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인문.정민우

정민우.時代를 말한다. 1.

doll eye 2017. 3. 24. 18:51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42) 시즌 2 ‘본부장이 時代를 말한다’를 시작하며

  • 입력 : 2017.01.20 17:52:30    수정 : 2017.01.20 17:53:51
먼저 작년 2016년 3월부터 한 주에 한 번씩 게재되어 41번째 글로 끝을 맺은 정민우 이사장의 직톡 시즌 1 '본부장이 말한다'를 사랑해준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나는 정본부장이다. 비록 현재는 청년의 힘 이사장직을 맡고 있지만 글에서는 편의상 계속 본부장 호칭을 쓰기로 했으니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아직도 나의 광휘는 빛나고 있지만 전작에서 여러분 같은 연약하고 가진 것 없는 청년들과 몰려다니고 심지어는 여러분의 편까지 든다고 마스크까지 벗고 광선검을 열심히 휘두른 덕을 요즘 톡톡히 보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 무엇도 본부장을 막을 수는 없다. 한번 시작한 것은 끝을 보는 것이 본부장의 타고난 기질인 탓에 앞으로도 계속 여러분의 다스 베이더로서 내 신념을 지켜갈 예정이다. 여러분은 자신들 걱정만 해라. 본부장은 전혀 걱정할게 없다. 왜냐 정본부장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물러설 위인이 아닌 것은 전작을 본 독자들이나 지금껏 내 밑에서 밥 좀 먹었던 부하들은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일단 전작을 보고 느꼈겠지만 전작은 나의 이야기에 서막에 불과하다. 그저 여러분이 워낙 취업이 안되 울상을 하고 다니는 게 볼썽사나워서 한수 접고 몇 글자 적어본 것에 불과하다. 사실 이야기는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전작에서 말한 대로 대한민국은 공황기로 접어든 거 같다. 도처에 실업자이고 길을 걷는 아주머니들과 아이들의 얼굴 표정이 썩 좋지가 않다. 대한민국에서 왠만큼 산다는 본부장 동네의 아파트 주민들도 요즘엔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지 옆에 가면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본부장도 요즘은 자제한다. 나의 애마인 F타입도 왠만하면 시동도 안건다. 하지만 여러분 같은 젊은이들은 너무 걱정마라. 본부장이 틈만나면 이야기하듯이 곧 여러분의 시대가 올 것이다. 기성세대들의 구태의연한 질서가 무너질 징조이니 말이다. 종말이란 시작의 전단계다. 1929년 세계 대공항의 시작은 기성세대의 몰락을 가져왔지만 청년들에게는 다시 없는 기회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그럼 여러분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바로 준비된 기동형 인재인 실전형 인재다. 정말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인줄 안다. 본부장도 너무 자주 얘기해서 내 입이 이 단어를 싫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인 걸 어쩌겠나.



지금 이 순간에도 바그너 오페라 마이스터징어 서곡이 조용한 나의 평정심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만큼 나의 집중력은 정말이지 여전하다. 자, 음악이 냉정한 판단력을 만들기 위해 지었다는 바흐의 피아노 파르티타 2번으로 넘어가고 있고 나도 냉정하게 여러분에게 본론을 말해야겠다. 공황이 오든 종말이 오든 살아남는 자는 대박이다. 여러분은 '본부장이 말한다'에서 왜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라고 했는지 아는가. 멋있으라고 그런거라면 본부장은 다스베이더 경에게 인사드리고 펜을 꺽을 것이다. 본부장은 멋을 내기 위해 살아온 적이 없다. 그저 살다보니 멋이 나더라. 왜냐. 실체를 남들보다 미리 보는 눈을 가졌기 때문에 언제나 자존심이 무너질 일은 없다. 남들은 그걸 모르더란 말이다. 미리 보는 힘. 이게 나를 항상 승자로 만들어 주었다. 그럼 그 미리 보는 힘을 어떻게 가지는 것일까. 점쟁이를 찾아가는 건가. 얼마 전 나도 타로 점이라는 것을 보러갔었다. 어둠의 황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그런데 정말 놀랐다. 이건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고 예측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는게 아니가. 그럼 그렇지. 그래 역시 나는 아직 죽지 않았구나 싶더라.



자, 바로 이것이다. 여러분들께 미리보는 힘을 주고 싶다. 이건 진심이다. 본부장같은 사람이 100명이면 대한민국은 지금의 이 상태가 아닐테니 말이다. 지금이 되서야 고백하지만 본부장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애국자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가슴에 몰래 태극기를 접어서 넣고 다니다가 반아이들과 장나치다가 그게 빠져 반 아이들이 날 이상한 애 취급한 것이 생각이 난다. 당시 강남에서는 그런 애들은 미친애였다. 모두들 명품이니 일제 코끼리밥통이나 책가방이나 필통이 영국것이냐, 독일것이냐에 모든 관심이 함몰되어 있었기에 난 그저 불쌍한 미친애였다. 하지만 본부장은 그때 이미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던 것이다. 바로 미리 보는 능력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나 지금이나 본부장은 애국자이다. 그러니까 내 돈 까먹어가면서 여러분을 위해 이런 글을 쓰고 또 강연하러 돌아다니는 게 아닌가. 안그래도 어제 인도네시아 젊은 청년들을 위해 특강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디 청년들 고민이 국경을 따지겠는가. 요즘은 청년들 아우성 소리가 전지구적으로 들린다. 또한 전세계 기성세대들의 욕심도 전지구적이다. 참 영감들 욕심은 알아줘야한다.



자, 잡설은 집어치우고 이제부터 본부장은 여러분에게 미리 보는 힘을 위한 수련을 시작하려한다. 물론 전작에서 이미 수련은 시작되었다. 그야말로 정신상태 교정 훈련말이다. 지금부터는 실제적인 공부를 하자. 본부장은 여러분들을 위해 전세계에서 방구 좀 뀐다는 나라들을 줄세워 국가별로 여러분들의 미리 보는 힘을 키워줄 글로벌 및 국내 이슈를 제기할 것이다. 나라로 말하자면 지난 300년간 해가 지지 않을 정도로 국민 모두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서 지구상에서 젤 잘나갔다는 영국을 시작으로 개척정신과 실용주의로 무장한 현재의 최강자 미국 그리고 소박, 예리, 순수, 대담하다는 민족성을 무기로 지구인 중에서 가장 완벽함을 추구하는 독일을 비롯해서 아시아를 19세기에 이미 떠난 일본, 민주주의와 나폴레옹의 나라 프랑스, 영원한 짜르의 나라 러시아, 오페라와 로마제국의 나라 이탈리아, 발명가의 나라 스웨덴, 그저 아름다운 체코, 서구문화의 발원지 그리스, 그리스를 무지 싫어하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후예 터키, 유럽 최강의 근성 폴란드, 피카소와 가우디의 나라 스페인, 호나우두의 나라 포르투갈, 그리그와 입센 그리고 뭉크의 나라 노르웨이, 유럽속의 오리엔탈 전사 핀란드, 알렉산더와 안토니우스가 사랑한 나라 이집트, 아시아의 네마리 용이었다는 한국, 대만, 싱가폴, 홍콩, 요즘에 대박 잘나가는(?) 북한, 정본부장의 글로벌 프로젝트 2037의 시작점이자 가능성의 나라 인도네시아, 생각 보다 훨씬 잘사는 나라 말레이시아, 길거리 거지도 영어 능통자인 필리핀, 민주주의를 이제 제대로 시작하는 미얀마, 절대 정복되지 않는 매력있는 나라 베트남, 신사의 나라 영국 죄수들이 세운 아시아 속의 유럽대륙 호주, 모레 사막속의 공중정원 두바이와 아라비아 반도제국들, 2000년전 땅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는 콘텐츠가 있는 나라 이스라엘, 요즘 빗장 풀린 페르시안 똑똑이 이란, 이란 만큼 똑똑한 인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후 그 발전이 가늠이 안되는 나라인 영원한 제국 중국을 마지막으로 다룰 것이다.



본부장이 왜 이렇게 여러분들을 이 나라 저 나라 데리고 다니면서 혹사시키느냐하면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고 솔로몬왕 가라사대 해 아래 새로운 것도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본부장은 젊은 시절 일본, 미국, 영국, 독일 기업과 인연을 맺으며 그 나라의 문화까지 섭렵했다. 본부장의 사촌 동서가 영국인인데 그보다 내가 아는 서머셋 모옴과 조지프 콘레드가 더 깊고 넓다. 독일인 보다 더 독일 국민성을 많이 알고 바그너와 베를린 필의 카라얀을 더 깊이 안다. 바그너의 성지 바이로이트를 가면 내 고향에 간 느낌이 들 정도니. 일본인 보다 미시마 유끼오의 금각사를 잘 알고 그들의 근현대사인 서남전쟁을 잘 안다. 미국인 보다 더 로버트 프러스트와 남북전쟁에 대해서 잘 안다. 뭐 때문에 라고 생각이 들 것이다. 잘나가는 사람은 다 이유가 있다. 바로 그 근본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호기심과 주변을 유심히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운 눈인 것이다. 미리 볼 수 있는 자는 다급한 자가 아니다. 바쁜 자가 아니란 말이다. 마르크스도 이야기하지 않았나. 잉여물 즉 여유로움에서 역사는 다음으로 도약하는 것이라고. 이 대단한 여유로움이라는 것을 가지기 위해서는 대담해져야 한다. 그 대담함은 바로 미리 준비됨에서 나오고 그것은 미리 볼 수 있는 눈에서 나온다. 여러분들에게 본부장은 과거의 옛 이슈를 가지고 미래를 보게 해줄 것이다. 그것도 단 6개월 정도 앞만 볼 수 있도록 말이다. 6개월 이상을 볼 수 있는 자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대충 예상만 하는 것이다. 본부장이 말하는 것은 예상이 아니라 그저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을 말한다. 세계사 공부나 하자는 게 아니고 먼나라 이웃나라 같은 이야기 거리를 위한 상식을 가르쳐주고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얘기 하면 요즘 애들은 옆에 오지도 않는다. 왜냐 구글에 다 나오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은 바라보는 각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지 지식이 모자라거나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오히려 쓸데없는 잡지식을 쫓는 것을 경계해라. 그런 잡지식의 무게가 여러분들이 날개를 펴지 못하게 하고 날지 못하게 한다. 핵심이 되는 것을 알아차리면 나머지는 구글이 알아서 채워주고 옆에 친구들이 알려준다. 그것도 친절히 말이다. 잡지식을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들이 어디 한둘인가. 이제 핵심을 잡자. 본부장을 따라 시작하면 지금이라도 사태를 되돌릴 수 있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살려준다는 그 '정신'을 똑바로 가지면 된단 말이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화하여 외쳐댄 그것, 괴테가 악마 멤피스토펠레의 입을 빌어 속삭였던 그것, 헤겔이 절대적인 것이라며 근엄하게 침묵했던 그것, 조지 소로스나 헨리 키신저를 늙어도 멋져 보이게 만들어주는 그것, 얼굴이 불에 살짝 그을려서 잘생긴 얼굴을 가리고 검은 마스크를 쓰고 광선검을 무심히 몇 번 휘두르지만 그저 멋져보이는 다스베이더경이 가진 그것, 22억을 받고 점심 한끼 먹어주는 워런 버핏의 그것을 우리도 이제 가져보자. 본부장을 믿어라. 본부장이 여러분들에게 고통만 주는 사실(fact)을 넘어 언제나 여유러움을 줄 진실(truth)을 보게 만들어 줄 것이다.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43) 시즌 2 ‘본부장이 時代를 말한다’ 제 1 편 영국

  • 입력 : 2017.01.24 16:51:38    수정 : 2017.01.25 17:23:37
전 국민이 정신 똑바로 차렸던 대영제국

(1) 마음가짐과 감정을 통제한 셰익스피어와 아담스미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런던의 상징 ‘타워 브릿지’

정본부장이 영국을 자주 들먹거리는 이유를 오해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홍콩, 일본이 한국 심지어는 중국 대만까지도 영국에 대한 말도 안되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영국빠들이 있는 것 같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본부장이 영국을 말하는 이유는 오로지 역사에 근거한 사실에 근거함이지 눈에 보이는 유니언잭의 화려함이 결코 아니다. 그들이 조그마한 섬나라에서 어떻게 전세계 3분의 1을 차지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물밑의 이해관계를 보고자 함이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인간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녹아있는 ‘그리스 투구’

 기사의 8번째 이미지

인간 본연에 대해 끊임없이 동경하는 ‘그리스 문명’

인류의 역사가 매우 긴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리스 시대가 기원전 2000년이라고 추정하고 있는 것처럼 한 4000년 정도 되는 것이다. 그 이전은 문명시대가 아닐 뿐 아니라 인간과 다른 포유류와의 차별성이 없기 때문이다. 동물과 인간이 다른 이유는 가치와 상징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가치는 인간을 만들고 상징은 신을 만들었다. 인간이 가지는 무한한 가치를 찾아 나선 시작이 그리스이고 신이라는 상징을 만든 나라도 그리스이다.

 기사의 9번째 이미지

방송 콘텐츠의 대부분이 영국 과학자인 ‘NG 다큐멘터리 코스모스’

서양 문명은 그리스 문화에서 로마로 이어지고 그것에서 중세의 암흑기를 거쳐 영국에서 만발하고 다시 미국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것이 그 대단하다는 인류의 역사다. 4000년이라면 인간 100세를 기준으로 하면 40번 밖에 안된다. 죽은 조상을 40~50명 정도 누이면 그게 다인 것이다.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에서 말했듯이 인류의 역사는 24시간중 마지막 5분에 불과하다. 우리가 알아볼 영국은 이런 상징과 가치를 가장 현대의 우리가 살기에 적합하게 적립해준 나라다. 문명인이라는 개념과 인간이 인생을 사는 것에 종교의 도움없이 본능을 배제해 본 시대였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할 것은 그 당시에도 맞아죽는 아이나 여자가 자연사하는 것보다 더 많았다는 '아웃사이더' 저자인 영국의 작가 콜린윌슨의 고증처럼 지금의 시대에 비하면 매우 험악한 시대였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정본부장이 추천하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최고 걸작 ‘맥베스’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인간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윌리엄 셰익스피어’

영국이 정신 똑바로 차리게 해준 모티브가 된 것은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이다. 영국 속담에 '마음 속에 있는 말을 다하는 자는 병신'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가지지 않는다는 로마제국의 성공법칙에 있다. 셰익스피어 비극은 인간이 가지는 다양한 감정을 정리한 것이고 아담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이것을 에세이로 정리한 것이다. 그만큼 영국인들은 인간의 감정 상태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것도 500년 전에 말이다. 동양이 성리학이니 주자학이니 하면서 우주의 이치인 이와 기의 역할 이야기 할 때(일종의 물리학 같은 이야기. 하지만 물리학은 힘의 이치를 따지지만 이것은 현실과 매치되기 어려운 도리를 따졌기에 문제다) 그들은 인간을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세가 암흑기였던 것은 바로 인간이 아닌 신을 바라본 결과가 아닌가.

 기사의 4번째 이미지

스코틀랜드인의 자랑 ‘아담 스미스’

 기사의 5번째 이미지

인류 최초로 인간의 모든 감정을 서술한 아담 스미스 ‘도덕 감정론’

한마디로 영국은 성공하기 위한 마음가짐부터 섭렵하였기에 그 기초의 힘이 깊었고 그 영광도 300년 이상 유지되었다. 참 길게도 해먹었고 제국에서 일반국가로서 연착륙도 완벽했다. 모두가 그 기본이 되는 마음가짐이 튼튼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국에서 얻어야 할 것은 바로 작지만 큰 나라로 갈 수 있게 만드는 그 콘텐츠에 있고 그것이 영국에는 인간본성에 대한 냉정한 이해와 통제력이었던 것이다. 프린키피아(자연 법칙의 수학적 원리)에서 아이작 뉴턴은 서문에 '해변에서 조개껍데기를 줍는 아이의 마음으로 이글을 썼다'라고 했고 대석학 에릭홉스본은 90세의 나이에 임종 직전 어린 증손자들을 모아놓고 죽는 그날까지 호기심을 잃지 말기를 당부했다. 이것이 바로 과거 영국 번영의 힘이다. 마음가짐, 즉 감정에 대한 진정성 있는 접근이야말로 우리가 생각해야할 가장 큰 이슈이다.

 기사의 6번째 이미지

프린키피아 첫 장에 이런 서문을 쓴 ‘아이작 뉴턴’

 기사의 7번째 이미지

90의 나이에도 손자들에게 죽을 때까지 호기심을 읽지 말것을 당부한 ‘에릭 홉스봄’

제 1 편 영국-2

전 국민이 정신 똑바로 차렸던 대영제국
(2) 해적왕에서 대영제국 해군 제독이 된 프랜시스 드레이크

  • 입력 : 2017.02.02 21:06:05    수정 : 2017.02.02 21:13:48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윈스턴 처칠이 울면서 22번 봤다는 대영제국의 영웅 "호레이쇼 넬슨"을 주제로 한 영화< 해밀턴 부인>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영화<해밀턴 부인>의 호레이쇼 넬슨役의 로렌스 올리비에와 해밀턴 부인役의 비비안 리가 주연하고 실제 결혼한다.

영국 이야기를 셰익스피어와 아담스미스로 국한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엘리자베스 여왕을 언급할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분명이 말하지만 본부장이 말하고 싶은 것은 먼 나라 이웃 나라 같은 얕은 상식 이야기가 아니다. 물 밑의 이해관계를 보는 법을 알게 하는 트레이닝 오직 이 한가지다. 나는 오로지 성공의 핵심을 밝히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과거의 영국은 참 인물도 많다. 미신을 좋아하는 영국인을 경험주의 지식인으로 만든 프랜시스 베이컨, 자연법칙을 수학적으로 정리한 스티브 잡스만큼 사과를 좋아한 아이작 뉴턴, 영국의 천재적 건축가이며 정치가인 영원한 댄디 윌리엄 모리스, '내 목이 짧으니 예쁘게 잘라주세요'라는 형장의 유머로 유명한 토마스 모어, 트랄팔가 해전에서 그 유명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라'를 외치고 유부녀인 해밀턴 부인과 바람난 뱅가드호의 호레이쇼 넬슨, 워터루에서 나폴레옹을 작살낸 웰링턴 공 등 정말 많기도 하다. 아직도 백분의 일도 말 못했는데.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영화 <골든 에이지>에서 엘리자베스 1세를 연기한 <케이트 브란쳇>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영화<골든 에이지>에서 해적왕 프랜시스 드레이크를 연기한 <클라이브 오웬>

 기사의 4번째 이미지

엘리자베스 1세와 해적왕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스토리를 모티브한 영화 <골든 에이지>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전환점을 만들어내는 인물이 누구냐는 것이 핵심이다. 인물은 시대와 부합되어야 그 빛을 발휘한다. 이 명제에 프랜시스 드레이크만큼 여기에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한다. 불우한 가정에 태어나 해적질을 일삼으며 그들의 우두머리로 불법을 일삼아 오다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만드는 시초를 제공한 사람. 그 양반이 바로 프랜시스 드레이크다. 그에게 노략질을 당한 스페인 귀족들은 그를 드라코 즉 악마 또는 용이라고 불렀고 엘리자베스 1세는 그에게 기사의 작위를 내리고 종국에는 스페인 무적함대를 막아낼 해군제독으로 임명했다. 영화 골든 에이지를 보면 엘리자베스 여왕과 드레이크가 썸 타는 장면이 나올 정도로 그들을 친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드레이크는 내가 봐도 멋진 사내다. 일단 개천에서 용 난 이력은 차지하고서라도 그가 쓴 개척의 역사는 장엄할 따름이다. 마젤란이 세계를 일주하는 항해를 했다고 하지만 중간에 사망한 불완전한 무용담인 반면 드레이크의 세계일주항해는 그 자체가 목적도 아니고 그저 과정에 불과한 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통과의례였다. 드레이크의 본판은 세계를 일주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최강국 스페인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노략질 말이다.
 기사의 5번째 이미지

조선 수군처럼 함포를 쓰는 함대가 주로 펼치는 일자진(一字陣)으로 스페인 무적함대를 공격하고 있는 <영국 함대>

드레이크를 내가 언급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영국의 번영에 끼친 모티브다. 셰익스피어와 아담스미스가 성공의 마음가짐을 제시했다면 그는 성취욕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바로 불가능한 꿈을 이루려는 마음 말이다. 당시 스페인은 지금처럼 가우디의 <파밀리아 성당>이나 피카소의 <게르니카> 또는 프랜시스코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같은 낭만이나 찾는 국가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세계 최강국이었고 영국이 예전에도 못했었고 지금도 못하는 유럽의 패권국이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아들로서 교황의 절대적 지지를 뒤에 업고 막강한 군사력과 남아메리카 전체에서 막대한 은을 유입할 수 있는, 지금의 미국 같은 존재였던 것. 그에 비해 영국은 지금으로 보면 개발도상국 정도의 나라. 아마 70년 전에 무모했던 일본의 진주만 공습도 이런 과거의 영국의 도전적 모습에서 받은 모티브일지도. 다만 영국은 성공하고 일본은 실패했다.
 기사의 6번째 이미지

부하를 영웅으로 만드는 위대하지만 고독한 리더쉽 <엘리자베스 1세>

이유는 아까 말한 마음가짐의 시작점이 틀린 부분도 있을 것이고 그 다음은 프랜시스 드레이크와 같은 실전형 인재적 모델이 존재했다는 것에 둘 수 있다. 양손이 비어있는, 그리고 곧바로 목표를 타격하겠다는 주저함 없는 인재인 그가 롤모델이 되었다는 것이 영국에겐 그야말로 얻어걸린 행운이었던 것이다. 엘리자베스 1세의 치적이 일반적인 행운이라면 드레이크의 존재는 전대미문의 모티베이션이었던 것이다. 조직이 살아나는 것은 매우 간단하다. 롤모델이 있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리더는 자신이 롤모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롤모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즉 스타의 자리를 아래 사람에게 양보해야 하는 것이다. 조직이나 나라가 관료화 될 때 종말은 시작된다. 관료화란 스타를 만들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악질적 굳은살이다. 움직이거나 힘을 주지 못하는 그저 형체만 있는 살 말이다. 평시에는 이것이 문제되지 않고 어쩌면 멋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는 일 없이 웃을 수 있는 사람들처럼. 할 일이 없는 자는 조직의 암이다. 방긋 방긋 웃고 있는 암.
 기사의 7번째 이미지

엘리자베스 1세에게 기사작위를 받는 <프랜시스 드레이크>

 기사의 8번째 이미지

죽은 후 대서양에 명예롭게 수장되는 <프랜시스 드레이크>

하지만 유사시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몸집은 거대하나 그것 때문에 기민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기형거인 스페인. 드레이크는 바로 그 점을 꿰뚫는 눈과 그가 본 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대범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본부장은 드레이크가 오늘날의 영국을 만든 주역이라고 감히 단언하고 싶다. 작은 섬나라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후세가 그것을 보고 전율하게 만든 후세 영국인의 진정한 롤모델. 최강국 스페인은 그렇게 드레이크에게 조금씩 자신감부터 무너져갔고, 결국 대영제국 불멸의 제독 호레이셔 낼슨에게 실체까지 박살을 당한 후 곧바로 패권국의 지위를 반납했다. 역사는 대중이 쓰지만 그 대중에게 영감을 불어 넣는 것은 한 영웅의 희생이다. 드레이크의 희생은 개인의 영광을 위한 집착에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영국의 영광이었고 300년 대영제국의 단초가 되었다.

정치학을 전공한 본부장은 20대에 앞에 말한 프랜시스 베이컨 그리고 '역사의 종말'저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몰랐다. 그러나 지금 40대 중반이 지나는 시점에서는 그만이 내게 가장 큰 의미가 되었다. 그는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바로 그것이 영국인들에게 우리도 세계로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던 것이다. 몇 년 전 지인인 국립 발레 단장님이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세상에 제일 쉬운 게 말이라죠. 발레에서는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기 위해 10가지 동작을 해야 한답니다.' 세계를 호령하는 나라는 말을 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행동을 개시했고 그저 그런 나라는 말을 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또 다른 말을 개시한다. 본부장 생각에 요즘 영국이 예전만 못한 것이 아마도 영광의 역사를 만든 조상들의 역사만을 읊조리는 그런 재담이 너무 많은 것에도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에 나오는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 같은 행동하는 영국을 다시 기대하는 바이다.

제 2편 미국

개척정신과 실용주의로 무장한 현재의 최강자 미국
(1) 오늘의 강한 미국을 만든 바탕이 된 남북전쟁

  • 입력 : 2017.02.06 14:14:07    수정 : 2017.02.06 14:17:34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게티스버그란 영화가 있다. 미국 남북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로 216분, 3시간반짜리인 영국 데이빗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넘는 4시간 20분짜리 미국영화이다. 할 얘기가 영국보다 많다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개봉된 것은 후자인 아라비아의 로렌스일 뿐 게티스버그는 개봉에 실패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상영시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비공식 이유야 뻔한 것이었다. 동양 사람들에게 남북전쟁은 그야말로 자기나라 내전에 불과해 보이는 하찮은 소재로 보일 뿐이다. 실제 개봉되었다고 하더라도 말 그대로 실패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이 남북전쟁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1776년 영국으로부터 미국이 독립을 선언했다고 하지만 1865년의 남북전쟁을 통한 미연방의 유지는 오늘날의 최강대국 미국을 결정짓는 사건이다. 잡다한 선언이니 발견이니 하는 것은 시험 칠 때나 외우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라는 그냥 나라의 탄생이 아니라 최강국 탄생의 비밀이다. 어느 나라나 독립을 선언하기도 하고 발견되기도 한다. 하지만 연방을 만들어내고 합중국을 만들어내는 것은 피와 땀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방적인 학살이나 반란이 아닌 전쟁이고 투쟁의 결과물은 굴욕이 아닌 자신감을 남기고 이후부터 현재까지 미국은 최강국이 된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대영제국 세계 물류 장악의 첨병 MI6

 기사의 3번째 이미지

 20세기 초까지 영국과 한번이라도 정치 경제적으로 인연이 된 나라들

영국이 걸어온 패권의 핵심은 전 세계의 물류를 연결하는 역할이었다. 그래서 원자재 뿐 아니라 나중엔 산업 기반까지 인도나 호주 캐나다 아시아 등 해외 생산 기지에 의존하였다. 원래 영국은 이것을 오히려 즐겼고 자신들이 기축통화인 파운드의 힘을 통한 국제금융에서만 확실한 우위를 가진다면 천년제국도 가능하다고 낙관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생산수단을 자신이 갖지 못하고 통화의 힘을 통해서만 번영을 유지하려했던 스페인의 뒤를 걷는 모습일 뿐이었다. 새로운 생산수단을 계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교육과 사회 시스템을 혁신하지 못한 영국은 그 생산 수단을 가지고 영국에게서 떨어져 나간 나라들을 뒤로 하고 쓸쓸이 패권을 내주고 말았다. 반면 미국은 50개주로 만들어진 한 땅덩어리로 된 연방 국가, 즉 영국 연방처럼 떨어져나갈 수 없게 꽁꽁 묶어둔 나라인 것. 그걸 가능하게 만든 전쟁이 바로 남북전쟁이다.
 기사의 4번째 이미지

스피치를 위해 태어났다는 언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정치인 중 역사상 가장 원색적인 표현을 하는 도날드 트럼프 후보

 기사의 5번째 이미지

선진국 중 정치적으로 여자에게 가장 인색한 보수의 나라인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 클린턴 힐러리 후보

여기에 미국이 가지는 최고의 힘은 원자재나 산업기반 같은 유형의 생산수단인 하드파워의 결집만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힘은 영국을 능가하는 상징, 즉 심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거리인 소프트 파워에 있다. 영국이 좁은 섬 안에서 꾸준히 만들어온 블로그 같은 깨알같은 이야기거리를 만들었다면, 미국은 엄청난 다양성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페이스북 같은 용광로 이야기거리를 만들었다. 이 이야기거리 중 최고가 바로 남북전쟁인 것이고 그렇기에 마가렛 미첼 여사가 쓰고 빅터 플래밍이 감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고 그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 안에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인생의 희노애락이 모두 있다 하지 않겠나.
 기사의 6번째 이미지

클락 게이블과 비비안 리

 기사의 7번째 이미지

로렌스 올리비에와 비비안 리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와 클락 게이블은 이 영화 정도만 하고 거의 인연이 없다. 사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그 을씨년스러운 이별도 사실 이해가 된다. 비비안 리의 진짜 애인은 당시 로렌스 올리비에였기 때문이다. 무대 위의 철학자이며 기사작위까지 받은 영국을 대표하는 지성이며 배우인 로렌스 올리비에. 본부장 블로그를 주로 찾는 검색어에 항상 상위에 올라가 있는 이름이 바로 로렌스 올리비에다. 이유는 본부장도 이 배우를 매우 좋아해서 블로그에서 많이 다루었기 때문. 이유는 인격이 겸비된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미국적인 배우는 올리비에가 아니라 클락 게이블이다. 난 올리비에를 동경하지만 게이블이 더 친근하다. 올리비에가 도덕적이고 귀족적이고 폐쇄적이라면 게이블은 시대적이고 신사적이고 개방적이다. 어찌 이렇게도 절묘한 대비가 또 있겠는가.
 기사의 8번째 이미지

남북전쟁 당시 가장 악명 높은 북군 장군, 윌리엄 태쿠셰 셔먼

 기사의 9번째 이미지

셔먼 장군의 이름을 딴 제2차대전 당시 미군의 "셔먼 전차"

게다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리고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되리란 것을 대사에서 말해준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피터 오툴'이 영국을 'fat country fat people'이라는 표현을 하며 대영제국의 몰락을 예견했다면 '비비안 리'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라며 미국이 앞으로 맞이할 영광을 예견했다. 그만큼 남북 전쟁이라는 것이 미국에게 주는 의미는 1·2차 대전에서 미국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대국적인 잠재력을 말해준다. 중국의 손자가 말한 최고의 전략-먼저 이기고 후에 싸운다는 바로 여기에 가장 잘 들어맞을 것이다. 당시 서구 유럽에서 내전으로 60만에 가까운 전사자를 내면서 5년 이상 전쟁을 치루어 본 나라는 오로지 미국 뿐이었기 때문이다. 타국과의 전쟁은 그저 생존을 위한 전쟁이지만 내전은 이념과 이해관계를 두고 하는 전쟁이기에 더욱 참혹하다. 이제 외우자. 미국 하면 남북전쟁을 들고 파라. 미국인들 사이에서 미국 지대로 아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으면.

제 2 편 미국-2

개척정신과 실용주의로 무장한 현재의 최강자 미국
(2) 대중들을 꿈꾸게 해주는 히어로들의 천국, 미국

  • 입력 : 2017.02.13 10:02:56    수정 : 2017.02.13 10:03:40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미국 전통 히어로 3인방 <모범생이 가장 가운데에 있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미국의 요즘 뜨는 히어로들 <남군과 북군을 연상시키는 구성원 포지션 대비>

 기사의 2번째 이미지

미국 남북 전쟁을 모티브로한 <시빌 워>는 흥행의 모든 것을 갖추었다.

 기사의 3번째 이미지

트럼프의 미국 고립주의 돌풍의 이유인 미국 제일주의 바탕에 <영웅주의>가 있다.

 기사의 4번째 이미지
 기사의 5번째 이미지

아마도 캡틴 아메리카가 동정표를 얻을 듯하다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모범생 스타일’

러셀 크로 주연의 영화 ‘글레디에이터’는 전 세계인이 지금까지도 즐겨보고 아직도 러셀 크로가 아닌 막시무스를 잊지 못하는 마니아를 가진 작품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여러분도 다 아는 이야기지만 제국건설의 영웅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시기심에 의해 소위 반역죄로 몰려 죽는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 또한 한 영웅에 대한 동료들의 시기심에 의해 살해되는 과정을 묘사한 심리 작품이다. 시기심을 특히 많이 다룬 작가 셰익스피어. ‘줄리어스 시저’에서 카시아스의 그것, ‘오델로’에서 이야기의 그것이 다 인간이 가진 시기심이다. 특히 로마제국이나 대영제국은 특출 난 영웅의 출연을 달가워하지 않는 나라다. 드라마 시리즈물인 ‘스파르타쿠스’에서는 끝없는 견제와 시기, 질투가 횡횡하며 찌질이 시민권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회의 일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국 드라마 ‘페레이즈 엔드’나 ‘다운튼 애비’에서 또한 소위 말하는 영국 신사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특출한 놈(?)들을 배제해나가며 사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특히 ‘셜록 홈즈’나 ‘페레이즈 엔드’에서 베네디트 컴버베치가 그것 때문에 소외당하고 왕따 당하는 특출 난 놈 연기를 잘해내고 있지만.

