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인문.정민우

정민우시대를말한다.3

doll eye 2017. 9. 5. 17:13

제20편 이란

빗장풀린 페르시안 똑똑이, 이란
(1) 더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의 블루 마블

  • 입력 : 2017.07.26 20:45:14    수정 : 2017.07.26 21: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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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제국이 지향하는 순수 아리안 족을 표현한 상징물과 영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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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안 족의 위대함을 다큐멘터리로 표현한 영상물'올림피아','의지의 승리'로 유명한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

1935년 2000년 이상 페르시아란 이름으로 살아온 국가가 이란으로 이름을 바꾼다. 페르시아는 그리스어로 변방이나 미개하다란 어감이 있는 단어라고 한다. 그리스어는 당시 문명의 중심이기 때문에 다분히 배타적인 말뜻을 가진 단어들이 몇 있었다. 바바리아란 말도 그런 것인데 이민족 미개인을 지칭하는 말로 원래는 '그리스인이 아닌'이란 뜻의 형용사라고 한다. 문명사적으로 보면 그리스인은 로마인과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로마제국 시대에도 이 단어는 계속 쓰여 주로 게르만족을 지칭했다. 페르시아나 바바리아나 모두 변방 야만인을 뜻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리스에게 페르시아나 로마에게 게르만이나 골치 아픈 미개인들이란 공통점외 이 둘은 아리안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스웨덴 편에서 민족의 이동을 이야기하면서 잠깐 언급했던 이름 '아리안 '말이다. 다분히 그리스-로마, 지중해 문명 중심적인 이름, 페르시아를 버리고 선택한 이름 이란은 히틀러가 어디 가나 외치던 '아리안'의 페르시아식 발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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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서 시작한 아리안 족의 이동경로는 결국 이란, 인도 그리고 게르만 지역 ‘인도 아리안족의 이동경로’

1933년 1월 30일 히틀러가 수상으로 집권하고 2년 후에 페르시아의 팔레비 1세(1921년에 쿠데타로 집권)가 국호를 이란(아리안)으로 바꾼 시기가 매우 흥미롭다. 히틀러는 이후 공공연하게 독일 민족주의 운운하며 아리안 민족의 근원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을 지목했다. 본부장이 구글에서 조사한 것을 근거로 결론 내리기에는 아리안 민족은 인도, 이란, 게르만 정도가 아닐까 한다. 스스로가 그렇다고 주장하니까 말이다. 거기에 히틀러가 이야기하는 중앙아시아 히말라야에서부터 시작된 순수한 혈통이 보존된 유일한 민족이 게르만 민족이라는 거다. 중앙아시아 중 네팔이란 곳은 종말론에 관련되어서도 많이 나오는 곳인데 영화 ‘2012’에서도 인류가 마지막 방주를 띄우는 것이 네팔이고 실제 고고학적으로 노아의 방주가 최초로 육지를 밟은 곳도 여기라고 한다. 족보 찾기는 이 정도까지만 하자. 본부장이 이거 싫어하는 거 잘 알지 않은가. 시간 낭비다. 피가 도대체 무슨 영향을 끼친단 말인가. 여러분은 입 밖에도 내지 마라. 없어 보이니 말이다. 차라리 집안 자랑을 하는 게 낫다. 부모 자랑 말이다. 개천에서 난 용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시대이니 말이다. 이것마저도 19세기를 따라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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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이슬람 분포는 생각보다 매우 넓다 ‘세계 이슬람교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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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란 혼자 시아파 이슬람 공화국이니 왕따 될 만도 한듯. ‘중동지역 국가들 수니와 시아 분포도’

하지만 본부장이 이란에 대한 이야기를 이처럼 재미없고 장황한 족보로 시작한 것은 이란이 가진 '독고다이' 경향을 설명하기 위하여 부득이하게 한 것이다. 이해해 주기 바란다. 그만큼 독자적으로 살아왔다. 일단 이슬람 세계에서도 이란은 혼자서만 다른 파이다. 일명 이슬람 종파로는 시아파라는 것인데 예전 오스만 투르크 영역인 소아시아라고 하는 아나톨리아 고원과 아라비아반도 그리고 지중해 일부 지역은 전부 수니파가 다수이고 비주류가 소수이다. 반면 호메이니 혁명 이후 이란은 시아파가 다수이면서 주류인 정교일치의 강경파 이슬람 공화국이다. 오스만 투르크와 이란은 이처럼 수니와 시아를 대표하는 전통적으로 이슬람 세계의 양대 산맥이다. 수니파 국가가 동남아시아까지 대부분이고 시아파는 단일국가 이란과 이라크, 예멘, 시라아(소수인 시아파가 집권 아사드 정권)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소수 탈레반이 점령)에 일부 존재한다. 여기에 이라크 내 무장단체인 헤즈볼라가 시아파고 악명 높은 이라크 IS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은 수니파이다. 본래 이슬람 세계에서 수니파는 친서방 성향의 세속 주의를 표방하지만 IS와 탈레반은 예외이다. 원리주의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폭력적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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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 난민 문제의 핵심인 시리아와 이라크를 둘러싸고 있는 4강국 ‘이란, 터키,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시아파도 따지고 보면 이슬람 강경파이지만 이들과는 강도가 틀리다. 결론적으로 보면 이란은 국가로는 유일한 시아파 정통국가이다.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마치 이란과 이라크가 라이벌 같지만 사실 이란의 종파적 라이벌은 터키다. 최근에 다행히 해결된 문제지만 터키는 만약 이란이 핵무장하면 터키도 즉각 돌입한다는 주의였다. 둘은 역사적으로나 종파적으로 라이벌이라고 보면 된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89)은 자국 내에서 지지기반이 약한 후세인(이라크는 수니파가 소수이면서 집권)을 부추겨 독자 노선을 타고 정통 시아파 이슬람 공화국을 표방한 이란에 대한 일으킨 서방국가 특히 미국의 중동 전략이라고 보는 견해가 다수다. 물론 석유라는 이해관계 때문이겠지만. 이 전쟁이 끝나는 시점도 절묘하게 소련이 붕괴되는 1989년이다. 모든 사건은 다 인과관계로 얽혀있다. 명심하자. 세상은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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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의 90%가 아시아 대륙에 있는 터키가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들어가 있다. 반면에 아일랜드는 빠져있다. ‘NATO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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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석유 매장량으로는 사우디, UAE 다음으로 3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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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반도에서 이렇게 많은 원유가 나올 줄 누가 알았겠나. 오스만 제국이 조금만 더 버텼다면 터키는 지금 세계 최고 부자다.

이란은 보다시피 이슬람이지만 아랍 정서가 아니다. 언어도 아랍어가 아닌 이란어를 쓴다. 물론 터키도 터키어를 쓰지만 80년 전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문자로 아랍어를 썼다고 한다. 지금은 알파벳을 쓴다. 그래서 그런지 터키는 분류상 유럽으로 들어간다. 말은 아시아식으로 하면서 말이다. 17세기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전성기 때는 오스만 투르크 대사가 유럽인들의 언어를 천박한 이란어라고 했다고 하니 이란어는 아리아인답게 인도-유럽어족의 부류이다. 따라서 이슬람 세계에서는 이란은 말과 글 그리고 종파가 완전히 다른 이단이다. 이란이 OPEC 산유국 모임에서 항상 이슈화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외교적으로도 미국과 소련 등 그 어떤 강대국들과도 연합하지 않는 노선을 취하고 있고 국내 정치적으로는 정교가 일치하는 유일한 나라다. 1979년 2월 1일 호메이니란 종교지도자가 레자 샤 팔레비왕이 망명한 이란을 버리고 망명한 후 테헤란에 발을 디디면서부터 시작이다. 팔레비왕 시절 이란은 여대생들이 미니스커트 입고 돌아다니던 나라다. 이슬람 국가에서 미니스커트라니 상상이 안가는 이야기지만 그만큼 서구화에 적극적이었던 시대다. 이런 친 서구적이던 팔레비 왕정은 1921년부터 1979까지 이루어졌다. 이 사이 종교지도자와 왕권 간에는 엄청난 갈등이 생겨난 데다. 여기에 팔레비 왕가 자체가 소수파인 수니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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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홉커크의 ‘The Great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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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그레이트 게임에서 영국이 가장 두려워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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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친척들과 많이 했던 블루 마블 게임의 실제 모델 ‘The Great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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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게임에 비유한 드라마 셜록 시리즈 중 ‘셜록과 모리아티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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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rlock VS Moriarty

본부장이 이란 편을 이야기하면서 언급한 ‘더 그레이트 게임’은 원래 19세기 영국 정보장교 아서 코넬리가 처음으로 사용한 단어로 중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대영제국의 러시아 봉쇄정책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지도상으로 보면 알겠지만 이란은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러시아를 접하고 있고 동남쪽으로는 직진하면 바로 인도 대륙이다. 독일 지역을 부흥시켜 서쪽을, 크림전쟁으로 오스만 투르크와 연합하여 흑해에서 남쪽으로 봉쇄하고 나면 나머지가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이다. 코난 도일이 쓴 ‘셜록 홈즈’ 1권에서 셜록의 친구인 의사 왓슨이 자신을 소개하면서 말한 '전쟁터에서 막 돌아온 곳'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이었다. 여기까지만 막으면 바로 옆은 한번 들어가면 돌아올 수 없다는 '타클라 마칸(Tkla Makan)' 사막이고 그 뒤로는 앞서 말한 노아 이래로 인류 소멸과 재창조의 장소, 히말라야산맥이다. 이후로는 중국 본토로 막히니 이란은 그야말로 중앙아시아 지역을 막는 국제정치적 요충지다. 거기에 석유 매장량이 세계 매장량의 10%에 달해 충분히 독자 생존이 문제가 아니라 OP 내 큰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지역이다. 이 정도면 이미 생겨먹은 모양새가 독자적으로 클 수밖에 없는 게 이란이다. 하지만 이런 요충지이기에 역사적으로 고생도 많이 한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인도 정벌을 가는 길에 페르시아를 멸망시켰고 13세기에는 몽고가 반대로 유럽 정벌을 가겠다고 쳐들어와 인구의 절반이 죽는 수난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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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에 독일, 프랑스, 영국이 있다면 이슬람 세계에서는 ‘이란, 아랍, 터키’이다.

요즘 이란이 핵 개발을 포기하면서 개방을 가속하고 있다. 팔레비 왕조가 축출되고 시아파 이슬람 공화국이 세워지면서 거의 전 세계와 싸울 것처럼 외로운 행군을 해왔다. 석유 금수조치와 같은 경제 제재 조치로 힘든 나날을 보내온 것이다. 지금도 OPEC 내에서 유가가 20달러까지 내려가도 감산 안 하겠다고 홀로 버티는 나라가 이란이다. 손사래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본부장이 보기엔 페르시아 제국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자산에다가 부존자원이나 외세를 이겨낸 국민적 근성으로 보나 전형적인 대국적 풍모로 손색이 없다. 유럽에서 보면 독일 같은 형국이 아닌가 말이다. 중부 유럽에서 동유럽을 받쳐주며 강하게 러시아를 막아 주고 있는 유 럽내 경제 최강국 독일처럼 이란은 카스피해를 끼고 중앙아시아를 받쳐주며 러시아를 막고 있다. 본부장이 추정컨대 이란은 호메이니 혁명이 없었다면 단연 이슬람 세계에서 터키를 누르고 현재 유럽의 독일 같은 지위를 차지했을 것이다. 레자 샤 팔레비 2세 왕이 취해온 외교정책도 어느 강대국에나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는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지역권 안에서나 서방세계와도 적정한 포스트를 유지하는 정책이었으니 말이다. 현재 독일이 그런 포스트가 아닌가. 지역 내 리더십이란 절대 과격하게 생기는 게 아니다. 적절한 희생을 해가며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본부장이 말한다. 민족주의나 종교 이념이 잘못된 게 아니다. 극단적인 것이 잘못된 것이다. 누차 말하지만 다양성이 무너지면 번영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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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too shall pass

