본 선수의 발 대신에 골 그물과 계열화된다면? 맞다, ‘골인’이다.

그런데 그 골대에 한국의 골키퍼가 다시 추가되며 계열화된다면? 애석하게도 ‘자살골’이다.

이처럼 공의 의미는 그것과 이웃하는 다른 것들과 어떻게 계열화되고,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의해 달라진다.

다시 말해 이웃한 항의 차이, 이웃관계의 차이에 의해 사물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차이’란 바로 이처럼 어떤 것이 의미를 갖게 하며, 또 그 의미를 다르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다.

따라서 모든 것은 관계에 의해, 관계 속에서 위치에 의해, 혹은 이웃관계에 의해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보통 ‘관계주의’라고 부르는데, 이는 이들이 구조주의자들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구조주의자들과 달리 이렇게 만들어지는 계열들 사이에서 동형성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살골’의 경우처럼 다른 항이 하나 추가되는 것만으로도 기존의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이 된다는 게 이들에겐 중요

하다.

그래서 이들의 화두는 ‘차이’다.

동일성으로, 혹은 동형성으로 소급되지 않는 차이 그 자체, 그리고 그것을 통해 생성과 변화를 사유하는 것.

하지만 주의할 것은, 이 경우 차이라는 개념은 흔히 자유주의자들이 그러하듯 너와 나의 차이, 한국과 일본의 차이, 혹은

공과 발의 차이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이런 식의 차이 개념은 분류학적 과정을 거쳐 결국은 다시 하나의 정점에, 동일성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A와 B가 접속되어 제3의 것인 C가 된다는 것이고, 이처럼 새로운 것의 생성을 포착하게 해주는 차이 개념이다.

포스트구조주의에 중요한 또 하나의 화두는 ‘타자’(others)다.

타자란 동일자(the Same)의 반대다.

동일자란 관련된 대상들을 하나의 동일한 질서 속으로 끌어들이며 동일화하는 것이다.

반대로 타자는 거기서 배제되고 억압되는 것이다. 가령 푸코는 이성과 광기에서 이런 양상을 보여준다.

르네상스시대에 광기는 브뤼겔의 그림에서 보이듯이, 혹은 세계를 떠도는 돈키호테가 그렇듯이 특별한 존재- “또라이” -로 취급받긴 했지만, 다만 특별한 삶의 방식의 일종으로 간주되었다. 돈키호테도, 미친 햄릿도 갇히지 않았다.


타자화는 자신을 드러내는 방편이 아닌가



그러나 17세기에 들어오면서 이들은 부랑자나 빈민, 게으름뱅이, 범죄자 등과 더불어 ‘종합병원’이라는 간판이 걸린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크다는 이유로 풍차를 거인과 동일시하고, 붉다는 이유로 포도주를 피로 간주하는 돈키호테식의 사고방식은, 세상을 떠돌며 사회 안정을 위협하는 부랑자와 마찬가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된 것이다.

이들이 바로 ‘타자’다. 이성이란 이 갇힌 자들이 표시하는 정상성의 경계를 통해 정의된다.

광기가 아닌 것, 부랑이 아닌 것, 게으름이 아닌 것 등등이 이성의 외연이다.

만일 이들이 없었다면 이성은 어떻게 자신을 유효하게 정의할 수 있었을까? 이처럼 근대 서구의 이성(동일자)은 광기라는 타자의 배제와 억압을 통해 탄생한 것이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동일성(identity)을 확인하는 것이다.

사실 레비 스트로스 역시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비서구인들에게 가해졌던 야만적 폭력에 대해 분노하며 지적한 바 있다

(‘슬픈’ 열대).

그리고 서구의 ‘문명’을 다른 세계의 ‘야만’과 비교하여 우월하다고 하는 생각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그렇지만 그는 야생적 사유에 대한 선호에도 불구하고, 서구와 비서구 문화를 상대화하고 등가화하는 데 머물렀으며,

결국 하나의 구조적 동형성으로 그것을 묶음으로써 또다른 동일자를 만들어냈다.

