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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진경 (4) - 해체주의.역사와 영토.슬픈열대.맑스를 위하여

doll eye 2018. 1. 28. 23:59

13. <해체주의> - 의미를 포장한 문자의 편견

이성과 합리성 내세운 로고스중심주의 탈피… 텍스트 사이의 텍스트를 찾아 새로운 의도 규명


해체주의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사상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고, 그의 영향 아래서 이른바 예일학파가 주도하여

70년대 미국의 비평계를 휩쓸었던 문학비평의 사조를 가리키기도 하며, 1988년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서 열린 심포지엄과,

같은 해 6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를 통해서 공식적인 존재증명을 얻게 된 건축상의 한 사조를 지칭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떤 초월적인 본질이나 중심, 그것의 현현(presence), 혹은 그것을 구현하는 정전과 제도에 대해, 그 내부에 존재하는 불일치와 균열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대결하는 전략이 작용하는 모든 곳은 해체(deconstruction)의 사유, 해체의 작업이 작용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해체주의는 철학이나 문학, 건축과 같은 특정한 영역을 넘어서는 ‘일반성’을 갖고 있다. 더구나 데리다 자신이 미국의 해체주의에 대해 인정한 바 있듯이, 해체주의는 단지 데리다만의 사상이 아니며, 데리다의

사상으로 환원되지도 않는다. 데리다는 다만 해체주의의 ‘기원’일 뿐이다. 물론 데리다도 말하듯이 기원은 어떤 초월적인

기의(의미)나 본질로 동질화하는 기제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해체주의가 겨냥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기원을 상기시키는 것은, 해체주의의 경우에도 그게 무언지를 이해하도록 정리하는 데 차라리 필수적이다.


초월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언어의 논리



데리다가 상기시키는 ‘기원’을 이용해 해체주의로 접근해보자.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이집트 신화를 인용하여 문자의 해악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어느 날 이집트 왕 타무스에게 기하학, 수학, 천문학, 문자 등을 발명한 신 투트가 찾아온다.

그는 문명의 기초가 되는 이러한 발명품을 타무스 왕에게 선물로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사려 깊은’ 타무스 왕은 신중한 고려 끝에 문자를 거절한다. 투트의 말대로 문자는 기억을 용이하게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낯설고 생명이 없는 기호요 기록에 지나지 않는 반면 그것을 이용하면 인간은 더이상 무언가를 기억해야 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진정한 기억력은 급속히 쇠퇴할 것이며, 그 결과 생명 없는 문자가 음성언어의 진정하고 생생한 현존을 대체할 것이다. 나쁜 기억이 좋은 기억을 대체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음성언어란 내면의 목소리다. 그것은 “내가 말하려는 진정한 뜻”이다.

하지만 그걸 문자로 표시하자마자 그 진정함은 사라지고, 다만 피상적인 문자만 남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오독된다. 이처럼 본질이 담겨 있는 내면의 음성이 바로 서양에서 말하는 진리요 로고스(Logos)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할 때, ‘생각’이란 바로 ‘나’라는 주체의 내면적인 저 음성이다. 또한 그것은 신의 뜻에 상응하는 초월적인 기의요, 신 자체에 상응하는 초월적인 본질이다.

“태초에 말씀(Logos)이 있었느니라.” 기호나 언어는 바로 이것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사실 서양의 신학이나 철학, 혹은 문학은 이런 내면의 음성을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서 발견하려고 했다.

가령 스콜라 철학은 모든 것에서 신의 손길, 신의 음성을 보았으며, 근대철학은 ‘나’라는 초월적인 주체, 혹은 선험적 자아를 통해서 진리의 ‘근거’를 마련하려고 했다. 진리란 그런 로고스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양 형이상학은 한마디로 ‘로고스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또한 그러한 로고스는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모든 것은 그러한 로고스의 나타남(presence)이라고 보았다는 점에서 현현(presence)의 형이상학에 사로잡혀 있다.