독일도 민족적 분류로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융합될 수 없는 나라이다. 지중해 문화를 꽃피웠던 라틴민족과는 생김새부터 완전히 다르고 뿌리는 게르만이라고 하지만 이젠 다른 민족인 앵글로 섹슨 족인 영국과도 마음가짐이나 성향이 또 매우 다르다. 직접 본부장이 보고 그대로 느낀 거다. 따라서 독일은 섬과 같이 고립되어 외롭게 러시아를 상대해야 할 위치였다. 따라서 이란과 매우 유사한 지역 공동체에서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으나 패전으로 동서로 나뉘면서 자연스럽게 스스로 서방세계에 편입된다. 이란은 이런 과정이 없이 과도하게 독자적인 행동을 추구하다 결국 오늘날과 같은 국제적 지위를 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쁘고 좋은 것은 없다. 역사는 지금은 나빠 보이지만 나중에는 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말이다. 중국 삼국시대 전략가 제갈공명의 말대로 '福中之禍 禍中之福'이다. 일관성 있게 자신만의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고 꾸준하게 자리를 지켜왔다면 말이다. 제갈공명의 이 말은 본부장이 여러분에게 꼭 일깨워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언제나 현재의 공포에 떨지 마라. 곧 끝날 테니 말이다. 비슷한 격언으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인데 고대 페르시아와 히브리 격언이기도 하다. 솔로몬 왕이 했다는 말도 있고 페르시아 왕이 했다는 말도 있다. 말 그대로 지금까지의 이란의 고통은 반드시 그 빛을 볼 것이라는 게 본부장의 예측이다. 엘랑 비탈이란 말이 있지 않았나. 절대 고독의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도약의 시간이 온다. 본부장의 경험과 독서로 보았을 때 보통 개인은 3년 정도이고 나라는 30년 정도라고 보면 된다.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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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봉쇄 정책의 대부 ‘조지 케넌’

예전 소련 연방이었던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들(~탄으로 끝나는 나라들)은 이제 독립국 지위로 러시아를 둘러싸고 있다. 마치 예전 바르샤바 조약 기구로 소련의 위성국들이 이제는 나토 회원국으로 러시아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더 그레이트 게임’말은 원래 1907년 러시아 영국 우호 조약이나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을 마지막으로 종료되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본부장이 보기에는 1,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다시 피아 식별을 완벽히 끝내고 미국의 조지 케넌이 5대 중심국가론의 ‘소련 봉쇄정책’을 들고 나와 계속 이어져 1989년 결국 소련이 해체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 봉쇄는 계속 진행 중인 게임이다. 이유는 러시아가 유라시아의 중심부를 가지고 있는 한 말이다. 러시아가 어디로 이사를 가던지 없어지지 않는 한 이 지겨운 서유럽 및 미국의 경계는 계속될 것이다. 결국 19세기부터 20세기 내내 진행됐던 러시아 봉쇄 중 특히 중앙아시아에서의 영-러간 각축전인 ‘더 그레이트 게임’의 바통을 이어받은 조지 캐넌의 ‘봉쇄정책’은 이란 국내 정치에서부터 이슬람 전체로까지 또 다른 '그레이트 게임'을 촉발시켰다. 국내적으로는 왕권과 종교지도자 간, 국외적으로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수면 아래 이해관계가 물 위로 떠오른 것이다. 거기에 여성 해방 문제까지. 정말 이란에서 말 많이 할만하다. 인류사의 웬만한 민감했던 이해관계가 이란을 통해 모두 수면 위로 올라왔으니 말이다. 독일도 그런 면에서는 만만치 않은 근대사를 가지고 있으니 아마 히틀러가 외치던 영광스러움이라는 아우라에 가려져 미처 몰랐던 아리안 족의 진정한 사명이 아마 이것일지도 모른다. '절대 고독'말이다. 힘들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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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준비된 자가 가지는 특권 ‘Just Do It’

본부장은 미국에서 공부한 선후배들이 매우 많다. 본부장이 보기에는 아직까지 전 세계의 교육을 선도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이건 미국에 대해 우호적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렇다. 숫자 말이다. 가장 많은 유학생으로 인한 교육 소득을 올리는 나라가 미국이다. 중국이 미국과 경쟁을 한다고 하고 있지만 당장은 미국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여론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는 것도 교육 그것도 대학 교육의 질 문제다. 전 세계 인재들이 미국 대학에 모여 토론하고 인맥 쌓고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간다. 거기서 국내 엘리트로 성장한다. 이런 사이클이 계속 반복되면 세계 지도층은 미국 대학의 교육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참 놀라우면서도 무서운 현실이다. 자본이라는 것이 교육으로 가장 많이 재투자되는 시대가 지금의 21세기다. 이제는 막무가내식 경험으로 성공하는 시대가 아니라 전문적 교육받은 자들끼리 그룹핑 되어야 성공하는 사회다. 즉 간접 경험이 직접 경험을 이길 수 있는 시대란 것이다. 예전 20세기에는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무조건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서 도전하라고 했다. 나이키의 표어처럼 말이다. ‘Just Do It’말이다. 지금은 그러다간 밑천 다 털리고 손가락 빨면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절치부심의 시대가 온 것이다. 준비의 시대 말이다. 누가 시도를 많이 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준비를 많이 했느냐가 승부를 결판 짓는다. 여러 번 기회를 주지 않는 단판 승부의 시대기 때문이다. 내가 또 싸우고 싶다고 하더라도 상대나 심판이 더 싸울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19세기처럼 21세기는 평판의 시대인 것이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무작정 시도된 도전의 횟수보다는 오랜 시간과 인연이 쌓인 준비된 급조되지 않은 과정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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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오페라, 음악도 줄거리도 모두 너무나 완벽하다. 그래서 항상 불안하다. ‘불안하면 심각해지고, 심각하면 지는 거다’

미국 내 대학 뿐 아니라 세계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에서 똑똑하다는 평판을 달고 다니는 민족이 있다. 인도인, 이란인, 유대인이다. 아쉽게도 히틀러가 그토록 우수함을 외치던 독일인은 똑똑함에서는 이들에게 뒤질지 모른다. 그 양반이 지하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독일은 좀 헛똑똑이였다. 본부장이 꼽는 세 민족의 공통점을 말해주마. 바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타부, 즉 금기사항을 안고 살아왔고 현재도 그렇게 사는 민족들이다. 타부가 강하면 창의성은 없어지지만 엄청난 응용력이 생겨난다. 창의성은 경험에서 만들어지지만 응용력은 타부를 통해 단련된 프로세스적인 상황 판단 능력 즉 디테일 함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직관적인 사고와 디테일한 사고의 차이다. 본부장이 보기에는 여기서 독일은 정확히 경계에 서있었다. 다 잘하려고 한 것이다. 경계에 서 있는 자는 항상 스스로 너무 완벽하려고만 한다. 완벽에 대한 집착으로 인간이 지켜야 한다고 전승되어 오던 것들을 너무나도 쉽게 어겼던 것이다. 언제나 타부를 건드리는 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수천 년의 저주다. 명심해라. 결국 지독하게도 고생했다. 본부장이 말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어라. 금기사항은 나를 지켜주는 방패란 말이다. 누차 말하지만 글로벌 시대에는 심각하면 진다. 심각한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전승되는 비극이 없고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할 타부도 없었기 때문이다. 금기사항이 주는 지고한 안전장치가 없는데 어떻데 심각하지 않겠는가. 독일은 그게 문제였다. 같은 아리안 민족인 인도, 이란과 함께 매우 우수한 관념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만큼의 타부가 없이 그저 순수하게만 행동한 것이다. 차라리 순진했더라면 최고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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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을 보는 직관만 가지고는 불가능하다. 디테일 프로세스를 책임질 팔로워가 있어야 한다. 스티브 잡스의 창업 파트너 ‘스티브 워즈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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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가 물었다. 메트로놈과 지휘자의 역할 차이가 뭐냐고. 세이지 오자와 가라사대 "연주자는 악기를 연주하고 나는 그들을 연주한다"

몸으로 직접 해 보는 경험은 리더가 팔로워를 이끄는 가장 큰 자산이다. 스티브 잡스의 차고가 없었다면 잡스는 CEO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친구이자 팔로워인 스티브 위즈니악이 그를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결과물도 없는 것이다. 스티브 위즈니악이 가진 프로세스적 상황 판단 능력이 그에게는 없었으니 말이다. 잡스가 일본 지휘자 세이지 오자와에게 들은 유명한 말인 '연주자는 악기를 연주하고 지휘자는 연주자를 연주한다' 가 실제 상황에서 여러분에게 이루어지려면 지휘자인 여러분은 연주자인 팔로워 보다 나은 실력의 연주 실력이 아니라 보다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 여기서 경험이란 즐거운 유흥 같은 것이 아니라 자기희생을 의미한다. 그래서 본부장이 준비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20대에 집중하고 30대에 축적하고 40대에는 명함만 바꾸라고 한 것'이다. 그냥 대충 하는 유쾌한 경험은 의미 없다. 집중되고 치열한 미친 것 같은 희생을 감수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10년 이상 인생의 먼 바다로 나아갈 지식과 유무형의 자본을 축적해야 한다. 그리고 40대에 들어서 자리를 옮겨 가며 인생의 거대한 자산을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다. 어떤가 이해가 되는가. 보약 같은 이야기다. 이란 편에서 몰래 숨어서 여러분의 인생에 진정 도움이 되는 많은 걸 쏟아내는 느낌이 든다. 인류사적 뿐 아니라 이 책의 전개 그리고 여러분의 배움을 위해서도 이란은 모든 것의 완성을 위한 정말 큰 관문임을 본부장도 절실히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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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악당처럼 일하라. 톰 히들스턴이 디테일하고 야물딱진 악당 연기를 하는 ‘재규어 자동차 광고’

인도, 이란, 유대인의 이런 프로세스적 상황 판단 능력은 다국적 기업 업무의 일처리에서 매우 탁월한 기능을 발휘한다. 특히 이란인은 매우 디테일하다. 넓은 섹터를 관리하려면 직관력보다는 디테일이 핵심이다. 본부장이 최연소 본부장에 오른 것도 바로 이 디테일 능력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부하들에게 할리우드 악당처럼 일하라고 말한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영웅들은 매우 설렁 설렁 일하고 늦잠을 자며 거만을 떨며 여자들에게도 매우 무례하지만 악당들은 시간 약속 잘 지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며 여자들에게도 매우 친절하다. 무엇보다도 일처리가 매우 디테일하고 야물딱지다. 마음에 든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영웅처럼 맥빠지게 대충 일하면 본부장이 저승사자처럼 확 데려갈 것이다. 명심해라. 디테일한 분석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에서 살아남아 개인적인 직관력도 마음껏 발휘할 기회가 오는 것이다. 그리고 직관력이란 업무처리 능력으로 발산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소양으로 발산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종합적인 상황 판단 능력이다. 이것이 발전하려면 기초적인 소양 교육을 엄청나게 해야 한다. 주 중엔 일하고 주말엔 노는 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주 중이나 주말에 더 많은 자기계발이 필수다. 실제적이고 반복적인 사고야말로 종합적 상황 판단력의 단련 방법이다. 약 10년 이상의 오랜 시간을 두고 수많은 독서와 공연 그리고 집단 토론과 개별 멘토링을 통해야 한다. 이건 본부장이 철저하게 수행해 봐서 안다. 다시 하라면 못할 매우 고독한 과정이다. 셜록 홈즈의 영국식 경험주의적 사고는 비 오는 런던 한복판의 우울한 방안에 틀어박혀 수다스러운 하숙집 관리인의 쉴 새 없는 지적질과 친구 왓슨과의 시도 때도 없는 토론으로 가능했다. 그런데도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게 셜록이다. 밥 굶기 딱 좋다. 오직 판단하고 추론만 할 뿐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보면 알겠지만 항상 서서 창밖을 보거나 마차나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를 가며 머릿속으로 계속적인 추론만을 만든다. 이런 행태는 본부장이 지향하는 실전형 인재는 전혀 맞지 않는다. 종합적 상황 판단력과 프로세스적 상황 판단력이 겸비되어야 한다. 본부장은 둘 중에서만 고르라면 무조건 후자를 고른다. 여러분은 잃어버린 비누를 누가 가져갔는지도 알지만 시장에서 파는 비누의 공정가격도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리얼 세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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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행정부의 최대 외교 업적이 될 ‘이란 핵협상 타결’

