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인문.정민우

時代를 말한다. 2

doll eye 2017. 6. 28. 12:00

제9편 스페인

피카소와 가우디의 나라 스페인(1)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과 코르도바의 가로등

  • 입력 : 2017.05.23 09:49:15    수정 : 2017.05.23 09: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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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상징 ‘flamenco’

이제 벌써 스페인이다. 올해에도 많은 사람들이 휴가차 떠날 나라다. 요즘 들어 스페인을 다녀왔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에는 이탈리아 로마만 다녀와도 대단하게 생각되었는데 요즘에는 웬만한 대학생들도 스페인 전공자는 물론 비전공자인 경우도 친구들과 삼삼오오 떠나는 주요 나라이다. 다녀온 분들이 모두 만족하는 반응이다. 더군다나 몇 년 전 해외 여행 프로그램에서 할아버지들이 단체로 세계 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여러 나라 중 스페인편 시청률이 상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스페인이라는 낱말이 주는 신비로움이 꽤나 강렬했다는 얘기다. 사실 전 세계에서 중국어 영어와 함께 세계 3대 언어가 스페인어다. 이베리아 반도와 남미 전역이 스페인어를 쓰고 있다. 본부장도 학창시절 공을 들였던 언어인데 꽤 재미있는 언어였고 나 혼자 발음연습을 하고 있으면 여동생이 듣고 따라하면서 놀려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도 20대까지는 스페인하면 매우 느낌이 좋은 나라였다. 뭐 지금도 나쁘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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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는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무시 못할 언어이다. 스페인어 권역도.

젊은 나이부터 조직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되어 오랜 시간 부하직원들과 옥신각신하면서 자연스럽게 길러진 습관이 하나 있다. 주말에 꼭 리더나 관리자에 대한 책을 읽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적용해보는 것이다. 30세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하는 통과의례이다. 주말 저녁엔 주로 내가 좋아하는 오케스트라나 오페라를 보면서 지난 주 조직 안에서 있었던 관리적 미흡함을 되새겼다. 다른 사람들은 영어공부나 기타 자격증 또는 대학원을 다니며 기능적인 부분에 매우 노력했던 것이 생각난다. 물론 관리적 소양이나 리더십도 기능적인 부분인 것은 명확하지만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는 손에 잡히지 않고 계량화되기 힘든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본부장이 전작 ‘본부장이 말한다’를 어려운 환경에서도 완성하려 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도 지금껏 명확히 이야기 하지 못한 것에 대한 과정적 접근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아마 많은 이들이 최종적 결과만을 슬쩍 보고 과정적인 핵심은 지나치려 한다. 어이가 없다. 하지만 이해한다. 본부장은 상식적인 사람이니까. 10사람 중 7사람이 하는 생각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10 사람 중 1사람이 하는 생각을 10사람 중 7사람이 옳다고 하는 방식으로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의 방법론적 관점에서 그들이 내 책에서 가지는 놀라운 반응을 매우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부장이 사장이 되고 나서 불멸의 연임기록을 달성하고 나서야 여러분에게 쓸 원고를 만지작거렸다면 난 아마 이것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완성했다 하더라도 성과적인 자랑 질 이야기로 점철된 영혼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고 아마도 내가 직접 쓴 내용도 거의 없을 것이다. 나의 책의 핵심은 나도 여러분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진정성은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리드하는 자에게서 나오는 법이니까. 이루어진 것에 대한 가르침 보다 중요한 것은 이루고 있는 것에 대한 공유가 본부장의 핵심가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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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의 주인은 그 왕관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 Crown Jewels

본부장이 스페인 편에서 갑자기 나의 장황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핵심적 경험의 공유라는 컨셉에 있다. 누군가 역사는 승자의 몫이라는 이야기라 했지만 난 그것이 과연 맞는가 하는 생각을 스페인을 두고 한다. 승자나 패자나 모두 각자가 역사를 임하는 모습에 진정성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본부장이 나의 블로그 제목을 그 이름도 거창한 ‘ 대영제국의 시작과 청년의 理想’이라고 지은 이유는 멋있어 보이려거나 구태의연한 제국주의적 향수에 젖어서가 아니다. 유럽의 보잘 것 없는 반 쪽짜리 섬나라 잉글랜드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이루고도 전 세계에서 그 나라를 원망하고 저주하는 사람들보다는 존경까지는 아니라도 흥미로워 하거나 공감 정도까지는 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때문이다. 본부장은 지금껏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나 손바닥만한 성공을 해보았는데도 주변사람들의 시기와 견제를 무척 느꼈다. 언젠가는 하도 그게 느껴져서 나의 삶의 모토를 ‘20대는 40대처럼, 40대는 20대처럼’ 에서 ‘위로 받고 사는 것보다 질시를 받고 살겠다’로 바꾸려 한 적이 있다. 물론 그걸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얼마나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란 말인가. 한낱 개인도 그런 괴로움을 겪었는데 한 나라가 그런 엄청난 성과를 거두고도 제국에서 다시 무사히 보통국가로 기분 좋게 돌아올 수 있었던 능력이 본부장은 놀라웠다. 영국이 전 세계를 호령한 것만 놀란 게 아니라 그 이후의 일이 더 놀라웠던 것이다. 본부장도 나의 영역에서는 항상 최연소로 가는 타이틀을 따며 왔다.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따라서 그것도 당연히 평가 받아야 한다. 하지만 최연소면서 조직에서 존경 받고 그 역량을 십분 발휘해 조직을 부임 이전 보다 더욱 발전시켜야 함은 물론이고 그 이후까지 미리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본부장은 생각한다. 여러분은 깊이 새기기 바란다. 왕관을 쓰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왕관을 쓰고 무엇을 할 지가 정해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야망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모든걸 이룬 이후에도 주변으로부터 공감이상의 호응을 얻어야 진정한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게 진짜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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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패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면 역사의 낙오자가 된다. 풀 하우스 정도면 스스로 빛날 수 있다. Poker Aces

스페인은 유럽지도에서 보면 기후적으로도 프랑스까지는 아니더라도 거기에 버금갈 위치이고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들오거나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들어오는 관문인 지브롤타 해협을 품고 있다. 서로는 언제라도 아메리카로 떠날 수 있게 대서양 항로가 일렁거리고 동으로는 피레네 산맥이 유럽의 골치 아픈 회오리를 막아주고 있다. 스스로 살림만 잘 한다면 유럽대륙 제패까지는 힘들지라도 대항해 시대에 얻은 토르데시아스 이니셔티브를 이용해 영국처럼 세계적인 패권국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입지다. 더구나 당시에는 필리페 2세라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리더십도 존재하고 있었기에 분위기는 더욱 좋았다. 포커로 치면 풀하우스를 들고 시작한 판이었다. 전 국민이 정신 똑바로 차리는 것까지도 말고 반만 정신을 차렸다면 이긴 포커판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포커 플레이어가 자신이 포커를 치는 목적이 불분명했다는 것이다. 목적이 불분명하니 카드를 보는 눈이 좁아지고 얕아지기 시작했다. 눈이 얕아지면 좋은 패도 소용없는 것이 포커다. 그래서 노름꾼도 자신이 살아온 히스토리가 있어야 하고 그 히스토리에서 생긴 최우선 순위와 금기 사항이 있어야 한다. 스페인은 살바도르 달리나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처럼 처음부터 너무 초현실이나 입체적으로 가고 말았다. 기본이 되는 점과 선을 바탕으로 색체가 더해지는 기본적인 과정의 통과의례가 없이 갑자기 찾아온 좋은 패에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레버리지가 어디까지인 줄도 가늠하지 못하고 그저 푼돈만을 벌어 유흥비로 탕진하고 늦은 새벽 빈손으로 집에 들어와 늦잠까지 잔 결과 남들 다 떠난 휴가 열차도 함께 못 탄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차라리 아예 불운했던 것보다 못한 상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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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프란시스 타레가의 기타 연주곡의 모티브가 된 ‘알함브라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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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영국이 장려한 해적선들의 노획물들이 거래되던 자마이카의 항구 도시.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에 모티브가 된 ‘Port Royal’

제목에서 말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유명한 기타곡이다. 원래 스페인의 기타리스트 프란시스코 타레가가 알함브라 궁전을 둘러보면서 이 궁전에 지난 800년의 이슬람의 모든 영광스러운 추억을 고스란히 두고 황급히 떠난 어느 이름 모를 이슬람 왕을 기리며 작곡했다고 한다. 스페인 기타리스트 타레가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베리아 반도는 역사상으로 보면 이슬람 왕국 시절이 가장 살기 좋았다고 한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아라비아의 파이잘 왕자가 영국 대령을 꾸짖으며 당시 이슬람령이었던 그라나다 코르도바 거리에 가로등불이 켜져 있을 때 영국은 그저 미개한 나라였다는 말을 한다. 연대는 대략 7세기에서 15세기 동안 800년 정도의 기간이다. 알함브라 궁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구글에서 나오는 사진을 참조하길 바란다. 타레가가 한편으로 느낀 것은 이런 영광스러운 문명을 왜 계속 더 발전시키지 못했는지에 대한 자조가 아닐까. 앞서 말했듯이 풀하우스를 들고 판을 시작한 스페인에게 아메리카라는 에이스 포커까지 들어왔다. 행운이란 에이스포커처럼 다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못생긴 얼굴로 찾아온 미녀와도 같은 것. 함께 성공할 수 있는 동반자적 관계로 키웠으면 어마어마한 결과물로 보답했을 대상에게 그들은 오직 눈앞에 이해관계인 황금만을 원했다. 윈윈하는 생산수단으로 만들 생각까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한 발 더 나가 스페인이 남미에서 한 상식을 넘어선 만행은 앞서 말한 바이킹이 유럽에서 한 약탈 그 이상이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바이킹은 후에 배움과 모방의 대상이었다면 스페인 점령군은 그저 원주민에게서뿐 아니라 본국민에게도 증오와 모멸감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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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영국이 장려한 해적선들의 노획물들이 거래되던 자마이카의 항구 도시.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에 모티브가 된 ‘Port Royal’

아메리카는 처음 인도인줄 알고 탐험했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그래서 바하마를 비롯한 카브리해 인근을 서인도 제도라고 하는 것도 반대쪽이 동인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포르투갈의 마젤란이 남미를 돌아 태평양을 발견하고 나서야 인도가 아닌 줄 알았다. 남미든 인도든 유럽인들이 주로 생각한 용도는 향신료 등의 동방 물품에 대한 독점무역이었다. 나중에는 플렌테이션 작물을 대량으로 키워 유럽에 공급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남미라는 최적의 아열대 기후의 지역을 스페인에게 빼앗긴 영국은 북미로 들어가 초기엔 엄청 고생한다. 결국 유럽의 이주민들은 대부분 북미로 가서 개척지를 확보했고 옹기종기 모여 그들 나름의 상식이 통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반면 남미는 스페인 점령군의 원주민에 대한 약탈과 살인으로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다 무역 같은 정상적인 대가를 지불하는 포용적인 방식이 아닌 약탈 경제가 뿌리내리는 곳이 되어버린다. 즉 지속적인 발전이 불가능한 무신뢰 사회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런 스페인의 무지막지한 약탈의 과정에서 불쑥 튀어나온 해적들이 바로 프랜시스 드레이크 같은 사람들이다. 원래 해적이란 것이 지탄을 받아야 상식인데 스페인 점령군의 만행이 유럽까지 전해진 터라 점점 유럽에서도 그 불의한 결과물에 대한 약탈행위가 암묵적인 공감을 얻어가기 시작했다. 만약 그 결과물들이 남미에서 피땀흘려 노동한 스페인 노동자가 본국의 처자식을 생각하며 간절히 도착하기 바라는 물품들이었다면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해적질은 아마 그리 오래 가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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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본부장이 강조하는 포용적 리더십을 강조하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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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배우기가 아니라 리더십을 위한 책 ‘아담스미스의 국부론’

대런 에스모글루라는 MIT 경제학 교수가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읽어보면 아마 스페인이 앞서 말한 역사의 행운을 어떻게 날려버리는지 논리적으로 정리될 것이다. 앞서 본부장이 시작한 나의 얘기를 마저 하자. 본부장이 오랜 관리자 생활을 하며 동서고금의 책을 읽으며 실상에 적용해 보고 난 결과는 뭐든 시작 시점의 생각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에게 그런 행운의 패가 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스페인의 아쉬운 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굳이 행운이 없어도, 아니 불행이 와도 의도가 순수하면 의외의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프랑스를 보라. 인접국가에서 본 당시 프랑스 대혁명은 그야말로 국가적인 재앙이었고 특히 번영하고 있는 영국이 보기에는 아무리 경쟁국이지만 지극히 불쌍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제패할 수 있는 고귀한 명분은 그 처참했던 프랑스 대혁명이 준 것이다. 세상에서 값어치 없는 희생은 없다. 마찬가지로 대가 없는 행운도 없다. 행운의 여신 뒷모습은 죽음의 여신이라고 하지 않던가. 오늘 내게 찾아온 행운에게 극진히 대하지 않는다면 내게 남은 것은 그녀의 무시 무시한 뒷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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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배우기가 아니라 리더십을 위한 책 ‘아담스미스의 국부론’

대항해 시대를 거치며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본 대자본가들이 생겨나고 그들과 대영제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질서가 서서히 확립되어가는 계몽주의 시대. 1776년 3월 9일에 출판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은 이미 스페인의 남미에서의 실패를 사례로 들어 스페인 국내로 유입된 금과 은이 금융통화적으로 어떤 폐단이 있었는지 일목요연하게 분석해주고 있다. 결국 영국이 가야 할 길을 제조업에 두고 전 국민이 생산활동에 동참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국부로 가는 가장 빠른 길로 제시하고 그 방법론으로 분업을 주장한다. 본부장도 어린 시절 ‘국부론’을 읽으면서 그가 스페인에 대해 안타까워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꼭 읽어 보길 바란다. 물론 ‘도덕감정론’도 함께 말이다. 정말 꼭 당부한다. 나중에 나이가 들면 더 읽기 힘든 것도 있거니와 미리 읽어놓아야 추후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연스럽게 연상이 되어 여러분들 것으로 완전히 녹아들기 때문이다. 사실 스페인에 대한 나쁜 개인 감정은 전혀 없다. 오히려 본부장도 가장 호감이 가는 나라 중 손에 꼽는 나라가 스페인이다. 앞서 말한 바이킹의 후예가 스웨덴이라고 해서 현재를 사는 그 국민들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오히려 스페인은 그들 나라에 비해 매우 문명국으로 살아왔다.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나 ‘에르나니’에서 카를로스 1세처럼 유럽을 호령했던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배출한 곳이며 이름만 말하면 다 아는 수많은 예술가와 건축가의 나라이다. 또한 그런 휘황찬란한 유적지가 로마만큼 가득 찬 나라다. 거기에 투우와 플라맹고의 나라이며 양대 명문 축구 클럽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를 모두 품고 있는 나라다. 뭐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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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 함대 ‘Spanish Armada’

본부장이 이 스페인 편에서 이런 스페인의 어마어마한 자랑거리를 두고 좀 어두운 이야기를 한 것은 스페인이 인류에게 남긴 유산이 앞서 말한 찬란한 문화유산만이 아닌 비록 실패한 역사지만 인류를 대신해서 그런 역사의 수레바퀴에 따라 역할을 한 것에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대로 역사는 승자의 몫만이 아니다. 본부장이 진정 그렇게 생각하고 나를 따르는 여러분들도 그럼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누구라도 어떤 국가라도 실수를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통해 인류가 공통된 교훈을 얻고 다음의 기회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완성된 것이다. 이미 한때 영화를 누렸던 영국도 이제 그저 보통 국가인데 스페인의 안타까움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오히려 그런 훌륭한 이야깃거리를 아낌없이 제공해준 스페인에게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본부장이 비즈니스적 영감을 얻기에 좋다고 했던 ‘토르데시아스 조약’이라는 기상천외한 발상도 스페인이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고 무적함대 ‘아마다’란 용어도 역사에 길이 남아 후세에게 훌륭한 영감을 줄 이름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무엇보다도 르네상스 이후 최고의 사건은 1492년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의 회심의 승부수인 '콜롬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이다. 대항해 시대인 16세기 이후로 스페인이 만들어준 이 수 많은 이야깃거리가 없는 현대를 인류는 상상할 수 없다. 특히 근대 인류사에 남을 이야깃거리로만 치면 유럽의 어떤 나라 중 스페인이 최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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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로스트로 포비치'가 이사람 다음세대로 유명한 사람이다. '파블로 카잘스'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1-6

마지막으로 스페인이 주는 기막힌 이야깃거리는 본부장이 좋아하는 스페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로 장식하고 싶다. 정말 스페인은 유럽의 이야깃거리 제공자가 되기 위해 생긴 나라인가 보다. 한 십 년 전 일본의 유명 자동차 광고에서 나온 첼로곡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한 적이 있었다. 다름아닌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인데 총 6번까지 있다. 본부장이 돈 많이 벌어주는 음악으로 친지들에게 꼭 바흐의 두 곡 추천하는데 하나는 ‘골든베르그 변주곡’이고 또 하나가 이 곡이다. 이 두 곡은 인간의 균형감을 바로잡아주는 음악치료용으로 매우 탁월한 기능이 있다. 본부장이 실제 스스로 경험하고 타인을 통해 관찰한 것이니 꼭 실행에 옮겨보기 바란다. 돈은 균형감 있는 자에게만 온다. 알쏭달쏭하고 불안한 사람에게는 언제든 짐을 싸는 게 돈과 여자다. 이 유명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파블로 카잘스가 300년이 지난 20세기에 발견한 것이다. 그것도 고기 싸준 종이를 펴보니 이 곡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행운이 스페인이라는 나라에서 그냥 일상인가 보다. 고기 싼 종이라도 유심히 보는 눈을 가진 파블로 카잘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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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본부장의 성공 3단계 '열정','균형감각','판단력' 중 가장 중요한 것 ‘ 열정/Passio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오직 이슬람 왕조에 대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디 스페인이 근현대사에서 인류에게 남긴 그 모든 추억에 비하겠는가 말이다. 알함브라는 '붉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보통 푸른 색을 많이 쓰는 이슬람 문명이지만 이베리아 반도에서만큼은 붉은 색을 쓰고 싶었을 것이다. 반도의 비옥한 대지와 하늘이 주는 푸른 에너지에 정렬의 붉은 색으로 화답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슬람 사람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절제감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 절제의 화신도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흥분이 절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분도 스페인을 생각하며 본부장이 강조하는 모든 성공의 첫 단추인 '열정'이라고 불리는 성취욕을 불살라 보길 바란다. 균형감이나 판단력도 열정적 성취욕이 없는 사람에게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열정이 없다면 우주도 인간도 없는 것이다.


제 10편 폴란드

유럽 최강의 근성 폴란드 (1) 코페르니쿠스에서 마담 퀴리까지 이어오는 근성(根性)

  • 입력 : 2017.05.24 16:08:32    수정 : 2017.05.24 16: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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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상징 ‘백독수리’

피사로라는 이름은 알아도 투팍 아말루란 이름은 아마 모를 것이다. 1572년 스페인에게 처형당한 잉카제국(지금의 페루지역)의 마지막 황제이다.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관계이다. 역사는 승자의 이름을 알아주지만 대중은 진정한 승자의 이름을 알아주는 법. 투팍 아말루는 페루의 전설적인 저항운동에서 주로 쓰였던 이름이다. 저항의 역사하면 역시 남미가 가장 떠오른다. 앞에서 이야기한 스페인 편에서 잠깐 언급한 내용이다. 무지막지한 스페인의 정복활동으로 남미가 쑥대밭이 되었다. 이 정도 이름은 알고 가자. 에르난 코르테스 그리고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각각 아즈텍 제국(멕시코)과 잉카제국(페루)를 정복한다. 개인적으로 이들 두 사람의 전기를 검색해서 읽어보길 바란다. 스페인이 왜 유럽의 이야깃거리 공장인지를 알 것이다. 정말 기가 차다. 재미는 있는데 멋은 있는 줄은 모르겠다. 암튼 잘 먹고 잘 살았다. 개인적인 체세로는 배울게 많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극적인 부분은 나중에 남미의 윌리암 월리스(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주인공)인 투팍 아마루 2세가 최고다. 두 사람은 사형 방법마저도 꼭 같다. 영화에서 본 그런 식으로 말이다. 끔찍하게. 이 사람이 준 문학적 영감은 이탈리아 편에서 말한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까지 뻗친다. 유럽의 어느 문학 작품에서도 앞서 말한 두 정복자에 대해서 미화하거나 영감을 얻어 쓴 작품은 없다. 이 두 정복자들의 왕인 독일편에서 말한 스페인 최초의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카를로스 1세(칼 5세)에 대한 치정물인 베르디 오페라 ‘에르나니’만 있을 뿐이다. 왜 그럴까. 대중들이 듣기 싫은 추잡하고 정의롭지 못한 얘기기 때문이다. 명심해라. 나중에 회사생활을 하면서 구조조정이나 어느 기업을 인수하는 역할을 시킬 때는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구조조정 대상자나 피인수자에게 매우 잘 해라. 여러분에게 그 역할을 시킨 사람은 둘 중 하나다. 정말 여러분을 믿는 사람이던지 아니면 당신을 버릴 사람이다. 나도 해봐서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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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영토는 동유럽에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크다.

