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황금시대를 상징하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7세기 네덜란드 상인들은 튤립 투기를 통해 막대한 부를 얻었지만 거품이 터지면서 사회 경제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상류층들의 튤립 투기를 풍자한 풍속화’
호주는 원래 17세기에 금빵을 먹고 다이어몬드를 싼다는 유럽 최고의 경제신공을 가진 네덜란드 사람들이 처음 발견했다. 1606년에 발견했다고 하는데 1602년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이미 인도네시아를 근거로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럽에서 네덜란드의 정치적 지위는 합스부르크 왕가이면서 스페인왕인 칼 5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면서 더욱 힘들어졌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는 칼 5세이고 스페인왕으로서는 카를로스 1세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네덜란드 북부인 플랑드르(오늘날 네덜란드)가 칼 5세와 가장 탄압이 심했던 아들 필리페 2세의 고향이면서 스페인 통치권 안에서 가장 극심했던 개신교 반란지역이기도 하다. 칼 5세(카를로스 1세)는 유럽에서 근대 이후 인류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가장 많이 만들어준 나라인 스페인 왕 중 하나다. 먼저 그의 출생은 함스부르크 왕가의 직계 자손으로 조부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다. 독일 바이에른주로 여행을 가면 이 사람의 이름이 걸려있는 옛날 건물이 많다. 나중에 19세기 멕시코의 마지막 황제 이름도 막시밀리안이다. 매우 왕족다운 이름이다. 본부장도 여름마다 바이에른주에 속하는 바그너의 고향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오페라 페스티발을 가면 항상 바이로이트 시내를 구경하는데 막시밀리안이란 이름이 자주 나오더라. 물론 히틀러 사진도 엄청 많다. 아예 대놓고 나온다. 알고 보니 바이에른 주에서 히틀러가 기반을 잡았고 또 워낙 오페라 광이라 많이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15세기~16세기 이탈리아는 스페인(아라곤,카스티아),프랑스,신성로마제국의 영향력이 도시국가별로 나뉘어져 있었다.
인류역사상 가장 타락한 성직자인 교황 알렉산더 6세를 주제로 한 미드 ‘보르지아’
교황 알렉산더 6세의 막내딸이며 세기의 악녀 루크레치아를 에디타 그루베로바가 연기한 도니제티의 ‘보르지아 루크레치아’
카를 5세의 부친은 조부인 막시밀리안 1세의 장남인 필리프1세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략결혼을 위해 콜럼버스 탐사대를 후원한 것으로 유명한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의 중주국인 카스티아의 이사벨라 여왕과 카스티아 다음 두 번째로 큰 아라곤 왕자의 딸인 후아나와 결혼한다. 이 결혼으로 합스부르크 왕가는 스페인에서 세력기반을 얻게된다. 조부인 막시밀리안 1세는 대단한 야심가여서 유럽 전역을 자신의 손안에 넣기 위해 그야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였고 이때 함께 음모를 꾸몄던 자가 세상에서 가장 타락한 교황으로 미드 ‘보르지아(Borgia)’에서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알렉산데르 6세이다. 이자는 토르데시아스 조약을 선포해 스페인 포르투갈의 해외원정 독점권을 주며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이탈리아는 프랑스는 베네치아, 스페인 아라곤은 나폴리, 시칠리, 사르디나, 스페인 카스티야는 밀라노를 세력권으로 두고 나뉘어져 있었다. 이탈리아 안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프랑스보다 스페인 포르투갈 세력과의 협력이 중요했던 것이다. 결국 칼 5세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직계로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이고 스페인 왕가 페르난도 2세의 외손자이며 포르투갈 왕가와도 같은 합스부르크 일족이면서 로마 카톨릭의 수호자라는 권위까지 거머쥔 역사상 최초로 통합된 이베리아 반도에서 스페인이라는 나라 이름으로 최초의 왕으로 등극해 무적함대 스페인의 전성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더불어 독일 그림형제의 동화 백설공주의 원래 주인공인 아들인 필리페 2세와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한 왕족이 아닌 며느리를 독살한 매우 현실적이고 매정한 황제이기도 하다. 본부장이 좀처럼 이렇게 자세하게 기술을 하지 않지만 이 부분은 우리에게 중요한 대항해 시대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기에 자세히 설명하니 계속 경청하기 바란다.
16세기 무적함대 스페인의 전성기를 연 신성로마제국 황제가된 스페인 왕 칼 5세 ‘노란색은 합스부르크 왕가 통치 지역 & 붉은 색 선은 신성로마제국 판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5세 자화상
필리페 2세 시대의 스페인 포르투갈 동군연합 제국 영토 ‘아메리카 대륙,이베리아 반도, 이탈리아의 절반,네덜란드 그리고 동,서인도제도’
영국 메리 여왕의 남편이자 스페인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통치했지만 총 4번의 국가파산 선언을 했다. ‘필리페 2세’
특히 다음의 이름들을 꼭 주목하도록 해라. 막시밀리안 1세(독일), 알렉산데르 6세(교황), 칼 5세(스페인), 필리페 2세(스페인), 엘리자베스 1세(영국), 이사벨라 1세(스페인)만 이야기해도 몇 날 밤을 세워도 유럽 역사를 다 이야기하지는 못할 정도로 이들이 만들어낸 역사적 이슈는 실로 엄청나다. 솔직히 이 사람들만 제대로 공부해도 유럽에서 웬만한 저변의 이해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모두 한 시대를 접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역할을 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칼 5세는 이들과 시대적으로 중간에 위치하며 16세기 스페인 전성시대를 열었고 반대로 네덜란드에게는 가장 혹독한 시련의 시대를 열었다. 네덜란드가 칼 5세의 어마어마한 위세를 이어 스페인과 그 식민지를 정치적 종교적으로 철권 통치한 필리페 2세에게 대항하여 1568년 네덜란드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포하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30년 전쟁으로 개신교가 인정되는 계기가 되는 조약)에서 완전 독립을 인정받을 때까지 고난의 80년이 걸렸다. 하지만 완전 독립 이전에도 이미 해외 식민지 개척에서 네덜란드 공화국은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아메리카와 인도, 인도네시아, 호주 심지어는 남아프리카까지 네덜란드가 영국보다 항상 먼저 개척을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 이중 인도네시아만 지켰고 나머지는 영국에게 밀렸지만 말이다. 특히 호주는 인도네시아를 근거를 둔 네덜란드가 훨씬 유리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방식이 영국과 틀렸다.
인도네시아에서 매우 가까워 일찍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서 존재를 알고 있었다. ‘1606년에 네덜란드인이 첫 발견하여 New Holland로 명명’
네덜란드는 초기 포르투갈이 했던 방식처럼 거점 지역에 연락소를 설치하고 중개무역으로 이익을 보는 방식을 선택했기에 인도나 호주, 아메리카처럼 큰 대륙을 직접 식민지화하는 것에는 소극적이었다. 특히 호주는 전체 면적에 비해 거주 가능 지역이 매우 협소하고 위치마저도 구대륙에서 멀리 떨어져있어, 아시아 전역과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중개무역만을 주목적으로 하는 당시 세계 최초의 다국적 기업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입장에서는 그다지 매력이 떨어지는 곳이라 볼 수 있다. 한마디로 현지에 인프라까지 건설해주기에는 역량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뭐든 처음부터 시간을 갖고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자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영국의 경우는 무엇이든 성과를 이루려면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자국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4개 섬이 점차적으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작은 섬을 모아보았기에 큰 대륙도 모으는 것이다. 무엇이든 처음엔 다 힘들다. 아무리 쉬워 보이는 일도 일단 시작하면 괴롭고 지루함의 일상일 뿐 처음에 보았던 근사함은 온데간데 없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무슨 일에 임하든 이런 마음가짐을 처음부터 안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힘있는 기성세대 영감님들이 여러분을 눈 여겨 볼 테니 말이다. 이미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기회는 온다. 명심해라. 좋은 회사일수록 자리는 많은데 인재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호주 이주 역사를 보면 이런 인간사의 모든 과정이 녹아있다. 아니 호주뿐 아니라 근대에 이루어진 대항해 시대의 기록들이 모두가 그러하다. 처음에 먼저 누가 발견했느냐 또는 누가 빨리 움직였느냐가 중요해 보였다. 하지만 이 둘은 좀 더 지속력 있는 태도를 가진 자들에 의해 이내 자리를 내어 주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호주, 아직도 영연방 국가로 선진국중 유일하게 국기에 유니언젝을 쓰고 있다.