이란은 이제 세계로 다시 나왔다. 본부장은 그동안 많은 고통을 이겨내 온 이란이 많은 내공을 쌓았으리라 본다. 외형적으로는 덜 발전되어 보이더라도 이란은 강한 정신 유산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적 신뢰라는 자산이 준비된 상태이다. 빌딩이니 도로니 하는 것은 금방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제조업 혁명의 시대에 하드웨어 제작은 그다지 큰 장애물이 아니다. 이제부터 진정한 승부는 사회 전체가 쌓아온 공통의 가치에 대한 폭넓은 인연이 잘 구성된 조직이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 준비된 인연이라는 크라운 주얼이 왕관이라는 하드웨어와 결합하는 순간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게 될 것이다. 얕은 인연으로 눈앞의 모래알 같은 이익만을 움켜쥐려 해봤자 손가락 사이로 모두 흘러내려 버린다 것을 꼭 명심해라. 앞서 본부장이 이란에게 기대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마지막으로 이제 빛나는 대양으로 나아갈 나라, 이란의 지도자들에게 자기희생과 국제적 균형감각 그리고 '건강한 속물주의'를 꼭 당부하는 바이다. 이제는 이란이 주도하는 ‘더 그레이트 게임’을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제21편 이스라엘

2000년 전 땅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는 콘텐츠가 있는 나라 이스라엘
(1) 글로벌 콘텐츠의 모든 것

  • 입력 : 2017.08.03 21:28:53    수정 : 2017.08.03 21: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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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의 '레버리지'

아르키메데스가 충분히 긴 지렛대가 준비된다면 지구를 들겠다고 한 일화가 있다. 아르키메데스는 기원전 200년도 넘는 시대에 산 사람이다. 시대로 보면 2차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와 카르타고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던 시기이다. 본부장이 아르키메데스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궁금하겠지만 일단 들어라.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는 지금도 매우 유용한 기구이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원리는 그대로 이용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근본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원천 기술이란 것은 당장은 허황된 거대 담론 같은 이야기지만 너무나도 많은 응용물을 만들 수 있다. 지렛대로 지구를 들어 보인다는 것이 과연 그 당시 권력자들에게 무슨 실질적인 어필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던 환경적 촉발제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탤런트'의 중심이 '글로벌'에 있기 때문이다. 즉 공동체 구성원의 본능적 관심사의 범위가 글로벌했다는 말이다. 거대한 이슈를 가진 글로벌 권력자들에게 그 이슈는 바로 앞의 현실의 문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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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0년대의 세계 대전 '포에니 전쟁'

시칠리아 섬의 그리스 사람인 아르키메데스는 포에니 전쟁 중 카르타고 편에 속해있었다. 포에니 전쟁은 3차에 걸쳐 10년 이상 치러진 대전이다. 인류 최초의 세계대전 말이다. 어느 때보다 글로벌 탤런트가 절실했던 시절이다. 본부장이 쉽게 얘기해주마. 글로벌 탤런트란 내가 비록 아프리카에 사는 카르타고 사람이지만 이탈리아반도에 사는 로마 사람과 원활하며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만들어주는 '포괄적인 능력 중심 개념'을 말한다. 본부장이 겪은 모든 다국적 글로벌 기업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인재 경영의 교육 목표이다. 이제 눈치챈 사람이 있을 것이다. 본부장이 왜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 일화를 이야기했는지. 글로벌 개념은 지렛대의 개념과 매우 똑같다. 받침대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들어 올리려는 물체는 가벼워진다. 더 많은 힘이 집중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었던 로마가 결국 이 지렛대 원리의 승자가 되었다. 대수의 법칙이 작용할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를 만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운영에 힘이 거의 들지 않지만, 오히려 거대한 조직이 더 잘 운영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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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가 발표한 2030년 국가별 글로벌 탤런트 풀

글로벌 탤런트가 생성되려면 첫째. 공동체 안에서 말도 안 되는 거대 담론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궁극적으로 가고자 하는 눈높이가 글로벌해야 한다. 둘째. 포괄적 능력 중심 개념이 바로잡혀야 한다. 바로 그룹핑 능력(Grouping Ability)을 가진 실전형 인재의 요건이기도 하다. 셋째. 모든 사람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인격적인 추동력이 있어야 한다. 가장 글로벌한 것은 외국어가 아니라 고매한 인격이고 이것은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하는 표준화된 모델은 결국 처해진 상황에서 주변으로부터 강력한 공감을 흡수해나간다. 넷째. 그 인격적 추동력을 받쳐 줄 격이 다른 눈높이가 필요하다. 본부장이 보기에 기원전 200년 이상 전 사람인 아르키메데스가 생각한 지렛대의 원리는 1493년 알렉산드르 6세에 의해 반포된 토르데시아스 조약의 발상만큼 획기적인 눈높이의 발상이다. 인간의 성취감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본부장이 말한다. 꼭 레버리지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레버리지 개념은 언제나 여러분에게 포괄적 능력 중심 개념을 강하게 불어넣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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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으로서 20세기 국제 정치를 좌지우지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무장관

결국 글로벌 탤런트의 핵심은 레버리지 개념인 것이다. 여러분은 먼저 받침대를 찾고 지렛대를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들어 올리려는 대상이 확고해야 한다. 명심해라. 대상이 명확해지면 다 분명해진다. 이스라엘이 2000년 전에 없어진 땅도 다시 찾을 수 있었던 시작은 바로 이 '레버리지 개념'때문이다. 대상물, 받침대 그리고 지렛대 말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유대인인 20세기 국제 정치를 쥐락펴락했던 미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나 국제 투기 자본의 대부 조지 소로스가 가진 개념이 바로 레버리지 개념이다. 이해관계라는 받침대와 포괄적 능력이라는 지렛대 그리고 분명하게 설정된 '최고의 가치'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하는 개인이나 조직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1945년 이스라엘의 건립은 하나의 좋은 예다. 20세기 초반 대영제국은 유대인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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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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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상징 '다윗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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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세계 시오니즘 기구 (WZO)의 창립자 '테오도르 헤즐'

19세기 후반부터 유럽 전역의 유대인들이 가진 국가 건립에 대한 열망이 시오니즘이란 캐치프레이즈로 터져 나오던 시기였지만 영국이나 유럽 안에서는 반대론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 반유대 정서라는 것은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오랜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히틀러 집권 전까지 유대인에게 가장 관대한 나라는 독일이었다. 러시아가 가장 박해가 심했고 서유럽도 반유대 정서가 존재했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이 난민처럼 독일로 밀려들었고 독일도 그것에 화답했다. 지금도 공교롭게 독일은 유럽 난민 문제에 가장 관대한 나라이다. 하지만 히틀러 집권 후 유럽은 유대인에게는 진공상태의 공간이 되었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유럽을 떠나고자 하면서 수면 아래만 있던 새로운 국가 건설이라는 이해관계가 수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유럽을 떠날 수 있던 유대인은 부유층이었다. 히틀러 집권 후 유대인 추방 과정을 보면 유대인 부유층은 모든 재산을 포기하는 대가로 독일을 떠날 수 있었고 유대인 빈곤층은 독일뿐 아니라 전 유럽에 그대로 남아 나중에 큰 희생을 당하게 된다. 정말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얘기다. 이런 민족적인 박해 과정에서도 금수저는 살고 흑수저는 죽어갔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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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 차일드 가문의 문장

결국 유럽에서 일어난 유대인 파동은 자연스럽게 이들만의 국가 건립 열망에 불을 댕겼고 그 후보지는 남미대륙과 현재 이스라엘 정착지인 중동지역이었다. 명분은 예루살렘을 끼고 있는 중동지역이 좋았지만 이미 팔레스타인 정착민들이 터를 이루고 있었다. 이때 이 후보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유대 자본이 모아지는 강력한 목적이 생겨나게 되었다. 역사는 보다 강력한 목적을 가진 자가 오래 버티면 승자가 된다.

돈이 모아지는 데에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는 설이 있는데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로스차일드라는 유대인 가문마저도 강력한 레버리지를 통해 부를 얻어내는 과정을 가졌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프랑스 편에서 말했던 워털루 전쟁이다. 나폴레옹은 당시에 유럽 힘의 균형을 바꾸려 한 장본인이었다. 힘이 바뀔 때 이해관계도 바뀐다.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지는 정보를 가지고 큰 돈을 번 가문이 바로 로스차일드이다. 두 번째는 이 돈을 가지고 인도양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에 투자해서 엄청난 수익을 거두게 된다. 모두 레버리지 개념이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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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 제국 금괴

본부장은 그 뻔한 로스차일드 음모론이나 이스라엘 건립 배후설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개연성이 다분한 사실(Fact)는 그냥 판단 과정에 포함시켜 놓으면 된다. 세상 모든 일은 한가지 이유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매우 복합적이다. 하지만 촉발제는 하나다. 즉 방아쇠 역할 말이다. 이스라엘 건립의 방아쇠는 로스차일드가 아니라 유럽에서 일어난 유대인 파동이었다. 결국 히틀러가 그 방아쇠가 되어준 것이다.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도 본부장식 추론을 해보면 반유대 자본이 시작한 방아쇠다. 역사는 작용이 있으면 반 작용이 있는 법이다. 유대 자본이 독일 내에서 좀 더 우호적으로 활동하고 다는 것을 곱지 않게 보고 있던 반대쪽이 있었다는 얘기다. 유럽 최초로 이루어진 히틀러의 독일제국은행 국유화도 그런 맥락이다. 아무튼 음모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Truth)이 중요한 것이다. 이해관계의 흐름 말이다. 뭐든 과하면 사고가 나는 것이다. 균형감이 중요한 것은 힘의 논리로는 결과는 만들어도 유지하지는 못한다. 유지되지 않는 성공이나 비즈니스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지만 이름은 영원한 남는 걸 바라는 것처럼 지속성이라는 것은 불완전한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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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본부장의 추천 교양서, 사무엘 스마일스의 '자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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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본부장의 추천 교양서,사무엘 스마일스의 '인격론'

우리가 흔히 이스라엘 대해 언급하는 이슈는 유대인이 세계 경제를 틀어쥐고 있고 미국 정치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뭐 일견 그래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대인이 그럴 수 있는 요소를 생각해 보자. 이란 편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유대인은 종교가 주는 강력한 타부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즉 금기사항 말이다. 이것은 반드시 생활 혁신을 낳는다. 스스로의 생활에서 이미 나태해지지 않으려는 새로운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혁신하면 떠오르는 것은 스티브 잡스 같은 창의력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절대 글로벌 탤런트라고 볼 수는 없다. 오로지 개인의 탁월한 직관력이고 영국의 석학 사무엘 스마일스의 <인격론>에서도 언급했지만 개인의 탁월한 직관력으로 만들어진 조직은 쉽게 무너진다. 그 공감대의 기반이 매우 약하기 때문이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영화 <잡스>에서 내내 잡스에게 요청하는 것이 바로 이 공감대이다. 조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동지적 공감대라는 지렛대 말이다. 물론 잡스는 대중적 공감대이라는 지렛대를 잡았다. 여기서 본부장이 하나 말해주겠다. 스타가 되어 대중을 휘어잡는다고 오래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유지시켜주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경제적 부와 권력 그리고 명성의 지속성을 좌지우지한다. 이 부분을 유대인들이 잘해왔다는 것이다. 그들이 가진 강력한 금기사항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한 자신만의 생활 혁신을 통해 자신을 따르는 팔로워를 사로잡은 것이다. 즉 존경을 받는 일 말이다. 세상에 남이 잘 되는 것을 마냥 좋아해 주는 사람은 절대 없다. 거기에는 합당한 희생이 따라야 한다. 그 희생이 타부를 건드리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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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란 새로운 조합의 완성품