동일자의 이면에는 언제나 그로 인해 배제되고 억압되는 타자가 있다고 보는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이 구조주의와 다시 달라지는 지점이 여기다. 그들은 이렇게 질문한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혹은 ‘신대륙’의 모든 문화를 ‘야만’으로 타자화함으로써 자신의 문화를 ‘문명’이라고 정의한 것은 아닌가? 문명이란 이름으로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타자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아가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이성이라고 불리는 자신의 문화 내부에서, 여성과 남성을 가르는 남성적 동일자 내부에서,

나아가 동일자가 작동하는 모든 영역에서 타자에 대한 이러한 사유를 작동시킨다.

그것은 차이를 문명화하고 동일화해야 할 어떤 것으로 만드는, 혹은 동일화할 수 없는 차이, 허용할 수 없는 차이를 배제

하고 억압해야 할 타자로 만드는 모든 종류의 사유방식에 대한 비판이다.

여기서 우리는 타자의 문제가 차이의 문제와 동일한 화두였음을 알 수 있다.


동일화 논리가 지배하는 서구적 사유에 균열

 

물론 포스트구조주의자들 사이에도 커다란 차이가 있다.

먼저 푸코나 들뢰즈/가타리는 구조주의자와 달리 기호와 상징계에 대해 일차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푸코에게 일차적 관심사는 형법학이나 행형학이라는 텍스트가 아니라 감옥이라는 물질적 장치, 팬옵티콘이라는 건축적 장치다.

들뢰즈는 기호적인 것들의 독자성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것을 언제나 기계적 배치라고 부르는 물질적 현실에 귀속시킨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기호나 기표가 아니라, 그러한 장치나 배치를 통해 작동하는 권력이다.

반면 데리다는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물론 이 말은 문자로 쓰여진 것만이 존재한다는 말은 아니다.

반대로 그는 ‘원자폭탄도 텍스트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보이듯이 그는 원자폭탄이나 감옥을 하나의 텍스트로서 다룬다는 점에서 그에게 일차적인 것은 텍스트고

기호며 의미다.

푸코나 들뢰즈는 “기표의 독재를 깨부수자”고 말하는 데 반해, 데리다는 독재도 기표요 텍스트라고 보는 셈이다.

어떻든 차이와 타자에 대한 이러한 사유는 ‘통일’과 동일화의 논리가 지배하는 서구적 사유의 내부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어낸다. 혹은 그 외부에 존재하는 것들을 사유하게 한다.

물론 푸코가 이성 대신 광기를 찬양한 것이 아니었듯이, 동일자 대신 타자를 찬양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은 아니다.

내부의 균열, 외부의 타자를 통해서 이성을 비롯한 모든 동일자의 경계를 가변화하는 것, 그리하여 생성적인 차이의 힘이

작용하게 하는 것. 이는 단지 사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고 실천의 문제다.




10. <오리엔탈리즘과 포스트식민주의> - ‘백색신화’에 돌을 던진다

서양 중심론이 낳은 일그러진 동양의 표상… 타자를 주체로 내세운 비판적 사유


오리엔트(orient), 잘 알다시피 ‘동양’이라는 말이다.

서양(occident)에 대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동양’에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동양이란 대체 어떤 곳인가? 지구의 동쪽에 있는 세계? 그것뿐일까?

근대화에 뒤처진 낙후된 세계, 문명화에 뒤처진 미개한 세계, 민주주의의 전통 대신에 오래된 아시아적 전제정의 전통이

있는 세계, 합리주의 대신 이른바 ‘동양적’ 신비주의가 지배하는 세계.

이런 표상들 없이 ‘동양’을 떠올리거나, 동양사상, 동양적 전통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19세기, 아니 20세기 초반의 동양을 떠올린다면 어떨까?

여기에 불결함과 비위생적인 환경, 가난과 질병, 미신과 무지 등의 수많은 악덕들이 필경 추가되어 떠오를 것이다.

그래, 우린 그런 세계에 살고 있고, 그게 바로 ‘동양’이다.

동양은 그저 ‘예루살렘’의 동쪽에 있는 지역이 아니라, 이런 표상들과 밀접하게 결부된, 그것으로 표상(재현/대표)되는

세계다.

따라서 만약 동양이 지리적 개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런 표상들, 이미지들로 구성되는 지리적 개념이고, 이런 이미지를 만드는 담론이나 책들, 혹은 상상력 속의 공간이다.


동양을 배제하면서 얻은 서양의 정체성

 

그러나 여기서 정의되고 있는 동양이란 근대화, 문명, 민주주의, 합리주의, 과학, 위생, 부유함 등과 같이, 서양에 특징적인 것을 결여한 사회다.