계획 없이 무분별하게 남미를 개척하면서 막대한 금과 은을 스페인 국내로 유입시켰음에도 스페인은 파산했고 북아메리카는 초기 진입자인 스페인 네덜란드를 따돌리고 프랑스를 제압한 영국을 거쳐 독립했다. 인도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가마가 발견해 네덜란드 그리고 프랑스를 제압한 영국을 거쳐 독립했다. 호주는 포르투갈 스페인 쇠퇴기에 맞추어 네덜란드가 최초 발견해 영국을 거쳐 독립한다. 무슨 상황극처럼 역할과 과정을 마치 정해둔 것처럼 동일하다. 이제는 여러분이 각 인과관계의 차이를 생각해 보길 바란다. 하지만 본부장이 보기에는 매우 심플하게 보인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모든 일 처리의 성사과정과 이해관계를 보는 것이 본부장이 이 글을 쓰는 주 이유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던 대로 일 처리의 핵심은 완성에 있다. 완성했다고 다 내 것이 되는냐 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인간이 지구상에 영원히 자신의 소유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먼지 하나도 없다. 인간이 오로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물건이나 사람 또는 나라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했던 기억이다. 내가 하는 기억과 남이 그리고 후손들이 하는 기억 말이다. 인생은 기억되는 자가 가장 부자다. 성경이나 다른 종교 경전을 비롯한 인류가 만든 모든 기록물에 그들이 한 행적으로 이름을 남기거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은 더욱 부자다. 그것이 실패했어도 아무것도 아니한 사람보다는 낫다. 다만 기왕 행한 일을 완성해주는 자가 가장 훌륭하다. 소유는 완성과는 틀리다. 완성은 과정을 전제로 하지만 소유는 그저 숫자나 글자의 희미한 흔적일 뿐이니 말이다. 본부장이 20여개 나라의 이야기를 뽑아 여러분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역사의 결과나 소유관계를 규명하고 싶은 게 아니다. 역사의 과정, 생각의 과정, 이해관계의 추론 과정 그리고 일 처리 과정을 여러분과 함께 대화하며 공유하고 싶었던 거다. 베스트 그룹핑 능력을 가진 실전형 인재는 오로지 공유할 만한 과정을 가진 자만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태평양에서 금성을 관측하다가 호주를 탐사한, 선장 리더십의 롤모델 ‘제임스 쿡 선장’
제임스 쿡의 탐사를 끝으로 전세계는 모두 유럽에 알려져 대항해 시대는 막을 내리고 식민지 시대가 도래한다 ‘제임스 쿡 선장이 완성한 대항해 시대’
총 3번의 항해를 통해 대서양과 태평양 그리고 베링해를 탐사한 제임스 쿡 선장 ‘과정적 완벽함과 결과적 완전함을 겸비한 리더십’
모든 일 처리 과정에는 항상 피할 수 없는 고단한 선택이 도사리고 있다. 큰 조직을 경영하면서 자신을 항상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떳떳하라는 말을 하는 이유는 나중에 한 갓 명예를 남기라는 뜻이 아니라 그가 앞으로 해야 될지 모르는 불가피하지만 인기 없는 선택 때문이다. 본부장이 리더십중에서 선장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느 지역의 총독이나 지방관의 리더십은 균형감각과 분별력에 큰 비중을 두지만 선장의 리더십은 이건 기본이고 대담함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결정을 하는 용기 말이다. 바다에서의 선장은 육지의 지방관처럼 자기 한 몸 처신 잘한다고 팔로워들이 따라주는 정착민들이 아니다. 모두가 큰 리스크를 짊어지고 함께 목표를 성취해야만 모든 행동의 보답이 생기는 완벽함이 아니라 완성품을 요구하는 리더십이다. 배위에 사람들과 항구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를 위해 반드시 빈 손으로 돌아갈 수 없는 리더십이다. 결과를 만들어 내야만하기에 과정까지도 오로지 리더십의 대상이고 심지어는 일의 시작 단계까지도 남다르기를 바라는 리더십이다. 본부장 정도의 신공이 아니라도 비롯한 웬만한 선장 리더십을 가진 전문가들은 잘 알고 있다. 인풋이 같으면 아웃풋도 같은 것을 무수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조금이라도 공정과정의 오차를 없애고 모수를 늘려야 하기에 완성품의 리더십은 과정상에서는 오히려 완벽함을 기하려 하는 것이다.
아웃사이더로 24살에 베스트셀러작가가 된 ‘콜린 윌슨’
인류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굽히지 않는 작가 ‘콜린 윌슨’
호주 이주과정을 보면 미국만큼 처절하다. 일단 시작부터 개척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서가 넘쳐났다. 경제성을 알아보는 것에는 유럽최고인 네덜란드인들도 외면한 곳으로 영국의 몇 몇 해적들이 다녀가면서 더 더욱 비관적인 보고가 난무했다. 결국 초기 호주 정착민은 미국처럼 종교적, 경제적 또는 정치적으로 자발적 이주민이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자발적이라 하더라도 본국에서 자생이 불가능한 죄를 짓거나 사회적 평판을 받은 사람들이 호주로 향했다. 영국 정부도 자발적 이주민을 모으기가 힘든 것을 알고 급속발전하고 있는 제국의 영역내에서 급증하는 죄수들을 우선적으로 투입했다. ‘잔혹의 세계사’를 쓴 영국작가 콜린 윌슨의 말을 빌리면 나중엔 사소한 경범죄를 지은 성인 남녀는 물론 어린아이, 청소년 범죄자들까지 호주로 이주시켜 식민지 개척을 통해 복역하게 했다. 우리가 영국인들을 국제적인 악당이라고 헐리우드 영화나 광고 같은 데서 곧잘 하게 된 계기가 다 식민지 개척 시기에 행해진 가혹한 결정들 때문이다. 인도의 세포이 항쟁 진압이라던지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분할 또는 아라비아 반도와 발칸반도 처리 및 분할 그리고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지중해 등 전세계 전략적 요충지역과 섬에 대한 할양과 민족이나 국가 분단에 개입한 것들을 여기서 다 말하자면 끝도 없다. 나쁜놈 들이다. 하지만 진짜 악당 소리를 듣는 이유는 자국민에게도 매우 엄격하고 가혹했다는 것이다. 호주로 끌려온 영국 성인 남녀나 어린이들은 모두 평소 같으면 가벼운 복역이나 구금에 끝날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정말 악질적 중범죄는 보통 사형이 내려지던 18세기 당시이니 말이다. 런던 시내에서 소매치기를 한다거나 매춘 또는 가벼운 사기를 친 사람이라도 바로 런던항에서 배를 타고 돌고 돌아 인도나 캐나다 아메리카에서 현지에서 체포되어 재판받은 죄수들을 더 태운 후 고향에서 수 천 킬로 떨어진 유형지 호주로 끌려갔다.