다음으로 중요한 유대인의 성공 비결은 콘텐츠의 발굴이다.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이 글로벌 콘텐츠에 대해서 본부장이 말해주마. 매우 중요하다. 콘텐츠라는 것은 새로운 것이 절대 아니다. 조합이 달라진 완성품인 것이다. 10가지 아이템으로 100가지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유대인이 존경하는 솔로몬 왕이 말한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바로 글로벌 콘텐츠의 근본적 개념이다. 2000년 전부터 인류에게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을 일찍이 깨달은 민족이 유대인인 것이다. 콘텐츠는 달리 말하면 명분의 절묘한 조합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탄생되기 위해서는 막대한 유대인 자금 보다 중요한 게 왜 이스라엘이 건립되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호소력 있는 글로벌 콘텐츠를 유대인은 준비했던 것이다.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고 기업에서는 이것을 기획력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설득력 있는 보고서 말이다. 이 프로젝트가 왜 만들어져야 하는가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의 현실적 자금의 수급 그리고 완성된 후의 계속적인 파급효과 및 유지 방법이 만들어지면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을 명심하고 꼭 기억하기 바란다. 여러분은 역사 공부를 하기 위해 이 글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건립해가는 과정은 여러분에게는 설득력 있는 콘텐츠라는 것을 설명하는 매우 좋은 샘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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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팬 관리의 결과. 영국 축구 리그의 멘체스터 더비의 팬들 모습

마지막으로 끝을 마무리해준 요소가 있어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은 건재하다. 바로 팬(fan)이다. 이스라엘에게는 그들이 합리적 콘텐츠를 호소할 팬들이 있고 그 팬들은 아직 그들 편이다. 이것은 부단한 팬 관리가 가장 주요했다. 이것은 국가나 단체 개인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유대인이 밑도 끝도 없는 막강한 영향력을 무작정 행사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명심해라.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가오시'의 동물 말이다. 누군가에게 대접받았다는 느낌을 즐기는 유일한 지구상의 존재 말이다. 이 느낌을 지속적으로 팬들에게 느끼게 해준 게 바로 유대인의 로비력이다. 아마 부단히 찾아가고 전화하고 편지 보내고 했을 것이다. 반드시 따라 해 봐라. 곧 여러분의 팬들이 여러분 주위를 계속 맴돌 것이다. 이유는 여러분이 좋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에게 끌린다. 다만 매우 오랫동안 꾸준히 해 와야 한다. 관계라는 것은 오래된 나무와 같다. 어느 날 그렇게 우뚝 솟아 있는 듯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린 산물이다. 뭐든 시간을 들여야 명품이 된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큰 버팀목이 될 것이다. 유대인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역사적 증거물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그들이 살아온 이해관계를 면밀히 훔쳐보길 바란다.

제 22편 중국

알리바바와 만리장성의 나라,중국 1
(1) 초한지로 생각하고 삼국지로 행동한다

  • 입력 : 2017.08.17 20:39:15    수정 : 2017.08.17 20:5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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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랙탈 우주 이론'

폴란드 태생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Benoît B. Mandelbrot)라는 사람을 들어 봤는지 모르겠다. 이름이 어렵다. 앞에서 말했듯이 유럽 최고의 근성 플란드에는 뛰어난 인물도 참 많았다. 마담 퀴리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브누아 망델브로도 마담 퀴리처럼 프랑스에서 공부한 과학자이다. 당시 유럽에서 유학생에게 가장 관대했던 나라가 프랑스이니 말이다. 지금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래서 유럽에서 테러가 났다고 하면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나는 것이다. 외국인 유입에 관대하다보니 말이다. 물론 그들이 인종차별을 안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나마 똘레랑스 즉 관용 또는 포용을 내세우는 것만이라도 프랑스는 유럽에서 자신들이 차별화한 국가 마케팅에 성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폴란드 태생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가 주장한 것이 <프랙탈 이론(Fractal Theory)>이다. 프랙탈(Fractal)인란 용어도 스스로 만들었다. 라틴어로 조각이란 단어에서 따온 신생어다. 이것부터가 이 양반은 멋진 사람이다. 퀴리 부인이 라듐을 발견하고 그 이름을 지었듯이 브누아 망델브로는 가상적인 추론을 통해 유추된 이론에 자신이 만든 신생어를 붙였다. 여러분도 이제부터라도 자신만의 신생어를 만들기 바란다. 본부장처럼 말이다. 전편 <본부장이 말한다>는 콘텐츠의 50프로 이상이 본부장이 만든 말이다. 물론 나머지 50프로는 150년 이상된 선생님들이 말씀하신 클래식한 용어들이고 말이다. 스스로가 무엇인가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은 그만한 노력을 한 사람이다. 그것에 대해 한 번 이상 아니 수 천번 생각한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이 그것에 토를 달 수가 없는 것이다.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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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으로 프랙탈이론을 설명하는 '브누아 망델브로(Benoît B. Mandelbrot)'

<프랙탈 이론(Fractal Theory)>은 쉽게 이야기 하면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패턴이 계속 반복된다는 말이다. 나무가지가 뻗어있는 모습과 나뭇잎에서 줄기가 뻗어있는 모습은 거의 유사하다. 번개가 치는 모습은 수 백 번을 처도 거의 비슷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강줄기는 세계 어디 강을 봐도 대부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생태계의 예를 넘어 원자와 전자 그리고 태양과 행성과의 유사성 그리고 태양계와 은하계의 유사성, 은하계와 대은하의 유사성까지 그야말로 아주 작은 미립자에서부터 대우주까지 그 유사성과 규칙성을 찾을 수 있다는 이론이 바로 프랙탈 이론이다. 사실 이 프랙탈 이론이 일반에 알려지게 된 것은 영화 <맨 인 블랙 1>의 엔딩 장면때문이다. 당시에는 영화 자체의 독특한 외계 콘덴츠 뿐아니라 윌 스미스와 탐미리 존스라는 배우의 인기가 합해져 그야말로 대박이 난 영화이다. 그런데 이게 마지막 엔딩까지 관객들에게 환호성을 지르게 만든 것이다. 바로 카메라 앵글이 영화의 엔딩 장소에서부터 계속 우주 공간으로 빛의 속도로 후진하면서 지구와 태양계 그리고 은하계를 넘어 대은하가 하나의 구슬이 되어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큰 존재가 그 대은하 구슬로 구슬치기를 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크로즈된다. 당시만해도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물론 지금같은 가상현실의 시대에는 아예 대중들에게 관심조차 끌지 못하는 우주 이야기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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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가장 비싼 사과 '애플'

또 하나의 거대한 세상인 중국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프랙탈 이론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에게는 시공의 한계가 있다. 내가 지구에 있는 동안 나는 다른 행성을 몸으로 직접 경험할 수 없다. 한번에 두 가지를 온전하게 경험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본부장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젊은 시절 양다리를 걸쳐가며 여자들을 사귀던 얼빠진 친구가 생각난다. 아마도 그 친구는 한 여자도 제대로 사귀지 못하는 바보 짓을 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을 것이다.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지구상의 모든 여자하고의 사랑을 한 것이다. 이게 본부장이 생각하는 프랙탈 이론의 생활 이론적 적용이다. 좀 간지럽긴 하다. 결국 요지는 제대로 된 하나는 전 우주와 같다라는 말이다. 여러분이 중국에 대해 정확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중국에 사는 중국인들도 그것을 모른다. 오히려 여러분들이 잘만 하면 중국인들보다 더 중국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중국에서 일어난 오랜 일상에 대해 개념적인 정의를 내린 문학 작품을 보면 되는 것이다. 중국에서 몇 년을 공부하고 돌아온 중국 유학생에게 중국에 대해 물으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기 전에 알던 중국과는 너무나도 다르다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가기 전에 알고 있던 중국이 진짜 중국이고 가서 알게 된 중국은 가짜 중국일지도 모른다. 뭐든 직접 경험해 보라는 것은 실행력을 키우고자 하는 말이지 사고력을 키우는 말은 아니다. 사고라는 것은 사물에 대한 실체를 알고자 하는 것이고 경험이라는 것은 사물을 맛보는 것이다. 우리가 사과에 대해 사고하면 사과는 많은 상징을 우리에게 준다. 아이작 뉴턴의 사과는 만유인력의 영감을 스티브 잡스의 사과는 부조화의 조화같은 애플 창립의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내 입에 들어간 사과는 아무런 영감을 주지 않는다. 오로지 시큼하고 달콤한 맛을 줄 뿐이다. 그리고 끈적이는 손가락을 불쾌해하는 마음이 사과로부터 받은 영감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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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나 소신민들의 삶은 다 똑같다 '런던의 펍에 모여 주말을 즐기는 젊은이들'

본부장이 이 책에서 여러분에게 주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영감말이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여러분은 이 책에 쓰여져있지 않은 컨텐츠나 캐릭터 또는 아이디어가 생각이 나야한다. 본부장은 이 책이 여러분 입으로 들어가는 사과이길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책을 맛보기도 소화시키기도 원하지 않는다. 그저 읽고 보며 생각하고 결단하게 만들고 싶다. 본부장이 자꾸 이 책을 쓰는 이유를 반복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지금까지 쓰여진 모든 국가들에 대해 여러분이 외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은 이 책을 읽고 이 책과 같은 에세이 즉 소고(小考)를 쓰는 것이다. 본부장은 중국에 대해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중국에 대해 어느 하나를 일반 중국인보다 더 많이 생각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부장이 말한다. 영국인보다 영국을 더 잘아는 길은 서머셋 모옴이나 조지프 콘레드 또는 프랜시스 드레이크에 대해 영국인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이 생각해보는 것이다. 중국인이 아는 중국이나 영국이 아는 영국은 그냥 삶이고 환경이다. 이건 중국도 아니고 영국도 아니다.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그 도시와 너무나 똑같은 일상이다. 동네 아이들은 늘 시끄럽고 택배원은 불친절하며 세탁소 아저씨는 지난주에 맡긴 세탁물을 잊어버린다. 와이프는 들어올 때 상사의 욕을 하며 들어오고 어제 배달 시킨 부엌에 남은 음식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한다. 전 세계의 모든 도시가 다 이렇게 하고 산다. 아마 엊그제 쿠데타가 난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도 지금쯤은 이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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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20대에 읽은 가장 유익했던 책 '권력 이동'

본부장이 중국을 중국인보다 더 잘 알게 해주마. 그리고 세계 어느나라 누구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마. 잘 들어라. 먼저 초한지와 삼국지를 봐라. 동양에서는 어린아이들도 만화로 다 본 게 초한지와 삼국지라고 손사례를 치고 있는 제군들도 있으리라. 다시 한번 말한다. 오랫동안 자주 보란 말이다. 시간 날 때마다 본 것을 또 보고 읽을 것을 또 읽어라. 요즘에는 드라마 제작이 잘 되어 있으니 영상물로 보라고 권하고 싶다. 보통 초한지나 삼국지 각각 100시간 남짓 될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다짜고짜 말을 하니 여러분들도 좀 언짢을 거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사실인 것을 어쩌겠나. 온갖 온라인 게임으로 세상이 완전 야단법석이 나기 전만해도 해도 삼국지를 10번 본 사람하고는 이야기도 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은 그 삼국지도 게임으로 하고 있다. 뭐든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다. 조용히 사고하고 번개처럼 결단하는 게 아니라 번개처럼 잔 생각만 자꾸 하고 아예 아무 결단도 하지 않는 세상이다. 본부장도 어린 시절 삼국지를 보라는 주위 어른들의 이야기가 내심 부담스러웠다. 그 분들은 그러면서 초한지를 본뜬 동양 체스인 장기를 두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이 세상 이치를 다 알고 있는 듯말이다. 정말 맘에 안들었다. 더구나 삼국지란 책은 10권이나 되는 분량에 매우 두꺼웠고 그림도 잘 없으며 내용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알 수 없는,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그런 불필요한 책같아 보였다. 사실 대학시절에도 삼국지나 초한지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장기도 마찬가지. 본부장은 오히려 제3의 물결(the 3rd Wave)이나 권력이동(Power shift) 그리고 미래 충격(Future shock)같이 미래학자들이 쓴 책이 좋았다. 마치 대단한 지식이 머리 속으로 빨려들오는 듯했다. 당시에 본부장이 대학 캠퍼스에서 항상 권력이동을 들고 다녀서 지금은 유명경제신문사 차장기자인 당시 절친이었던 대학 동기는 날 무던이도 비아냥거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만나면 그 얘기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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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마다 찾아가는 독일 바그너의 성지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Bayreuther Festspielh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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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찾는 곳이라 이젠 친근감마저 느껴지는 150년 된 '바이로이트 오페라 하우스 객석'