플라톤에서 루소 등으로 이어지는 문자에 대한 거부감은, 로고스의 현현을 훼손하고 생명 없는 기록들로 그것을 대체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문자화 이전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라


로고스중심주의와 현현의 형이상학이 바로 데리다나 해체주의자들이 언제나 공격하려고 하는 타깃이다.

문학평론가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가령 어떤 시를 보면서 그 안에 숨어 있는 의미와 의도를 찾으려는 것은 시가 되어 나온 어떤 로고스, 그 음성을 찾아내려는 시도라는 것이고, 작품은 그런 음성의 충실하고 동질적인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음성도 문자로 표시되는 한에서만 존재하며, 문자에 의존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로고스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문자란 독이면서 동시에 약인 셈이다. 데리다가 플라톤에게 선물한 ‘파르마콘’이라는 개념은 그리스어로 약과 독을 동시에 뜻한다는 점에서 음성과 문자의 이런 관계를 잘 보여준다.

반면 해체주의자들은 거꾸로 문자의 일차성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음성을 발하게 하는 어떤 기의도 우리의 ‘영혼’에 먼저 기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건 생물이 아니야”라는 음성을 내려면, ‘이건’에 해당하는 돌멩이가, 그리고 생물이라는 말에 상응하는 어떤 것들이 먼저 우리의 ‘영혼’에

기록되어야 한다. 즉 음성조차도 이미 내 머리 속에 기록된 어떤 사태의 ‘흔적들’(traces), 관계의 흔적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데리다는 이런 ‘흔적’들을 원문자(archi-criture)라고 부른다.

이런 점에서 문자란 언어나 기호는 물론 음성보다도 선행하는 것이다.

이처럼 흔적들, 문자들로 기록된 것을 데리다는 텍스트라고 부른다.

따라서 책뿐만 아니라, 흔적들이 새겨진 우리의 ‘뇌’, 혹은 외상(trauma)이나 상처가 기록된 우리의 신체와 정신, 혹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며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다는 원자폭탄도 하나의 텍스트다. 데리다가 제창한 ‘문자학’(Grammatology)이란 이런 텍스트들을 뒤져서 거기에 새겨진 흔적이나 문자를 읽는 작업이다.

그런데 문자나 흔적들은 자음이나 모음처럼 낱낱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하나의 묶음으로 엮여 있고, 묶음으로 다른 텍스트나 글(criture) 속에 들어간다. 가령 마르크스의 <자본>이라는 책은 리카도의 글, 스미스의 글, 헤겔의 개념들, 19세기 공산주의의 관념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들은 물론 그 책 안에서 새로운 위치를 부여받고,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게

되지만, 이전의 텍스트들로부터 분리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의 그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들로 가득 찬 것이고,

다른 텍스트들로 흩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떤 텍스트에 새겨진 문자들의 의미는 그 텍스트와 다른 텍스트들 사이

(inter)에서 형성된다. 즉 모든 텍스트는 사이-텍스트(inter-text)다.

따라서 어떤 텍스트의 의미를 하나로 결정하는 것, 그 텍스트에 어떤 단일한 본질(로고스)에 상응하는 동질성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대로 결정 불가능한 것들이 텍스트-사이에, 그 ‘사이’의 여백에 가득하며, 그것들이 읽는 경우마다 다른 방식으로 튀어나오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의 텍스트들이, 읽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 읽히는 상황과 조건에 따라, 아주 다른 텍스트로 읽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의미에서 데리다는 단일한 의미, 로고스에 상응하는 단일한 진리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직 의미의 산포/산종(dissemmination)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텍스트 안에 있는 또다른 텍스트들로서 문자란 이미 새로운 의미의 씨(semmi, 정자)라는 것이다.