미국내 이탈리아 동족들의 민원을 들어주는 代父를 연기한 말론 브란도의 ‘대부’
영국 작가 서머셋 모옴의 ‘페인티드 베일’에서 영국인들은 고향에 대한 향수가 프랑스보다 매우 약하다고 한 이야기 뒤에는 다 이런 아픔이 있었던 것이다. 어디 고향이라고 인간의 따뜻함을 느껴봤어야 말이지. 어디가나 입바른 소리와 가혹한 규율이 난무하던 19세기 영국이다. 뭐 서민들은 어느 나라나 다 힘들었겠지만 말이다. 개중엔 정말 억울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부모 형제 또는 자식과도 생이별을 해야 했으니 아비귀환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누가 이런 무지막지한 결정을 기획했는지는 모르지만 시행과정에서 엄청난 소요가 났을 것은 너무나도 뻔하다. 유럽의 맞수인 프랑스가 식민지 경쟁 중에 유일하게 안걸고 넘어진 곳이 호주이기에 그야말로 영국 혼자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발버둥을 친 과정이라고 보아도 좋다. 본부장도 호주를 가면 항상 느끼는 것이 나라 전체가 신도시 같은 느낌이다. 죄인들이 수 천 킬로를 배로 끌려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한 땅이니 본국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이참에 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으리라. 호주가 전세계에서 살기 좋은 나라 최고라는 말은 예전에는 최고 지옥이었다는 말이다. 오래된 곳에서 칭찬이 나오기 힘들고 오래 사귄 사람과는 정이 깊지 않은 것이 인생사의 진리다. 서로가 무슨 사연이든 힘든 과거를 안고 이 척박한 땅에 와서 함께 일하며 과거 캐묻지 않고 조심하고 산 것이다. 현대에 가장 살기 좋은 나라는 나를 가장 모르는 나라라고 하지 않던가. 이걸 가장 먼저 샘플로 보여준 나라가 호주다. 미국을 가능성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지는 않는다.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이니 서로 어디 출신이냐 종교는 뭐냐 하면서 틈만 나면 끼리끼리 이합집산했을 것이다. 영화 ‘대부’를 보면 이탈리아계들이 미국에 이민 와 어렵게 성공하면서 자기들끼리 모여 아웅다웅 살지 않는가 말이다. 하지만 호주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서로 뭘 묻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부담스럽고 서로 원치도 않았을 것이다.
호주를 배경으로 한 이런 영화는 만들어 질 수 없다.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했던 호주’
명심하자. 모든 일에는 다 원인이 있다. 하지만 지금 나쁜 것이 나중에도 나쁘란 법은 없다. 단 지금부터만 잘 한다면 말이다. 올바른 과정은 언제나 나를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스스로 공들인 시간과 행동만이 나를 바꾸어 주는 것이다. 한갖 말도 행동이 되려면 목적이 있어야 된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는 말은 그저 쓸데없는 말이다. 신은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고 기도를 듣고 싶어한다고 한다. 기도는 목적이 분명한 말로 하는 행동이다. 호주보다 멋진 곳이 없다는 호주관광청 광고 문구는 역사상 호주보다 실제 행동이 많이 이루어지는 나라도 없다는 이야기다. 그냥 이루어진 것이 지금껏 하나도 없는 나라다. 그저 자연경관만 좋고 모두가 얻어걸린 인생의 행운을 즐기는 것처럼 눈알이 개슴치래 하다면 관광객뿐 아니라 어느 내국인이라도 그런 말을 당당히 할 수 있겠는가. 설령 했다고해도 한번 가보면 들통날 거짓말이다. 영국의 석학 에릭 홉스본의 '세상은 저절로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사무엘 스마일스가 그토록 외쳤고, 대영제국 영국 신사들의 기본 마음가짐이라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자조론(自助論)’을 이곳 호주에서 지난 300년동안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본부장은 호주를 보면서 스페인 치하의 남아메리카를 생각해보고 미국 초기개척시대 그라고 영국령 인도를 생각해 본다. 앞에서 말한 대륙들과는 호감도에서부터 뭔가 접근부터 다른 것이 호주 개척 역사다. 사람들에게 호주는 말 그대로 세상의 끝에 있는 유형지 즉 내가 좋아서 가는 곳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운명적으로 가야 하는 절대 가고 싶지 않은 땅이었던 것이다.
영국의 역사에서 바이킹은 빠질수 없다. 색깔로만 보면 영국은 완전히 민족들이 함께 사는 나라다. ‘11세기 바이킹의 영국 침입’
호주는 영국을 다시 한번 새로운 대륙에 만들어 본 또 다른 창조의 역사라는 결론내리고 싶다. 실전형 악당으로 유럽을 전율케 한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만 족 정복자 윌리암이 영국을 점령하며 시작된 개척의 역사를 시작으로 그저 처량하고 볼품없었던 나라 영국을 대영제국이라는 신사들이 산다는 희망과 영광의 나라( Land of Hope and Glory/ 엘가가 작곡한 잉글랜드 국가)로 탈바뀜하는 과정을 호주라는 허허벌판에서 다시 만든 것이다. 한번 하면 백번도 하는 것이다. 본부장은 영국인이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독일이 훨씬 좋다. 하지만 나의 개인적 취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공의 과정은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한다. 일처리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본부장이 좋아하는 책 중에 중국 근대작가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 The Importance of Living)’이란 책이 있다. 다른 나라 편에서도 언급을 한 바가 있지만 이 책의 제목대로 임어당은 생활을 강조했다. 생활은 말 그대로 일을 포함한 삶을 영위해가는 모든 과정이다. 인간은 결국 무슨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게 목적이다. 잘 살아내는 삶 말이다. 잘 살아내는 삶은 자연스러운 삶이고 자연스러운 삶은 삶 자체가 목적인 삶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삶은 반드시 개인적으로 예술적이어야 한다. 결국 인간이 원하는 삶은 자신이 삶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그게 예술적인 삶이다. 예술가의 삶을 산다고 예술적인 삶은 아닐 것이다. 예술가의 생활이 예술적이라면 모를까. 예술적이라는 것은 자기가 봐도 아름다운 것이다. 인간은 최종적으로 자기만족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 지금의 행복도 포기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이다. 우리가 호주에 가서 행복한 이유는 이곳에 처음 온 사람들이 느낀 그 주체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을 한 번 느껴볼 수 있는 자기 만족감 때문이다.
가진 것은 없지만 당당하게 본인의 일을 수행하며 꿈을 키워가는 청년 제임스 딘, 영화 ‘자이안트’
비록 성공했지만 꿈을 잃고 방황하는 노년의 제임스 딘, 영화 ‘자이안트’
본부장은 3년전 겨울 뉴욕 링컨센타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낭만도 생각했지만 이곳에 처음 발을 디딘 개척자들의 그 당시 마음을 떠올려보았다. 살을 에이는 추위에 고향을 등지고 비좁은 배를타고 얼음같은 바다를 건너 언 땅에 오른 그들의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그저 먹고 살자가 아닐 것이다. 이왕 고생하러 온 거 꼭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성공하자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저 밥만 먹고 살만큼만 일하자고 생각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말이다. 인간은 절박한 상황에 놓이면 생존을 위해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사의 상념을 넘는 더 큰 꿈을 꾸게 된다. 영화 ‘자이언트’에 나오는 성공하기 전 젊은 시절 제임스 딘처럼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는 외롭지 않다. 미래에 꿈꾸는 또 다른 나와 언제나 함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매튜 메커너히가 어려운 무명시절 미래의 나를 만나기 위해 언제나 노력했다는 말이나 호주 배우 러셀 크로우가 2015년 영화 ‘워터 디바이드’ 개봉기념 기자회견에서 무명시절 자신의 성공을 기원하며 새벽 5시에 시드니 공원에 가서 나뭇잎에 자신의 소원을 적고 묻으며 '세상에 나보다 열정적인 사람은 없다'는 자부심을 가졌다는 말은 인간이 절박한 상황에 오히려 진실로 외롭지 않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본부장도 호주를 가면 항상 느끼는 감정이 글로벌 비지니스에 대한 강한 열망이다. 뮌헨이나 런던 그리고 뉴욕에서는 느끼는 감정과는 조금 다른 자신의 내면에 대한 지독한 다독거림이 느껴진다. 본부장은 가끔 스스로 나태해졌다는 느낌이 들 때면 일부러 비행기로 호주로 날아가 시드니 새벽거리를 걸으며 나의 인생에 대한 다짐을 하곤 했다. 그만큼 시드니는 내게 잠재된 열정을 일깨워주는 곳이었다. 웬만한 유럽 국가 오페라 하우스는 다 돌아보았지만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가보지 않은 것도 아마 내게는 예술보다는 비지니스적 열정이 먼저인 도시였기 때문이다.