삼국지를 비롯한 책의 재미를 다시 알게 된 것은 일에 파묻혀 지내던 30대 초반이다. 어느 날 집에 오니 와이프가 20권짜리 일본 역사 대작 <대망>을 보고 있더라. 정말 놀라워 보였다. <대망>은 일본인 등장인물들 이름 외우는 데만 한달 걸린다는 대작이다. 30대 초반에 다시 책을 보기 시작한 엄청난 계기였다. 그 이후로 본부장은 지금까지 수 천 권을 책을 보고 적어도 천 편 이상의 클래식 공연과 수 백 편의 연극을 섭렵했다. 책만큼 중요한 것이 공연이다. 그리스나 로마 시대 심지어는 중세시대에도 사회 지도층들은 항상 공연을 보아왔다. 공연을 보는 것을 즐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공연을 보는 것은 책을 보는 것처럼 일정량의 끈기가 필요하다. 그 일정량이 넘어가면 알아서 책이나 공연이 내 안의 선량한 관리자를 자극하고 균형감과 판단력을 적절히 구사하도록 그 관리자를 무럭 무럭 키워준다. 본부장은 특히 셰익스피어 극과 독일 오페라 그리고 베르디 오페라를 즐겼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본부장은 스스로를 엘가라고 생각하며 바그너를 동경하지만 차이코프스키를 좋아한 알렉산더 보로딘이라고 정의했다.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하려면 정말 천편 이상의 공연을 봐야한다. 이 정의가 맞고 안맞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정의를 하고 내 안의 선량한 관리자가 신을 대신해 내게 하는 거룩한 속삭임인 소위'양심'에 꺼리기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수 천 권의 책과 공연을 쏟아지는 일과 조직의 돌발변수 해결에 접목시켜가면서 무한한 시너지가 생김을 느끼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수 많은 지식과 지혜를 주는 책과 공연을 통틀어 삼국지와 초한지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게 되었다. 지금도 그날 와이프가 <대망>을 읽어 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은 책보다는 쇼핑하러 다니는 걸 더 좋아하는 돈 많이 드는 도시녀로 변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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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상징 '만리 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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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구전되고 필사되어 전해내려온 삼국지 '필사본 일부'

삼국지는 공명이 30% 조조 유비가 각 20% 관우 운장과 사마 중달이 각 10% 이고 나머지 영웅들이 마지막 남은 부분을 채운다고 보면 된다. 간혹 삼국지에서 특정 인물을 이야기 하며 자기가 지목한 인물이 최고네 서로들 다투는 모습을 본다. 본부장이 누차 이야기하지만 특정한 시각은 혼자서 좋아하면 된다. 하지만 대세적인 시각을 잃어서는 안된다. 색다른 시각을 가지라는 게 아니라 숨겨진 이해관계를 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색다른 시각은 일회성의 놀라움을 주고 떠나는 소나기와 같은 것이다. 본부장도 개인적으로는 촉오대전 중 이릉전투에서 파죽지세로 승전하던 유비의 70만 대군을 사지로 끌여들여 몰살시킨 오나라의 육손의 침착한 인내심을 너무나 존경한다. 하지만 대세적으로 일회성의 놀라움으로만 기획된 육손의 전술만 가지고는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이길 수 없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도 집중력을 다하지 않으면 하나도 못 배울 수도 있다. 삼국지에서 우리가 가장 배워야할 사람은 공명, 조조, 유비, 관우, 사마 중달이다. 이 5명을 다 통달하면 그다지 인상쓰며 살 일이 없어진다. 아마 거울을 보면 웃는 얼굴이 되어 있을 것이다. 생의 전략이 세워져있기 때문이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주는 교훈과는 좀 다르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던지는 핵심은 일처리의 법칙이다. 즉 승부를 결정짓는 굳은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이다. 비지니스에서는 오히려 미야모토 무사시의 교훈이 더 쓸모가 있다. 하지만 비지니스도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사는 인생이 있고 비지니스도 있는 것이다. 이 인생의 마음가지을 배우는 것이 삼국지와 초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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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없기에 상식도 없는 '인공 지능'

공명 하나만 마스터해도 사실 그걸로 족하다. 괜히 두 세 명 섞어봐야 헷갈리기만 하다. 간혹 공명이 실존인물이냐 아니냐하는 논란이 있다. 본부장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웃음만 나온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본부장이 실존인물이 아닌 외계인이라도 여러분은 이 글을 읽어야한다. 실제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공명이 실존인물이 아니라면 더 좋다. 오히려 수 천 년의 지혜가 응축된 알파고같은 가상의 존재라도 말이다. 우리는 그저 그 알파고와 대련만 하면 된다.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인공지능보다 이겨야 할 인간이 더 많다. 공명이 삼국지의 30%라고 한 것은 100%라는 한계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준 최소비율이다. 그만큼 공명의 존재는 훌륭하다. 어릴적 본부장도 공명의 신출귀물한 전략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가 구사하는 비상식적인 전략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인간은 자기가 못 할 바에야 차라리 아예 알 수 없는 수퍼맨이 배트맨보다 끌린다. 어차피 둘 다 불가능하다면 말이다. 논쟁을 할 필요가 없는 완결무결한 존재라면 질투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본부장이 갖추어진 관리자입장에서 다시 보기에는 공명은 너무나 상식적인 사람이다. 여러분은 아직 모른다. 상식적인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말이다. 요즘을 현대라고 부르면서 사회 도덕이 무너졌다며 탄식하는 어르신들이 있다. 2천년 전 공명 시대에도 사회 도덕은 이미 무너졌었다. 군웅이 할거하는 전국시대에 도덕이라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하겠는가. 앞서 인도 편에서 이미 이야기한 욕망과 본능으로 휘몰아치던 축의 시대가 바로 이때이다. 지금이나 그때나 인간에게 상식이라는 것은 매우 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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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중간이 힘들다

극이나 책에서 공명이 이야기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대부분 모든 인간이 가지는 깊은 두려움을 자극하는 말들이다. 즐거움에도 레벨이 있듯이 두려움에도 레벨이 있다. 인간은 같은 양의 즐거움 포기하고서라도 두려움을 안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가진 자라도 나약한 인간으로서 가진 두려움을 떨칠 수는 없다. 즉 공명이 알고 있던 법칙은 두려움에 관한 대수의 법칙이었던 것이다. 10명중 8명은 누구나 보통사람이고 이들은 그만큼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라는 '상식'말이다. 이 생각 하나만 믿고 모든 전략을 짠 게 공명이다. 나머지 2명에 대한 생각을 공명은 크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공명이 생각하기에 그런 사람은 아마 지휘관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10명중 1~2명의 생각을 가지다가는 출세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이치다. 즉 공명이 필승한 이유는 본인이 지극히 상식적이었던 것이다. 본인이 상식적이지 않았다면 모든 게 예측이 안될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내가 상식적인 것을 유지하는 것이다. 대중은 언제나 상식적이지만 개인이 상식적인 것은 어렵다. 여러분은 지금 중국 편에서 본부장의 모든 지혜와 지식의 매복에 걸린 것이다. 머릿말을 시작하면서부터 너무나도 중국 편에서 이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왜냐면 이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은 새로운 레벨로 넘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어렵다는 상식적 인간말이다. 여러분이 공명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않고도 그가 잘 생겼을거라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가진 상식의 멋때문이다. 균형잡힌 사고로 인간만사의 대수의 법칙을 읽으면서도 본인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 상식을 유지할 수 있는 공명의 멋진 인간다움말이다. 본부장이 그리스 편에서 인류중 가장 멋지다고 한 그리이스의 율리시스보다 더 멋진 자가 사실 공명이다. 이유는 경험하는 자는 다음에 이길 수 있으나 생각하는 자는 지금 이길 수 있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는 그 정신이 바로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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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길은 어느 정도 정해져있다

공명의 상식 3원칙을 말해줄테니 잘 듣고 인생의 위급한 때 써먹도록 해라. 첫째 복중에 화가 있고 화중에 복이 있다. 즉 위기 다음에는 반드시 기회가 있다. 둘째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이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 것이다. 즉 자기 또는 자기편부터 속여야 이긴다는 것이다. 셋째 허실과 기정. 즉 수 천 가지의 책략보다 기본에 근거한 상식이 이긴다. 이 세 가지는 공명이 30대부터 죽기 직전인 50대까지를 통틀어 항상 깊이 품어온 필승의 마음가짐이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조조나 도쿠가와 이에아스 또는 쿠빌라이 칸같은 인물들의 리더쉽을 분석하는 책들을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물론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뭐 보는 것이 안보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지금까지 오직 실전에서 진검승부만을 해왔던 본부장이 보기엔 공명이 최고다. 공명은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이길 수 밖에 없는 전략을 가진 사람이다. 스스로를 항상 평균점에다 두고 흐트러지지 않는 마음가짐으로 물밑의 이해관계를 유심히 볼 수 있는 준비된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미야모토 무사시의 말대로 승부라는 것은 냉혹하다. 승부가 냉혹한 것은 이번 판이 마지막이기때문이다. 그리고 이 판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야 나에게 주어진 승리의 기회를 오로지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승부는 단판이라도 인생은 단판 승부가 아니다. 끝없는 패넌트레이스란 말이다. 지속된 패배자에게도 미래는 없지만 우연한 승자에게도 미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긴다는 것은 계속 이긴다는 것이다. 계속 이기기 위해서는 이기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 이기는 환경을 공명은 세 가지로 본 거 같다. 첫째 흔들리지 않는 상식적인 자신, 둘째 무한 신뢰로 자신의 말에 선의로 기꺼이 속아줄 베스트 그룹핑, 셋째 시대정신을 거스르지 않는 비전 즉 캐치프레이즈. 이 세 가지만 갖추면 여러분이 어떤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되어도 필승이라도 감히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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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자 아직 멀었다. 계속 주목하기 바란다. 조조를 말해주마. 근래에는 조조에 대해서 상당히 다양한 평가를 해주는 미디어 덕에 조조에 대한 평가가 매우 중구난방(衆口難防)이다. 본부장이 말한다. 조조는 매우 훌륭한 리더다. 여기서 훌륭하다는 것은 그저 감상적인 추상적 단어가 아니다. 본부장에게 훌륭하다는 것은 효과적인 결과를 잘 내면서 주변의 존경받는 리더라는 것이다. 이미 공명이 구축한 이기는 환경을 본인도 간파하고 그것을 구축한 사람이다. 특히 조조가 대단한 점은 정확히 시대정신을 읽었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는 아니지만 앞으로 올 시대정신말이다. 조조가 이루려는 것은 매우 이상적이었지만 실천방식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그가 이루려는 이상은 봉건시대를 넘어서는 능력주의를 말한다. 여러분은 흔히 결과주의라는 말을 별로 안좋아하더라. 물론 요즘 기성세대들이 갖은 안전장치를 달고 여러분과 불공정한 게임을 하는 것을 어제 오늘 본 것이 아닌 여러분들이라 이해는 한다. 원래 결과주의는 능력주의를 말하는 거다. 미천한 계급에서 태어나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결과주의는 최고의 동기부여였다. 우리네 기성세대들이 여러분같은 M세대를 앉혀 놓고 자기들 고생한 얘기하는 근본 사상에 바로 이 결과주의 그리고 능력주의가 담겨져있다. 문제는 그들이 이미 그때와 달리 너무나 많은 기득권 즉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기성세대들과 툭하면 마찰하는 거다. 물론 그 중에도 똑똑한 M세대들은 이미 눈치채고 납작 엎드린 부류도 보이긴 보인다. 본부장이 기성세대들을 바로 옆에서 작전 짠 다스베이더의 입장에서 말해주겠는데 그런 거 속이 너무 잘 보인다. 그 양반들은 그런 척하는 거 금방 다 안다. 척하지 말고 아예 그들과 99% 동화되어야 한다. 1%로의 핵심 마음가짐 즉 크라운 주얼만 남겨두고 말이다. 여러분들만의 최우선 가치말이다. 그 양반들은 이게 없어진 지 이미 오래니 말이다. 그러면 무조건 여러분들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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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다