앞서 본부장이 언급한 몇몇 패권국의 역사는 잘 알려져 있지만 고난을 겪거나 식민지를 당한 나라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법이니 말이다. 사실 전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패권국이라기 보다는 그냥 보통국가인 경우가 훨씬 많다. 마치 본부장이 조직생활을 하면서 본 조직 안의 인적 구성도 이와 같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통상 조직 관리자들이 많이 하는 실수에는 피상적인 면을 가지고 너무 많은 것을 평가하려 든다는 것이다. 조직이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다. 빛나는 리더십이란 언제나 남들이 보지 못하는 하찮은 것들에서 가치를 찾는 사람이 관리자로 왔을 때 조직원들이 쓰는 말인 것이다. 국제 사회를 보면 나라도 이와 같다. 겉만 번지르르해서 고생 없이 살아오다가 그다지 큰 어려움도 아닌데 너무나 픽픽 쓰러져버리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정말 훌륭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주변국의 힘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서 어쩔 수 없이 식민지 신세로 전락한 경우도 있다. 항상 말하지만 우리는 역사 공부를 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사회에서 잘 살아가기 위한 경우의 수를 연습하는 것이다. 지도를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지도를 보는 법을 배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중세가 왜 암흑기라는 말을 듣는 줄 아는가. 유럽 전역의 수도원이나 대학이라는 곳에서 수도사나 학생들이 엄청난 양의 내용을 암기를 하면서 많은 서적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방향성에 대한 의문을 가진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았다. 방향성 없는 학문연구와 수행과정에 대한 의식이 없는 결과지향적 공부행태가 문제였던 것이다. 이건 어제 본부장에게 공부방법에 대한 문의를 해온 어느 학생에게 해준 멘토링이라 공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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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랑 모두를 거머쥔 열정의 화신 ‘마담 퀴리’

자 코페르니쿠스가 어디 사람인지 잘 몰랐던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물론 폴란드다. 결국 고집을 꺾지 않아 화형당했다. 역시 폴란드인의 근성이 느껴진다. 아예 직접 망원경을 만들어 눈으로 확인까지 한 갈릴레오는 계속된 추궁에 끝내 자신의 신념을 부인하고 혼잣말로 속삭였다고 하지 않은가. 본부장은 유럽지도를 보면서 폴란드만큼 대중들에게 저평가된 나라도 없다 싶다. 단순히 마담 퀴리나 영화 쿼바디스의 원작 소설을 쓴 헨리크 시엔키에비치 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와 체스와프 미워시, 레흐 바웬사 등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점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물론 이점들도 당연히 평가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만한 나라는 다른 데도 많다. 본부장은 폴란드가 가진 근성을 말하는 거다. 근성이란 말을 본부장은 신념(信念)이라는 최고의 가치에 결단력까지 겸비된 집념(執念)이란 말로 표현하고 싶다. 실제 행동에 옮겼다는 말이다. 앞서 본부장이 피사로와 투팍 아마루2세를 언급했다. 둘 다 결단력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정복이나 저항은 모두 목숨 내놓고 하는 것이다. 미지의 세상을 향해 나아 가는 게 말이 쉽지 어디 쉬운 일이겠나. 하지만 미지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공포의 대상에게 저항하는 것은 더욱 힘든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마담 퀴리의 어린이용 전기를 읽어보면 그녀가 방사능에 피폭되어서 고통스럽게 죽은 이야기는 잘 안나온다. 애정행각도 물론 안나온다. 완전한 지식이 없어서 무모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의 진실을 밝혀내고자 하는 집념이 알 수 없는 녹색 물질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컸던 것이리라. 방사성 물질을 그냥 손으로 만졌다고 하니 지금 생각하면 웃지도 못 할 얘기다. 전기를 참조하기 바란다. 나는 마담 퀴리의 프랑스 연하남과의 연애 스토리를 접하면서 오히려 그녀의 열정이 느껴지더라. 사람 사는 데가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자신이 안한다고 남을 욕해서는 안된다. 신사가 되려면 남의 행위에 대해서 입을 닫아라. 나에게 물어보지 않은 이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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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절기교 프란츠 리스트와 우정의 라이벌, 피아노의 시인 ‘프레데리크 쇼팽’

폴란드는 다시 말하지만 유럽의 대단한 문명국이다. 위에서 말한 코페르니쿠스 같은 근대를 연 과학자뿐 아니라 노벨상 수상자도 물리학, 화학 분야에서 최초의 공동 배출을 했고 그것도 최초의 여성이며 최초의 2회 연속 배출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3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와 민주투사로 유명한 바웬사의 평화상까지. 여기에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프레드리크 쇼팽이 화룡정점이다. 조합이 매우 딱 떨어진다. 이 정도 조합이면 총량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 나라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쿠페르니쿠스에 쇼팽에 마담 퀴리. 갖출 건 다 갖춘 것이다. 다들 살아 생전 고생스럽게 살았다. 이런 문명국이 근대를 넘어오면서 러시아, 오스트리아, 독일에 의해 1795년부터 1918년까지 100년 이상 3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나라가 지도에서 완전히 없어진 것이다. 마담 퀴리나, 쇼팽이 왜 프랑스에 가서 활동했는지 짐작이 간다. 거기에 무지막지한 악당들인 스탈린과 히틑러 치하의 두 강대국 사이에서 정말이지 어처구니 없는 수모를 당한다. 역사를 읽는 본부장이 다 눈물이 나더라. 이런 훌륭한 문명국도 이렇게 철저하게 당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명심하자. 역사에는 설마라는 말은 없다. 19세기의 세기말적 향락이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상황에서도 어느 국가는 이런 상황을 겪었고 이후 20세기에는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고통의 역사가 유럽에 존재했었다. 그 산 증인이 바로 폴란드다. 본부장은 여러분이 심심할 때 구글에서 폴란드를 연구해보길 꼭 강추한다. 현실 냄새 나는 인생 공부를 폴란드를 통해 할 수 있다. 쇼팽의 마주르카를 틀어놓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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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적 사고의 아이콘 ‘코페르니쿠스’

폴란드 역사와 인물들에서 얻는 교훈은 바로 그 지칠 줄 모르는 근성에 있다. 강대국 세 나라의 의해 분할되어 지도상에서 없어진 나라가 다시 만들어지는 것은 정치적으로 그냥 불가능하다. 다시 되돌리려면 세 나라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가 승인해주고 싶어도 나머지 나라가 동의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거의 이 정도 되면 포카로 따지면 2 원페어를 들고 풀하우스와 로열스트레이트 플러시 그리고 에이스 포카를 들고 있는 판에서 이긴 격이다. 갑자기 경찰이 들이 닥친 거지. 사회 생활이라는 것은 결말을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좋은 자리를 선점한 사람도 실수를 하는 법이다. 그걸 기다려야 한다. 지금 최악의 상황을 지내고 있는 자라도 기회는 있다. 상황 선점자인 퍼스트 무버도 방심하기 마련이다.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기회가 꼭 온다. 이건 실전에서 본부장이 보고 느끼고 지금도 진행중인 얘기다. 폴란드는 두 가지 최악의 상황을 1, 2차 세계대전이란 더 큰 최악으로 돌파해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는 이유는 호랑이가 한 마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들끼리 싸울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가 선언되면서 수많은 선물보따리가 풀렸다. 즉 패자에게 속박 받던 민족들이 독립국가를 차릴 기회가 온 것이다. 이 때를 놓치지 않았다. 러시아, 오스트리아, 독일이 한편이 되어 몽땅 진 것이다. 폴란드 입장에서 얼마나 기다려온 상황이겠는가. 이런 날이 누구에게나 꼭 온다. 지금 힘들어 하는 청년들에게도 꼭 일러주고 싶은 얘기다. 다만 정신줄을 놓지 말고 무엇이든 정진하고 있어야 한다. 대상이 무엇이든 좋다.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게 아니다. 과정이 좋으면 언제든 결과는 좋다. 가슴에 새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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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근성에는 남녀가 따로 없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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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락 직전의 바르샤바 시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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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상황에도 웃음으로 포즈를 취하는 바르샤바 시민군들

두 번째는 2차 세계대전 동안 일어난 사건인데 나치 독일이 아예 다 먹겠다고 덤벼든 것이다. 삼국 분할도 아니고 혼자 다 말이다. 정말 센 놈들 옆에 살다 보니 문명국 폴란드도 피곤했다. 더욱 힘든 건 이제는 러시아와 독일이 서로 싸우는 사이가 되어 서로 먹겠다고 덤벼드는 형국이다. 전 영토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 무시무시한 아우슈비치가 바로 폴란드에 있는 수용소였다. 독일 브란트 수상이 여기 와서 비오는데 우산도 없이 무릎 꿇었다. 아무튼 유럽에서 폴란드만큼 지긋지긋하게 고생한 나라도 없다. 이런 희망없이 반복되는 고생스러움 속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역사라는 것이다. 사람도 똑같다. 모든 것이 다 없어지고 황페화되어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일 때 나를 끌어올려주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과거의 잘 헤쳐 나왔던 기억 말이다. 아니 굳이 승리의 기억이 아니라도 좋다. 자신의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기억 즉 나만의 히스토리 말이다. 폴란드는 세계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은 역사가 있었다. 그것도 130년 만에 독립을 쟁취했던 역사 말이다. 그러니 두 번째 환란도 버틴 것이다. 제 2차대전사에 폴란드 수난사를 찾아 읽어보라. 정신이 확 들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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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한번은 먹고 먹혔던 아픔을 안고 사는 ‘유럽 제국들’

서두에 얘기한 투팍 아마루 2세 같은 수 많은 저항의 역사가 인류사에는 넘쳐난다. 앞서 말한 영국,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스웨덴, 스페인도 한때에는 비참한 상황에서 고단하게 홀로 저항해야 했던 아픔을 안고 있다.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자체의 행동이다. 본부장이 언제나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지향점을 찾아 끝없이 움직일 때 가치를 느끼는 존재이다. 아무리 큰 것을 얻어도 이미 얻은 것에는 아무런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그저 본능에 충실하며 부지런히 탐욕스러우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진 것을 모두 공유하고 보다 새로운 것을 더 추구하라. 더 많은 사람들과 더 큰 꿈을 이루려고 시도해라.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달성한 세계일주 항해 때 지나온 바다는 지금의 그 바다가 아니다. 과거의 물질적 업적은 다 없어지는 것이다. 코르테즈와 피사로의 업적을 누구도 미화하려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권력의 누린내와 욕망의 비린내를 풍기지 않는 인간 본연의 멋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이미 챔피언인 자보다 지금도 챔피언을 향해 달리는 자가 본부장은 되고 싶다. 나를 따르는 여러분들도 그래야 한다. 우리가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려는 위대한 인물이나 조직들은 언제나 미래 진행형적 존재였다. 비록 수백 수 천년 전에 살았던 그들이지만 현재 우리와 바라보는 것이 똑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되고 또 그런 조직을 만들고 싶다면 간단하다. 미래의 인류가 바라보려 하는 것을 바라보고 살면 된다. 명심하기 바란다.



제 11편 그리스

서구문화의 발원지 그리스(1) 알파고에 맞설 일류의 마지막 방패(防牌), 그리스 비극

  • 입력 : 2017.05.29 16:05:49    수정 : 2017.05.29 16: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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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5년이면 로봇이 인간을 지배한다. 인간 스스로 그들에게 찾아갈 것이다. 스스로의 욕망을 위해 말이다. <인공 지능이 아니라 인공 지성이다>

2045년이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의 지능과 감정을 다 합친 것보다 뛰어난 수퍼 알파고가 탄생한다고 한다. 계속되는 딥러닝으로 인공지능은 향후 인간 경험의 축적을 토대로 자체 사고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인공 지능(intellect)이 아니라 인공지성(intellience)이다. 그 동안 인간만이 가진다는 직관과 창의력을 가진다는 것. 이미 영화로 소개된 수많은 인공지능이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부터 ‘터미네이터 시리즈’ 그리고 최근 ‘에일리언 시리즈 최종편인 프로메테우스’에서 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한 인공지능 로봇이나 ‘그녀’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목소리 연기만 인간의 감정까지 겸비한 운영체계까지 결국 영화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머지않아 인간의 지능은 당연한거고 감정까지 더 인간다운 인공지능이 나온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인류에게 우호적인 인공지능은 일단 매우 세련되어 보이고 유쾌하다. 프랑스 편에서 세련되다는 것은 절묘한 양면성이라고 했다. 인간의 부드러움과 여유와 기계의 예리함과 대담함을 모두 갖춘 모습이다. 결국 인류가 수 천년 동안 자식이나 연인 또는 타인에게서 바라는 면을 모두 부각시킨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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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AI는 너무나 많다. 그들에게 선과 악이 없다. < 터미네이터 제너시스>

영화 ‘ 터미네이터2’에 나오는 로봇은 인간이 원하는 모습을 더 갖추었느냐에 따라 선과 악이 갈린다. 로봇에게는 개념조차 없는, 인간에게나 존재하는 선과 악일텐데 말이다. 터미네이터 제너시스까지 나온 걸 보았는데 늙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로봇이다. 재밌는건 로봇의 표정에 인간적 비애가 느껴진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자신은 모를테지만 늙은 자신에 대한 외로움이 표정에서 묻어나오더라. 본부장은 2500명의 면접은 물론 자막이나 음향없이 등장인물의 표정만으로 전체 내용을 알아 맞추는 사람이다. 만약에 진짜 로봇이었다면 그런 표정은 나오지 않는다. 인간이 가지는 한계적 존재로서의 자부심과 허탈감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 편에 이야기 한 것처럼 인간은 전 우주에서 가장 지능이 높은 편에 속하는 존재이면서도 얼마 살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리스 신화는 인간이 신을 동경하는게 아니라 영생을 살지만 보잘 것 없이 사는 신들의 모습에 불완전한 인간이 날리는 조소이다. 호머의 서사시 ‘오딧세이’에서 자신을 유혹하는 바다의 여신에게 율리시스는 천 년을 사는 것보다 차라리 천 년 동안 이름을 남기겠다고 했다. 그리스 인이 바라보는 인간의 멋은 이런 것이다. 한계적 존재가 가지는 이런 호기로움을 최고의 멋으로 치는 것이다. 외계에서 어떤 외계인이 오던지 어떤 신이 강림을 하던지 고대 그리스인에게 인간은 가장 위대하진 않을지 몰라도 가장 멋진 존재였고 기꺼이 인간이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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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면 다 어린 20대들이다. 역사는 청년이 만드는 것 <헤로도토스의 역사>

그리스는 인류에게 이야기거리 정도를 준 게 아니다. 그들은 2000년전 이미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무한한 욕망의 너머를 내다보았다. 헤로도토스는 그의 저서 ‘역사’에 이집트의 스핑크스나 바빌론(지금의 이라크)의 공중정원 그리고 그 밖의 우리가 고대 문명이라고 하는 곳을 두루 돌며 인간이 만들어내는 상징물들을 직접 듣고 보고 기술하면서 그 욕망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본부장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 여러분이 지금 읽고 있는 ‘본부장이 시대를 말한다’가 바로 헤로도토스의 ‘역사’의 기술 방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 묘미는 단순한 역사를 기술한 것이 아닌 시대를 정의하는 역사적 달관에 있다. 그리고 문체의 유연성이나 진실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바로 본부장이 지향하는 바와 정확히 일치한다. 즉 책의 형식과 진행방식 그리고 보편적 상식에 근거한 작가 나름의 이론을 대단히 중요시 여겼다는 말이다. 본부장이 추정컨대 헤로도토스는 당시 그리스 상식의 표준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현재 그리스 로마 문화라고 일컫는 것은 결국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에서 그리스인이 상식적으로 추구했던 최고 가치(크라운 주얼)를 가슴에 품고 헤로도토스가 ‘역사’를 기술하는 마음가짐과 사물을 보는 시각에서 기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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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만 읽어 봐도 지혜가 밀려들어는 책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쇠망사>

정말 더도 덜도 없다. 그만큼 ‘역사’의 기술방식은 사실에 있어서는 매우 객관적이면서 진실에 있어서는 매우 주관적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주관이 편협하다거나 기분 나쁘지 않은 것이다. 왜냐면 심각하게 기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우 기분 좋게 써내려 간다. 그렇다고 들떠있다거나 가벼워 보이지도 않는다. 본부장이 전작에서 글로벌 시대에 심각하면 진다는 말은 나만의 개똥철학이 아니다. 이미 2000년전 부터 ‘역사’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진실이다. 이런 문체는 영국의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쇠망사’에서도 거의 똑같이 반복된다. 역사적 사실을 먼저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상식적 고찰과 작가의 진정성 있는 탄식 그리고 후대에 대한 실질적인 가르침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런 유연한 문체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대영제국 시절의 대문호 토마스 칼라일의 ‘프랑스 대혁명’에서도 뚜렷이 이어지며 명작 중의 명작으로 꼽히는 20세기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의 ‘수상록’에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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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움직이는 인체의 아름다움에 오직 경외감만 들뿐이다. < 고대 그리스 조각상>

우리가 영화 ‘300’ 시리즈에서 본 페르시아 전쟁은 헤로도토스 때문에 관람이 가능한 것이었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가 이기고 지고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페르시아가 이겨도 역사는 훌륭하게 흘러간다. 다만 페르시아가 왜 졌는지에 대해 후대에 대한 가르침을 그의 저서 ‘역사’에서 헤로도토스가 만약 수줍어해 하거나 머뭇거렸다면 그리스 로마 문화라는 것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문화라는 것은 공동체적 방향성의 상징이다. 기껏 조각품들이나 신전들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만약에 중요하다면 조각품이 무엇을 강조했느냐가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리스 조각품과 다른 문명의 조각품을 비교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무엇인가. 여러분이 맞춰 보라. 유심히 본적이 있는가. 바로 인간의 몸에 대한 세밀한 묘사이다. 그런데 전혀 에로틱하지 않다. 오히려 경건하다. 그들이 인간이라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바로 이거다. 경건함 말이다. 그리스 로마 시대를 정치 사회적으로 정의하자면 다양성이 최대한 인정되는 사회였다. 그래서 다양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 인물은 그가 아무리 공동체의 영웅이라도 무참히 제거됐다. 영화 ‘300 제국의 부활’에서 페르시아에서 그리스를 구한 테미스토클레스나 로마 최고의 영웅 줄리어스 시저도 그렇게 사라졌다. 다양성이라는 말을 명심해라. 그것만이 인류가 만드는 모든 공동체가 번영으로 갈 수 있는 키워드인 것이다. 그것이 인정되었을 때 공동체나 조직은 피도 돌고 살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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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규모에서도 소리가 들릴 만큼의 음향 시설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 아테네 야외 극장>

우리가 어린 시절 본 동화에는 퀴리 부인의 스캔들도 안나오고 백설공주가 실제로는 새엄마를 죽인 나쁜 딸이란 것도 감춰왔다. 미화된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우린 그리스 신화도 그런 식으로 배웠다. 현실성 없는 매우 허무맹랑한 들으나 마나 한 것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는 앞에서 말했듯 불완전하지만 멋진 인간이 신을 조롱하는 취지의 위대한 인류의 문학작품이다. 한마디로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아도취의 마음을 극히 완벽한 상대를 정해놓고 비교한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발상인가. 여러분들도 이런 건 반드시 써먹도록 해라. 경쟁자를 잡으려면 자기보다 훨씬 나은 대상을 고르라는 거다. 반대로 그런 위대한 인간이 현실에서 겪을 몰상식한 불행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을 하소연한 것이 바로 그리스 비극이다. 지금 즐거운 사람은 비극을 주로 보고 지금 우울한 사람은 희극을 본다. 지금 괴로운 사람은 이전에 비극도 희극도 보지 않은 사람이다. 미리 자신의 마음가짐을 다듬지 않은 자가 겪는 몰상식이 괴로움이다. 문명시대초기에는 책이 흔하지 않고 주로 구전이 되었기 때문에 모든 대사를 외워서 극으로 연출할 수 있는 자는 엄청나게 인기 있는 사람이었다. 모든 시민들이 노천 극장에서 이들의 공연을 관람하는 것으로 독서를 대신해 자신들의 마음가짐을 다듬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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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타부를 건드리지 말라. 신화시대 수만년의 저주가 그대에게 뿌려지리니.< 금기 사항/ Taboo>

번영한 공동체의 뒤에는 반드시 비극의 힘이 있다. 타부 즉 금기사항의 힘 말이다. 사람은 세가지 돗대로 인생을 항해한다. 맨 앞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자신만의 우선 순위라는 돗대. 중간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주변을 바로보며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균형감각이라는 돗대. 그리고 맨 뒤에서 갑작스러운 돌풍에 흔들이지 않게 잡아주는 금기사항이라는 돗대이다. 언제나 가장 힘든 바람은 뒤에서 오는 뜻밖의 바람이다. 지금까지 세계는 말을 잘 타던 기마집단이 주름잡던 시대와 배를 잘 다룬 해양집단의 시대가 번갈아 가며 주도권을 주고 받았다고 보면 정확하다. 모두 기동성에 최고의 우선 순위를 두었다. 여기서 늘 타겟이 된 대상은 자리잡고 멍하니 앉아 있는 집단이다. 무조건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는 것에서 이익이 생기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일리아드’, ‘오딧세이’가 무엇인가. 전자는 트로이 전쟁을 떠나는 이야기이고 후자는 귀환하는 이야기이다. 인류의 모든 이야기는 떠나고 돌아오면서 하는 사랑이야기이라고 보면 된다. 그만큼 인류는 어디론가 떠나는 것을 동경했고 간절히 귀환하고자 했다. 이때 늘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세가지 돗대를 상징하는 마음가짐이다. 이것을 본부장은 나의 경험으로 터득한 선장 리더십이라고 해서 부하들에게 많이 강조했고 스스로도 늘 다짐했다. 선장 리더십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타부를 지키는 것이다. 배를 타는 사람들이 육지에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경건한 이유다. 항상 눈앞에 펼쳐져 있는 변수인 바다가 그들을 경건하게 만들고 조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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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로버츠, 검은 남작 <바롤로뮤 로버츠/Bartholomeu Roberts>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해적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나쁘고 타락한 집단으로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는 매우 합리적이고 질서정연한 집단이다. 목적을 향해서 주도면밀하고 계획성 있는. 그렇다고 해적이 무슨 엘리트들의 집단은 아닐 것이다. 해적질을 하다가 군사 엘리트가 된 프란시스 드레이크 (Francis Drake)의 경우는 있어도 반대의 경우는 없으니 말이다. 비슷한 게 한두 명이 있기는 한데 본부장이 좋아하는 사람을 하나 이야기해주면 바로 바롤로뮤 로버츠(Bartholomeu Roberts)다. 해적선장으로는 드물게 해군제독이라는 특이하지만 최고의 권력을 가진자가 프란시스 드레이크였다면 일반적인 관점 즉 해적들의 롤모델로서 최고의 성공을 한 선장이 바로 이 사람이다. 위대한 로버츠라고 또는 블랙 바트(검은 남작)이라고도 불렸다. 해적선장인데도 술을 마시지 않고 모든 일의 처음과 끝에 항상 신에게 기도하였으며 매우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드레이크가 열정을 상징한다면 로버츠는 절제를 상징한다. 본부장이 뭐라 했는가. 내일이 예측되는 절제된 사람에게는 돈과 여자가 따른다 하지 않았는가. 이 둘은 참고로 알아만 두자. 하지만 그들도 엄연히 바다라는 무시무시한 변수에 자신의 인생을 의지한 미약한 존재일 뿐이다. 그렇기에 본인들의 개인 성격과 상관없이 언제나 선상에서 지켜야 할 규율을 매우 중요시 여겼다. 심지어 해적선이 일반 상선이나 군함보다 더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분위기였다는 것도 알아두자. 없이 사는 사람들끼리 내일 죽을 지도 모르는데 자기들끼리라도 편하게 해주었던 것이 아니라 나름의 민주주의적인 규칙이 엄격했다고 한다. 주로 의사 결정을 투표로 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해적선장은 그래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 받은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존경 받을만한 인격과 바다 같은 마음으로 선원들을 대했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의 잘나가는 다국적 기업의 리더십은 해적선 리더십이라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을 보고 실제 성공하는 리더십의 맛을 잠깐 보기 바란다. 물론 잭 스패로우가 까불거리는 건 빼고 말이다. 그건 본부장 스타일에 영 맞지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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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캠벨의 <신화와 함께 하는 삶>

본부장은 개인적으로 앞서 말한 유무형의 그리스 유물은 현재 발칸반도 끝에 위치하고 1832년에 런던 의정서에 의해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400년만에 독립한 나라인 그리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가 따르고 지키는 현대 문명은 그리스 로마 문명에 매우 큰 신세를 지고 있다. 따라서 모두가 존경하고 공유해야 할 보편적인 유물이지 한 나라의 소유가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유물을 탄생시킨 그리스에게 전 세계인은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특히 그리스비극을 만들어준 것에 대해서 말이다. 현재까지 잘 알려진 그리스 비극의 작가는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이스퀼로스다. 상식적으로 당연히 더 있었겠지만 알려진 것은 그렇다. 지금으로 말하면 방송작가다. 읽어보면 면면히 주옥 같은 명작이다. 인간이 겪는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스 로마 시대 이전은 신화시대다. 그리스비극은 그 기간이 얼마인지도 가늠할 수 없는 긴 시간 동안 기록되지 않고 전승되어 내려온 보석같은 금기사항(Taboo)을 은유를 통해 전해준다. 그리스 비극을 일부 학자들은 '인류와 역사를 위한 애도'라고 말한다. 훌륭한 말이다. 인류라는 존재로 지구상에 나타나 살면서 겪은 모든 비극에 대한 애도를 말함이다. 참고로 조지프 캠벨의 ‘신화와 함께하는 인생’과 캐런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를 읽어보길 바란다. 문명시대 이전의 인류가 가지고 살던 상징과 철학의 기원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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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멋진 인간 <율리시스>

앞서 말한대로 이제 30년만 지나면 인류는 인공지능 로봇에게 지구를 빼앗길 수 밖에 없다. 머지않아 지적 이니셔티브를 빼앗기기 때문이다. 인간 스스로가 자신을 믿지 않고 로봇을 믿는 결과다. 좀 더 위대함이 아니라 좀 더 편한 세상을 갈구함이 만들어낸 비극일 것이다. 아폴로 계획같은 것은 이제 인류에겐 그저 부담스럽기만 하고 당장 내게 주는 것 없는 쓸데없는 짓이다. 누구도 손안에 있는 세계로 함몰되길 바라지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간접경험을 원하지 않는다. 인간은 점점 리얼에서 멀어져가고 자신이 사는 이 3차원의 세상마저 스스로 떠나려 하고 있다. 이미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 그리고 아서 클라크같은 SF작가들이 예측하듯이 인간은 나중에는 정신적인 존재만 남는다고 한다. 육체가 주는 불편함을 버리고 말이다. 그리고 만화 ‘은하철도 999’의 거리의 불쌍한 소년 철이처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하고 인공지능 로봇의 길을 선택한다고 한다. 그게 현재의 인간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종합하여 추론하면 나오는 정확한 결론이다. 영생을 주겠다고 유혹하는 바다의 여신에게 그토록 단호했던 율리시스와는 다르게 현재를 사는 우리 인류는 매우 나약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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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역사에 바치는 애도의 노래 <그리스 비극>

본부장이 그토록 그리스 비극을 강조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수 천 수 만년 동안 인간이 겪은 모든 비극을 손짓 발짓 그리고 DNA로 전승해온 금기사항(taboo)은 결국 우리를 그저 인습에 가두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4차에 걸친 생산성 혁명(증기/전기/컴퓨터/빅테이터)을 통해 이렇게 나약해져만 가는 인류를 위해 우리 조상들이 우리를 위해 남겨준 최후의 방패다. 문명시대 이전 수 천 수 만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문자에 기록된 것이 없으니 말이다. 문자에 기록되지 못하면 인공지능은 이해할 수 없다. 그럼 반응할 수 없는 것이다. 신화의 시대 그리고 소위 축의 시대에 무슨 일이 일어나서 현재의 우리가 믿는 종교와 관습 그리고 사회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은유와 비유 그리고 상징으로만 전달받은 신화 시대의 금기사항이 우리 인류를 태초의 인간으로 온전히 남겨두기만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아직 이니셔티브가 우리에게 남아있다면 말이다.