서양에 특징적인 것을 잣대로 삼아, 그것이 없는 사회로 동양을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동양’이란 사실 동양이라기보다는 비-서양일 뿐이다.

그러나 좀더 냉정하게 따져본다면, 사실은 반대인지도 모른다.

동양이라고 불리는 저 어둡고 비참한 세계와 달리 ‘우리 서양’에 있는 것, ‘우리 서양’에 고유한 것, 그래서 서양을 저 미개

하고 뒤처진 사회와 달리 앞서고 발전된 사회로 만드는 것(이게 바로 막스 베버가 평생 추구한 주제였다),

그게 바로 합리주의고, 근대화고, 민주주의고, 과학이고, 위생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서양은 스스로 안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정체성(동일성)을 획득한다.

동시에 동양은 결여의 형식으로 그러한 동일성을 보증해주는 ‘타자’가 된다.

조명을 받아 밝게 빛나는 곳이 있으려면, 그것의 배경이 되는 어둠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건강함을 정의하려면 질병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 그런 식의 정체성(동일성)을 정의하는 척도로서 서양적 미덕은 동양과 서양에 공히 적용돼야 할 보편적 척도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질적인 두 세계에 이미 적용되었고, 그것을 통해 두 세계가 구별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제 그런 ‘보편적’ 척도를 아직도 어둠에 묻혀 있는 ‘동양’이 받아들이고, 그 기준에 따라 자신의 세계를 재편하며 문명화의 경로를 따라 진보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식이라면 어차피 계속 2류, 3류임을 모면할 수 없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둠을 떨치고 밝은 빛을 따라

합리적 보편성으로 계몽되는 것이, 까놓고 말하면 잘먹고 잘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 오리엔탈리즘>에서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처럼 ‘동양’이라는 말이 나타날 때면 항상 따라다니며 다시-나타나는 ‘동양’에

관한 관념과 이미지들을 추적하며 보여준다.

미국에서 강의하는 아랍 출신의 영문학자였던 그는 다양한 문학적 문헌들에서 반복하여 나타나는 일그러진 동양, 어두운

동양, 미개한 동양의 이미지를 한꺼번에 모아놓는다.

그리고 그 밑에서 어떤 것도 그러한 ‘동양’이라는 표상에 포개고, 그런 이미지로 덮어씌우려는 ‘일반의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저 이질적인 세계의 모든 것을 ‘동양화’하려는 이러한 ‘일반의지’에 대해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어이없는 말로 불리는 침략과 팽창, 그 밑에 깔려 있는 서양중심주의, 그것의 짝으로서 열등

한 족속들에 대한 인종차별주의 등에 보편성과 정당성을 부여했으며, 동시에 그러한 권력으로부터 보편적 진리라는 현세적 위치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보편적 진리’는 동양이라는 세계 속에 다시 투사되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 자신의 보편적 가치가 되며, 그들 자신의 삶의 척도가 된다.


보편적 가치 추구… 식민지 인종은 여성적?



오랫동안 그 미덕을 의심치 않았던 르네상스의 ‘휴머니스트’들이, 새로 ‘발견’된 신대륙의 인디언들(여기도 ‘동양’이었음은

이 명칭이 잘 보여준다!)이 과연 인간인지를 두고 논란을 벌일 때, 그래서 그들을 노예로 사용해도 좋은지를 두고 싸움을

벌일 때에도,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한점 의혹이나 이견이 없었다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

스러워 보인다.

왜냐하면 ‘동양’을 정의할 때 그랬듯이, 인간을 정의할 때도 역시 그들은 자신들만이 갖고 있는 특성을 척도로 이미 설정했던 것이기 때문이고, 이미 인간은 백인 중년남자를 모델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서 그랬듯이, 인간이라는 이름 아래서도 ‘동양’의 사람들, 혹은 식민지의 사람들은 자신이 인간임을

입증하는 어떠한 주장도 말할 수 없었다.

말해도 들리지 않는 침묵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동양의 어둠에 항상 따라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기껏해야 그들은 서양인들이 자신들을 ‘대변’하고 대의해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혹여 그런 대변자들이 나타난다면, 그들은 정말 이 침묵 속에 갇힌, 동양이라는 어두움 표상에 묻힌 이들을 대변할 수 있을까?