 기사의 6번째 이미지

영웅을 죽여 온 인간의 가장 사악한 감정, 시기심 <줄리어스 시저>

시민이나 신사라는 개념은 이미 미국 사회가 형성되어 오면서 다 녹아들어있는 개념이다. 다만 척박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개척정신과 실용주의로 무장되어가면서 그들에게는 롤모델이 필요했다. 롤모델은 어찌보면 조직의 영웅이면서 희생양이다. 로마나 영국의 확장기에는 여지없이 이런 롤모델이 존재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영웅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매우 조심스러워했고 영웅시한다는 것 자체를 혐오하고 수준 떨어지는 짓으로 묘사했다. 유독 영국에서 히틀러나 뭇솔리니 또는 나폴레옹 같은 인물을 혐오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물론 영국도 그런 인물이 한 명 있긴 하다. 청교도 혁명을 주도한 호국경 크롬웰. 지금으로 말하면 영국의 히틀러다. 다만 대외 정복 전쟁만 안했을 뿐. 영국인들은 이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사의 7번째 이미지

속임수로는 대국을 만들 수 없다 ,테미스토클레스 <영화300  제국의 부활>



서양문화의 정수인 그리스에서는 초기 매우 많은 영웅을 만든다. 하지만 후기로 넘어갈수록 마찬가지로 영웅을 혐오한다. 그리스의 도편제라는 것이 있는데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확인될 경우 도자기 파편을 대중으로 부터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을 도시에서 추방시키는 제도다. 재밌는 것은 영화 300 제국의부활 편에 나오는 페르시아로부터 그리스를 살린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도 결국 그 제도에 의해 추방되어 살해되었고 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간 카르타고의 명장이며 전쟁의 신인 한니발도 적군이 아니라 카르타고 내부의 기득권층에 의해 질시 받고 국외로 추방되어 결국 살해된다. 벼랑끝의 한국을 살린 인류 해전사의 불멸의 영웅 이순신 그리고 심지어는 트랄팔가 해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전쟁 영웅 호레이쇼 넬슨마저도 정적에 의한 가족들에 대한 박해를 피하기 위한 자살설이 대두되고 실제 제3제국의 전쟁 영웅 에르빈 롬멜은 히틀러의 지시로 가족들의 안전을 담보로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

 기사의 8번째 이미지

오늘날 우리가 당연한 듯 살고 있는 대중사회를 만들어준 영웅, 나폴레옹<2000년 전 한니발이 넘은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려하고 시저가 황제가 되려한 것도 결국 안 오르면 그가 죽을 것이기 때문 아니겠는가. 나폴레옹이나 시저의 국민적 인기는 결국 본인들을 시기하는 자를 흥분시켰고 나폴레옹의 경우에는 그 인기가 전 유럽에 걸쳐 일어나 유럽의 전 귀족가문들이 서로 싸우다가도 나폴레옹을 죽이겠다고 뭉쳤던 게 워털루 전투고 여기에 돈 댄 가문이 그 유명한 로스차일드다. 물론 모두가 나폴레옹이 이길 것을 점친 도박이라 이 베팅으로 대박 나서 지금도 자본시장의 왕으로 등극할 정도로 많은 돈을 벌었다. 나폴레옹이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나폴레옹이 유배지에서 도망쳐 나와 다시 권력을 잡으려 파리에 나타났을 때 그를 잡으러 온 정부군 군인들은 물론 지휘 장교들마저도 모두 무기를 거꾸로 잡을 정도였고 시저의 경우는 갈리아 원정 시절 병사들이 워낙 시저를 좋아하고 친해 시저가 병사들 오락시간에 본인이 직접 원숭이 흉내를 내며 위문했다고 한다. 인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 근본이 대중들과 통할 수 있는 전인적인 캐릭터인 그야말로 대범하고 그릇이 큰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본부장이 영웅의 풍모를 정의해 주마. 인간은 5단계로 그 수준을 정할 수 있다. 찌질이를 넘어서 첫째 공감, 둘째 흥미, 세째 놀람, 네째 감탄 마지막 다섯번째 감동단계이다. 우리가 인재라고 하는 사람은 첫번째에서 네번째까지이고 영웅이 바로 다섯 번째이다. 감동의 요건은 희생이다. 공감은 상식, 흥미는 혁신, 놀람은 열정, 감탄은 일관성 그리고 감동은 희생인 것이다. 그래서 롤모델은 희생양을 의미하고 희생양은 영웅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린양 예수라고 하며 교회가서 찬송 부르며 지져스크라이스트 슈퍼스타라고 하지 않는가. 자신이 희생될 것이 두려운 자는 절대 영웅의 자질이 없는 것이다. 오딧세이에서 율리시스는 영생을 보장하며 함께 살자며 설득하는 바다의 여신에게 자신은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죽을 것이고 대신 그 이름을 영원히 남기겠다고 했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이처럼 희생을 강요당하며 또 스스로 희생한 영웅들의 수난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기면서 종식된 것이다. 누구도 원치 않는 존재에서 누구나 바라는 존재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미국 영웅주의의 뿌리는 사실 프랑스 대혁명에서 나온다. 자유 박애 평등에서 시작하여 민주주의 기본 원칙인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평등 그리고 3권 분립을 통한 권력의 제도적 균형이라는 개념이 비록 프랑스에서 모두 만들어졌지만 미국에서 와서 제대로 만발한 것이다. 우리가 알기로 미국과 영국은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미국이고 영국은 영국이다. 오히려 미국 대통령제는 오히려 프랑스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비슷한 것을 은근슬쩍 하나로 묶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건 본부장이 꼭 일깨워주는 진리다. 우리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고 부모와 친하거나 같은가. 천만에 오히려 혐오하거나 꺼려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경우가 더 많다. 닮았다는 것은 같다가 아니다. 닮았기에 더 싫은 것이다. 이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기사의 9번째 이미지

오늘날 미국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가 준 미국 독립 선물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본부장은 유럽에서 보수귀족 연합(메테르니히라는 외교 천재에 의해 지휘되는 합스부르크 등 신성로마제국 왕족 귀족연합)에 의해 제거된 프랑스 나폴레옹의 대중적 개혁 의지가 미국으로 옮겨와 꽃피운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미국은 대중 사회가 된 것이고 대중이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평등을 가질 권리를 가진 그저 인간인 것이다. 계급이나 계층을 넘는 그저 존엄스런 인간. 이것이 유럽에서는 용납되지 않았고 이 이념 때문에 나폴레옹은 제거된 것이다. 인간은 다 똑같다라고 외친 죄인 것이다. 만약 이 이념을 버리고 그저 권력만 탐한 위정자였다면 좀 더 수명을 연장했겠지만. 그랬다면 아마 나폴레옹이 썼던 모자가 26억에 팔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폴레옹에 대한 근대 지도자들중 집착의 정점은 히틀러다. 그 또한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식민지 코르시카 출신의 평범한 계급이었던 것처럼 합스부르크 왕가의 쇠퇴로 몰락하여 이후 독일에 합병되는 오스트리아 평민 출신이다. 히틀러는 적국인 프랑스 정복 후 가장 먼저 적국의 영웅 나폴레옹 무덤을 참배했고 그의 국민주의 정신과 평등주의를 기렸다. 찌질이처럼 인종이니 뭐니하는 소리만 안했다면 그도 영웅반열에 올랐을텐데. 좀 유치했다. 역사는 유치한 것을 싫어한다. 명심해라.

 기사의 10번째 이미지

캡틴 아메리카카의 방패에 세겨진 자유,박애,평등의 민주주의

나폴레옹이 만들어낸 혁명적 충격파로 우린 지금의 좀 더 평등할 수 있는 것이고 평등한 대중에게 영웅은 그다지 혐오스럽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만든 제국 미국 영웅주의의 시작인 것이다. 평등해진 대중에겐 시민계급도 싫고 신사나 귀족계급도 싫었다. 계급은 모셔야 하지만 한명의 영웅은 찬양만 하면 족하기에 그들은 그들이 모시기 싫은 계급을 버리고 영웅을 바라기 시작했고 여기에 미국 자본가와 정치가 그리고 미디어가 반응하면서 20세기 이후 미국은 영웅을 찾아 해매며 오늘까지 오고 있다. 조지 워싱턴에서 시작한 영웅의 행진은 링컨을 거쳐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빌게이츠, 스티브 잡스, 저커버그 같은 실제의 영웅에서 베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원더우먼 최근의 아이언 맨, 엑스맨까지 가상의 영웅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기사의 11번째 이미지

민주주의가 만든 제국,미국 소프트파워가 만든 영웅 <스티브 잡스>

미국 영웅주의의 핵심 마인드는 단점보다는 장점 부각이다. 성찰보다는 성취고 균형보다는 파격이다. 이런 단어들을 들으니 생각나는 이름이 있다. 스티브 잡스다. 미국이 아니라면 태어날 수없는 영웅 중 1위. 바로 이 사람이다. 영국이었다면, 유럽이었다면 생각만해도 고개가 절래절래해진다. 스티브 잡스의 생애는 그야말로 부조화의 조화이다. 모든게 엉망진창 같지만 쓰레기 같은 현실이 모여 예술품을 만든 것이다.

눈앞에 있는 것은 보잘 것 없는 그저 구멍인데 멀리서 보면 그 존재는 다른 차원으로 가는 웜홀이었던 것. 미국 영웅주의 묘미는 바로 불균형의 균형, 부조화의 조화 속에서 인류 최강국을 만들고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힘을 만들어주는(아직까지는 나중엔 몰라도) 소프트파워에 있다.

제 3 편 독일

소박, 예리, 순수, 대담하다는 민족성으로 지구인 중에서 가장 완벽함을 추구하는 독일
(1) 음악과 전쟁의 나라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실제로 보면 정말 엄청 크다 <용장 기념관>

독일 뮌헨 오데온 광장을 가면 용장 기념관이라는 남자 전사와 그를 따르는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내모는 것인지를 알 수 없는 남녀 한 쌍의 청동상이 멋지게 서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남자가 아들 같고 여자는 엄마 같다. 그만큼 뒤에 따르는 여자의 힘이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 일게다. 보통 남녀가 반쯤 벗고 얽혀있는 동상이나 그림이면 선정적일 거라 상상할 수 있는데 실제 보면 선정적이기는커녕 무슨 군사 포스터를 보는 듯하다. 알고 보면 이 동상은 히틀러가 뮌헨에서 맥주홀 선동으로 얻은 대중의 인기를 등에 업고 일으킨 쿠데타에 실패한 사건으로 오히려 국민적인 인물이 된 계기가 된 것을 기념하여 집권 후 만든 것이다. 히틀러 입장에서는 위기가 기회다, 또는 의도적 몰락은 의도된 성공과 같다는 인생의 보편적 진리를 보여주는 곳이겠지만 그런 대담성을 가진 자가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아마 본인도 성공할 쿠데타라고 생각하고 시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시도하는 자의 것. 아마도 독재자인 그가 후세에 남기고 싶은 메시지는 자신과 같은 대담성을 가지라는 정도였을 거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옛날 분들이라 참을성을 넘어 닥치고 인내, 실제로 인내의 시간을 강조했다. 이는 성공을 위한 절대고독의 시간을 의미한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독일인보다 더 독일을 좋아했던 영국인 <토마스 칼라일>

독일인을 보면 본부장이 드는 생각은 무심하고 고독하지만 단순하고 집요하단 생각이 든다. 영국의 대문호 토마스 칼라일이 19세기에 소박, 예리, 순수, 대담하다고 한 독일 국민성에 부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얘기일 것이다. 완벽함은 네덜란드 신학자 에라스무스가 우신예찬(어리석은 믿음의 힘)에서 말했듯이 인생에서는 똑똑함 보다는 어리석음이 이기는 경우가 매우 많다. 본부장이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은 점은 지혜로움과 똑똑함은 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스마트함이란 버리기 아까운 매력이 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는 영민함을 가장 잘 표현한 가장 인간다운 단어이면서 동시에 불행한 단어이다. 그리스에는 이런 일화가 전해 내려오는데 미다스의 왕이 神 디오니소스의 시종인 실레노스를 붙잡아 묻는다. 인간에게 가장 훌륭한 것이 무엇이냐고. 그러자 신의 일개 종도 신이라고 이런 말을 지껄인다. "하루살이 같은 가련한 족속이여, 우연과 고난의 자식이여, 그대는 왜 듣지 않는 것이 그대에게 좋을 것을 들으려하는가? 가장 좋은 것은 그대에게 불가능하다. 그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차선이 있다면 그것은 일찍 죽는 것이다."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세계적 기업이 된 삼성그룹의 창립자 이병철 회장이 강조한 <운(運),둔(鈍),근(根)>을 17세기에 이미 서술한 에라스 무스의 <우신 예찬>

완벽함은 신의 영역이고 똑똑함은 인간의 영역이다.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매력은 똑똑함일 테니. 완벽함을 추구하는 독일인의 수행과정에서는 어딜 보아도 똑똑하다거나 스마트하단 느낌은 없다. 차라리 무식해 보이기까지 하다. 동양 속담에 재주가 8가지면 처자식을 굶겨 죽인다는 말이 있다. 영민함이나 똑똑함이 반드시 성공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을 키우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완벽함은 무엇이든 최고의 상품성을 뜻한다. 인간이 가방이든 보석이든 자동차든 명품의 반열에 오른 제품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것은 그 제품의 완벽함이 가지는 영원성 즉 신에 가까워지려는 인간의 욕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명품은 모두 신의 영역인 영원불멸(Eternity &Immortality)의 상징물인 것이다.

 기사의 4번째 이미지

요즘 명품 시장은 가방보다 시계가 대세인 듯

영원불멸이라는 불가능한 영역에 대한 욕망을 위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민족이 독일인이고 이것을 위해 필멸의 인간 종속 중에 가장 존재론적 고민을 한 국가가 독일이다. 보통 예술을 논할 때 미술은 땅의 영역, 말하자면 앙드레 지드가 쓴 지상의 양식 같은 불완전한 현실의 영역, 음악은 하늘의 영역 즉 이생에는 만들어 질 수 없으나 부단히 지향하고 싶은 완벽함의 영역이라고 한다. 독일인이 미술보다 음악에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인류가 만들어낸 클래식 음악의 80% 이상을 독일이 담당했다. 작곡하고 연주하고 음반으로 만들고 모두가 독일이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독일이 만든 인류사적 업적은 인간이 존재론적으로 어디까지 지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독일인들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이 어디까지 지향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기사의 5번째 이미지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기사의 6번째 이미지

얼마나 힘들게 원정했으면 장군이 직접 글을 썼겠나. 줄리어스 시저의 <갈리아 원정기>

전쟁에 대한 독일이 가지는 이미지는 독일 전차 군단이란 말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매우 유서 깊다. 앞서 예를 든 글레디에이터의 첫 장면이 바로 게르마니아 지방에서의 로마군단과의 혈투가 아닌가. 역사상으로 보면 로마의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게르만족의 이동이다. 게르만족의 주된 신체적 특징은 백옥피부(白玉皮肤), 장신(長身),금발벽안(金髮碧眼)이다. 그래서 유투브에 떠다니는 히틀러 연설을 들어보면 뭐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주로 머리 두상이니 머리색 팔다리 길이 등 유치한 얘기를 주로 주절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게르만족의 기원지로 여겨지는 곳은 현재의 독일 중부지방과 덴마크, 그리고 발트해를 중심으로 한 지방이다. 여기 사람들이 그래서 유독 눈이 파랗다 못해 녹색이고 피부색이 매우 희다. 초기 게르만족에 대해서 알려주는 사료는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 원정기>에 주로 나와 있는데 참고로 알고 있어라. 본부장이 적어주는 이름이나 고유 명사는 여러분에게 꼭 필요해서 불러주는 거다. 후에 반드시 읽어보기 바란다. 여러가지 책을 잡다하게 읽지 말고 한두 권을 숙독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잡지식은 여러분을 싸구려로 만든다. 타키투스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직접 쓴 책을 '직접' 읽어라. 그게 바로 보약이다.

 기사의 7번째 이미지

초등학교 중퇴학력으로 24살의 나이에 저서 <아웃사이더>로 타임지 표지 모델이 된 작가 콜린 윌슨

잔소리는 여기까지만 하고 계속하자. 전쟁이란 것을 어디 독일만 했겠는가. 역사상 수 많은 민족이나 국가가 전쟁을 통해 이름을 날렸다. 인류 최초의 군사력을 통한 제국으로 성경에도 나오는 앗시리아, 철기를 앞세운 히타이트, 지금 말하고 있는 게르만 대이동을 촉발한 아틸라가 이끄는 잔인함 그 자체의 훈족, 영화 뮤란에서 무자비했던 흉노, 전세계인이 다 아는 징기스칸의 몽고 그리고 잔인함과 공격성의 끝판왕 바이킹까지 일일이 말하기도 힘든 잔인함과 공격성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다. 콜린 윌슨의 <잔혹, 피와 광기의 세계사>를 읽어보라. 본부장은 참고로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도 좋지만 <우주의 역사>를 더 추천하고 싶다. 상식의 깊이는 물론 세계사가 과학적으로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왜 그럼 유독 독일만 전쟁을 좋아하고 또 많이 수행한 것처럼 보일까. 그건 바로 독일이 가진 양면성 때문이다. 천상의 음악을 추구하면서 이면에서는 어마어마한 공격성을 가지고 상대를 제압해온 역사를 가진 독일. 1896년 극동의 한국 고위관료인 민영환이란 사람이 세계일주 기행문인 <해천추범>을 썼고 책 뜻은 풀이하자면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다 정도면 될 것이다. 여기에 독일 편이 나오는데 가장 놀라워하는 부분이 두 가지 바로 정예화된 독일군 체계의 위엄과 독일 오케스트라의 장엄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처럼 가장 대별되는 두 가지에 있어서 모두 최고로 이해되고 있었고 그것이 독일의 전쟁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는 것이다.

 기사의 8번째 이미지

지금 봐도 명작인 영화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그 이유는 알마니 같은 심플함. 그래서 오프닝 음악도 알마니 같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자, 그럼 넘사벽 독일 음악의 현실을 잠깐 보도록 하자. 일단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찬 바흐부터 어머니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이름 정말 멋지다. 멋있는 이름은 다 갖다 붙여놨다.) 樂聖(음악의 성인) 루드비히 반 베토벤, 가곡의 왕 프란츠 슈베르트(프란츠는 전형적인 독일이름. 이 이름 때문에 영화 잉글리쉬페이션트의 영국인 귀족 랄프 파이즈는 독일군으로 오해받으며 인생 꼬이기 시작함), 전 지구인이 사랑하는 3대 바이올린 협주곡 3명 다 독일. 펠릭스 멘델스존, 앞에 말한 베토벤 그리고 요하네스 브람스. 내가 좋아하는 바이올린 협주곡 막스 브르흐(클로에 한슬립이 연주하는 게 최고)와 나중에 러시아 편과 핀란드편에서 말하겠지만 차이코프스키랑 시벨리우스도 최고인데 무슨 이유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3대에서 빠져있다. 자리가 비좁으니 누군가는 나가야 하겠지만. 계속해서 유럽에서는 독일인만이 그리고 유럽 밖에서 마니아층만이 좋아하는 독일 오페라의 창시자(마탄의 사수를 지은 막스 베버가 먼저지만. 이 양반도 독일) 리하르트 바그너(본부장이 여름 휴가마다 가는 독일 음악여행에서 한해 건너 가는 바이로이트가 바그너의 고향이자 바그너 페스티발이 열리는 곳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스텐리 튜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오프닝 음악인 프리드리히 니체(이 양반도 독일)가 쓴 서사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음악으로 표현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정말 이 양반의 음악은 거의 클래식 음악의 알마니라 할 정도로 세련되다). 여기에 오스트리아까지 합치면(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독일 별로 싫어함. 약간 재수 없이 거만하다고 생각하는 듯) 듣고 있으면 죽음이 친근해지는 구스타프 말러(일본에서는 이 사람은 거의 신이다. 내가 동경 산토리 홀에서 와이프랑 함께 졸면서 듣는데 옆에서 일본 노인부부가 그냥 훌쩍거리며 울고 있더라)나 말이 필요 없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2음계의 창시자(쉽게 이야기하면 불협화음으로 초심자는 듣고 있으면 이게 음악인지 잘 모름)아놀드 쇤베르크. 본부장 숨차다. 지금 시간은 밤 10시 22분. 분위기 좋다. 하지만 머리 속에 있는 독일 음악가는 아직도 덜 쓴 거 같다. 이렇게나 많다. 약간 과장으로 예를 들어 프란츠란 단어를 구글에 치면 왠 이름 모를 독일 작곡가가 쭉 나온다. 이게 넘사벽 독일 음악의 위엄이다. 아차 호프만의 이야기 오펜바흐 빼먹었다. 이제 그만 넘어가자. 여러분도 지겨울테니.

 기사의 9번째 이미지

9명의 독일 여전사 이야기 오페라 <발퀴레>  그중 막내인 (가운데)브륀힐데가 주인공이다. 조카인 지크프리트와 사랑에 빠진다.

비오는 밤 부르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 막 3악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정말 요즘 세상 좋다. 디지털 음악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알아서 찾아주니 말이다. 내 방 서재에 있는 음반은 이제 그저 장식용일 뿐. 물론 그 음반의 80%는 독일이겠지만. 이제 전쟁으로 넘어가 볼까하다가 좀 아쉬운 뭔가가 있는 거 같다. 바로 바그너 때문이다. 이 바그너를 이 정도만 이야기하고 가면 정본부장 답지 못하다는 얘길 들을 것이다. 평소에 하도 바그너 이야기를 하고 다녔기에(칭찬과 욕을 함께). 바그너를 설명하려면 모든 오페라를 다 듣는 것도 좋지만 그러려면 정본부장이 왜 필요하겠는가. 이 자리에서 딱 두 개만 소개하겠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중 <발퀴레>를 보라. 독일이 생각하는 사랑과 권력에 대한 정의가 그대로 나온다. 바그너는 평소에 그가 자주한 말로 사랑과 권력은 함께 할 수 없다고 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한 번 보고 느껴보기 바란다.

 기사의 10번째 이미지
 기사의 11번째 이미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전함 비스마르크는 독일과 미국만 다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제 다시 전쟁 얘기로 넘어가 보자. 본부장에게는 독일군에 대한 정보가 좀 있다. 아니 매우 많다. 위에서 말한 음악 얘기보다 더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이 뭐 그리 바람직한 것도 아니고 해서 짧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독일이 가지는 전쟁 캐릭터는 일단 굉장하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마지막으로 전술적으로(전략적으로는 별로고 정치적으로는 꽝). 먼저 역사적으로는 앞에 이야기한 대로다. 율리시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원정에서 골족은 어렵게 정복했지만 게르만민족은 남에게 지배받지 못하는 속성을 가진걸 알고 아예 게르마니아쪽은 가려하지도 않았다. 에드워드기번의 <로마쇠망사>에서도 이런 취지의 기술은 반복된다. 이미 체질적으로 지고는 못베기는 민족이다. 우리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런 무식하고(?) 강한 민족이 세계 최정상의 무기까지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본부장은 그중 두 가지 무기를 들고 싶다. 전함 비스마르크와 전투기 메사 슈미트 ME 262다. 왜 타이거 전차를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이야기 할 것이다. 본부장이 말해주마. 타이거는 기술적으로는 훌륭하기는 했지만 전술적으로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기술적 우위(장갑의 두께나 포탄의 관통력 정도인데)에 대한 집착이 전차전에서 수적 열세를 초래하여 러시아전 대실패의 원인이 된다. 여기에 잠수함 유보트를 또 왜 빠트렸느냐고 할 것이다. 유보트는 물론 전술적으로는 훌륭한 공격무기다. 하지만 전략적으로는 수비무기다. 버티는 무기인 것이다. 전쟁이란 승리 심리학이고 이것은 확실한 전쟁 수단이 있어야 생긴다. 미국이 가진 승리 수단은 막강한 잠재 생산력이고, 영국은 영국 해협과 영국 공군 스핏 파이어 MK의 기술적 전술적 우위였고 독일은 본부장이 보기엔 전격전, 즉 결집된 국내 질서에 따른 빠른 의사결정에 의해 가능한 속도전 능력이었다. 이것이 적을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만들고 아군을 버티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은 버티면 이긴다는 마음이 더 확실한 쪽이 이기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독일은 처음부터 버티는 전략이 강점이 아니었다. 이럴 경우 확실한 속도로 압도적으로 차별화된 공중전 무기와 확실하게 큰 해상 수송 및 공격 무기 두 가지가 공존해야 이긴다. 즉 점령지는 절대 빼앗기지 않는다는 전략이다. 후에 유보트를 더 많이 만들었어야 했다는 분석은 시험공부가 덜 된 학생이 더 많은 각성제를 먹고 시험전날 벼락치기를 했어야 한다는 논리와 같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전쟁 초기 전함 비스마르크와 쌍둥이 자매함 전함 텔피츠의 조기 격침은 패전의 조짐으로 보기 충분했다. 15척 정도의 비스마르크 급 전함이 집중 생산되었더라면(당시 독일이 본국을 포함한 유럽 전역에서 확보한 점령지 조선소의 기술력과 생산력으로는 충분하고도 남음)이야기는 완전히 틀려진다. 유보트의 기능이 전술적으로는 수비용이지만 전략적으로는 공격용이 되는 것이고 이는 매우 효율적이고 본부장이 주로 말하는 <승자의 언어 또는 구도>인 것이다. 해상 봉쇄는 물론 유럽 대륙 봉쇄도 너끈히 해결되었을 것이다. 본부장이 1932년의 히틀러로 영혼 체인지가 된다면 지금 세계 공통어는 영어가 아니라 독일어다. 왜냐구. 영국도 독일어를 쓰고 있을 테니까. 우스개소리다.

 기사의 12번째 이미지
 기사의 13번째 이미지

인류 최초의 제트기임에도 디자인 또한 최고 명품 <메서슈미트 ME 262>

자 그리고 하나는 메서 슈미트 ME 262다. 이게 조금 더 빨리 나왔어야 했다. 이게 늦어진 가장 큰 원인은 쓸데없는 오컬트적 발상에 의한 원반 전투기 즉 비행접시 연구와 영국에 대한 복수심에 별 실익도 없는 V1 V2 미사일에 너무나 많은 힘을 분산한 것이다. 뭐든지 적절해야 한다고 본부장이 영국편에서 얼마나 이야기 했는가. 기동력을 갖춘 실전형 인재는 적절한 판단력을 가진 대담한 자라 했다. 독일은 뒤에 말한 대담함이 일품이지만 앞의 적절함이 좀 약했다. 영국은 이에 반대지만 그래도 어쨌든 이걸 붙들고 끝까지 버텼고 이겼다. 당시 최고의 전투기는 영국의 스핏 파이어 MK와 미국의 P-51 무스탕인데 기술력의 독일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전투기 기술 경쟁에서는 독일이 정말 약했다. 이것을 단박에 끝낼 전투기가 바로 메서 슈미트 ME262다. 왜냐 프로펠러기가 아니라 제트기다. 속도가 조금 앞서는 게 아니라 딱 2배 즉 거의 시속 1000Km다. 공중전에서는 조종사의 기량으로 시속 100km차이는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2배는 조종사가 인공지능 알파고라도 무조건 진다. 영화 <몰락>에서 독일 공군 사령관 괴링을 히틀러가 왜 그리 저주했는지를 이제 알겠지 않은가. 한마디로 기술력과 생산력의 집중이 안되었던 것이다. 전편 <본부장이 말한다>에서 본부장이 말하지 않았던가. 집중 아이디어 실행이라고, 집중은 그냥 되는 게 아니라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서 나오는데 독일은 정치적 행정적으로 집중하기 힘든 너무나 관료적인 구조였다. 이 또한 히틀러가 미치고 펄쩍 뛰며 지랄 지랄했던 장면이 영화 <몰락> 에서 나온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부하 직원들을 쥐 잡듯이 지랄 지랄하는 모습이 나오는 영화 <잡스>에서처럼.

 기사의 14번째 이미지
 기사의 15번째 이미지

이런 과장이 먹히는 것도 독일 기술의 힘이다.<비행접시 전투기>

메서 슈미트 ME 262는 현대 제트기의 효시이고 전함 비스마르크는 우리가 영화 <베틀쉽>에서 본 미국 전함의 위엄을 만들어낸 최초 모티브다 된 초거대전함이다. 15척의 전함 비스마르크와 300척 정도의 잠수함 유보트 그리고 300대 정도의 메서 슈미트ME 262와 5000대의 타이거 전차가 생산 되었다면 기술적으로는 일단 미국은 절대 독일과 전쟁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은 고스란히 독일의 것이고 이후 V1,V2의 개량형 ICBM과 비행접시가 완성되고 곧바로 원자폭탄이 개발됨으로 전쟁은 독일의 완전한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 그게 얼마나 유지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어디 요즘 세상에 정복 전쟁으로 과연 몇 년이나 버티겠는가. 영국 같이 자기 나라 사람이 가서 만든 연방국가도 다 뿔뿔이 흩어지는 마당에. 하지만 전쟁은 이겼을 거다. 이건 예측이 아니라 그저 사실이다. 지금도 나오는 얘기지만 아인슈타인이 모티브를 주고 오펜하이머가 이끈 맨하탄 프로젝트가 사실 실패했었고 실제 일본에 떨어진 원자탄은 독일제였다는 말이 왜 나오겠는가. 독일은 전세계에 자신이 개발했거나 개발중인 무기를 구글처럼 공유한 나라다. 우리가 가끔 보는 UFO는 독일제란 말이 있고 히틑러는 독일이 아닌 남극에서 죽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결국은 독일 전쟁 기술력이 가진 자신감에서 나온 허풍이 아니겠는가. 사실이라면 그만이고. 이미 죽었다는데 뭐 더 할 말이 있겠는가. 무심한 독일인은 아마 히틀러가 살아 있다고 해도 별로 개의치 않을 국민성이 아닌가. 이 정도로 하자. 히틀러 얘기 많이 안하려고 했는데 결국 너무 많이 했다. 이게다 그 양반이 남긴 힘든 유산이 아니겠는가.

 기사의 16번째 이미지

2000년 전 한니발 이후 가장 훌륭한 장군이라고 평가 받는 <에르빈 롬멜> 둘 다 양동 작전의 대가. 속임수 또는 <성동격서(聲東擊西)>작전

마지막으로 전술적인 측면에서는 전격전이 남아 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공격할 때는 속전속결이 최고이고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공격할 때도 마찬가지로 빠르게 해야 한다. 왜냐면 공격은 수비에 비해 5배의 힘이 든다고 했다. 그 만큼 시간이 지체되면 제 아무리 큰 나라도 힘에 부치게 되어있다. 나폴레옹과 앞서 입 아프게 말한 히틀러가 전 유럽을 석권하고 러시아에게 져서 폭망한 이유가 바로 전쟁의 속절없는 지체가 아닌가 말이다. 무조건 지게 되어 있다. 인간과 기계는 먹어야 살고 먹어야 움직인다. 자연이나 시간은 그냥 가지만 인간과 기계는 먹어야 간다. 즉 빨리 안가면 나중엔 그저 멈춰서 죽거나 파괴되는 것이다. 이게 전쟁이다. 비지니스도 마찬가지다. 하인츠 구데리안이 만든 전차를 이용한 전격전이 이런 독일군의 현실에는 매우 절실했던 전술이었고 또 정확히 성공했다. 어쩌면 에르빈 롬멜은 만들어진 영웅이고 하인츠 구데리안은 스스로 만든 영웅이다. 탱크 작전이란 개념 자체를 만든 사람이 이 양반이기 때문이다. 에르빈 롬멜은 전형적인 군인 캐릭터로 얼굴자체부터가 매우 군인과 어울리게 생긴 게 주요했다. 역시 뭐든 어울리게 생겨야 한다. 본부장도 생긴 게 각이 나와 군복 입으면 폼 좀 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자는 얼굴에 각이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본부장도 아우라에서는 롬멜에게 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전편인 <본부장이 말한다> 뉴욕 출간용 영어판을 로 제목을 지었겠는가. 이건 내 의견도 아니다. 뉴욕주  최고 엘리트 변호사인 김석민 변호사의 의견이었다. 전쟁 개시 초반 프랑스 마지노선을 우회해 벨기에 아르덴 숲을 전차로 돌진해 들어가 곧바로 프랑스의 후방으로 진격해 들어간 작전이 독일육군 A집단군 참모장 만슈타인의 작품이었던 것처럼. 이야기가 전차를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전격전 말이 쉽지 이건 정말 엄청난 도박이다. 전차가 호위 보병이 없이 전진한다는 것은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고 더구나 아르덴 숲 돌파 작전처럼 일렬 전진인 경우 전차 고장시에는 꼼짝없이 고립되어 역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리스크 없는 승리는 없다. 다만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관건이고 독일은 전쟁 초반 그것을 적절히 해냈다. 전쟁기간 중 유일하게 적절했다. 그 이후부터는 균형감 완전 상실.

자 이제 그만 정리해야겠다. 벌써 시간은 새벽 3시를 넘기고 있다. 본부장이 정리하자면 음악과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독일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긴 여행이다. 본부장도 각 국가를 공평하게 지면할애를 하고자 했고 그래서 국가별 이슈도 딱 2개로 제안했었는데 독일은 정말 깊다. 그 만큼 경험적인 것보다 관념적이고 그래서 몇 몇 가쉽들 보다는 다루어야하는 팩트들이 너무나 많은 국가다. 이번 첫 번째 이슈에서 다룬 음악과 전쟁도 그래서 길어졌고 그나마 상식과 지식 그리고 경험과 이론에 근거한 定義에 정통한 본부장이기에 그나마 이정도로 마무리 된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본부장 독일 역사나 가르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물밑에 흐르는 이해관계를 보는 법을 배우란 말이다.