제 12편 터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후예, 터키 (1) 제국의 마지막 유산, 세계의 화약고 발칸과 아라비아 반도 그리고 터키요리

  • 입력 : 2017.06.02 15:44:01    수정 : 2017.06.02 1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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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인으로 인도로 가는 무역로가 막혀, 스페인까지 찾아와 이사벨라 여왕앞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콜럼버스>

여러분이 상식을 알아둘 연도가 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1776년 미국 독립 선언,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마지막으로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까지만 외워라. 그 밖에는 그때 그때 구글에서 찾아보면 된다. 오히려 너무 많이 알고 있으면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아는 것에도 적절함을 유지해야 한다. 너무 많이 아는 척 절대 하지마라. 상류층일수록 아는 것 자랑 안한다. 하지만 위의 연도 정도를 모르면 무식한게 아니라 무성의한 거다. 인류가 현재의 시스템으로 살게 만든 전환점이 된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인간의 존엄성이란 개념을, 미국 독립은 자유 민주주의를, 아메리카의 발견은 상업자본의 시작을 마지막으로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유럽의 중심을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 놓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시스템의 근원이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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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초 잠깐 번성하다 해금정책으로 바다길을 스스로 닫아버린 중국 <중국 명나라 정화 장군의 해상 진출>

물론 인류 역사는 끝없는 인과관계로 엮여있다. 하지만 유럽기준으로 보면, 중세를 끝맺고 근대로 가는 길목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오스만 투르크가 해주었던 것이다. 인도로 가는 길을 막고 지중해를 장악함으로서 말이다. 콜럼버스가 스페인 사람이 아니라 이탈리아 제노바 사람인 것도 인도로 가는 길이 막힌 이탈리아 상인들의 궁여지책을 보여준다. 그리스 로마시대 이후 근대까지 인류의 문명은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경쟁하며 발전한다. 연대별로 보면 카르타고와 로마의 경쟁, 이슬람과 기독교의 경쟁, 그리고 유럽 도시 자본간의 경쟁이 대표적이다. 본부장이 누차 이야기했듯이 인류 문명의 역사는 매우 짧다. 이 짧은 시간의 대부분이 지중해에서 만들어 진다. 본부장이 동양을 무시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동양은 바다에 대한 가치 자체를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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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후 아래 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절 동로마 제국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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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절반과 아시아로 가는 무역로 독점으로 시대적 이니셔티브를 잡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

오늘날의 터키는 예전 오스만 투르크의 영역에 비하면 매우 극소수 지역에 불과한다. 앞서 말한 지중해 연안의 절반을 차지했었고 지금의 발칸반도 국가인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뿐 아니라 헝가리까지 점령하고 서부유럽에서는 프랑스와 연합해서 신성로마제국을 위협했고 동쪽으로는 아리비아 반도 전역으로 걸프만을 경계로 이란을 마주보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17세기 중후반을 정점으로 18세기 들어 서서히 쇠퇴하면서 지중해를 내주고 1830년 그리스를 시작으로 발칸반도와 1916년 사이크 피코 협정-영국과 프랑스의 아라비아반도 분할 비밀협정-으로 아라비아 반도도 내주었다. 오늘 상식 하나 이야기해주마. 여러분이 어릴적 학교에서 소아시아란 단어를 배웠을 것이다. 본부장도 이걸 들으면서 도대체 이게 어디 붙어있는 말인지 몰랐다. 그만큼 공교육에서 가르치는 역사나 지리공부가 너무 단편적인 낱말 위주였다는 이야기다. 바로 이 소아시아(Minor Asia)가 현재의 터키다. 지명은 아나톨리아 고원이라는데 따로 외울 필요없다. 소아시아라고 한 이유는 아시아 자체에 대한 개념을 지중해를 중심으로 생각했기때문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운데 두고 동쪽을 아시아 서쪽을 유럽으로 봤다. 다른 건 몰라도 다르다넬스 해협과 보스포러스 해협은 꼭 알아두어라.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경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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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도의 나라들을 유심히 보라. 화약고의 뇌관이 보인다. < 발칸 반도의 국가들>

역사적으로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와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1세가 다 이 해협을 건너다니면서 서로 상대편을 엄청 고생시켰다. 알렉산더는 이 해협을 건너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인도까지 진격한다. 지금으로부터 3100년 전으로 추정되는 트로이 전쟁도 다르다넬스 해협의 아시아쪽 해안에 붙어있다. 상식으로 알아둬라. 하긴 이 정도만 알아도 지리적 핵심은 다 아는거다. 쓸데없는 지명이니 어느 민족이니 무슨 어족이니 하는 것을 외우지마라. 본부장이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터키의 핵심은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융성이 아니라 20세기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분쟁의 씨앗이다. 분쟁이란 항상 이해관계를 동반한다. 본부장이 누차 이야기하는 물밑의 이해관계 말이다. 영화 터치 오브 스파이스에 나오는 터키요리도 훌륭하지만 여러분이 터키에 대해 알아야 할 최우선 순위는 지구상에서 가장 군사적 충돌이 잦은 발칸 반도와 아라비아 반도이다. 대부분은 이곳이 터키 영토였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터키 사람들이 괜히 역사를 자랑하고 다니는 게 아니다. 아주 먼 역사가 아니라 가장 근래까지 잘 나가던 이슬람 국가였다. 발칸반도 쪽에서 그리스 정교를 믿던 사람들은 터키에게 많은 박해를 받았다. 개종을 안하는 댓가로 많은 불이익을 받았던 것이다. 1990년대 피비린내 났던 유고 내전에서 인종 종교간 전쟁이 살벌했던 것도 다 오스만 제국의 흔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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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친목 단체같지만 모두가 번영하고자는 공감대로 뭉쳐진 신뢰가는 결속력 (아일랜드는 빼고) < 영연방 국가들>

오스만 제국 400년은 대영 제국 400년과 다른 게 하나 있다. 모든 제국의 공통점은 모든 단위의 통일과 그것을 위한 기반시설 정비다. 제국 안에 있는 단위란 단위는 다 통일을 해야 한다. 기원전 있었던 제국인 페르시아도 유명한 다리우스 1세가 가장 먼저 한 것이 화폐와 도로의 정비였다. 예전 중학교시절 영어 수업시간에 '학문에는 왕도(王道)가 없다'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 왕도가 페르시아 다리우스 대왕이 만든 도로에서 나온 말이다. 4두 마차 두 대가 나란히 지날 수 있는 넓이와 완벽한 포장이 되어 있었다고 하니 9세기 스페인 코르도바의 가로등 아야기만큼 엄청나다. 정말 길 하나는 기가 막히게 닦아 놓아서 제국 내 어디를 가든 7일이면 갈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나중에 로마제국 도로의 전형이 된다. 로마는 아예 도로에 마차의 너비의 홈을 파놓아 마차 바퀴의 규격까지 통일시켰다고 한다. 규격이 틀리면 아예 운행자체가 불가다. 잘 나가던 대영제국시절 연방국가들이 바다로 가로막혀 멀리 떨어져 있는 있던, 영국은 21세기인 현재도 영국 여왕을 국왕으로 모시는 16개국(UK포함)은 물론이고 전체 53개 영연방국가들이 모두 같은 언어는 물론이고 동일한 법체제와 제반 사회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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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란 것만큼 흔하지 않은 것도 없다.

여기에 비해 오스만 제국은 매우 느슨한 형태의 통치시스템을 운영하여 국가 안에 오늘날로 말하면 행정기구가 있고 또 따로 사회적 발언권이 있는 위원회나 혈연, 지연, 학연에 얽힌 각종 단체가 실질적인 법적 영향력과 동일한 기능을 하여왔다. 따라서 모든 사회의 제반 결정이 공동체 영역 안의 모든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양각색으로 그때 재량으로 처리되는 것이 다반사가 되어온 것이다. 역사라는 것도 결국 공동체 안 누군가의 시대에 대한 정의다. 그런데 그런 역사에 대한 기술을 스스로 할 수 있었던 자신감은 역사 기술자 자신이 이미 보편타당한 객관성을 가지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헤로도 토스의 <역사>나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는 이런 사회 제도적 기준에 대한 상식적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사에서 국민이 책을 많이 보는 나라는 사회 면면히 보편적 상식이 강하게 뿌리내린 나라이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나라는 그런 상식보다는 소단위 집단이나 개인의 재량에 좌지 우지 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따라서 본부장은 여러분이 책을 많이 안 읽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다. 개인 및 공동체가 보편적 상식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아직 서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 공동체 전체의 책임이 매우 크다. 특히 공동체의 리더계층의 책임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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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사이크 피코 조약'으로 영국대표 사이크와 프랑스 대표 피코가 자기들끼리 그어놔서 국경선이 반듯하다. 시끄럽기는 발칸 반도 못지 않은 <아라비아 반도 국가들>

이것이 오스만 제국 치하에 있던, 앞서 말한 발칸반도와 아리비아 반도에 있던 나라들이 20세기 들어 세계의 화약고가 된 가장 큰 요인된다. 제국 통치기간에 통일된 가치판단 기준과 사회시스템 구축이 되었더라면 그 나라들은 아마 왠만한 선진국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 대영제국에 속해있던 나라들을 한번 보자. 캐나다, 호주, 인도와 같이 호의적이거나 아이랜드처럼 극도로 적대적이라도 지금은 세계 경제나 정치 또는 문화적 수준에서 대부분 상위권에 속해있다. 본부장은 개인적으로 터키와 터키 사람들을 매우 좋아한다. 특히 그들의 사람 냄새나는 관습이 참 푸근하다. 한마디로 화끈하게 도와주고 안아준다. 너무나도 멋진 나라다. 하지만 터키는 폴란드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진 국민이 주변 강대국의 규모가 워낙 비교우위라 어렵게시리 나라 하나 유지하기도 힘든 나라가 아니었다. 스스로 제국의 종주국으로서 책임을 가졌어야 했다는 것이다. 남의 나라였다면 모르지만 자신의 영역에 수많은 나라를 섭렵한 제국의 형태를 띠었다면 당연히 가져야할 책임감 말이다. 이것은 개인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누군가를 리드해야 할 입장에 섰을 때는 그 책임에 맞게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개선시켜나가야 한다. 그리고 합쳐진 전체를 개선시키기 위한 시너지를 추구해야 한다. 그게 바로 종교나 인종과 상관없이 모두가 바라는 리더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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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벗겨내는 아픔을 스스로 겪어낼 자신이 있어야 리더다. <리더쉽과 팔로워십>

본부장이 말하는 '그룹핑 능력'이 실전형 인재의 첫 덕목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어야 전체 공공의 이익이 증진되는 것이다. 이 단어를 영국에서는 'Commonwealth'라고 하여 올리버 크롬웰이 영국 최초로 공화정이란 의미로 사용하였다. 이 단어는 나중에는 결국 영연방의 의미로 쓰여진다. 말 그대로 전체가 다 번영하기 위해 모인 집단이라는 것이다. 전체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개인이나 작은 단체의 의견이 원활하게 발휘되면서도 결국 서로를 위한 타협이 아니라 전체를 위한 타협이 이루어져 최종적 합의까지 도출이 되는 공동체라야 한다. 여기서 전자인 서로를 위한 타협을 해온 공동체는 언제나 역사의 주도권을 잡을 수 없었다. 개별 구성원이 당장은 편리하지만 궁극적으로 각자를 약하게 만드는 타협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타협의 역사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제아무리 훌륭한 인격의 리더에 의해 창설된 공동체라도 개별 구성원과 함께 추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를 바로 '혁신'라고 하는 것이다. 말뜻 그대로 껍데기를 벗기는 고통을 이겨내며 내일 더 발전하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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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모델의 양성과 반복 재생산은 가장 확실한 승리 공식

본부장이 지난 독일 편에서 말했다. 독일 제3 제국이 설령 군사력의 우위로 유럽을 석권했다고 하더라도 유지는 못한다고 말이다. 시대에 맞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부장이 이토록 시대를 말하려고 하는 이유도 결국은 여러분들이 사는 이 3차원 리얼 세상의 공감대를 파악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독일이 만약 유럽을 제패해서 만의 하나의 가능성으로 어렵사리 제 3제국을 유지했다면 유럽 주요 국가들은 지금 발칸반도와 아라비아 반도의 국가들처럼 되었을 것이다. 정말 이런 얘기를 하면 터키에게 매우 미안한 말이지만 역사는 결과로 책임지는 것이다. 현재 그 국가들의 모습이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리더쉽은 수학처럼 매우 클리어한 게임이다. 결과물이 명확하다. 항상 자신과 공동체의 혁신을 시도하는 것이 리더쉽이다. 예외는 전혀 없다. 재미있게도 비슷한 시기인 15세기 중후반에 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에는 스페인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가 스페인 리콩키스타(스페인국토수복운동)운동에 밀려 지브롤타를 건너 아프리카로 쫓겨갔고, 또 한편인 동쪽 끝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동로마가 멸망하고 또 다른 이슬람 왕조인 오스만 투르크가 들어서게 된 것은 모두 각기 다른 리더쉽의 우열에서 판가름 난 것이다. 하지만 이 각각의 기독교와 이슬람 제국은 그들이 거머쥔 시대적 이니셔티브를 그들이 통합한 전체 공동체 이익으로 끝내 만들지 못하고 말았다. 이 두 국가들이 스쳐간 남미, 발칸 그리고 아라비아 국가들은 한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리더 국가로서 팔로워 국가들에게 일찍이 좀 더 합리적이고 모범적인 리더쉽의 롤모델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스스로 확인 또 확인 하자. 'Common wealth'인가 'My wealth'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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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스위스 로잔 협정으로 터키와 그리스사이 있었던 인구 교환이라는 역사적 헤프닝과 터키 요리를 소재로한 영화

본부장은 아까도 말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터키에 매우 호감을 느끼고 있다. 매년 가는 유럽 오페라 여행 중에 재작년에 갔던 독일 바이로이트 여행에서 나에게 푸근한 인간적 정을 느끼게 해준 터키 식당 주인이 지금도 생생하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내에는 식당이나 택시기사를 하는 터키인들이 정말 많다. 제 2차대전 때 많이 유입되었다고 한다. 내가 느낀 터키인들은 자존심이 매우 강하고 우직하다. 하지만 정이 정말 많아 음식을 정말 많이 퍼준다. 음식 퍼주는거 보면 그 나라를 알 수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북부는 음식을 무슨 참새 모이만큼 준다. 야박하기 이를 때 없다. 반면에 독일이나 영국 그리고 러시아도 정말 넉넉하게 준다. 그들의 통 크기에 감동이다. 그런데 터키가 최고다. 거의 빅사이즈 미국보다 더 많이 준다. 이들 국가들의 공통점이 있다. 한때는 제국이었다. 크게 한번 놀아봐서 그런지 손이 크다. 터키도 최근까지 제국을 경험한 나라였던 거다. 그리스 영화지만 터키의 음식문화를 면면히 보여주는 <터치 오브 스파이스>를 추천한다. 정말 터키에 가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참고로 1922년 그리스 터키 전쟁 종결(국가 패망의 위기를 겪고 어렵게 터키 승리)로 스위스 로잔에서 협정을 체결하고 자국인구를 교환하는 해프닝이 영화의 역사적 모티브다. 주변에서 터키를 다녀오신 분들은 모두 대만족을 했다고 하니 인심 하나는 끝내주는 나라가 터키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아직도 그리스와는 그다지 좋은 관계가 아니니 그리스 우호적인 이야기는 되도록 삼가하기 바란다. 최근까지 키프러스 섬이 이슈로 터키령인 북사이프러스 섬과 그리스 독립 세력이 점령중인 남키프러스 공화국으로 나뉘어 여전히 분쟁 지역이다. 서로 얘기 들어보면 모두 납득이 가지만 휘말지 말라는 거다. 본부장이 늘 얘기하듯이 이제는 국가가 아니라 도시의 시대다. 참고로 터키의 수도는 이스탄불이 아님을 알아둬라. 앙카라다. 1922년 제국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되면서 바뀐거다. 그래도 이스탄불이 제일 큰 도시라고 하니 꼭 가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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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음식



제 13편 인도네시아

세계의 중심에서 태동하는 인도네시아(1) 이제 때가 오고 있는 나라

  • 입력 : 2017.06.12 10:06:19    수정 : 2017.06.12 1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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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면 물류 중심지로서 최적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본부장이 인도네시아를 가 본 횟수는 지금까지 거의 12번 정도로 여권에 찍힌 스탬프의 수를 세어보고 알았다. 보통 회사 차원에서 실시되는 여러 가지 명목의 트립으로 자카르타나 발리를 집중적으로 방문한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용무로 인도네시아를 찾은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신혼여행도 제주도로 다녀온 터고 여름 휴가지로는 주로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오스트리아를 애용하였기에 개인적으로 충분히 인도네시아의 맨 살을 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출발했었다. 물론 독일, 오스트리아 여행처럼 오페라나 심포니를 즐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로지 나의 관심은 인도네시아가 가진 크라운 주얼(Crown Jewel)뿐이었다. 그것도 과거가 아닌 현재의 그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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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는 호주, 위로는 아시아 전체를 떠안고 있는 ‘중심지 국가’

인도네시아는 1만 3700개의 섬으로 구성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섬을 가진 나라다. 필리핀이 7107개이니 거의 두 배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령으로 350년을 통치를 받고 네덜란드에 대한 악감정을 가질 만도 하지만 태평양 전쟁 때 일본에게 3년의 억압적 통치를 받고 요즘 한국과 일본 사이의 어두운 과거사이며 뜨거운 정치적 외교적 이슈인 종군 위안부 문제를 함께 겪은 처지라 한국처럼 일본에 대한 반감이 더 큰 나라다. 이 때 통치국이었던 네덜란드 여성들도 전쟁 중 일본군에게 잡혀 위안부 생활을 했다는 충격적인 기사도 얼마 전에 보도된 적이 있는데 그 나라가 바로 인도네시아다. 참 어지간히도 나쁜 짓 많이 했다. 서구열강의 식민지로 참 많은 억울한 일이 있었고 또 참혹한 전쟁의 상처가 있었던 곳이라 나는 인도네시아에 대해 처음부터 연민의 정이 많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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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 웃지만 큰 소리가 없는 민족 ‘인도네시아 사람들’

인도네시아인들은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참 양반들이다. 한 때는 한국보다 잘 산 나라이기도 하지만 어마어마한 부존 자원은 차지하고서라도 그들은 표정부터 이미 부자다. 바그너 오페라 ‘발퀴레’에서 인용해서 본부장이 늘 강조하는 말 ‘힘들 때는 웃어라’라고 했던(9번째 여전사 발퀴레인 부륀힐데가 영웅 지크프리트를 임신한 채 허허벌판의 고난의 여정을 앞둔 지글린데에게 했던 말) 그걸 묵묵히 실천하는 국민이다. 언제나 여유롭게 웃고 있고 또 언제나 조용히 이야기 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큰 소리로 떠드는 자가 별로 없다. 모두 조용히 이야기한다. 내 인도네시아 통역을 맡은 데비씨나 아프리씨 모두 내가 하는 열정적인 강의를 인도네시아 톤으로 무던히도 여유롭게 통역하는 걸 보며 이 사람들 천성이구나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좀 어색하고 이래서야 제대로 의미가 전달되겠나 걱정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게 일부러 그런 거란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강력하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크게 소리지르거나 흥분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조선시대 아무리 더워도 도포를 벗지않는 지조있는 선비나 빅토리아 시대 위스키에 얼음을 넣어 먹는 것도 경박하다고 생각하는 영국신사보다 더 참을성 많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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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모습을 벗고 세계 중심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수도 ‘자카르타’

여기는 동남아시아 전역의 공통된 현상처럼 맨 위의 소수 현지 권력자와 그 권력자를 비호하며 잘사는 화교들이 경제력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누가 권력이나 경제력을 잡든 다 이유가 있겠지만 동남아시아에는 중산층이 빈약해서 나오는 공통된 문제가 사회 기반 시설과 도시 시설 부족이다. 중산층이 많으면 주말에 차로 놀러 나오는 사람도 많고 또 쇼핑이나 여행도 가고 하니 도로나 철도 그리고 각종 사회 기반 시설 또는 공연장 등이 얼마나 많이 필요하겠는가. 그런데 동남아시아는 바로 그 중산층이 취약하기에 그걸 요구하는 사회적 요구가 적다. 따라서 도시 정비가 나라의 우선 순위가 아니다. 결국 어느 나라나 중산층이 무너지면 도시가 우중충해지고 활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건 지금의 일본이나 한국도 걱정이다. 중산층의 힘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 인도네시아에서 잠재된 큰 희망을 보게 되었다. 역동성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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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의 강의를 듣는 모습이 매우 진지하다. 인도네시아 국립 사범대

본부장이 인도네시아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구글에 물어보면 다 나오는 섬 개수나 몇 십년째 듣는 화교 경제 얘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소일할 목적이 절대 아니다. 이번 인도네시아 강연은 정본부장이 지금까지 조국인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라는 그 ‘정본부장의 직톡’을 이제 전세계의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하는 여정의 첫 번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뭐든 출발점이 가장 중요하다. 정본부장이 이번 대학 특강에서 현지 청년들에게도 누누이 이야기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첫번째 출발점인 거점 도시로 삼은 이유는 이러하다. 대부분 자원이나 인구이니 이런 말을 하더라. 물론 천연자원 대국이며 2억5000만의 인구대국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본부장이 생각하는 절대적인 이유는 ‘이제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아직 하수인 거다. 전작 ‘본부장이 말한다’의 영화적 모티브는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지만 정신적 모티브는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이다. 거기에 나오는 말이 무엇인가. 무엇이든 승부의 시작은 그때가 왔을 때이다. 그 때가 오면 지던 승부도 이기고 이기던 승부도 진다. 정본부장이 생각하는 지금 국가적으로 승부의 때가 오고 있는 나라는 인도네시아다. 바로 청년들의 눈이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애들이 바라는 사회가 잘 되기 마련이다. 그걸 막겠다고 노인들이 원하는 사회를 만들면 필히 망한다. 20세기초 패망 조선이나 19세기말 20세기 초까지 잘나가다가 끝내 패망한 일본의 근본적 이유는 젊은이들을 위한 사회가 아니라 노인들이 그들이 원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고집 부리다가 자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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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의 ‘청년 인구 분포도’

인도네시아의 때가 된 것은 이미 한국에서도 누차 주요 일간 신문들에서 다루었다. 특히 경제신문에서는 매우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자원과 인구를 기반으로 한 수치적인 부분에 대한 기획 기사들 말이다. 하지만 본부장은 그 이상의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10번 이상 다니면서 그걸 모르겠는가. 항상 주변을 살피는 눈을 가지라 몇 번을 말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걸 이번에 최종적으로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 속으로 ‘이것 봐라.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역동적인데’라고 중얼 거렸다. 정말 이제 인도네시아는 예전의 그런 허접한 나라가 아니다. 청년들 스스로가 내게 하는 말이다. 본부장은 이번 강연지인 인도네시아 국립 사범대학과 자카르타 시립 예술대학에서 약100명 정도의 학생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그들과 호흡하려고 매우 노력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비전이나 성취욕이 얼마 정도인지 말이다. 이들은 예전 10년 전에 보았던 그런 촛점없는 눈을 가진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아니었다. 역시 M세대는 어디에서든 틀리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아마도 SNS와GOOGLE의 힘일 것이다. 웬만한 건 그들도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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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부터 2000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

이번 인도네시아 트립에서 본부장이 또 신경 써서 기획해보고 싶었던 것은 우리 청년들에게 역동하는 인도네시아 청년들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고 또 함께 글로벌 프로젝트의 밑그림에 참여시켜주고 싶었다. 본부장은 멘토 멘티의 관계로 지내는 청년들이 상당하다. 나는 이 멘토 멘티의 관계가 앞으로 미래에 매우 중요한 그룹핑 패턴이라고 확신한다. 본부장이 항상 강조했던 실전형 인재의 첫번째 조건이 그룹핑 능력(Grouping Ability) 아니었나. 조직의 구성이나 규율은 좀 더 느슨하지만 구성원의 주체적 권한은 더 강화되고 대신 지휘하는 리더에 대한 인격과 컨텐츠, 그리고 포괄적 능력에 대한 확실한 신뢰가 선행되는 조직이 앞으로 모든 조직패턴 그리고 기업패턴을 선도할 것이다. 이번 트립에서 함께 동반했던 멘티 분들은 모두 훌륭한 사회 및 가정교육을 받고 무엇보다도 인격적으로 매우 훌륭한 분들 중에 본부장이 강조하는 실전형 인재적 기질을 가진 분들로 엄선되었다. 이분들은 모두 자신이 글로벌 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해보고 또 글로벌 비지니스까지 성사시켜본 경험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향후 이분들은 좀더 구체적인 컨텐츠와 활동 영역에 대해 본부장과 함께 머리를 맞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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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어떤 인류보다 그룹핑에 익숙한 ‘M세대’

본부장이 추진중인 글로벌 프로젝트 2037의 핵심은 전세계 젊은 인재들이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힘을 합쳐 각 개인의 발전은 물론 더 나아가 진실한 인류 진보에 기여하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인류가 16세기 대항해 시대를 통해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부의 창출을 통한 자본가들이 지난 400년 동안 차곡 차곡 만들어졌다. 그 동안 매우 빨리만 달려온 세계 경제의 번영에는 전 세계 모두가 공감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다. 글로벌 경제난 및 취업난으로 지쳐가는 청년들 말이다. 아무 것도 주도할 수 없고 축적할 수도 없는 이들에게 오직 남아있는 희망과 동기부여는 자신들끼리라도 그룹핑하는 것이다. 본부장은 민주주의를 신봉한다. 이것의 핵심은 사유재산에 대한 철저한 보장에 있다. 각 개인 재산이 보장되어야 인간의 존엄성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자리의 문제는 매우 다르다. 이것은 독점되거나 특정 계층이나 개인에게 보장되어서는 안된다. 이젠 일자리가 단순히 생계유지의 수단을 넘어 인간 존재에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전세계는 국가간의 싸움이 아닌 계층간의 싸움이 벌어지기 일보직전이다. 정부나 지자체 그리고 대기업의 주요 결정이 세대편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누구도 구매력이 없는 이들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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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이면 두 세대의 입장이 바뀐다.