 ‘주체’라는 개념으로 시작된 서양의 근대 역사에서, 이들은 스스로 말할 수 없고, 스스로를 ‘대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스스로 사유하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데카르트적 주체의 타자였을 뿐이다. ‘하위주체’.

따라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이 문명과 계몽, 보편성, 진보, 주체, ‘인간’ 등의 관념을 함께 겨냥하게 되는 것은 당연

하다.

가령 식민주의자들이 자신들(만)의 척도를 식민지인들 또한 당연히 받아들이게 만드는 전제요 통로였기 때문이다.

사이드도 그랬지만, 그의 뒤를 이은 포스트식민주의 비평가들은 서양 형이상학의 백색신화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이나,

계몽과 보편성, 인간 내지 인간주의에 대한 푸코의 비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점에서 오리엔탈리즘 비판이나 포스트식민주의적 비판은 타자성이나 차이에 관한 포스트구조주의의 문제의식과

비판적 연구에 긴밀하게 잇닿아 있다.

더불어 포스트식민주의 비평가들은 이러한 식민주의가 남근중심주의와 공모하는 양상에 주목한다.

그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 인종들에 약하고 여린 여성성을 부여한다.

“벵골인의 신체조직은 여성과 같다고 할 정도로 유약하다. …여러 시대 동안 그는 용감하고 대담한 남자들에게 짓밟혀왔다. 용기, 독립, 정직과 같은 특질들은 그의 체격과 상황에는 한결같이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영국인이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식민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타고난 우세가 식민관계의 또 한 가지 이유라는 것이다.

식민주의와 초기의 인류학 사이의 공모가 이와 무관할까? 반면 식민주의에 대한 민족주의적 저항 또한 종종 이러한 남성성에 반하는 또다른 남성성의 표상을 통해 형성된다.

이로 인해 식민지의 여성들은 반식민주의 안에서도 부차적인 지위로 밀려난다.

그렇다면 포스트식민주의적 비평가들은 반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의 연대를 주장하려는 것일까?


실재적 저항을 수반하지 않을지라도…

포스트구조주의와 식민주의 비판의 결합을 통해서 제기된 이러한 오리엔탈리즘 비판과 포스트식민주의는, 직접적인 식민

주의의 퇴조 이후에 잔존하는 ‘동양’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하게 했다.

그것은 아직도 서양인들의 담론과 문화, 서양이라는 정체성 내부에 존재하는 타자의 존재를 가시화했을 뿐만 아니라,

동양인들 내부에 존재하는 ‘동양’, 식민지인들이라는 타자들 내부에 존재하는 ‘타자’까지도 사유할 수 있는 통로를 열었다. 식민주의의 ‘청산’은 이제야 시작된 것일까?

물론 이러한 비판이 아직도 대부분은 이른바 제1세계 내부에 존재하는 타자성의 추적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런 점에서 그것은 일차적으로 서양인의 문제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있다고 해도, 그리고 포스트식민주의적 비판이 서양의 대학이라는

제도 안에서 포스트식민주의 비평가들의 실재적 저항과 긴장을 수반하지 않는 한,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는 데

머물고 만다는 비판이 있다고 해도, 새로이 그려지기 시작한 또 하나의 비판적 사유의 선이 갖는 중요성을 무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11. <페미니즘> - 성의 해체로 차별을 넘어…

사적인 영역의 대상화된 존재를 전면에 내세워… ‘유사 남근주의’ 흔적을 지울 길 없나


여러 가지 이름이 붙을 수 있겠지만, 20세기는 확실히 ‘페미니즘의 시대’였다.

프랑스 혁명을 모르지 않았던 ‘계몽주의의 완성자’ 칸트는, 노예나 이교도와 더불어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주어선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였을까? 여성들이 참정권을, 그것도 지난한 투쟁 끝에 획득한 것은 20세기를 한참 지나서였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아직도 평등하게 나누어 받아야 할 권리는 매우 많다. 갈 길이 먼 것이다. 남성들과 동등해야 할 여성들의 권리. 그

래서 19세기 후반에 서서히 시작된 이래 페미니즘은 오랫동안 ‘여권운동’이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페미니즘의 첫 번째 시기를 명명하는 이름이다.

그러나 법적인 것이 억압의 중요한 지표고, 제도화된 형태임엔 분명 하지만, 그것은 결코 근본적인 것이 아니다.