권력을 행사하는 관념에 대한 비판



‘해체’란 로고스를 찾아냈다는, 혹은 진리에 관해, 혹은 어떤 규범에 관해 말하는, 대개는 동질적이라고 간주되는 텍스트 안에 들어가, 동질성을 만들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균열을 드러내고, 어떤 텍스트의 ‘사이’에 있는 다른 텍스트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그것은 어떤 텍스트를 통해 말하려고 했던 것을 뒤적여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어떤 것이 말해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가령 문자에 대해 그렇게 혐오했던 플라톤이 자신의 ‘음성’(Logos), 진리의 음성을 알리고 남겨두기 위해 대화로 스승 소크라테스의 음성을 문자로 기록하게 되었던 아이러니, 니체가 여성에 대해 퍼부은 공격적인 문장들이 사실은 남성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진리와 로고스에 대한 비판의 기록이 되었다는 아이러니 등을 드러낸다. 여기서 해체는 거꾸로 문자의 일차성이나 여성성의 힘을 새로이 찾아낸다. 해체가 단지 파괴라는 부정적 작업이라는 비난을 반박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확실히 해체는 성전, 정전화된 어떤 텍스트들, 그것을 통해 로고스로 군림하며 권력을 행사하는 어떤 관념들에 대한 비판이요 해체다. 그렇기에 그들은 흔히 비난받는 것과 달리 ‘정치’로부터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근본적 정치를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데리다가 자신의 모든 작업이 마르크스적인 것이었다고 하면서 마르크스와 자신을 연결했던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텍스트의 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기계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텍스트 내부로 끌어들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정치를 텍스트적인 것으로 변환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우기에는 아직 해체주의자들의 작업이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






역사와 영토



잘 알다시피 역사는 일차적으로 시간에 관한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현재와 연결하는 관념의 양상이 역사의 양상들을 결정한다. 때론 현재 당면한 사건을 위한 지침이나 교훈을 얻기 위한 참고자료의 집합이 되기도 하고, 때론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을 이해하게 해주는 이유들이 되기도 하며, 또 때론 현재를 만든 과거의 누적이 되기도 한다.

역사가 시간적인 것이지만, 역사에 시간 아닌 공간이 담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 경우 공간이란 현재 불러낸 사건들이 발생한 지점이 공간적이라는 의미에서다. “그때 한나라에서는…”, “1789년 파리에서는…” 식으로. 이러한 역사의 공간을 ‘우리의 역사’, 혹은 ‘중국의 역사’ 하는 식으로, 어느 나라에 귀속되는 ‘영토’의 문제로 바꾸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 영토국가가 지배하게 된 19세기 이후였다. 이런 19세기의 눈으로 볼 때, 15세기 유럽인들이 저 멀리 떨어진, 터키 옆의 나라 그리스를 자신의 고향으로 삼았다는 사실처럼 기이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이와 다른 차원에서 영토적인 관념 속에서도 역사는 필경 그 외부를 자신 안에 포함하게 된다. 가령 터키의 역사 없는 유럽사를 생각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 없는 유럽 역사를 생각할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 터키는 유럽사의 일부에 포함되고, 아프리카는 유럽사의 일부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배운 유럽사에는 터키사가 빠져 있고 아프리카 역사가 삭제되어 있다. 그저 유럽사 자체의 발전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는 역사를 신비화하는 가장 흔한 방식이다. 역사 자체가 무슨 생명체라도 되는 양. 역사가 영토국가의 역사가 되어 스스로 발전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이런 근대적 신비주의의 전형적 관념이다.

이런 의미에서 분명 고구려사는 중국사의 일부다. 아니 한국사 전체가 중국사의 일부다. 어디 한국뿐일까? 몽골의 역사, 만주족의 역사, 아니 훈족의 역사 없는 중국사가 대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불가사의하다는 저 만리장성은 훈족에 대한 공포 없인 있을 수 없었던 것 아닌가? 천단과 자금성의 지붕에는 몽골족의 흔적이, 심지어 티베트인들의 흔적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지 않은가?