본부장은 작금의 전세계적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청년들로 이루어진 베스트 그룹핑을 통한 새로운 페러다임 창출이라고 본다. 다행이 M세대의 특징을 보면 희망이 보인다. 몇가지 이야기해 주겠다. 첫째, 가치추구적이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먼 미래의 자신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 둘째, 의협심이 강하다. 일단 받은 부탁에 한해서는 끝까지 해결해주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셋째, 옳고 그름이 명확하다. 나이에 비해 매우 어른스러울 정도로 자신만의 옳고 그름이 분명하다. 넷째,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는다. 브랜드나 위신 또는 체면보다는 실질적인 이해관계를 중요시 여긴다. 다섯째, 또래 집단과 경쟁하기 보다는 그들의 리더가 되고자 한다. 혼자 몰래 공부해서 남을 꺾겠다는 마음보다 함께 공부해서 전체가 좋은 점수가 나오는 쪽을 선택한다. 이상은 본부장이 다년간 청년세대를 지켜보면서 나름 마음으로 새겨놓은 특징이다. 장점이냐 단점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사실이다. 그저 박수를 쳐주고 싶다. 본부장은 여기서 기회라는 긍정적 진실이 보인다. 전작 ‘본부장이 말한다’에서 그렇게 강조했던 승자의 법칙들은 사실 M세대 청년 제다이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본부장은 어차피 올 승리의 결말을 미리 보여주고자 했을 뿐. 기성세대보다 월등한 자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루저 취급을 받아야만 하는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2030년이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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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식을 혐오한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자 정리하자. 본부장이 말한다. 미래 인간이 로봇과 싸워 최후에 결국 이길 수 있는 점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것은 인류 자체에 대한 의무감밖에 없다. 로봇은 모든 것을 앞지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마지막 남은 인간으로서 의무감만 지킨다면 어떤 기계도 인간을 이길 수 없다. 이런 인간에 가장 가까운 세대가 바로 M세대다. 이들은 기계도 이길 세대이기에 기성세대들이 보기에는 매우 이기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오산이다. 그들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이미 서로를 너무나 존중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가식적으로 낮출 필요가 없다. 이것이 20세기를 살아온 기성세대가 가장 착각하는 부분이다. 필요 이상의 친절은 거짓인데도 말이다. 본부장도 수십년에 걸쳐 알게 된 힘든 진실이다. 과거는 그 달콤한 거짓이 예의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우리가 M세대를 앞으로 천 년을 시작할 미래 인류라고 하고 기성세대를 과거인류라고 일컫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가식적인 것은 더 이상 예의도 경쟁력도 아니다. 모든 게 직설로 통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과거 19세기의 수 많은 천재들이 쓴 소설의 주인공들이 말했었고, 오스카 와일드나 셜록 홈즈가 말했던 바로 그 진정성의 시대가 21세기에 드디어 온 것이다. 이제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대가 시작됐다. 본부장은 이 새로운 진보의 첫걸음에 세상의 중심에서 태동하는 인도네시아 청년들의 중심적 역할을 더욱 기대하는 바이다.


제 14편 베트남

절대 정복되지 않는 매력적인 나라 베트남(1) 약자가 승자가 되는 처절한 마음가짐, 절대 긍정

  • 입력 : 2017.06.16 13:43:34    수정 : 2017.06.16 13: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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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역사상 최고의 종군 기자 ‘로버트 카파’

지금도 지난 폴란드 편에서 방긋 웃던 폴란드 여자 시민군의 미소가 눈에 아른거린다. 예쁘기도 하지만 미소가 참 일품이었다. 어둠이 짙으면 빛도 밝다고 했던가. 처절한 인생사의 수레바퀴 속에 시달리다 이제 마지막 극도의 허무 끝에 입에서 터져 나오는 인간의 마지막 긴 웃음만큼 인간적인 게 또 있을까. 어릴 적 역사적 주요 장면을 담은 라이프지 사진을 애독한 적이 있다. 요제프 카쉬 같은 멋진 인물 사진 작가나 헤밍웨이나 로버트 카파 같은 종군 기자를 꿈꾸며 말이다. 그럴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전쟁 속 미소 사진들. 아마 작가의 요청으로 웃진 않았을 거다. 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 죽음의 전장을 따라다니면서도 살아남았던 로버트 카파는 프랑스와 베트남간 치뤄진 인도차이나 전쟁 때 사망한다. 그가 죽을 때까지 움켜쥐고 있었다는 흙 뭍은 니콘 카메라 때문에 니콘은 엄청난 매출을 올렸지만 말이다. 해밍웨이도 스페인 내전에서 겪은 이야기를 가지고 ‘무기여 잘있거라’, ‘킬리만자로의 눈’을 썼고 그 밖의 주요 작품들에서도 그가 전쟁터에서 겪은 감정들이 그대로 녹아 있다. 결국 그는 모히토 한잔 쭉 들이키고 자살도 총으로 한다. 역시 상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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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파가 죽을 때까지 손에 놓지 않았다는 카메라 ‘니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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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청혼을 받았으나 죽은 옛 연인을 기리며 거절한 ‘상남자 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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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해변, 노르망디 상륙작전 상황을 생생히 찍은 카파의 명작 ‘D DAY’

반면에 요제프 카쉬는 주로 성공한 유명 인사를 촬영했다. 물론 오래 살았다. 재미있는 건 카쉬의 사진 속에 나오는 분들은 대부분 웃지 않는다. 아주 근엄하거나 시니컬하다. 윈스턴 처칠부터 헬렌 켈러까지 아주 다양한 인사들을 촬영했다. 심지어는 그 유명한 영화 ‘카사블랑카’의 잉그리드 버그만과 커플인 험프리 보가트까지 촬영한 사진사가 카쉬다. 그런데 잉그리드 버그만과 사귄 남자는 로버트 카파다. 미인은 자신을 찍어주는 남자보다 역사를 찍어주는 남자를 좋아했던 것이다. 카파가 즐겨 시용하다 죽은 니콘은 세계 최초로 DSLR 카메라를 내놓았다. 그런데 그렇게 훌륭한 사진기가 나와도 그렇게 훌륭했던 사진사는 아직도 요원하다. 시대가 영웅을 만들기 때문인가. 맞다. 하지만 영웅이 시대를 만들기 때문이라고도 감히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사진찍기를 멋지게 생각하기 시작한 이유는 카파가 찍은 사진보다 카파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진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누구도 사진사를 훌륭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D데이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흔들리게 찍은 해병대 상륙 사진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다. 이유는 그가 그 시대에 덤벼들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참혹한 시대는 존재한다. 다만 누구도 그 참혹한 상황 속으로 담담히 걸어가려 하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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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함과 진정성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카파가 죽은 인도차이나 반도는 그가 미리 죽음을 알고 간 자리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찍은 수 많은 전사자와 부상자 그리고 이재민들을 찍으면서 그는 마음으로 하염없이 울었을 것이다. 분명히. 그 참혹함 속에서 그가 느낄만한 인간의 감정은 단 한가지다. 의무감에서 우러나오는 대담함 말이다. 이번 전쟁터에서는 아마 나도 저들처럼 죽을 수도 있겠지만 담대하게 그렇게 될 것을 감수했을 것이다. 이유는 자신이 찍은 수 많은 불행들 사이에 담대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말이다. 누군가의 불행을 지켜보면서 슬퍼하지 않고 누군가 당하는 악행을 보면서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명심하자. 본부장이 말한다. 인간은 마땅히 슬퍼할 때 슬퍼할 줄 알아야 하고 마땅히 화낼 때 화낼 줄 알아야 한다. 이게 멋진 인간이다.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와야 한다. 반드시 말이다. 모든 성공의 시작은 마땅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하자. 인생은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살아야 한다. 가슴 속에 자신만의 비밀이 없는 사람은 매력 없고 남의 비밀까지 얘기하는 사람은 영혼이 없는 사람이다. 인생을 간결함과 진정성으로 썼다고 한 헤밍웨이의 작품에 왜 그토록 열광하는지 알아야 한다. 조용하게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겁내지 마라. 그런 사람들이 더 오래 산다. 본부장을 따르다 보면 차차 그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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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를 배경으로 한 마르그리트 뒤라스 원작, 장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연인>

자. 카파가 죽을 자리인줄 알면서도 담담히 임무를 완수하다 하늘 나라로 떠난 인도차이나 반도로 떠나보자. 공시적으로 명칭이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다. 하지만 결국 피식민국 베트남과 종주국 프랑스와의 전쟁이다. 동남아시아 역사를 통틀어서 피식민국이 종주국을 무력 전쟁을 통해 완전히 몰아내고 해방된 역사는 없다. 대부분 종주국이 타국과의 패전에 의해 자진 철수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베트남은 좀 지저분한 꼴을 당했다. 프랑스 식민 정부가 일본군과 협정을 맺고 태평양 전쟁 종전까지 대리 통치하다가 패전으로 일본이 돌아가고 프랑스도 돌아가야하는데 그대로 눌러앉으려 했던 것이다. 이유는 프랑스는 추축국으로 국제법상 일본과 동맹관계가 되지만 해방 프랑스는 연합국으로 승전국이다. 국익에 따라 말을 바꿔탄 것이다. 프랑스가 바로 이럴 때 개념이 약간 부족한 것이 영국과 매우 차이가 난다. 프랑스 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찰스 디킨스의 소설<두 도시 이야기>에서 당시 영국은 국왕이 정치적 분위기 파악을 정확히 하며 신생 시민 정치세력의 부상을 돕고 타협하며 왕권을 지키고 대영제국의 위용을 지켜간 반면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는 분위기 파악이 안되서 부상하는 시민계층을 인정하지 않고 묵살해 버리고 결국 왕정이 폐지됨은 물론 본인은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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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기 베트남에서의 프랑스와 달리 영국은 인도를 떠난다 <1947년 8월 15일 인도 독립>

마찬가지로 같은 시기 영국은 인도를 독립시킨다. 더 이상 식민 통치가 설득이 되지 않는 현대 사회가 도래한 것을 알아 차린 것이다. 반면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계속적인 식민통치를 선언한다. 물론 프랑스도 이해가 간다. 미국이 뒤에서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함이라는 좋은 명분을 프랑스에게 던졌으니 말이다. 다 이해한다. 그런데 왜 전쟁까지 시도했느냐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본부장이 늘 얘기하듯이 국제 정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아주 싼값으로 고급 국제 정치학 강의를 듣고 있다. 잘 듣고 어디 가서 써먹어라. 구글에 나오는 건 그냥 설이지만 여기서는 본부장의 명석한 추론과 독서의 결과이니 말이다. 지난 번 이란 편에서 이야기 했듯이 영국을 비롯한 러시아 봉쇄 세력이 가장 우려한 것이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통한 인도 진입이었다. 그럼에도 영국이 식민지 인도를 떠나는 결단을 과감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란의 친서방 세력인 팔레비 왕조 때문도 있겟지만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결정한다"는 사무엘 스마일스식 <자조론>에 근거한 영국 신사적 근성 -끈적거리지 않으려는 국민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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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인도차이나 전쟁(1965~1975)이 우리가 아는 미국과의 베트남전이고, 프랑스와 전쟁이 <1차 인도차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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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베트남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5만의 프랑스군이 항복하고 국제적 망신을 당한 후 체결한 베트남 휴전 협정 <1954 제네바 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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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17도선으로 베트남의 잠정분단을 결정한 제네바 휴전협정은 또 다른 전쟁의 시작<게릴라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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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8월2일 미군이 북베트남 통킹만을 폭격하면서 미국과 베트남 준전시상태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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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부터 전면전으로 시작되는<제 2차 인도차이나 전쟁>

영국은 팔레스타인에서도 이스라엘 정부설립을 선포했던 벨푸어 선언 이후 아랍 유대간 유혈사태가 극심해지자 1948년 5월 이스라엘 정부 수립을 유대인에게 맡겨놓고 철수해버린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국은 자국 식민 통치 국가에 대한 리스펙트의 여지를 남겨놓고 떠나는 국가란 것이다. 제국에서 일반국가로 자연스런 연착륙의 비결. 그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진정성있는 고찰과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다. 하지만 프랑스를 비롯해 미국은 이런 다양성이란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결국 인도차이나 반도내의 혁명군을 불인정하고 적으로 돌려버렸다. 인도처럼 자연스럽게 놔두었으면 제3세력(서방도 공산주의도 아닌 세력)이나 되었을 나라들을 빨간 제 2세력(공산주의 세력)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물론 역사는 가정이 없다. 본부장도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국은 인도를 대접받으면서 나와 지금도 영연방의 종주국 대접을 받고 있지만 프랑스는 전쟁에 패해 망신만 톡톡하게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프랑스가 당한 망신은 이후 미국이 당할 망신에 비하면 개 수 백마리도 모자른다. 베트남전을 이 자리에서 모두 분석할 필요는 없다. 항상 이야기지만 구글이 대신해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못해줄만한 건 본부장이 해주고 가야하니 잘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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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파리 평화 협정으로 사실상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를 인정한다. 당시 난해한 국제 정치문제의 소방수역할을 수행한<헨리 키신저>

1973년 파리 평화 협정라는 게 있다. 보통 협약과 협정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협약이 나오면 기후나 해양 등이 주요 이슈이지만 전쟁종결 이후 체결되는 협정은 누가 누구랑 싸워서 지고 그걸 제3국에 가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때 주로 쓰여지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앞서 터키 편에서 말한 1832년 런던 의정서 같은 경우는 전쟁당사국이 아닌 영국이 터키와 그리스의 전쟁을 종결시키며 그리스의 독립을 공식화한 것이다. 말하자면 의정서란 조약체결국의 권위가 강하게 작용될 때 주로 사용된다. 파리 평화 협정도 베트남에게 프랑스가 지고 나가고 다시 미국이 대신 들어와 또 지고 나서 공식적으로 미국이 베트남과 맺은 평화조약이다. 한마디로 난 빠질테니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이 싸우든지 화해하든지 맘대로 하라는 것이다. 결국 이 협정을 조인하고 얼마 안되어 베트남은 북베트남으로 통일된다. 본부장이 보기엔 참 무서운 일이다. 개입하지 않았으면 자연스럽게 정리되었을 국가가 서로 반으로 나뉘어 죽고 죽이는 유혈이 낭자한 지옥을 만들고 전쟁 당사국 미국은 그냥 빠져나온 것이다. 미국이 두고 두고 욕먹는 것이 바로 베트남 전쟁에서 보인 바로 이런 모습 때문이다. 이 장면은 한반도에서 미북간의 평화협정을 두고 묘한 데자뷰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자세한 것은 검색해 보길 바란다. 재미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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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승전국으로 얼굴에 화색이 만연한 <남베트남 혁명 정부 대표들(사실상 북베트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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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 자신들의 미래를 감지한듯 표정이 어두운 <남베트남 정부 대표들>

처음에 사진작가 카파를 인용하면서 수많은 미사여구를 던지며 베트남을 시작한 이유가 이제 곧 나온다. 기다려 봐라. 1945년 8월 태평양 전쟁이 끝날 때까지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과 별 다른 점이 없는 모습이다. 물론 자세히 보면 베트남 특유의 끈질긴 저항에 따른 잔인한 박해를 받아서 아직도 베트남은 일본에 대한 앙금이 안풀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대 일본 투쟁에서 시작해서 결국 1946년부터는 프랑스와 미국까지 상대해 30년 이상 저항하고 결국 모두 손사래를 치며 나가게 만든 아시아의 근성 국가가 베트남이다. 정말 폴란드 여군들에게 미안하지만 폴란드보다 살짝 한 수 위다. 정말 처절함의 끝판왕이었으니 말이다. 1975년 종전 후에도 세계 최강국 체면에 제대로 금이 간-1954년 디엔비엔푸에서 압도적인 장비와 숫자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항복하면서 그 망신의 서막이 보였지만- 미국이 하도 분해 북베트남에 원폭투하 계획이 있었다는 설을 흘리기까지 할 정도이다. 한마디로 '니들 줄을 뻔한 줄 알라'는 말이다. 본부장의 부친은 베트남에 전투병으로 참전하시고 심지어는 미군이 살포했다는 고엽제 피해로 지금까지 고생하시는 분이시다. 본부장에게 베트남은 어린시절부터 가까이서 직접 들어왔고 또 직접 가서 보며 느낀 나라다. 나의 아버지가 전하고 내가 직접 격은 베트남은 절대 긍정의 나라라는 거다. 여러분이 베트남 시내를 걷다 어디 아무 길거리 식당을 들어가 보라. 그리고 그 맛있는 쌀국수를 시켜보란 말이다. 얼굴에 쓰여있는 대인배다운 웃음과 함께 큰 그릇 한가득 나오는 소고기 많이 들어간 쌀국수가 베트남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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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현지에서 주는 쌀국수는 이것과 비교가 안되는 양과 풍미<베트남 쌀국수>

언제 어디서나 본인이 주인이니 마음껏 즐기고 가라는 그들의 표정은 바로 본부장이 강조하는 '스스로 빛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에서 나온다. 베트남에는 치정에 의한 살인사건이 많기로 유명하다. 즉 배신자는 죽음이란 것이다. 베트남에 와서 결혼을 약속하고 같이 살던 연인을 두고 변심한 외국인 남자가 공항에서 몰래 도망가다 현장에서 잡혀 여인에게 즉결로 난도질을 당하고 여인도 자결하는 사건이 베트남에서는 다반사라고 한다. 그만큼 주는 정도 많고 배신감도 많이 느끼는 민족인 것이다. 베트남의 그 절대 정복되지 않는 '스스로 빛나는' 자립심의 근원에는 바로 그 '절대 긍정'이 있다. 그 참혹한 인생의 쓰레기 더미 위에서도 그런 청결하고 대인배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친에게 들어왔다. 그리고 그 청결한 미소를 본부장은 베트남을 다시 갈 때마다 그 자식 세대들에서 고스란히 느끼고 돌아온다. 어린시절 베트남 전쟁영화에서 한없이 누추하고 무능해 보이기만한 사람들이 사실 지구상에서 가장 강하고 매력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그다지도 강하게 만들어 준 것도 그 청결한 미소였고 그들의 매력을 다시 알아보게 만든 것도 그것이었다. 

제 15편 이집트

알렉산더와 안토니우스가 사랑한 나라 이집트
(1) 인류 역사상 最古 신비로운 악당

  • 입력 : 2017.06.19 20:43:00    수정 : 2017.06.19 20: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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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을 건너 인류는 콜롬버스 보다 5000년 먼저 아메리카로 갔다.파도가 심하기로 유명한 ‘베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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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먹는 킹크랩이 여기서 잡힌다. 킹크랩 서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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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팩트 스톰을 연상케하는 조업환경. 이래서 대게가 비싼거다. 베링해 킹크랩 조업 장면

본부장이 여러가지 자료로 추정컨대 전 세계 모든 민족의 역사가 동일하게 5000년이라고 본다. 자신들이 그렇다고 주장하니 말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의 민족들이 주로 주장하는 역사의 길이가 보통 5000년이다. 여러분들도 학교에 들어가서 지구의 역사가 50억년이고 인류의 기원이 되는 침팬치와 인간 사이의 존재가 나타난 게 50만년전이라는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4대 인류 문명이라고 하면 중국 황하문명, 인도 인더스문명, 이라크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리고 이집트 문명이다. 스웨덴 편에서 본부장이 이야기 했듯이 인류의 최초 어머니 이브는 아프리카 태생이다. 최초의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중국까지 갔다가 얼어붙은 베링해를 건너 알라스카로 들어가 북미를 거쳐 남미로 갔을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가 5000년 전 그들이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자 그쯤 해두자. 이집트 피라미드를 조사해보니 신기하게도 5000년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인간이 추론을 하는 근거는 증거다. 인류가 살아온 증거 중에 가장 오래되고 큰 증거물이 지금도 이집트에 있다. 규모가 크다 보니 이것 저것 추정할만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닐거다. 우주에서 보면 맨눈으로 보인다고 까지 말하는 건축물이 만리장성과 피라미드다. 설마 보이겠는가. 웃기는 얘기다. 하지만 요즘은 기술의 힘을 입어 우주에서 우리집 마당에 떨어진 바늘도 보이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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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력과 인간의 욕망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미국의 정치학자 ‘해럴드 라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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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욕망의 목표는 가치(value)이고 그 가치의 분배에의 참여가 권력(power)이다. 해럴드 라스웰

이집트 피라미드가 인류에게 준 유산은 단순히 오래된 거대 건축물이라서가 아니다. 현대 인간이 원하는 미스테리적 요소가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즉 어떤 형태가 됐든 초자연적인 존재 또는 외계와의 연관 가능성과 인류의 기원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결국 존재론적인 문제다. 미국 정치학자 라스엘이 말한대로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기 만족에 기반한다고 했다. 지극히 맞는 얘기다. 더 나아가 인간의 궁극적인 만족은 존재론적인 가치(value)가 충족됨에 대한 만족이다. '나'라는 존재감 말이다. 따라서 인간은 앞으로도 수 천년 동안 이것에 골몰할 것이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가를 알아내어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지극한 즐거움의 비밀을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엠마누엘 칸트가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 받아 가지고 태어난다는 오성(understanding)을 차치하고서라도 본부장이 보기에도 인간은 이미 지극히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합리적인 인간이다. 하지만 도시를 떠나 한적한 초원에 가만히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이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 나왔지만 우리 인간은 어디서 왔을까. 우리 조상들의 죽음 특히 나의 죽음 이후가 무척이나 궁금하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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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피라미드와 외계인 연관설은 아직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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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스로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라는 실존주의적 질문을 던지게 하는 영화 ‘메트리스’

밤하늘의 별이 더욱 반짝거렸을 5000년 전, 사람들도 오로지 이게 가장 궁금했을 것이다. 주린 배는 내일도 역시 주릴 것이 예측이 되니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해 인간은 말할 수 없는 내적 분노를 느낀다. 그래서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 인간은 결국 초자연적인 존재를 찾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은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벌을 내려서 내가 힘들다면 이해가 되지만 그냥 우연히 힘들다면 분노를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는 인터넷 더 나아가 SNS의 폭발적 발전을 통해 초자연적인 존재가 인간에게 주는 신비감이 점점 떨어져가고 있다. 하지만 호기심은 오히려 높아지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신비감이 이미 대중화 되었다는 말이다. 신비감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경외를 말하고 호기심은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동경을 말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끝임없는 추구는 우리를 오히려 인간답게 만들었다는 생각도 든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지금의 현대 인류 같은 생활을 앞으로 100년만 더 한다면 인류는 필히 소멸한다고 본다. 인공지능 알파고들에게 말이다. 자신의 모든 육신을 빼앗기고 누워 희미한 정신으로만 남아 각종 전선과 튜브가 꼽힌 캡슐에 누워 오로지 감각적 쾌락만을 탐하면서 말이다. 영화 ‘메트릭스’에서 나오는 붉은 약이 아닌 푸른 약을 먹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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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의 수학적 계산없인 불가능한 최초의 피라미드가 만들어지고 2000년 후에 나온 ‘피타고라스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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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수학이다. 오늘날에 우리가 쓰는 음계의 개념을 만든 그리스 수학자 ‘피타고라스’