여권운동으로 시작한 페미니즘의 역사는 20세기 중반을 통과하면서 근본을 향한, 그 근본적인 억압을 찾아내려는 본격적인 탐색을 시작한다.

억압의 법적인 지표를 찾아내고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의 원인, 억압의 방식, 억압의 다양한 효과들에 대한 끈질긴

추적이 시작된다.


여권운동은 근본적인 억압에 대한 탐색



이들이 주목하고 지적하는 것은 먼저 여성들에 대한 차별이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권리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고용이나 임금 등의 차별, 사회적 활동을 위한 기회의 차별, 가족 안에서 분배되는 권력의 차별 등등. 가령 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즘이 가장 주목하는 곳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들은 여성 노동에 대한 성적 차별을 통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공모가 지속된다고 주장한다.

사실 부르주아지는 19세기 이래 가족을 사회로부터 분리하여 내밀성의 영역, 사적인 영역으로 만들었으며, 그 사적인 영역에서 가정을 관리하고 가사를 수행하는 것으로 여성의 활동을 할당했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에 의해 구매되고, 자본의 잉여가치를 증식시키는 활동만이 생산적 노동으로, 아니 노동으로 정의된다. 노래부르는 건 노는 거지 노동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밥짓는 일은 식당에서 하면 노동이지만 집에서 하면 노동이 아니다.

이럼으로써 여성들의 활동은 노동이 아닌 것, 가치를 낳지 않는 것, 따라서 생산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여성을 사회적 활동에서 격리시키고, 그들의 활동을 가치가 없는 것, 혹은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만드는 이런 조건을 통해, 사회적인 영역에서나 가정적인 영역에서 성적인 차별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된다.

여성성이 의존성이나 수동성과 같은 관념들로 채워졌던 것은 이러한 사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페미니즘이 사회적 차원의 차별을 넘어 성차나 성별 자체를 비판적으로 사유하게 되었던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

이다.

이른바 급진적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혹은 진정한 페미니즘이라는 의미에서 ‘페미니즘적’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관점의 형성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것은 사르트르의 유명한 연인 드 보부아르였다.

그는 <제2의 성>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여성들이 어떻게 하여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로 만들어지고 체험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수정(능동적 정자와 수동적 난자), 출산, 모성 등과 같은 생물학적인 모델, 잉태의 순간부터 태아의 노예가 되며, 탄생한 후에도 아이의 삶에 묶이는 어머니의 노릇은 여성이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없도록 만드는 실존적 조건이다.

‘제2의 성’, 그것은 어쩌면 2명이 달리는 시합에서 2위와도 같은, 열등한 위치를 부여받은 여성성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보부아르가 보기에 여성 해방은 남성의 구성물인 그러한 여성성, 모성성에서, 그 학습된 무능력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여성성에 대한 그러한 거부가, 마치 여권운동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의 획득을 향해 나아간 것처럼, ‘제1의 성’인 남성성의 획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한편으론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아이러니하다.

남성은 여성의 목표가 된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바로 여성 억압의 주요한 메커니즘이라는 이러한 생각은, 가족의

생물학적 재생산이나 모성에 대한 거부라는 전략과 더불어 미첼이나 밀레트, 파이어스톤 등의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에게

유사한 양상으로 이어진다.


급진적 페미니즘의 다양한 도전들



그런데 문제는 차별보다도 더 깊은(?) 곳에 있는 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러한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러한 차별을 여성의 운명으로 당연시하는 것, 나아가 여성 자신에 의해 그런 차별이 재생산되는 것이다.

여기서 여성들은, 생각하되 남성들의 관념으로 생각하고, 말하되 남성들의 목소리로 말한다.

그런 점에서 여성들은 일종의 깊은 침묵 속에 갇혀 있다. 자신들이 꿈꾸는 세계에 대해,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자신들의 신체에 대해, 자신들의 욕망에 대해, 자신들의 정서에 대해 여성들은 말하지 못했다.

대신 남성들이 말하고 남성들이 만들어낸 이상과 욕망, 신체, 정서 등에 대한 관념을 자신의 것으로 갖거나, 혹은 그것과

대칭적인, 대개는 남성적인 특성의 결핍으로 정의되는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말하고 그것으로 사용했다.