이런 게 아니라면, 고구려사나 몽골사를 중국의 역사의 일부로 포함한다는 말은 대체 무엇일까? 혹여 흔히 비판하듯 역사의 영유를 통해 영토를 영유하려는 것일까? 그러나 역사를 영유함으로써 영토를 영유할 수 있을까? 그 경우 역사란 대체 무엇일까? “우리 땅”에 속했던 과거 사실의 집합? 그래서 그들은 티베트인들의 거대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티베트를 중국의 일부로 만들었던 것일 게다. 그렇다면 몽골인들이 중국의 대부분을 장악했던 역사를 들어서 그것을 몽골의 영토라고 선언하는 것을 대체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대칭성 내지 상대주의를 면할 수 없는, 저 제국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소박한 역사관념이, 제국주의가 이미 낡은 것이 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 사회주의 깃발 아래 슬며시 살아나는 것을 보는 것은 아주 어이없고 씁쓸한 일이다.

차라리 나는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의 일부로 인정하겠다는 말을 아주 전향적인 것으로 듣고 싶다. 좀더 적극적으로 몽골의 역사, 훈족의 역사까지 그렇게 인정하길 바란다. 그래서 훈족과의 관계 속에서 진이나 한의 역사를 서술하고, 몽골의 역사와 연관해서 중국사 전체를 다시 서술하기를 바란다. 중국의 문명을 그런 외부의 민족들, 이질적 문화를 갖고 있던 이민족들과의 대결과 타협, 교류와 변형을 통해 탄생하는 것으로 서술하게 되길 바란다. 이는 아마도 자국의 우월성과 문명을 가정하고는 그것의 확대와 팽창으로, 혹은 그것에 대한 장애와 무지로 주변국을 몰아붙이는 제국적인 역사, 그 신비주의적 역사관념을 넘어서는 길이 되지 않을까? 더불어 우리 또한 자신의 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다루던 소중화주의가 아니라, 중국사를 한국사의 일부로 다루는 다른 방법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역사가 어디서나 쉽게 발견되는 “우리는 위대한 민족”이라는 턱없는 자만 대신, 우리는 타자들, 이민족들과 만남- 그게 우호적인 것이든 적대적인 것이든- 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역사의 경계선마다 꽃으로 피어나기를!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열대’라는 단어 앞의 ‘슬픈‘이란 형용사가 인상적인 이 책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1935년 브라질의 상파울루 대학에 사회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시작된 여행의 기록이다. 이후 약 20년이 지난 뒤 쓰인 이 책은, “모닝 빵처럼 팔렸다”는 말로 묘사되는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면서 그를 대중적인 스타 지식인으로 만들어준다. 물론 그 이전에 이미 그는 박사학위 논문인 <친족의 기본구조>로 프랑스 사상계의 새로운 거목으로 떠올랐으며, ’구조주의‘라고 불리게 되는 새로운 철학적 흐름을 창안했다. 이어 <슬픈 열대>, <야생의 사고> 등 저작을 통해 그는 프랑스 사상계 전반을 뒤바꿔놓은 중심인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독일이 주도하고 있던 유럽의 철학적 주도권을 프랑스로 이전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래서인지 구조주의라면 “한물간 지 오래”인 1990년대 중반인가에 프랑스의 문화 관련 기자들의 투표에서 여전히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행은 다른 세계, 내게 익숙하지 않은 세계와의 만남이다. 그래서 문학도, 영화도 여행자를 좋아한다. 오디세우스의 여행, 파우스트의 여행, 혹은 손오공의 여행, 레인맨의 여행 등등. 거기서 작가는 여행자를 따라가면서 그가 다른 세계와 만나며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삶을 향해 떠나자고 슬며시 우리를 부추긴다. “나는 여행이란 것을 싫어한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레비스트로스의 이 여행기도 그렇다. 그가 정말 여행을 싫어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의 여행은 뜻밖의 전화 한 통으로 인해 떼밀리듯 시작된, 그래서 더 운명처럼 여겨지는 여행이었다.