제 3 편 독일-2

소박, 예리, 순수, 대담하다는 민족성으로 지구인 중에서 가장 완벽함을 추구하는 독일
(2) 신성로마제국을 알면 근대 유럽이 한 눈에 보인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유럽 강대국들의 상징으로 쓰이는 독수리는 로마제국의 영향이 크다.<신성로마제국의 독수리 휘장>

1941년 6월 22일, 독일 제 3제국은 일명 바바로사 작전을 개시한다. 나폴레옹이 감행했다가 실패한 바로 그 러시아 침공 작전. 이미 실패의 표본이 있는데도 히틀러는 이를 감행했다. 그리고 그가 롤모델로 삼는 그처럼 몰락한다. 바바로사는 바로 붉은 수염이란 별명을 가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다. 독일 제 3제국의 히틀러는 제 1제국 신성로마제국, 프로이센이 통일한 제 2제국 독일제국을 이은 후계자로 자칭하며 현대가 아닌 봉건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제국이란 단어를 국가명에 쓴다.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의해 독일 전체가 유린당하던 치욕의 역사와 얼마 전 1차 세계대전의 패전에 대한 징벌인 베르사이유 조약으로 망가져가던 조국의 현실을 되새기며 전차군단을 앞세운 전격전으로 6주 만에 파리를 함락시키고 히틀러는 곧바로 나폴레옹의 묘를 찾아 묵념한다. 물론 찾아갈 때만 해도 복수의 의미가 컸을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전쟁의 정당성을 포장하기 위한 선전용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이유 조약에 서명을 했던 굴욕의 열차까지 복원하며 프랑스의 항복 사인을 받는 퍼포먼스까지 연출한다. 이때 복수심에 불타 들먹거린 것이 신성로마제국을 운운하며 ‘독일제국이여 영원하라’였다. 복수라는 사사로운 의지로 시작했다는 것에서 형식적으로나마 프랑스 혁명 정신을 바탕으로 한 나폴레옹보다 훨씬 못한 대의명분이었다. 정말 유치했다. 모든 전쟁의 시작과 끝에는 반드시 대의명분이 있어야 한다. 대의명분이란 전체 공동체 구성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특히 미래에 대한 공통된 염원이다. 이것이 완벽하게 해결이 되어야 이겨도 이기는 것이고 져도 이기는 것이다. 명분 없는 전쟁에서 리더들이 항상 내미는 것이 과거의 영광에 대한 회복과 굴욕에 대한 복수이다. 독일 제 3제국의 가장 큰 실수는 바로 그 이름에 있고 그 이름의 근원에 있다. 독일을 제외한 누가 그 의도에 동의하겠는가. 프랑스 나폴레옹의 경우 황제를 칭하기 전까지만 해도 독일인의 정신적 지주인 루드비히 판 베토벤마저 그가 영웅이라면서 교향곡 3번 에로이카를 바치지 않았던가. 그의 자유 평등정신에 심취해서 말이다. 명심해라. 본부장이 잠깐 이 부분에서 좀 더 말하는데 특히 절대 복수나 정복 같은 거 좋아하지 마라. 매우 없어 보인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이는 스스로 새로운 창조를 못하게 하는 질곡으로 빠트린다. 인간은 인간에게 복수할 때가 아니라 창조할 때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히틀러가 훌륭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후에 멋없는 인물로 평가받는 것도 복수니 정복이니 하는 공존의 길이 아닌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공존을 모색해야 인간이고 그래야 진짜 멋이 생긴다. 명심해라.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공존의 방법을 내는 자가 진정한 리더인 것이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적국을 수도를 함락 후 곧바로 적국 영웅의 묘를 참배하는 것은 고도의 정치술이지만 쉽지 않은 판단력이다.<히틀러의 나폴레옹 참배>

다시 돌아와서 프랑스 파리 점령 후 나폴레옹에게 헌화하면서 히틀러는 무언가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먼저 ‘이거 되는거 아냐’ 그리고 또 하나는 ‘나폴레옹은 내 롤모델’,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래 신성로마제국이야! 왜 이제야 이 생각이. 난 오스트리아 출신이잖아.’ 아마도 이런 생각 등을 했을 것이다. 본부장은 20살 때 첫수업인 국제 정치학 수업인 ‘국제 관계론’ 시간 이후로 지금까지 24년 동안 국제 정치 그중에서도 유럽 국제 정치에 대해 손을 놓아 본 적이 없다. 물론 내 본업에서도 승승장구하면서 말이다.(그래서 본부장이 성공하는 남자는 취미가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면서 본부장이 24살 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라는 한반도의 DMZ 지역에서도 가장 추운 평균 영하 19도의 초소에서 홀로 초병 근무를 서면서도 졸지 않고 서 있기 위해(본부장은 책임감이 강하다. 근무 중 존다는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 주로 한 것이 ‘내가 그였다면’이라는 역할 놀이였다. 마치 스테판 츠바이크의 ‘체스이야기’에서 독일군에게 연금되어 방안에서 혼자 외로이 체스게임을 하며 체스의 고수가 되어가는 주인공처럼. 그때 여러 인물들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는데 대표적인 게 처칠, 루즈벨트, 스탈린, 히틀러, 히로이토, 체임벌린, 간디, 모택동, 장개석 등의 정치 지도자나 롬멜, 구데리안, 만슈타인, 패튼, 몽고메리, 도조 히데키 등의 각국의 군사 지도자들이다. 추운 겨울날 적막한 초소에서 항상 이 놀이를 하면서 내가 깨달은 부분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출생에서부터 겪어온 수많은 경험을 통한 과정으로부터 벗어난 결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견 그런 것처럼 보일지라도 잘 살펴보면 그러한 결정을 위한 또 다른 지류가 발견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부장은 후에 직장 생활을 하며 수천 명의 사람들을 관리하거나 면접 보면서 24살에 한 내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고 일정부분 맞아 떨어지는 부분을 검증할 수도 있었다. 본부장에게는 추운 겨울날 주변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이고 앞으로는 유유히 강이 흐르던 그 초소에서의 추억이 지금도 아른거린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혼자서 적과 아군을 다 해보는 "내가 그였다면" 게임, 스테판츠바이크 <체스 이야기>

전작 ‘본부장이 말한다’에서 정의한 실전형 인재의 개념 또한 그렇게 겪은 수많은 경험을 통한 통계적인 결과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스스로 통계적인 존재이다. 모든 인간은 어떤 형태이든 개인의 정통성을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정통성이란 이전 과거에 나의 피 같은 수명을 소비해가며 겪은 것들을 버릴 수 없다는 데 기초한다. 미국 유학파가 중국 패권론을 인정하기 싫은 이유나 중국 유학파가 미국 패권의 영원함을 인정하기 싫은 이유는 바로 미국이나 중국의 실제 국력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의 소중한 과거에 대한 관심이 더 크기 때문이다. 본부장은 그래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조직 관리를 해왔던 것이다. 멋있으려고 또는 남의 이목이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참고할 팩트의 객관성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함이고 이로 인해 내가 내리는 결정이 좀 더 물 밑에 흐르는 이해관계의 진실에 접근하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제일이라 했다. 그렇기 위해서는 먼저 행동하라.<손자 병법>

현재 본부장이 그저 금융권의 잘나가는 본부장이 아닌 여러분께 세상을 보는 지혜나 취업 및 면접 조언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리 생각해 보고 많이 생각해 본 것이다. 어린 나이에 친구들이 게임하고 거짓말하고 여자 만나고 다닐 때 본부장은 그런 생각하며 길을 걷고 차를 마시고 심지어 여자랑 데이트할 때도 그런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인기는 늘 없었다. 하지만 그 여자가 그러는 이유는 늘 납득하고 살았다. 본부장은 지금껏 누구를 원망하거나 서운해 한 적이 없다. 마음이 넓어서가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그였다면’이라는 역할 놀이는 본부장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는 정말 재미있는 놀이다. 하지만 이기고 지는 문제는 내가 그를 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고대 중국에 손자라는 병법가가 있다. 그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00전 100승이라고 했다.

자, 본부장이 말한다. 안다고 다 이겼다면 흙수저는 언제나 흙수저고 금수저는 언제나 금수저다. 돈의 차이는 정보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본부장은 흙수저이고 여러분들도 흙수저일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상대적이니 말이다. 흙수저가 금수저를 이기는 방법을 알려주마. 무조건 행동하라. 지피지기면 100전 100승의 시기에는 지금보단 평등했을지 모른다. 지금처럼 불평등의 시대엔 행동하는 자만 이긴다. 여러분에게는 구글이 모든 사실을 알려주고 구글이 모르는 진실은 본부장이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걱정말고 행동하라. 그럼 본부장은 말만하느냐구. 천만에 말씀. 본부장의 인생은 행동의 역사이고 행동을 통해서만 사실이 아닌 진실을 알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본이다. 지금 쓰고 있는 제2권 ‘본부장이 시대를 말한다’는 제 3권 ‘본부장이 행동한다’로 결말을 지을 것이다. ‘본부장이 말한다’도 물론 훌륭하다. 하지만 ‘본부장은 행동한다’. 이게 진짜 나다.

 기사의 4번째 이미지

프로이센이 통일한 제 2제국 <독일 제국의 휘장>

정리하면 아까 본부장이 혼자 하는 게임인 ‘내가 그였다면’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행동가들이다. 그것도 지독한. 대부분 말도 두서가 없다. 히틀러 연설을 들어 보면 정말 이게 말인지 막걸리인지 알 수가 없다. 내용도 편협하기 이를 데 없고 공감도 안가는 내용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감동이 있는 것이다. 왜? 그는 행동해서 그 자리에 올라가며 자기희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흙수저였던 것이다. 정본부장의 인재 5단계인 공감, 흥미, 놀람, 감탄, 감동 단계에서 최상위 단계를 한 번에 차지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자기 희생’이다. 어느 정도 높이 올라가고 싶으면 팔 하나는 내 놓아야 하고, 맨 위 자리에 올라가고 싶으면 자기 머리를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명심해라. 먼저 내놓으면 안가져 간다. 오히려 권좌에 앉게 된다.

그러나 히틀러는 이런 자세를 갖추고 그 자리에 올랐지만 대중의 공감과 거리가 먼 '제왕'의 자리에 오르고 싶다는, 20세기에 어울리지도 않는 봉건적인 생각을 했다. 정본부장이라면 반대로 행동했을 것이다. 프랑스 점령 후 히틀러가 취했어야 할 일은 국민 국가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 번 일신하고 오늘날의 미국보다 더 개방적인 대중사회를 만들어 주었어야 했다. 신성로마제국을 모태로 할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 멸망 후 사리진 자유와 개방성이라는 우선순위를 유럽에 꽃피웠어야 했다. 그럼으로써 유럽의 대중들이 지금껏 염원했던 인간성의 발현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해주었어야 했다.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정치적인 반란(미국도 연방의 존립 문제에서는 매우 단호하다)을 제외한 모든 대중 활동에 대해 그 어떤 억압을 중단하고 포용책을 썼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 신성로마제국을 떠올렸다. 로마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오히려 편협한 민족적 뿌리를 내세워 게르만 족이 세운 폐쇄적인 종교와 정치권력의 타협 집단인 신성로마제국이라니. 이런 한계적인 발상은 그 시도 자체에서 이미 패전을 의미했다. 대중이 공감할 수 없는 이념이기 때문이다. 신성로마제국을 따로 기술하거나 그것을 주제로 소설을 쓰는 작가를 잘 보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중친화나 시대친화적인 국가가 아니라 소수의 여러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실체가 없는 제국. 제국의 시민권이라는 말조차도 필요 없는. 신성로마제국을 본부장이 핫이슈로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다거나 공감되지 않는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옳지 않은 제 3제국이 유럽을 제패한 역사가 있는 것처럼. 옳지 않은 역사 뒤에는 반드시 반민주적 반대중적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기에. 여러분은 그걸 볼 줄 알아야 한다.

 기사의 5번째 이미지

본부장이 자주 말하는 이유가 있다. 지식인들이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스의 장군이자 정치가 <테미스토클레스>

그래서 신성로마제국을 일일이 파헤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 나라는 많다. 지금도 세계의 여러 나라들을 찬찬히 굽어 보면 그럴싸하게 긴 이름의 국가일수록 그 건국과정이 매우 인위적이고 이념적이기 마련이다. 지역 대중에 의해 긴 통과의례를 거쳐 많은 계층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결부된 나라는 이름도 간단하다. 명심해라. 살라미스 해전의 주역 테미스토 클레스의 말 ‘속임수로는 대국을 만들 수 없다’를 되새기길 바란다. 순진하게 행동하라는 게 아니다. 멍청하게 쓸데없이 솔직하게 굴라는 것 또한 아니다. 그저 정직하게 살아라. 그게 최고다. 다만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 하지 말라. 말을 하지 않은 것이지, 거짓을 말하지는 말라. 신사는 마음에 있는 말을 다하지 않기 위해 유머를 한다. 유머를 하는 이유는 진실을 감추기 위함이 아니라 명분을 잃지 않기 위해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함이다. 본부장의 말을 명심하라. 매우 중요한 말이다. 정직도 전략이다.

자, 그럼 신성로마제국을 좀 더 쉽게 말해 주겠다. 로마는 한마디로 명분이 있는 국가이다. 아직도 로마를 주제로 한 드라마, 영화 등이 산더미다. 건국신화는 그리스도 모자라 저 유명한 트로이 전쟁에서 패망하여 도망한 트로이 영웅에서 시작하지만 그 끝은 없다. 왜냐면 모두가 로마의 후예를 자처하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아예 로마 이름을 딴 신성로마제국이다. 왜냐면 로마 안에 속해있지 않은 민족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격지심. 역사 전개의 원인은 언제나 복잡하지만 자세히 보면 몇 가지 안된다. 그 중 하나가 자격지심이다. 이전 독일 편에서도 말했지만 무적의 영웅 줄리어스 카이사르도 게르마니아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게르만은 로마인이 명백히 아니었고 그것을 유럽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거부한 민족이다. 그렇기에 더욱 로마를 강조했고 여기에 신성이란 말까지 붙여 카톨릭이란 색채까지 강화시켰다. 아마 감추고 싶은 것이 많았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저런 치장을 왜 하려 했겠는가. 신성로마제국은 시대를 앞서나가는 이념이나 공동체적 이슈를 제시한다거나 제국의 팽창을 통해 전체 공동체에게 제시할 청사진도 없는 그저 소수 귀족 연합 그들만의 특별한 이해관계를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제국 같지 않은 제국이었다.

 기사의 6번째 이미지

대충 이 정도인 줄만 알면 된다. 아무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으니. <신성로마제국의 15세기 판도>

잠깐 구글로 정리하면 ‘신성로마제국은 중세에서 근대 초까지 이어진 기독교 성향이 강한 유럽 국가들의 정치적 연방체이다. 프랑크 왕국이 베르됭 조약(843년)으로 나뉜 동쪽에서 독일 왕이 마자르족을 격퇴한 후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수여받아 신성 로마 제국 건국을 선포하였다. 신성 로마 제국은 초기에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였으나, 점차 이탈리아에 대한 간섭으로 독일 지역에 소홀히 하면서 여러 제후들에 의해 분할 상태가 되었다. 30년 전쟁(1618~48년)이 일어난 나라로 유명하며, 30년 전쟁에 패배하여 베스트팔렌 조약 (1648년)으로 많은 영토를 잃었다. 나중에는 프랑스의 공격을 받아 제국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프란츠 2세가 결국 제국 해체를 선언하였다. 그 후 프란츠 2세는 오스트리아 제국을 세워 신성 로마 제국의 마지막 왕가였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1918년까지 지속되었다. 18세기에는 지금의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 슬로베니아,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포함해서 네덜란드의 대부분과 폴란드의 일부에 해당하는 영토를 유지했다. 한때는 네덜란드와 스위스의 전역, 프랑스, 이탈리아의 일부까지도 포함했었다. 844년(또는 1006년)간 지속된 장수 국가로 유명하다.’ 구글에서 찾아보는 번거로움을 덜어주었다. 절대 찾아 읽지 않을 여러분들이기에. 물론 그리 중요한 정보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신성로마제국의 이해관계의 실체이니.

 기사의 7번째 이미지

19세기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일상을 잠깐 엿볼 수 있는 영화 <일루셔니스트>

영화 일루셔니스트를 보면 19세기말 오스트리아 왕가의 상황이 정확히 나온다. 영화에서는 신성로마제국이라 말은 나오지도 않지만 거기 나오는 합스부르크왕가가 퇴락한 제국의 승계자이다. 결국 신성로마제국을 알면 근대 유럽이 보인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여러분에게 잠깐 본부장의 예술적 지경을 열어 설명하자면 여러분이 졸려하는 서양 오페라의 주요 내용이 유럽의 왕가들 간에 일어나는 치정과 모략 등인데 여기에 ‘에르나니’란 베르디 오페라를 보면 스페인왕인 카를로스 1세가 제후들의 회의를 통해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5세로 등극하는 장면이 나온다. 좀 더 이야기하자면 카를로스 1세는 어머니쪽이 스페인 왕족으로 외할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정신질환이 생겨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조부이자 황제인 막시말리안 1세가 '넌 황위를 계승하지 말고 그냥 왕으로 살아라'해서 스페인 왕으로 내팽겨졌다가 후에 영화의 한 장면같이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양반의 아들이 또 유명한 영국 메리 1세와 결혼하고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랑 칼레 해전을 치루다 패해 무적함대 아마다를 무색하게 한 필리페 2세이다. 이 필리페 2세가 후에 네덜란드 독립 전쟁과 또 관련이 있다. 암튼 필리페 2세 때 스페인이 무적함대 아마다가 패했다고 하더라도 남미에서는 아직도 엄청난 부(황금)가 스페인을 통해 유럽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시기다. 따라서 유럽에서 엄청난 부자가 생겨나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후 19세기말까지 400년 동안 유럽 귀족들은 돈 무지하게 벌고 또 무지하게 모았다. 이른바16세기 대항해 시대다. 유럽 안으로는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와 함께하는 대영제국의 시작이고, 프랑스는 이때부터 이미 유럽국가 중 완전한 국민국가의 면모를 갖추고 주변 국가를 나라로 보지도 않는 자신감이 넘치는 시기이며 이탈리아는 드라마 보르지아나 마키아벨리 군주론에 나오듯이 수많은 도시국가로 나뉘어져 있는 불안한 시기다. 이때 신성로마제국은 독일,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중부유럽에 걸쳐 있는 게르만 제국이었다.

 기사의 8번째 이미지

19세기 유럽의 왕족과 귀족의 일반적인 복장이다. <영화 일루셔니스트에 나오는 오스트리아 레오폴드 황태자>

본부장은 여러분들에게 이 대목만 알고 가자고 말하고 싶다. 다 알 필요 없다. 본부장이 말한 이 대목이 가장 이야기거리도 많고 이해관계도 많이 얽혀있는 시기이고 신성로마제국이 오늘날 어떤 영향을 끼쳤고 왜 히틀러가 신성로마제국을 운운했는지 알게 만드는 대목이다. 엄밀히 말하면 히틀러가 제 3제국은 물론이고 독일 제 2제국이 신성로마 제국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가 자신의 롤모델로 생각하는 나폴레옹이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이기고 1806년에 제국은 해체되었는데도 그 주 세력인 합스부르크 왕가는 남아 오스트리아-헝가리지방에서 자리 잡고 '내가 신성로마제국의 후예다'라고 외친 것일 뿐 히틀러가 보기엔 전혀 의미 없는 메아리로 들렸던 것이다. 본인이 오스트리아 사람이니 누구보다 잘 알았겠지. 그리고 본부장이 신성로마제국을 이슈로 삼은 또 다른 이유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근현대사에서의 관계다. 유럽인이 아닐 경우 대부분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뭐 이해한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로마제국이 지금의 이탈리아와는 틀린 것 아니겠는가. 후예이긴 하겠지만.

 기사의 9번째 이미지

오스트리아 보덴 호수위의 오페라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흥행에 성공한 <브레겐츠 페스티발>

본부장도 처음 오스트리아에 갈 때 엄청나게 흥분됐던 게 '야 내가 그 엄청난 유럽의 최강국이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가는구나'하고 중얼거렸다. 가본 사람도 있겠지만 그때의 영광은 거의 없다. 그저 예전의 영광을 추억하듯 화려한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이 있고 무도회 같은 게 자주 열리는 곳 정도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페스티벌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지인인 본부장 부부를 비롯한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기업가들이다. 본부장이 1년에 여름휴가로 한 번씩 가는 브레겐츠란 오스트리아 도시가 있다. 007 퀀텀 오브 솔로스에서 제임스 본드가 멋지게 총질을 해대는 호수위의 오페라 무대가 바로 브레겐츠 페스티발이다. 오스트리아와 독일 같은 민족이긴 하지만 한 나라라고 하기에는 신성로마제국의 그림자가 너무 짙고 또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자부심도 세다. 즉 아직도 오스트리아는 예전의 영광스러운 국력은 아니지만 매우 영광스러운 이름 오스트리아에 대한 환상이 있고 독일은 신성로마 제국의 정통으로 삼을 만한 국력을 가졌지만 왕가의 정통은 아닌 것이다. 물론 그런 왕가는 이제 어디에도 없고 본인이 왕가후손이라고 말하고 다니지도 않는다. 왜냐면 유럽에서는 왕가라고 하면 죄다 살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도 참혹하게 말이다. 아직도 가지고 있는 재산이 워낙 많을테니 입조심하고 다닐 것이다. 그 돈을 관리해주는 곳이 스위스 은행이 아니겠는가. 암튼 독일은 독일대로,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대로 서로 자기가 정통이고 자기가 잘났다는 감정의 표출인 것이다. 다만 현실 유럽의 강자는 20세기 초나 지금이나 독일이 맞다. 중간에 한두 번 부침이 있었지만 말이다. 실제 무도회장이나 오페라 페스티벌에 가보면 독일의 위용이 장난 아니다. 본부장이 현지에서 느낀 바로는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돈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남은 사촌정도로 생각하고 있고 오스트리아는 독일을 머슴으로 살다가 이제 돈 좀 번 무식한 남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그래도 독일은 아직도 오스트리아를 친척 대접은 해주는 듯.

 기사의 10번째 이미지

1806년 신성로마제국 해체를 결정짓게 되는 <1805년, 나폴레옹의 아우스터리츠 전투>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 잡스러운 걸 외울 필요는 없다. 언제 누가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했고 또 왜 누가 자신이 그 제국의 적통임을 내세웠는가가 중요하다.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은 1805년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 러시아 연합군을 격멸시키면서 무너졌다. 앞서 말했지만 당시 유럽은 섬나라 영국,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 유럽의 최강국 프랑스, 중부유럽의 신성로마제국 그리고 동부에 러시아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아니 이게 유럽을 지탱해운 열강의 균형이고 이해관계 지도다. 이것이 깨진 것이 1805년 나폴레옹의 아우스터리츠 전투로  프랑스가 대승하고 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국은 패했다. 이어서 신성로마제국의 해체를 나폴레옹의 압력으로 마지막 황제 프란츠 2세가 선언하였고 제국 최후의 왕가였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오스트리아에 남아 1804년 제국 해체 전 미리 만들어 놓은 오스트리아 제국(1804년 나폴레옹이 프랑스 제국 황제로 즉위하면서 위협을 느낀 프란츠 2세는 오스트리아 제국 프란츠 1세로 즉위)로 유지되다가 1867년 헝가리 귀족과 연합하여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으로 발전되는 것 같더니 결국 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1918년에 완전히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이때 함께 사라진 유명무실한 제국이 오스만 제국이다. 나중에 터키 편에서 이야기 할거다. 본부장이 왜 이렇게 제국의 성립보다 해체에 집중하냐면 그것이 바로 이 시대 대중들의 큰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제국 해체를 원하는 민중에게 다시 제국의 출현을 선포한 나폴레옹이나 히틀러는 이미 민심을 저버린 댓가를 치를 운명만이 남아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기사의 11번째 이미지

참 나쁜 짓도 많이 한 상징 <나치 제3제국의 휘장>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하기 위해 자신이 먼저 황제가 된 나폴레옹이나 유럽의 총체적 불합리를 해결하겠다고 유럽 전쟁을 일으키고 제 3제국을 선언한 히틑러는 명분을 잃어버린 행동이었다. 제국이란 것은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인 것이다.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당시 대중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들에겐 어느 나라이거나 자신들의 자존심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생활을 개선시켜줄 수 있는 정치적 집단을 원했다. 초반에 나폴레옹이 승승장구했던 이유다.

멋진 휘장이나 문장이 그들에게는 전혀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미국은 그 규모나 국력에 있어서는 이미 예전 제국들의 그것을 능가한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을 제국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랬다면 이미 남북전쟁에서 연방을 반대했던 남군이 승리했을 것이고 미국은 여러 나라가 함께 공존하는 미국 대륙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꼭 명심해야 한다. 물밑에 흐르는 이해관계의 흐름은 언제나 구성원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힘들어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심플하게 생각해야 한다. 구조는 간단하다. 대응이 복잡한 것이지. 간단하고 심플하게 보고 복잡하고 섬세하게 행동하라. 반대면 필패다. 본부장이 주는 승자의 언어다. 명심해라.

 기사의 12번째 이미지

신성로마제국을 구성하는 귀족 가문의 휘장들로 장식된 일명 <제국의 독수리 날개>

그럼 마지막으로 이런 느슨하고 명분 없는 연합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는지를 말해주마. 우선 태생 자체부터 로마적 정통성이 부족한 게르만 민족의 국가인 프랑크 왕국의 귀족들과 당시 권위가 약해져가고 있는 카톨릭 교회에 의해 만들어진 제국인 만큼 이해관계의 결집이 가장 중요했다. 위의 문장을 보면 알겠지만 수많은 귀족 가문의 연합체가 신성로마제국이다. 르네상스 시기 유럽에서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경우는 국민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었다. 한 마디로 국민이 내가 이 나라 국민이라는 생각이 스스로 강했단 이야기다. 그런데 아직도 이슬람의 영향이 남아 있는 스페인이나 수백 개의 도시로 나뉜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독일, 오스트리아까지도 국민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었다. 이유 간단하다. 그 지방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주민들에게 서로 납득할만한 신뢰와 권의를 얻은 정치세력이 있었느냐가 핵심이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대학자 에릭 홉스본은 ‘역사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결과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중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그래서 끊임없이 강대국 프랑스의 침략과 직간접적인 영향권에서 있었고 중부유럽인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의 영토를 기반으로 남은 유럽의 귀족계급들이 모여 귀족연합을 만든 것이다. 중부유럽은 지금도 그렇지만 아직도 국가란 개념보다는 지역주의가 매우 심하다. 독일은 지금도 남부와 북부는 같은 나라라고 생각도 않는다. 독일 통일이 그나마 쉬웠던 이유는 독일은 동서보다 남북이 더 성향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로 남과 북이 정서적 차이가 매우 심하다. 어느 나라나 지역주의가 다 있지만 중부 유럽은 나라의 개념이 약하고 지역주의적이며 봉건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했다. 따라서 힘 좀 쓴다는 지역 유지인 귀족들의 연합이 모이고 각기 노선별로 연합하여 제국이라는 느슨한 연합체의 형태를 띠기가 용이했고 앞서 말했듯이 스페인도 그래서 잠시 제국에 편입되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신성로마제국은 정복이 아니라 왕위 계승으로 영토를 넓혀왔다는 것도 여러분들이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아까 이야기한 손자병법의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것이 여기 해당되는 게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일에는 명분과 실리가 있다. 명분이라 함은 대중의 실리를 말하는 것이고 실리라는 것은 나의 실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걸 잘 음미해보면서 지구상의 모든 연합체의 이합집산을 유심히 굽어보면 배우는 것이 많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달 3월의 시작을 즈음해 본부장이 꼭 당부하는 바는 부모들이 말하는 특히 나이든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말에 꼭 귀를 기울이도록 해라. 여러분에게는 보약 중에 보약이다. 다만 여러분들 머리 속에는 이런 생각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 자신도 살면서 잘 지키지 못하는 말을 왜 나에게 가르친다고 말이다. 짜증이 날 것이다. 그래 이해는 한다. 하지만 본부장을 따르는 대인배는 그래서는 안된다. 무릇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본인에게 많은 얘기를 해주는 자를 많이 둘수록 그자는 성공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중 최고의 멘토는 부모임을 명심하라. 부모님께 꼭 효도하고 부모의 행동을 감싸주고 그분들이 여러분에게 하는 사소한 말과 행동까지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큰 그릇이 생긴다면 여러분은 이미 본부장을 따라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건 내가 보장한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고 하지 않는가. 명심해라. 본부장이 스스로의 좌우명인 ‘가르치지 않고 리드하라’를 마음 놓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러분들의 부모들이 충분이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성공하고 싶다면 부모에게 잘해라. 얼마나 좋은가. 성공도 하고 효자도 되고.

제 4 편 프랑스

민주주의와 나폴레옹의 나라 프랑스
(1) 라파예트와 보나파르트가 만든 삼색기의 나라

  • 입력 : 2017.03.07 22:45:09    수정 : 2017.03.07 22:51:20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젊은 시절 앙드레 지드는 ‘지상의 양식’에서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맛보길 권하지만 늙어서는 기독교로 개종하여 철저한 금욕 생활을 한다. 나이들면 철든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

프랑스를 정의한다는 것은 인류를 정의한다는 자세를 가지고 달려들어도 매우 힘들 가능성이 있다. 이유는 인류적 보편성을 모두 가질 만큼 모든 보편적인 시행착오가 하나의 장소인 프랑스라는 곳에서 매우 오랫동안 꾸준히 진행됐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 우주에서 인류가 가장 축복받았다고 하는 지구라는 파란 별의 독차지를 넘어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환경의 나라에서 말이다. 프랑스가 주도해온 인류사에 강하게 새겨진 정치적 혁명과 문화적 혁명은 아마도 프랑스 대문호 앙드레 지드가 젊은 시절 ‘지상의 양식’에서 그토록 찬양했듯이 그런 자연적 토양이 가져다주는 여유로움이 존재했기에 더욱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19세기 영국 사회의 위선적 모습에 대한 비아냥에 전혀 인색하지 않았던 영국 작가 서머셋 모옴의 ‘The painted veil’

영국 작가 서머셋 모옴의 책 ‘The painted veil’에서 모옴은 전 세계에서 가장 자기나라에 대한 애착이 없는 국민을 영국인, 그리고 가장 강한 나라를 프랑스로 꼽았다. 영국인은 타국으로 전출 나오는 순간 그 지방에서 자리를 잡고자 하여 본국에 대한 향수병으로 그다지 고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프랑스인은 세계 어디에 있던지 본국에 대한, 특히 자신의 고향에 대한 회귀의지를 계속 고수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 마지막까지 고향을 그리워하며 중국 어느 작은 교회에서 봉사하며 홀로 죽어간 프랑스인 늙은 수녀처럼 말이다. 하늘이 내린 축복인 프랑스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안하면 이해가 되는 말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타고난 여유로움이라는 자산을 독차지 하지 않고 인류에게 보답한다. 철저한 실험정신에 입각한 상상력의 도구로 스스로를 내놓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전 인류의 고민을 혼자 짊어지고 살아온 것 같은 나라다. 그래서 프랑스 국기는 다른 국가들 특히 영국이나 미국 국기들처럼 자신의 영토를 상징화 한다든지, 아니면 특정 가문이나 종교를 따른다거나 타국의 국기를 급하게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프랑스 혁명의 취지를 담은 자유, 박애, 평등이라는 지금도 전 인류가 지키려 하는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상징을 띠고 있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프랑스 식민지로 박해받고 있던 이탈리아에 대한 애국심을 노래한 베르디 오페라 ‘시칠리아의 새벽 기도’

물론 프랑스도 다른 여느 강대국처럼 주변국을 침략해서 사람을 괴롭히고 재물을 빼앗아간 경험이 다분한 나라이다. 인간이란 원래 고귀하면서도 본능에 충실한 존재이니 말이다. 이탈리아나 스페인 심지어는 지금의 유럽 경제 최강국 독일같이 근대에 들어 직접적인 침략을 당한 나라는 물론이고 그 밖에 지금은 매우 잘사는 여러 유럽의 소국들 또한 많은 고생을 시킨 나라가 프랑스다. 하지만 유럽에서 이런 침략의 역사를 빌미로 원수지고 살자고 한다면 과연 어느 나라가 서로 이웃하고 살 수 있겠는가. 다만 인류적인 가치를 나라 전체가 추구했다는 프랑스도 그랬다는 것만 알고 넘어가자. 누차 말하지만 이 글은 그 나라 역사를 파헤치는 의도가 아니기에 말이다.

다른 나라도 그렇지만 프랑스 역사를 보면 주로 눈에 띠는 이름이 몇 있다. 그중에 본부장은 보나파르트와 라파예트라는 이름에 마음이 끌리더라. 보나파르트라 하면 대게 누군지 모르지만 나폴레옹이라고 하면 누군지 알 것이다. 이전 미국편에서도 자주 인용했던 나폴레옹을 이편에서는 좀 본격적으로 이야기 해보자. 본부장은 다른 나라 편에서는 나폴레옹이 무엇을 했는지를 말했는데 이 편에선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당시 프랑스 상황을 바라봤을 개인적 입장을 생각해 보고 싶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무력으로 봉건시대를 혁파하고 근대를 연 사람이다. 프랑스 민중들의 손에 봉건의 상징들이 목이 잘려 나가는 것을 본 유럽 인민들은 경악했다. ‘이게 정말 가능해’라는 말을 읊조리면서 말이다. 인류가 오랜만에 시도하는 짜릿한 하극상의 현장에서 보나파르트 스스로도 전율했을 것이다. 하지만 순간 독서광이었던 자신이 읽은 수많은 책들을 떠올리며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파악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도대체 물밑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 것인가를 말이다. 로마 멸망 후 기득권층으로 당연시하게 존중되어왔던 봉건질서의 상징들이 한순간에 혐오와 제거의 대상이 된 것이다. 본부장이 쉽게 말해주마. 봉건이란 것이 무엇이냐 하면 혈연, 지연 등의 자연적으로 부여된 태생적 신분에 대한 자연스러운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모두가 정치적 포지션, 즉 발언권에 대한 다툼인 것이다. 본부장이 조직 관리의 팁을 말해주마. 성공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발언권을 줘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기는 것을 명심해라. 영국이란 나라가 신분적인 계급사회를 적극적으로 표방하는 보수적인 사회임에도 근대를 연 중요한 국가군에 포함 될 수 있던 이유도 바로 이 태생적 신분제를 자연스럽게 극복할 수 있게 만든 정치 시스템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즉 흑수저도 자신이 성공하면 정치적인 발언권을 보장받았다는 것이다. 분별력 있는 영국은 적절한 돌파구를 찾았다. 정치적 발언권을 얻은 새로운 계급들이 할일을 찾아준 것이다. 영국 전체의 번영을 위해 그들은 앞 다투어 배를 타고 바다로 뛰쳐 나갔고 그들이 보장받은 정치적 포지션을 훨씬 초과하는 성과를 내고 돌아왔다. 모두가 만족하는 기분 좋은 타협이 이루어 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좀 더 근본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로 한다. 인류에게 ‘인간이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하는 상상력을 실험하기로 한 것이다.
 기사의 3번째 이미지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행한 의연함은 지금도 유명하다. ‘루이 16세의 단두대 처형’

영국이 칼레에서 스페인 무적함대 아마다를 격파하고 대영제국의 기틀을 잡고 상승할 때 프랑스는 유럽 최강국에서 하루아침에 아수라장이 되는 국면을 맞는다. 바로 성공한 흙수저들의 정치적 발언권에 대한(본부장이 보기엔 너무나 당연한) 요구에 현실파악이 된 영국 국왕과 정치적 셈에 서툰 프랑스 국왕의 상반된 대응이 바로 그 차이의 출발점이다. 영국이 자연스러운 신흥 권력의 부상을 국왕이 묵인하고 소위 명예혁명이란 말처럼 신흥 계급에 대한 정치적 입지를 인정하고 오히려 그들을 선봉으로 영국의 대외 진출에 힘을 집중시킨 것과 반대로 프랑스는 루이 16세와 같이 시류를 꿰뚫지 못하고 제3세력이라고 하는 일반 민중들에게 적절한 정치적 포지션을 제공하지 못해 결국 국가 무질서 상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근래 한 동안 뮤지컬로 많이 공연된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의 이야기’를 보면 그 상반된 상황을 생활상으로 볼 수 있다. 본부장도 어릴 때는 이런 프랑스가 답답해 보이고 영국이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각자가 모두 훌륭한 롤모델이었다는 것이다. 아담스미스가 말한 감정 5 단계인 ‘공감 흥미 놀람 감탄 감동’중 영국은 감탄, 즉 인간이 할 수 있는 판단력의 극치를 보여주었다면 프랑스는 최고 등급인 감동, 즉 자기희생을 통해 지켜보는 자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드는 경지를 보여주었다.
 기사의 4번째 이미지

인간사의 양면을 두 도시로 묘사한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똑같이 반복된다. 하지만 본부장이 말한다.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을 바꾼다. 다만 그 형체만 새로운 것일 뿐 실제 새로운 것은 없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솔로몬 왕의 말처럼 말이다. 여기서 영국의 신흥 계급인 젠틀리 계급이나 일반 평민 세력이든, 그리고 프랑스의 제 3세력이든 결국 국가에게는 똑같이 세금 내는 존재이고 소비계층이고 생산계층이다. 다만 이런 계층이나 계급의 이동과 형성에 대해 집권자나 권력자가 어떻게 이해관계를 볼 수 있느냐인데 예를 들면 프랑스의 루이 16세나 스페인의 필리페 2세처럼 국가 전체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권력 이동에 대한 이해과정에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개입시킨다던지 특정 계급이나 지역에 대해 필요이상의 적대감 또는 호감을 보낸다면 그때부터 국가는 혼란으로 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앞에서 말한 ‘두 도시의 이야기’에서 같은 시기에 일어나는 런던과 파리에서의 상반된 환경이 전개되는 단초도 바로 그 근원에는 국가 최고 조정자의 분별력 있는 판단력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여러분에게 읽히려는 이유도 결국 본부장이 책이나 현실에서 보아온 모든 조직의 돌발 변수에 대한 적절한 판단력을 키워 주고자 함도 있으니 방금한 내용을 다시금 명심하기 바란다. 하지만 프랑스가 여기서 끝났다면 역사는 삼색기를 기억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사의 5번째 이미지

루이 16세의 정치적 외면에 봉기하는 민중을 의미하는 검은 색 복장의 ‘제 3 세력’

이제부터 재미있는 것이 이런 혼란기를 거치면 보통 나라가 분열되거나 타국의 침략으로 정복되는 것이 상례인데 프랑스의 경우는 오히려 유럽의 강대국의 면모를 일신하고 아예 패권국가로 거듭나게 된다.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랜 왕정으로 루이16세의 단두대 사형 이후 대안이 될 정치체제를 경험하지도 못한 국가의 민중들은 모든 실험적인 구상을 현실에서 직접 실행해보면서 무척 많은 시행착오와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묘한 자신감 또한 생겨났을 것이다. 아마 이런 마음일 것이다. ‘이렇게 멋진 나라가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이제는 내가 내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나의 조국, 프랑스’라며 모든 프랑스 국민의 가슴속에서 주저 없이 아우성치는 주체적인 에너지 말이다. 물론 불안정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매우 컸겠지만.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 등 새로운 생산 수단이 생겨나는 찰라에 이루어진 권력이동으로 인한 무정부 사태는 오히려 이후에 만들어진 민주주의 제국인 ‘무질서한 질서의 나라’ 미국에서 스티브 잡스의 출현이 가능했던 것처럼 모든 가능성의 천재들이 출현할 수 있게 했고 이것은 또 다른 상상력을 자극시켰다. 이런 상상력들을 과감한 행동력으로 손에 잡힐 듯 만들어낸 인물이 바로 보나파르트다. 본부장은 그를 이렇게 평가하고 싶다. 프랑스적 상상력을 가장 프랑스답게 현실화시킨 주역으로 말이다.
 기사의 6번째 이미지

삼색기를 흔드는 현대 미국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식민지인 코르시카 섬에서 태어난 식민지인이었다. 한마디로 2등 국민이었던 것이다. 프랑스 본토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그저 그런 신분의 사람이었고 자신 또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기회를 얻은 것은 바로 프랑스대혁명이었다. 혁명의 소용돌이 안에서 혁명군 장교로서 그에게 주어진 직무에 그는 충실히 부응했고 그런 그에게 프랑스도 화답했다. 모든 상상력이 총동원되어 이전의 왕정을 대체할 시스템을 찾던 프랑스에게 필요했던 것은 오직 열정어리고 진실한 천재들이었다. 모두가 살아 움직이는 세포 같았던 프랑스, 바다 건너 질서 정연한 균형감의 나라 영국이 보기에는 하염없이 불안해 보이던 프랑스였지만 그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동안 프랑스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없는 강인한 생명력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었다. 비록 영국이 대영제국이라 칭할 정도의 세계적 판도를 거머쥘 때 프랑스는 또 다른 판도를 거머쥐기 시작했다. 전인류적 상상력의 판도를 말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때부터 서로 ‘잘 사는 인류의 표본’이 되길 다짐하며 경쟁했다. 전자는 ‘균형감각을 통한 성숙한 인간’을 꿈꾸었다면 후자는 ‘상상을 현실로 실행하는 대담한 인간’을 꿈꾸었다. 영국 문화의 백미가 적절함이라면 프랑스 문화의 백미는 대담함일 것이다. 말이 나와 하는 얘기지만 독일의 순수함이 돋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을 것이다. 독일이 보기엔 둘 다 너무나 가식적으로 보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각자가 보기 나름일 테고 본부장이 보는 객관적 시각에서는 각자가 그저 멋있을 뿐이다. 모두가 결국 각자 자기 멋에 사는 거 아니겠는가.
 기사의 7번째 이미지

삼색기를 휘날리며 유럽에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보나파르트.