영화 ‘천일의 앤’의 비운의 주인공 앤 볼룸이 바로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
통상 영웅들이 격는 통과의례적 시련들을 모두 갖춘 어린시절을 보내며 자신을 스스로 담금질해 나간 ‘엘리자베스 1세’
시작부터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나라 호주.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살고 싶은 나라. 앞서 이야기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5세는 어린시절 어머니가 정신병을 앓고 아버지는 바람둥이로 살다가 일찍 죽어 조부인 선황제인 막시밀리안 1세가 이를 못마땅해 하여 계속 황위계승을 미루었다고 한다. 결국 합스부르그 왕가의 적통임에도 불구하고 유럽 각지를 떠돌며 결국 스페인이라는 변방의 일개 대공으로 보내지는 서러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런 서러운 환경적 경험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칼 5세는 영웅적 풍모에 걸맞는 활달한 기질과 5개국에 능통하는 언어능력을 얻었고 결국 최초의 스페인 국왕이면서 고생 끝에 최종적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는 영애를 얻는다. 그의 이런 드라마틱한 역사를 담은 베르디 오페라가 바로 ‘에르나니’다. 그가 어린 시절 서럽게 돌아다녔던 지역은 그대로 그의 우군이 되었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손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연방은 물론 스페인, 포르투갈 및 그들이 개척한 아메리카와 아시아의 식민지 그리고 이탈리아 반도까지 그의 발 아래두는 그야말로 스페인 최전성 시대를 여는 왕이 된다. 이후 왕가의 인생 역전의 드라마는 바다건너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쓰는데 아버지인 헨리 8세의 미움을 받아 목이 잘려 죽는 ‘천일의 엔’으로 유명한 엔 볼린의 딸로서 어린시절 온갖 핍박을 받아오다가 이복 언니인 메리 여왕시절에는 반역의 수괴로 몰려 런던탑에 갖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의미 없이 이어간다. 이때 런던탑에 갖힌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신의 신세를 극복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엄청난 문장력을 과시했다고 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가상의 인물이고 실제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는 설이 있다.
잠시 막간에 그녀의 시를 한번 음미해보자.
이 시는 엘리자베스가 남긴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임은 떠나는데(On Monsieur's Departure)’라는 시의 첫 번째 연이다.
나는 애통해하지만 감히 불평을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I grieve and dare not show my discontent,)
나는 사랑하지만 아직도 미워하는 척하려고 합니다.
(I love, and yet am forced to seem to hate,)
나는 아직도 내 마음을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I do, yet dare not say I ever meant,)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만 속으로는 끝없이 재잘거립니다.
(I seem stark mute but inwardly do prate.)
나는 나면서도 아니고, 얼어붙었으면서도 아직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I am and not, I freeze and yet am burned,)
내 자신으로부터 또 다른 자신에게로 돌아서기 때문입니다.
(Since from myself another self I turned.)
다음은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결전을 앞두고 해군 장병들에게 한 연설이다.
나는 내가 연약하고 가냘픈 여인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는 왕의 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국왕의 심장 말입니다.
1차세계대전 터키 갈리폴리 상륙작전 중 전사한 아들들에 대한 아버지의 비애를 담은 호주영화 ‘워터 디바이너’
호주를 처음 발견한 네덜란드인들은 호주를 뉴 네덜란드라고 명명했지만 앞서 말했듯이 투자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하여 개척에 손을 떼게 되었고 이후 1699년 영국의 해적이면서 항해사, 탐험가, 작가이자 요즘 나오는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의 모티브가 된 윌리엄 뎀피어가 호주를 영국인으로서 처음 조사하지만 100년전 네덜란드인들과 마찬가지로 비관적인 보고를 하게 된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1769년 여러 방면에서 해박한 과학적 지식을 겸비한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호주를 탐험하고 그 가능성에 깊이 감명받아 ‘국왕의 이름과 국왕의 깃발 아래 이 땅을 점령한다'라는 극적 표현을 사용해가며 뉴사우스웨일즈라고 다시 명명했다. 그리고 곧바로 호주 개척에 대한 긍정적 검토를 요청하는 보고를 하게 되면서 호주는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처음 발견된지 160년이나 지나서 말이다. 1492년 그토록 열망하던 인도를 찾기 위한 유럽인들의 염원으로 아메리카와 태평양 그리고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고 나서 300년 정도 지나서야 가치 있는 신대륙으로 대접받게 된 것이다. 더구나 앞에서 러셀 크로우도 한 얘기지만 호주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이 해군성 장군재직시 졸속으로 기획했다가 적아군 도합 50만명의 사상자를 내며 대패한 갈리폴리 상륙작전에서 호주군 수 만 명의 사상자를 낸 아픔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이 트라우마가 상당하다. 2차세계 대전에서도 연합국인 모국 영국을 위해 많은 호주 젊은이들이 죽었다. 19세기 신사의 나라 대영제국에서 제대로 행세 한번 못해보고 죄인으로 유형지에 끌려와 죽을 고생을 해서 자리를 잡았더니 나중에는 그 자식들대까지 희생을 강요당한 나라가 호주다. 이처럼 호주는 시작은 고달팠고 과정도 애처로왔지만 끝이 아름다운 나라다.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나라로 치면 호주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주에서 바라본 정말 아름다운 ‘호주 대륙’
제18편 쿠바
체 게바라와 헤밍웨이 그리고 모히또의 나라, 쿠바
(1) 프로세스적 정당성의 힘과 또라이 제로 조직
- 입력 : 2017.07.11 19:27:03 수정 : 2017.07.11 19:31:17
케빈 코스트너와 존 F 케네디가 정말 멋져 보인 영화 ‘JFK’
지금으로부터 30년 정도를 거슬러 올라가면 최근엔 슈퍼맨 아버지 연기로 잠깐 나오는 영감님이지만 당시엔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배우가 케빈 코스트너다. 언터처블, 노웨이 아웃 등으로 스타덤에 올라 JFK와 보디가드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한 배우다. 본부장도 대학생 때 그의 영화를 정말 좋아했었다. 특히 본부장의 전공이 그쪽이라 JFK는 몇 번씩 봤었다. 당시에는 그 영화를 보면서 내가 그 영화의 내용을 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학교 앞 카페에 앉아 옆 여대를 다니던 여자친구에게 으스대며 이 영화의 역사적 배경을 알려준답시고 열 올리던 게 생각난다.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나이가 들어 보니 이제야 그 영화의 이해관계가 보이더라. 1960년대 아메리카 대륙을 둘러싼 국제정치를 빛내던 사람이 세 사람 있었다. 존 F 케네디,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다. 케네디란 이름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들에 대해서 내가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여러분이 구글에서 찾아보면 다 나올 얘기니 말이다. 본부장이 여러분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역사의 스토리가 아니라 역사가 말해주는 진실이다. 영화 JFK는 우리가 잘 알지도 못했던 케네디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추론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미국 보수가 가지고 있던 기득권에 대한 위협이 결국 그를 죽였다는 내용이다.
피그만 침공의 잔해를 살펴보고 있는 ‘피델 카스트로’
그렇다면 미국 보수는 무엇인가. 여러분은 보수와 진보를 어렵게 생각하는 거 같다. 본부장이 쉽게 이야기해주마. 보수는 생산수단을 가진 자다. 진보는 생산물의 분배과정을 비판할 수 있는 자다. 이게 다다. 가진 자는 비판할 수 없다. 가졌기 때문이다. 미국이 가진 자산이 무엇인지를 잠깐 보자. 미국은 20세기를 기점으로 유럽을 넘어선다. 원래 서구 문명 중심으로 보면 유럽이 인류 역사의 중심이다. 일단 인정하고 들어가자. 본부장이 누차 이야기하지만 나를 대중적인 평균점에서 떼어놓는 순간 나는 보편성을 잃는다는 걸 명심해라. 언제나 상식에서 시작해야 한다. 상식이란 10명 중 8명이 갖는 생각이다. 제발 부탁인데 지엽적인 생각은 생활에서만 하자. 그래서 본부장이 생활의 발견을 얘기하지 않았나. 개인적 생활에서는 자신만의 우주를 가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 사회 문제에서는 철저하게 상식적이라야 한다. 내가 무엇을 믿거나 좋아하느냐는 현실에서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 유럽이 전 세계의 글로벌 국제표준이 된 지가 된지가 벌써 200년이다. 그런데 미국이 모든 면에서 그런 근대문명의 기준인 유럽을 이겼다고 생각한 게 20세기 들어오면서부터다. 그래서 먼로주의 같은 미국 고립주의가 나온 거다. 미국이 가진 모든 자원과 스스로 사회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이미 유럽을 압도하고 있었다. 당시로써는 그들이 봐도 자랑스럽고 신선했을 것이다. 여기서 미국 보수가 시작되는 것이다. 보수란 자신의 공동체적 자산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 세력이다. 그들이 만든 아메리카가 가진 모든 유무형의 세련된 자산 말이다. 영화를 보면 피그만침공 실패가 대통령의 불행한 결말의 주된 모티브로 작용한다.