그러나 그의 여행은 어쩌면 그 전화를 받기 전에 이미 시작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역사학이 자기가 사는 것과는 다른 시간을 여행하고 탐사하는 것이라면, 그가 좋아하게 되었던 인류학은 다른 공간을 여행하며 자기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탐사하고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레비스트로스는 다른 종류의 인류학자여서, 현지조사보다는 수많은 조사자료들을 비교하고 교차시켜 다양한 문화나 신화들 안에 존재하는 어떤 공통된 것(그가 ‘구조’라고 부르는 것)을 찾고자 했다. ‘구조주의’란 한편으론 구조주의 언어학을 연구방법으로 삼아서 생긴 이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바로 이 공통된 것을 찾고자하는 태도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철학 주도권 독일서 프랑스로

그렇지만 이 책에서 우리는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이 단지 책상에서 남이 쓴 글을 보며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만은 아니었음을 본다. 또한 모든 문화에 공통된 것만을 찾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음을 또한 본다. 이 여행기의 줄기는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의 삶과 문화다. 그것을 천천히 거쳐가면서 그는 자신이 속한 세계와 다른 종류의 삶을 체험한다.

그림 그리길 즐기는 카두베오족의 문신과 문양에서 주어진 신체, 주어진 얼굴을 변형시키는 예술가적 창조의 욕망을 본다. 남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나누는 남비콰라족의 사랑법에서 오히려 육체적 쾌락보다는 정서적이고 유희적인 쾌락의 감각을 보기도 하고, 그 대담한 사랑의 와중에도 발기된 흥분으로 빠져들지 않는 태도에서 육체의 노출이 아니라 평정의 상실을 부끄럽게 여기는 고상한(?) 윤리감각을 발견하기도 한다. 혹은 인간의 형체란 물고기 형체와 앵무새 형체 사이의 과도기라고 보는 보로로족의 윤회적 우주관에서 인간과 동물 세계의 연속성을 보기도 하며, 가축에게도 인간과 동등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먹을 것이 부족해도 ‘함께 식사하는’ 남비콰라족의 태도에서 그러한 연속성이 함축하는 실제적인 의미를 보기도 한다. 또 고유명사를 감추고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 남비콰라족 사람들에게서 문자 없는 세계에 대한 루소적 꿈을 보기도 하고, 동시에 자신이 사용하는 문자를 흉내내 주민들을 설득하거나 ‘지배’하려는 한 추장의 태도를 보면서 문자의 짝이 권력임을 보기도 한다.

좀더 인상적인 것은 추장에 관한 정치학이다. 가령 남비콰라족의 경우 추장은 유랑생활을 편성하고 여정을 선정하며 숙영할 곳을 정하는 지도자다. 그러나 그에게는 강제를 수반하는 권력은커녕 공적으로 인정된 권한도 없다. 그는 오직 대중의 호감이나 대중에게 필요한 것을 조달해줄 능력, 혹은 솔선수범하는 능력에 의해서만 추장의 지도력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추장의 지도력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관대함’이다. 그래서 레비스트로스는 정보제공자이기도 한 남비콰라의 추장들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지만, 그것은 어느새 다른 주민들 손으로 넘겨졌음을 발견한다.

다른 것 동질화 목격 깊은 슬픔

이러한 삶과 문화를 어찌 ‘미개하다’고 말할 것이며, 어찌 ‘야만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알다시피 그것은 서구인들에 의해 미개하고 야만적인 것이 되어 파괴되어 버렸고 ‘문명화’ 내지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동일한 양상으로 변형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는 안다. 럼주 한잔의 미묘한 맛은 거기에 섞여 들어간 불순물 때문임을. 사람들의 삶에서 이질적인 것, ‘불순물’을 제거해버리려는 것은 “사회에서 가장 좋은 향기를 제공하는 것들을 스스로 완전히 파괴해버리려고 하는 것”임을.