보나파르트에게는 이런 피식민국인 프랑스의 현실이 마냥 신기했을 것이다. 자신을 억누르던 봉건적 신분제며 지역주의가 무너지고 오직 기능적인 직분만이 작동하는 프랑스의 현실에서 오직 상처입지 않고 너무나 분명한 포지션을 점할 수 있는 자는 보나파르트 자신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런 모습은 1차 세계대전 후 모든 권위가 무너져가는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에서의 히틀러의 모습과도 필경 흡사하다. 기존 질서가 무너지면 그 질서에 몸 담지 않고 독자적인 색깔을 내던 자들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운아적 삶이 아니겠는가. 본부장이 말한다. 절대 쫄지마라. 그냥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즐기면 된다. 너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담대한 마음뿐이다. 보나파르트는 이렇게 그저 자신을 운명에 내맡겼을 것이고 또 그럴 수 밖에 다른 도리도 없었을 것이다. 혁명군 장군으로서 프랑스의 혼란을 틈타 침입한, 아직도 봉건적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는 인접국의 군대가 그에게는 너무나 쉬워보였을 것이다. 아무것도 잃을 것 없던 사나이와 그를 따르는 주체적 에너지가 넘치는 군대를 도대체 누가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거기에 이들 혁명군들이 외치는 '자유','평등','박애'를 과연 그 어떤 누가 반박할 수 있단 말인가. 프랑스에 대항하는 적국의 국민들마저 프랑스 국민군의 승리를 바라는 현실에서 아마 보나파르트는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자기 인생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운명의 날개 짓을 말이다. 전 유럽을 석권하는 힘의 근원은 바로 시대가 원하는 '그것'의 파도를 그가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가 가진 ‘그저 인간적인 매력’이 대중을 더욱 열광시켰을 것이다. 보나파르트의 매력은 2500명의 면접을 본 본부장의 눈썰미를 통해 본, 그의 초상화로도 알 수 있다. 일단 크지 않은 키에 벗겨진 머리, 그리고 동그란 얼굴에서 그는 이미 동네 옆집 아저씨가 가진 모든 것을 갖추었다. 당시 귀족들의 초상화가 대부분 가식적인 외모의 멋드러지고 기하학적인 비율을 자랑하는 모습이만 보나파르트를 보면 그저 서민적일 뿐이다.
 기사의 8번째 이미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전술의 백미 ‘아우스터리츠 전투’. 이 전투로 신성로마제국은 해체되었다.

태생도 식민지 작은 섬에 군장교로서 밑바닥부터 박박 기어서 올라온 키 작고 볼품없는 사내는 가식적이고 거리감 느껴지는 귀족적 리더쉽에 지친  프랑스 국민들에게는 그들이 꿈꾸는 상상력만 가득한 조국 프랑스의 현실에 더 없이 어울릴 수밖에 없는 실전형 인재였다. 본부장이 전작 ‘본부장이 말한다’에서 누누이 강조한 실전형 인재 말이다. 어려운 시절을 겪고 있는 프랑스에게 보나파르트는 최고의 그룹핑 능력(Grouping Ability)을 갖추고 일격에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실전형 인재 그 자체였다. 지금의 혼란의 시기에서도 이런 인재에게는 언제나 기회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대중이 그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준비된 인재의 핵심은 미리 생각해본 인재라고 하지 않았나. 보나파르트가 가진 인간적 매력은 줄리어스 시저가 가진 매력에 비해 손색이 없다. 둘 다 국가적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국민 구성원들에게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가치를 부여할 줄 알았고 또한 향후 그들이 차지하게될 개인적인 동기부여를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조직을 승리로 이끄는 리더는 언제나 조직원에게 자신이 다른 조직과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은 매우 고차원적이거나 고매한 가치적인 것이 아니라 대개 사소한 것 즉 일반 조직원이 좀처럼 참지 못하는 약간의 금욕적 생활이나 그만이 가진 남다른 호탕함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아마도 나폴레옹이나 시저의 매력은 여기에 정확히 부합했을 것이다. 본부장의 조직 관리 경험에서 보면 이것은 매우 쉬운 관리 같지만 그다지 쉽지 않다. 인간이란 자신의 본능적 궁핍에 매우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또한 매우 어린아이 같은 태도를 보일 경우 그를 결코 조직 구성원은 따르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어린아이 같은 태도란 바로 자신의 기분이나 지위적 안정성을 먼저 돌보려는 방어적인 자세를 말한다. 조직원에게 이러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리더는 언제나 철저한 배신의 대상일 뿐이다. 언제나 외롭게 혼자 쓸쓸히 남을 불쌍한 존재인 것이다. ‘그룹핑 능력’이란 것은 대담하면서 전체를 포용할 수 있는 능력, 좀 더 자세히 말해주면 개인적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인배적인 풍모를 말한다. ‘도대체 이 사람은 욕심이란 것을 어디에 두는 사나이란 말인가’라는 의문이 들게 만드는 실전형 리더 말이다. 보나파르트나 시저의 매력이 여기에 다다랐을 거라는 것에 본부장은 전혀 의문을 갖지 않는다. 현명한 자는 결과를 보면 과정이 보이는 법이니 말이다.
 기사의 9번째 이미지

흙수저로서 성공해 끝까지 가본 보나파르트의 마지막 한마디.

보나파르트의 파멸에 대해서는 여기서 더 이상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 아는 얘기이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부족함도 많았을 것이고 상황적인 한계도 있었을 것이다. 그게 다다. 워터루에서 웰링턴 경에 패했다고 하지만 웰링턴의 승리는 얻어걸린 것이라는 것이 이후의 정설이고 엄밀히 말하면 거기까지 간 것도 대단한 것이다. 그게 그가 바라본 비전의 현실적 한계인 것이다. 어찌 한 번에 모든 기득권층을 일소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다. 다만 이쯤에서 본부장이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실전형 인재가 되기 위해 본부장을 따르는 여러분은 절대 성취한 자의 파멸을 보면서 인생이 덧없다는 말을 하는 것을 삼가 하길 바란다. 스티브 잡스가 성공 후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성공도 부질없는 것이구나 라고 말하는 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 것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본부장도 40대를 넘는 나이로 내일 죽을 수도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죽음이란 것은 언제나 나의 곁에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여러분이 성취하고 파멸하는 인간의 모습에 덧없음을 느끼는 무위자연적인 사상을 숭상한다면 나는 그것을 말리고 싶다. 인간은 어차피 그렇게 타고난 운명이다. 따라서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이 불완전성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남은 인류에게 인간적 감동을 주는 것이다. 결국 자기희생을 통한 감동 말이다. 본부장이 강연에서 말하는 인류에 대한 의무감이 바로 이것이고 이것이 곧 인격(personality)이라는 것이다. 명심하기 바란다. 시도하지 않는 것이 가장 비인간적인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기사의 10번째 이미지

1차 세계대전의 프랑스 공군의 영웅 ‘라파예트’

 기사의 11번째 이미지

프랑스 최대 백화점 ‘라파예트’

 기사의 12번째 이미지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의 영웅 ‘라파예트 장군’

그런데 여러분은 라파예트란 이름을 들어보았는가. 프랑스 파리에 가면 초호화 명품 백화점 이름이 라파예트고 1차 세계대전 인류 최초의 공중전에서 독일의 붉은 남작(red baron)에 필적하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공군 조종사 이름도 라파예트다.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 당시 혁명군을 이끈 총사령관 이름도 라파예트요, 미국의 대영국 독립전쟁에서 패색으로 기울고 있던 워싱턴 장군의 미국군을 도와 버지니아에서 영국을 대패시켜 미국에게 독립을 안겨준 프랑스 장군도 동일인인 라파예트다. 한 사람이 두 대륙의 영웅인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날의 빨강 파랑 백색의 프랑스 삼색기를 만든 주역이 방금 말한 혁명군 총사령관이면서 미국 독립의 영웅 라파예트 장군이란 것이다. 라파예트는 그래서 프랑스 국민에게는 보나파르트보다 더 친근하고 포근한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어려운 조국의 현실에서 언제나 한줄기 희망를 준 이름이 바로 라파예트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삼색기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잠시 해 보자. 물론 본부장이 구글에서 확인한 삼색기 관련 기사 내용이다. 이 정도는 좀 알아둘 만하다.
 기사의 13번째 이미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뜻을 가진 국기중의 지존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 ‘삼색기’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국민군 총사령관 라파예트는 시민들에게 청색, 백색, 적색(blue, white, and red)이 들어간 프리지앙 모자를 나눠줬다. 로마시대 해방 노예들이 즐겨 써서 자유를 상징했던 원뿔형 모자는 국민군의 상징이 됐고, 나중에는 깃발로 바뀌어 자유(청)와 평등(백), 박애(적)라는 혁명 이념의 표상이 됐다. 세 가지 색깔이 원래부터 이념을 내포한 것은 아니었다. 라파예트는 파리시의 상징이던 청색과 적색에 15세기 백년전쟁 때부터 프랑스 국기에 애용돼온 백색을 포함시켰는데 나중에 시민들에 의해 색깔별로 이념이 입혀진 것이다. 1794년 국민군에 의해 국기로 제정됐다가 나폴레옹의 워털루전투 패배 이후 잠시 사라졌으나 1830년 라파예트에 의해 다시 등장했다. 라파예트는 프랑스인들이 말 그대로 '삼색기'라 부르는 프랑스 국기의 명실상부한 아버지다. 초기에는 세 부분이 시각적으로 똑같은 크기로 보이게 하기 위해 청 30 대 백 33 대 적 37로 불균등하게 나눴으나 1853년 삼등분으로 고쳤다. 혁명 이념이 유럽 전역에 전파되면서 아일랜드를 비롯해 삼색기를 색깔만 바꿔 국기로 삼는 나라가 늘어났다. 국기의 도안이 두 가지 색이라도 세 부분으로 나뉘었으면 삼색기로 분류되는데 프랑스와 같은 세로형 삼색기가 22개국, 네덜란드 같은 가로형 삼색기는 48개국에 달한다. 유엔이 인정하는 191개국 중 37%가 삼색기를 쓰는 셈이니 그야말로 삼색기는 프랑스가 인류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기사의 14번째 이미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을 영웅시하는 영화를 보면 언제나 프랑스혁명의 상징인 삼색기가 펄럭이고 있다. 본부장은 이 장면이 참 멋진 미장센으로 다가온다. 보통 세계사를 굽어보면 민중 봉기를 통한 혁명은 언제나 내란으로 인한 무정부 상태와 그로 인한 인접국의 영토침탈이나 또는 합병으로 이어지며 매우 불운한 결말을 맞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경우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러한 무질서에서 국가적 통합을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뽑아냈고 그것을 다시 하나로 모으는 기적 같은 역사적 장면을 연출했다. 결국 프랑스 삼색기는 라파예트가 만든 구질서에 대한 민중 혁명이라는 약자의 저항 이미지에서 시작하였지만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그 삼색기에 더 이상 이전의 약자가 아닌 유럽 전역에 새로운 질서를 구현하는 강력한 정의의 이미지를 씌워 주었기에 오늘날 프랑스 삼색기는 더욱 강력한 심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부장이 프랑스 편에서 말하고 있는 보나파르트와 라파예트는 결국 오늘날 우리가 알아야 할 프랑스 모든 것 중 매우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그 둘만을 안다고 해도 프랑스에 대한 모른다고 할 수 없는 강력한 상징이 되는 이름을 아는 것이다. 프랑스는 곧 삼색기이고 삼색기는 곧 프랑스인 것이다.


제 4 편 프랑스-2

민주주의와 나폴레옹의 나라 프랑스
(2) 대혁명으로 세워진 명품 제국의 비밀, 양면성

  • 입력 : 2017.03.14 21:27:41    수정 : 2017.03.14 21:30:10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명품의 제왕 ‘루이비통 그룹’

명품하면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다. 루이비통이다. 각국의 면세점 특히 요즘 선진국 행세를 하고 있는 한국의 인천공항을 가보면 루이비통 매장의 위엄이 그대로 살아있다. 요즘 부자들은 중국 부자라는 말처럼 중국인들의 루이비통 사랑 또한 이루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경이다. 물론 루이비통은 유럽의 여러 명품 브랜드의 하나일 뿐이지만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브랜드가 요즘은 루이비통 그룹 안에 들어가 있다. 여기서 본부장이 명품의 계보를 읊어주기에는 나의 명품 지식은 매우 짧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왜 그 당당하던 본부장이 꼬리를 내리겠는가. 본부장은 전형적인 흙수저였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거친 학교는 나라에서 돈 많기로 소문난 부모의 자식들이 다니던 학교였다. 그래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자격지심을 다 느끼며 20대 중반까지 살았다. 그런 환경 때문에 20대엔 웬만한 명품은 다 알았고 지금부터 25년 전에 동네에 조르지오 알마니 매장에 가서 그때 돈으로 1000 달러짜리 코트를 샀다. 웃긴 얘기지만 지금도 그 알마니 코트를 입고 다닌다. 명품에 대한 본부장의 식견은 전 세계에서 1% 안에 들어간다고 믿었다. 하지만 자만하는 자를 하늘은 언제나 가만두지 않는 법. 우리 아파트 명품족 아줌마들이 자기들끼리 떠드는 수다를 들어보니 본부장은 아직도 멀었다. 아마도 우리 아파트에 사는 명품족 아주머니들이라면 줄줄 외울 명품에 대한 이 글을 내가 쓰고 있는 것에 그분들에게 심심한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 진심이다. 마니아를 넘어 루이비통 가문의 딸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누차 하는 말이지만 본부장은 사실(fact)이 아니라 진실(truth)을 말하는 리더가 아닌가. 프랑스 명품이라는 초호화 유람선 밑으로 흐르는 진실한 이해관계를 보는 것이 본부장을 따르는 여러분의 사명임을 명심하자. 본부장이 지금껏 명품을 쓰면서 스스로 느낀 것을 말해주마. 명품이 가지는 가장 큰 가치는 인간이 신이 되고자하는 불멸성에 대한 추구에 있다. 인간은 그 자체로 불완전한 존재이다. 이 불안전성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최대한의 완벽함으로 주변을 감탄시키고자 한다. 영원불멸(Eternity &Immortality)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어찌 보면 그저 부질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인류의 문화유산이라고 자부하는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등 세계의 불가사의한 건축물부터 그리스 시대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적 기록물까지를 면밀히 살펴보면 인간이 얼마나 그것에 집착했고 또 얼마나 그것에 의연하려고 노력했는지를 찾아볼 수가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의식이 있는 존재로 창조되어 끝없이 상상하고 또 추구해야만 살 수 있는 인류는 오늘도 명품이라는 인간 영역에서의 완벽함에 대해 갈급하고 있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명품의 세계는 결국 ‘디테일의 세계’

요즘 명품 브랜드의 영역은 그 한계가 없어지고 있다. 단순한 의류나 액세서리 등의 패션영역을 넘어 2차 소비재나 IT 용품까지 뻗어져 가고 있으며 앞으로는 인간자체까지 명품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돌입할거라 본다. 어쩌면 본부장이 이렇게 저술을 통해 얻고자하는 것도 여러분들과 같은 청년들이 명품 인재가 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라. 본부장은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는 것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던가. 명품 몇 개를 손에 쥐고 여러분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 아니라 분연히 일어나 스스로 리드한다는 것으로 나를 정의한 사람이다. 본부장이 말하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자기희생을 할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최고 명품 인재가 되는 것이다. 손발에 명품을 걸치고 사는 곳이 초호화 아파트라고 해서 자신이 명품이 되지는 않는단 말이다. 본부장을 따라 바다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려는 여러분은 절대 명심해야 할 말이다. 그렇다고 여러분을 성인으로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성인도 본부장이 생각하는 명품인재는 아니다. 보편타당한 인간 본연의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인간이 그저 유쾌하게 행할 수 있는 조그마한 분별력과 자기 희생이 진정한 명품인재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하자. 여기가 무슨 19세기 서부개척 시대 미국 교회도 아니고 말이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독일 카메라 명품 라이카와 영국 패션 명품 폴 스미스의 만남’ 요즘엔 융합이 대세

본부장도 좋아하는 명품이 있다. 폴 스미스랑 조르지오 알마니, 그리고 에르메스 넥타이와 향수에 구찌 벨트 정도는 하고 다닌다. 하지만 슈트는 그다지 돈을 들이지 않고 입고 다니다. 약 500달러 정도로 말이다. 물론 이것도 비싸다 할 사람도 있겠지만 본부장을 회사 사무실에서 보는 사람들은 본부장이 입고 다니는 양복을 한 3000달러 정도 되는 양복으로 생각한다. 본부장이 생활의 팁을 알려주마. 슈트는 비싼게 좋은 거겠지만 꼭 그렇게 입을 필요는 없다. 나의 추천은 명품 액세서리로 약간 포인트를 주고 슈트는 싸게 가는 거다. 본부장의 멘토링을 받고 실전형 인재가 되는 순간 거기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이미 명품 슈트를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자신감 보다 더 예쁜 슈트는 없다.

명심하길 바란다. 젊어서 너무 좋은 것만을 맛보면 나이 들어 재미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라. ‘20대는 40대처럼 40대는 20대처럼 살 것이다’라고 본부장이 말하지 않았던가. 20대는 그 자체가 멋있기 때문에 40대의 분별력을 가지고 살고 40대는 시들어가는 나이기 때문에 오히려 20대의 열정을 가지라는 말이다. 그래서 명품 의류는 자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가짐이 바로 서면 그저 그것에 약간의 액센트를 주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절대 명품에 집착하지는 말아라. 매우 없어 보인다. 명심해라.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주변을 유심히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패션을 철학의 경지에서 논한 패션계의 로렌스 올리비에 ‘폴 스미스’

이런 저런 명품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현대사회에서 본부장이 주목하고 싶은 것은 오직 그 명품을 만들어 내는데 가장 열심인 나라, 프랑스다. 물론 명품제작으로는 이탈리아도 큰 한 축이지만 그 명품들이 명품으로 인정받는 프로세스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있는 나라가 바로 프랑스인 것이다. 본부장이 승자의 10계명이라는 말을 트윗에 올린 기억이 있다. 지금 잠깐 말해주면 ‘1.통계의 기준을 장악하라 2.주도권을 잡아라 3.캐치프레이즈를 선점하라 4.정의하라 5.사는 목적을 더욱 분명히 하라 6.주변을 연결하라 7.삶을 발견하라 8.승자의 언어를 사용하라 9.스토리를 만들어라 10.감동시켜라’ 꼭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기 바란다. 뉴욕에 아파트 한 채보다 더 귀한 말이니 말이다. 물론 여러분은 그 진가를 아직 모르겠지만. 여기서 나오는 말 10가지를 음미해 보면 프랑스가 왜 전 세계 명품시장을 장악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앞에서 기술했던 이야기지만 프랑스는 민중 봉기로 국왕을 처형하고 그리스 로마 시대 이후 사리진 공화주의를 다시 부활시킨 민중의 나라이다. 귀족스러움을 가장 혐오하고 제거하려 했던 프랑스가 어떻게 지금은 다시 전 세계 귀족스러움의 중심지가 되었느냐 말이다.

 기사의 4번째 이미지

언제나 정장차림으로 그림을 그려 별명이 교수님인 야수파 앙리 마티스. 균형감각을 만들어 주는 그의 그림 ‘Polynesia, The sea’

 
 기사의 5번째 이미지

앙리 미티스는 권위적인 아버지의 의견대로 법대를 나와 22세에 변호사 조수를 하던 중 돌연 구스타브 모로의 제자로 미술을 시작한다.

재미있는 것은 유럽에서 좀 산다는 사람들은 대부분-특히 영국, 독일 부자들은 여름 휴가를 프랑스로 간다고 한다. 마치 그리로 가는 것이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겠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실제 본부장이 본 프랑스 니스해변은 수많은 유럽 부호들이 요트를 사서 정박해 놓고 휴가를 즐기는 곳이다. 여기서 그들은 비지니스적 영감을 얻어간다고 한다. 프랑스 칸느 영화제가 이곳 지중해 해변을 배경으로 열리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아마도 본부장이 프랑스 편 서두에서 한 말처럼 프랑스의 자연환경은 프랑스가 가진 최고의 자산임에는 분명하다. 지중해가 주는 예술적 영감을 논하자면 또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앙리 마티스다. 현대 미술을 이야기 할 때 보통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에게는 무조건 파블로 피카소였다. 실제 작품 수나 명성을 보면 사실이다. 하지만 미술계 내에서는 피카소에게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다. 바로 현대 프랑스 미술의 자랑 앙리 마티스이다. 외모는 대학 교수처럼 언제나 슈트차림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하신 분이 본인이 직접 만들어 이끄는 미술사조는 반대로 ‘야수파’다. 다분히 프랑스적 매력이다. 이 분이 주로 영감을 받고 작품을 그린 장소가 프랑스의 지중해 연안이다. 본부장의 집 거실에는 앞 뒤로 두 모작 그림이 걸려있다. 앞에는 앙리 마티스의 ‘Polynesia,The sea’, 그리고 이 그림을 마주보며 파블로 피카소의 ‘Mother and Sucking child’가 걸려 있다. 앞의 마티스의 그림은 본부장에게 균형감각을 강화시켜주는 그림이고 뒤의 피카소 그림은 인간이 평생 절대 잃어 버려서는 안되는 인간 내면의 생명력, 즉 성취욕을 주는 그림이다. 본부장 말을 명심해라. 성취욕과 균형감이 있는 인간에게 신은 언제나 지혜의 신 헤르메스를 보내 자신이 아직 널 버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준다. 본부장이 집에 있는 환경마저도 균형감을 중요시 여긴다. 차가움과 뜨거움을 가지란 것이 절대 아니다. 이 두 가지를 가진 자는 비상식적인 사람이다. 한마디로 멋있지만 믿을 수는 없는 사람이다. 본부장이 말하는 균형감은 끓어오르는 성취욕이라는 야생마를 잘 조정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 프랑스 편에서 말하는 양면성과는 틀린 부분이다. 성취욕이나 균형감도 목표는 하나이고 ‘전사의 기질과 시인의 영혼’도 목표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양면성이란 목표가 다른 두 성질의 만남이다. 여기서 세련됨이라는 것이 나오는 것이다. 말하자면 양면성이란 궁극적인 사업이나 정치적 의도를 염두하지 않고 목표 없이 그 존재 자체가 목표인 자가 누릴 수 있는 세련됨이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일상적 업무로 설명하자면 본부장이 회사에서 부여된 업무만을 소화하고 자체적인 기획력이 부족한 지점장들에게 ‘목표 없이 성공하라’라는 미션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이는 지점을 지휘하는 리더로서 인간적인 멋이 없어서 업무적 역량과 상관없이 부하들에게 상사로서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일선 리더에게 개인 면담을 통해 전달하는 내용이다. 즉 스스로의 모양새에 책임을 지라는 것이고 여기서 말하는 세련미를 갖추라는 것과 매우 일치하는 말이다.

 기사의 6번째 이미지

인간 내면의 생명력 즉 성취욕을 불러일으키는 파블로 피카소의 ‘Mother and Child’

 기사의 7번째 이미지

입체파와 야수파의 대결을 통해 현대 인류 미술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두 거장 ‘파블로 피카소 VS 앙리 마티스’ 

다시 말하지만 세련미는 바로 양면성의 다른 말이다. 균형 잡힌 사람을 세련된 사람이라고 하진 않는다. 우리는 그를 믿음직한 사람이라고 한다. 반대로 ‘세련되다’는 것은 흔히 얘기하는 댄디한 사람이다. 바로 부자이면서 돈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고 지식인이면서 지식을 우습게 여긴다는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균형 잡힌 사람이라면 오히려 부자이면서 돈에 대해 검소하며 지식인이면서 지식의 오류에 대해 겸손한 사람을 말한다. 어떤가. 이제 그 차이를 알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본부장의 정리는 구글에도 없다는 걸 명심해라. 이 글의 묘미는 바로 구글에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자 그럼 여러분들은 양면성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 책을 보는 이가 동양인이라면 아마 양면성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두 가지를 함께 가진다는 것을 순수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교육을 받을테니 말이다. 뭐 틀린 교육도 아니다. 물론 서양인이라고 양면성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동양에 비해서는 좀 느슨한 거부감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는 언제나 양면성에 대해 아련한 동경이 있다.

 기사의 8번째 이미지
 기사의 9번째 이미지
전 세계인들이 아직까지는 그저 기죽는 하버드 대학교의 교육학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 박사가 그의 저서 ‘Leading Mind & Creating Mind’에서 리더적 기질을 가진 시인으로 TS 엘리엇을 언급하면서 그의 시를 세련되고 멋지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그가 가지는 양면성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본부장이 강조하는 ‘전사의 기질과 시인의 영혼’은 절대 양면성이 아니다. 따라서 전작 ‘본부장이 말한다’에서 말하는 회사나 조직이 원하는 상식적 사고를 가진 균형잡힌 인재와는 완전히 방향이 틀리다. 하지만 사람이 태어나 회사 생활만 하라는 법은 없다. 자신이 직접 경영도 하고 창업도 하고 또 예술 활동도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전작 ‘본부장이 말한다’는 전 세계 청년들을 처음 직장과 조직에 적합한 인재로 변화시키고 또 본인도 조직을 이끌 리더로 키우기 위함이지 모든 인간을 획일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아님을 오해하지 말아달라. 양면성이란 다시 말하지만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성질을 한손에 쥐고 있는 매우 불안한 상황이다. 이 불안한 상황이 기회도 만들지만 실패도 만든다는 것을 본부장은 나의 긴 업무 경험과 방대한 독서를 통해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그토록 본부장이 외친거다. 알쏭달쏭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말이다.

 기사의 10번째 이미지
이 알쏭달쏭함이 좋게 작용한 적이 있다. 근대 일본이 좋은 예이다. 근대 서구인이 19세기에 일본에 가졌던 무한한 호감은 ‘국화와 칼’이라는 책에서 루스베네딕트가 이야기한 일본 문화의 양면성에서 기인했다. 물론 그 양면성이 만들어낸 결과인지는 알 수 없으나 19세기 일본은 아시아에 위치한 국가임에도 ‘탈아입구’, 즉 인종 개량론이라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유럽인처럼 사고하고 유럽인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정말 획기적인 발상임에는 틀림없다. 19세기 일본 미술품에 대한 유럽이 가진 열광 속에는 아마 그 양면성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사무라이라는 무사도와 예술 특히 미술에 대한 상당한 눈높이를 가진 나라. 얼마나 세련돼 보이느냐 말이다. 반 고호나 폴 고갱이 일본 미술에 완전히 매료된 것을 비롯해서 프랑스 파리의 미술계는 19세기에 시작해 20세기 초까지 일본 미술로 새로운 활력을 찾아 눈부신 번영을 누렸다. 어찌 보면 일본은 국가 문화 마케팅을 일본이 가진 양면성으로 완벽하게 성공시켰고 그 일등 공신은 그 양면성을 가장 멋지게 생각해준 나라 프랑스였다.

 기사의 11번째 이미지

일본 미술에 매료되어 반 고호가 그린 일본풍의 작품 ‘벚꽃’

앞서 말한 ‘국화와 칼’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에게 양면성은 그다지 선망의 대상이나 멋진 모습이 아니다. 미국은 현대인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나라, 캡틴 아메리카의 나라가 아닌가. 20세기 초에 미국은 지금의 백배 보수적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일본의 양면성에 가장 동정표를 준 나라는 그 양면성을 사랑하는 프랑스인 것이다. 실제 일본에 가보면 영국이나 미국을 정치적으로는 대단하게 생각해도 문화적 친근감에 있어서는 프랑스를 최고로 치고 있다. 이건 100% 리얼임을 명심해라. 본부장이 더 재미있는 얘기 해주겠다. 잘 들어라. 영국이 일본을 의심스럽게 보고 있을 때 당시 청교도 정신으로 더 보수적인 나라 미국의 한 인물이 일본을 아주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같은 편으로 넣어준 것이다. 영국은 역시 촉이 있었다. 일본의 이중성이 걸린 것이다. 수 백년 제국의 영화를 유지하면서 그 정도 촉이 없었겠나. 그래서 당시 영국과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 외교정책을 수립함에 있어서 일본의 이중성을 문제 삼으며 고민할 때 이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해 준 장본인이 바로 태프트 미 국무장관이다. 이 양반이 가스라라는 일본 외무대신과 맺은 비밀 조약이 가스라 태프트 조약인데 미국과 일본의 아시아 지역 분할 통치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조약 얘기는 이 정도만 하자. 본부장의 지식은 아직도 끝도 없지만 여러분이 힘들다. 태프트는 나중에 대통령까지 오르는 사람이다. 근데 이 사람이 일본 광팬이었다고 한다. 특히 사무라이 문화에 말이다. 미래에 일어날 정치적 군사적 변수에 대한 적절한 판단없이 단순히 멋지다라는 것에 혹해 나중에 두고 두고 고생할 판단을 내리게 된다. 이걸 계기로 일본은 16세기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전쟁때 외쳤던 ‘조선은 길목이고 중국 돌아 동남아 지나 인도까지 점령하자’는 300년도 넘은 옛 계획를 다시 짜게 된다. 정말 화끈한 계획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미국은 그 판단으로 진주만에서 해군 전력의 반을 날리고 동맹국 영국까지 점령지 다 털리고 죽을 고생을 시키며 필리핀 등 자국 점령지까지 다 빼앗기다 고생 고생해서 겨우 회복하나 싶더니 본토에는 저항에 막혀 들어가지도 못하고 이도저도 못하다가 독일에서 압수한 원자폭탄에 쓰여 있는 독일어 지우고 영어로 ‘리틀 보이’라고 쓰고 떨어뜨려 겨우 일본을 제압한다. 정말 무지막지한 판단 미스가 아닐 수 없다. 모두가 양면성이 주는 어마어마한 매력 때문 아니겠는가. 정말 세련되어 보이는 것에는 장사가 없는가 보다. 왜 전 세계인이 프랑스 명품에 미치는지 이제 감이 오는가.

 기사의 12번째 이미지

일본 문화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루스 베네딕트의 베스트셀러 ‘국화와 칼’

프랑스 문화는 바로 이 양면성 또는 다면성에 그 매력이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이 가지는 감정에는 참 재미있는 것이 존재한다. 자신의 감정에는 솔직하고 싶으면서도 자신의 지향점에는 솔직하고 싶지 않아한다. 인간이 가지는 감정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궁극적으로 보면 현실적인 이기심의 발로이다. 그러나 인간이 지향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이기심과는 매우 동떨어진 비현실적이며 가치함축적인 것이다. 통상 역사를 유심히 보면 제국을 이룬 나라는 이러한 인간의 이기심에 주목한 나라들이다. 즉 인간이 가지는 고매함에 대한 큰 기대를 가지지 않는 국가가 제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로마나 영국이 그랬다. 우리가 드라마로 보는 스파르타쿠스나 로마 또는 다운트 에비나 퍼레이즈 엔드를 보면 당시 제국을 이루는 국가의 내부적 생활상이 얼마나 속물적인지를 알 수 있다. 본부장이 말한다. 이기심 즉 속물적이라는 것에 대해 너무 거부 반응하지 말아라. 그것에 거부 반응을 하면 여러분은 성공할 수 없다. 어찌 보면 성공이라는 것은 버나드 쇼의 말처럼 냉혈한의 전유물은 아닐지 몰라도 속물들의 전유물일 가능성은 매우 크다. 본부장이 여러분에게 되라고 말하는 바다 같은 대인배는 속물적인 것 또한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본인이 속물이 될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이 가치 함축적인 것에 대한 속물적 추구가 바로 명품이다. 한 마디로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싶은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해소과정이 바로 명품 추구인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프랑스보다 인간사의 양면성을 가진 나라가 있겠는가. 역사 자체가 인간 본성 자체에 대한 실험장인 프랑스는 그래서 근대에 들어서면서 유럽 문화의 진정한 중심지를 넘어 명품 산업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이나 독일이 명품산업에서 뒤쳐지는 이유도 이제는 매우 명확해지지 않는가. 그 국가들이 역사상으로 추구했던 지향점이 명품 탄생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환경이었다. 영국이 추구하는 분별력과 판단력은 문학을, 독일이 추구하는 순수함과 예리함은 음악을 고향시켰지만, 프랑스가 가지는 인간사의 다면성을 갖춘 모든 상상력의 실험장이 가지는 차별성은 프랑스 명품을 탄생시키기에 충분한 환경이었다.