피라미드가 주는 신비함을 좀 더 보자. 먼저 만들어진 기하학적 모습에서 경외감을 불러 일으킨다. 인간은 기하학적인 모양에 언제나 매료되게 되어있다. 기하학적인 모양은 인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하학적 모양을 숫자로 표현하고자 더욱 발전된 것이 수학이다. 그리고 그것을 귀로 들을 수 있게 만든 음악적 숫자가 음계이다. 여러분들이 ‘피타고라스 정리’로 잘 알고 있는 피타고라스라는 그리스 수학자가 실은 오늘날 음계를 만든 사람이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음악을 들어보면 음악이 왜 수학인지 느껴질 것이다. 음악이 만들어 내는 철저히 계산된 기하학적 선율이 묘사된다. 참고로 바흐 음악을 자주 듣도록 해라. 본부장이 추천한다. 부자가 되게 해주는 음악이다. 숫자는 돈을 세는 단위가 될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것의 균형을 목표하는 단위이다. 그리스 로마에서 비롯된 서구 문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균형이다. 기하학적인 선의 아름다음에서 예술도 시작한다. 즉 피라미드는 인간이 꿈꾸는 모든 도형의 상징이며 아름다움에 대한 궁극적인 해석일지도 모른다. 절제된 선의 아름다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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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와의 통신장치 또는 동력 발전 장치라는 설도 있다. ’피라미드’

다음으로 만들어진 이유다. 정치적이고 종교적일 것이다라는 말은 식상하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과연 눈에 보이지 않는 기능적인 목적이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피라미드를 만들 노동력으로 땅을 개간하거나 운하를 만들었다면 또는 말을 기르거나 마차나 배를 만들어서 해외 정복에 나섰다면 좀 더 다른 실질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 사실 만리장성도 이민족의 침략으로부터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을 독점하고자 하는 기능적인 측면이 매우 강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피라미드는 사실 그런 기능이 없어 보인다. 오로지 왕의 권위에 대한 정치적 종교적 배려를 위한 건축이라면 경제적으로 전혀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다. 분명히 반대급부로 예상되는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본부장의 추론이다. 만리장성처럼 내 것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일 가능성이 크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말이다. 본부장은 그게 궁금할 따름이다. 차라리 외계인의 동력 발전소이라는 게 그냥 왕의 무덤이라는 것보다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단 말이다. 전 세계에는 피라미드같은 웅장한 건축물이 꽤 있다. 하지만 이집트 피라미드같이 기하학적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은 없다. 이러한 정교함을 얻으려면 매우 강한 권위를 갖는 권력자라도 반드시 적절한 급료를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서에 나오는 모세같은 반란자가 나와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갈 테니 말이다. 지금 기준으로 봐도 너무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다.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설이 난무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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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근원적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나 여전히 말이 없는 ‘이집트 문명의 유적들’

이집트가 매력 있는 이유는 4대 문명을 구글에 검색해봐도 이집트만 유일하게 유적지다운 그림이 검색된다는 것이다. 나머지 메소포타미아나 인더스 그리고 황하문명의 그것은 규모나 완성도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저 옛날에 사람이 모여 살았나 보다라는 정도의 의미인 것이다. 하지만 이집트는 위에 이야기한대로 인간이 추구하는 대상의 상징물로서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 존재의 목적까지도 신비로운 유적들을 품은 문명이다. 한마디로 우리 인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의 열쇠를 품고 있는 문명이다. 아직도 미국에서는 인류가 창조되었느냐 진화되었느냐 하는 것에 대한 교과서적 논쟁이 한창이다. 아직도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실 이런 인류의 근원에 대한 논쟁이 가능한 시대가 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도 인류의 기원에 대한 구체적화된 질문은 없다. 로마 타키투스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신화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처럼 창조론을 근거로 한 단선적 세계관을 가지지 않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그리스 로마시대마저도 이러한 질문에는 인색했다. 그만큼 현대로 오면서 인간이 누리는 물적뿐 아니라 지적 풍요에 따른 여유에 기인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과분한 풍요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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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 출애급기를 모티브로 한 영화 ‘엑서더스/신들과 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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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했더라면 없었을 반란군 리더, 모세가 이끈 ‘이집트 탈출 이동 경로’

하지만 경이로움과 신비함만을 품은 이집트가 아니다. 성경은 여러분이 종교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꼭 한번 보기 바란다. 본부장은 지금까지 직업적으로 주어진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함은 물론이고 바쁜 와중에도 학창시절을 포함해 수 천권의 책을 읽어왔다. 한마디로 성공론에 있어서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사람이다. 본부장이 한때 가슴으로 좋아했던 롤모델 존 스튜어트 밀이 희대의 명저 자유론(on Liberty)을 쓸 당시에도 그는 그저 동인도 회사 일반 직원이었고 업무적 성공도 이렇다 할 게 없었다. 그냥 팩트다. 물론 본부장의 가장 소중한 사상적 스승이지만 말이다. 그분도 본부장을 인정하실거라 본다. 그런 본부장이 보기에도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책으로 성경만큼 괜찮은 책은 없어 보인다. 세상의 웬만한 역사적 지식과 삶의 살아있는 지혜가 알차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나이들수록 더 그것을 느낀다. 바흐 음악을 틀어 놓고 성경을 읽어보라. 칸트가 말한 오성과 이성이 샘물처럼 솟아오를 것이다. 자 이 성경에서 가장 악당으로 자주 지목되는 국가가 이집트다. 물론 타락의 바벨탑을 짓고 이스라엘 민족을 포로살이 시킨 바빌론이나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을 가르치는 모든 성직자들이 설교할 때 꼭 벗어나야 할 1순위 대상으로 묘사나 비유하는 국가는 항상 이집트다. 성경 66권(구약 39권 신약 27권)가운데 출애굽기라고 아예 중량감 있게 한 권으로 정리되어있다. 얼마나 힘들게 했으면 이렇게까지 했겠는가.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에서도 인접국 이디오피아를 침략해 고통을 주는 국가로 묘사하고 있다. 물론 당시 이집트가 초강대국이기에 약한 주변국들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침략과 억압의 역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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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지중해 시대 최고의 로열 어페어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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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시대의 ‘이집트와 지중해 판도’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이집트도 찬란한 문명을 가진 만큼 후세들이 그 영광을 유지하고 있지 못한 나라다. 페르시아의 이란, 로마의 이탈리아 등과 마찬가지로 모두 영광의 역사 이후 오히려 주변국들의 침입으로 나라조차 없던 치욕을 겪어온다. 이집트는 로마 공화정 장군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와 러브스토리로 유명한)에게 정복당한 이후 지금까지 예전의 영광을 누려본 적이 없다. 상식으로 알려주지만 클레오파트라는 그녀의 이름이 아니라 이집트 여자 통치자의 명칭이다. 아는 척하기 바란다. 역사는 돌고 돈다지만 정말 냉정할 정도로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본부장이 비밀을 말해주마. 나라가 성공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성공하는 것이다. 인간이 변하는 거지 국가는 그대로 있다. 이집트의 인재가 그리스 보다 떨어졌기에 알렉산더에게 점령(후에 이집트를 매우 사랑하여 자신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였다)당한 것이고 로마 안토니우스에게 패한 것이다. 그리스도 트로이 전쟁 이후 패한 트로이 유민들(로마는 시조가 둘인데 하나는 라틴계인 로물루스이고 또 하나가 이때 탈출한 그리스계 아이네이스[로마 베르길리우스 서사시의 주인공]이다. 건국부터 로마는 다양성으로 시작한다. 다양성이 보장되야 실전형 인재가 육성되고 그래서 조직은 번영한다)이 로마로 건너가 인재를 만들어내 결국 당시 최고 선진국 그리스를 넘어선다. 어느 국가나 집단이 보유한 실전형 인재의 비율이 얼마냐에 따라 조직의 흥망성쇠는 계속 순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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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실전형 인재가 만들어 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조지 루카스 영화 ‘스타워즈’

본부장이 이란 편에서 헐리우드 악당같이 일하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디테일한 프로세스적 사고방식 말이다. 악당들이 만들어 내는 일처리의 깔끔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본부장도 일처리에서는 어느 악당도 내 앞에서 명함을 내밀 수 없다. 그야말도 암흑의 다스베이더다. 마스크를 쓰는 순간 내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은 숫자로 표현되고 결과로 말을 한다. 옛날 생각하면 스스로를 봐도 정말 치가 떨릴 지경이다. 본부장이 피라미드같은 건축물의 건설을 맡는 순간 기자 피라미드는 이미 나온거나 마찬가지다. 몇 개나 만들거고 언제까지 만들건가가 중요할 뿐이지 말이다. 이집트 편에서 악당의 일처리 프로세스 5대 법칙을 기꺼이 이야기 해줄테니 잘 들어라. 구글이고 어디고 찾을 수 없는 본부장만의 실전검증된 콘텐츠이니 말이다. 아직 지휘관 되려면 까마득 하기에 말 안하려고 했는데 나중에 다시 펴보고 읽을거라 보고 말해주는 것이다. 모든 성공의 시작은 당연히 준비에 있다. 이 부분은 여러분이 지금같은 어린 나이라도 알 것이라고 본다. 다만 준비가 되었다는 수준이 본부장이 비유하자면 영화 ‘스타워즈’의 아직 마스터 요다에게 수련 전 패기에 찬 루크 스카이워커 정도라고 보면 된다. 막 준비되기 직전의 실전형 인재말이다. 무슨 일이든 일격에 타격할 수 있는 인재가 되어야 된다. 일격에 승리한다가 아니라 타격하는 거다. 슬슬 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죽이려고 때리는 거랄 말이다. 이게 된 상태여야 이제 시작점이다. 자 이제 마스크를 쓰고 다시 베이더가 됐다고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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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 말한다’시리즈의 모티브가 된 ‘다스 베이더’

내 앞에 피라미드를 지을 공터가 있고 인부들이 투덜거리며 앉아 있을 것이다. 온갖 자재들도 들어와 있고 옆에서는 비서가 뭐가 더 필요하고 어디로 가봐야 한다고 왕왕대고 있다. 황제는 내게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실은 그게 더 부담되는 말이다. 왜냐, 믿어 주었는데 이 정도냐라고 할 명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절대 누가 믿는다고 하면 속으로 웃기지 말라고 해라. 그리고 여러분도 어디가서 믿는다는 말 남발하고 다니지 마라. 말하는 자나 듣는 자에게나 다 쓸데 없는 얘기다. 그냥 해줄거나 잘 해줘라. 예를 들면 보급물자의 양이나 날짜나 정확하게 지켜주란 말이다. 괜한 쉬운 말만으로 편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면 시키지도 않았을테니 말이다. 아니 모든 일이 다 똑같다. 부하들이 원하는 건 믿는다는 말이 아니라 믿음이 가는 말이다. 명심해라. 모든 조직 리더십의 기본중 기본이 이거다. 아직 시작도 안했다. 근데 벌써 입이 아픈 이유는 그만큼 준비과정 자체도 어렵기 때문이다. 준비된 실전형 인재는 어디가나 조직의 십프로 이내이니 말이다. 여러분을 그 안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이 고생을 하고 있는 내가 대견할 뿐이다. 다시 마스크를 쓰고 칼차고 나갈 날이 낼모레다. 그러니 있을 때 잘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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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로는 대국을 만들 수 없다. ‘테미스토클레스’

자 첫 번째다. 다시 피라미드 건설 지휘부다. 여러분들 앞에는 많은 기획서가 놓여있을 것이다. 대부분이 밑에서나 황제의 참모들이 건의하는 아이디어라고 보면 된다. 서면으로도 수 십 가지가 되고 구두로 대충 지껄이는 것까지 하면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모두 각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들이니 주의해야 한다. 전체적인 이익이라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 자신이 어제 똥싸놓은 걸 가릴 목적이거나 누구 엿 먹일 요량으로 올려 놓은 거라 보면 된다. 한마디로 남 좋은 일 시키는 의견이라는 거다. 자 그럼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 전설적인 공사의 첫 스타트를 기분 좋게 시작할까. 일은 무조건 양동작전으로 하는 거다. 즉 메인이 되는 일반적인 프로모션과 부차적으로 시행되는 특별 프로모션이다. 자 마음껏 배워라. 전 편에서는 잠깐 써놓기만 해서 영문도 모르고 눈만 껌벅거렸을 테니. 전자의 프로그램은 지극히 일반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매우 규율이 엄격하고 규칙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반면 후자의 프로그램은 매우 변칙적이며 대담해야 한다. 우선 숙고의 시간을 갖는 척해라. 약 3일 정도. 그리고 때가 왔다 싶을 때 수십 개의 기획서 중 가장 보수적인 기획서 하나와 가장 대담한 기획사 하나를 집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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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전술과 양동작전의 화신 ’에르빈 롬멜’

둘째. 다들 크게 복창해라. 전격적으로 실행한다. 군사적으로 말하면 기동전술이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막무가내로 몰아쳐야 한다.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말이다. 시작점에서 늘어지면 뒤에는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일단 해보고 나중에 어떻게 되나 보자는 식으로 일을 처리한다. 그러면 일도 마찬가지로 일단 늘어지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잘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라는 게 아니다. 빨리하라는 게 아니라 속도감 있게 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큰 규모의 프로젝트일수록 결과는 빨리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면 쉽게 지치기 마련이란 말이다. 따라서 본인뿐 아니라 조직도 지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속도감 있게 일해야 한다. 셋째. 실행과정에서 균형감을 가지고 가야 한다. 무슨 일이든지 실행 단계가 되면 작은 성과에 들뜨거나 반대로 여러 가지 악재에 의기소침해지기 마련이다. 또한 예기치 않은 행운으로 경솔해져 본인이 생각했던 박자를 넘어서는 우를 범할 경우도 많다. 제갈공명의 말처럼 복중에 화가 있고 화중에 복이 있다는 것은 고금의 진리이다. 명심해라. 실행과정은 끝없는 수비의 과정이다. 수비의 길에 즐거울 일은 없다. 수비수에겐 방어의 고단함은 오로지 시간이 가야 비로소 끝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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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단원들에게 격이 다른 눈높이를 주문했던 최고의 리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넷째. 이제 적잖은 완성품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조심하자. 결과물 즉 목표량에 대한 격이 다른 눈높이를 가져야 한다. 목표가 작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작은 목표가 달성되면 또 다른 것을 이루어야 한다. 죽을 때까지 사소한 것만 반복하다 죽는 것이다. 흔히들 이런 얘길 한다. 작은 목표를 자주 달성해야 윗사람이 인정해주니 처음부터 몸을 사리라고 말이다. 큰 목표든 작은 목표든 어렵기는 매 한가지다. 그런 말은 하는 자는 참 어리석은 자이다. 행운은 못생긴 얼굴로 찾아온 미녀라고 했다.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과감하게 잡아라. 큰 목표를 수행하다 보면 배우는 것도 많고 또 인생의 스토리도 많아진다. 스토리가 많은 자는 나중에 필히 귀하게 쓰이는 법. 목표를 크게 잡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방법이나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고안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 일하는 과정에서 보람도 생기고 재미가 배가된다. 목표로 말하라고 한 것은 목표만 보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과정만 봐야 목표가 이루어 진다. 상대를 죽이려고 칼로 치는 것은 맞지만 치는 순간은 치는 것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치면 죽겠지 하는 생각은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한다. 그런 식으로 차근차근 한없이 여러분의 눈높이를 높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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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나만의 취미를 가져라. 에르빈 롬멜이 애용했던 카메라 ‘라이카’

다섯째. 일이든 전쟁이든 공부든 이것도 하루 하루가 다 생활이다. 여러분의 생활자체를 하나의 예술적으로 완성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앞에 거의 만들어져 가는 웅장한 피라미드가 석양에 붉게 반짝인다. 하지만 순간 자신의 생활을 돌아 보니 모든 게 피폐해 있고 자신의 정신과 육체마저 만신창이가 되어있다면 여러분은 깊은 회의감에 빠질 것이다. 언제나 스스로를 점검할 수 있는 정신적인 회복 프로세스를 만들어 두어야 한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이래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전쟁의 신이자 사막의 여우, 롬멜 장군은 사하라 사막을 가로지르는 개인 비행을 하며 사진 찍기를 즐겼다고 한다. 물론 그 취미 덕택에 적들의 위치 정탐까지 했다는 것도 후일담이다. 종교를 가지는 것도 추천하다. 아무 것도 믿지 않는 것도 자유지만 인간이 과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절대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멋있는 일이다. 물론 과도하거나 스스로 보기에 불균형적이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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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사막에서 보는 북두칠성 ‘플레이아데스 성단’

본부장은 직업병이라 그런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보고 있으면 그걸 만들었던 건설책임자가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벽돌을 나르고 이어 붙이는 일을 했던 공사 실무진들도 이루다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을지는 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공사 실무진이 아니라서 더 편한 윗사람은 없다. 만약 그런 생각을 하는 상사라면 그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자신의 업무에 행복할 수는 있어도 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 경험도 별로 안된다. 그만큼 책임자의 의무감이란 끝도 없는 고행이다. 하지만 그런 고행을 하고서 결과물을 만들지 못한다면 같이 고생한 조직의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무가치하게 만드는 일이다. 정말 조심해야 할 일이다. 최선을 다 했는데 그걸로 만족한다는 것은 아랫사람한테나 하는 덕담인 것이고 스스로에게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 말이다. 나의 결정력 부족으로 입을 조직의 피해는 너무나도 큰 파급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최종적 결정력이 주효하는 유효타를 치는 방법을 알려주마. 마지막까지 대담성을 잃지마라. 마음을 항상 담대하게 유지하되 절대로 화를 내거나 비아냥대지 마라. 그리고 윗사람에게 억울해하거나, 부하들에게 서운해하거나 혼자 스스로 우울해하지 마라. 그러면 결과물이 나오는 마지막까지 주변이 환하게 보일 것이고 긍정적 자신감으로 분별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자 이제 여러분은 最古 신비로운 악당 나라 이집트에서 본부장과 함께 헐리우드 最高 악당들과 같은 디테일한 일처리로 정교하고 장엄한 피라미드 하나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하라 사막의 새카만 밤하늘의 별을 볼 것이다. 강렬하게 쏟아지는 오리온 자리 옆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플레이아데스 성단 (북두칠성)에서 2억 5천년 전에 이 지구로 왔다는 인류의 또 다른 전설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제 16편 인도

2000년간 인류가 지향한 격이 다른 눈높이, 인도
(1)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

  • 입력 : 2017.06.26 21:52:11    수정 : 2017.06.26 21: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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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데이비드 린 감독의 1986년 영화 ‘인도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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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모건 포스터의 원작 ‘인도로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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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가 꿈에서도 열망한 인도대륙인줄 알고 상륙한 캐러비안해의 서인도 제도 ‘West Indies’



지도를 한번 펼쳐보자. 유라시아 대륙의 끝에서 끝인 영국에서 일본열도를 중간에서 나누면 인도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사람 콜럼버스가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에게 지원을 받아 출발해 천신만고 끝에 1492년 산살바도로 섬에 상륙하면서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마음 속으로 너무나도 인도이길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같은 이탈리아 출신인 베네치아 사람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감명 깊게 읽고 그가 오로지 가고 싶었던 곳. 실존 인물인지도 확인이 안되는 저자의 풍요로움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지나쳤기에 이미 그리스 로마 시대 이후부터 풍요로움에 중독된 유럽의 도시들은 더 큰 풍요를 찾기 시작했다. 1453년 동로마의 멸망으로 인도로 가는 육로는 아라비아 세력인 투르크가 독점하면서 유럽인들의 인도에 대한 집착은 끝없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원래 인간이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이들이 인도에 대해 어느 정도 집착이 강했는지 좀 더 보자. 콜럼버스가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의 산살바도로 섬 지역을 이후 서인도 제도라고 한다. 오늘날 유명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미국 헐리우드 영화 속 휴양지로 자주 나오는 바하마 제도도 이 지역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말년을 보낸 쿠바도,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환락의 도시 자마이카의 포트로열도, 이름마저 풍요로운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스페인어로 풍요로운 항구)도 이 곳이다. 풍요로움의 상징인 카리브 해 연안 7000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이 지역이 바로 서인도 제도(West Indies)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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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에 설립되어 1874년에 해체됨. 국가주의가 강했던 당시 동인도 회사는 선진적 비지니스 개념이었다. ‘영국 EIC 로고’

스페인의 인도에 대한 사무치는 동경은 이후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학대로 이어진다. 스페인이 원래 꿈꿨던 인도에서 얻고 싶었던 만큼의 금과 은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마르코 폴로가 기술한 인도의 금과 은을 가정하고 무리한 원정에 투자한 만큼 말이다. 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식민지를 개척하고 경작하면서 일어나는 문제는 실로 엄청나게 컸다. 인도란 환타지가 가져다준 국가 미래 청사진에 뒤따르는 수익성이 효율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스페인은 대항해 시대 초기 진입자의 이익(First mover's benefits)을 지속시키지 못하고 결국 식민지 개척 때문에 오히려 국가파산을 하고 만다. 이쯤에서 하나 명심하자. '부'라는 것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산물이다. 개인이 부자가 되어야 국가가 부자가 되는 것이지 국가가 부자가 되어 개인이 부자가 되지는 않는다. 이유는 개인은 자신의 부는 원하지만 국가나 단체의 부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은 개인이 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경제적으로는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 인간이다. 영국이 인도를 포르투갈, 동군연합 후 필리페 2세 치하 스페인, 네덜란드에 이어 마지막으로 접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국가가 아닌 회사라는 형태를 띤 동인도 회사를 통했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역량 있는 개인이 사기업을 이루어 효율성을 극대화한 식민지 전략을 계속 추진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을 테지만. 영국은 세포이 항쟁 이후 겁먹고 균형감을 잃고 오히려 1858년부터 정부가 인도를 직접 통치하는 악수를 두고 만다. 뭐든 정부가 직접 개입하면 될 것도 안되게 되어있다. 결국 이에 대한 반발로 간디가 이끄는 독립세력들은 인도의 완전 독립을 요구하게 되고 1947년 8월 15일 독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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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8년 네덜란드가 스페인(합스부르크 에스파냐)에게 80년전쟁끝에 독립하고 포르투갈 세계 무역 거점을 대부분 빼앗아 전성기를 누린다. ‘Dutch Empire and Trade Route in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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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에 설립되어 1799년에 해체됨. 17세기 후반까지 영국 EIC보다 더 강력했었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Dutch East Inia Company’

본부장이 당시 영국 수상 또는 영국 황제였었다면 인도를 절대 정부가 직접 통치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인도회사가 인도와 영국 모두의 번영을 가져올 수 있게 혁신하게 하여 효율적인 조직으로 탈바꿈 시켰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인도는 한번도 누군가의 통치를 받았다는 부끄러운 기억을 가지게 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영국의 문화와 리더십을 공유하고 인도의 그것과 융합을 통해 다양성과 균형감을 모두를 충족시켜 나가도록 했을 것이다. 지구상의 어떤 국가나 개인도 이익보다 더 중요시 여기는 것이 존재에 대한 가치정립(Valuation)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만은 존재감보다 이익을 더 중요시 여긴다. 따라서 국가나 개인에 대한 존재감에 대한 멸시 없이 오로지 회사를 통한 합리적 이익을 통해 서로가 결연하게 연합했다면 좀 더 멋진 형태의 공동 성장이 가능하지 않았겠나라고 본부장은 확신한다. 문화력나 경제력이 앞설 수는 있어도 존재적 가치가 앞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정치적 타협이나 음모로 만들어진 모든 차별적인 결정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은 과거 역사는 물론 현재의 본부장이 몸담고 있는 국가나 회사 조직에서도 비일비재함을 여러분들은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영국이 뒤늦게라도 자의든 타의든 인도독립에 전향적인 자세로 임했기에 오늘날에도 인도는 영연방국가로서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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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적 리더십은 정복욕이 아니라 경외감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진출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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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력은 대국적 리더십의 필수 요소다. ‘Tolerance’

포용적인 정책이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만약 여기서 조금이라도 미련을 더 가졌다면 인도차이나에서 대망신을 당한 프랑스보다 더 큰 망신을 인도에서 당했을 것이라고 본부장은 확신하다. 마찬가지 연장선상에서 일본군이 2차 세계대전 중 중국 본토에 행했던 어리석은 반인륜적 전쟁범죄도 당시 일본의 리더십이 조금 더 멀리 보고 절제하며 현명하게 처신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명심하자. 어떤 국가나 사람에게라도 절대 모멸감을 주어서는 안된다. 그걸 참고 넘어갈 인류는 절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부장이 누차 스스로의 룰(rule), 즉 금기사항을 지키고 인간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Crown Jewel)를 가질 것을 당부하는 것이다. 그것이 있다면 절대 균형감을 잃지 않을테고 그렇다면 그런 판단 하에 행한 모든 행동은 스스로 참기 어려운 근원적인 비난을 받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부장이 말한다. 만약 여러분이 정치적 리더가 되어 다른 나라를 통합하거나 더 큰 규모의 연방국가를 만들고자 한다면 본국이 가장 큰 희생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누군가를 내편으로 만들려면 내 가장 귀한 것을 그에게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나의 상전으로까지 모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야 완벽하게 통합할 수 있다. 작은 나라가 큰 제국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전 국민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속임수가 없는 건전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희생을 통한 타국이나 타국민의 감동이나 감탄 그게 어렵다면 공감이라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 시대 최후의 승자는 바로 자기 희생을 감행할 수 있는 대담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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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서인도 제도(West Indies)는 영국령. 동인도 제도(East indies)라고 하면 네덜란드령 동인도이다. ‘Map of East In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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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파산하고 이 지역은 네덜란드령 식민지로 바뀐다. 1942년 일본군 점령 직전의 네덜란드 동인도 제도 ‘Netherlands In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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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식민지적 향수가 다분히 느껴지는 낭만적이지만 조금은 불순한 영화 ‘인도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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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령 미얀마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그리고 완충국 기능으로 독립을 유지한 태국(Thailand)으로 구성된 ‘인도 차이나 반도’