그렇기에 그는 자신과 다른 모든 것을 비난하고 이질적인 모든 것을 자신의 모습대로 동질화해버리는 서구문명에 대해, 바로 자기 자신이 속한 그 세계에 대해 거대한 분노를 느끼며, 그것으로 파괴된 열대의 세계에서 깊은 슬픔을 느낀다. 틀림없이 그의 여행은 이 침략과 파괴에 의해 말살당한 흔적을 목격하고 체험해야 하는 여행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이 여행기에는 또한 깊은 슬픔이 스며들어 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을 ‘슬픈 열대’라고 붙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레비스트로스를 무척 좋아한다. 이 책 속에 배어 있는 그 따뜻한 마음을, ‘야만인’에 대한, 자기와 다른 종류의 삶에 대한 애정을 깊이 사랑한다. 데리다의 비판처럼 원시적인 것에 대한 향수나 구조주의적 방법에 문제가 있음은 사실이지만, 몽상이나 향수마저 지울 수 없었던 그 따뜻한 안타까움을, 그 깊은 슬픔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그런 비판은 너무 쉽고도 안전한 투자 같아서 싫다.

슬픔과 분노를 안고 그는 돌아간다. 그러나 그가 돌아가는 곳은 또 다른 원시의 열대도, 그가 속했던 문명화된 대륙도 아니다. 그것은 이질적인 것 모두가 서로에 기대어 있는 세계다. “역사, 정치, 사회적·경제적 세계, 물리적 세계, 심지어 하늘까지, 이 모든 것들이 동심원을 이루며 나를 둘러싸고 있다.” 여행의 끝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당신이 신이 된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자기 몸에서 빛이 난다는 것을 느끼거나 기적을 행할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가 아니라 야생의 짐승들이 가까이 다가와도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고, 그 온몸을 엎고 있는 악취나 분뇨에서도 예사로워질 때랍니다. 모든 시체, 모든 부패물, 분비물이 다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때랍니다. 신이 되고 나면 나비들이 당신 목덜미에 앉아서 교미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마지막은, 그 ‘귀로’의 끝은 미얀마의 챠웅(불교사원)이다. 외부, 타자, 이질적인 것을 견디지 못하는 획일적 문명, 혹은 그것의 좀더 남성적이고 호전적 형태인 이슬람에서 더 없는 불편함을 느끼는 그는 여성적이거나 탈성화된 불교에서, 외부의 이질적인 것에 열려 있는 불교에서, 그것과 만남을 통해 기독교적 문명이 여성화되는 것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러나 그 희망은 기독교의 서구와 불교의 인도 사이에 발생한 남성적 이슬람으로 인해 이미 오래전에 절단된 것이다.


귀로의 끝은 ‘열려있는’ 불교사원


하지만 ‘서양’과 ‘동양’을 잇는, 실현되지 못한 희망을 대신할 또 하나의 희망을 찾아낸다. 그것은 뜻밖에도 마르크스주의와 불교의 만남이다. 형이상학과 인간행위의 조화를 실현했던 이 두 사상의 만남을 통해, “인간을 첫 번째 사슬로부터 해방시키는 마르크스주의의 비판과 그 해방을 완결시키는 불교의 비판”의 만남을 통해 “동양으로부터 서양으로 흐르는 확고한 운동”이 이루어지리라고 말한다.