 기사의 13번째 이미지

영국 상류 사회의 속물적인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베네딕트 컴버베치 주연 ‘퍼레이즈 엔드’

양면성에 대해 좀더 들어가 보자. 앞서 기술했던 것처럼 라파예트의 민중봉기의 혁명군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군으로 탈바꿈했던 나라가 프랑스다. 이것은 보잘 것 없던 섬나라 영국이 세계 3분의1의 식민지를 가져가는 과정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영국인들이 추구하는 ‘전사의 기질과 시인의 영혼’은 형태적인 양면성만을 띨뿐 어쩌면 부합될 수 있는 같은 목적의 행태이지만, 혁명군과 제국군은 같은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조지루카스 영화의 제다이와 제국 황제가 같을 수 없듯이 말이다. 그래서 프랑스는 아름다운 나라이지만 일관성 있는 나라는 아니다. 즉 사람으로 말하면 너무나도 사랑스럽지만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본부장이 내 나름대로 표현하자면 프랑스는 멋있는 나라이기 보다는 맛있는 나라다. 멋있는 것과 맛있는 것의 차이라는 내용의 시를 쓴 극동의 한국 시인이며 영문학자인 피천득 시인의‘맛과 멋’이라는 시를 한번 소개할테니 여러분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음미해 보길 바란다.



맛과 멋

맛은 감각적이요, 멋은 정서적이다.

맛은 적극적이요, 멋은 은근하다.

맛은 생리를 필요로 하고, 멋은 교양을 필요로 한다.

맛은 정확성에 있고 멋은 파격에 있다.

맛은 그때뿐이요, 멋은 여운이 있다.

맛은 얕고, 멋은 깊다.

맛은 현실적이요, 멋은 이상적이다.

정욕의 생활은 맛이요, 플라토닉 사랑은 멋이다.

그러나 맛과 멋은 반대어는 아니다. 사실 그 어원은 같을지 모른다.

맛있는 것의 반대는 맛없는 것이고 멋있는 것의 반대는 멋없는 것이지

맛과 멋이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

맛과 멋은 리얼과 낭만과 같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맛만 있으면 그만인 사람도 있고, 맛이 없더라도 멋만 있으면 사는 사람이 있다.

맛은 몸소 체험을 해야 하지만, 멋은 바라보기만 해도 된다.

맛에 지치기 쉬운 나는 멋을 위하여 살아간다.

-피천득-

 기사의 14번째 이미지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세계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들다는 ‘프랑스 와인 저장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나라, 프랑스. 맞는 말이다. 프랑스 요리의 호사스러움을 본부장은 아직 접해보지는 못했다. 앞서 말했지만 이번 편에 쓰는 명품이나 요리는 모두 그것을 경험하기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이 쓴다면 아마 한 두 권으로는 모자랄 것이다. 본부장이 어디 명품이나 요리 전문가라고 했던가. 아니다. 요리나 명품은 앞으로 여러분들이 많이 경험해보시기 바란다. 너무 과도하게는 말고. 본부장이 이번 편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프랑스가 왜 명품이나 또는 호사스러운 요리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느냐에 대한 본부장의 시각이다. 하지만 본부장의 프랑스 전편 처음에 말했듯이 역시 프랑스는 방대하다. 아니 너무 넓다. 양면성을 넘어 다양성 그리고 상상력을 넘어 환상의 나라가 프랑스 아니겠는가. 영국, 미국, 독일을 써오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따라오는 여러분들의 헐떡거림이 느껴진다.

그래서 본부장이 있는 거 아니겠나. 걱정마라. 깔끔하게 정리해주겠다. 지금 시간이 금요일 저녁 7시 58분. 프랑스 편을 쓰고 있자니 와인 한 잔이 간절하다.

 기사의 15번째 이미지

프랑스 요리의 대표 음식 ‘달팽이 요리’

자 이제 정리하자. 프랑스 편을 쓰면서 본부장이 깨달은 부분을 말해주면 정말 하나로 정의하기가 이렇게 힘든 나라가 프랑스구나 싶다. 라파예트와 보나파르트의 삼색기를 들추어내고 명품의 거리를 지나니 이건 프랑스의 진짜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본부장은 여러분을 리딩하는 사람이지 가이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 이제 나머지는 프랑스 여행사에게 맡기고 본부장도 이제 평안한 금요일 저녁을 좀 느껴야겠다. 물론 이야기 주제는 당연 프랑스로 할 것이다. 정말 관심이 많아졌다. 그동안 영국 근현대 문학과 독일 음악에 심취했던 본부장은 이제 프랑스의 맛에 한번 눈을 돌려볼까 한다. 사실 프랑스를 찾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본부장처럼 독일 음악 여행 중 귀신이 나올듯한 깊은 숲속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를 가기 위해 또는 영국 문학 체험을 하기 위해 도버해협을 건너가 런던의 거리에 붙어있는 ‘프랜시스 베이컨 거리’, ‘아담 스미스 거리’, ‘윌리엄 모리스 거리’ 등 전 세계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온갖 사회과학 명사들의 표지판 이름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오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프랑스의 ‘맛’을 느끼고자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 파리로 몰려들고 있지 않겠는가.

 기사의 16번째 이미지

불안함과 절묘함의 나라 프랑스 알렝드 보통의 ‘불안’

본부장은 프랑스의 그 ‘맛’을 절묘함이란 단어로 정의하고 싶다. 앞에서 프랑스의 양면성을 이야기하며 영국이나 독일 또는 잠깐 미국을 들먹였다. 심지어는 지리상으로 너무 멀리 있는 일본의 양면성까지 한번 들여다보았다. 절묘하다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 듣기 좋은 단어이다. 그렇지만 참 불안한 단어이다. 불안함은 우리에게 기회도 주고 실패도 준다. 알랭드 보통이라는 프랑스인이 왜 불안이라는 말을 가지고 책을 썼는지도 이제 이해가 된다. 프랑스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멋진 절묘함, 양면성에 그저 지쳤기 때문이겠지. 영국인이나 미국인이 절대 이해하지 못할 불안 말이다. 맛이라는 것을 내기 위해서는 적절함이 아니라 절묘함이 필요할 것이다. 적절한 영국인이 질릴 정도로 매일 피쉬엔 칩스나 먹으며 쓴 위스키를 마시고 소박한 독일인이 나무 그릇에 검게 탄 소시지나 기름이 더덕 더덕 붙어있는 학센에 맥주를 마시며 있을 때 절묘한 프랑스인은 그들이 가진 불안한 양면성을 통해 얻은 모든 ‘맛’의 제왕이 되었다. 본부장이 말하지 않았나. 모든 욕망은 눈으로 시작해 입으로 끝난다고 말이다. 카르띠에 광고에 나오는 그 파리를 다시 가보고 싶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적 호사를 누려보고자 말이다. 자 떠나보자. 앙드레 지드가 말한 지상의 모든 양식을 쌓아둔 양면성과 절묘함 그리고 불안함의 도시 파리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다양한 맛을 느껴보기 위해. 하지만 물론 눈과 입이 원하는 것을 모두 손으로 집는다면 아마도 엄청난 청구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겠지만 말이다.

 기사의 17번째 이미지

민중혁명이라는 피비린내 속에서 피어난 장미빛 노블리스같은 양면성의 프랑스 까르띠에 광고 CF ‘L"Odyssée de Cartier’


 제 5 편 일본

19세기에 이미 유럽국가가 된 日本
(1) 16세기에 인도를 굽어본 大望

  • 입력 : 2017.03.21 20:14:10    수정 : 2017.03.21 21:47:57 



흔히들 일본을 섬나라라고 한다. 보통 대륙을 점하고 있는 나라 국민들이 느끼는 섬나라에 대한 인식은 생각이 좁고 얄팍하다는 정도다. 본부장이 섬나라 하면 대충 떠오르는 나라는 몇 안 된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일본 그리고 이미 이야기한 영국을 비롯해 가장 크고 가장 많은 수의 섬 나라 인도네시아와 두 번째로 많은 섬 개수를 가진 필리핀 정도이다.

본부장은 방금 이야기한 이 네 나라를 젊은 시절 다 두루 돌아보았지만 어느 한 나라도 그들이 생각이 좁다거나 또는 얄팍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매우 조용하고 신중하면서도 사려깊다. 인도네시아나 필리핀도 각각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및 미국에게 식민통치를 받아 정신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만도 한데 전혀 의기소침하다거나 눈치를 본다거나 하는 게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식민지 노예 근성이란 말이 있다. 참 어리석은 이야기이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세계의 섬나라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체적이고 싶어하는 존재이고 영생을 누리지만 생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는 신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부족하지만 인간답게 살고 싶어하는 존재이다. 물론 지정학이란 학문이 있다. 지리가 정치에 주는 영향을 연구하는 정치학인데 솔직히 본부장은 별로 큰 공감이 가지 않는다. 인간이 지구에 살면서 지구가 닫혀있는 둥근 생태계인 것을 느끼고 사는 사람이 과연 있는가. 개인이 갖는 성향마다 모두 제각각인 것이다. 우주도 좁다는 사람이 있는 것이고 10평 남짓한 자신의 집이 넓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이 그 나라의 리더의 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명심해라. 지역이 아니라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누군가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형성된 리더십의 경험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대도약의 힘 <엘랑 비탈>

경이로운 리더십을 많이 보아온 집단은 그러한 경험에 근거한 핵심적 정신문화를 만들게 되고 빈축 맞은 경험을 자주 보아온 집단은 정신문화에 대한 기대자체를 하지 않는다. 본부장이 베르그송이나 아놀드 토인비가 말하는 ‘엘랑비탈’, 즉 ‘존재가 한번에 비약하는 힘’을 주목하는 것은 그 힘의 원천도 결국 인간이 겪어 낸 오랜 정신적 숙성과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신적 숙성과정은 반드시 육체적 고통 즉 고독을 동반한다. 그리스 비극에서 인간이 가지는 최고의 고통은 추방이고 그것은 바로 고독을 의미한다. 몸이 아픈 것도 결국 혼자만이 겪는 극단의 고독 때문에 더 힘든 것이고 우리가 즐겨보는 SF물이나 스릴러 또는 공포물도 모두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독함에 대한 노이로제를 건드리는 콘텐츠인 것이다. 결국 이러한 처절한 고독의 통과의례을 감수하며 분연히 일어서 본 리더십이 존재했느냐에 따라서 그 국가나 사회 집단 구성원의 미래가 바뀌는 것이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

자 이제 섬나라니 대륙이니 하는 말은 다시 쓰지 말아라. 작은 것에 연연해하는 편견은 사람의 값어치를 매우 떨어뜨린다. 영국 속담에 신사는 농담을 하지 않고 유머를 한다고 했다. 농담은 빈말을 말하고 유머는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말한다. 명심해라. 바로 이 입 무거운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 사람들이랑 말을 몇 마디 하면 어느 나라 사람이 되었든 느끼는 게 있을 것이다. 농담을 잘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영국식 유머는 더 더욱 안한다. 차라리 독일 쪽에 가까운 심각함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전작 ‘본부장이 말한다’에서 본부장이 심각하면 면접에 떨어진다고 했지만 일본인의 심각함은 좀 다르다. 매우 자연스럽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심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부여된 생활 전반을 꼭꼭 씹어 먹으려는 안간힘이다. 본부장이 좋아하는 중국의 석학 ‘임어당’이 쓴 ‘생활의 발견’에서 중국인은 생활을 참 꿀떡 꿀떡 잘도 삼켜 먹는다. 그 책에서 보면 국가별(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러시아) 국민성을 여러 각도로 분석하는데 영국과 중국인이 선두권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이겠지만 본부장은 중국인의 국민성이 앞으로 21세기에는 매우 기대가 된다. 본부장이 귀에 못이 박히게 말하는 ‘실전형 인재’되기 위한 가장 기초인 그룹핑에 매우 탁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영국인이나 일본인 또는 프랑스인은 중간 정도 되는 것 같고 오히려 독일인이 중국 다음일 것 같다. 자발적이 아니라 흩어지기 귀찮아서 함께 일 것 같은 사람들이다. 웃자고 하는 얘기다. 갈 때마다 느끼는 독일은 정말 삼삼오오 잘도 모여있다. 조용히 눈으로 말하면서 말이다.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지도자는 군주론 절대 읽지 마라. 조직원 다 떠나고 혼자되기 싫으면 말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하지만 16세기에는 일본이 명실공히 국민성으로는 가장 시대에 맞았던 것 같다. 일단 꿈을 꾼다는 것은 실체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개인의 꿈도 아니고 국가의 꿈인데 말이다. 16세기에는 영국도 대영제국이 아니었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대항해 시대를 이끌고 있었다. 토르데시아스 조약(이건 무조건 외워라. 정말 알고 있으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이 조약이 주는 비지니스적 영감이 매우 많다)을 통해 스페인은 서경 42도 37분을 기점으로 서쪽 포르투갈은 동쪽을 지들끼리 접수한다. 아무도 동의 안했는데 말이다. 이때 이 조약을 선포해준 사람이 교황 알렉산드르 6세다. ‘보르지아’라는 미드에 나오는 인물인데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연하는 거리의 무리배 보다 더 타락한 교황이 바로 그다. 정말 비도덕적 비상식적 부분이다. 본부장이 리더십 양성에 별로 도움이 안되는 책을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꼽은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성공은 냉혈한들의 전유물이 아니란 말이다. 상식적이지 않으면 가져도 누리지 못하고 빼앗아도 유지하지 못한다. 누차 말하지만 본부장이 가장 싫어하는 게 드라마는 막장이요, 말은 십원짜리 욕이다. 그냥 넘어 가자.
 기사의 4번째 이미지

정본부장의 롤모델. 정말 멋있는 남자 <프랜시스 드레이크>

16세기 당시는 모두가 본능에 충실하게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던 시기였다. 유럽에서는 모범이 될 만한 나라가 프렌시스 드레이크라는 롤모델과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제정신 가지고 야물딱지게 정치하는 영국 정도일까. 스페인은 필리페 2세가 종교적 편견만 없었다면 괜찮은 분별력을 가진 정도. 다들 뭐에 홀렸는지 그저 분별없는 시대였다. 마치 대역사가 이루어지기 전의 폭풍전야처럼 말이다. 이런 시기 일본은 동서로 나뉘어 통일 전쟁을 하고 있었고 그 규모나 내용 모두 매우 근사했다. 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통일 과정도 어렵사리라도 일사분란하게 규칙에 맞았다. 승부가 지어지고 나서 한마디로 패자나 주변 제3자의 군소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처절하게 오랜 기간을 통한 누구나 납득할만한 통과의례를 거치며 깨끗하게 승복하고 하나로 만들어진 탓이었다.
 기사의 5번째 이미지

매사에 모든 일이 진검승부라고 생각하면 지금처럼 살지 못한다.

유럽의 역사에서도 쉽게 찾기 힘든 것이 승복하는 문화다. 일본은 어떤 이유에선지 이게 되었다. 물론 미국의 남북전쟁과 중국의 국공내전도 매우 처절했지만 깔끔하긴 마찬가지다. 본부장이 그 이유를 말해주겠다. 적과 아군이 납득할 만큼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결국 대국(국토의 면적이 아니다)의 비밀은 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통과의례의 과정에 대해 두려워하느냐 아니면 과감하게 부딪치느냐에 있다. 우리가 네덜란드를 열강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80년간의 스페인 독립전쟁에서 승리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독립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고 스위스가 유럽의 무게감 있는 중립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그 왕가가 그토록 차지하려 했으나 굴복시킬 수 없었던 스위스인의 강인한 저항력에 있다. 붉은 십자가가 붙어 있는 스위스칼을 보면 느낌이 확 온다. 우리가 잘 아는 빌헤름텔이 왜 나왔겠는가. 독일의 대문호가 쓰고 그것도 모자라 로시니라는 이탈리아 음악가가 무려 6시간짜리 오페라로 만든 대작이다. 2시간도 힘든데 6시간이라니 얼마나 할 말이 많으면 그랬겠나. 그래서 스위스는 무서운 나라다. 지구상의 모든 시계를 만드는 나라가 아니던가. 시간을 아는 사람은 인내를 아는 사람이다.
 기사의 6번째 이미지

세계의 모든 명품시계는 스위스 시계

절대 고독의 시간을 겪어내면 대도약의 힘이 모아진다. 역사의 결과에는 다 그 만한 이유가 있다. 물론 아쉬운 부분들도 있겠지만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언제나 역사에서 불평하는 자만 될 뿐이다. 지금도 인터넷 공간으로 들어가보면 수많은 음모설과 배후설 그리고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을 넣어서 반대의 결과를 설정하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아인슈타인이 말하지 않았나.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우주는 철저한 인과관계의 고리로 되어있고 이것은 수많은 지난 사실들의 합으로 만들어진 오늘의 현상이다. 역사를 가정에 돌리고 자세를 취하거나, 나만 재수가 없다는 식의 논리는 언제나 스스로를 변방으로 끌려 나오게 만든다. 당당하게 중심으로 들어가서 맞서라. 역사는 맞서는 자들의 무대이고 그들이 주연이며 가만히 있는 자는 조연이다. 물론 조연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기사의 7번째 이미지

오해하지 말아라.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는 게 아니라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아시아 여러 나라보다 10년 먼저 시작해서 갑자기 혼자 부국강병해졌다는 식의 변명은 이제 식은 죽 같은 이야기이다. 무슨 일이든 플랜(Idea)도 짜기 힘들지만 플랜 이전에 그 플랜이 나오기 위한 집중력이 더 힘들고 또 플랜을 실행할 몸체(platform)을 만드는 것이 더 더욱 힘들다.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실행을 하겠다는 결단을 하는 것이다. 10년 앞을 보는 제아무리 뛰어난 자도 당장 눈앞에 있는 고통을 감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본부장은 실행력이란 말은 잘 쓰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애매하다. 결단력이란 말을 쓰도록 해라. 실행력이란 부지런하다 정도로 느껴진다. 결단력은 자기희생이다. 포커로 치면 풀하우스와 로열 스트레이트 프러쉬와의 차이다. 하지만 모범생이지만 그래도 기본 포커는 쳐온 여러분도 알겠지만 풀하우스도 어려운 게 세상의 현실이다. 그래서 이리도 길게 결단의 리더십을 본부장은 일본 편 첫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기사의 8번째 이미지

실제 현실에서는 풀하우스도 어렵다. 겸손해라

동네에서 충분히 어려운 여정을 거친 도전자처럼 일본은 이제 세계무대로 나가서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사실 아시아국가 중 이웃국가 정도를 넘는 팽창을 계획한 국가는 없다. 부족개념의 몽고는 여기서 빼자. 징기스칸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간단하다. 지금 없지 않은가. 있지도 않은 국가에 대해 이야기 할 필요가 있겠나. 약속한다. 이 글이 나올 때쯤 없어지는 국가는 과감히 뺄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현실과 미래를 위한 것이다. 자 반대로 본부장은 인도가 극동의 일본까지 가겠다는 계획은 들어보지 못했다. 16세기에는 동양이던 서양이던 이웃나라를 침략한다거나 원정을 간다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여기지 않았던 봉건시대였다. 즉 세습적 지배계층에 의한 권력독점이 당연시 되던 시대라 평민들의 발언권이라고는 없었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모든 전쟁이 리더가 내미는 대의명분과 동기부여에 의해 승패가 결정된다. 일본은 그 점에서 매우 우수했다. 하지만 여기에 비하면 20세기에 부르짖었던 대동아 공영권은 그야말로 상식적으로 사기다. 이런 명분 없는 슬로건을 내밀면 일단 지고 들어가는 거다. 독일도 이런 거 내밀고 지고 시작했다. 전쟁이란 이미 이기고 시작해도 반반이다. 정복전쟁이라는 것이 과연 이미 100년도 훨씬 전에 나폴레옹이 날려버려 없어진 봉건적인 피지배계층이란 개념도 없는 시대에 과연 설득력이 있겠는가. 명분이란 듣는 자가 공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16세기에는 납득이 가는 얘기이다. 조선을 거쳐 중국과 동남아를 지나 인도를 간다는 것은 그 지역의 지배계층을 일소하고 그곳을 일본식으로 통치하겠다는 다분히 봉건적인 방식이었고 이런 방식은 당시 16세기 유럽에서도 상식적인 이야기였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남미왕국 점령 과정을 들으면 정말 참혹해서 들을 수가 없을 정도니 말이다. 나쁜 짓 참 많이 했다. 중국 고사에 천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으면 죽는다 했다. 여러분도 명심해라.
 기사의 9번째 이미지

스페인의 남미정복을 샘플로 국가의 포용적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본부장이 말하는 명분이란 결국 전체 구성원이 납득할 수 있었느냐의 문제이다. 결국 16세기에 일본의 인도원정계획의 명분은 너무나 상식적이었고 그것을 위한 동기부여도 적절했다. 이미 전쟁 게시 전에 점령할 국가에 대한 영지 분할을 잠정적으로 그어놓을 정도로 말이다. 일을 함에 있어서 먼저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는 일을 함에 있어서의 동기부여를 통한 일처리의 지속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데 있다. 다만 그 그림을 그릴 재료가 충분하느냐에 현실적 제약이 있다. 본부장이 보기에는 일본은 전쟁을 수행할 충분한 경험있고 존경받는 리더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도자의 모든 결단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요소는 바로 함께 할 그룹이 베스트 그룹핑이며 이러한 베스트 그룹핑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조직 비전과 리더십의 눈높이 설정이 지속적으로 가능하느냐에 달려있다. 오랜 전쟁을 통해 다져진 리더의 인격에 대한 신뢰, 즉 우리 대장님의 어제 한 판단이 오늘도 부하들에게 예측되는 상태 말이다. 일본은 그 부분에서 전쟁 수행이 매우 용이했고 또 실제도 그랬다. 대부분의 군대가 뚜렷한 패배 없이 자연적인 혹한이나 보급로를 끊기는 문제로 고전했을 뿐이니 말이다.
 기사의 10번째 이미지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에서 본 적 있는 영국 동인도 회사의 문장

본부장은 일본이 인도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곳을 점하겠다는 추론을 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설립된 것은 1600년이고 그 이전에는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가마가 인도를 여행한 것이 1497년이다. 즉 동인도 회사 전 100년은 거의 포르투갈이 인도에 대한 무역독점권을 가지고 있었다. 앞에서 말했지만 토르데시아스 라인 동쪽인 아시아 지역에서 포르투갈의 독점적 활동으로 포르투갈 영향력은 당연히 일본까지 뻗쳤다. 일본인들은 이미 16세기 내내 포르투갈과 대등한 관계에서 교섭하였고 그들이 점하고 있는 인도 및 동남아시아의 각 나라에 대한 정보도 취하게 된다. 인도가 가져다 주는 환상을 들으며 일본인들은 스페인처럼 자신들이 가진 막강한 육군을 인식하게 되고 스페인이 남미를 점령하듯이 자신들도 인도까지 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물어보자. 도대체 어떻게 말인가? 본부장이 전편 ‘본부장이 말한다’에서 글로벌화는 도시화라고 했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모바일이라고 했다. 도시화라는 것은 도시의 욕망을 거래한다는 것이고 이는 사치품을 의미한다. 모바일이라는 것은 손과 발이 자유로운 상태로 이동의 편리함이다.
 기사의 11번째 이미지

인도를 여행한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

16세기 대항해 시대의 시작에는 두 가지의 요인이 있었다. 유럽은 로마멸망 이후 거주형태로 도시화가 가장 일반적이었고 도시화는 필히 귀족이나 상류층이 원하는 사치품의의 수요의 급증을 의미한다. 이 사치품의 대표적인 것이 향신료와 귀금속이다. 즉 포르투갈은 동쪽으로 향신료를 스페인은 서쪽으로 귀금속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거기에 함선의 발단은 이동에 대한 엄청난 정신적 물질적 비용 절감을 가져왔다. 한 마디로 지금이나 그때나 도시의 욕망을 찾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자가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다는 공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러한 공식이 아직 맞지가 않았다. 도시화가 덜 이루어져 사치품에 대한 욕망보다는 땅에 대한 욕망이 더욱 컸었고 이는 포르투갈 상인의 무역에 대한 몰이해로 이어졌다. 한 마디로 향신료를 가져오라고 원하는 자도 없고 귀금속보다는 쌀이 더 귀했다. 이는 중국이나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기사의 12번째 이미지

다시는 이러지 말자. <제 2차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의 판도>

여기에는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제도 한 몫을 했는데 일본사회에서는 사무라이(侍)가 농부나 상공업을 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먹고 살려면 싸워서 봉지를 받아야 했다. 결국 무역이라는 것이 이루어질 동력 자체가 없으니 글로벌화도 없는 것이다. 개방성과 다양성 즉 포용적인 문화가 부족한 상태에서 유럽열강이 무역을 통해 추구하는 글로벌화 따라 하기를 감행한 것이다. 무력으로. 바로 여기서 대의명분과 동기부여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도시화도 없고 모바일도 없었다. 오로지 봉건적인 욕망에 따른 지배계층의 멋진 결단만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배를 만들어 해전을 결심했다면 어땠을까. 그것도 문제인 게 항구를 통한 거대 도시화의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지속적인 해전을 치를 동력이 부족했다. 결국 그들에게 영감을 준 포르투갈인도 엄두도 못 낸 육지로 인도까지라는 목표를 세우고 출발! 결과는 한반도도 못 지나고 다시 돌아 온 것이다. 반대로 20세기에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반시대적인 명분을 내세워 인도네시아까지는 갈 수 있었던 것은 독일처럼 점령 이후 뒷일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를 버티겠는가. 명분없는 전쟁에서 말이다. 인류애적인 마음의 양심에서 나와도 성공확률이 반반인데 말이다. 명심해라. 속임수로는 대국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미국내전인 남북전쟁에서 남군이 북군에게 진 것은 인간본성의 명분에서 이미 졌기 때문이다.
 기사의 13번째 이미지

힘의 연쇄작용이란 마법을 적용한 <원자폭탄>

20세기에 있었던 일본의 전쟁시도나 제국이라는 구태의연한 국체를 시대에 맞게 변화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 본부장은 일본에 대한 깊은 아쉬움이 있다. 인류를 선도할 예술적 눈높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존경심은 매우 인정해 줄만 하지만 인간 본연에 대한 태도 부분에서 글로벌화를 이끌만한 포용적인 자세가 부족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것에 대한 근본적 이해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에 대한 집착이 컸고 그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번 일본 편에서는 모든걸 제쳐두고서라도 본부장이 여러분에게 강조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물밑에 흐르는 이해관계 측면에서 말한다면, 그러한 불가능할 것 같은 상상과 또한 그러한 시도를 실행했다는 것에서 나는 일본 리더십의 결단력과 실행력에 점수를 주고 싶고 또 배워야 한다고 본다. 본부장이 말한다. 집중과 아이디어는 노력이 필요하고 이게 되면 실행은 쉽다. 그러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도 어느 정도 수월하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결단을 하는 것이다. 역사는 이러한 결단의 리더십이 자주 이루어진 사회나 국가에서 위대한 리더가 나오게 되고 그가 만들어 내는 베스트 그룹핑에 의해 지속적인 조직 롤 모델화가 연쇄반응으로 무한 확산되면서 엄청난 도약의 힘을 발휘하는 것을 자주 보여준다. 이러한 리더십의 확대 재생산 현상을 꼭 명심하기 바란다. 따듯한 가족들이 있는 집을 뒤로하고 무시무시한 스페인 전함이 우글대는 대서양의 망망대해로 나갈 때의 프랜시스 드레이크와 그의 선원들의 마음이나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이나 모두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기는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기사의 14번째 이미지


제 5 편 일본

19세기에 이미 유럽국가가 된 日本
(2)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두 사람 `金太郞`과 `시마 코사쿠`

  • 입력 : 2017.03.27 21:41:01    수정 : 2017.03.27 21:45:36 
 기사의 0번째 이미지
 기사의 1번째 이미지
본부장은 독서를 멈추지 않고 책의 장르를 가리지 않는데,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만화책이든 소설책이든 가리지 않는다. 가장 흥미롭게 본 만화책은 ‘멋진 남자 김태랑’과 ‘시마 코사쿠’ 시리즈다. 멋진 남자 김태랑은 80~90년대를 대표하는 조금은 만화적인 하드파워 엘리트고, 시마 코사쿠는 그보다는 더 현실적으로 샐러리맨의 생활을 풀어낸 소프트파워 엘리트라고 할 수 있다.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의 전형인 김태랑(폭주족 출신 어부)은 특유의 열정과 패기, 배짱으로 일개 사원이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면서 감정에 호소하는 캐릭터고, 시마 코사쿠는 학벌 좋은 엘리트로 대기업에 입사해 차근차근 출세의 계단을 밟아가는 이성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극화적인 재미로 본다면 ‘멋진 남자 김태랑’이 재미있다. 돈키호테처럼 좌충우돌하며 세계를 누비는 모습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반면 ‘시마 코사쿠’는 극화이기 때문에 자극적이고 드라마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샐러리맨의 모습이다. 무엇보다 실질적인 세계경제의 흐름을 보여주기 때문에 본부장도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애독하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나름 로망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원 한 명으로 인해 기업의 흥망이 갈리는 일이 80년대에는 아주 없진 않았던 모양이다. 문제는 지금 시대에는 더 이상 김태랑 같은 캐릭터가 필요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에 로망이 낄 자리가 없다는 게 씁쓸하기는 하지만.

 기사의 2번째 이미지

본부장도 처음엔 안 믿었다. 이 말은 팩트는 아니다. 하지만 진실(정말 사실)이다.

이상이 전작 ‘본부장이 말한다’에서 이야기한 ‘샐러리맨 金太郞’과 ‘시마 課長’에 대한 소고이다. 정말 짧지만 매우 임팩트있는 문장이다. 그런데 본부장은 그걸로 끝내기가 매우 아쉬웠다. 왜냐하면 이 두 만화가 가진 역할을 본부장은 매우 높이 사고 싶고 또한 이 만화를 인류에 선사한 일본 국민에게 매우 감사하다. 일본편 대제목처럼 일본은 19세기에 이미 아시아를 떠나면서 20세기에는 다중의 국가를 상대로 잠시나마 불온하지만 전쟁을 각오할 만큼의 인적 그룹핑에 대한 자신이 있었다. 국가나 조직은 애들이 좋아하는 환경일 때는 발전하지만 노인이 흡족해하는 환경일 때는 필히 망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을 버틸 수 없다고 한다. 식물이 열매를 맺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 꿀벌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젊은이들의 호기심이다. 젊은이들은 해야 할 이유를 알 때 가장 열심히 움직인다. 그리고 곧바로 방법을 찾게 된다. 하루면 최선책을 찾고 1년이면 절반을 이룰 수 있다고 본부장이 말하지 않았는가.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이 말을 음미하면서 너의 삶에게 소리쳐라. ‘운명이여 어서 오너라’

베스트 그룹핑에 대한 자신감은 조직이 그 이유를 찾았을 때이다. 먹고 살기 위해 일어난 국가는 먹고 살기 위해 언제든 흩어질 수 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건만 전 국민이 가난에서 벗어나니 이제는 상대적 박탈감이니 우울증이니 약한 변명을 늘어 놓으면서 과거 지옥같은 전쟁통에서도 지키려 했던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의무감을 그저 버리는 게 현실이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솔직히 이 글은 읽는 젊은이들도 약간 공감하는 이야기겠지만) 요즘 어른들을 보면 예전에 우리의 조상들에 비하면 매우 어린애 같다. 여러가지 풍요로운 환경도 일조를 했겠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왜 부모인가에 대해 숙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더 넓게는 왜 인간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숙고도 없다. 베스트 그룹핑은 왜 나인가, 왜 가족인가, 왜 국가인가, 왜 인간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가장 빨리 답할 수 있는 모임이다. 가장 길게 대답할 필요도 없고 가장 아름답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당시에 그것에 가장 빨리 대답할 수 있는 베스트 그룹핑의 국가가 일본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가장 빨리 성장했고 가장 강하게 성장했다.

 기사의 4번째 이미지

마이클 페스벤더가 주연한 영화 맥베스를 보면 느끼는 게 있을 것이다. 인물 캐릭터의 代父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런 베스트 그룹핑을 기본 개념인 ‘왜? 사는가’에 대한 개념을 캐릭터로 제시해준 콘텐츠가 바로 이 두 작품이다. 자 명심해라. 캐릭터는 방향과 색깔을 정의하는 것이고 콘텐츠는 그걸 새로운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다. 캐릭터가 없이 콘텐츠만 있을 수도 있지만 반대일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껏 우리는 항상 콘텐츠, 콘텐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점점 캐릭터를 잃어버리고 또 아예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여러분들이 소파에 앉자 방송 채널을 항상 그저 돌리는 이유는 콘텐츠가 없어서도 있겠지만 더 정확히는 끌리는 캐릭터가 없어서이다. 예전에는 콘텐츠가 귀했다. 반대로 캐릭터들이 참 강했던 시절이었기에 그만큼 희귀하지는 않았다. 옛날 영화를 보면 대부분 모든 카메라 조준이 인물과 그의 대사에 맞추어져 있다. 지금 영화는 대사는 매우 짧고 스토리의 전개에 목숨을 건다. 화면을 엄청나게 빨리 돌린다는 말이다.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의 영향이 매우 큰 것도 사실이겠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점점 콘텐츠보다 캐릭터에 목말라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좀 다시 집 나간(?) 그것들이 돌아왔으면 하는 것이다. 캐릭터 부재의 시대 즉 定義의 부재의 시대. 개똥 철학의 부재말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이 누군가에게 공감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일상적 보여짐을 위함이니 말이다. 그저 그냥 보는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다른 사람의 채널을 무심히 돌리며 보는 모습은 꼭 채널을 무심코 돌려보고 있는 여러분 모습과 똑같다.