능력주의를 지향한 조조를 유비가 가장 싫어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유비는 전형적인 파쇼라고 보면 된다. 원래 파쇼가 겉보기엔 더 호소력있다. 캐치프레이즈가 매우 선동적이기때문이다. 대한(大漢)의 부흥. 얼마나 멋진 말인가. 마치 본인이 황제라고 자처하는 것이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자 즉 하늘의 아들을 연상시키는 막스 베버의 카리스마적 리더쉽의 전형이다. 그가 내세우는 것은 다시 봉건체제로인데도 그가 내세우는 전체적인 국가의 외형은 매우 전통적인 정당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독일 편에서 히틀러가 제3제국을 칭하며 신성로마제국에 그 바탕을 둔 것처럼말이다. 물론 히틀러에 비하면 유비는 너무나 양반이지만 말이다. 다만 조조와 비교해보면 매우 개인적 카리스마와 전통적인 정당성에 리더쉽의 무게 중심을 둔 건 분명하다. 사실 이것도 매우 중요한 리더쉽이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엄격한 도덕주의와 공동체에 대한 투철한 의무감을 가진 리더는 일단 분명한 명분을 쥐고 있다. 마치 초년에 갖은 고생을 겪으며 개인의 수련을 통해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된 초대 스페인 왕인 칼 5세(카를로스 1세)의 면모와 흡사하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풍모를 갖출 필요가 있다. 이런 리더쉽은 공격당하기 쉽지 않다. 여러분도 이런 리더쉽의 소유자를 함부로 공격하지 마라. 역공의 위험이 있다. 이런 리더쉽은 매우 안정적인 리더로서의 위치를 유지하며 조직을 이끌 수있다는 것이다. 보통 이런 리더쉽이 빛나는 기업이 중소기업이나 중소 금융사이다. 따라서 중소기업이나 중소 금융사에 가서는 매우 도덕적일 각오를 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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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길을 가지 마라

관우는 중국인이 항우와 함께 매우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중국인들을 좋게 표현하는 단어 중에 가장 적절한 단어가 둘 있다. '유장함' 그리고 '호탕함'이다. 유장함이란 여유가 느껴지게 느리고 편안하다는 뜻이고 호탕함이란 호기가 있고 걸걸하다는 뜻이다. 중국인들을 보통 실리에 밝은 민족이라고 한다. 웃음만 나온다. 전 세계에서 실리에 안 밝고 선진국 노릇을 하는 나라가 있는가 보라. 실리에 밝은 것은 균형잡힌 인간의 훌륭한 경제 관념이다. 자신의 경제 상황을 불균형으로 몰가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할 최고의 악덕이다. 명심해라. 자신의 경제 상황을 불균형하게 몰고가면서 행하는 모든 미덕은 악덕이다. 따라서 빚을 져가면서 친구를 도와주는 것은 악덕이다. 그런 훌륭한 경제관념을 가진 중국인이지만 그들이 숭배하는 영웅 캐릭터는 관우나 항우같은 우직한 스타일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항우나 관우는 실리적인 것을 금기시하고 오로지 자신이 정해놓은 도덕률에 살아가는 인간형이다. 말하자면 쇼맨쉽 즉 스타가 될 자질이 있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어느 조직에도 이런 캐릭터는 늘 존재한다. 그리고 조직도 한 두 명 정도는 원한다. 조직에 활력을 주기때문이다. 단 최상위 리더의 리더쉽에 반(反)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일반적으로 항상 반(反)하니 문제지만. 여러분들 중에 특히나 스타적 자질이 있는 사람들은 지금부터 부단히 자신만의 캐릭터와 컨텐츠를 만들어서 조직에 들어가지 말거나 있더라도 오래 있지 말기를 당부한다. 관우나 항우는 조직에 매우 지대한 부분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르나 정작 본인들은 조직으로부터 그다지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한다. 관우나 항우 모두 적에 포위되어 자결하는 운명을 맞았으니 말이다. 사회 생활 정말 못했다는 얘기다. 여러분을 이끄는 리더로서 본부장은 여러분이 이런 캐릭터가 아니길 바라지만 멋있긴 하다. 사실 본부장은 이런 캐릭터를 전문적으로 잘 이끌어 주는 리더 부류다. 소위 부하를 영웅으로 만들지만 스스로는 고독한 리더쉽말이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그런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방법이 하나있다. 이건 정말 천금같은 살아있는 조언이다. 잘 들어라. 배우자를 매우 관리형으로 만나도록해라. 남편으로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알버트 공처럼 신사다운 풍모가 좋고 와이프라면 한고조 유방의 부인 여치같은 여장부 스타일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본부장같은 리더를 만난다면 다 필요없는 얘기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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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는 인류 최고의 유희

사마 중달은 극중에서는 공명에게 항상 패하는 인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삼국지의 최종적 승자다. 여러분들은 아직 조직생활을 많이 안겪어봐서 승부라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당장의 승부와 최종적 승부말이다. 물론 여기서의 최종이라는 시간적 개념은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고, 승부의 결과는 역사 즉 후대가 결정하는 것이다. 자신은 이긴 걸로 알고 있는데 후대가 진 걸로 평가한다면 당장의 승부는 이겼지만 최종적 승부는 진 것이다. 사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승부에 관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줄 안다. 물론 현 시대에 그런 승부라는 것이 중요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그렇다고 10년 후 20년 후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인류가 19세기말 20세기 초에 겪었던 문화적 황금기가 유럽에 아늑하게 펼쳐졌을 때 독일의 문호 토마스 만이나 프랑스의 앙드레 지드같은 사람들은 유럽의 문화를 찬미하고 인류 문명의 고귀함에 공감했다. 하지만 10년도 안되어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후 가장 야만적인 살육이 자행되는 시대로 탈바꿈되는 1차 세계대전을 목격하게 된다. 역사의 유행이나 시대적 조류는 늘 변화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본부장을 따르는 여러분들은 승부라는 것에 대해 익숙해져 준비되어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자연히 승부욕이라는 것이 생긴다. 이 승부욕이라는 것의 끝판왕이 사마 중달이다. 당장의 승부와 최종적 승부가 일치되는 법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매 승부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견지한 자만이 최종적 승부에서 승리한다. 사마 중달을 보고 승부란 맨 마지막에 딱 한번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사실 본부장의 리더쉽 캐릭터에 가장 가까운 자는 바로 사마 중달이다. 그의 잘난 재능과 풍모 그리고 전승의 기록과 몰려드는 문하생에도 불구하고 그에 비례하여 주변에서의 견제 또한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사마 중달은 내적으로는 조조 가문의 끝없는 견제와 외적으로 공명에 대한 힘겨운 라이벌전-이 부분은 본부장과 좀 다르긴하다. 중달은 상식적 사고가 좀 부족했던 거같다-으로 항상 괴로워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정신줄을 놓지 않고 끝까지 승부욕을 발휘하여 기어이 패권을 거머쥔다. 정말 미리 알고는 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여러분들도 혹시 사주나 점 또는 어른들이 이르기를 크게될 인물이라고 일컬어졌다면 너무 좋아하지 말아라. 고생 지대로 한다는 얘기다. 크게 될 인물이 어떻게 편안하게 만들어 지겠는가. 하지만 나중에는 그만한 보람이 있다고들 크게 된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한 걸 본부장이 직접 들었으니 크게 될 여러분들도 너무 낙담하지 말길 바란다. 뭐든 나중에 좋은 게 좋은 거란 옛 어른들의 말은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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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함이 갖는 매력

삼국지를 전체적으로 보면서 여러분이 반드시 캐치해야 할 것은 '대담해야 이긴다'다. 삼국지 전체에서 흐르는 주요 메세지는 약자는 대담하고 강자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소심한 약자의 미래는 필망이요 오만한 강자의 미래는 폭망이다. 약할수록 대담해져야 한다. 여러분들이 꼭 명심해야할 부분이다. 이미 기성세대나 기득권들은 이것을 간파하고 매우 조심스럽게 살고 있다. 전술적으로만 보면 매우 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너무 소심해서는 이길 가망이 없다. 본부장이 좋아하는 육손이 이릉전투에서 유비의 70만 촉군을 몰살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의 초인적인 인내심이다. 하지만 인내심은 또한 무한한 대담함에서 나온다. 대담함이란 공격에서만 쓰이는 게 아니다. 때를 기다릴 때도 꼭 필요한 덕목이다. 주변의 모든 오나라 장군들이 육손에게 싸우지 않음을 힐난하고 심지어는 항명까지하면서 면박을 줄 때 육손은 이를 끝까지 이겨내며 대도독의 면모를 잃지 않는 대담함을 보여 주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실 공격적인 대담함도 필요할 때가 있겠지만 수비적인 대담함이 정말 필요할 때가 많다. 주변의 비난을 참고 이겨내며 본인의 존재 가치를 지켜나가는 대담함이야 말로 진정한 리더쉽의 아우라라고 본부장은 단언하고 싶다. 본부장의 리더쉽이라고 말했던 사마중달이 20년 동안의 긴 인내를 참아내지 않았다면 마지막 일격을 타격했던 그 대담함은 사실 실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상은 공평하다. 성경에 나오는 브레셋 장군 골리앗이 9척의 거구로 무겁고 긴 창을 거머질 수 있었듯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체구의 다윗도 손안에 딱 맞는 돌멩이 하나를 거머줄 수 있는 것이다. 승부는 내가 끝내는 것이고 승부에 대한 결과는 후대가 판단하는 것이다. 아무도 이 승부를 끝낼 수 없다. 본부장을 따르는 여러분들에게 승부는 언제나 진행중인 것이다.


제22편 중국 2

알리바바와 만리장성의 나라, 중국
(2) 유장함과 호탕함 그리고 생활의 발견

  • 입력 : 2017.08.25 20:45:59    수정 : 2017.08.25 20: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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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소유의 시대가 아니라 공유의 시대를 주장하는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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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역학 제2법칙을 통해 인류의 성장지상주의를 경고한 '엔트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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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적 권력에서 수평적 권력으로 이동하는 미래를 주장하는 '제레미 리프킨'

중국 고사에 사면초가라는 말이 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의 노래라는 뜻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는 수 천만년 전부터 노래를 불러왔다. 율리시스를 유혹한 사이렌도 노래를 불렀고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를 지을 때도 노래를 불렀다. 한니발이 로마를 침공할 때나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를 정복할 때도 노래를 불렀다. 사실 그리스 역사가 호머의 일리아드 오디세이나 소포클레스 등의 그리스 비극은 다 노래의 형식으로 쓰여 있다. 현대에 맞게 번역을 하다 보니 운문을 산문으로 고친 것이다. 옛날로 갈수록 문학 형태는 다 노래의 형식이다. 고대에는 음을 붙을 수 없는 글을 상상하지 못했다. 노래가 먼저고 글이 나중이기 때문이다. 그런 거 보면 본부장이 쓰는 이런 장문을 여러분이 읽어준 건만으로도 너무나 고맙다고 해야 할 것이다. 노래는 인간의 염원이나 한탄에 곡조를 단 기도 같은 것이다. 사면초가의 고사에 나오는 한나라 병사들이 부른 초나라의 노래는 교전 상대의 멸망을 담은 집단 기도였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축출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집단 기도인 노래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체격적으로나 지능적으로 호모 사피엔스보다 못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더 큰 신장과 머리 크기를 가져 일대 일 승부에서는 호모 사피엔스가 이기기 쉽지 않은 상대였다. 하지만 단 한가지 약점이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보다 감수성이 떨어졌다고 한다. 사실 그게 약점인지도 몰랐을 거다. 즉 공감 능력 말이다. 지금으로 치면 눈치가 없고 무뚝뚝한 계산 빠른 윗집 아저씨 같았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서로 감정적으로 공감하지 못했고 따라서 진심으로 공유하지도 못했다. 오로지 자신의 본능적 이해관계만을 위한 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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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보다 신체뿐 아니라 두개골의 크기도 더 큰 '네안데르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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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으로 더 강인하지만 정서적 공감능력 부족으로 우울증, 암, 당뇨 등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 '네안데르탈인'