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는 영화 ‘마진 콜’
미국 CIA가 미국의 국익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압도적 대중의 지지를 받고 수립된 쿠바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여기서 CIA는 미국 보수를 상징한다. 어느 나라든 정보기관은 다 보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닌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국가 존립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가치를 가진 조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케네디가 뒤늦게 반기를 들고 나서서 쿠바 침공은 실패하게 되고 여기에 대한 반동작용으로 보수세력이 대통령을 제거한다는 스토리가 영화 ‘JFK’다. 뭐 사실일 수도 있고 가능성도 있다. 중요한 것은 케네디가 CIA를 방해했다는 것이 아니라 왜 CIA 또는 미국 보수가 쿠바를 침공하려 했느냐는 것이다. 본부장이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메리카 특히 남미는 스페인의 비상식적 폭정이 극에 달했던 곳이다. 천민자본주의라는 게 뭔가. 추구할 최고의 가치가 없는 오로지 본능에 충실한 상업 자본주의를 말한다. 오로지 돈 말이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강조했고, 또 영화 ‘마진 콜’에서 제레미 아이언스가 말한 것처럼 돈은 그저 돈일 뿐이다(Money is money). 인간은 생산해야 스스로 존재가치를 느끼는데 돈은 그저 가졌다는 느낌만을 드는 종이 징표이다. 남미에서 수백 년 동안 자행된 변태자본주의는 대륙의 대중들에게 심각한 참담함을 주었다. 그들이 자본주의 자체를 더럽게 생각할 수 있게 말이다. 당시 남미는 더는 자본주의를 지지하지 않았고 좀 더 정당성 있는 사회 시스템을 원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 독일에 승리한 후 미국의 전쟁 수행 능력의 목표는 동시 두 개 전쟁 수행이다, ‘걸프전;사막의 폭풍 작전’
북아메리카 유럽 이주민들처럼 스스로 힘들여 만들어낸 더 없이 이상적인 공동체라는 자부심이 없이 그저 착취자와 피착취 자만이 존재하고 존경심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중남미의 해당 구성원들에게 그곳은 그저 버리고 싶은 현실이었을 것이다. 남미의 수 많은 국가가 만들어진 과정을 보면 대부분 스페인의 몰가치적인 지배에 피로를 느낀 스페인 출신 군사 엘리트들과 그들에게서 유럽식 교육받은 혼혈 토착민들의 반란이다. 인간은 가슴속에 누구나 신이 부여한 양심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칸트가 이야기한 '오성'이나 아담 스미스가 말한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한 선량한 관리자'말이다. 이 선량한 관리자들이 스스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건 아니라고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러 승리한다. 이건 현대 국제정치판의 모형을 만든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유럽과 태평양 전쟁 말이다. 외계인이 그 완벽함에 손사래 치고 도망 간다는 절대 신공 독일도 무모하게 두 개의 전선을 시도했다가 국가 폭망을 맞았다. 하지만 미국은 태평양에서 일본과, 유럽에서 독일을 상대로 그들을 동시에 제압했다. 일본은 현재도 독일 영국 이탈리아를 다 합친 경제력이라고 보면 된다. 어마어마한 국력이다. 당시도 독일과 비교해 뒤떨어지지 않는 국가적 생산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 국제 정치에서 두 제조업 대국인 독일 일본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표면적으로 굴복하는 이유는 그런 놀라운 미국의 힘을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매가 무서운 건 맞아본 사람이 가장 잘 안다. 그런데 이런 미국도 쿠바를 어쩌지는 못했다. 왜일까. 바로 절차적 정당성 때문이다. 사실 베트남도 마찬가지 이유다.
그룹핑 능력(Grouping Ability)을 갖춘 실전형 인재 ‘체 게바라’
여러분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어린아이 같은 조바심에 의한 결과 지향주의는 실패다. 비용도 많이 들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남는 게 없다. 투입된 노력에 비해 그야말로 완전히 밑지는 장사라는 것이다. 미국의 피그만 침공은 남미를 자신의 세력권으로 두려는 피상적인 이해관계적 사고에서 나온다. 쿠바에서 대중들이 왜 반란을 지지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숙고도 없이 말이다. 베트남을 건드려서 공연히 적국으로 만들어 버린 것처럼 미국은 조바심으로 시작한 피그만 침공으로 쿠바를 적으로 확정 지어 버렸다. 원래 적이란 것은 남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적으로 생각하는 순간 적이 되는 것이다. 본부장이 한 수 가르쳐주마. 적을 만들지 않는 방법은 내가 그를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적과 친구는 원래 없다. 그저 이해관계가 맞으면 얼마든지 바뀌는 것이 적과 친구다. 쿠바 혁명이나 베트남 혁명은 그저 개별 국가적 자존감의 순수한 표현이었다. 당시에 미국은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쿠바의 그것을 공산혁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피그만 침공이 실패로 돌아가고 이어 쿠바 미사일 사태가 온다. 올 게 오는 것이다. 명심해라. 한 번 잘 못 건드린 문제가 더 큰 문제를 몰고 온다는 것을. 미국이 가장 싫어한 상황이 벌어져버린 것이다. 소련의 호루시쵸프가 남미에서의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말이다. 베트남처럼 쿠바도 가만히 놔두었으면 그저 중립적 제3세계로 남았을 나라를 미국 보수들의 섣부른 조바심 때문에 적극적 적국으로 몰고 간 것이다.
민주주의 제국, 미국의 부적절한 대외 정책 1호 ‘쿠바 피그만 침공’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이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이다. 막스 베버의 리더십 분류로 보았을 때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는 당시 매우 합리적인 리더십을 가진 존재였다. 개인적인 매력도 물론 상당했지만 그들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은 합리성 또는 정당성에 있었다. 오히려 케네디는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보면 맞다. 재미있는 것은 둘 다 전통적인 리더십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특히 체 게바라 같은 경우는 의대를 졸업한 엘리트임에도 대중들의 편에서 스스로 무장 혁명을 리드하며 대중의 공감을 샀다. 합리적인 리더십이란 절차적 행동에 대한 대중적 공감이다.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대중적 공감과는 별개로 개인적 특징에 의한 호감이 가는 리더다. 대부분 외모나 말 또는 연설에 의한 공감이라고 보면 맞다. 전통적 리더쉽이 모든 것을 결정했던 나폴레옹 이전의 시대를 이제 누구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이 세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미국 보수가 이 전통적 리더십에 대한 향수를 떨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피그만 침공은 미국이 주도적으로 쿠바계 미국인들(민중 혁명 전까지 대부분 불법적인 이권을 거머쥐었던 마피아들. 영화 ‘대부’에서도 잠깐 나온다)을 훈련시켜 침공시켜 놓고 대중들이 봉기한 것처럼 위장하려 한 일종의 사기다. 문제는 피그만에 상륙한 사람들을 대중들이 합심해서 3일 만에 전원 체포했다는 게 스토리의 끝이다. 민심이라는 게 이래서 무서운 거다.