 기사의 5번째 이미지

인류의 영원한 숙제 ‘인간의 불완전성과 극복’

우선 ‘샐러리맨 金太郞’은 앞서 말한대로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콘텐츠를 선택했다. 그런 이유는 주인공 김태랑이라는 캐릭터가 이미 공감을 넘어 감동을 주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김태랑을 통해서 얻는 희열을 넘어서는 감동은 콘텐츠의 비약을 오히려 즐기게 만든다. 한마디로 너무나도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본부장은 인간적이라는 말을 감정적이라거나 감상에 젖는다는 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살면서 많이 들었다. "그 사람 참 인간적이야'라는 말 속에는 그 사람 참 흠도 많고 실수도 곧 잘하는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다분히 자기 중심적인 의안이 섞인 표현이다. 물론 일견 그럴 듯하다. 그러나 본부장이 생각하는 인간적이라는 뜻은 우주적 완벽함에 대해 끝까지 대항하려는 불완전 존재가 갖추려는 숙명적인 태도이다. 그런 태도는 좀도 인간 내면을 깊이 바라보아 주려는 마음이다. 사람이란 겉으로 그냥 보면 그냥 동물이고 어떻게 보면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영화 ‘Her’에서 호아킨 피닉스에게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스칼렛 요한슨이 한 말처럼 생긴 걸로 보면 참 이상하게 생긴 게 사람이라고 했다. 보는 관점에서 달리 보면 얼마나 괴기스럽겠는가. 바퀴벌레가 보면 인간은 정말 끔찍스러운 괴물일 것이다. 그런 괴물에게서 도망가려고 얼마나 빨리도 줄행랑을 치는 줄 모른다.

 기사의 6번째 이미지

‘아라비아의 로렌스’, ‘콰이강의 다리’와 함께 본부장이 사랑하는 데이빗 린 감독의 3대 영화인 ‘닥터 지바고’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정말 탐나는 것이다. 수많은 감정과 느낌의 총체적 균형을 잡아나가려는 의지적 존재.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가. 본부장은 오케스트라를 즐겨서 더 그 느낌을 정확히 알 수 있다. 많게는 100명이 각기 서로 다른 악기로 더 큰 화음을 만들어 낸다. 그 개별 악기 하나만으로도 인간의 감정을 100%로 표현할 수 있는 완성된 존재인데 그것들이 모여 또 다시 만들어내는 화음이라니 정말 들을 때마다 놀라움을 느낀다. 인간의 마음이 가지는 그러한 오색의 매력을 알아가려는 의지가 상실되어가는 시점에 다행스럽게도 일본에서 ‘샐러리맨 김태랑’이 홀연히 나타난 것이다. 마블 캐릭터처럼 초능력자도 아니고 디즈니처럼 순진하지도 않다. 그는 만화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전쟁과 평화’, ‘닥터 지바고’등 전세계 어느 위대한 문학 작품보다 더 인간적이길 당부한다. 인간 본연의 자세를 가지길 말이다. 거기에 그는 방송에서 말로만 대중을 가르치려는 논객이 아니라 차라리 직접 리드하려는 태초부터 우리가 알고 있던 본연의 인간이다. 자신이 직접 일어나서 조직에서 빛이 되는 스스로 빛나는 자로서 작동한다. 물론 이 과정은 대부분 엄청난 자기 희생의 과정이다. 김태랑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자행했던 청년 희생양인 카미가제 자살특공대를 이끄는 영웅 만들기 식의 우익적 선동가가 아니다.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왜'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는 ‘베스트 그룹핑’ 수행을 위한 최고의 리더이다. 언제나 수 많은 부하나 조직원을 이끌고 다니는 주인공 김태랑은 본부장이 전작에서 그렇게 강조한 진정한 실전형 인재이다. 

청년 정신으로 무장하라. ‘20대는 40대처럼 40대는 20대처럼’

이 반면에 ‘시마 課長’은 세상에 매우 흔한 콘텐츠다. 심지어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주인공의 여성 편력마저도 너무나 현실적이다. 이런 콘텐츠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시마라는 캐릭터도 매우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김태랑은 초등학교 중퇴에 폭주족 대장 출신의 샐러리맨 출세기라면 시마 코사쿠는 명문 와세대 대학을 나오고 대학시절 영어회화 클럽까지 다닌 모범생이며 그 연결선상으로 대기업 공채 출신의 기업 출세과정이다. 여기 둘을 비교할 이유는 없다. 본부장은 영화나 문학 평론가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리더이기 때문이다. 다만 시마 코사쿠가 주는 메세지를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싶을 뿐이다. 김태랑이 스스로 희생을 감수하며 스스로 빛나는 자가 되었다면 시마 코사쿠는 언제나 적절한 행동의 최우선으로 여기면서 스스로 빛나는 자가 된다. 결국 실전형 인재라는 것은 똑같다. 둘 다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마는 주로 여자들이고 김태랑은 주로 남자들이 모인다.

 기사의 8번째 이미지

역사상 모든 일본인의 롤모델 ‘오다 노부나가의 문장’

시마를 통해 본부장이 여러분에게 주는 메세지는 언제나 자신이 행동하는 법칙이 있고 심지어는 생각마저도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작품 중 김태랑이 혼자 있는 장면은 잘 없다. 반면 시마 코사쿠가 혼자 있는 장면은 매우 많다. 시마는 혼자 있을 때 진실해지는 인물이다. 혼자 있을 때 괴로워한다. 자신만의 선량한 관리자에게 받는 질책과 비아냥거림 때문에 말이다. 본부장은 바로 이 점을 가장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있을 때 그런 뼈아픈 자성의 고독을 즐길 줄 아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하지만 시마의 주변의 여자들은 시마를 고독하게 놔두질 않는다. 현실에서는 그런 거 없으니 너무 기대하지 마라. 여자와 돈은 기대하거나 집착하면 절대 안 찾아온다. 하지만 극중에 그에게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이는 이유는 시마가 가진 적절하게 깊이 있는 사색의 힘과 타인을 배려하는 편안함 때문이다. 자신보다 남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다만 자신과 남을 똑같이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인간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의 조그만 공간이 시마에게는 있다. 소인배는 단 한치도 기대불가겠지만. 김태랑도 물론 그런 품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그걸 보여주기에는 그가 누비는 활동영역이 너무 방대하고 또 그가 가진 좋고 싫음이 분명한 성격이 그런 여유의 존재까지 신경 쓸 여유를 주지 않는다. 어찌보면 김태랑은 일본 최고의 군웅 ‘오다 노부나가’를 표현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구글을 찾아보지 않고 그저 드는 본부장의 느낌이다. 굳이 대비하자면 시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정도 될 것이다. 비유는 이 정도에서 멈추자. 비유 너무 자주하면 영감소리 듣는다. 나이들수록 선문답은 삼가해야 한다. 좀 그래 보인다.

 기사의 9번째 이미지

본부장이 생각하는 현실감 100% 실전형 인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문장’

이런 거 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영웅이라고 하지만 그를 닮은 인물을 만들기는 매우 부담스러운가 보다. 세상만사 다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히데요시는 아직도 더 출세해야 하는 본부장이 보기에는 부하를 영웅으로 만드는 매우 위대하면서도 고독한 리더인데 말이다. 세상은 영웅을 바라지만 회사는 영웅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도 되고 싶으면 부하를 영웅으로 만들고 그를 정말 믿고 사랑해 주어라. 그럼 여러분은 지존이 된다. 그리고 여러분 밑의 영웅들이 절대 여러분을 배신하지 않는다. 그가 배신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그를 견제하기 때문이다. 절대 ‘군주론 읽지 마라. 마키아벨리 때문에 신세 망친 자가 어디 한 둘이던가. 명심하자. 왜 본부장이 이렇게 여러분께 구구하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절대적 현실감을 가진 몇 안되는 겸비된 비즈니스의 다스 베이더란 걸 말이다. 내일이라도 당장 마스크를 쓰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자리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그건 내일 가서 보자. 본부장이 일반적인 성격이면 기분 나쁘다고 그냥 다 버리고 갈 수도 있겠지만 이게 타고난 성격이 문제다. 일단 마스크를 벗은 이상 끝을 봐주고 가야 하는 성질이니 일단 가보자. 아 그러고 현실 비즈니스에서는 무조건 ‘토요토미 히데요시’다. 나머지 둘은 잊어라. 본부장은 히데요시적인 처세를 강추한다. 생활적인 것은 아무거나 골라서 여러분 마음대로 해라. 왜냐하면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열중 일곱은 능력이 중간 아니겠는가. 그러면 이게 답이다. 다만 그도 매우 따듯한 사람이었음을 명심해라. 아니면 그렇게나 많은 부하들이 그를 따라 죽기를 각오하고 따듯한 자기집 아랫목을 버리고 저 먼 인도까지 갈 엄두를 냈겠는가. 하지만 시마의 인간적 면모는 반드시 배워야 한다. 출세도 기본 준비가 된 상황에서 논할 수가 있다. 시마는 그런 면에서 매우 준비된 인재이다. 자신이 현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적절하게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작품 중 시마는 언제나 후회는 하지만 실패가 없다. 그 후회도 대부분 말도 안되는 인간적인 디테일일 뿐 비즈니스적인 아쉬움은 전혀 아니다. 여러분도 그래야 한다. 본부장은 인생을 살면서 언제나 주변을 먼저 아우르며 목표물을 응시했다. 목표를 타격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힘을 모아야 한다. 그게 뭐든 혼자 힘으로 무엇을 도모해서는 안된다. 그 아우르는 힘이 시마는 공감을 끌어내는 소탈함과 개인 상황에 대한 더 세밀한 이해이다. 작품에서 시마는 언제나 돌아오는 길에 그 날 있던 상황을 생각한다. 자신이 배려하지 못한 사람이 없었나 하는 것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다. 그는 이미 성공할 준비가 된 인재다. 인간을 그처럼 사랑하는 캐릭터도 없다. 미안해하지만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거절할 수 있는 분별력 또한 정확하다. 진정 분별력과 균형감의 화신이다.


자기 희생이야말로 최고 경지의 리더쉽이다.

자, 결론을 말하자. 시마는 혼자 힘으로는 절대 사장을 할 수 없는 인재다. 본부장이 아무리 그가 마음에 들어도 아닌 것은 아닌거다. 결단력의 부재가 언제나 그를 중력처럼 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태랑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인간이 완벽함에 대항하는 인간적인 모습도 그에게는 없다. 그는 결단하지 않는다. 오로지 누군가의 결단에 대해 감탄한다. 하지만 그는 시기하거나 폄하하지 않는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지 않던가. 극중에 김태랑 같은 보스가 시마과장에는 꽤 있었다. 모두들 결단력있는 사람들로 이미 우두머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마는 그들을 한번도 비하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모자란 사람임을 언제나 책망한다. 바로 이런 점이 시마가 가진 또 다른 인간다움이다. 이것 또한 내적 자기 희생인 것이다.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 멋진 남자 김태랑이 적극적 자기 희생을 통해 조직에서 스스로 빛나는 자가 되었다면 또 다른 면에서 멋진 남자 시마 코사쿠는 내적 자기 희생을 통해 스스로 빛나는 자가 되었던 것이다. 본부장은 이 두 작품을 모두 사무실에 있는 아끼는 부하들에게 전집을 나누어 주어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아 아쉽지만 다시 읽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본부장은 이미 김태랑이고 시마 코사쿠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30대에 내게 준 감동은 이제 내겐 벌써 현실인 것이다.

 제 6 편 이탈리아-1

영원한 제국, 로마의 나라 이탈리아
(1) 전투에는 지고 전쟁에서 이긴다.

  • 입력 : 2017.04.03 21:39:29    수정 : 2017.04.03 21:50:51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본부장도 다는 못보고 한두 권 정도 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가 시오노 나나미처럼 줄리어스 시저가 나오는 장면을 가장 좋아하더라. 어리지만 당찼던 지점장 시절에 시오노 나나미 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도대체 자기가 좋아하면 그만이지 너무 마니아적으로 집착하는 거 아닌가하는 의구심 말이다. 본부장은 로마에 대해 가장 잘 기술한 책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쇠망사라고 본다. 이유는 고전이라서가 아니라 그 책이 특정 인물에 치우치거나 하지 않고 감정적으로도 매우 평정심을 갖고 썼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적 사건 중간 중간에 기번이 무심하지만 임팩트 있게 기술해주는 '물밑의 이해관계'는 그야말로 지혜의 만찬이라고 할 수 있다. 본부장이 아침 일찍 출근하며 택시 뒷자리에서 멋진 영감을 주는 신문기사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그런 지성인으로서의 포만감 말이다. 본부장은 사무실에서는 신문을 잘 읽지 않는다. 좀 나태해 보이기도 하고 그냥 좀 그렇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시오노 나나미가 사랑한 남자 ‘줄리어스 시저’

물론 시오노 나나미씨를 매우 좋아한다. 멋진 로맨티스트이며 냉철한 시각을 가진 작가이다. 하지만 실무를 경험한 적이 없는 흔적이 그의 필체에서 극적 요소로 풍겨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참고로 본부장은 나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팔아 돈을 벌려하지 않는다. 물론 돈을 받고 강연을 하지도 않는다. 명심해라. 본부장은 실전형 리더로서 여러분이 작가가 아니듯 나도 아닌 것이다. 본부장은 여러분처럼 생업으로 밥을 먹고 살 것이다. 조직에서든 혼자서든 말이다. 그래서 나와 여러분의 관계는 바로 그런 돈에서 자유로운 관계이다. 돈은 내가 다른 곳에서 벌 것이니 말이다. 그것도 매우 많이. 그러니 본부장이 이렇게 진실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니 본부장만 잘 따라 오기 바란다. 다시 시오노 나나미로 돌아오면 그녀는 책을 팔아야 밥을 먹고 사는 전문 작가다. 그리고 세상은 다양성이 있어 아름다운 것이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산만함은 방향성과 일관성을 갖춘 단순명료한 리더십에 의해 집중력으로 변심한다.

인간이 가지는 최고의 매력은 다양성에 대한 희열이다. 말하자면 산만함 말이다. 어제도 본부장의 멘티 한 명이 자신이 너무 산만하다는 것을 토로하며 점심식사를 했다. 그 때 내가 해준 말이 있다. 산만함은 더 큰 목표를 찾았을 때 집중력으로 변신하는 너만 모르고 있는 역동성이라고 말이다. 열정이 없으면 산만하지도 않는다. 호기심이나 욕망이 없으면 산만함도 없다. 따라서 이런 책도 있고 저런 책도 있어야 인간다운 것이다. 나중에 면접 볼일 있으면 꼭 써먹길 바란다. 면접관이 널 다시 볼 것이다. 따라서 나중에 큰 밑천이 될 그런 건강한 산만함을 위해 재미있는 책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본부장처럼 현실에 근거한 냉정한 이야기만하면서 집중력만 강조하면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가끔은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도 좀 하고 해야 스트레스도 좀 날리고 청춘의 특권인 산만함도 즐길테니 말이다. 이제 본부장은 그런거 안해도 된다. 충분히 산만해 보았기에. 그래서 여러분을 가슴깊이 이해한다. 자 다시 집중하자. 아무튼 줄리어스 시저에 대한 여러분을 포함한 대중의 호감은 매우 당연하다. 줄리어스 시저는 알렉산더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사이를 잇는 유럽인 기준으로 인류 최고의 롤 모델적인 인물이니 말이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시저는 여기까지가 가장 멋지다. 아직 배신당하지 않았기에 ‘갈리아 원정기’

따라서 지금까지 본부장을 따라온 여러분들은 로마 편에서 내가 줄리어스 시저를 다룰 것이라고 철석같이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의 예상을 하릴없이 뒤엎기 위함이거나 저자거리의 소인배들처럼 얕은 수를 쓰며 뭔가 달라 보이게 하려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고 본부장은 누누이 말해왔다. 오로지 물밑에 흐르는 이해관계를 유심히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함이 이 글의 처음이자 끝의 목적이다. 각설하고 바로 말하자면 줄리어스는 그 인물자체로서의 의미는 별로 없다. 그러나 본부장이 전 편인 독일 그리고 프랑스 편에서도 히틀러나 보나파르트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은 것과는 좀 틀리다. 줄리어스 시저는 이미 우리가 그의 생애를 파 해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캐릭터가 완성되어 있는 인물이다. 무슨 말을 갖다 붙인다고 해도 이미 현실성이 떨어지는 말이 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는 이미 거짓인 것이다. 시저를 좋아한다는 것은 예수를 좋아한다거나 하나님을 좋아한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가 된다. 현실적인 롤모델과는 거리감이 있는 사람이란 말이다. 그래서 본부장이 미국편 영웅주의를 이야기 할 때 잠깐 이야기한 것이다. 여기서는 그에게 지면을 할애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본부장 글에서 무슨 영웅주의적 집착은 없을 것이다.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역사는 승자를 기억하지만 대중은 진정한 승자를 기억한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VS 한니발 바르카’

먼저 본부장이 생각하는 영웅에 가까운 스타일을 말해주면 여기에는 세 가지 요건이 충족해야 한다. 첫째 만인의 공감이 가는 인격의 소유자로서 급조되지 않은 수많은 '인연'들을 가진 인물. 둘째 놀라울 정도의 노력을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는 큰 목표를 정할 '눈높이'를 가진 인물. 셋째 만인이 감동할 자기 희생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세상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결단력'을 가진 인물이다. 오늘 이 조건에 맞는 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을 떠올리면서 이탈리아 편을 시작해 보겠다. 이 두 사람은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바르카'와 '스키피오 아프라카누스'이다. 물론 본부장 스타일대로 이 둘을 비교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둘은 아마 이미 99% 같은 장점을 가진 사람일테니 말이다. 다른 점은 바로 승패가 갈렸다는 점일 뿐이니 말이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승자이다. 그가 아프리카 잠마라는 곳에서 한니발을 대파하였기에 아프리카누스라는 말이 뒤에 붙었다고 한다. 영화 ‘글레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러셀 크로)가 연기한 쪽이 한니발이고 반대편 쪽이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다만 발전할 뿐이다. 발전할 인재를 뽑아야 한다. 그게 ‘면접’이다.

한니발 바르카에 대해 구글에 안 나오는 얘기만 하자면 그는 부하를 영웅으로 만들면서 스스로 고독한 리더십을 선택한 인물이다. 한니발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물론 나폴레옹도 여기를 넘었다. 문제는 남이 넘었으니 나도 넘을 수 있을 때 넘은 게 아니라 자신이 넘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때 그것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한니발은 엄밀히 말하면 산맥 두 개를 넘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사람이지만 한니발은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지금의 스페인에서 자랐다. 그는 스페인에서 이탈리아까지 행군했다는 것이다. 그가 비록 결과적으로 패장이지만 지금까지 전쟁의 신으로 불리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 하다. 전쟁에서는 졌는데 말이다. 세간의 평판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명심해라. 일반론을 무시하는 자는 변칙공격도 할 수 없다. 그는 피레네 산맥을 넘고 알프스를 넘으며 상당한 수의 인적 물적 자원을 소실해가면서 왜 이런 무리수를 썼을까. 그는 알고 있었다. 전쟁은 결국 이탈리아 반도 안에서 하는 것이고 그 전까지 '베스트 그룹핑'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어차피 오합지졸을 데리고는 이탈리아까지 가봐야 진다. 본부장이 항상 하는 얘기 아니가. 왜 본부장이 그토록 면접을 중요시 여기겠는가.

 기사의 5번째 이미지

손자병법도 실전적으로 음미해서 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실전형 인재적 사고의 중요성’

손자병법에서 손자가 먼저 이기고 싸운다(先勝求戰)는 것의 최우선 순위는 바로 조직의 '베스트 그룹핑'이다. 올바른 리더와 영웅적인 팔로워 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반대면 진다. 영웅적인 리더와 올바른 팔로워는 초반에는 이기지만 지속력이 약해져서 결국 진다. 즉 전투에는 이기고 전쟁에서는 지는 것이다. 물론 둘 다 올바르지도 영웅적이지도 않은 리더와 팔로워는 상관없다. 어차피 먼저 전쟁을 개전하지도 않을테고 방어쪽이라면 싸우지도 않고 항복할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 베스트 그룹핑의 수단이 절묘하다. 한니발은 스페인에서 행군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과 동거동락한 소수의 정예 베테랑과 현지의 매우 어린 군사들을 대규모로 모집한다. 그에게는 살아오면서 참 많은 인연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대대적인 군사적 모집이다. 이 또한 합격이다. 한니발은 이 전쟁을 전투가 아닌 큰 전쟁으로 본 것이다. 일단 눈높이도 합격이다. 그의 예측대로 그는 무려 16년에 걸쳐 로마와 전쟁을 치른다. 정말 엄청난 지구전이다. 그 중 2년이 행군 시간이다. 이 기간 동안 산맥 두 개를 넘으면서 이탈리아 평원에 도착했을 때 어린 병사들은 용사로 탈바꿈되었다. 2년 동안의 절대 고독의 시간을 겪고 나서 눈앞에 펼쳐지는 무한한 자유로움과 풍요로움. 그 동안의 산만함이 집중력이 되는 순간이다. 자 본부장이 말한다. 여러분은 집중력이라고 하면 눈을 지긋이 감고 정신을 모은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어떠냐, 많이 집중이 되었나. 웃기는 소리다. 그렇게 해서 될 집중이면 왜 그토록 못해서 난리들이겠는가. 집중이란 집중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집중할 환경 말이다. 지금 이 순간 내게 가장 중요한 우선 순위가 정확하게 보일 말한 행동을 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그는 이런 방법을 선택했다. 준비부터 희생이 필요한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미 용사로 바뀐 한니발의 군대는 거칠 것이 없었다. 이후 연전 연승이다. 당연한 거 아닌가. 준비된 자 앞에 눈앞에 동기부여까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최종적 결과는 패배일까.

 기사의 6번째 이미지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유심히 바라보는 자를 이길 수 없다. 그는 승부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케빈 스페이시’

전쟁은 참 재미있는 인생의 축소판이요 비즈니스의 좋은 모델이다. 지금 이기고 있는데 나중에 보면 져 있다. 왜 이럴까. 본부장이 이유를 말해주면 놀랄 것이다. 정말 현실에서 많이 느낀 것이기에 본부장도 서글픈 현실이 안타깝다. 작은 승부는 언제나 과거형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이 달에 한 작은 승리의 결과는 이미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미 없어진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착각이 일어나는 것. 난 지금까지 23차례 계속 이겼으니 내가 당연히 모든 걸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식의 착각 말이다. 전투는 먹고 사는 문제이나 전쟁은 죽고 사는 문제이다. 누군가를 죽일 때 그것도 한 조직을 죽인다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긴 사전 계획과 준비와 결정적인 승부수가 필요한 것이다. 그 승부수라는 것이 무슨 복싱의 카운터 펀치 같은 걸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승부수'라는 것은 '노림수'를 말한다. 처음 시작부터 멀리보고 묵묵히 내가 원하는 최종적 그림을 노리고 가는 것이다. 전투를 물론 자주 지다보면 결국 전쟁에서도 지는 건 맞다. 비즈니스에서 계속 영업이익을 못 내고 적자를 보다가는 파산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만약 그 적자가 투자의 개념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투자라는 개념은 결국 내가 그 행위의 가치를 알고 있는 자가 말하는 변명 아닌 변명이다. 투자라는 말은 사기꾼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기도 하니 말이다.

 기사의 7번째 이미지

처음엔 강한 자가 이기지만 나중엔 계산하는 자가 이긴다. ‘시빌워’

리더는 항상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행위와 행위들의 이해관계들의 합을 계산해 내야한다. 그게 마이너스면 전쟁에서 지는 것이고 비즈니스는 실패하는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전쟁이요 프로젝트이다. 한니발은 자신의 군대에 대한 계산은 했지만 다른 군대와 모국의 상황에 대한 계산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로마의 스키피오는 무심히 그저 눈에 보이는 이해관계의 합을 보면서 유유히 전쟁을 진행해가면서 결국 자신의 예상대로 전쟁의 신이라고 하는 한니발과의 전쟁에서 이긴다. 여러분은 모르는 게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간발의 차이로 이기는 것 같은 승부도 자세히 보면 결과가 그렇지 대부분 시작부터 큰 차이가 난다는 경험적인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대등한 전력들이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크게 이기거나 크게 진다. 명심해라. 역전승 좋아하지 말아라. 역전승은 없다. 이길 자가 이기는 것이다. 약한 자가 이기는 것을 너무 즐기지 말라. 그것은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태도다. 많이 준비하고 노력하여 갖춘 자가 이겨야 하는 것이다. 개미와 베짱이의 고사처럼 말이다.

 기사의 8번째 이미지

참 재수 없는 말지만 본부장을 따라서 일단 이기고 베풀자. ‘승자의 법칙’

여러분에게 승자의 법칙을 이야기해주마. 첫째 앞선 자가 이기는 것을 즐겨라. 둘째 역전승을 즐기지 말고 압도적인 승리를 즐겨라. 스릴 좋아하다가 그 스릴이 자신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셋째 승자의 언어를 써라. 지도층과 한통속이 되란 말이다. 이 세 가지에서 한니발은 다 졌다. 카르타고는 이미 후발주자였기에 한니발은 대담하고 준비된 기습을 통해 역전승을 원했다. 그래도 본부장이 규정한 최고의 실전형 인재이기에 거의 되는 듯했다. 하지만 마지막 세 번째에서 문제였다. 그는 처음부터 승자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고 삐딱선을 탔다. 그가 스페인으로 이주한 것도 본국의 지도층과 매우 극심한 불화를 겪어 그의 가문이 통째로 스페인으로 옯겨 와 그곳을 별도의 세력권으로 만들었다. 이러면 지는 거다. 명심해라. 나의 성공을 바라는 자가 많아야 그 성공이 이루어진다. 아니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니발의 성공은 본국 지도층에게는 재앙이었다. 이러면 지는 거다.

 기사의 9번째 이미지

주변과 융합하지 못하는 리더는 이미 지는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기려면 승자의 언어를 구사하라’

반면에 스키피오는 로마의 지도층과 매우 잘 융화된 가문의 자제였다. 승자의 언어를 제대로 구사할 줄 알았던 것이다. 스키피오의 승리는 로마의 승리이며 그를 지지하는 자들의 승리였다. 자 알겠는가. 본부장이 왜 줄리어스 시저를 외면했는지를 말이다. 본부장은 동료나 심지어는 적에게도 외면당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그가 가장 총애했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살해당했다. 시저의 성공이 그들에게는 금전적인 것이 아니라도 심리적인  재앙이었다. 즉 일류가 가진 가장 사악한 감정 '시기심'은 승자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 자를 서슴지 않고 집어 삼켜버린다. 시저를 죽인 그가 한때 총애했던 카시아스의 그것, 나폴레옹을 죽인 그가 한때 총애했던 메테르니히의 그것 말이다. 무섭다. 담대하고 겁 없는 본부장도 저것에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엄청난 그것들의 음모가 그저 무서울 뿐이다. 귀신이 무서운 게 아니고 말이다. 귀신은 시기하지 않는다. 동물도 시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적도 시기하지 않는다. 그저 항상 증오할 뿐. 그래서 편하다. 대처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한니발은 로마에 의해서 죽은 게 아니라 모국의 자객에게 죽었다는 말이 있다. 자살로 꾸며진 결과를 나는 믿지 않는다.

 기사의 10번째 이미지

이 말을 받아들이면 길이 보인다. ‘인간은 누구나 속물이다’

자 이런 비극을 초래하기 싫으면 본부장의 말을 잘 들어라. 첫째 스스로 인격자가 되어라. 물론 여러분은 성인은 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이 글을 읽고 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인격자는 될 수 있다. 오늘부터 마음속으로 매일 외쳐라. 그러면 된다. 둘째 바다 같은 사람이 되어라. 바다 같은 사람이란 속물들을 포용할 수 있는 대국적인 사람이다. 본부장이 누차 말하지 않았는가. 그나마 성공한 제국인 로마나 대영 제국의 기반은 속물주의(snobbism)에 있다. 셋째 그들을 위해 돈 쓰는 것을 아끼지 말라. 절대 펑펑 써라. 어디 혼자 가서 좋은 거 먹고 돌아다니지 말고 동료들을 끌고 다니면서 좋은 것을 함께 공유해라. 이러면 뒤에서 오는 비수는 어떻게든 막을 수 있다. 그래도 날아오는 비수는 맞아도 안 죽는다. 누구도 공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명심 또 명심해라. 한니발이 본부장에게 여러분들 나이 때부터 이렇게 차근차근 배우고 준비한 후에 전쟁을 시작했다면 그는 정말 전쟁의 신이 되어있거나 카르타고 제국의 주인으로 추대되어 초대 황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로마는 지금의 로마가 아닐 것이고 말이다. 이제 알겠는가 여러분들이 얼마나 큰 행운아들인지.

이탈리아-2

영원한 제국 로마의 나라 이탈리아
(2) 마키아벨리가 초래한, 도시화가 만든 인류의 값진 유산, 이탈리아 오페라

  • 입력 : 2017.04.10 20:06:55    수정 : 2017.04.10 20:07:31 
 기사의 0번째 이미지

38편을 쓴 로시니보다 28편을 쓴 베르디가 빛나는 이유는 그의 남다른 애국심. 작품 하나 하나가 정말 눈물겹다. 베르디 오페라 ‘롬바르디의 첫 십자군’

강행군이다. 이번 편을 마치면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주요 연합국(영국, 미국, 프랑스)과 추축국(독일, 일본, 이탈리아)을 다 쓰는 것이다. 분류를 하다 보니 짝이 딱 맞다. 원래 그럴 목적으로 쓴 것은 아닌데 말이다. 이렇듯 세상 만사가 뒤에 일어날 일이 인과관계로 이어지는 것은 맞는데 결과를 보면 계획과 상관없이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청년들도 현재의 자신의 위치가 과거에 예상했던 것과는 매우 다를 테니 말이다. 우연은 없으나 필연도 없는 개연의 세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과거나 현재나 다 똑같다. 그래서 본부장이 누차 말하지 않았나. 역사적인 사실을 굳이 외울 필요 없다고 말이다. 이름도 날짜도 안 외워지면 안 외워도 된다. 오히려 그런 이름 너무 많이 알고 있어도 없어 보인다. 오직 그로 인한 핵심적 진실만 깨달으면 된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가.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제 과감하게 승부수(Gamechanger)를 던질 때가 왔다. 절대고독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

본부장이 기본 처세술을 하나 가르쳐주면, 이제부터 먼저 어디 가서 과도한 지식을 자랑하지 말아라. 특히 비즈니스 미팅이나 취업 승진을 위한 면접 상황에서는 더 더욱 안된다. 세상은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동정해도 과한 것에는 가차없는 비판이 쏟아지는 법이다. 과유불급이란 말도 틀린 것이다. 말 뜻 그대로 보면 과도한 것은 모자란 것보다 오히려 못한 것이지 같은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는 매우 안 좋은 게 과한 것이다. 자 여기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어라. 본부장이 핵심을 말한다. 평소엔 부족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과해야 한다. 남들 얘기에만 귀 기울이면 생존을 할지 몰라도 이길 수는 없다. 평소에 항상 주위의 말에 경청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남의 말이 아니라 스스로 내면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때는 과할 수밖에 없다. 과하다는 것은 남과 다르다는 것이다. 부족하다는 것은 남과 같은 것이다. 적절함이라는 것은 언제나 거기에 이르고 싶지만 쉽지 않은 이상의 영역이다. 인간은 과하거나 모자라기에 적절함을 지향할 뿐이다. 하지만 어떨 때는 일부로 모자라거나 일부로 과해야 할 때가 반드시 있다. 그래야 승리한다. 전편에서 말했던 유심히 보는 자가 묵묵히 기다려온 승부수의 시간인 것이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잉여(surplus)가 한가함을 낳고 한가함은 변화를 일으킨다.

그래서 과함은 나 스스로에겐 꼭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결국 과해야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역사의 발전도 과해서 남는 것 즉 잉여물이 생길 때 발생한다. 사람으로 말하면 오버해야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버(over)하니까 오바마(obama)에 대해 말하지만 오바마가 대권을 잡은 것은 성장과정은 딱 흑인인데 결과적으로 흑인스럽지 않은 언행 때문이다. 아마 동료 흑인들에게는 정말 왕재수로 보였을 것이다. 동료집단에게 그런 이미지는 큰 리스크다. 하지만 큰 도약을 위해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다. 고시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부모가 쳐다도 안보지만 시험을 합격하고 법조인이 되었을 때는 금지옥엽이 되는 것과 같다. 누군가에게 선명하게 눈에 띄는 것은 매우 큰 리스크이면서 큰 기회다. 만화 ‘엄마 찾아 삼만리’에서 마르코는 비정상적으로 어른스러워 눈에 띈다. 막말 파동으로 대중의 눈에 너무 튀어 조마조마했던 미국 대선 주자인 공화당 후보 트럼프는 대통령이 됐다.

 기사의 3번째 이미지

도날드 트럼프의 과함은 이제 대중에게는 이미 적절함인 것 같다. ‘진정성 있는 과함의 힘’

본부장이 눈에 튀기 보단 눈에 띄는 사람이 되기 위한 길을 말해주겠다. 과함도 그 주체가 진정성을 가지고 한 행동일 경우에는 뒷심이 발휘된다. 진정성있는 과함은 그야말로 과함이 아니라 적정함이다. 다만 그가 행한 행동이 일반인이 그저 귀찮거나 고정관념 같은 편견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일 게다. 그럼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진정성이란 나보다 남을 또는 더 큰 공공의 이익을 뿌리에 두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자신을 위한 진정성이라는 것은 허구다. 그건 진정성이 아니라 진부함이다. 로날드 트럼프의 막말은 자기 자신만의 이익에 대한 막말이 아니라 어찌보면 소외된 다수를 위한 막말이다. 누군가는 속이 시원했다는 것이다. 균형감각의 화신인 본부장이 과함을 말한다. 명심하자. 균형 잡힌 자만이 진정성있는 과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균형 잡힌 자가 결정적인 순간에 과함을 행할 때는 뭔가를 노릴 때이다. 여기서 본부장이 한가지 더 큰 진실을 말해주겠다. 권력을 노린다면 누군가의 원한을 풀어줄 때 그것이 생기는 것이고 돈을 노린다면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것을 할 때 그것이 생긴다. 자 어떤가 뭔가 명확해 지고 있지 않은가. 그게 본부장을 따라오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다. 계속 인생이 명확해질 것이다.