반면에 호모 사피엔스는 지능이나 신체는 비교적 약했지만 정서적으로 매우 감성적이었다. 조그만 일에도 서로 슬퍼하고 기뻐하며 안타까워하고 함께 분노했다. 처음에는 물리적인 위계질서에 의한 수직적 연대가 강한 네안데르탈인이 훨씬 우세했지만 서로 간의 정서적 공감능력이 떨어지면서 서로 간의 신뢰가 약해져 갔다. 공감과 공유를 통한 정서적 연대가 가능했던 호모사피엔스는 처음에는 매우 열세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집단 내 네트워크의 질이 매우 높아지는 현상을 보였다. 결국 네안데르탈인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축출하고 현생인류로서 자리를 잡았다. 결국 집단 노래를 부르며 서로 공감하다 보니 자연히 구강구조가 더 발달되면서 말을 하게 되고 결국 차차 글까지 쓰게 된 것이다. 사실 인류 역사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독점하고 나서도 인류 안에 잠재되어있는 또 다른 네안데르탈인적 기질과 호모사피엔스적 기질 사이의 끝없는 투쟁이다. 무엇인가를 독점하고 배타적으로 계층화하려는 전자적인 기질과 공유하고 공감하려는 후자적 기질 말이다. 재미있게도 지금 그 전환점에 우리가 살고 있다. 16세기 대항해 시대부터 시작되어 20세기까지 꽃피웠던 독점과 차별의 시대에서 21세기부터 시작되어 천년을 갈 공감과 공유의 시대로의 이동 말이다. 본부장이 그토록 M 세대에 대해 언급하고 극찬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공감과 공유의 시대를 열, 외계인도 알파고도 이겨낼 진정한 호모사피엔스적 인류이다. 인류적 의무감이 겸비된 세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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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초한지 최대의 悲劇 '사면 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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悲劇 '사면 초가'의 카타르시스를 담은 중국 전통 경극을 영화화한 첸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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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자가 겪는 가장 비참한 최후 '오이디프스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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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며 테베 시를 멸망에서 구하는 영웅 '오이디프스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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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이 전쟁의 영웅이지만 순간적 판단 착오로 파멸을 맞아 자살하는 '아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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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의 소재로 최고 인기를 누렸고 전쟁 영웅의 운명적 파멸과 사랑을 모티브로 쓰인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사면초가는 초한지에 나오는 서초패왕 항우의 비참한 최후를 담은 고사다.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울려 퍼지던 날 항우의 처인 우희는 패왕 항우의 눈앞에서 마지막 노래와 춤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자결한다. 오추라 불리던 그의 애마는 강물에 몸을 던진다. 혼자 남은 항우는 한나라 병사들에게 포위되고 생포하지 말고 죽이라는 유방의 최종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스스로 목을 베고 자결한다. 호적수인 유방의 손에 죽기는 싫었을 것이다. 이 장면은 인간적의 운명적 파멸을 담은 오이디프스나 아이아스 같은 그리스 비극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사면초가를 항우와 우희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에 더 포커스를 잡고 싶었던 것이 중국 대중의 민심이었는지, 이후 수 백년 동안 경극 <패왕별희>로 민간에서 공연된다. 공포영화로 각색되어 유명한 19세기 영국 작가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도 사실 모티브는 전쟁 영웅의 운명적 파멸과 사랑이다. 삼국지는 위, 촉, 오 삼국이 세력균형을 이룬 비교적 안정된 상황에서 등장인물의 개인적 캐릭터보다는 전술 또는 전략적인 기발함에 더 주목하는 작품이지만 초한지는 초, 한 두 나라가 어느 한쪽의 전멸을 가정하고 진행되는 급박한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의 인간적인 캐릭터에 좀 더 주목하고 있다. 영웅이란 위급할 때 나오는 법이다. 초한지에는 각 리더들이 조직의 극단적 위급상황에서 취하는 인간적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특히 초한지의 마지막에 해당되는 항우의 최후 장면은 항우 자신의 한계적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눈앞의 죽음을 초월하려는 초인적 기백이 초한지 전체를 뜨겁게 달구는 최고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명작이라고 하는 작품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자연이나 우주에 대한 경이로움이 아니다. 바로 보잘 것 없이 평범한 인간이 극단적 상황에 놓여 있을 때 행하는 초인적인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순응에 경이로워 하는 것이다. 본부장이 서두에 초한지로 생각하고 삼국지로 행하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한지의 등장인물들이 겪는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극도의 고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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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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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이라 3'에서도 출연한 진시황릉에서 출토된 '4륜 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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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적 측면에서 더 중요시되었던 중국 역사상 최초의 민중 혁명 '진승과 오광의 난'

최후의 순간 항우가 극도의 공포를 초극하려는 동안 유방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지난날 서초패왕 항우에 비해 출신이나 외적 능력 어느 하나 남다르지 않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했을 것이다. 작품의 시작부터 항우는 귀족이었다. 반면에 유방은 일개 평민이었다. 중국 역사는 한의 유방과 함께 명의 주원장처럼 평민이 주도해서 황제가 되거나 수, 원, 청 등 북방 이민족이 황제가 되는 경우가 더 쉬워 보인다. 특정 명문 가문이 왕권을 차지하는 꼴은 못 보는 것도 있지만 일단 리더십에 중요한 요소인 카리스마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단적인 배경 설정이 오히려 극단적인 결과를 낳기에 훨씬 수월하다. 사실 이런 극단적 설정이 나오게 된 극단적 빌미가 바로 진시황이다. 중국 최초의 황제라서 시황제이다. 스스로 '왕'이란 말을 버리고 '황제'라는 말을 만든 사람이다. 이전에 없던 말을 스스로 만든 공식 용어 중 가장 오래 쓰는 단어일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 시대 이런 차별적 단어를 무색하게 한 인물이 하나 있었다. 진나라 말기 진승이다. 그 유명한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으리오'라는 말을 한 사람이다. 이미 인류는 기원전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본부장이 보기에 인간적 매력은 항우나 관우가 최고지만 이들이 모두 그들이 원하는 뜻을 펼치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이유는 너무 귀족적이거나 엘리트적, 즉 차별이라는 핵심가치 때문이라고 본다. 만약 귀족이었는데 반대로 대중적인 것을 지향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관우도 그의 죽음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게 요즘 항간에 회자된 개 돼지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이다. 오나라로부터 들어온 청혼에 대해 손권을 개로 자신을 호랑이에 비유하는 말을 한 이야기는 그의 파멸을 예감하게 하는 말로 충분하다. 본부장이 늘 말하지만 인간은 인간적인 '멋'도 있어야 하지만 인간적인 '맛'도 있어야 한다. 애플의 영감을 일으키는 사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길거리 아이들이 쥐고 있는 간식거리 될 수 있는 사과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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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의 중앙집권제를 추진한 진시황을 시해하려다 실패하는 연나라 사람 '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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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蕭蕭兮易水寒 / 바람은 불어오고 이수 강물은 차가운데 壯士一去兮不復還 / 한 번 간 장수는 다시 오지 못하리 형가가 진시황을 죽이러 가기 전 이수(易水) 강변에서 불렀다는 '이수가(易水歌)'

본부장이 말한다. 여러분은 반드시 멀리도 가까이 볼 수 있는 조리개가 달린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보는 멋도 눈앞의 맛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미래를 보지 못하거나 또 눈앞을 보지 못해도 팔로워들은 떠나니 말이다. 항우와 관우가 죽은 이유는 팔로워가 떠났기 때문임을 명심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방의 팔로워가 많아진 것은 그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가 따르는 자의 생각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리더가 감이 떨어졌다고 하는 말은 팔로워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른다는 말이다. 물론 역사상 모든 평민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평민이 최고 리더가 되면 평민이 살기 좋아질 거라는 생각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똑같거나 오히려 자신의 부족한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더한 폭압을 일삼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의 가장 악당은 진시황이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의 공적(公敵) 말이다. 권력이 무엇인가에 대해 역사적으로 진시황만큼 보여준 자도 없다. 오죽하면 이름도 정치(政治)할 때 '政'이겠는가. 가장 극단적 권력 현상을 보여준 샘플이기에 가장 극단적 반대 샘플이 나온 것이다. 평민 황제 말이다. 이 중국 최초의 평민 황제 스토리가 초한지다. 흔히들 어르신들이 민심은 천심이란 말을 하신다. 이 말은 삼국지나 초한지 모두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다. 그중에 초한지는 이 말이 그저 작품의 처음과 끝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삼국지가 개인의 상식적 행동에 역점을 둔 전략적 사고를 키우는 작품이라면 초한지는 그 상식적 행동의 근거가 되는 민심의 명령을 이해하고 인류적 의무감을 깨우치게 만드는 작품이다. 삼국지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면 초한지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더 보여준다. 즉 우선순위와 금기사항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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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사의 대부분을 기술한 사마천의 '사기'

이 금기사항을 보여주는 최고 사건이 초한지 흥행의 최고 스타 한신의 죽음이다. 일반적으로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토사구팽의 예로 가장 많이 쓰이는 사건이다. 비슷한 시대 서양에서도 살라미스 해전의 명장 테미스토클레스가 독재자로 몰려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과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그리고 로마의 전설적 영웅 시저도 모두 매한가지이다. 모두 적이 아닌 내부의 배신으로 말이다. 역사적으로 뛰어난 자의 최후는 대부분 내부의 적에 의해서다. 이유는 이들의 대중적 인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뛰어나다란 말의 뜻을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피상적으로만 보면 이들이 인기와 상관없이 업무적으로만 뛰어났다면 아마 천수를 누리고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극히 제한적인 개인적인 업무를 제외하고 조직에서 혼자 이루어지는 업무는 하나도 없다. 모두가 협업이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의사나 법조인도 전문직이라고 무조건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큰 병원은 물론이고 조그만 병원이라도 후배 의사나 간호사들을 잘 다루지 못하면 병원 문 닫는 거는 시간문제다. 변호사는 아예 영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인관계가 안되는 변호사나 검사는 아예 출세할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 결국 일 잘하는 사람은 조직 안에서 리더로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다. 앞서 이야기한 테미스토크레스, 한니발, 시저는 문헌으로도 이미 병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고 확인된다. 한신도 마찬가지다. 그가 한 말은 본부장도 항상 되뇌던 말이다. '다다익선(多多益善)'말이다. 유방이 한신에 물었다. 한신 자네는 얼마의 병사를 관리할 수 있느냐 했을 때 한신이 한 말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말이다. 아무리 많은 수의 팔로워들에게도 꺼릴 게 없는 스스로의 도덕적 무장과 대중적 소통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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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시절 무리배의 다리 사이를 기어가는 모욕을 참아내는 이상적 현실주의자 '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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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 한니발에 필적한 중국 역사상 최고의 군 전략가지만 토사구팽 당하는 '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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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연승의 무공에도 불구하고 반역의 죄를 쓰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중국의 이순신, 송나라 시대 '악비'