더불어 여성들은 이처럼 자신의 욕망,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데서도 남성들의 목소리를 빌어야 했던 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중요한 것은 남성들이 ‘대신’ 말하고, 남성들이 ‘대신’ 사유한 것을 거절하는 것이다.

남성들이 여성들을 대변하리라는 순진한 믿음도 당연히 함께 버려야 한다.

그리고 여성들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신체, 자신의 욕망, 자신의 삶과 꿈에 대해 직접 사유해야 하고 말해야 한다.

여성 자신에 대해 말하기(parler femme), 여성 자신에 대해 쓰기(ecriture femme), 혹은 음경의 가시적 특징을 통해 구성된

남근중심적 욕망에 반하여 음순과 음핵의 생물학적 특성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여성적인 욕망으로 반격하고 대체하는 것, 이는 남성들의 남근중심주의적 상징계를 해체하고, 그것과 독립적인 여성적인 상징계를 구성하고자 하는 루스 이리가레이의 전략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아버지의 이름, 법과 거세가 지배하는 상징계에 반하여, 그에 선행하는, 원초적인 리비도의 복수적인 힘이 작동하는 기호계를 어머니의 신체와 연결된 전복의 공간으로 부각시킨다.

기표나 법의 이성적인 논리를 깨는 시적 언어의 혁명은 어머니의 몸으로 말하는 새로운 혁명의 언어인 셈이다.

여기서 공통된 것은 여성성이 남성성에 비해 열등한 특성들의 집합이 아니라, 반대로 남성적 질서를 깨고, 그것에 결여(!)된 것을 거꾸로 남성들에게도 줄 수 있는 긍정적 특성들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성이란 여성의 자유를 가로막고 수동성과 의존성을 부과하는 ‘악덕’이 아니라, 반대로 여성 자신의 신체,

여성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미덕’이 된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부정되어야 할 ‘차별’이 아니라, 그 자체로 긍정되어야

할 ‘차이’인 것이다.

사실 1970년대 이래 페미니즘의 이론은 이러한 몇몇 예들로 한정되지 않은 다양한 사유과 이론적 다양성을 펼쳐왔다.

때로는 정신분석과 동맹하기도 했고, 때로는 정신분석과 대결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마르크스주의와 동맹하기도 했고,

때로는 그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성의 문제를 이성애중심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넘어서 호모―레즈비안과 같은 동성애적 관계를 통해 두 성 간의

관계를 좀더 근본적으로 사유하려는 비판적 흐름도 있었다.

20세기가 페미니즘의 시대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나, 여성들이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남녀의 문제를 넘어서, 이제까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지배적

이었던 남근중심적 문화에 대해서, 결국은 남성성 자체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하게 만든 다양한 사유의 평면을

펼쳐 보여주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항성을 벗어나라

 

펄펄 끓는 뜨거운 도가니. 현재진행형인 페미니즘 이론의 현황에 대해 이렇게 요약해도 좋을까?

그러나 아직 오래된 난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남근중심주의는 여성들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조차 일종의 ‘이중구속’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즉 대립 내지 적대가 되어버린 남성과의 차이를 극복하여 남성과 동일하게 되려는 것은 남성과의 동일시를 추구하는 것

이란 점에서 남근중심주의의 한 형태다.

반대로 남성과의 차이를 고유한 여성성으로 찬양하며 ‘차이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은 자칫하면 현재의 성차나 차별을

인정하고 온존시킬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남근중심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얘기를 하는 나도 어색하다. 남성이 여성을 말하는 것은 남근중심주의의 일부이기에 그렇다.

그렇다고 외면하는 것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나도 동일한 이중구속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혹시 남성(성)과 여성(성)의 양자택일과 동일한 난점은 아닐까?

그렇다면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항성을 던져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빠져나갈 수 있는 그런 구속은 아닐까?




12. <현상학> - 일상에 말 걸며 자신을 드러낸다

사물의 체험적 의미로 일상의 구실 재발견… 인간 경험의 지향성 깨닫는 데 이바지


프랑스의 현대철학을 소개하는 책에서 뱅상 데콩브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20세기 전반기가 3H의 시대였다면, 후반부는 세명의 ‘의심의 대가’ 시대였다고.

여기서 3명의 H는 헤겔(Hegel), 후설(Husserl), 하이데거(Heidegger)고, 3명의 의심의 대가란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다.

그러나 이는 단지 프랑스만은 아닐 것이다.