 기사의 4번째 이미지

과함의 힘으로 만들어진 이탈리아 문화 유산 ‘Power of too much’

로마사까지 연결 지으면 이탈리아는 전형적인 과함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로마 제국의 생성 신화부터, 포에니 전쟁 스토리, 시저 스토리. 제국으로 형성 및 확장 과정, 네로나 칼리큘라 같은 정신병자 스토리, 기독교 박해국에서 기독교 제국의 변신, 동서 로마 분열, 엽기적인 십자군 전쟁, 중세 시대의 마녀 사냥, 면죄부, 보르지아 같은 미친 교황 그리고 마키아벨리, 반도 안에 엄청난 도시국가의 숫자, 마지막으로 오페라라는 최고로 장엄한 음악 장르의 탄생까지 전부가 좋게 말하면 극적이고 그냥 말하면 매우 과(too much)하다. 역사가 길고 깊으니 할 얘기도 많아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적절함을 지향했다기보다는 과함에 무게를 두고 살아온 것 같다. 그래서 참 많은 것을 창조했다. 프랑스를 명품 제국이라고 본부장이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매우 꺼림직 했다. 명품 가공점은 아마 이탈리아가 단연 세계최고일 테니 말이다. 길거리에서 그냥 아무거나 사도 살바토레 페라가모와 질이 차이가 없다. 그게 이탈리아다. 이것 또한 과하다. 더 재미있는 것은 내가 묵었던 성스러운 두오모 대성당 옆 호텔 앞에는 성인용품샵이 있었다. 정말 안어울린단 말이다. 역시 과하다. 프랑스는 양면성이지만 이탈리아는 과하다. 그런데 그 과함이 세계각국을 통틀어 인류에게 가장 많은 유무형의 유산을 선사한 이탈리아의 힘이다. 본부장은 프랑스 편에서 프랑스에 매우 감사해 했다. 자신이 받은 축복을 오로지 독식하지 않고 인류를 위한 실험장으로 고스라니 내놓은 고마운 나라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축복을 받아서 내놓은 게 아니라 아무것도 받은 것 없이 하나 하나 쌓아 통째로 인류에게 선사한 나라라고 본다. 더욱 고마운 나라다. 나는 이중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를 유심히 보고 싶다.

 기사의 5번째 이미지

적절함을 상실한 위험천만한 조직 경영 방법서, 마키아벨리 ‘군주론’

마키아벨리를 누구나 알 것이다. 그가 준 긍정적 영향력에 비해 너무나 과장되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아마도 그 이름이 갖는 카리스마적 이미지와 그의 책 ‘군주론’에 쓰인 상징들이 매우 강력한 휘발성이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지혜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여기에 누구든지 왕좌에 앉으면 어려운 방법보다 쉬운 방법을 택하고 싶은 법인데 ‘군주론’은 매우 수비적이고 보수적인 처세를 가르쳐주니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잃을 것 없어 보이는 그야말로 처세의 왕이다. 그런데 말이다. 본부장이 무려 13년 동안 인사 및 조직관리를 전문으로 해본 오로지 경험만으로 말해주겠다. 그렇다고 지구상에서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은 본부장이 경험에만 의존하는 그런 하수는 아니니 잘 들어라. 자 세상은 자신만을 위해 차려진 밥상이 아니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이 밥상은 지금도 누구와 함께 먹는 밥상이요, 내가 먹고 나서는 다른 누군가가 먹어야 하는 밥상이다. 이 단순한 이치를 마키아벨리는 가정하지 않고 이름도 멋진 ‘군주론’을 기술한 것이다. 군주라는 것도 결국 누군가에게 정통성을 부여 받은 사람이다. 본부장은 나만의 스승으로서 반드시 150년 이상 된 선생만을 고집한다. 그 중 본부장의 정치적인 스승이 막스 베버다. 정말 좋아한다. 학자이지만 행동력의 화신이니 말이다. 그런 그가 이러 말을 했다. 누군가를 이끄는 리더십에는 3가지의 근원적 원천이 있다고 말이다. 첫째 전통적 리더십, 둘째 카르스마적 리더십, 셋째 합리적 리더십이다. 20살 때부터 가슴속에 담고 다니는 말 말이다. 글자만 봐도 대충 느낌이 오리라 보고 일일이 설명은 하지 않겠다. 지금은 과할 때가 아니니 말이다. 다만 그만큼 리더십의 생성은 근원적인 뿌리를 잘 파악하고 근본적으로 자신을 갈무리 해야지 피상적으로 문제를 남에게서 찾아보아야 찾아지지도 않고 밤에 잠만 안 올 뿐이다.

 기사의 6번째 이미지

의상은 인류에게 고귀함과 존엄성을 선사해 주었다. 토마스 칼라일 ‘의상 예찬’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덕에 이탈리아는 인접국들보다 통합의 역사를 매우 늦게 가져가게 된다. 물론 독일도 잠깐 나폴레옹 덕에 조각 조각 분열된 적이 있고 지역주의도 매우 심하지만 이탈리아 정도는 아니다. 마키아벨리 사상에 힘입어 명문가문들로 이루어진 수많은 도시국가로 나뉘어 서로를 견제하고 밑으로 견제하니 통일은 고사하고 더 분열되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 수 백년씩 지속되었다. 미드 ‘보르지아’를 보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 국가라는 것은 수많은 독립적인 귀족들, 말하자면 지역 유지의 탄생을 의미한다. 로마나 영국 또는 그리스 제국을 상기해보자. 초기의 도시국가 시절에는 문학이나 공연 문화가 번성했지만 일단 제국으로 접어들면 오히려 문화적으로는 쇠퇴한다. 귀족문화라는 것이 대중들이 보기에는 매우 꼴사납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누리는 지금의 모든 문화는 당시에는 모두 귀족 문화였다. 18세기에는 귀족이나 누리는 것을 현대에는 빈민들도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대표적인 게 의복이 아니가. 토마스 칼라일이 ‘의상예찬’에서도 말했듯이 의복은 인간에게 존엄성과 위엄을 주는 첫번째 필수품이다. 요즘은 뉴욕에서 5평 남짓한 월세방에 살아도 옷은 19세기 오스트리아 공주의 옷가지 수만큼을 가지고 있다. 그게 지금 우리가 누리는 귀족 문화다. 재수 없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인류 문화의 발전을 위해 접어줄 건 접어주자. 그리고 스스로 이렇게 다짐하자. 본부장을 따라해 봐라. 의복만 18세기 귀족을 따를게 아니라 그때의 귀족들처럼 자신을 주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지금의 현대인은 그때 18, 19세기 당시의 하인들만큼도 판단력과 결단력이 없다. 이걸 기르기 위해 이 글을 읽는 것이다.

 기사의 7번째 이미지

글로벌화(Globalization)는 도시화(Urbanization)다.

본부장이 글로벌화는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기억이 나는가. 글로벌화는 도시화다. 도시는 인간 욕망의 집합체이고 각 계층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살림살이에 맞게 그 욕망에 충실해가는 복합공간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반드시 경제 및 문화를 주도하는 상류층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여러 요구 사항 중 하나가 문화적인 유흥 거리였고 갈수록 좀 더 자극적이고 장엄하면서 능력의 한도 내에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것을 원했다. 그게 이태리가 전세계 오페라 작품 및 공연의 80%이상을 점하는 이유다. 독일 편에서 한번 읊었던 음악가들처럼 오페라 작가를 읊어보자. 먼저 여러분이 초등학교에서 제일 먼저 배운, 오페라인지도 모르고 배운 동화 윌리엄텔, 그리고 그 유명한 세르비아의 이발사를 쓴 롯시니. 작곡한 오페라가 무려 38편으로 베르디 28편을 압도한다. 동시대 인물인 베토벤과는 비교도 안되는 인기의 소유자였다고 하니 엄청난 사람이다. 참고로 독일 편에서 예기했지만 동시대에 바흐를 압도한 '사계'를 쓴 비발디까지 생각하면 대중은 정말 자극적인 것을 좋아는 것이 맞다. 이탈리아가 왜 과한 나라인지 알겠지 않은가. 매우 자극적이다. 계속하자. 라왈리(la Wally)라고 20세기 초 전설의 뉴욕필 상임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좋아해서 자기 딸이름을 왈리(Wally)라고 지었다고 하는 바로 그 작품을 쓴 카탈라니(catalani), 아리아 정결의 여신(casta diva)으로 유명한 노르마(정말 최고다)와 영화 피츠카랄도에서 주인공이 배 위에서 듣는 오페라 청교도를 쓴 벨리니(Bellini) -아직 멀었다-영국 여왕(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 천일의 엔 여왕) 3부작과 아까 말한 미친 교황 보르지아의 딸인 막장 악녀인 루크레치아를 쓴 도니제티(Donizzetti), 모든 동양인이 다 아는 투란도트와 나비부인 그리고 007 퀀텀오브솔라스에서 나온 라보엠을 쓴 푸치니, 그외에도 너무나 많지만 마지막으로 앞에서 말한 모든 사람들걸 다 합친 것 보다 더 큰 명망을 가졌다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오페라의 제왕 베르디까지다. 베르디 작품은 일일이 보자면 돈 카를로, 운명의 힘, 에르나니, 라 트라비아타, 시칠리섬의 저녁기도, 아틸라, 롬바르디의 첫 십자군, 나부코,아이다, 팔스타프,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오델로, 맥베스 등 어느 것 하나 유명하지 않은 게 없다. 이상은 본부장이 구글을 검색한 게 아니라 그냥 본 것만 쓴 것이다. 더 있는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난다. 정말 이 정도면 음악에 바흐가 있다면 오페라는 무조건 베르디다. 본부장이 아무리 바그너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무조건 배르디의 승리다. 비교가 안된다. 거기에 베르디가 가진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라는 진정성은 그야말로 작품의 숭고함을 더 드높인다. 자신이 좋아서 쓴 것도 있겠지만 자신의 음악을 듣고 이탈리아 국민이 즐거워하고 자긍심을 가져 다시 한번 이탈리아가 하나되는 것을 소망한 멋진 남자, 베르디. 거의 본부장의 마인드 세팅과 거의 일치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이래야 한다. 항상 모든 목적의 뿌리는 자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더 큰 조직의 이익을 향해야 하는 것이다.

 기사의 8번째 이미지

개연성은 대수의 법칙이다. 되도록 많은 시도만이 더 큰 결과를 보장한다. ‘Probability’

자 이제 결론을 말하자면 인간사는 모든 게 인과관계가 있지만 필연도 없고 우연도 없다. 하나의 원인에 여러 결과가 매달려 있는 개연성의 사과나무이다. 어느 사과로 갈지는 모르지만 그 사과들의 뿌리는 하나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지향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이해관계가 불분명해 보이는 문화 같은 것보다는 좀 더 명확한 정치 권력의 확보를 중요시 여긴 사람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매우 온화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프랑스가 양면성의 나라로 절묘한 문화유산을 인류에게 선사했다면 이탈리아는 과함을 통해 당초 계획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새롭고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 나라다. 독재자의 탄생을 두려워해 시저를 죽이고 나서 결국 제국을 만들고 더 나아가 폭군 네로를 맞아들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탈리아가 우리에게 준 유산은 인류 어느 나라가 준 것보다 크고 장엄하며 위대하다. 이탈리아 문화 유산의 힘은 과함을 통해 개연성을 명확히 한 덕분이다. 너무나 많은 시도와 너무나 많은 고민이 오늘날의 이탈리아문화 유산을 만들었다고 본다. 뭐든 미치도록 만드는 나라, 이탈리아.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바이다. 오늘 저녁에는 인생에서 과함이 주는 유익함을 생각하며 정통 이탈리아 스파게티와 이탈리아 와인에 ‘악마의 바이올린’이란 별명처럼 매우 과한 연주를 했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를 들으면서 미드 ‘로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기사의 9번째 이미지


제 7 편 러시아-1

짜르(царь)의 나라 러시아
(1) MI6의 영원한 적

  • 입력 : 2017.04.17 22:55:46    수정 : 2017.04.17 22:57:32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러시아 지도를 보면 국제관계의 진실이 보인다. ‘러시아 연방’



세계 지도를 한번 보자. 본부장이 일본 편에서 말했던 정치학 전공자로서 '나는 지정학을 믿지 않는다'라고 했던 이유는 사실 러시아 때문이다. 러시아는 지도에서 보면 세상의 중심에 있다. 물론 지구는 둥글기에 세계 어느 나라도 자신이 세상의 중심일 수 있지만 자기 나라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말한 나라는 아직도 '중국'밖에 없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을 그린 비비안 리와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의 영화 ‘무적함대 / Fire of England’를 보면 장차 대영제국을 호령할 영국 재무장관도 자신의 나라를 서쪽에 치우친 작은 나라로 치부한다. 이 영화를 만들 시기에는 이미 제국을 호령했던 영국도 자신이 서쪽에 치우친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중심이 어디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이 생각한 지정학적 중심은 러시아다. 독일 히틀러가 원래 정복하려던 곳은 세상의 중심인 러시아이고 더 자세히 말하면 히말라야 산맥 어디라고 했다. 정말 오컬트에 미친 게 분명하다. 히말라야라니. 프랑스나 영국에 대한 침략도 순전히 독일이 1차 세계대전부터 중시했던 현상 유지 군사전략의 일환인 예방 전쟁, 즉 진짜 전쟁을 막기 위한 예비 전쟁이었다. 원래 목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본부장이 지적했듯이 기술적으로는 독일이 이길 수 있는 전쟁이었다. 하지만 말도 안되는 명분과 개인의 사사로운 복수심으로 일을 그르쳤지만 말이다. 프랑스도 나폴레옹이 제국을 칭하고 나서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러시아다. 그야말로 세상의 중심이며 지정학적으로 가장 좋은 노른자위를 점하고 있으면서도 그 자체를 가지고 패권을 차지한 적은 한번도 없는 나라, 러시아. 오히려 본부장이 이야기 했듯이 '행동하는 리더십'을 몸소 보여주었던 '러시아의 혁명'만이 그들을 20세기의 반 쪽짜리 패권국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지금껏 유럽에서 시도된 모든 패권 희망국을 좌절시킨 성벽같은 나라다. 그런 러시아의 지정학적 위치를 한번 살펴보자. 동쪽으로는 미주대륙의 알래스카를 마주보고 있고 서쪽으로는 핀란드, 체코, 폴란드를 경계로 유럽을 마주보고 있다. 남으로는 중국과 인도를, 북으로는 다들 알고 있듯이 북극해이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북극해의 대부분은 러시아 영토이기에 물리적으로 보면 마음만 먹으면 어느 나라로든 진출하기가 매우 수월하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인간의 본성(snobbism)에 대한 믿음이 너무 지나쳤다. 하지만 그 자체로 보면 정말 매력적이었던 사상 ‘공산주의’

지금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이 예전 구소련에서 독립해서 서구 세계와의 완충지대가 생겨 그나마 러시아의 위협이 많이 완화된 모양새지만 19, 20세기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곧바로 유럽제국과 교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고 남으로는 아프카니스탄을 접하여 인도를 바라보며 동으로는 알래스카를 가지고 캐나다를 위협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세계 역사라는 것이 엄청 복잡한 것 같아 보일지 몰라도 본부장이 보기에는 간단하다. 첫째, 그리스 시대 이전의 엄청나게 길었던 신화 시대, 둘째, 인류가 가장 인간에 대해 멋지게 생각했던 그리스 로마 시대. 셋째, 인간으로 살기 매우 힘들었던 중세시대. 넷째, 다시 인간에게 눈을 돌리면서 인간의 본능과 그를 위한 돈에 눈을 뜨게 된 대항해 시대. 다섯째, 그리스 로마를 생각하며 진정한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기 위한 질서를 만들고자 했던 시대. 마지막으로 그 질서를 만든 세력들이 질서를 파괴할 충분한 위치를 점한 러시아를 봉쇄하던 시대이다. 러시아가 20세기 초에 공산주의라는 당시로는 매우 선진적인 이념을 선점했을 때 기존 질서의 창립자들은 아차 싶었을 것이다. 그 이념이 가진 엄청난 휘발성에 자신들도 매혹 당할 수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저렇게 멋진 이념을 가지고 저렇게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가졌으니 이젠 러시아가 대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큰 좌절했을 것이다. 주로 영국에 본거지를 두었던 그분들이 독일이라는 중부 유럽의 거인이 2번이나 사고를 쳤는데도 오히려 예쁘게 만들어서 또 살려둔 것은 바로 이 밑도 끝도 없는 좌절감과 두려움으로 인한 궁여지책의 결과이다. 호랑이를 잡으려고 늑대를 풀어놓는 전술로, 팽창하려는 러시아를 막아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교양까지 갖춘 민족이 독일이기 때문이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중부 유럽 국가를 면밀히 보라. 대부분 사연이 많다. ‘유럽의 방벽, 중부 유럽’

이때부터 중부 유럽의 강화는 서부 유럽에 근거지를 틀고 있는 기존질서의 창립자들에게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전략이었다. 베르사이유 조약으로 독일을 거의 파산시키려는 프랑스를 가장 한심하게 본 것이 창립자들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존 메이어드 케인즈란 경제학자가 그들의 염려를 가장 잘 전달해준 사람이다. 원래는 경기부양에 대한 국가의 재정확대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이론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러시아를 봉쇄시키기 위해 필요한 주요국의 경제부흥을 위해서는 재정이 얼마가 들어도 일단 좋다는 그야말로 고육책이다. 베르사이유 조약 체결 당시 누누이 강조한 독일에 대한 패전책임의 완화책이나, 미국이 자본주의적 모순에 의한 경제공황으로 정치적으로도 거의 몰락할 뻔 했을 때 과감하게 실행한 뉴딜정책의 모티브도 모두 케인즈의 의견이다. 그 이후 냉전 시대 미국 조지 케난의 봉쇄정책, 그리고 전후 독일 대한 미국 원조정책인 마샬플랜과 일본 부흥에 대한 조치를 위한 타협책이 다 그것들의 일환이다. 사실 창립자들이 오로지 원하는 것은 자신들이 만든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고 이걸 가장 위협한다고 생각했던 세력은 19세기까지는 혁명 정부 프랑스와 갑자기 나타난 질서 파괴자 나폴레옹이다. 그의 실패 이후 곧바로 융성하는 러시아를 지목하고 중부 유럽을 강화시키고자 독일 통일을 도와 독일제국 설립을 도왔으나 역사라는 것은 의도하는 바와 항상 달리 가듯이 그 독일이 20세기에 두 번이나 사고를 친다. 모두 예기치 않은 사고로 말이다. 하나는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 청년에게 살해되면서이고 또 하나는 1차 세계대전에서 다 이긴 전쟁을 진 독일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증오심을 가지게 만든 인접국 (특히 프랑스)들의 균형감각 부재이다.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양쪽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바라보는 러시아의 상징 ‘쌍 독수리’

러시아의 부흥은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대제를 거치면서 지금의 영토를 확정 짓고 19세기 초반을 지나면서 창립자들에게는 실체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지정학이라는 개념과 산업혁명으로 인해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머금은 영토의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특히나 19세기에는 대영제국이 빅토리아 시대로 접어들며 가장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로 전 세계의 3분의 1에서 영향력을 떨치고 있었다. 그 중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곳은 인도였다. 인도가 영국에게 주는 힘은 영토의 면접과 상관없이 제국 역량의 절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금쪽같은 인도가 아프카니스탄 하나를 두고 러시와와 맞대고 있던 것이다. 우리가 아는 MI6가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오로지 그들의 목적은 러시아의 팽창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위한 모든 활동이다. 살인면허도 이래서 나온 것이다. 무조건 지키고 싶었던 이권이고 질서였다. 지정학은 당시만해도 매우 중요해 보였다. 영국이 1700년부터 인도에 동인도회사를 두고 결국 인도 전역의 영토까지 차지하면서 무역이 아니라 식민지가 주는 호사스러움을 맛보게 되면서 부터다. 당시에는 아열대 기후의 식민지를 최고로 쳤기에 온대의 북아메리카나 사막지역인 호주 그리고 냉대의 캐나다는 식민지로서 가치가 인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인도는 남미를 스페인에게 빼앗긴 영국에게는 최고의 보상이었다. 사실 스페인도 남미가 인도인줄 알고 정복했으니 말이다. 콜롬버스 시절부터 인도를 차지하고자 시작한 대항해 시대의 최후 승자는 영국이었고 그것으로 얻은 영국의 포만감이 결국 미국을 포기하게 만들 정도였으니 말 다한 거 아니겠나. 명심해라. 나라는 생명체도 뭐도 아니다. 즉 나라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그 나라를 움직인다고 믿는 사람들이 만든 이해관계가 그 나라를 움직이는 것이다. 창립자들에게 영국이니 미국이니 하는 나라의 이름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자신들이 만든 질서를 유지시켜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환영일 것이다. 피상적인 이름이나 출신에 연연하는 사람을 본부장이 한심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질을 피해가게 만드는 시각의 굴절을 용납하지 말아라. 본부장을 따르는 청년들은 언제나 그러한 굴절되지 않는 시각을 통해 얻어지는 정보를 통한 올바른 판단을 보고 결국 질서의 맨 꼭대기에 있는 자들이 여러분을 함께할 인재로 결정한다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기사의 4번째 이미지

지난 200년간 러시아 견제의 첨병 ‘MI6’

러시아는 그래서 현재까지 견제 당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견제가 매우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상황은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자서 ‘역사의 종언’처럼 한쪽의 승리처럼 보인다. 구소련의 붕괴는 질서 창립자들이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가장 두려워했던 것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1989년 이후 세계 금융이 미친 요동을 친 이유도 자본주의가 승리감에 도취되어 그들이 만든 고귀한 질서인 '그리스 로마로 다시 돌아가자'라는 숭고한 평정심을 타락시켰기 때문이다. 이후 영화 ‘마진콜’이나 ‘올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연출 되었듯이 글로벌 금융의 도덕적 타락이 본격화 되었다. 모두 러시아라는 두려움이 없어지고 난 다음의 총체적인 모럴해저드였다. 영화 ‘007’부터 구소련 해체 이후 MI6가 감당해야 할 목표는 어느 이름 모를 악당이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디서 본적도 없는 존재. 그래서 007도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이다. 다니엘 그레이그 같은 근육질의 싸움 잘하는 00요원이 필요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콘텐츠가 약하면 캐릭터가 강해져야 하는 법이다. 냉전은 세계에 엄청나게 많은 콘텐츠를 제공해 주었다. 우려먹을 게 너무 많지 않은가. 그걸로 사기치기도 얼마나 쉬운 일인가 말이다. 냉전시대에 가장 큰 사기꾼은 국가였다. 하지만 캐릭터의 시대에서 국가는 맥을 못춘다. 콘텐츠보다 캐릭터는 통제하기도 리드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부장이 국가나 이념, 국민의 시대가 아니라 도시, 문화, 시민의 시대라고 말하는 것은 그저 라임을 맞추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모두가 1989년 이후 깨져버린 러시아 봉쇄 프레임 이후에 나타난 엄청난 글로벌화에 대한 자연스러운 현상 전개이다.

 기사의 5번째 이미지

초강대국 미국을 만든 선진 교육 기관의 상징 ‘하버드 대학’

그만큼 러시아는 지난 200년 동안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전개된 현상들의 큰 이유를 담당했다. 지금 러시아의 푸틴을 서방이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가진 인간적 매력이 아니다. 그가 가진 보편적이지 못한 통치 시스템 때문이다. 러시아가 예전처럼 인류보편적인 가치를 내세울 때가 가장 무서운 순간이다. 지금처럼 개인적 매력이나 카리스마를 내세운 리더십은 그들에게는 매우 고마운 일인 것이다. 본부장이 이전에도 말했듯이 러시아가 지정학적으로 아무리 훌륭한 위치를 점하고 있어도 구성원의 힘을 결집해줄 수 있는 보편타당한 롤모델이 있어야 그 힘을 발휘할 수있다. 그 롤모델은 앞서 막스 베버가 말한 합리적인 리더십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전통과 카리스마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그저 선택사항일 뿐이다. 현재의 미국이 아직도 강한 이유는 군대가 강해서가 아니다. 수많은 보편 타당한 롤모델들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롤모델을 언제든지 양산해낼 수 있는 표용적이면서도 단호한 정치 사회 시스템과 경쟁을 당연시 여기는 교육제도 때문이다.

 기사의 6번째 이미지

아놀드슈왈츠 제네거가 연출한 우직하고 의리 있는 러시아 경찰 영화 ‘레드 히트’

하지만 본부장은 러시아에게서 오히려 기회가 보인다고 말하고 싶다. 오로지 자기 나라만 생각해도 되는 시기를 역사적으로 매우 오랜만에 가져보고 있기 때문이다. 엄연한 현실인 러시아의 물적인 모든 자원은 하늘이 유독 러시아를 편애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넓이와 양이다. 그러한 현실이 러시아에게는 아직도 영원히 향유할 수 있는 기회이고 창립자들에게는 언제나 신경 쓰이는 리스크이겠지만 말이다. 첩보영화를 보면서 러시아 국가를 가끔 들을 때가 있다. 정말 모든 국가들이 다 멋지지만 이 러시아 국가는 정말 최고다. 장엄하기 이를 데 없다. 국가(國歌)의 멋짐에 있어서는 영국의 엘가(위풍당당 행진곡1번 ‘희망과 기쁨의 나라’), 독일의 하이든(황제)에 비해 손색이 없다. 오히려 극적인 요소는 더 앞서 있다. 본부장이 너무 첩보영화를 좋아하고 또 봐서 그런지 영화에서 무지 많이 들었다. 본부장이 본 모든 첩보 영화는 대부분이 MI6 아니면 CIA가 주인공이니 언제나 타깃이 되는 적국의 무대는 모스코바이고 음악은 장면이 넘어가면서 항상 이 국가가 나온다. 특히 영화 실베스타 스탤론의 ‘록키4’에서나 라이벌인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레드 히트’ 나오는 장면은 진정 압권이다. 나올 때마다 느꼈다. 음악 좋다. 나중에 꼭 KGB가 주체인 영화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KGB가 정말 인간적 매력이 있던 정보기관이었다는 것은 웬만한 정보기관 연구가들 사이에선 이미 정설이다. 여기에 국가도 매우 사람냄새 난다. 정본부장이 구색이나 맞추려고 칭찬하는 게 아니다. 바로 이 국가에서 러시아 성공의 답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파워 엘리트들은 이런 본부장의 말을 명심하길 바란다. 러시아 국가 이미지를 고양의 키는 대중적 정서를 듬뿍 머금은 그들의 국가(國歌)같은 고유의 음악적 유산에서 찾아질 것이다. 본부장이 스스로는 엘가 같은 사람으로 바그너를 지향했지만 사실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은 차이코프스키인 것은 나만이 가지고 있는 느낌은 아닐테니 말이다. 러시아가 가진 문학성과 예술성의 발현이 결국 그가 연상시키는 거대함과 작용하여 새로운 ‘한계적 존재’를 만들어줄테니 말이다.

다만 이미 실패한 독일 제국의 편협함과 프랑스 제국의 배신, 그리고 신성 로마제국의 허망함을 뛰어넘는 보편 타당함을 추구하는 대중적 환호성을 불러일으킬 한계적 작품을 본부장은 러시아에게 기대하는 바이다.

 기사의 7번째 이미지
 기사의 8번째 이미지

월드컵 등 공식 국제 행사에서 연주할 때 가사와 멜로디에서 대중적 휘발성이 매우 큰 國歌 ‘러시아 연방 찬가’



제 7 편 러시아-2

짜르(царь)의 나라 러시아
(2) 19세기를 넘어 20세기의 대중적 감성을 이해한 감수성의 제왕, 차이코프스키

  • 입력 : 2017.04.24 20:43:51    수정 : 2017.04.24 20:59:21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자신의 곡만큼 슬픈 삶을 살다간 러시안 감수성의 제왕 <차이코프스키>

인간미라는 것에는 두 가지 모습이 있다고 본부장이 말한 적이 있다. 하나는 인간(mortality)이 신(Immortality)과 다름에 대한 끊임없는 내적 자각을 통해 불완전성 극복을 위한 끊임없이 투쟁을 하는 모습이다. 또 하나는 인간이 가진 불완전성을 받아들이고 자신과 같은 불완전한 인간들을 측은하게 바라볼 수 있는 모습이다. 아마도 인간적인 멋이란 말과 인간적인 맛이 난다는 표현으로 대별시킬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인간적인 멋이란 우주공간에 오직 유일하게 고차원적인 지적 능력을 가지고도 영원히 살 수 없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역설적 자부심을 최대한 누리려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지적, 정서적 모습이다. 인간적인 맛이란 유한한 존재이기에 오히려 마음 놓고 포기할 수 있는, 우주적 책임감에서 과감히 벗어나 오로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이기적인 쾌락을 마음껏 즐기면서도 타인의 쾌락도 최대한 배려하려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본부장이 평소에 느껴온 인간에 대한 상념이다. 본부장이 무슨 철학 책을 많이 보고 연구한 것도 아니고 실제 조직원 및 면접자 개개인을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정도'로 너무나 유심히 관찰하고 또 그들 때문에 즐거워하고 괴로워 해본 경험으로 말하는 것이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그의 얼굴에서 보이는 두 가지 시선 <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한 투쟁과 연민>





그런 본부장이 인간에게 내린 결론은 지구상의 어떤 사람이나 어떤 나라도 이 두 가지 인간미(인간적인 멋과 맛) 모두를 추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이 처한 시대적 공간적 상황과 개인적인 특수한 경험에 따라 그 비율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나를 따르는 여러분들께 당부하고 싶은 것은 최대한 이 두 가지 부분을 균형 있게 추구해주길 바란다. 역사상 한쪽 날개만을 가지고 비상한 개인이나 조직 그리고 국가는 없었다. 모든 개인과 조직, 국가의 우열은 언제나 그 비율의 균형에서 판가름이 난다. 토마스 칼라일이 말했듯이 인간은 가장 보기 좋은 상태 즉 아름다움(beauty)을 얻기 위해 권력(power)과 지(wisdom)를 도구적으로 가지려고 하는 것이다. 권력과 지혜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닌 것이다. 그 아름다움이란 것을 바로 균형 잡힌 상태로 보는 것이 2000년 동안 그리스 로마에서 내려온 주된 사상이다. 본부장이 보기에는 매우 납득이 가는 얘기다. 본부장 또한 이런 균형 잡힌 상태를 항상 강조하는 바이니 말이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매년 겨울 크리스마스 이브 밤, 전 세계의 모든 이에게 미증유의 행복감을 준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

그래서 권력(power)을 가진 자가 자신의 조직을 보다 균형 잡힌 아름다운 상태로 추구할 대상(본부장이 전편 ‘본부장이 말한다’에서 말한 크라운 주얼, 최고의 가치)을 갖지 못했다면 그는 비루한 자이고 知(wisdom)를 가진 자가 그게 없을 때 본부장은 그를 쉬운 말로 변태라고 말하고 싶다.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가 없이 많이 알기만 하면 필히 변태가 되는 것이다. 권력이 아름다울 때는 그래서 아름다움을 위한 권력일 때이다. 예를 들면 극도로 불균형한 국가 경제 계층의 양극화를 해소해 균형 잡게 해주거나 또는 정치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해방시켜준다거나 반대로 지도층이 너무 권한이 없어 추동력이 없을 때 이를 바로 잡거나 영토가 너무 사분 오열 나누어져 있어 합목적적인 시너지가 안 생겨질 때 이를 연방 같은 더 큰 공동체로 묶어 모두에게 더 큰 이익을 줄 수 있는 그런 권력은 아름답다. 왜냐면 그러한 나만이 아닌 타인이나 전체를 배려하는 모습은 언제나 그리고 누가 보아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익을 추구하지 말고 공익을 추구하라는 말도 본부장이 보기에는 의무감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추구이다. 智者나 權者는 반드시 공공의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 본부장이 이 부분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은 지금부터 다룰 차이코프스키란 인물이 가진 너무나도 멋진 총체적인 인간미 때문이다. 즉 인간적인 멋과 맛이 있는 인간으로서의 멋을 모두 갖추고 더 나아가 타인이나 대중을 위한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인물이다. 앞서 말한 이탈리아의 베르디처럼 이 사회가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 여러분이 꼭 주목하길 바라는 인격적인 모델에 정확하게 맞는 실전형 인재다.

 기사의 3번째 이미지

러시아적 색채가 듬뿍 담겨져 있어 더욱 매료되는 멜로디 <교향곡 5번>

본부장은 어떤 기회에서든 러시아편에서 꼭 차이코프스키를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었다. 앞서 말한 그가 가진 인간미도 물론이겠지만 그가 만든 시대를 앞서는 20세기형 대중친화적인 작품과 전 세계인이 갖고 있는 러시아의 긍정적 이미지의 절반이상을 차지함에도(마치 러시아의 셰익스피어라고 할까) 러시아라는 배경 때문에 디스카운트된 부분을 말이다. 그는 자기 희생을 통해 조국 러시아를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갖춘 나라로 만들었다. 당시만해도 19세기는 사회나 개인이나 겉멋이 제대로 든 시대였다. 온갖 사상가와 예술가가 서로 친분을 쌓고 요즘 흔히들 이야기하는 통섭을 하며 각 영역을 넘나들면서 공통된 점을 찾아 다녔다. 서로끼리 영역을 달리하면서도 무슨 라이벌도 참 많았고 모임들도 많았다. 당시에 특히 이런 문화 예술 그리고 학문적 통섭이 가장 빈번하던 곳이 세 곳이었다. 대륙에서는 신성로마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며(독일 제국은 속으로 비웃겠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동맹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귀족들이 신분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빈(비엔나), 그리고 당시 가장 번영을 누리던 신흥 계급 젠틀리들이 점령한 영국 런던, 그리고 예술과 명품에 대한 실질적 전문가들의 집합소인 프랑스 파리다. 본부장이 전작에서 무슨 일이든 성공하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나. '희소성'과 '돈', 그리고 '커리어'라고 말이다. 꺼져가는 신분제의 마지막 보루였던 오스트리아 빈이 주는 희소성과 대영제국 심장부 런던이 보장해주는 막강한 파운드화의 위력 그리고 파리가 유럽 문화 예술의 마이스터들이 모여드는, 대체불가능한 커리어를 갖춘 인재 집합소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래서 이 세 곳이 가진 막강한 영향력을 기반으로 세계의 모든 유행은 시작되었고 또 거기서 평가되었다. 19세기 문화 예술 심지어는 학문적 유행은 반드시 비엔나-파리-런던을 잇는 축의 선상에서 이루어졌다. 명심해라. 책에서도 얻을 수 없는, 본부장이 수년간 유럽 오페라 축제에 참가하면서 다양한 친분을 통해 얻은 살아있는 정보이니 말이다. 본부장은 올해도 스위스 루체른으로 갈 것이다. 베를린 필의 전용 음악축제인 루체른 페스티발에 참석하기 위해서 말이다. 눈요기나 하러 가는 게 아니다. 다 필요해서다. 본부장의 150년 이상된 스승님들 중에 한 분인 '미야모토 무사시'(오륜서)의 9가지 계율 중 첫 번째를 특히 명심하라.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

 기사의 4번째 이미지

이렇게 아름다운 곡이 당시에는 혹평의 대상이었다. <백조의 호수>

유럽의 변방인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에게 앞서 말한 세 중심지는 그야말로 냉혹한 시험장 같은 곳이었다. 그가 연출하려는 감수성 강한 멜로디나 선율이 그들에게는 매우 촌스러워 보였다. 너무나 대중적으로 보였다고나 할까. 당시 19세기 유럽은 난해한 음악이 대세였다. 일반 대중이 듣기에 너무나도 힘든 음악들 위주였는데 대표적인 분들이 쇤베르크, 드뷔시, 스트라빈스키, 말러 등이 있다. 클래식 전공자도 그냥 졸리는 작품들을 쓴 사람들인데 오죽하겠나. 차이코프스키는 이들에게는 완전히 촌놈이었다. 이게 음악도 나라 분위기를 따르는 것인데 19세기적 통섭의 시대에서는 너무 국가나 민족적인 냄새를 풍기는 것에 큰 점수를 주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독일의 바그너,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체코의 스메타나, 노르웨이 그리그 등이 좀 그랬다. 그런데 이들은 그래도 유행은 따라 가면서 썼기에 촌스럽다는 얘기는 안들었는데 차이코프스키는 민족주의뿐 아니라 당시의 유행을 전혀 따르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그의 곡은 대부분 처음부터 반응이 안좋았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이나 바이올린 협주곡은 완전히 유행에서 벗어난 곡조였고 지금은 불후의 명곡인 교향곡 4,5,6도 들인 노력에 비해 처음엔 그저 반응이 그랬다. 당시 유럽 최고 인기 파트인 발레에서마저도 지금은 전세계 모든 사람과 심지어 어린애들까지 그렇게 좋아하는, 그의 3대 발레곡인 '백조의 호수'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 그리고 '호두까기 인형'도 초기 흥행에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다. 본부장은 차이코프스키가 자신의 신세를 너무나 한탄한 나머지 모스크바의 차가운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했다는 말에 그저 공감이 간다. 누구라도 이 정도의 좌절이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 당시에는 러시아 민요풍의 멜로디를 그리 높게 쳐주지 않았다. 본부장이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초기 음악적 결과가 차이코프스키가 엄청난 애국자여서 라기보다는 그가 가진 인간적 신념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편협할 정도로 자신의 것을 주장해서도 안되지만 자신의 것을 먼저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을 본부장은 믿지 않는다. 예를 들면 여러분의 부모나 형제 그리고 조국에 관련된 모든 것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타부(금기사항)와도 같은 것이다. 타부란 지난 수 천 년간 인간이 인간으로서 꼭 지켜야 한다고 조상으로부터 전해지는 신념을 말한다. 마치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소프클래스의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가 비록 천륜을 저버렸지만, 그런 이유로 자신의 오빠의 시신을 땅에 묻지 못하게 하는 자들을 비난하면서 하는 명분인 '땅에 묻지 않는 것은 타부를 깨는 것'이라고 한 대목처럼. 러시아에서 태어나 줄곧 러시아에서 살아온 사람으로 매우 당연한 삶의 태도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타부에 근거한 신념을 집념으로 투쟁하여 남다른 작품이 창작 되는 것이다. 명심하라. 명작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반드시 고난을 각오하라. 고난이 명작을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부도덕이 아닌 신념이 불러오는 고독함은 최종적 성공을 위해 일부러라도 만들어야 하는 통과의례적 필수 사항이니 말이다.