대중적 소통 능력의 근원적인 힘은 의무감에서 나온다. 본부장이 이야기하는 바다 같은 사람은 조직을 넘어 인류에 대한 의무감이 있는 사람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와도 스스로의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것이다. 한신이 나중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발언인 자신은 다다익선이지만 유방은 10만 명 정도를 관리할 수 있다고 한 말은 사실 한신이 바라본 유방의 의무감의 크기였을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리더로서의 마음을 들켰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의무감의 정도를 들킨 것이다. 유방은 심한 모멸감으로 치를 떨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가 인간이라면 말이다. 물론 그것을 극복했다면 유방은 권력을 떠나 한신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항우를 죽이고 한신을 죽이면서 유방은 황제의 대업을 이루고도 칭송받지는 못하는 자가 되었다. 이게 초한지가 주는 민심의 양면성인 것이다. 자신은 고귀해지고 싶어 하면서도 남의 평범함을 선호한다. 다스 베이더 경은 미천한 출신으로 제국 군의 2인자가 되었기에 스타워즈 전편의 이야기는 그의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다스베이더 경의 스토리는 정확히 한신의 스토리와 기본 골격이 동일하다. 가장 평범한 환경에서 자라서 가장 유별난 통과의례를 거친 비운의 2인자 말이다. 여기서 살만 다르게 붙인 것이다. 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극적 캐릭터의 유형이다. 이유는 인간적 고뇌라는 것이 동반될 수밖에 없는 캐릭터 유형이니 말이다. 이제 알겠는가. 민심이 가장 원하는 리더는 자신이나 공동체에 대해 가장 많은 고뇌를 하는 사람이다. 그뿐이다. 아니 그게 일상생활이 되어 하등의 스트레스가 아닌 자 말이다. 본부장은 어린 시절부터 대규모 조직을 관리해본 경험을 통해 그것을 몸으로 체득했다. 그리고 역사의 모든 위대한 인물들이 보여준 샘플로도 이미 그것을 확인했다. 부디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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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현상 유지가 아닌 스스로 책임지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리더를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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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진취성과 개혁성의 상징으로 부각되는 '조조'

사실 초한지는 항우, 유방, 한신으로 압축되는 각각의 포지션에 처한 캐릭터들이 펼치는 인간적 고뇌 스토리다. 이것을 읽어가면서 민심이란 무엇인가를 배워가는 것이다. 초한지에는 삼국지에 주로 나오는 스토리인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역전승의 쾌감은 없다. 하지만 삼국지는 결국 최강국인 위가 최종 승자가 된다. 반대로 초한지는 열세였던 유방이 최종 승자가 된다. 느끼는 게 없는가. 당장의 승부와 최종의 승부란 이렇게 다른 것이다. 삼국지에서 제아무리 공명이 승리를 밥 먹듯이 했다고 하더라도 결정적인 승부수는 아니었다. 전투와 전쟁은 틀린 것이고 전쟁과 정치는 또 틀린 것이다. 내가 어디를 최종적 승부처로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어차피 인생은 유한한 것이고 한 번밖에 못 그리는 도화지다. 스케치가 완성품일 수도 있고 수채화 또는 유화가 완성품일 수도 있다. 뭐든 여러분이 정하는 거다. 그것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나라는 작아도 선진국이고 스스로 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난하다. 요즘 중국에서는 진시황에 대한 재평가가 한창이라고 한다. 한때는 가장 파쇼적인 인물로 선정되어 대중의 지탄을 받는 대상이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한나라 고조보다 더 높은 평가를 하는 듯하다. 마치 촉한 정통론을 자처하는 유비보다 요즘 조조에게 더 관심이 쏠리듯이 말이다. 조조나 진시황이 근래 가지는 긍정적 이미지는 진취성과 개혁성에 있다고 한다. 어지러운 현실에 미래지향적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인물로서 말이다. 그만큼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팔을 걷어붙이는 리더보다는 현상을 유지하며 입바른 소리 하는 리더가 더 많은 세상이라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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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은 말에 지쳤다. 이제는 행동이다 '행동력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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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 문화, 문인들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위 치우위(余秋雨)의 '중국 문화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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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잡힌 사고로 바람직한 삶을 이야기한 린위탕(林語堂)의 '생활의 발견'

TV를 틀면 국가 또는 사회에 대한 정의로운(?) 비판을 하는 논객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자신이 책임지고 스스로 바꿔보겠다는 검객은 없다. 개인적 인기를 위해 대중의 이목은 끌고 싶지만 자신의 희생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싫은 것이다. 자기 피는 아깝지만 남의 피를 즐기기 시작할 때 로마는 기울기 시작했다. 내가 아픈 만큼 남도 아플 것이라는 공감에서부터 사람이 살만한 사회가 시작된다. 요즘 층간 소음이나 아파트 흡연 문제로 이웃 간에 많은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밤중에 부적절한 소음을 내거니 담배를 피우는 것도 큰 문제지만 본부장은 그것을 어느 정도 선까지는 참아주는 사회도 솔직히 멋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익을 한치라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제 공유의 시대로 접어드는 21세기는 더 이상 내 것만을 주장할 수는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가질 것이 점점 줄어드는 저성장 시대에 과연 소유에 대한 개념을 풍요로웠던 20세기만큼 내세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본부장은 그래서 앞으로 중국을 가장 주목한다. 중국인이 가진 '유장함'과 '호탕함'이 독점과 차별로 점철된 20세기에는 외면당했을지 몰라도 이제 시작된 공유와 공감의 21세기에는 빛을 발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중국이 자신들이 가진 이 훌륭한 정신 유산을 버리고 구시대의 청산 대상인 독점과 차별을 선택한다면 모든 것은 공염불이겠지만 말이다. 본부장은 중국이 지난 수 천년 동안 자신들의 역사에서 발휘되어왔던 인류적 의무감으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리더 국가가 되길 기대한다. 끝으로 중국의 역사 문화, 문인들의 발자취를 담은 에세이, 위치 우위(余秋雨)의<중국 문화답사기>와 균형 잡힌 사고로 바람직한 삶을 이야기한 린위탕(林語堂)의 <생활의 발견>을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중국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잡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에게 멋진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책들이다. 지금껏 본부장을 열심히 따라와 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본부장과 22개국을 거치며 이야기한 모든 것을 머리에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이 두 책을 다 읽고 난 후면 여러분들 스스로가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지금까지 함께 한 여러분의 앞길에 반드시 신의 가호가 있을 것이다.


73......시즌 2 <본부장이 시대를 말한다>를 마치며

차원이 다른 눈높이를 가진 인재

  • 입력 : 2017.09.01 14:16:46    수정 : 2017.09.01 14: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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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고행이었다. 전작 <본부장이 말한다>가 본부장의 17년 동안의 회사 경험 중 8년여의 본부장 재임기간 동안 느낀 점을 축약한 사회 생활 입문서라면 <본부장이 시대를 말한다>는 43년 동안 너무나도 유별났던 인생 경험을 지금까지 읽어온 수 천 권의 책들과 그간의 리얼한 현장지식으로 녹인 삶의 지침서다. 십 수년 동안 본부장이 틈틈이 써온 기록물이 너무나 방대하여 책으로 옮겨 적는데만 3달이 걸렸고 3권 분량을 줄이고 줄여 가까스로 2권으로 정리하게 되었다. 당초 계획한 34개국에서 22개국만을 둘러보는 형식을 취한 것은 늘어나는 분량도 문제였지만 본부장이 어린 시절 좋아했던 도전과 응전으로 유명한 영국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가 1927년부터 30년동안 인류 문명을 21개로 나눈 <역사의 연구>을 집필하고 나중에 중국의 상문명을 더해 22개로 나눈데서 최종적 모티브를 얻었다. 공교롭게도 본부장이 이 책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든 분은 토인비가 <역사의 연구>를 쓰게 만든 분과 같다. 바로 독일의 역사학자 오스발트 슈팽글러다. 그가 쓴 <서구의 몰락>을 읽으며 본부장은 무한한 상대주의적 관점을 배우게 되었고 이를 통한 삶과 비지니스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을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스스로 다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오스발트 슈팽글러의 <서구의 몰락>과 니얼 퍼커슨의 <위대한 퇴보>의 차이를 통해 발견한 '클래식(고전)이 주는 직관(사물을 바라보는 차별화된 시각과 그것을 통해 얻는 깨달음)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강하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본부장이 시대를 말한다>를 통해 오늘을 사는 20,30대들에게 이러한 차별화된 시각(Insight)을 가지게 하기 위한 훈련을 시키고 싶었다. 본부장이 늘 강조하는 '차원이 다른 눈높이'를 가지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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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제목과 주제의 두 책을 독자를 위해 잠깐 요약하면 전자는 서구 문명의 성공에 대한 기본적 동의 속에 인류 8개 문명의 흥망성쇠 분석을 통해 서구 문명도 쇠퇴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주장했고, 후자는 서구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이유를 그들의 사상적 기초 즉 개인의 기본권에 대한 보장에 두고 개인들이 제도와 집단의 관료화에 매몰됨을 위기로 지적한 후 해결책으로 앞으로의 21세기는 20세기의 '위대한 국가'의 시대에서 18세기 대영제국의 '위대한 개인'의 시대로 귀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둘 다 꼭 읽어보길 바란다. 그러나 본부장이 두 책에서 유독 주목한 점은 오히려 내용보다 집필 과정이다. 두 책의 시간적 차이는 정확히 100년이다. 하지만 이 두 책을 단순 비교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무의미하다. 오스발트 슈팽글러의 <서구의 몰락>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직관적 예언서이다. 19세기말 유럽의 균형잡힌 사고력을 가진 독일 지식인이 인터넷이나 컴퓨터의 도움없이 오로지 자신의 연구와 사색 그리고 직관으로 써내려간 <서구의 몰락>은, 내용은 매우 훌륭하지만 현대 문명의 메피스토펠레스인 인터넷 등 여러 미디어를 통해 남이 한 얘기를 종합한 책 <위대한 퇴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잠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더라. 마치 빙산의 보이지 않는 부분들처럼. 본부장은 바로 이 빙산의 하단을 들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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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0, 30대 젊은 세대들에게 꼭 하고 싶은 조언은 20, 21세기 석학들의 책은 나중에 읽으라는 것이다. 대신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대문호 및 학자들의 책들을 동서양을 막론하고 숙독하고 반복하라. 미래가 보일 것이다. 그 책들에는 현대의 번잡한 미디어 같은 방해물 없이 오랜 사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천금같은 직관 즉 크라운 주얼(최고의 가치)이 숨어있다.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사는 동시대의 석학들은 우리에게 인류의 미래를 인식하게 해줄 수는 있어도 여러분 개인의 미래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여러분 개인의 미래는 스스로 고전을 통해서 깨닫는 것이다. 매일 여러분을 지도해 주시는 300살에서 150살된 선생님들은 고전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문학 등을 가르쳐줄 것이다. 그들에게 배운 여러분들은 요즘 '석학님'들의 말이 그저 심심해 질 것이다. 그들이 한 권에 쓴 내용이 여러분들의 고전 선생님들이 한 페이지에 쓰는 내용이니 말이다. 하지만 힘겨웠던 지난 20세기의 진흙탕 같은 현실을 직접 몸으로 살아간 '행동하는 지성들'의 말에는 꼭 귀를 기울여보기 바란다. 본부장이 늘 얘기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행동(Action)이다. 행동하기 위해서 인간에게는 내면의 자부심이 필요하고 그 자부심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스스로의 직관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그 직관은 클래식 즉 고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본부장이 늘 강조하는 실전형 인재는 고전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은 확고부동한 행동가이다.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도 결국 여러분을 기꺼이 움직이게 만들어줄 지치지 않는 추동력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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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가 구성원들간의 집단이기주의 또는 공동체내 신뢰 부재로 인한 엄청난 사회적 비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회를 이끄는 리더의 한 사람으로서 마지막으로 이 말을 전하며 길고 길었던 이 이야기를 끝맺고자 한다. 본부장이 늘 마음에 간직하고 사는 '내일 죽을 것처럼 살고, 영원히 사는 것처럼 배워라’라는 말을 남긴 20세기의 행동하는 지성 중 한 분인 마하트마 간디가 1925년에 7대 사회악을 지적했다. 원칙 없는 정치(Politics without principle), 도덕성 없는 상업(Commerce without morality), 노력 없는 부(Wealth without work), 인격 없는 지식(Knowledge without character), 인간성 없는 과학(Science without humanity), 양심 없는 쾌락(Pleasure without conscience), 희생 없는 신앙(Worship without sacrifice)이 그것이다. 그동안 본부장과 함께해온 여러분들께 이 말들을 꼭 기억하길 당부드리며 먼 훗날 이 사회의 존경 받는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우리 사회에 이것들이 절대 발붙이지 못하도록 힘써주길 바란다. 오랜 시간 같이 해준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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