20세기 전반기에 후설이 창시하고 하이데거 등에 의해 발전된 현상학이 끼친 영향력은 프랑스만이 아니라 일본이나 한국과 같은 나라를 포함해서 서구의 사유가 적어도 ‘상급지배권’을 행사하던 모든 나라들에 대해서 마찬가지로 확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에릭 알리에즈는 구조주의 이후 프랑스 현대철학에 대해 말하면서, 그것을 현상학과의 투쟁과정으로 묘사한 바 있는데, 이는 거꾸로 현상학의 영향력이, 이미 ‘한물간’ 20세기 후반기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작품에 내재하는 예술의지에 주목

 

현상학의 영향력은 이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특히 예술과 관련된 영역에서는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심지어 현상학이란 이름으로 세간에 알려지기 이전

부터, 그 창시자인 후설의 직접적인 영향과 독립적으로 ‘현상학적으로’ 사유한 사람들이 있었다.

예컨대 20세기 초의 유명한 예술사가였던 알로이스 리글은 가령 건축물의 예술적 성격은 목적이나 기능, 재료 등과 같은

자연적 특징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그런 자연적 특징들을 ‘괄호로 묶고’ 일상적인 삶에서 분리시켜야 예술적 본질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즉 어떤 건물이 무엇을 위해 지어졌는가가 아니라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체험되는가를 볼 때 비로소 예술작품에 내재하는 ‘예술의지’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경우 현상학이란 대상을 체험적인 의미를 통해 포착하는 일반적 사유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상학적으로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이데거가 인용해서 더 유명해진 반 고흐의 <구두>를 보자.

여기 그려진 이 물건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를 먼저 판단한다.

그리고 이게 농부의 구두인지, 노동자의 구두인지, 아이들의 구두인지 어른의 구두인지, 혹은 가죽으로 만든 건지 비닐로

만든 건지 등을 판단한다.

이런 태도를 현상학에서는 ‘자연적 태도’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런 자연적 태도를 갖고는 이 구두가 갖는 의미를 전혀 이해

할 수 없다.

고흐가 우리 눈앞에 내놓은 이 구두의 본질을 보려면, 자연적 태도가 야기하는 판단들을 모두 ‘괄호로 묶어서’ 옆으로 치워

두어야 한다(이를 현상학에서는 ‘판단정지’라고 부른다).

그러면 그때 비로소 그 구두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하이데거식으로 말하면, 부드러운 대지를 밟던 농부의 건강한 걸음이 눈에 들어올 수도 있고, 여름날 뜨거운 태양 아래 김을 매던 농부의 땀이 느껴질 수도 있으며, 차디찬 겨울의 대기를 마시며 섬돌 위에서 농부의 밤을 지키던 고독이 슬며시 손을 내밀 수도 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어떤 일체감을 느끼고 내면을 울리는 어떤 감동을 체험했다면 말이다.

하이데거는 그것은 구두 내지 구두를 그린 저 그림(존재자)을 통해서 ‘존재’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일상적 삶 속에서 까맣게 잊고 있던 어떤 것이었고, 자연적 태도를 통해서 거꾸로 은폐되었던 ‘진리’의 드러남이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망각되었던 사물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존재자에서 존재로 눈을 돌리게 된다(이를

하이데거는 ‘현상학적 환원’이라고 부른다).

반면 저 구두는 농부의 구두가 아니라 노동자의 구두였다고 하면서 ‘주인’을 찾아주는 것은, 말을 걸기 시작한 존재에 다시 귀막고 존재자로, 자연적 태도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인 셈이다. 한마디로 ‘깨는’ 것이다.


고흐의 <구두>를 보는 다른 관점들


하지만 후설이라면 좀 다르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하이데거처럼 저 구두에서 농부의 삶을, 직접적으로는 그려지지 않은 그 대지와 태양을 느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혹은 반대로 그 구두를 보면서 기름때 가득한 노동자의 삶을, 침침한 공장과 거대한 기계의 표상이 떠올랐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그것은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삶이나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저 구두를 통해 현재로 ‘다시 끌려나오기’ 때문이거나, 미래에 대한 자신의 꿈이 저 그림을 통해 현재로 ‘미리 끌려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어떤 대상을 체험한다는 것은, 체험하는 ‘나’의 의식이 그 대상과 결부된 어떤 과거를 다시 끌어당기는 것이거나(‘다시-당김’ Retention이라고 한다), 어떤 미래를 미리 끌어당기는 것(‘미리-당김’ Protention이라고 한다)과 같은 작용을 통과하는 것이다.