시민들의 자발적 저항으로 6시간만에 진압된 ‘터키 쿠데타’
현재 시각 터키 시민들이 쿠데타 세력에 대항하는 모습 ‘터키 쿠데타 사태’
본부장이 쿠바 편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각 터키에서 쿠데타가 터졌다고 한다. 요즘 세상에도 쿠데타가 일어난다니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이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쿠데타의 이유는 군부의 일부 중 이슬람 세속 주의를 지향하는 무리가 좀 더 원리주의적인 현 정부에 대해 일으킨 반란이란다. 본부장이 이란 편에서 말했지만 터키는 수니파이다. 시아파인 이란에 비하면 매우 세속적인 국가이다. 하지만 세상사란 모든 게 상대적이다. 수니 중에서도 더 세속적인 것을 원하는 무리도 있었겠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결과는 수천 명의 반란 기도 세력이 체포되면서 끝이 난다. 대중이 쿠데타 가담자에 대해 대대적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CNN 영상에 나오는 상황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쿠데타에 저항하고 있다. 결국 민심을 얻지 못한 쿠데타는 현재 시각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쿠바 피그만 침공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와 절묘하게 매치되는 해프닝이다. 사실 과거 러시아에서도 이런 군부 쿠데타가 민중들에 의해 실패로 돌아가고 그 쿠데타에 대한 저항의 상징인 보리스 옐친이 쿠데타 세력의 탱크 위에 올라가 러시아 국기를 흔들던 모습이 아직 눈에 생생하다. 자 진실을 말해주마. 대중이 원하는 것은 의도의 옳고 그름이 아니다. 절차의 옳고 그름이다. 절차라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배려다. 대중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자신에 대한 인간적인 무시인 것이다. 존엄한 나의 존재에 대한 무시 말이다. 보통 각국의 보수들이 실수하는 것이 이거다. 올바른 의도를 비뚤어진 절차로 실현하려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도 향후 큰 조직의 리더가 될 것이니 꼭 명심하기 바란다. 어려운 길이라도 절차를 밟아서 가야 구성원의 공감을 받으며 일을 결과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가 있다.
피그만 사태를 맞아 직접 행동하는 실전형 인재 ‘피델 카스트로’
물론 기업이라는 곳은 급료를 받는 곳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불합리한 일들도 따라야 할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이 중요한 줄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심정적으로나마 나를 이해해줄 구성원이 더 많아질 테니 말이다. 부족하지만 옳은 절차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해라. 비록 결과적으로 그 뜻을 실현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결과 지향주의에 빠지면 이러한 공감의 리더십이 작동하지 않는다. 영화 ‘JFK’에서 주장하는 대로 케네디가 피그만 침공을 반대해 보수의 앙심을 샀다면 역사의 좋은 편은 케네디가 되는 것이다. 본부장도 추론상 케네디가 반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사망 직전까지 해왔던 언행을 종합해보면 말이다. 즉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프로세스적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말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공명의 말대로 '남들이 모르게 할 일은 처음부터 하지를 말라'고 했다. 바로 프로세스적인 정당성을 반드시 갖추라는 말이다. 그래서 케네디, 카스트로, 게바라는 지금도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셋 다 잘 생긴 것도 사실이고 나름 본인들의 캐릭터를 잘 다듬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알아가겠지만 언제나 피상적인 것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언제나 당장 쉬운 길을 가려 하는 사람들 말이다. 뭐든 시간을 들여야 인정받는다는 것을 명심해라. 캐릭터도 오랫동안 준비해온 것이라면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오랫동안 준비된 캐릭터는 나만의 차별화된 콘텐츠가 되기 때문이다. 본부장이 강의 때마다 마지막에 '스스로 빛나는 자'가 되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오랫동안 준비한 캐릭터로 만들란 말이다.
혁명전 쿠바 음악과 사회 상황을 담은 스페인 애니메이션 영화 ‘치코 앤 리타’
90년대 후반 전 세계적으로 쿠바 음악 돌풍을 일으킨 쿠바 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이런 미친 보수세력에 비하면 쿠바의 체 게바라나 카스트로는 격이 다른 리더다. 아르헨티나 독재자 ‘호르헤 비델라’
군부 독재 세력에 의해 자행된 더러운 전쟁 중 실종된 아들과 딸을 찾는 아르헨티나 어머니들 ‘Argentina's Dirty War’
쿠바는 앞서 말한 세 명의 멋진 남자들이 물려준 정치적 유산 외에도 유난히 상징물이 많은 나라다. 콜럼버스가 인도인 줄 알고 최초로 발견한 서인도 제도에 위치한 나라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모티브가 된 수많은 해적들이 활약했던 곳이다. 우리가 놀이동산에 가면 있는 캐리비안베이가 실제 쿠바에 있는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기후나 주변 환경이 지상의 천국이 따로 없다. 거기에 세계적 상남자 작가 헤밍웨이가 칵테일 모히또를 마시며 집필활동을 하며 말년을 보냈던 곳이다. 물론 죽음도 거기서 맞았다. 헤밍웨이는 본부장이 중간중간에 이야기한 게 많기에 더 깊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쿠바는 사실 젊은 층에게는 라틴음악으로 유명하다. 한 5년 전에 개봉한 스페인 애니메이션 영화 ‘치코엔 리따’를 한번 보라. 쿠바 음악의 아름다움과 혁명전 쿠바의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친근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90년대 후반에 이미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쿠바 음악의 아름다움은 전 세계에 소개된다. 쿠바는 혁명 이후 서방에게는 타부 즉 금기사항이었다. 대중의 지지를 받고 수립된 사회주의 국가이고 그 국가적 운영도 매우 설득력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칠레의 피노체트나 그 유명한 '더러운 전쟁'을 수행했던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비델라 같은 남미의 미친 보수세력들이 보여준 몰상식에 비해 쿠바는 너무나 상식적이었다. 아마 당시 남미에서 쿠바 민중이 가장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경제봉쇄로 풍요와는 거리가 먼 사회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보통 풍요로움은 적절함을 넘어 지나침을 시도하려는 보수들이 주로 쓰는 신기루 같은 캐치프레이즈다. 나중에 보면 누구도 거머쥔 사람이 없는 그것 말이다. 적절함를 무시한 풍요로움에는 독이 들어있다.
세계에서 가장 호소력 있는 국가 캐릭터를 가진 프랑스의 ‘자유 박애 평등’
오바마의 재선 캠페인 ‘Forward’
겉으로는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직을 갉아먹는 회사 안 또라이들을 제거하라. ‘The No Asshole Rule’
쿠바의 매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쿠바를 그렇게도 저주했던 미국이 만들어 준 것이다. 스스로 빛나려는 자에게 칠흑 같은 어둠을 선사하며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대항해 시대 신대륙 발견에 따른 극도의 풍요로움을 쫓던 환락과 타락의 섬에서 가장 올바름을 실현하기 위해 젊은이의 순수함만을 믿고 들고일어나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시작한 나라로 알려진 쿠바. 어느 사회나 혼자 깨끗하려고 하면 시련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일단 시작했으면 그것 또한 자신만의 캐릭터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프랑스가 그 위험한 사회 개혁 모델을 시도한 것 자체만으로 지금도 두고두고 정의로운 국가 캐릭터를 선점해 우려먹고 있지 않은가. 어디 사람 사는 곳에 더러움이 없겠는가 말이다. 프랑스가 대혁명 이후 너무나 멋진 캐치프레이즈인 자유 박애 평등을 내세우다 결국 스스로 제국을 칭하며 전 유럽을 전쟁으로 몰아넣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와 캐치프레이즈를 선점한 자가 가장 유리하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식민지 출신이라는,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들의 선점 때문이다. 긴 안목을 가지라는 것은 긴 시간이 흐른 후 구성원이 적극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스스로의 캐릭터와 캐치프레이즈를 미리 생각해두란 얘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것인데 인간에 대한 지나친 기대도 금물이지만 지나친 비하도 금물이다. 여기서부터 소위 변태 즉 또라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본부장이 항상 조직에서 만들려고 했던 필승의 조직 원칙이 바로 또라이 제로 조직(The No Asshole Rule)이다. 한 번 찾아서 읽어보기 바란다. 아마 피그만 침공도 그런 또라이가 계획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쿠바 미사일 사태도 만약 케네디가 아니라 웬 또라이가 판단했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할 따름이다. 본부장이 이 책을 쓰는 이유다. 올바른 판단력을 갖춘 리더의 양성이 그렇게 간단치가 않기 때문이다. 쿠바 편을 빌어 여러분의 분발을 다시 한번 촉구하는 바이다.