자, 더 이야기해보자. 반대로 동인도 제도(East Indies)라는 것도 있다. 오늘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파푸아뉴기니 지역이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령 인도를 가르켜 말했다. 이미 1700년대에 들어오며 영국이 동인도 회사를 통해 인도에서 네덜란드 세력과 경쟁하여 입지를 강화시켜 갔지만 동인도제도에서는 반대로 영국이 네덜란드에 패해 이 지역에서 물러난다. 1648년 네덜란드가 스페인에게 독립하면서 그 여세를 몰아 포르투갈에게서 빼앗고 다시 영국까지 몰아낸 것이다. 대영제국도 기를 못 필 정도로 강했던 네덜란드의 시대다. 인도네시아란 이름도 인도(인디아)와 네시아(섬들)로 구성된 합성어이다. 한마디로 여기도 그들이 보기엔 인도였다. 아니 인도이길 바랬다. 유럽인들에게 동양은 중국이 아니라 인도였고 중국, 일본, 한국은 극동이라고 불렀다.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마르코 폴로는 오히려 중국 원나라 쿠빌라이칸 시대의 생활상을 주로 책 ‘동방견문록’에 묘사했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유럽은 인도에 꽂혀있었다. 인도에서 영국에게 패한 프랑스가 대신 식민지로 취한 오늘날 베트남, 캄모디아, 라오스로 구성된 19세기 인도차이나 연방이 위치한 인도차이나 반도도 마찬가지다. 유럽제국들은 자신들이 인도를 차지했다고 서로들 주장했던 것이다. 실제 인도를 차지한 경쟁국 영국을 의식한 본국 비판 여론들을 무마하기 위한 홍보용 이름들이다. 그 만큼 인도라는 이름은 그들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풍요로움과 이니셔티브(주도권)의 상징이었다. 영국이 대영제국이 된 이유도 인도가 주는 이러한 환타제틱한 상징성 때문이었다. 실제 그만한 부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변국이 보기엔 그래 보였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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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관념의 기본을 세우기에 매우 유익하니 꼭 읽어보기 바란다. ‘죽은 경제학자들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본부장이 인생의 비밀을 말해주마. 회사의 수익이나 규모는 모두 수치로 계산 가능하지만 국가나 개인의 역량은 수치로 계산이 불가능하다. 불과 40년 전 베트남전에서 압도적 화력의 프랑스나 미국이 무릎을 꿇고 손사래를 치며 도망쳐 나온 것을 보라. 절대로 회사적 기준으로 개인이나 국가를 보아서는 안된다. 하지만 반대로 기업을 개인이나 국가처럼 운용해서도 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철저하게 계산적이어야 하고 비수익적인 것을 악으로 여겨야 한다. 그래야 기업은 하루 하루 살 수 있다. 물론 대규모 프로젝트를 위해 당장의 수익성을 유보하더라도 이는 더 큰 이익을 위한 유보일 따름이지 이익 자체를 부인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망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기업이 그 자리를 대신해 더욱 건강한 조직으로 소속 개인들의 역량을 신장시켜주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이런 개인의 존재적 가치증진과 기업의 이익증진에 부합되는 시스템을 계속적으로 개발해 공공서비스로 내놓아야 한다. 결국 목적은 각 개인의 존재가치의 증진이다. 기업이나 국가도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개인이기 때문이다. 추가로 본부장이 여기서 21세기에 더욱 조심해야 하는 대상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 기업의 실체적 범위를 초월하는 법인이다. 국가는 기업뿐 아니라 이러한 초기업적 법인에 대한 감시와 혁신을 동시에 효과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초기업적 법인은 일부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만 또 다른 개인의 존재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비인간적 존재가 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늘 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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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축의 시대(Axial Age)'란 제목으로 출판된, 카렌 암스트롱의 ‘The Great Transformation’

유럽기준으로 극동에서의 인도에 대한 집착도 만만치 않다. 7세기 당나라(중국) 현장법사가 손오공 일행들과 인도로 불경을 가지러 가는 내용을 담고 있는 ‘서유기’나 8세기 신라(대한민국)의 혜초 스님이 인도의 5국을 여행한 기행문인 ‘왕오천축국전’도 모두 인도에서 지혜를 찾겠다는 취지의 역사적 증거물들이었다. 인도는 동양의 예루살렘 같은 곳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잠깐 여기서 종교들의 기원을 살짝 만 살펴보자. 예루살렘이 유대교, 기독교, 이스람교의 성지인 것처럼 인도는 힌두교와 불교의 성지이다. 유대교와 힌두교가 모두 기원전 2000년 이상된 고대 종교이고 불교가 기독교와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500년에 나온다.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입을 빌린 페르시아의 예언자 짜라투스트라가 창시한 조로아스터교나 중국의 유교도 이 때쯤이다. 이슬람교가 가장 최신 종교로 기원후 610년에 만들어 진다. 이 시기를 지구상에 여러 선지자들이 출현해 도덕적 기준과 궁극적 선을 이야기하는 ‘축의 시대(Axial Age)’라고도 한다. 야만적인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하던 시기를 도덕이란 것이 대체하는 시대적 전환점인 것이다. 일본은 동양에서 철학적 구도가 아닌 유럽처럼 풍요로움으로 인도를 접근한 나라이다. 19세기에 이미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으로 스스로 들어간 이유가 다 있다. 재미있는 것은 앞에 이야기한 유대인, 아랍인, 페르시아인(이란), 중국인 그리고 인도인은 종교도 만들었지만 상술로도 유명한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기(氣)가 무지 센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과 흥정하면 못 이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것이다. 이중 유대인이 가장 파워풀한 건은 아마 최근 20세기 들어 현대 무신론적 실험 종교인 공산주의까지 만든 것을 봐도 납득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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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생각하는 깨끗함은 일반적인 것과는 조금 다르다. 힌두교의 최고 가치 ‘깨끗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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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들이 개인적인 영혼과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갠지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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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기반을 깨끗함에 두고 있는 것은 이슬람도 마찬가지. ‘Islamic cleanliness’

흔히들 인도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나라라고들 한다. 어딘들 한마디로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만은 인도가 가진 난해함은 좀 심하다. 본부장은 여러분에게 인도를 이해시킬 자신은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본부장에게 인도는 도무지 물밑에 이해관계가 보이지 않기 나라이기 때문이다. 인과관계로 설명되지 않는 정의(定義) 또는 정의(正義)가 존재하는 나라라고 말하고 싶다. 흔히들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이 말하는 그들은 매우 관념적이면서도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슬람교와 함께 힌두교를 품고 무한한 깨끗함을 지향하는 나라다. 이슬람교나 힌두교는 모두 더러움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안고 있는 종교이다. 냉전시대 정치가들이 세계를 제 1세계(서방), 제 2세계(러시아 및 공산주의), 제 3세계(비동맹주의)로 나눈 적이 있다. 자세히 보면 제 1세계는 유대및 기독교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세계이다. 이는 원죄와 죄사함 그리고 심판이라는 종말적 세계관이나 인간이 개인적으로 완벽하지는 않아도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세계이다. 제 2세계는 무신론적 유물론 세계이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부터 꿈꾸어 온 인간의 치밀한 계산으로 만들고자 한 현실에 없는 이상적인 평등에 대한 믿음을 가졌던 세상이다. 지금은 제 1세계 보다 훨씬 불평등한 세계로 바뀌어 있지만 말이다. 제 3세계는 합리적 개인이나 완벽한 공동체 같은 게 아닌 지극히 개인적 깨끗함을 지향하는 세계이다. 이들은 극단적 행동이 주는 프로세스적 윤리관에 대해서는 큰 양심적 죄책감이 없으나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깨끗함을 저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극도의 혐오감을 느낀다. 매우 금욕적이며 소탈하지만 자아의 깨끗함에 대한 도전을 받았다고 믿었을 때는 매우 호전적으로 변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몸에 안 좋은 모든 것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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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까지 3구역으로 나뉜 세계. 이슬람교와 힌두교 그리고 중남미는 ‘제 3 세계’

이들 제 3세계 국가들의 리더가 바로 인도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제 2세계와 3세계를 넘나들고 있지만 제 2세계로 보는 것이 현재까지는 맞다. 제 3세계는 비동맹국가들로서 지역 패권을 다투는 것에는 최우선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제 1세계가 제 2세계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는 것에 근원은 인간이 사회 시스템적으로 통일된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것에 대한 불신에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이미 인류가 가진 불완정성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체제인데 제 1세계에서는 공산주의나 파시즘이 이것에 어긋나는 부자연스러운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제 2세계가 제 3세계에 대해 약간 호의적인 것은 둘 다 완벽함에 대한 지향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제 2세계는 공동체에 대한 것이 강하고 제 3세계는 다분이 개인적인 지향이 강한 것이 다르다. 따라서 1세계는 제 3세계도 그다지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개인적인 깨끗함이라는 것이 실제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더럽고 부족한 존재로 종교적으로는 유일신을 통해서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개인적으로는 프로세스적인 윤리관을 통한 분별력을 가짐으로써 깨끗해 질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을 지극히 상징적이며 자의적인 프로세스에 의해 추구한다는 것에 논리적 타당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제 3세계 종교인 이슬람교도 힌두교 또는 불교를 우상 숭배교로서 배격하고 있지만 제 1세계적 관점에서 보면 둘 다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정도만 하자. 종교는 서로 욕하자면 끝도 없다. 그래서 본부장은 종교 이야기를 하는 것에는 매우 조심스럽고 여러분들도 주의를 기울이길 당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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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쥘베른이 제시한 달 여행을 실행에 옮기는 JFK. 존 F 케네디가 1962년 라이스 대학 연설에서 제시한 ‘아폴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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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가상현실이 아닌 격이 다른 눈높이를 제시한 프랑스 작가 ‘쥘 베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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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예측되는 것이 아니다.

제목에 나오는 것처럼 21세기의 인도는 훌륭한 나라이지만 과거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추구했던 풍요로움과 지혜를 의미하는 나라는 더 이상 아닐 것이다. 이미 그 옛날 인도를 동경하거나 추구했던 국가들은 오히려 풍요롭다. 아마 인도가 그들에게 주었던 것은 인도가 가진 풍요로움 자체가 아니라 풍요로움에 대한 지향점 또는 눈높이일지도 모른다. 인류 문명의 역사가 기껏 5000년이고 그중 지금 우리가 현재 동질감을 느끼는 문명이 2000년정도 되었다. 그 2000년 동안 항상 우리 인류에게 최근까지 지향점으로 남아주었던 존재가 바로 인도이다. 유럽인 최초로 인도를 지향한 알렉산더 대왕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인류의 정치, 경제적 리더들이 자신들의 지지자들에 제시했던 궁극의 모티베이션 말이다. 존 F 케네디가 1961년 아폴로 계획을 제시하기 전까지 인간에게 모티베이션은 언제나 지구 안에 있었고 그 대부분은 언제나 인도가 담당했었다. 인도가 인류에게 현실의 문제로 벗겨지면서 인류에게는 가장 큰 문제는 다음의 지향점이 어디냐는 것이었다. 인도가 인류의 모티베이션으로 그 자리를 내줄 때 쥘베른은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일주’, ‘달나라 여행’, ‘지구속 여행’ 등으로 대안을 찾는 인류에게 또 다른 지향점을 문학 작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인류는 베른이 제시한 모든 걸 살짝 훑어보고 이루나 싶더니 홀연 가상의 디지털 세상 안으로 들어가 육체를 넘어선 감각의 즐거움을 누릴 준비를 하고 있다. 본부장이 인도편에서 느끼는 열망, 진정한 바램은 우리 인류에게 또 다시 인도와 같은 모티베이션이 디지털 가상현실이 아닌 인류가 진짜 인간으로서 존재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이 3차원 리얼 세상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인간은 절대 3차원을 넘어서는 안된다. 육체의 한계, 즉 시공의 한계를 초월해 다른 차원을 넘나들어가며 시도하는 모티베이션의 무가치함은 이미 2800년전 호머의 작품 ‘오딧세이’에 나오는 율리시스라는 그리이스인의 입을 빌려 인류의 조상들이 경고하고 있음을 우리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본부장은 우리 인류에게 새천년의 또 다른 인도가 하루 빨리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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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기둥에 묶고 사이렌의 유혹을 버텨내는 율리시스는 감각의 노예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인류의 롤모델.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율리시스와 사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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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을 주겠다는 바다의 여신 칼립소의 제안을 뿌리치고 죽음으로 영원히 이름을 남기길 것을 결정하는 율리시스. 스위스 상징주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의 ‘율리시스와 칼립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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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주제로 네개의 그림을 그린 아르놀트 뵈클린의 ‘망자(亡者)의 섬’. 후에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이 그림을 보고 작곡한 ‘The Isle of the Dead’ 음악이 눈에 보이는 듯 생생하다. 들어보기 바란다. Sergay Rachmaninov ‘The Isle of the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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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7편 호주

신사의 나라 영국 죄수들이 세운 아시아 속의 유럽대륙 호주
(1)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 입력 : 2017.07.03 21:26:23    수정 : 2017.07.03 21: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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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황금시대를 상징하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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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네덜란드 상인들은 튤립 투기를 통해 막대한 부를 얻었지만 거품이 터지면서 사회 경제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상류층들의 튤립 투기를 풍자한 풍속화’

호주는 원래 17세기에 금빵을 먹고 다이어몬드를 싼다는 유럽 최고의 경제신공을 가진 네덜란드 사람들이 처음 발견했다. 1606년에 발견했다고 하는데 1602년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이미 인도네시아를 근거로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럽에서 네덜란드의 정치적 지위는 합스부르크 왕가이면서 스페인왕인 칼 5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면서 더욱 힘들어졌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는 칼 5세이고 스페인왕으로서는 카를로스 1세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네덜란드 북부인 플랑드르(오늘날 네덜란드)가 칼 5세와 가장 탄압이 심했던 아들 필리페 2세의 고향이면서 스페인 통치권 안에서 가장 극심했던 개신교 반란지역이기도 하다. 칼 5세(카를로스 1세)는 유럽에서 근대 이후 인류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가장 많이 만들어준 나라인 스페인 왕 중 하나다. 먼저 그의 출생은 함스부르크 왕가의 직계 자손으로 조부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다. 독일 바이에른주로 여행을 가면 이 사람의 이름이 걸려있는 옛날 건물이 많다. 나중에 19세기 멕시코의 마지막 황제 이름도 막시밀리안이다. 매우 왕족다운 이름이다. 본부장도 여름마다 바이에른주에 속하는 바그너의 고향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오페라 페스티발을 가면 항상 바이로이트 시내를 구경하는데 막시밀리안이란 이름이 자주 나오더라. 물론 히틀러 사진도 엄청 많다. 아예 대놓고 나온다. 알고 보니 바이에른 주에서 히틀러가 기반을 잡았고 또 워낙 오페라 광이라 많이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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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16세기 이탈리아는 스페인(아라곤,카스티아),프랑스,신성로마제국의 영향력이 도시국가별로 나뉘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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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상 가장 타락한 성직자인 교황 알렉산더 6세를 주제로 한 미드 ‘보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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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알렉산더 6세의 막내딸이며 세기의 악녀 루크레치아를 에디타 그루베로바가 연기한 도니제티의 ‘보르지아 루크레치아’

카를 5세의 부친은 조부인 막시밀리안 1세의 장남인 필리프1세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략결혼을 위해 콜럼버스 탐사대를 후원한 것으로 유명한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의 중주국인 카스티아의 이사벨라 여왕과 카스티아 다음 두 번째로 큰 아라곤 왕자의 딸인 후아나와 결혼한다. 이 결혼으로 합스부르크 왕가는 스페인에서 세력기반을 얻게된다. 조부인 막시밀리안 1세는 대단한 야심가여서 유럽 전역을 자신의 손안에 넣기 위해 그야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였고 이때 함께 음모를 꾸몄던 자가 세상에서 가장 타락한 교황으로 미드 ‘보르지아(Borgia)’에서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알렉산데르 6세이다. 이자는 토르데시아스 조약을 선포해 스페인 포르투갈의 해외원정 독점권을 주며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이탈리아는 프랑스는 베네치아, 스페인 아라곤은 나폴리, 시칠리, 사르디나, 스페인 카스티야는 밀라노를 세력권으로 두고 나뉘어져 있었다. 이탈리아 안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프랑스보다 스페인 포르투갈 세력과의 협력이 중요했던 것이다. 결국 칼 5세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직계로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이고 스페인 왕가 페르난도 2세의 외손자이며 포르투갈 왕가와도 같은 합스부르크 일족이면서 로마 카톨릭의 수호자라는 권위까지 거머쥔 역사상 최초로 통합된 이베리아 반도에서 스페인이라는 나라 이름으로 최초의 왕으로 등극해 무적함대 스페인의 전성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더불어 독일 그림형제의 동화 백설공주의 원래 주인공인 아들인 필리페 2세와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한 왕족이 아닌 며느리를 독살한 매우 현실적이고 매정한 황제이기도 하다. 본부장이 좀처럼 이렇게 자세하게 기술을 하지 않지만 이 부분은 우리에게 중요한 대항해 시대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기에 자세히 설명하니 계속 경청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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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무적함대 스페인의 전성기를 연 신성로마제국 황제가된 스페인 왕 칼 5세 ‘노란색은 합스부르크 왕가 통치 지역 & 붉은 색 선은 신성로마제국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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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5세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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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페 2세 시대의 스페인 포르투갈 동군연합 제국 영토 ‘아메리카 대륙,이베리아 반도, 이탈리아의 절반,네덜란드 그리고 동,서인도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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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메리 여왕의 남편이자 스페인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통치했지만 총 4번의 국가파산 선언을 했다. ‘필리페 2세’

특히 다음의 이름들을 꼭 주목하도록 해라. 막시밀리안 1세(독일), 알렉산데르 6세(교황), 칼 5세(스페인), 필리페 2세(스페인), 엘리자베스 1세(영국), 이사벨라 1세(스페인)만 이야기해도 몇 날 밤을 세워도 유럽 역사를 다 이야기하지는 못할 정도로 이들이 만들어낸 역사적 이슈는 실로 엄청나다. 솔직히 이 사람들만 제대로 공부해도 유럽에서 웬만한 저변의 이해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모두 한 시대를 접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역할을 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칼 5세는 이들과 시대적으로 중간에 위치하며 16세기 스페인 전성시대를 열었고 반대로 네덜란드에게는 가장 혹독한 시련의 시대를 열었다. 네덜란드가 칼 5세의 어마어마한 위세를 이어 스페인과 그 식민지를 정치적 종교적으로 철권 통치한 필리페 2세에게 대항하여 1568년 네덜란드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포하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30년 전쟁으로 개신교가 인정되는 계기가 되는 조약)에서 완전 독립을 인정받을 때까지 고난의 80년이 걸렸다. 하지만 완전 독립 이전에도 이미 해외 식민지 개척에서 네덜란드 공화국은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아메리카와 인도, 인도네시아, 호주 심지어는 남아프리카까지 네덜란드가 영국보다 항상 먼저 개척을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 이중 인도네시아만 지켰고 나머지는 영국에게 밀렸지만 말이다. 특히 호주는 인도네시아를 근거를 둔 네덜란드가 훨씬 유리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방식이 영국과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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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매우 가까워 일찍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서 존재를 알고 있었다. ‘1606년에 네덜란드인이 첫 발견하여 New Holland로 명명’

네덜란드는 초기 포르투갈이 했던 방식처럼 거점 지역에 연락소를 설치하고 중개무역으로 이익을 보는 방식을 선택했기에 인도나 호주, 아메리카처럼 큰 대륙을 직접 식민지화하는 것에는 소극적이었다. 특히 호주는 전체 면적에 비해 거주 가능 지역이 매우 협소하고 위치마저도 구대륙에서 멀리 떨어져있어, 아시아 전역과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중개무역만을 주목적으로 하는 당시 세계 최초의 다국적 기업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입장에서는 그다지 매력이 떨어지는 곳이라 볼 수 있다. 한마디로 현지에 인프라까지 건설해주기에는 역량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뭐든 처음부터 시간을 갖고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자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영국의 경우는 무엇이든 성과를 이루려면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자국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4개 섬이 점차적으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작은 섬을 모아보았기에 큰 대륙도 모으는 것이다. 무엇이든 처음엔 다 힘들다. 아무리 쉬워 보이는 일도 일단 시작하면 괴롭고 지루함의 일상일 뿐 처음에 보았던 근사함은 온데간데 없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무슨 일에 임하든 이런 마음가짐을 처음부터 안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힘있는 기성세대 영감님들이 여러분을 눈 여겨 볼 테니 말이다. 이미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기회는 온다. 명심해라. 좋은 회사일수록 자리는 많은데 인재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호주 이주 역사를 보면 이런 인간사의 모든 과정이 녹아있다. 아니 호주뿐 아니라 근대에 이루어진 대항해 시대의 기록들이 모두가 그러하다. 처음에 먼저 누가 발견했느냐 또는 누가 빨리 움직였느냐가 중요해 보였다. 하지만 이 둘은 좀 더 지속력 있는 태도를 가진 자들에 의해 이내 자리를 내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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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호주, 아직도 영연방 국가로 선진국중 유일하게 국기에 유니언젝을 쓰고 있다.