그는 한때 열대를 찾아 떠났지만, 그 열대를 통해 자신이 속한 세계를 떠난다. 그리하여 너무도 익숙해진 그 ‘문명화된’ 세계를 떠나도록 사람들을 촉발한다. 다른 삶으로 떠나는 여행을





맑스를 위하여


이 책은 원래 1965년에 출판되었지만, 우리가 이 책을, 그나마 영역본으로나마 처음 접할 수 있었던 것은 1980년대 초반이었다. 알다시피 그 시절은 마르크스의 저작을 읽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아니 책을 구하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맑스를 위하여>라는 제목에 놀라거나 충격을 받지 않는 게 가능했을까? 아니, ‘마르크스를 위하여’라니! 일단 숨겨서 몰래 봐야할 것 같은 긴장을 주는 책이었다. 마르크스를 위하여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그리고 이듬해(1966년)에 알튀세르가 제자들과 함께 또 하나의 책을 출판한다. ‘<자본>을 읽자!’는 말로도 번역될 수도 있는 <자본 읽기>였다. “마르크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 허, 책 제목을 이렇게 지을 수가 있다니!

그러나 <자본>이란 책이야 그 전에도 읽었던 것이고, 그 책이 출판된 당시에도 다들 읽던 책이 아니었던가? 그랬을 것이다. 안 읽는 책을 “이젠 좀 읽자”고 말하려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이제까지 읽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읽자는 말이었을 게다. ‘정통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름의 고식적인 독서, 그 상투적 독해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읽는 것, 그것이 바로 ‘마르크스를 위하여’ 그가 하고자 했던 것일 게다.


‘이론적 반-휴머니즘’ 견지


그래서 이 책의 서문은 자신들이 마르크스를 읽던 시기에 대해서, 그 독서의 방식을 제한하던 조건들에 대해 쓰고 있다. 그 글의 제목에 ‘오늘’이라고 붙인 것도 이런 점에서 아주 탁월한 작명이었다. 당에 의해 독서와 해독의 방식이 결정되고 제한되던 시절,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적 진리’ 내지 ‘프롤레타리아 과학’이란 이름으로 “오류를 그 모든 서식지에서 쫓아내던 무장한 지식인들의 시대”였고, “세계를 단 하나의 칼로 갈랐던, 예술·문학·철학 및 과학들을 계급이라는 가차 없는 절단으로 갈랐던 철학자들의 시대”였다. 스탈린은 죽었어도, 스탈린식의 진리가 사유를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 책이 정작 겨누고 있는 일차적 대상은 뜻밖에도 스탈린식의 실증주의적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그것을 비판하면서 등장했던 ‘휴머니즘적 마르크스주의’고, 마르크스를 휴머니스트로 해석하는 입장이다. 물론 그는 휴머니즘이 실증주의의 짝이고 보충물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그가 휴머니즘을 겨냥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로 만든다는 점 때문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무엇보다 마르크스주의자 자신을 위한 이데올로기. <경제학·철학 초고>라고도 불리는 마르크스의 <1844년 초고>의 출판 이후 크게 유행한 이른바 ‘소외론’의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스탈린의 ‘비인간적’ 비극을 비판하며 등장한 ‘휴머니즘적 사회주의’가 그것이었다. 그가 자신의 입장을 ‘이론적 반-휴머니즘’이라고 명명했던 것은 이러한 태도를 좀더 극명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러한 독해의 강력한 지지자는 헤겔이었다. 그래서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헤겔과 절연시키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한다. 이를 위해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의 소외론이 헤겔보다는 포이어바흐에 기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그러한 소외론자로서의 마르크스를 ‘청년 시절’의 미숙함으로 돌리고 성숙한 마르크스와 다시 떼어놓는다.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개념을 이용해서, 역사과학이라는 대륙을 발견한 과학자로서 성숙기의 마르크스와, 그러한 과학을 알기 이전의, 당연히 이데올로기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청년 마르크스를 분리한다.