<코르코바도 예수상>
1922년 9월 7일 브라질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건축된 리오 데 자네이로의 <코르코바도 예수상>
코르코바도 예수상에서 내려다본 <리오 데 자네이루의 야경>
영화 ‘분노의 질주’ 5번째 시리즈인 언리미티드의 첫번째 장면은 리오 데 자네이루의 예수상에서 시작된다. 리오 데 자네이루는 포르투갈어로 1월의 강이란 뜻이다. 본부장은 응원단으로 한창 바쁘던 대학 1학년부터 스페인어를 배웠다. 발음도 재미있고 무엇보다도 색다른 풍미를 주는 언어가 매력 있어 보였다. 그때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던 첫 단어가 리오 데 자네이루다. 물론 스페인어가 아닌 포르투갈어지만 당시에는 아마 스페인어식 지명 이름을 이야기 해주면서 예를 들어주신 걸 거다. 리오 그란데(큰 강), 푸에르토 리코(풍요로운 항구), 상파울로(성 바울) 등 같은 뜻이라도 영어식 보다 무척 시적이며 은유적이다. 물론 실제 뜻은 매우 식민지 침탈의 잔재가 남아있다. 1월의 강도 미루어 짐작컨데 1월에 발견된 강이라는 뜻일 거 같다. 물론 포르투갈인에 의해서 말이다. 브라질은 일반적으로 축구를 제외하고는 썩 좋은 글로벌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거기 사시는 분들은 아름다운 추억이 많겠지만 뉴스나 미디어 컨텐츠로 전해지는 브라질은 보통 조직 범죄, 빈민가, 부패 공무원, 부족한 기반 시설 등이 떠오른다. 실제 영화 ‘분노의 질주’에서 보여지는 브라질 최대 도시의 모습은 본부장이 브라질 사람이라면 너무나도 화가 날 정도로 열악한 모습이다. 위에 열거한 단어들은 물론이고 영상이 주는 누추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궁색 맞다. 본부장은 이 영화를 보며 이런 영상을 브라질의 맨 얼굴인양 허용한 브라질 정부에 더 큰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전역이 대학시절 본부장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느낀 스페인어 또는 포르투갈어를 써가며 부적절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지만 말이다.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나라 <브라질>
1889년 11월 15일 8시 30분 리우의 밤하늘을 보며 공화국기를 만들기 전 제정시대 <브라질 국기>
브라질은 러시아, 캐나다, 미국, 중국에 이어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고 다음은 호주와 인도가 뒤를 따른다. 본부장이 이런 순서를 나열하는 것은 중요한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중국 인도를 제외하고는 신대륙 국가이다. 러시아는 유라시아의 중앙을 점하고 있는 지구의 중심 국가이다. 중국은 유럽에서는 극동이라고 불렀지만 스스로 중심을 칭한 나라다. 인도는 앞에 말한대로 인류 역사상 가장 찾아가야 할 대상이었던 곳이다. 세 곳은 모두 상징적인 입지를 가진 나라들이다. 반면에 캐나다, 미국, 브라질, 호주는 모두 인류(개척자와 원주만 모두)의 피와 땀이 서린 처절한 현실이라는 흙바닥에서 최근 400년사이에 만들어진 나라들이며 나라 자체가 대륙이다. 여러분들이 세계지도를 한번 펴고 보라. 엄청나게 작은 나라들 사이에 큰 나라들이 있는 이유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는가. 큰 나라도 작은 나라들로 분열될 수 있고 작은 나라들도 큰 나라로 합쳐질 수도 있다. 두 과정 다 많은 노력과 희생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왕 같은 고생을 한다면 큰 나라를 만드는 게 좋다고 본다. 그것은 큰 나라가 주는 위압감이나 대외적인 이미지보다는 큰 나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구성원들의 타협과 설득 그리고 경쟁에서 만들어지는 공동체적 자부심이라는 후대에 전해줄 소중한 자산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리오데자네이루를 배경으로 촬영한, 하루를 살지만 자부심 있게 사는 사람들의 스토리 <분노의 질주 시리즈 5>
본부장이 누차 이야기하지만 눈에 보이는 자산은 안심을 주지만 보이지 않는 자산은 자부심을 준다. 안심은 어제를 담보로 한 미래에 대한 부작위다. 반면에 자부심은 인간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멘탈리티의 추동력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인간은 눈으로 보고 안심을 하고 마음으로 안주를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내 불안함과 조바심을 느끼게 마련이다. 흐르는 시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말이다. 그래서 인간은 또 움직이려 한다. 마치 돌아오면 이내 떠나려하고 떠나면 돌아오려 하는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안주하다 일어난 몸과 마음은 싶게 움직여주지 않는다. 힘이 없어서나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은 스스로에 대한 감동에서 나온다.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는 스스로에 대해 감동할 때다. 스스로 대견한 사람은 그래서 남에게 자신의 모습을 견주느라 불안에 떨지 않는다. 인생은 언제나 혼자이기에 자기 안의 선량한 관리자를 만족시켜주면 그가 해주는 칭찬에 그저 즐거울 뿐이다. 인생이 힘든 이유는 바로 내 안의 관리자가 주는 질책 때문이다. 자부심이란 결국 그 관리자가 내게 주는 포상이다.
스페인과는 차별화된 포르투갈의 식민지 방식이 시도된 브라질
이런 통과의례를 거친 자부심이 더 선명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국가일수록 현재 세계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어있다. 우리에게 브라질은 그러한 선망의 국가는 아닌 것 같다. 영화 ‘분노의 질주 5’를 보면 리오 데 자네이루의 마피아 두목이 브라질을 제외한 남미의 스페인 정복과정을 비판하는 대목이 나온다. 스페인이 시도한 대가 없는 일방적인 포악한 통치에 비해 포르투갈의 대가를 전재로 한 거래의 합리성을 예로 든다. 뭐 극중 그 양반이 할 얘기는 아니지만 말은 맞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네덜란드나 포르투갈은 식민지 개척 과정이 현지 직영보다는 무역소를 중심으로 한 거래에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해당 원주민들과도 큰 마찰이 없었다고 한다. 브라질이 인근 남미 국가들보다 축제나 음악 같은 엔터테인먼트 문화가 발달한 이유도 살아온 과정이 비교적 덜 가혹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브라질은 1822년 9월 7일 무혈 독립을 이룬다. 포르투갈 돈 후앙 6세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게 쫓겨 리스본에서 당시 식민지였던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루로 천도한지 13년만인 1821년에 다시 본국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리우에 남게 된 아들 페드로 1세가 브라질 초대 황제가 되면서 말이다. 몸이 떨어지면 맘도 멀어지는 법이고 권력은 자식과도 나눌 수 없다는 말이 여기 브라질 독립과정에서 역력하다.
축구와 더불어 브라질의 차별화된 국가 콘텐츠 <브라질 카니발>
브라질은 독립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건 물론이고 독립 이후에도 매우 안정된 모습을 보이며 인근 남미 국가들의 불안한 정치 상황과는 차별화를 보인다. 물론 나중에 가면 마찬가지로 쿠데타를 반복하며 불안해지지만 아르헨티나나 볼리비아, 칠레처럼 국민들에게 극도로 무자비했던 독재 권력은 존재한 적이 없다. 오히려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큰 영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강력한 관리력을 가진 정부의 부재나 사회적 포퓰리즘이 더 큰 문제로 작용한다. 브라질의 경우는 중앙정부보다 지방이나 말단 공무원이 더 부패가 심하다. 본부장이 경험해본 바로는 상류층의 브라질 역사나 상징에 대한 자부심은 상당히 강한 편이다. 반면에 국민들이 느끼는 정부의 효율성은 매우 부정적이다. 이 부분은 칠레가 남미 최고다. 아르헨티나도 괜찮은 편이다. 과거 국부 독재가 오랫동안 심했던 나라들은 당시에는 매우 암울했지만 정권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일사불란한 행정 서비스라든지 도시 기반 시설 같은 국가적 사업에 많은 공을 들인 결과 외국인이 느끼는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반면에 브라질의 경우는 멀쩡한 대도시에서 총기를 난사하는 범죄조직이 활보할 정도로 국가 공권력에 대한 국민적 존경심이나 신뢰가 매우 약하다. 모든 것이 국가 공동체 구성과정에 있어서 통과의례적 자부심이 부재한 탓이다.
아프리카 노예가 최대 500만이 유입되어 착취당했던 브라질 플랜테이션 농장은 지리적으로도 아프리카와 가깝다.