계획 없이 무분별하게 남미를 개척하면서 막대한 금과 은을 스페인 국내로 유입시켰음에도 스페인은 파산했고 북아메리카는 초기 진입자인 스페인 네덜란드를 따돌리고 프랑스를 제압한 영국을 거쳐 독립했다. 인도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가마가 발견해 네덜란드 그리고 프랑스를 제압한 영국을 거쳐 독립했다. 호주는 포르투갈 스페인 쇠퇴기에 맞추어 네덜란드가 최초 발견해 영국을 거쳐 독립한다. 무슨 상황극처럼 역할과 과정을 마치 정해둔 것처럼 동일하다. 이제는 여러분이 각 인과관계의 차이를 생각해 보길 바란다. 하지만 본부장이 보기에는 매우 심플하게 보인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모든 일 처리의 성사과정과 이해관계를 보는 것이 본부장이 이 글을 쓰는 주 이유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던 대로 일 처리의 핵심은 완성에 있다. 완성했다고 다 내 것이 되는냐 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인간이 지구상에 영원히 자신의 소유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먼지 하나도 없다. 인간이 오로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물건이나 사람 또는 나라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했던 기억이다. 내가 하는 기억과 남이 그리고 후손들이 하는 기억 말이다. 인생은 기억되는 자가 가장 부자다. 성경이나 다른 종교 경전을 비롯한 인류가 만든 모든 기록물에 그들이 한 행적으로 이름을 남기거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은 더욱 부자다. 그것이 실패했어도 아무것도 아니한 사람보다는 낫다. 다만 기왕 행한 일을 완성해주는 자가 가장 훌륭하다. 소유는 완성과는 틀리다. 완성은 과정을 전제로 하지만 소유는 그저 숫자나 글자의 희미한 흔적일 뿐이니 말이다. 본부장이 20여개 나라의 이야기를 뽑아 여러분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역사의 결과나 소유관계를 규명하고 싶은 게 아니다. 역사의 과정, 생각의 과정, 이해관계의 추론 과정 그리고 일 처리 과정을 여러분과 함께 대화하며 공유하고 싶었던 거다. 베스트 그룹핑 능력을 가진 실전형 인재는 오로지 공유할 만한 과정을 가진 자만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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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에서 금성을 관측하다가 호주를 탐사한, 선장 리더십의 롤모델 ‘제임스 쿡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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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쿡의 탐사를 끝으로 전세계는 모두 유럽에 알려져 대항해 시대는 막을 내리고 식민지 시대가 도래한다 ‘제임스 쿡 선장이 완성한 대항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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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번의 항해를 통해 대서양과 태평양 그리고 베링해를 탐사한 제임스 쿡 선장 ‘과정적 완벽함과 결과적 완전함을 겸비한 리더십’

모든 일 처리 과정에는 항상 피할 수 없는 고단한 선택이 도사리고 있다. 큰 조직을 경영하면서 자신을 항상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떳떳하라는 말을 하는 이유는 나중에 한 갓 명예를 남기라는 뜻이 아니라 그가 앞으로 해야 될지 모르는 불가피하지만 인기 없는 선택 때문이다. 본부장이 리더십중에서 선장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느 지역의 총독이나 지방관의 리더십은 균형감각과 분별력에 큰 비중을 두지만 선장의 리더십은 이건 기본이고 대담함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결정을 하는 용기 말이다. 바다에서의 선장은 육지의 지방관처럼 자기 한 몸 처신 잘한다고 팔로워들이 따라주는 정착민들이 아니다. 모두가 큰 리스크를 짊어지고 함께 목표를 성취해야만 모든 행동의 보답이 생기는 완벽함이 아니라 완성품을 요구하는 리더십이다. 배위에 사람들과 항구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를 위해 반드시 빈 손으로 돌아갈 수 없는 리더십이다. 결과를 만들어 내야만하기에 과정까지도 오로지 리더십의 대상이고 심지어는 일의 시작 단계까지도 남다르기를 바라는 리더십이다. 본부장 정도의 신공이 아니라도 비롯한 웬만한 선장 리더십을 가진 전문가들은 잘 알고 있다. 인풋이 같으면 아웃풋도 같은 것을 무수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조금이라도 공정과정의 오차를 없애고 모수를 늘려야 하기에 완성품의 리더십은 과정상에서는 오히려 완벽함을 기하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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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로 24살에 베스트셀러작가가 된 ‘콜린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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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굽히지 않는 작가 ‘콜린 윌슨’

호주 이주과정을 보면 미국만큼 처절하다. 일단 시작부터 개척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서가 넘쳐났다. 경제성을 알아보는 것에는 유럽최고인 네덜란드인들도 외면한 곳으로 영국의 몇 몇 해적들이 다녀가면서 더 더욱 비관적인 보고가 난무했다. 결국 초기 호주 정착민은 미국처럼 종교적, 경제적 또는 정치적으로 자발적 이주민이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자발적이라 하더라도 본국에서 자생이 불가능한 죄를 짓거나 사회적 평판을 받은 사람들이 호주로 향했다. 영국 정부도 자발적 이주민을 모으기가 힘든 것을 알고 급속발전하고 있는 제국의 영역내에서 급증하는 죄수들을 우선적으로 투입했다. ‘잔혹의 세계사’를 쓴 영국작가 콜린 윌슨의 말을 빌리면 나중엔 사소한 경범죄를 지은 성인 남녀는 물론 어린아이, 청소년 범죄자들까지 호주로 이주시켜 식민지 개척을 통해 복역하게 했다. 우리가 영국인들을 국제적인 악당이라고 헐리우드 영화나 광고 같은 데서 곧잘 하게 된 계기가 다 식민지 개척 시기에 행해진 가혹한 결정들 때문이다. 인도의 세포이 항쟁 진압이라던지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분할 또는 아라비아 반도와 발칸반도 처리 및 분할 그리고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지중해 등 전세계 전략적 요충지역과 섬에 대한 할양과 민족이나 국가 분단에 개입한 것들을 여기서 다 말하자면 끝도 없다. 나쁜놈 들이다. 하지만 진짜 악당 소리를 듣는 이유는 자국민에게도 매우 엄격하고 가혹했다는 것이다. 호주로 끌려온 영국 성인 남녀나 어린이들은 모두 평소 같으면 가벼운 복역이나 구금에 끝날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정말 악질적 중범죄는 보통 사형이 내려지던 18세기 당시이니 말이다. 런던 시내에서 소매치기를 한다거나 매춘 또는 가벼운 사기를 친 사람이라도 바로 런던항에서 배를 타고 돌고 돌아 인도나 캐나다 아메리카에서 현지에서 체포되어 재판받은 죄수들을 더 태운 후 고향에서 수 천 킬로 떨어진 유형지 호주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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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내 이탈리아 동족들의 민원을 들어주는 代父를 연기한 말론 브란도의 ‘대부’

영국 작가 서머셋 모옴의 ‘페인티드 베일’에서 영국인들은 고향에 대한 향수가 프랑스보다 매우 약하다고 한 이야기 뒤에는 다 이런 아픔이 있었던 것이다. 어디 고향이라고 인간의 따뜻함을 느껴봤어야 말이지. 어디가나 입바른 소리와 가혹한 규율이 난무하던 19세기 영국이다. 뭐 서민들은 어느 나라나 다 힘들었겠지만 말이다. 개중엔 정말 억울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부모 형제 또는 자식과도 생이별을 해야 했으니 아비귀환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누가 이런 무지막지한 결정을 기획했는지는 모르지만 시행과정에서 엄청난 소요가 났을 것은 너무나도 뻔하다. 유럽의 맞수인 프랑스가 식민지 경쟁 중에 유일하게 안걸고 넘어진 곳이 호주이기에 그야말로 영국 혼자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발버둥을 친 과정이라고 보아도 좋다. 본부장도 호주를 가면 항상 느끼는 것이 나라 전체가 신도시 같은 느낌이다. 죄인들이 수 천 킬로를 배로 끌려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한 땅이니 본국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이참에 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으리라. 호주가 전세계에서 살기 좋은 나라 최고라는 말은 예전에는 최고 지옥이었다는 말이다. 오래된 곳에서 칭찬이 나오기 힘들고 오래 사귄 사람과는 정이 깊지 않은 것이 인생사의 진리다. 서로가 무슨 사연이든 힘든 과거를 안고 이 척박한 땅에 와서 함께 일하며 과거 캐묻지 않고 조심하고 산 것이다. 현대에 가장 살기 좋은 나라는 나를 가장 모르는 나라라고 하지 않던가. 이걸 가장 먼저 샘플로 보여준 나라가 호주다. 미국을 가능성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지는 않는다.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이니 서로 어디 출신이냐 종교는 뭐냐 하면서 틈만 나면 끼리끼리 이합집산했을 것이다. 영화 ‘대부’를 보면 이탈리아계들이 미국에 이민 와 어렵게 성공하면서 자기들끼리 모여 아웅다웅 살지 않는가 말이다. 하지만 호주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서로 뭘 묻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부담스럽고 서로 원치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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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를 배경으로 한 이런 영화는 만들어 질 수 없다.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했던 호주’

명심하자. 모든 일에는 다 원인이 있다. 하지만 지금 나쁜 것이 나중에도 나쁘란 법은 없다. 단 지금부터만 잘 한다면 말이다. 올바른 과정은 언제나 나를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스스로 공들인 시간과 행동만이 나를 바꾸어 주는 것이다. 한갖 말도 행동이 되려면 목적이 있어야 된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는 말은 그저 쓸데없는 말이다. 신은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고 기도를 듣고 싶어한다고 한다. 기도는 목적이 분명한 말로 하는 행동이다. 호주보다 멋진 곳이 없다는 호주관광청 광고 문구는 역사상 호주보다 실제 행동이 많이 이루어지는 나라도 없다는 이야기다. 그냥 이루어진 것이 지금껏 하나도 없는 나라다. 그저 자연경관만 좋고 모두가 얻어걸린 인생의 행운을 즐기는 것처럼 눈알이 개슴치래 하다면 관광객뿐 아니라 어느 내국인이라도 그런 말을 당당히 할 수 있겠는가. 설령 했다고해도 한번 가보면 들통날 거짓말이다. 영국의 석학 에릭 홉스본의 '세상은 저절로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사무엘 스마일스가 그토록 외쳤고, 대영제국 영국 신사들의 기본 마음가짐이라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자조론(自助論)’을 이곳 호주에서 지난 300년동안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본부장은 호주를 보면서 스페인 치하의 남아메리카를 생각해보고 미국 초기개척시대 그라고 영국령 인도를 생각해 본다. 앞에서 말한 대륙들과는 호감도에서부터 뭔가 접근부터 다른 것이 호주 개척 역사다. 사람들에게 호주는 말 그대로 세상의 끝에 있는 유형지 즉 내가 좋아서 가는 곳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운명적으로 가야 하는 절대 가고 싶지 않은 땅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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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에서 바이킹은 빠질수 없다. 색깔로만 보면 영국은 완전히 민족들이 함께 사는 나라다. ‘11세기 바이킹의 영국 침입’

호주는 영국을 다시 한번 새로운 대륙에 만들어 본 또 다른 창조의 역사라는 결론내리고 싶다. 실전형 악당으로 유럽을 전율케 한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만 족 정복자 윌리암이 영국을 점령하며 시작된 개척의 역사를 시작으로 그저 처량하고 볼품없었던 나라 영국을 대영제국이라는 신사들이 산다는 희망과 영광의 나라( Land of Hope and Glory/ 엘가가 작곡한 잉글랜드 국가)로 탈바뀜하는 과정을 호주라는 허허벌판에서 다시 만든 것이다. 한번 하면 백번도 하는 것이다. 본부장은 영국인이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독일이 훨씬 좋다. 하지만 나의 개인적 취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공의 과정은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한다. 일처리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본부장이 좋아하는 책 중에 중국 근대작가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 The Importance of Living)’이란 책이 있다. 다른 나라 편에서도 언급을 한 바가 있지만 이 책의 제목대로 임어당은 생활을 강조했다. 생활은 말 그대로 일을 포함한 삶을 영위해가는 모든 과정이다. 인간은 결국 무슨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게 목적이다. 잘 살아내는 삶 말이다. 잘 살아내는 삶은 자연스러운 삶이고 자연스러운 삶은 삶 자체가 목적인 삶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삶은 반드시 개인적으로 예술적이어야 한다. 결국 인간이 원하는 삶은 자신이 삶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그게 예술적인 삶이다. 예술가의 삶을 산다고 예술적인 삶은 아닐 것이다. 예술가의 생활이 예술적이라면 모를까. 예술적이라는 것은 자기가 봐도 아름다운 것이다. 인간은 최종적으로 자기만족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 지금의 행복도 포기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이다. 우리가 호주에 가서 행복한 이유는 이곳에 처음 온 사람들이 느낀 그 주체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을 한 번 느껴볼 수 있는 자기 만족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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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은 없지만 당당하게 본인의 일을 수행하며 꿈을 키워가는 청년 제임스 딘, 영화 ‘자이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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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성공했지만 꿈을 잃고 방황하는 노년의 제임스 딘, 영화 ‘자이안트’

본부장은 3년전 겨울 뉴욕 링컨센타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낭만도 생각했지만 이곳에 처음 발을 디딘 개척자들의 그 당시 마음을 떠올려보았다. 살을 에이는 추위에 고향을 등지고 비좁은 배를타고 얼음같은 바다를 건너 언 땅에 오른 그들의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그저 먹고 살자가 아닐 것이다. 이왕 고생하러 온 거 꼭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성공하자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저 밥만 먹고 살만큼만 일하자고 생각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말이다. 인간은 절박한 상황에 놓이면 생존을 위해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사의 상념을 넘는 더 큰 꿈을 꾸게 된다. 영화 ‘자이언트’에 나오는 성공하기 전 젊은 시절 제임스 딘처럼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는 외롭지 않다. 미래에 꿈꾸는 또 다른 나와 언제나 함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매튜 메커너히가 어려운 무명시절 미래의 나를 만나기 위해 언제나 노력했다는 말이나 호주 배우 러셀 크로우가 2015년 영화 ‘워터 디바이드’ 개봉기념 기자회견에서 무명시절 자신의 성공을 기원하며 새벽 5시에 시드니 공원에 가서 나뭇잎에 자신의 소원을 적고 묻으며 '세상에 나보다 열정적인 사람은 없다'는 자부심을 가졌다는 말은 인간이 절박한 상황에 오히려 진실로 외롭지 않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본부장도 호주를 가면 항상 느끼는 감정이 글로벌 비지니스에 대한 강한 열망이다. 뮌헨이나 런던 그리고 뉴욕에서는 느끼는 감정과는 조금 다른 자신의 내면에 대한 지독한 다독거림이 느껴진다. 본부장은 가끔 스스로 나태해졌다는 느낌이 들 때면 일부러 비행기로 호주로 날아가 시드니 새벽거리를 걸으며 나의 인생에 대한 다짐을 하곤 했다. 그만큼 시드니는 내게 잠재된 열정을 일깨워주는 곳이었다. 웬만한 유럽 국가 오페라 하우스는 다 돌아보았지만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가보지 않은 것도 아마 내게는 예술보다는 비지니스적 열정이 먼저인 도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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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일의 앤’의 비운의 주인공 앤 볼룸이 바로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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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영웅들이 격는 통과의례적 시련들을 모두 갖춘 어린시절을 보내며 자신을 스스로 담금질해 나간 ‘엘리자베스 1세’

시작부터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나라 호주.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살고 싶은 나라. 앞서 이야기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5세는 어린시절 어머니가 정신병을 앓고 아버지는 바람둥이로 살다가 일찍 죽어 조부인 선황제인 막시밀리안 1세가 이를 못마땅해 하여 계속 황위계승을 미루었다고 한다. 결국 합스부르그 왕가의 적통임에도 불구하고 유럽 각지를 떠돌며 결국 스페인이라는 변방의 일개 대공으로 보내지는 서러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런 서러운 환경적 경험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칼 5세는 영웅적 풍모에 걸맞는 활달한 기질과 5개국에 능통하는 언어능력을 얻었고 결국 최초의 스페인 국왕이면서 고생 끝에 최종적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는 영애를 얻는다. 그의 이런 드라마틱한 역사를 담은 베르디 오페라가 바로 ‘에르나니’다. 그가 어린 시절 서럽게 돌아다녔던 지역은 그대로 그의 우군이 되었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손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연방은 물론 스페인, 포르투갈 및 그들이 개척한 아메리카와 아시아의 식민지 그리고 이탈리아 반도까지 그의 발 아래두는 그야말로 스페인 최전성 시대를 여는 왕이 된다. 이후 왕가의 인생 역전의 드라마는 바다건너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쓰는데 아버지인 헨리 8세의 미움을 받아 목이 잘려 죽는 ‘천일의 엔’으로 유명한 엔 볼린의 딸로서 어린시절 온갖 핍박을 받아오다가 이복 언니인 메리 여왕시절에는 반역의 수괴로 몰려 런던탑에 갖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의미 없이 이어간다. 이때 런던탑에 갖힌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신의 신세를 극복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엄청난 문장력을 과시했다고 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가상의 인물이고 실제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는 설이 있다.

잠시 막간에 그녀의 시를 한번 음미해보자.

이 시는 엘리자베스가 남긴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임은 떠나는데(On Monsieur's Departure)’라는 시의 첫 번째 연이다.

나는 애통해하지만 감히 불평을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I grieve and dare not show my discontent,)

나는 사랑하지만 아직도 미워하는 척하려고 합니다.

(I love, and yet am forced to seem to hate,)

나는 아직도 내 마음을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I do, yet dare not say I ever meant,)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만 속으로는 끝없이 재잘거립니다.

(I seem stark mute but inwardly do prate.)

나는 나면서도 아니고, 얼어붙었으면서도 아직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I am and not, I freeze and yet am burned,)

내 자신으로부터 또 다른 자신에게로 돌아서기 때문입니다.

(Since from myself another self I turned.)



다음은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결전을 앞두고 해군 장병들에게 한 연설이다.

나는 내가 연약하고 가냘픈 여인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는 왕의 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국왕의 심장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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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세계대전 터키 갈리폴리 상륙작전 중 전사한 아들들에 대한 아버지의 비애를 담은 호주영화 ‘워터 디바이너’

호주를 처음 발견한 네덜란드인들은 호주를 뉴 네덜란드라고 명명했지만 앞서 말했듯이 투자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하여 개척에 손을 떼게 되었고 이후 1699년 영국의 해적이면서 항해사, 탐험가, 작가이자 요즘 나오는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의 모티브가 된 윌리엄 뎀피어가 호주를 영국인으로서 처음 조사하지만 100년전 네덜란드인들과 마찬가지로 비관적인 보고를 하게 된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1769년 여러 방면에서 해박한 과학적 지식을 겸비한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호주를 탐험하고 그 가능성에 깊이 감명받아 ‘국왕의 이름과 국왕의 깃발 아래 이 땅을 점령한다'라는 극적 표현을 사용해가며 뉴사우스웨일즈라고 다시 명명했다. 그리고 곧바로 호주 개척에 대한 긍정적 검토를 요청하는 보고를 하게 되면서 호주는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처음 발견된지 160년이나 지나서 말이다. 1492년 그토록 열망하던 인도를 찾기 위한 유럽인들의 염원으로 아메리카와 태평양 그리고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고 나서 300년 정도 지나서야 가치 있는 신대륙으로 대접받게 된 것이다. 더구나 앞에서 러셀 크로우도 한 얘기지만 호주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이 해군성 장군재직시 졸속으로 기획했다가 적아군 도합 50만명의 사상자를 내며 대패한 갈리폴리 상륙작전에서 호주군 수 만 명의 사상자를 낸 아픔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이 트라우마가 상당하다. 2차세계 대전에서도 연합국인 모국 영국을 위해 많은 호주 젊은이들이 죽었다. 19세기 신사의 나라 대영제국에서 제대로 행세 한번 못해보고 죄인으로 유형지에 끌려와 죽을 고생을 해서 자리를 잡았더니 나중에는 그 자식들대까지 희생을 강요당한 나라가 호주다. 이처럼 호주는 시작은 고달팠고 과정도 애처로왔지만 끝이 아름다운 나라다.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나라로 치면 호주를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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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바라본 정말 아름다운 ‘호주 대륙’


 

 

제18편 쿠바

체 게바라와 헤밍웨이 그리고 모히또의 나라, 쿠바
(1) 프로세스적 정당성의 힘과 또라이 제로 조직

  • 입력 : 2017.07.11 19:27:03    수정 : 2017.07.11 19: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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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코스트너와 존 F 케네디가 정말 멋져 보인 영화 ‘JFK’



지금으로부터 30년 정도를 거슬러 올라가면 최근엔 슈퍼맨 아버지 연기로 잠깐 나오는 영감님이지만 당시엔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배우가 케빈 코스트너다. 언터처블, 노웨이 아웃 등으로 스타덤에 올라 JFK와 보디가드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한 배우다. 본부장도 대학생 때 그의 영화를 정말 좋아했었다. 특히 본부장의 전공이 그쪽이라 JFK는 몇 번씩 봤었다. 당시에는 그 영화를 보면서 내가 그 영화의 내용을 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학교 앞 카페에 앉아 옆 여대를 다니던 여자친구에게 으스대며 이 영화의 역사적 배경을 알려준답시고 열 올리던 게 생각난다.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나이가 들어 보니 이제야 그 영화의 이해관계가 보이더라. 1960년대 아메리카 대륙을 둘러싼 국제정치를 빛내던 사람이 세 사람 있었다. 존 F 케네디,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다. 케네디란 이름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들에 대해서 내가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여러분이 구글에서 찾아보면 다 나올 얘기니 말이다. 본부장이 여러분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역사의 스토리가 아니라 역사가 말해주는 진실이다. 영화 JFK는 우리가 잘 알지도 못했던 케네디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추론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미국 보수가 가지고 있던 기득권에 대한 위협이 결국 그를 죽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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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만 침공의 잔해를 살펴보고 있는 ‘피델 카스트로’

그렇다면 미국 보수는 무엇인가. 여러분은 보수와 진보를 어렵게 생각하는 거 같다. 본부장이 쉽게 이야기해주마. 보수는 생산수단을 가진 자다. 진보는 생산물의 분배과정을 비판할 수 있는 자다. 이게 다다. 가진 자는 비판할 수 없다. 가졌기 때문이다. 미국이 가진 자산이 무엇인지를 잠깐 보자. 미국은 20세기를 기점으로 유럽을 넘어선다. 원래 서구 문명 중심으로 보면 유럽이 인류 역사의 중심이다. 일단 인정하고 들어가자. 본부장이 누차 이야기하지만 나를 대중적인 평균점에서 떼어놓는 순간 나는 보편성을 잃는다는 걸 명심해라. 언제나 상식에서 시작해야 한다. 상식이란 10명 중 8명이 갖는 생각이다. 제발 부탁인데 지엽적인 생각은 생활에서만 하자. 그래서 본부장이 생활의 발견을 얘기하지 않았나. 개인적 생활에서는 자신만의 우주를 가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 사회 문제에서는 철저하게 상식적이라야 한다. 내가 무엇을 믿거나 좋아하느냐는 현실에서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 유럽이 전 세계의 글로벌 국제표준이 된 지가 된지가 벌써 200년이다. 그런데 미국이 모든 면에서 그런 근대문명의 기준인 유럽을 이겼다고 생각한 게 20세기 들어오면서부터다. 그래서 먼로주의 같은 미국 고립주의가 나온 거다. 미국이 가진 모든 자원과 스스로 사회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이미 유럽을 압도하고 있었다. 당시로써는 그들이 봐도 자랑스럽고 신선했을 것이다. 여기서 미국 보수가 시작되는 것이다. 보수란 자신의 공동체적 자산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 세력이다. 그들이 만든 아메리카가 가진 모든 유무형의 세련된 자산 말이다. 영화를 보면 피그만침공 실패가 대통령의 불행한 결말의 주된 모티브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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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는 영화 ‘마진 콜’

미국 CIA가 미국의 국익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압도적 대중의 지지를 받고 수립된 쿠바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여기서 CIA는 미국 보수를 상징한다. 어느 나라든 정보기관은 다 보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닌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국가 존립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가치를 가진 조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케네디가 뒤늦게 반기를 들고 나서서 쿠바 침공은 실패하게 되고 여기에 대한 반동작용으로 보수세력이 대통령을 제거한다는 스토리가 영화 ‘JFK’다. 뭐 사실일 수도 있고 가능성도 있다. 중요한 것은 케네디가 CIA를 방해했다는 것이 아니라 왜 CIA 또는 미국 보수가 쿠바를 침공하려 했느냐는 것이다. 본부장이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메리카 특히 남미는 스페인의 비상식적 폭정이 극에 달했던 곳이다. 천민자본주의라는 게 뭔가. 추구할 최고의 가치가 없는 오로지 본능에 충실한 상업 자본주의를 말한다. 오로지 돈 말이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강조했고, 또 영화 ‘마진 콜’에서 제레미 아이언스가 말한 것처럼 돈은 그저 돈일 뿐이다(Money is money). 인간은 생산해야 스스로 존재가치를 느끼는데 돈은 그저 가졌다는 느낌만을 드는 종이 징표이다. 남미에서 수백 년 동안 자행된 변태자본주의는 대륙의 대중들에게 심각한 참담함을 주었다. 그들이 자본주의 자체를 더럽게 생각할 수 있게 말이다. 당시 남미는 더는 자본주의를 지지하지 않았고 좀 더 정당성 있는 사회 시스템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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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 독일에 승리한 후 미국의 전쟁 수행 능력의 목표는 동시 두 개 전쟁 수행이다, ‘걸프전;사막의 폭풍 작전’

북아메리카 유럽 이주민들처럼 스스로 힘들여 만들어낸 더 없이 이상적인 공동체라는 자부심이 없이 그저 착취자와 피착취 자만이 존재하고 존경심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중남미의 해당 구성원들에게 그곳은 그저 버리고 싶은 현실이었을 것이다. 남미의 수 많은 국가가 만들어진 과정을 보면 대부분 스페인의 몰가치적인 지배에 피로를 느낀 스페인 출신 군사 엘리트들과 그들에게서 유럽식 교육받은 혼혈 토착민들의 반란이다. 인간은 가슴속에 누구나 신이 부여한 양심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칸트가 이야기한 '오성'이나 아담 스미스가 말한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한 선량한 관리자'말이다. 이 선량한 관리자들이 스스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건 아니라고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러 승리한다. 이건 현대 국제정치판의 모형을 만든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유럽과 태평양 전쟁 말이다. 외계인이 그 완벽함에 손사래 치고 도망 간다는 절대 신공 독일도 무모하게 두 개의 전선을 시도했다가 국가 폭망을 맞았다. 하지만 미국은 태평양에서 일본과, 유럽에서 독일을 상대로 그들을 동시에 제압했다. 일본은 현재도 독일 영국 이탈리아를 다 합친 경제력이라고 보면 된다. 어마어마한 국력이다. 당시도 독일과 비교해 뒤떨어지지 않는 국가적 생산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 국제 정치에서 두 제조업 대국인 독일 일본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표면적으로 굴복하는 이유는 그런 놀라운 미국의 힘을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매가 무서운 건 맞아본 사람이 가장 잘 안다. 그런데 이런 미국도 쿠바를 어쩌지는 못했다. 왜일까. 바로 절차적 정당성 때문이다. 사실 베트남도 마찬가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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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핑 능력(Grouping Ability)을 갖춘 실전형 인재 ‘체 게바라’