그런 작용을 통과함으로써 눈앞에 있는 저것은 대지와 태양, 한여름의 땀을 머금은 농부의 구두로 ‘구성’되기도 하고, 기계의 그림자가 만드는 어둠 속에서 기름때에 전 노동자의 구두로 ‘구성’되기도 한다.

대상이란 이처럼 의식의 작용 아래(체험적인 대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그때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으로 다가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 그것은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식으로 말하면 ‘이름을 불러주는’ 작용이 바로 의식의 작용이다.

이는 나와 대상을 이어주는 작용이고, 나의 의식으로 하여금 어떤 대상을 향하게 하는 작용이며, 하나로 일체감을 체험하게 해주는 작용이다.

이를 후설은 ‘지향성’(Intention)이라고 부른다.

가령 보름날 깡통에 불을 넣어 돌리는 쥐불놀이를 보면서, 우리는 원을 그리는 불을 본다.

그러나 사진으로 찍어보면 알 듯이, 어느 시점에도 원은 없다. 어떤 시점에 깡통은 한 점에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원으로 지각한다.

이유는 뭘까?

그건 깡통의 현재 위치에, 방금 지나온 과거를 ‘다시 당기고’,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미리 당겨서’ 원운동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다시 당기고 미리 당기는 의식의 지향성이 깡통을 원운동을 하는 것으로 구성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후설이 보기에 눈앞에 주어진 것에서 하이데거가 ‘농부의 구두’를 떠올린 것은, 상실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꿈에 대한 의식의 지향성 때문이다. 여러분이 그 그림에서 다른 무엇을 떠올렸다면, 그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떠올리는 것은 그처럼 다를 수 있지만, 어느 경우든 나의 의식과 대상을 잇는 의식의 작용, 지향성이라는 작용이

없다면, 누구도 대상을 체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에게나 공통된 이런 의식의 작용이야말로 모든 체험의 밑바닥에 있는 것이고, 체험의 순수한 본질이다. 이것은 이런

경험, 저런 체험에 선행하며,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란 점에서 ‘선험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어디에 속해 있는 게 아니라 의식작용이 발생하는 ‘나’라는 주체(자아) 안에 있는 것이란 점에서 ‘선험적 자아’며, 그것의 순수한 본질이란 점에서 ‘순수 자아’다.

이처럼 대상에서 순수한 본질로, 순수 자아로 나아가는 것을 후설은 ‘현상학적 환원’이라고 부른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이었다

 

현상학은 ‘현상’에 관한 학이다.

현상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대상이 어떻게, 어떤 의미로 체험되는가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현상학은 그러한 체험의 양상 밑바닥에 있는 ‘무엇’을 보려고 한다. 이러기 위해 현상학은 앞서 예에서처럼 세계와 의식,

대상과 자아간에 미리 주어진 내적인 상호관계에서 출발한다. 즉 의식은 언제나 ‘무엇에 대한’ 의식이며, 대상이란 의식의

작용 속에서 ‘무엇으로’ 체험되는(구성되는) 대상이다.

여기서 어떤 것을 대상으로 구성하는 의식의 작용을 후설은 ‘노에시스’라고 불렀고, 그것을 통해 구성되는 대상을 ‘노에마’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적인 태도 속에서 흔히 생각되듯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과정을 이루는 두 측면이다.

이런 식으로 후설은 객관과 주관, 세계와 의식을 분리했던 근대적 사유(갈릴레이의 객관주의와 데카르트의 주관주의)를

극복하려고 했던 셈이다.

물론 후설이 체험의 통일성을 형성하는 선험적 자아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선험적 관념론’이었다면, 하이데거는 체험되는

대상을 통해서 존재가 말을 걸어온다는 점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상반되는 방향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르트르나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등은 현상학이 이 어느 것과도 다른 여러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임을 보여

주었다.

물론 모든 것을 ‘의미’의 문제로 보는 현상학에 대해서, 의미 이전에 작동하는 ‘권력’을 보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세계를 보고 대상을 보는 지극히 새로운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점만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출처 : 한국 문화의 원류
글쓴이 : 솔롱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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