브라질은 원래 당시 붉은 색을 띠는 최고급 염료로 쓰이는 브라질 나무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하는데 브라질이란 말 자체는 아일랜드 인근의 상상의 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브라질을 발견한 포르투갈인들은 베라 크로즈(진실된 십자가)또는 산타 크로즈(성스로운 십자가)로 불렀고 마찬가지로 브라질을 섬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무슨 탐사라도 해보고 판단하면 될텐데 무턱대고 겉만 보고 판단하면서 섬이네 대륙이네를 결정했다는 것 자체가 본부장이 보기엔 처음부터 매우 어설퍼 보이는 부분이다.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은 태평양을 3번이나 일주하는 여정을 통해 인근을 꼼꼼히 탐사하며 호주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한 것을 보면 매우 비교되는 부분이다. 아무튼 유럽인들은 브라질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아마도 영국이 좋아했을 것이다. 실제로 브라질 독립도 당시 최강국이었던 영국의 승인이 주요했으니 말이다. 19세기에 세계적인 중재는 대부분 영국이 주재했다. 당시 약소국가나 식민지의 독립이나 영토의 할양은 대부분 영국이 관할했다고 보면 된다. 물론 프랑스 이익에 반대되는 쪽으로 말이다. 포르투갈의 브라간사 왕가가 리스본을 버리고 리우로 천도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 것도 영국이었다. 그냥 나두면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 있는 왕가의 부가 모두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게 갈 것을 견제한 시도였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마스코트 <비니시우스(Vinicious)와 통(Tom)>
브라질은 여러분도 지금껏 많이 생소할테니 본부장이 상식차원에서 좀 디테일하게 적어 보았다. 남미의 역사가 워낙 획일적으로 진행되어오면서 각 국가의 다양성이 풍부하게 발전하는 것을 저해되어 왔지만 브라질은 축구라는 아이템을 통한 국가 캐릭터 발굴에 성공한 국가다. 물론 다른 남미국가들도 대부분 세계적인 축구강국이긴 하지만 브라질이 가진 국가 캐릭터를 넘어서진 못한다. 아마 아르헨티나가 가장 질투가 많았을 것이다. 전쟁을 치룰 정도로 전통적으로 두 나라는 적대국이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화해했다고 한다. 2014년 월드컵 개최 후 2016년 올림픽까지 브라질이 거머쥔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그런 집약된 이미지를 가진 강력한 캐릭터 때문이다. 전략이라는 것은 한정된 자원에 대한 집약된 컨트롤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략을 가지고 승리하는 길은 그러한 컨트롤의 지속력이다. 브라질은 축구에 관한 한 승리의 요소를 모두 갖추었다. 잘 하는 것과 1등은 틀리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말한 대로 건드리는 것과 치는 것은 틀린 것처럼 말이다. 브라질이 축구를 글로벌 탤런트로 발전시켜 당시 글로벌 스탠다드인 유럽 축구를 넘어설 수 있는 혁신을 시도했을 때 누구도 브라질이 성공하리라 장담하지 않았을 것이고 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유럽 축구 클럽 현황>
<남아메리카 축구 클럽 현황>
브라질이 세계 1등인 지금도 유럽의 세계 3대 리그에 남미는 끼지 못한다. 남미가 갖는 시장성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게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냉엄한 자본주의적 현실에서 브라질 축구의 성공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시사한다. 성공의 가장 우선 순위는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집중을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에 근거한 열정이 필요하다. 고도의 집중력이란 것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사무실에서 본부장 주변의 부하 직원들을 보면 금방 쉽게 지치고 주의가 산만해지는 직원들을 종종 보게 된다. 여러 가지로 관찰한 결과 금방 이유를 찾는다. 대부분 스스로에 대한 알 수 없는 비하를 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이러한 자기비하는 곧바로 공동체에 대한 비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본부장이 브라질에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정상적인 발전을 하기에 매우 부적절한 자기비하적인 환경에도 불구하고 축구라는 한정된 아이템에 대한 전국가적 집중을 하게 한 원동력 무엇이냐는 것이다. 본부장이 정의한다. 바로 축구 스타 펠레라는 롤 모델이 존재했다. 베르그송의 엘랑 비탈이라는 도약의 시기에는 반드시 촉매제가 있어야 한다. 방아쇠 말이다. 많은 국가나 집단이 모든 우호적인 사회 여건에도 불구하고 도약에 실패하는 이유는 대부분 준비된 롤모델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브라질 올림픽 확정에 환호하는 브라질 대표단 <룰라 대통령(좌)과 축구 황제 펠레(우)>
도무지 주위를 둘러보아도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자부심의 흔적들을 찾아, 전국가적인 자부심을 대표할 만한 상징물에 대한 국민적 염원을 직접 시각화시켜 주고 정의해줄 롤모델이 존재했던 것이다. 아주 시의 적절한 타이밍에 말이다. 롤모델은 단순히 재능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이 가지지 못하는 포용력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 그리고 보편적인 인격을 겸비해야 한다. 이러한 롤모델 덕택에 브라질은 국가 캐릭터 즉 지위를 비약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킨다. 세상은 냉혹하다. 냉혹하다는 것을 다르게 얘기해 주마. 세상은 치열한 자리다툼이라고 보면 된다. 좀 더 좋은 자리에 위치하려는 축구선수처럼 국가, 기업, 개인 그리고 그 밖의 단체들이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본부장이 벌써 21번째 나라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유는 한가지다. 역사를 공부하지 말고 역사를 만들어라. 현실을 겁내지 말고 현실을 파악해서 이용해라. 역사가도 외교관도 아닌 기업가인 본부장이 여러분에게 역사나 국제정치를 논하는 것은 본부장이 20여년동안 현장에서 느낀 현실과 이론을 여러분에게 개념적으로 설명하기 위함임을 명심해라. 본부장이 구현하는 최고의 관리시스템의 그 첫 시작점에 바로 롤모델의 설정이 위치하고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 자부심과 자기비하로 가득 찬 조직의 차이에는 언제나 적절한 롤모델의 존재 여부가 빛을 발한다. 혹자는 이를 영웅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본부장은 영웅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다. 사실을 사실적이지 않게 만드는 단어이다. 본부장은 여러분들이 조직이나 또는 다른 누군가의 롤모델이 된다면 언제라도 스스로의 임무를 다했다고 믿고 너무나도 기분 좋게 역사의 물결에 몸을 맡길 수 있다. 부디 분발해서 본부장이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리우의 예수상과 브라질 국기는 국가이미지 신장에 큰 역할을 했다.
포르투갈 브라간사 왕가가 리오 데 자네이루에서 리스본으로 돌아가고 브라질이 독립한지 100년이 지난 1922년 9월 7일 독립 기념일에 맞춰 리우의 상징인 코르코바도 예수상이 세워진다. 아무리 봐도 멋진 건축물이며 파리의 에펠탑이 주는 메세지 능력에 필적하는 상징물이다. 본부장이 보기에는 브라질 국기 또한 명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먼저 녹색이라는 색깔은 원래 유럽에서도 멋쟁이들이 쓰는 색깔인 만큼 대담한 시도다. 거기에 노랑색도 국기에 쓰기에 녹색만큼 과감한 색깔이다. 또한 가운데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가 아닌 리우에서 바라보는 푸른 밤하늘의 별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기에 글자를 쓴다는 발상을 한다. 보통 국가 최고의 상징물인 국기에 글자를 쓰는 경우는 일부 이슬람 국가들의 국기 이외에는 잘 없는데 말이다. 포르투갈어로 질서와 진보를 녹색으로 써 놓았다. 결론적으로 브라질 국기는 현실적으로로 역사적 자산이 충분치 않은 근대 신생 국가의 캐릭터 업그레이드를 위한 최고의 선택인 듯하다. 나중에 녹색이 농업과 삼림자원을 노랑색이 광물 자원을 상징한다는 말을 듣고는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가운데 푸른 밤하늘의 별이 브라질 공화정이 선포되던 1889년 11월 15일 8시 30분의 리우의 밤하늘이라고 하니 앞서 들은 자원 같은 이야기들을 잊게 만들어 준다. 너무 가까이 보지만 않으면 너무나 멋진 것들이 많은 나라가 브라질이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 갈 비행기 티켓이나 한번 더 확인해 봐야겠다. 리우의 밤하늘의 23개의 별과 함께 정말 그렇게 푸른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