 기사의 5번째 이미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이 사람이 최고다. 러시아 바이올니스트 <데이비드 오이스트라흐>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유럽보다는 주로 바다 건너 영국 런던에서 호평을 받았으나 오히려 자기 나라인 러시아에서 조차 홀대 받았고 파리나 빈에서도 처음엔 평이 그저 그랬고 나중이 되어서야 평가를 받았다. 영국에서 호평을 받은 것은 차이코프스키가 가진 대중적 서정성에 대한 호소력이 당시 엄청난 문화적 욕구를 가진 영국 신흥 부유층(개천에서 난 용)에게 먹혔던 것이다. 당시만해도 영국에서 돈 좀 번 사람들은 젠틀리 계층으로 전통적인 귀족계급을 넘어섰고 수도 많았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보면 런던시민들이 영화를 보듯이 오페라를 즐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도 바그너 오페라를 말이다. 바그너 오페라는 보통 100명 이상의 관현악단이 필요하기에 웬만한 국가에서는 초청되지도 못하고 자체적 공연은 더 더욱 불가능하다. 차이코프스키의 시대를 앞서는 대중적 영감에 영국 런던의 신흥 젠틀리 계층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유럽에서는 20세기에 가까이 되어서야 신분제가 완전히 깨지고 대중사회적 분위기가 힘을 더해가면서 차이코프스키의 진가는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가 죽은 1893년 이후에 말이다. 비운의 스타가 아닐 수 없다. 그가 마지막으로 온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는 '비창'이 그의 운명을 예측한 듯 말이다.

 기사의 6번째 이미지

본인은 이 곡의 별명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그리고 완성된 그 해 혹평을 받고 곧 사망한다.<교향곡 6번 비창>

여러분들도 느낄지 모르겠지만 본부장은 러시아 국가를 들으면 왠지 차이코프스키가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그냥 멜로디가 비슷하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차이코프스키가 초기 작곡가 시절에 자국에서도 매우 촌스러운 멜로디를 쓴다고 욕을 먹었다고 하는데 이유는 바로 러시아 민요에서 따온 장단 때문이다. 만약에 그가 당시 19세기 유럽의 유행을 무작정 따라 하는 일반적인 우를 범했다면 후에 이런 엄청난 명성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생을 살면서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절대 여러분만의 이론을 만들라는 것이다. 나를 정의할 나만의 이론을 만든 사람은 오히려 남에게 여유로운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본인의 이론이 없으면 불안한 법이다. 불안하면 상대방이나 대중은 여러분을 알쏭달쏭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끝인 것이다. 여러분의 성공은 상대방이 나를 명확하게 어떤 사람인지 알게 만드는 것이다. 혹자는 '상대가 나를 모르게 해야 승리한다'고 한다. 엄청나게 아마추어 같은 이야기다. 상대가 나의 속을 어찌 알겠는가 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속을 알든 모르든 신경 쓰지 말아라. 여러분이 겁내는 것이 무엇인 줄 안다. 여러분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키는 것이 걱정이 아니겠는가. 원하는 게 그토록 단순하고 근시안적이니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이다. 본부장이 강조하는 '바다 같은 사람'이 되었다면 무엇이 걱정인가. 대인배들은 제발 나를 알아 주기만 바랄 것이다. 역사상 모든 큰 인물들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바로 이처럼 그저 우직하게 뚜벅뚜벅 걸어간 사람이 차이코프스키이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경우 그의 스승이 이건 쓰레기라고 악평한 후 거의 다 고칠 것을 명령했지만 그는 자신의 이론과 음악적 定義를 지키려고 했고 결국 이 음악은 방금도 유투브로 본부장이 본 예브게니 키신 피아노 연주와 세이지 오자와 지휘 공연의 세계적 조회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21세기에서도 여전히 또 듣고 싶은 명곡이 되었다. 더구나 그토록 혹평을 받았던 피아노 독주 도입부가 지금은 가장 인기 있는 부분이 된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10명중 7명이 하는 평범한 행동을 하라는 것이지 평범한 생각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론은 오직 나만의 것 즉 60억 중 1명이 하는 생각이 최고다. 다시금 강조한다. 너만의 이론을 가지고 그것을 강력하게 定義하라. 정의하지 않으면 우주적인 힘이 널 주목하지 않는다. 결국 어떤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명심해라.

 기사의 7번째 이미지

이 전쟁의 패배로 나폴레옹은 실각하고 유배된다. 프랑스에게는 패전 기념곡 <1812년 서곡>

자 이거 하나는 알고 가자. 1812년 서곡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유럽은 서로가 서로에게 한번씩은 지고 또 이겨봤지만 프랑스에게는 정말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 이 음악에 들어 있다. 프랑스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대패한 1812년을 기념한 러시아 승전 기념 음악인데 프랑스에선 공식적 행사의 금지곡이고 영국과 러시아에선 워털루 승전 기념식과 1812년 러시아 승전기념식때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과 함께 엄청 자주 연주되는 곡이다. 영국 영화 ‘브이 포 벤테타’에서는 아예 해방의 의미를 가지는 축가로 나올 만큼 영국에서 오히려 애용되는 음악이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엄청 기분 나쁜 이슈이다. 하지만 러시아에게는 멸망의 순간을 넘긴 기적 같은 승리였고 그 희생 또한 매우 컸다. 그래서 차이코프스키 데뷔곡 중 드물게 처음부터 자국에서부터 호평을 받은 곡이다. 상식으로 알아두길 바란다. 그러니 프랑스 가서 이 음악을 틀거나 좋아한다고 하면 런던의 펍(Pub)에서 멘체스터 유나이티드 좋아한다고 하면 나오는 반응을 보게 될 것이다. 특히 1812년 서곡을 유심히 들으면 애처롭게 들리는 프랑스 國歌 ‘라 마르세예즈’가 敗者의 비명처럼 들린다. 요즘 말로 디스. 한 마디로 비아냥거린 것이다. 차이코프스키는 19세기에 벌써 이런 기법을 보인 예술품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곡의 초연 때인 전승 기념식에서는 실제 대포를 사용할 정도로 앞서나가는 시도를 하였다고 한다. 러시아의 이러한 새로움에 대한 작은 꿈틀거림은 곧 있을 그 나라가 감당할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의 추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미 흥미단계를 넘어선 격이 다른 눈높이의 시작이고 또 다른 새로운 차원으로의 이동에 대한 암시였을 것이다.

 기사의 8번째 이미지

카라얀은 이해하기 어려운 곡보다 대중적 취향이 느껴지는 차이코프스키를 특히 많이 녹화했다. 대중의 요구를 알고 시대를 앞서 음반 레코딩의 시대를 연 카라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레코딩 장면>

차이코프스키는 전세계적으로 지금도 엄청난 인기다. 독일 클래식이 전체의 80%를 장악하고 있고 또 그렇기에 연주자나 지휘자도 독일 클래식 위주로 교육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코프스키는 당당하게 자신의 스타일대로 곡을 만들어갔고 또 그런 스타일과 자신의 조국이 겪은 봉쇄 프로그램과 함께 냉전시대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디스카운트를 겪고도 이 정도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명심하기 바란다. 본부장이 말한다. 대중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고대 중국의 전략가 제갈공명은 남들이 모르게 하려면 아예 그걸 하지 말라고 했다. 만약 차이코프스키가 독일인이었다거나 영국인이었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나아지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신념의 이미지가 오늘날 차이코프스키의 유명세에 반드시 작용했을테니 말이다. 여러분들이 겪는 모든 불합리한 디스카운트나 폄하를 두려워 말라. 대중들은 이미 여러분들이 받는 불이익을 알고 있다. 묵묵히 받아들여라. 그럼 그들은 그런 모습 또한 알고 있다. 여러분이 받는 고통과 그것을 이겨내려는 발버둥을 모두 알고 있단 말이다. 우리가 차이코프스키를 듣는 것은 그가 작곡한 음악만을 듣는 게 아니다. 그가 겪은 수많은 시련을 연상하며 그를 동정하고 연민하며 어루만지면서 듣는 것이다. 서두에서 말했던 인간이 가진 두 가지 인간미를 모두 가슴 깊이 느끼게 해주는 차이코프스키의 인생을 듣고 그 곡을 듣는 것이다. 이게 바로 본부장이 이야기 하는 실전형 리더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슬픈 곡보다 더 슬픈 비극적 삶을 스스로 이겨내려고 절규하는 超人이다. 그리고 동시대와 앞으로 올 세대에게 똑같은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겪을 고독함을 위로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자세를 보여준 大人이다. 그가 떠난 지 100년이 훨씬 넘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만큼 연민이 느껴지는 인물도 없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의 영역을 다른 차원으로 확장시켜준 그에게 너무나도 감사하다.


제 8 편 스웨덴-1

발명가의 나라 스웨덴(1) 실전형 인재들의 무적 군단, 바이킹

  • 입력 : 2017.05.07 19:45:33    수정 : 2017.05.08 14:41:00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빨간색이 바이킹의 본거지다. <바이킹의 전성시대 침입 경로>

바이킹이란 단어를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TV 드라마나 만화 시리즈의 소재로 엄청나게 사용되었고 지금도 케이블 TV를 뒤져보면 하나 정도는 나올 것이다. 흥행 대박을 쳤던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미드 ‘왕좌의 게임’ 등이 모두 실제로는 바이킹의 역사상 활동에서 영감을 받아 쓰여진 것들이다.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를 보면 아예 ‘왕좌의 게임’을 현대물로 만들어서 보여준다. 바이킹은 유럽 역사에서 인간이 가진 현실적인 본능을 가장 적극적으로 행사한 종족이다. 아마 세계사적으로도 손에 꼽히지 않을까 한다. 본부장이 해적에 대해 주목하고 영국 편에서도 해적왕 프랜시스 드레이크를 언급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역사상 모든 위대한 것들의 미약한 시작은 만져보고 싶고 느끼고 싶은 것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하면서 이루어졌다. 바이킹은 한마디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지역의 해적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춥고 척박한 기후로, 자연이나 신이 내게 축복했다는 느낌보다는 버려졌다는 마음을 가지기에 더 알맞은 환경이었을 것이다. 거기에다 아예 해가 뜨지 않거나 지지 않는 기간이 몇 달간 계속되는 기현상도 그 곳에 사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본다. 그들이 헤엄치거나 배를 타고 건너야 했던 북해나 발트해는 인간이 빠지면 수 분 안에 저체온증으로 죽는, 마셔도 이가 시릴 얼음물이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왼쪽부터 차례로 부부다. 나중엔 다 이혼하면서 그룹이 깨진다. 무시 무시한 바이킹의 후예, 스웨덴 팝그룹 ‘ ABBA’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에는 아픔을 동반한다는, TV쇼에 나오는 어느 미남 성형외과 의사의 재수없는 농지꺼리는 맞는 말인가 보다. 이런 기후라서 그런지 원래 핏줄이 그래서 그런지 히틀러도 극찬했던 다리 길고 금발머리에 흰 얼굴, 그리고 푸른 눈을 가진 인종이 이들이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금발에 롱다리의 백인 여자들이 낳은 멋진 사내아이들이 해적질로 악명을 떨쳤다는 말이다. 콜린 윌슨의 저서 ‘잔혹의 세계사’를 보면 이들이 행한 악행을 글로 확인할 수 있다. 매우 길고 노골적으로 썼다. 그야말로 쇼킹하다. 공포 영화 ‘쏘’에서 살인마 직쏘가 시도하는 잔혹 장면은 모두 바이킹이 한 짓의 일부에 불과하다. 아름다우면서 무서운 사람들이다. 자 그럼 이런 휘발성 강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대중들은 이런 것들이 재미있겠지만 이 글은 여러분들에게 재미나 주려고 아까운 시간 들여가며 쓰는 게 아니다. 읽고 나면 머리에 남는 거라곤 깨름직함만 남는 그런 잔혹극은 별 흥미없다. 본부장이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영국작가 콜린 윌슨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쓰는 잔혹 장면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내게 말하려고 하는 글로벌한 인사이트를 느끼려고 하는 것이니까. 너희들이 멋지게 생각하는 영국인도 실상 별거 없다는 조의 말투로 특히 미국에서 엄청 인기 끌었다. 즉 인간 내면의 속물주의 말이다. 누차 말하지만 속물주의는 나쁘고 좋은 게 아니다. 그저 사실이다. 받아들여야 할 공기 같은 사실 말이다. 다만 속물주의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인간이란 존재로 멋지게 살아갈 것인가' 가 본부장이 이 글을 쓰는 몇 가지 목적 중 하나다. 물론 최고 상위에 있는 목적은 가진 것 없고 어린 여러분이 이 냉혹한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 것에 있겠지만.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지금의 이라크인 고대왕국 바빌론의 ‘공중 정원’

앞에서 본부장이 세계 역사를 간단하게 나누어 준 적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주자면 신화시대, 그리스-로마시대, 중세시대, 대항해 시대, 근대 질서 창립자의 러시아 봉쇄시대로 말이다. 간단하게 나눈 게 아니라 정확하게 나눈 것이다. 심지어는 단어까지도 말이다. 물론 학교시험에서는 이렇게 쓰면 절대 안된다. 실전형 인재를 자부하는 본부장도 학창시절은 모범생이었다. 아니라면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게 진짜 실전형 인재의 시작이다. 하지만 걱정마라. 이 글을 다 읽고 자기 것으로 만든 순간부터는 학교 성적을 신경 안써도 될 눈을 가질테니 말이다. 자 돌아와서. 마찬가지로 권역적으로 지구를 한번 나누어 줄테니 잘 들어라. 앞서 말했듯이 인간의 역사는 짧다. 그리고 좁다. 인류가 태초의 어머니라는 이브(아담과 이브에 나오는 그 이브가 아니다)의 몸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나와서 퍼질 곳이 어디 그리 멀겠는가. 일단 대부분은 그냥 아프리카에 살았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첫 장면에서 장대한 스케일로 나오는 아라비아 반도의 드넓은 사막을 보면 느낀 게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본부장이 벌써 몇 번을 보라고 했다.) 뭔가 강이 흘렀던 것 같은 협곡이 보이고 자갈 같은 돌들이 수백 리에 뻗어 있다. 무었이겠는가. 예전엔 아프리카가 지금과 달랐다는 것이다. 지금의 이라크 지방인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문명국 바빌론에 있었다는 공중정원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 (호머가 그의 저서 ‘역사’에서 자세히 서술한 내용이다.)를 보면 이걸 지으려면 누군가를 대규모로 고용했다는 것이고 또 급료를 주었다는 얘기다. 급료를 주려면 생산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의 생산수단이라는 게 결국 농사 짓는 땅이거나 약탈할 수 있는 무력, 둘 중 하나다. 사람은 급료를 주어야 번듯한 생산물을 만들어낸다. 무력을 통한 강제 노역으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7대 불가사의 건축물을 만들 수 없다. 그 시대에 기준에 따라 노동에 따른 납득할만한 보상이 뒤따랐을 것이다. 허접한 건물 몇 개 만드는 것은 몰라도 피라미드 같은 최고의 건축물은 반드시 그러하다. 제작자의 정성이 마무리 단계까지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아프리카는 지금과는 달리 숲이 울창하고 비옥하여 생산수단으로서는 최적의 땅이었다는 얘기다.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인류의 역사가 그리 긴 게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Migration of Mankind from Africa’

그 다음이 지중해 지역일 것이다. 그리스 로마가 그래서 그 다음 번성했을 것이다. 그리스 시대 에게 해를 지나 로마 시대 아드리아해와 지중해쪽로 넓혀 갔을 것이다. 이제 감이 오는가. 기후가 변화해 가는 쪽으로 인류 번영의 축이 이동해 간 것이다. 이탈리아 편에서 말한 카르타고가 로마를 집어삼키려 시도한 것은 달라지기 시작한 기후 탓이었다. 예전엔 푸르렀던 땅이 사막이 되어가고 지중해 지역을 비롯한 이탈리아 반도는 살기 좋은 골디락스(가장 최적의 상태) 상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프랑스 편에서 말한 축복받은 기후의 프랑스가 생겨 나고 사람이 살지 못했던 스칸디나비아 반도나 아이슬란드 그리고 그린란드까지 뻗어가게 된다. 그리고 또 한 부류는 동쪽으로 아시아로 들어가서 인도 중국 등지에서 일부가 정착하고 마지막까지 근성있게 살만한 땅을 찾고자 떠난 이들이 시베리아를 통해 북극해를 건너 알래스카로 해서 아메리카로 건너간 것이다. 여기서 일부가 북미에 정착하고 마지막으로 남미에 정착하면서 인류의 공간적 포진이 완성된다. 다만 히틀러가 주장한 것처럼 아프리카를 떠난 인종 중에 이집트나 그리스 로마 문명을 일으킨 인종 외에 조용히 숨죽이며 때를 기다렸던 선택받은 인종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동 루트가 히말리아 산맥에서 나와 이동하여 지구의 북쪽에서 순수함을 지키며 살았다 한다. 순전히 히틀러 얘기다. 본부장은 개인적으로 인종주의에 별로 흥미가 가지 않는다.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이라는 보편적인 가치에 비해 매우 편협해 보이고 멋없어 보인다.

 기사의 4번째 이미지

19세기 초에 핀란드가 먼저 분리되고 노르웨이가 20세기 초에 독립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세 나라’

스웨덴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보면 아주 노른자위를 점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목소리에 힘 좀 주었다는 이야기다. 양옆으로 노르웨이와 핀란드를 두고 있는데 노르웨이는 차가운 북해의 칼바람을 받아내고 있고 핀란드는 러시아라는 무시 무시한 상대를 앞에 두고 있다. 전문가가 아닌 본부장이 그냥 봐도 스웨덴이 참 안락해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본부장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바이킹을 말할 때 일반적으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를 지목을 한다. 그 나라 사람들을 세계여행 방송 또는 풍물 기행 방송에서 보면서 바이킹이 떠오르는 지구인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모두 인형처럼 생긴 외모에 행복해 보이는 국민들 모습은 지상 천국이 따로 없다. 하지만 실상은 세상에서 가장 척박해서 전 국민이 유럽 대륙으로 해적질을 해야만 되는 시기가 있었던 아픔이 있는 나라들이다. 세계 여행을 많이 다니는 본부장은 이 북구의 나라들과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그리고 스위스 사람들을 두루 보면서 공통적인 것을 발견한다. 모두들 참 잘 웃는다. 정말 웃을 일이 많아서 웃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들 나라들은 웃을 일보다 울 일들이 더 많았다. 힘든 삶에서 배운 생활의 지혜일 것이다. 바그너 오페라에서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여신, 발퀴리들이 하는 말이다. '힘들수록 웃어라'. 따라서 북유럽인이 웃을 때는 좋다는 게 아니다. 여러분이 맘에 안들어도 그냥 웃는 것임을 상식으로 알아 두길 바란다. 알아서 처신 잘하라는 것이다. 그런 습관을 가질 만큼 자연 환경은 말 할 것도 없고 인접국가의 침략으로 정말 힘들어 했던 나라들이다. 한 나라만 빼놓고 말이다.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아마 이 나라들 그룹에 자신을 끼우는 것 자체를 달가워하지를 않을 것이다. 스웨덴은 덴마크와 함께 전통적인 유럽의 강국이었다고 한다. 두 나라는 통치했던 왕가가 같았던 한 나라인 적도 있다고 하니 주도권 때문에 서로 많이 다툰 것 같다. 덴마크는 당시 유럽의 초강국으로 당시 셰익스피어 극에서도 등장한다. 셰익스피어 극에 나오는 나라는 대부분 그 당시 잘나가는 나라들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템페스트’의 베로나, 베니스, 밀라노 같은 잘사는 이탈리아 도시국가들, 햄릿의 강대국 덴마크 등이 그렇다. 물론 멕베스나 리어왕은 자기나라인 영국으로, 어디까지나 애국심이다. 당시 영국은 강대국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덴마크도 나오는데 스웨덴이 없다. 이 부분은 본부장이 현지에서 들은 얘긴데 영국과 스웨덴은 은근히 서로 라이벌 같은 관계라고 한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도 스웨덴은 뺀 것이 아닌가 싶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가 엘리자베스 1세 시기인 16세기 중반이니 당시는 스웨덴이 덴마크에게서 독립하면서(1523년) 훨씬 잘나가던 시기이다. 아무튼 스웨덴을 누락시킨 건 좀 이상하다. 물론 스웨덴을 빼고 안빼고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북구의 나라들이 모두들 그저 참 실용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중 스웨덴이 가장 무심하다 할 정도로 실용주의를 실천한 나라다.

 기사의 5번째 이미지

경험주의를 넘은 철저한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존 듀이’

실용주의라는 말을 들을 때 본부장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적당하게 대충하자는 뜻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이론적 깊이 없이 당장의 이익을 취하자는 말 같기도 하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좋게 듣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안좋게 듣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 이 단어를 가장 싫어하는 국민은 프랑스가 1등이고 이탈리아가 2등 스페인이 러시아와 함께 공동 3등이 아닐까 한다. 좋아하는 국민을 들자면 미국인과 중국인이 1등, 독일과 영국이 공동 2등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본부장은 미국편에서는 남북전쟁과 영웅주의를 이야기했다. 중국은 앞으로 쓰겠지만 실용주의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썼기 때문이 아니라 그게 중국을 읽는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웨덴만이 바이킹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노르웨이나 덴마크도 바이킹이 나온 지역이라고 이미 말했다. 자 스웨덴에서 바이킹을 말하는 이유를 분명히 말해주마. 본부장은 앞서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현실에 없는 과거를 말하지 않는다.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역사를 고증하거나 여러분에게 가르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여러분을 가르치려고 역사를 이용할 뿐이다. 바이킹의 뿌리에도 솔직히 관심없다. 아마도 지금 살고 있는 북유럽 사람들이 그들과 같았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본부장이 바이킹을 스웨덴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바이킹이 현재 우리 인류에게 준 가장 큰 유산에 대해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본부장이 생각하는 바이킹은 본부장이 누차 이야기하는 실전형 인재의 좋은 표본이 될만한 행동을 한 것이다. 바로 이론에 근거한 실용주의다. 그 이론에 근거한 실용주의란 그들에게는 그게 무슨 주의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 그렇다고 이야기 조차도 하지 않는 매우 당연한 현재 상태를 의미한다. 이미 실전형 인재인 본부장은 실전이란 말의 의미가 매우 멀게 느껴진다. 실전이 아닌 게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사의 6번째 이미지

본부장이 강조하는 ‘한계적 인재’

본부장은 사실 스웨덴 파트가 매우 기다려졌었다. 앞서 말했던 국가들은 역사적으로 그들이 해왔던 일들이 매우 많아 매우 상징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국가들이었다. 본부장은 뭐든 캐릭터로 설명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하지만 본부장은 실전을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는 칼잡이다. 상징을 이야기하는 시인의 영혼을 가졌지만 동시에 과정을 중시하는 전사의 기질을 가졌단 말이다. 전사란 예리한 습관을 가진 자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하는 자가 아니라 몸이 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자다. 이론에 근거한 실용주의란 전형적인 전사적 기질을 의미한다. 정해진 일을 추진할 때의 본부장 같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계획단계에서는 누구보다 여유롭지만 말이다. 독일 제 3제국 총통 히틀러가 아리안이니 뭐니 하면서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이야기 할 때 본부장은 솔직히 히틀러는 독일인을 본부장보다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죽어 반론을 못하는 사람한테 너무 뭐라 그러면 반칙이지만 이 말은 꼭 해야겠다. 히틀러나 괴벨스가 생긴 게 독일인 같지 않은 것은 기분 좋게 제껴두자. 결국 그들은 독일인을 바이킹이랑 혼돈한 것이다. 자주하는 말이지만 토마스 칼라일이 극찬한 독일인은 ‘순수, 대담, 예리, 소박’이라고 하여 지구상의 인류중에 외계인에 필적할만한 균형 잡힌 절제력을 가진 민족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떻게 처녀처럼 순수하면서도 용사처럼 대담하고 예리한 기술을 가지고서도 소박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한다. 본부장이 개인적으로 하는 생각이 아니라 칼라일의 말임을 다시 한번 밝힌다. 전사적 기질과 시인의 영혼을 가졌다는 본부장이 극찬하는 ‘한계적 인재’인 것이다.

 기사의 7번째 이미지

성대한 노벨상 시상식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역시 돈이 되는 발명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스톡홀름의 노벨상 시상식’

독일이 인류에 공헌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음악과 문학 그리고 장인정신이다. 그런데 발명을 하는 나라는 아니다. 세계 최강이라는 제조업 강국이지만 그들이 그걸 발명하지는 않았다. 자동차 왕국이지만 자동차는 영국이 발명한 것이다. 그렇다고 영국을 발명의 나라라고 이야기 하진 않는다. 기획은 하는데 실용단계까지 완벽하게 만들어 내는 것에는 약한 것 아닌가 싶다.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에서 선원들이 식인 인어를 유인하기 위해 등대에 불을 지필 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런 말을 한다. '영국인이 만든 것이 틀림없어'. 영국은 완벽을 추구하는 나라라기 보다는 시도하고 계획을 짜는데 흥미를 갖는 나라다. 국민도 나라도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론이나 계획을 완성하는 것 자체를 즐긴 나라다. 그래서 그 어려운 시대에 세계 운영 시스템도 잘 짰다. 다 하이드 파크 덕분이다. 영국 신사는 산책이 만들고 그 신사가 계획한 것이 대영제국을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영국은 거기까지다. 자 여러분도 눈치 챘겠지만 스웨덴이 인류에 기여한 것은 우리에게 만족할만한 실용적인 완성품을 주었다는 것이다. 스웨덴이 보기에 영국은 디테일이 없는 설계도만 있는 나라인 것이다. 알프레드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를 보자. 화약은 이미 원나라시절인 13세기초부터 널리 사용되었다. 1453년 오스만 투르크가 동로마(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틴노플을 함락할 때도 집채만한 대포를 쏠 수 있는 화약이 사용되었다. 화약과 다이너마이트는 다른 것이다. 불을 붙이면 터지는 게 화약이라면 두 손 달린 누구라도 콘트롤 할 수 있는 화약이 다이너마이트다. 1867년에 다이너마이트가 나오고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실제 사용될 때까지는 채 80년도 지나지 않는다. 실제 기획은 30년대라고 하니 다이너마이트가 인류에게 준 파괴적 응용력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기사의 8번째 이미지

돈 되는 발명은 양손을 편하게 해주는 발명이다. ‘Swedish Zipper’

프로메테우스가 불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제우스에게 벌을 받아 영겁의 시간 동안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게 된 것은 그것이 주는 파괴력을 제우스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발명품도 이루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본부장은 자정까지 글을 쓰다가 심심하면 본부장이 즐겨 입는 예전엔 잘나갔지만 지금은 나이키에 밀린 독일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 남색 츄리닝을 입고 지하 주차장에 가서 나의 영국산 인도차들을 쭉 구경하고 온다. 하지만 나를 그곳에 무리없이 쉽게 갈수 있게 해준 것은 스웨덴이 발명한 지퍼다. 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고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바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 누구였던가. 바로 바이킹이었다. 그들에게는 실용주의는 신이었고 생활이었다. 전 세계 어느 곳을 가도 그들이 가진 습관만큼 실용적인 사람들이 없었을 것이다. 어디를 가든 쉬웠을 것이다. 그래서 쉽게 취했다. 영국은 전 세계의 3분의 1이 아니면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독일은 자신이 만든 완성품의 완벽함에 너무 집착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황이 급한데도 완벽한 타이거탱크를 만드느라 허접하지만 대량으로 만든 러시아 탱크에게 수적으로 밀리는 걸 감수한 게 독일이다. 이 정도 판단력이면 전쟁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독일은 다시는 전쟁하지 말고 무기만 만들어 팔면 지구 최강 국가가 될 수 있는 나라다. 반면에 스웨덴은 자신이 만든 완성품을 완벽하게 쓰는데 집착한 나라다. 본부장은 양손이 비어있는 인재가 되라고 했고 스스로 빛나는 인재가 되라고 했다. 자신이 무엇을 가진 것에 집착하지 않고 내가 완벽하게 날 쓰는지에 집착하라 했다. 단점을 찾지 말고 장점을 찾아 완벽하게 구사하라 했다. 본부장이 바이킹을 말하고 싶은 것은 그들의 후손이라는 스웨덴이 그런 모습을 조금이나마 갖춘 모습을 살짝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의 9번째 이미지

족보가 매우 애매하다. 프랑스 왕에게 충성하는 노르만 지역의 영주이면서 영국의 왕인 ‘정복왕 윌리엄’

바이킹의 실용주의는 알프레드 노벨의 다이너마이트처럼 전사의 양손을 매우 가볍게 해주는 최고의 무기였다. 그들은 단지 못 배우고 무식해서 살인을 일삼고 부녀자를 희롱하는, 영화에 나오는 삼류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매우 지능적으로 움직였을 것이고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영화 ‘터미네이터2’에 나오는 차분하게 임무를 완수하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처럼 말이다. 오로지 목표에만 집중하며 상대를 제압하고 어떠한 감정적인 원한이나 복수심도 없는 균형 잡힌 감정상태로 일을 끝까지 마무리했을 것이다. 아니라면 9세기부터 10세기까지 200년 정도라는 바이킹의 전성시대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의 사촌 동서인 영국인 크로이던에게 듣기로는 영국도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만족인 윌리엄 공에게 정복당해 정복자 윌리엄이 영국 역사책에 크게 나온다고 한다. 참고로 그의 부모는 모두 영국에서 선생님이라고 하니 한 번 믿어 보자. 자 유럽에서 신성로마제국과 영국 왕의 족보를 따지다가는 머리가 백발이 된다는 말이 있기에 여기까지만 한다. 안그래도 머리가 희어지기 시작했다. 글 쓰는 일이 전업이 아닌 사람이 이 고역을 하다보니 정말 힘들긴 하다. 여러분은 수지 맞은 줄 알아라.

 기사의 10번째 이미지

대영제국을 만든 것은 영국인이지만 그 영국인을 만든 것은 산책이라고 했다. ‘런던의 하이드 파크’

이미 바이킹의 실용주의는 전 세계인에게 흡수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인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다. 세계의 최강대국인 미국이 이미 20세기 초 프레그머티즘 (존 듀이)을 주창하며 현재까지도 그 실용주의의 위세를 떨치고 있지 않은가. 멀리 볼 것도 없다. 스티브 잡스가 검은 색 폴라와 청바지에 신은 뉴밸런스 운동화가 이것을 모두 말해준다. 미국은 이미 바이킹의 실용주의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본부장이 말한다. 자기 자신을 가장 완벽하게 쓸 줄 아는 국민이 많은 나라가 가장 강한 나라가 된다. 당시 실전형 인재가 가장 많이 포진되어있는 바이킹이라는 조직은 결국 가장 기동력 있는 조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기업으로 말하자면 과비용이 될 만한 조직이 없는 효율성 100%에 가까운 우량기업이다. 정말 이런 기업이 좋은 기업이다. 본부장이 회사에서 보면 한심하기 그지 없다. 회사를 놀러 나오는 건지 모를 정도다. 이런 효율성 높은 기업을 많이 만들어내면 청년실업도 좀 더 빨리 해소될텐데 하는 생각에 더욱 급한 마음이 든다. 관료적인 조직은 결국 모든 걸 망치고 만다. 결국 각개인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 이건 본부장이 전문이다. 자 문제 들어간다. 과연 이런 효율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추동력이 무엇인가를 말이다. 지속 가능한 승리의 비결을 찾는 것이 최강 조직 바이킹을 말하면서 본부장이 여러분에게 내는 숙제다. 자 이제 책을 덮고 나가 대영제국을 만들었다는 그 신사들이 했다는 산책을 하며 본부장이 낸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보길 바란다. 그래도 생각이 안나면 아버지가 드시다만 조니워커를 한 잔 따라 쭉 마셔라. 생각이 날 것이다.


'기타 > 인문.정민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민우시대를말한다.3  (0) 2017.09.05
時代를 말한다. 2   (0) 2017.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