이러한 비판 속에서 그는 ‘인간’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관념을 ‘사회적 관계’라는 과학적 개념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즉 인간이란 그가 어떤 관계 속에 들어가는가에 따라 다른 본성을 갖는 존재고, 따라서 그런 구체적인 관계와 무관한 인간의 본성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를 마르크스는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흑인은 흑인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노예가 된다.” 그 특정한 관계가 달라지면 그는 노동자가 될 수도 있고,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지’가 아니라 ‘어떤 인간인가’를 구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란 목적지 모르는 기차


그는 또 모순의 개념을 헤겔적 관념에서 끄집어내고자 한다. ‘과잉결정(중층결정)’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모든 관계의 본질에는 모순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전개 양상이 아무리 복잡해도 본질적으로 다양한 현상들은 모순으로 환원될 수 있다. 그러나 알튀세르에 따르면 사회란 ‘기본모순’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동심원적 구조를 갖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수준의 외부적 조건들이 기본모순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모순은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지만, 어떤 때는 농민들과 지주의 모순이, 또 어떤 때에는 제국주의와 식민지인민의 모순이 사회 전체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다른 모순들이 그 모순에 응축되고 그것의 작동을 통해서 작용하게 된다.

또한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에 깊이 침윤되어 있는 ‘목적론적 사고방식’과 평생 동안 집요하게 대결한다. 가령 ‘공산주의’나 ‘절대정신의 실현’ 혹은 ‘인간성의 실현’ 같은 역사의 목적/종말을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진행되는 것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목적론적 역사관념이 그것이다. 그가 보기에 역사란 “기원도, 목적도 없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출발지도, 목적지도 모르는 채 역사라는 기차에 올라타고 내리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된 또 하나 중요한 명제는 “이데올로기 없는 사회란 없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란 원래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통상적 관념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상식’이 바로 그런 것에 속한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1845년에 한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피지배계급의 입장에선 당연히 거짓된 의식, 허위의식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지배/피지배가 사라진다면 그런 허위의식도 사라질 것이고, 허위의식으로서 이데올로기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란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포함하여, 이런저런 생각(표상)들을 방향짓고 미리 규정하는 무의식적 ‘표상체계’라고 본다. 그런 한에서 그것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회가 되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없다면, 개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결정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개인을 사회가 요구하는 주체로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이데올로기인 것이고, 따라서 어떤 주체도 이데올로기 없이는 불가능하며, 어떤 사회도 이데올로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개념은 프로이트와 라캉의 이론과 결합하여, ‘호명’이라는 흥미론운 이론으로 이어진다. 가령 “모세야” 하는 신의 호명에 “예”하고 답함으로써 모세는 히브리 인민을 이끄는 ‘주체(subject)’가 된다. 신이 알려준 주체의 자리가 자신의 자리라고 인정하고 동일시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신이나 부모, 혹은 사회라는 큰 주체(Subject)가 지정한 자리를 나의 자리로 오인하는 것이며, 그를 통해 그 큰 주체의 신민(subject)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데올로기 없는 사회란 없다


이처럼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이론에 바슐라르나 프로이트, 라캉, 혹은 그가 피하면서 받아들였던 ‘구조주의’ 등의 이질적인 요소들을 섞어서 새로운 얼굴의 마르크스를 만들어낸다. 고답적인 형태의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난 모습으로. 그리고 그것을 마르크스에게 돌려준다. 그것이 그가 ‘마르크스를 위하여’ 하고자 했던 것이었을 게다. 마르크스가 그의 선물을 반가워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배적인 마르크스주의의 고답적인 사고에 지쳤던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 선물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상이한 사유들이, 새로운 사유가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사유 자체를 마르크스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을 것을 가르쳤고, 마르크스의 사유가 다시 살아 있는 사유와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다시금 새로운 형태로 마르크스적 이론을 창안하여 마르크스에게 돌려주려는 또 다른 사유를 촉발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이 지키고 유지해야 할 또 하나의 마르크스주의가 되는 순간, 다른 종류의 차이를 배제하는 절단의 칼날이 된다는 점을 잊지 않는 한에서지만 말이다.


출처 : 한국 문화의 원류
글쓴이 : 솔롱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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