여러분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어린아이 같은 조바심에 의한 결과 지향주의는 실패다. 비용도 많이 들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남는 게 없다. 투입된 노력에 비해 그야말로 완전히 밑지는 장사라는 것이다. 미국의 피그만 침공은 남미를 자신의 세력권으로 두려는 피상적인 이해관계적 사고에서 나온다. 쿠바에서 대중들이 왜 반란을 지지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숙고도 없이 말이다. 베트남을 건드려서 공연히 적국으로 만들어 버린 것처럼 미국은 조바심으로 시작한 피그만 침공으로 쿠바를 적으로 확정 지어 버렸다. 원래 적이란 것은 남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적으로 생각하는 순간 적이 되는 것이다. 본부장이 한 수 가르쳐주마. 적을 만들지 않는 방법은 내가 그를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적과 친구는 원래 없다. 그저 이해관계가 맞으면 얼마든지 바뀌는 것이 적과 친구다. 쿠바 혁명이나 베트남 혁명은 그저 개별 국가적 자존감의 순수한 표현이었다. 당시에 미국은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쿠바의 그것을 공산혁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피그만 침공이 실패로 돌아가고 이어 쿠바 미사일 사태가 온다. 올 게 오는 것이다. 명심해라. 한 번 잘 못 건드린 문제가 더 큰 문제를 몰고 온다는 것을. 미국이 가장 싫어한 상황이 벌어져버린 것이다. 소련의 호루시쵸프가 남미에서의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말이다. 베트남처럼 쿠바도 가만히 놔두었으면 그저 중립적 제3세계로 남았을 나라를 미국 보수들의 섣부른 조바심 때문에 적극적 적국으로 몰고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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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제국, 미국의 부적절한 대외 정책 1호 ‘쿠바 피그만 침공’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이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이다. 막스 베버의 리더십 분류로 보았을 때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는 당시 매우 합리적인 리더십을 가진 존재였다. 개인적인 매력도 물론 상당했지만 그들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은 합리성 또는 정당성에 있었다. 오히려 케네디는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보면 맞다. 재미있는 것은 둘 다 전통적인 리더십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특히 체 게바라 같은 경우는 의대를 졸업한 엘리트임에도 대중들의 편에서 스스로 무장 혁명을 리드하며 대중의 공감을 샀다. 합리적인 리더십이란 절차적 행동에 대한 대중적 공감이다.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대중적 공감과는 별개로 개인적 특징에 의한 호감이 가는 리더다. 대부분 외모나 말 또는 연설에 의한 공감이라고 보면 맞다. 전통적 리더쉽이 모든 것을 결정했던 나폴레옹 이전의 시대를 이제 누구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이 세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미국 보수가 이 전통적 리더십에 대한 향수를 떨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피그만 침공은 미국이 주도적으로 쿠바계 미국인들(민중 혁명 전까지 대부분 불법적인 이권을 거머쥐었던 마피아들. 영화 ‘대부’에서도 잠깐 나온다)을 훈련시켜 침공시켜 놓고 대중들이 봉기한 것처럼 위장하려 한 일종의 사기다. 문제는 피그만에 상륙한 사람들을 대중들이 합심해서 3일 만에 전원 체포했다는 게 스토리의 끝이다. 민심이라는 게 이래서 무서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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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자발적 저항으로 6시간만에 진압된 ‘터키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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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각 터키 시민들이 쿠데타 세력에 대항하는 모습 ‘터키 쿠데타 사태’

본부장이 쿠바 편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각 터키에서 쿠데타가 터졌다고 한다. 요즘 세상에도 쿠데타가 일어난다니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이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쿠데타의 이유는 군부의 일부 중 이슬람 세속 주의를 지향하는 무리가 좀 더 원리주의적인 현 정부에 대해 일으킨 반란이란다. 본부장이 이란 편에서 말했지만 터키는 수니파이다. 시아파인 이란에 비하면 매우 세속적인 국가이다. 하지만 세상사란 모든 게 상대적이다. 수니 중에서도 더 세속적인 것을 원하는 무리도 있었겠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결과는 수천 명의 반란 기도 세력이 체포되면서 끝이 난다. 대중이 쿠데타 가담자에 대해 대대적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CNN 영상에 나오는 상황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쿠데타에 저항하고 있다. 결국 민심을 얻지 못한 쿠데타는 현재 시각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쿠바 피그만 침공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와 절묘하게 매치되는 해프닝이다. 사실 과거 러시아에서도 이런 군부 쿠데타가 민중들에 의해 실패로 돌아가고 그 쿠데타에 대한 저항의 상징인 보리스 옐친이 쿠데타 세력의 탱크 위에 올라가 러시아 국기를 흔들던 모습이 아직 눈에 생생하다. 자 진실을 말해주마. 대중이 원하는 것은 의도의 옳고 그름이 아니다. 절차의 옳고 그름이다. 절차라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배려다. 대중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자신에 대한 인간적인 무시인 것이다. 존엄한 나의 존재에 대한 무시 말이다. 보통 각국의 보수들이 실수하는 것이 이거다. 올바른 의도를 비뚤어진 절차로 실현하려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도 향후 큰 조직의 리더가 될 것이니 꼭 명심하기 바란다. 어려운 길이라도 절차를 밟아서 가야 구성원의 공감을 받으며 일을 결과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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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만 사태를 맞아 직접 행동하는 실전형 인재 ‘피델 카스트로’

물론 기업이라는 곳은 급료를 받는 곳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불합리한 일들도 따라야 할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이 중요한 줄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심정적으로나마 나를 이해해줄 구성원이 더 많아질 테니 말이다. 부족하지만 옳은 절차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해라. 비록 결과적으로 그 뜻을 실현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결과 지향주의에 빠지면 이러한 공감의 리더십이 작동하지 않는다. 영화 ‘JFK’에서 주장하는 대로 케네디가 피그만 침공을 반대해 보수의 앙심을 샀다면 역사의 좋은 편은 케네디가 되는 것이다. 본부장도 추론상 케네디가 반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사망 직전까지 해왔던 언행을 종합해보면 말이다. 즉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프로세스적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말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공명의 말대로 '남들이 모르게 할 일은 처음부터 하지를 말라'고 했다. 바로 프로세스적인 정당성을 반드시 갖추라는 말이다. 그래서 케네디, 카스트로, 게바라는 지금도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셋 다 잘 생긴 것도 사실이고 나름 본인들의 캐릭터를 잘 다듬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알아가겠지만 언제나 피상적인 것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언제나 당장 쉬운 길을 가려 하는 사람들 말이다. 뭐든 시간을 들여야 인정받는다는 것을 명심해라. 캐릭터도 오랫동안 준비해온 것이라면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오랫동안 준비된 캐릭터는 나만의 차별화된 콘텐츠가 되기 때문이다. 본부장이 강의 때마다 마지막에 '스스로 빛나는 자'가 되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오랫동안 준비한 캐릭터로 만들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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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전 쿠바 음악과 사회 상황을 담은 스페인 애니메이션 영화 ‘치코 앤 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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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후반 전 세계적으로 쿠바 음악 돌풍을 일으킨 쿠바 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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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친 보수세력에 비하면 쿠바의 체 게바라나 카스트로는 격이 다른 리더다. 아르헨티나 독재자 ‘호르헤 비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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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독재 세력에 의해 자행된 더러운 전쟁 중 실종된 아들과 딸을 찾는 아르헨티나 어머니들 ‘Argentina's Dirty War’

쿠바는 앞서 말한 세 명의 멋진 남자들이 물려준 정치적 유산 외에도 유난히 상징물이 많은 나라다. 콜럼버스가 인도인 줄 알고 최초로 발견한 서인도 제도에 위치한 나라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모티브가 된 수많은 해적들이 활약했던 곳이다. 우리가 놀이동산에 가면 있는 캐리비안베이가 실제 쿠바에 있는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기후나 주변 환경이 지상의 천국이 따로 없다. 거기에 세계적 상남자 작가 헤밍웨이가 칵테일 모히또를 마시며 집필활동을 하며 말년을 보냈던 곳이다. 물론 죽음도 거기서 맞았다. 헤밍웨이는 본부장이 중간중간에 이야기한 게 많기에 더 깊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쿠바는 사실 젊은 층에게는 라틴음악으로 유명하다. 한 5년 전에 개봉한 스페인 애니메이션 영화 ‘치코엔 리따’를 한번 보라. 쿠바 음악의 아름다움과 혁명전 쿠바의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친근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90년대 후반에 이미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쿠바 음악의 아름다움은 전 세계에 소개된다. 쿠바는 혁명 이후 서방에게는 타부 즉 금기사항이었다. 대중의 지지를 받고 수립된 사회주의 국가이고 그 국가적 운영도 매우 설득력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칠레의 피노체트나 그 유명한 '더러운 전쟁'을 수행했던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비델라 같은 남미의 미친 보수세력들이 보여준 몰상식에 비해 쿠바는 너무나 상식적이었다. 아마 당시 남미에서 쿠바 민중이 가장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경제봉쇄로 풍요와는 거리가 먼 사회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보통 풍요로움은 적절함을 넘어 지나침을 시도하려는 보수들이 주로 쓰는 신기루 같은 캐치프레이즈다. 나중에 보면 누구도 거머쥔 사람이 없는 그것 말이다. 적절함를 무시한 풍요로움에는 독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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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호소력 있는 국가 캐릭터를 가진 프랑스의 ‘자유 박애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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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재선 캠페인 ‘For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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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직을 갉아먹는 회사 안 또라이들을 제거하라. ‘The No Asshole Rule’

쿠바의 매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쿠바를 그렇게도 저주했던 미국이 만들어 준 것이다. 스스로 빛나려는 자에게 칠흑 같은 어둠을 선사하며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대항해 시대 신대륙 발견에 따른 극도의 풍요로움을 쫓던 환락과 타락의 섬에서 가장 올바름을 실현하기 위해 젊은이의 순수함만을 믿고 들고일어나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시작한 나라로 알려진 쿠바. 어느 사회나 혼자 깨끗하려고 하면 시련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일단 시작했으면 그것 또한 자신만의 캐릭터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프랑스가 그 위험한 사회 개혁 모델을 시도한 것 자체만으로 지금도 두고두고 정의로운 국가 캐릭터를 선점해 우려먹고 있지 않은가. 어디 사람 사는 곳에 더러움이 없겠는가 말이다. 프랑스가 대혁명 이후 너무나 멋진 캐치프레이즈인 자유 박애 평등을 내세우다 결국 스스로 제국을 칭하며 전 유럽을 전쟁으로 몰아넣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와 캐치프레이즈를 선점한 자가 가장 유리하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식민지 출신이라는,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들의 선점 때문이다. 긴 안목을 가지라는 것은 긴 시간이 흐른 후 구성원이 적극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스스로의 캐릭터와 캐치프레이즈를 미리 생각해두란 얘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것인데 인간에 대한 지나친 기대도 금물이지만 지나친 비하도 금물이다. 여기서부터 소위 변태 즉 또라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본부장이 항상 조직에서 만들려고 했던 필승의 조직 원칙이 바로 또라이 제로 조직(The No Asshole Rule)이다. 한 번 찾아서 읽어보기 바란다. 아마 피그만 침공도 그런 또라이가 계획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쿠바 미사일 사태도 만약 케네디가 아니라 웬 또라이가 판단했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할 따름이다. 본부장이 이 책을 쓰는 이유다. 올바른 판단력을 갖춘 리더의 양성이 그렇게 간단치가 않기 때문이다. 쿠바 편을 빌어 여러분의 분발을 다시 한번 촉구하는 바이다.

 

 


제 19편 브라질

남미 최초의 올림픽 개최국, 브라질
(1) 포르투갈의 옛 수도, 리오 데 자네이루와 브라질 국가 캐릭터의 롤모델 축구 황제 펠레

  • 입력 : 2017.07.17 19:28:58    수정 : 2017.07.17 19: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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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코바도 예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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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9월 7일 브라질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건축된 리오 데 자네이로의 <코르코바도 예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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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코바도 예수상에서 내려다본 <리오 데 자네이루의 야경>

영화 ‘분노의 질주’ 5번째 시리즈인 언리미티드의 첫번째 장면은 리오 데 자네이루의 예수상에서 시작된다. 리오 데 자네이루는 포르투갈어로 1월의 강이란 뜻이다. 본부장은 응원단으로 한창 바쁘던 대학 1학년부터 스페인어를 배웠다. 발음도 재미있고 무엇보다도 색다른 풍미를 주는 언어가 매력 있어 보였다. 그때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던 첫 단어가 리오 데 자네이루다. 물론 스페인어가 아닌 포르투갈어지만 당시에는 아마 스페인어식 지명 이름을 이야기 해주면서 예를 들어주신 걸 거다. 리오 그란데(큰 강), 푸에르토 리코(풍요로운 항구), 상파울로(성 바울) 등 같은 뜻이라도 영어식 보다 무척 시적이며 은유적이다. 물론 실제 뜻은 매우 식민지 침탈의 잔재가 남아있다. 1월의 강도 미루어 짐작컨데 1월에 발견된 강이라는 뜻일 거 같다. 물론 포르투갈인에 의해서 말이다. 브라질은 일반적으로 축구를 제외하고는 썩 좋은 글로벌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거기 사시는 분들은 아름다운 추억이 많겠지만 뉴스나 미디어 컨텐츠로 전해지는 브라질은 보통 조직 범죄, 빈민가, 부패 공무원, 부족한 기반 시설 등이 떠오른다. 실제 영화 ‘분노의 질주’에서 보여지는 브라질 최대 도시의 모습은 본부장이 브라질 사람이라면 너무나도 화가 날 정도로 열악한 모습이다. 위에 열거한 단어들은 물론이고 영상이 주는 누추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궁색 맞다. 본부장은 이 영화를 보며 이런 영상을 브라질의 맨 얼굴인양 허용한 브라질 정부에 더 큰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전역이 대학시절 본부장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느낀 스페인어 또는 포르투갈어를 써가며 부적절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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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5번째로 큰 나라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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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11월 15일 8시 30분 리우의 밤하늘을 보며 공화국기를 만들기 전 제정시대 <브라질 국기>

브라질은 러시아, 캐나다, 미국, 중국에 이어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고 다음은 호주와 인도가 뒤를 따른다. 본부장이 이런 순서를 나열하는 것은 중요한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중국 인도를 제외하고는 신대륙 국가이다. 러시아는 유라시아의 중앙을 점하고 있는 지구의 중심 국가이다. 중국은 유럽에서는 극동이라고 불렀지만 스스로 중심을 칭한 나라다. 인도는 앞에 말한대로 인류 역사상 가장 찾아가야 할 대상이었던 곳이다. 세 곳은 모두 상징적인 입지를 가진 나라들이다. 반면에 캐나다, 미국, 브라질, 호주는 모두 인류(개척자와 원주만 모두)의 피와 땀이 서린 처절한 현실이라는 흙바닥에서 최근 400년사이에 만들어진 나라들이며 나라 자체가 대륙이다. 여러분들이 세계지도를 한번 펴고 보라. 엄청나게 작은 나라들 사이에 큰 나라들이 있는 이유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는가. 큰 나라도 작은 나라들로 분열될 수 있고 작은 나라들도 큰 나라로 합쳐질 수도 있다. 두 과정 다 많은 노력과 희생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왕 같은 고생을 한다면 큰 나라를 만드는 게 좋다고 본다. 그것은 큰 나라가 주는 위압감이나 대외적인 이미지보다는 큰 나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구성원들의 타협과 설득 그리고 경쟁에서 만들어지는 공동체적 자부심이라는 후대에 전해줄 소중한 자산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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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데자네이루를 배경으로 촬영한, 하루를 살지만 자부심 있게 사는 사람들의 스토리 <분노의 질주 시리즈 5>

본부장이 누차 이야기하지만 눈에 보이는 자산은 안심을 주지만 보이지 않는 자산은 자부심을 준다. 안심은 어제를 담보로 한 미래에 대한 부작위다. 반면에 자부심은 인간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멘탈리티의 추동력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인간은 눈으로 보고 안심을 하고 마음으로 안주를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내 불안함과 조바심을 느끼게 마련이다. 흐르는 시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말이다. 그래서 인간은 또 움직이려 한다. 마치 돌아오면 이내 떠나려하고 떠나면 돌아오려 하는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안주하다 일어난 몸과 마음은 싶게 움직여주지 않는다. 힘이 없어서나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은 스스로에 대한 감동에서 나온다.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는 스스로에 대해 감동할 때다. 스스로 대견한 사람은 그래서 남에게 자신의 모습을 견주느라 불안에 떨지 않는다. 인생은 언제나 혼자이기에 자기 안의 선량한 관리자를 만족시켜주면 그가 해주는 칭찬에 그저 즐거울 뿐이다. 인생이 힘든 이유는 바로 내 안의 관리자가 주는 질책 때문이다. 자부심이란 결국 그 관리자가 내게 주는 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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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과는 차별화된 포르투갈의 식민지 방식이 시도된 브라질

이런 통과의례를 거친 자부심이 더 선명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국가일수록 현재 세계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어있다. 우리에게 브라질은 그러한 선망의 국가는 아닌 것 같다. 영화 ‘분노의 질주 5’를 보면 리오 데 자네이루의 마피아 두목이 브라질을 제외한 남미의 스페인 정복과정을 비판하는 대목이 나온다. 스페인이 시도한 대가 없는 일방적인 포악한 통치에 비해 포르투갈의 대가를 전재로 한 거래의 합리성을 예로 든다. 뭐 극중 그 양반이 할 얘기는 아니지만 말은 맞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네덜란드나 포르투갈은 식민지 개척 과정이 현지 직영보다는 무역소를 중심으로 한 거래에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해당 원주민들과도 큰 마찰이 없었다고 한다. 브라질이 인근 남미 국가들보다 축제나 음악 같은 엔터테인먼트 문화가 발달한 이유도 살아온 과정이 비교적 덜 가혹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브라질은 1822년 9월 7일 무혈 독립을 이룬다. 포르투갈 돈 후앙 6세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게 쫓겨 리스본에서 당시 식민지였던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루로 천도한지 13년만인 1821년에 다시 본국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리우에 남게 된 아들 페드로 1세가 브라질 초대 황제가 되면서 말이다. 몸이 떨어지면 맘도 멀어지는 법이고 권력은 자식과도 나눌 수 없다는 말이 여기 브라질 독립과정에서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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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더불어 브라질의 차별화된 국가 콘텐츠 <브라질 카니발>

브라질은 독립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건 물론이고 독립 이후에도 매우 안정된 모습을 보이며 인근 남미 국가들의 불안한 정치 상황과는 차별화를 보인다. 물론 나중에 가면 마찬가지로 쿠데타를 반복하며 불안해지지만 아르헨티나나 볼리비아, 칠레처럼 국민들에게 극도로 무자비했던 독재 권력은 존재한 적이 없다. 오히려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큰 영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강력한 관리력을 가진 정부의 부재나 사회적 포퓰리즘이 더 큰 문제로 작용한다. 브라질의 경우는 중앙정부보다 지방이나 말단 공무원이 더 부패가 심하다. 본부장이 경험해본 바로는 상류층의 브라질 역사나 상징에 대한 자부심은 상당히 강한 편이다. 반면에 국민들이 느끼는 정부의 효율성은 매우 부정적이다. 이 부분은 칠레가 남미 최고다. 아르헨티나도 괜찮은 편이다. 과거 국부 독재가 오랫동안 심했던 나라들은 당시에는 매우 암울했지만 정권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일사불란한 행정 서비스라든지 도시 기반 시설 같은 국가적 사업에 많은 공을 들인 결과 외국인이 느끼는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반면에 브라질의 경우는 멀쩡한 대도시에서 총기를 난사하는 범죄조직이 활보할 정도로 국가 공권력에 대한 국민적 존경심이나 신뢰가 매우 약하다. 모든 것이 국가 공동체 구성과정에 있어서 통과의례적 자부심이 부재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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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노예가 최대 500만이 유입되어 착취당했던 브라질 플랜테이션 농장은 지리적으로도 아프리카와 가깝다.

브라질은 원래 당시 붉은 색을 띠는 최고급 염료로 쓰이는 브라질 나무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하는데 브라질이란 말 자체는 아일랜드 인근의 상상의 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브라질을 발견한 포르투갈인들은 베라 크로즈(진실된 십자가)또는 산타 크로즈(성스로운 십자가)로 불렀고 마찬가지로 브라질을 섬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무슨 탐사라도 해보고 판단하면 될텐데 무턱대고 겉만 보고 판단하면서 섬이네 대륙이네를 결정했다는 것 자체가 본부장이 보기엔 처음부터 매우 어설퍼 보이는 부분이다.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은 태평양을 3번이나 일주하는 여정을 통해 인근을 꼼꼼히 탐사하며 호주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한 것을 보면 매우 비교되는 부분이다. 아무튼 유럽인들은 브라질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아마도 영국이 좋아했을 것이다. 실제로 브라질 독립도 당시 최강국이었던 영국의 승인이 주요했으니 말이다. 19세기에 세계적인 중재는 대부분 영국이 주재했다. 당시 약소국가나 식민지의 독립이나 영토의 할양은 대부분 영국이 관할했다고 보면 된다. 물론 프랑스 이익에 반대되는 쪽으로 말이다. 포르투갈의 브라간사 왕가가 리스본을 버리고 리우로 천도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 것도 영국이었다. 그냥 나두면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 있는 왕가의 부가 모두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게 갈 것을 견제한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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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리우 올림픽 마스코트 <비니시우스(Vinicious)와 통(Tom)>

브라질은 여러분도 지금껏 많이 생소할테니 본부장이 상식차원에서 좀 디테일하게 적어 보았다. 남미의 역사가 워낙 획일적으로 진행되어오면서 각 국가의 다양성이 풍부하게 발전하는 것을 저해되어 왔지만 브라질은 축구라는 아이템을 통한 국가 캐릭터 발굴에 성공한 국가다. 물론 다른 남미국가들도 대부분 세계적인 축구강국이긴 하지만 브라질이 가진 국가 캐릭터를 넘어서진 못한다. 아마 아르헨티나가 가장 질투가 많았을 것이다. 전쟁을 치룰 정도로 전통적으로 두 나라는 적대국이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화해했다고 한다. 2014년 월드컵 개최 후 2016년 올림픽까지 브라질이 거머쥔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그런 집약된 이미지를 가진 강력한 캐릭터 때문이다. 전략이라는 것은 한정된 자원에 대한 집약된 컨트롤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략을 가지고 승리하는 길은 그러한 컨트롤의 지속력이다. 브라질은 축구에 관한 한 승리의 요소를 모두 갖추었다. 잘 하는 것과 1등은 틀리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말한 대로 건드리는 것과 치는 것은 틀린 것처럼 말이다. 브라질이 축구를 글로벌 탤런트로 발전시켜 당시 글로벌 스탠다드인 유럽 축구를 넘어설 수 있는 혁신을 시도했을 때 누구도 브라질이 성공하리라 장담하지 않았을 것이고 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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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축구 클럽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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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 축구 클럽 현황>

브라질이 세계 1등인 지금도 유럽의 세계 3대 리그에 남미는 끼지 못한다. 남미가 갖는 시장성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게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냉엄한 자본주의적 현실에서 브라질 축구의 성공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시사한다. 성공의 가장 우선 순위는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집중을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에 근거한 열정이 필요하다. 고도의 집중력이란 것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사무실에서 본부장 주변의 부하 직원들을 보면 금방 쉽게 지치고 주의가 산만해지는 직원들을 종종 보게 된다. 여러 가지로 관찰한 결과 금방 이유를 찾는다. 대부분 스스로에 대한 알 수 없는 비하를 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이러한 자기비하는 곧바로 공동체에 대한 비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본부장이 브라질에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정상적인 발전을 하기에 매우 부적절한 자기비하적인 환경에도 불구하고 축구라는 한정된 아이템에 대한 전국가적 집중을 하게 한 원동력 무엇이냐는 것이다. 본부장이 정의한다. 바로 축구 스타 펠레라는 롤 모델이 존재했다. 베르그송의 엘랑 비탈이라는 도약의 시기에는 반드시 촉매제가 있어야 한다. 방아쇠 말이다. 많은 국가나 집단이 모든 우호적인 사회 여건에도 불구하고 도약에 실패하는 이유는 대부분 준비된 롤모델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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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올림픽 확정에 환호하는 브라질 대표단 <룰라 대통령(좌)과 축구 황제 펠레(우)>

도무지 주위를 둘러보아도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자부심의 흔적들을 찾아, 전국가적인 자부심을 대표할 만한 상징물에 대한 국민적 염원을 직접 시각화시켜 주고 정의해줄 롤모델이 존재했던 것이다. 아주 시의 적절한 타이밍에 말이다. 롤모델은 단순히 재능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이 가지지 못하는 포용력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 그리고 보편적인 인격을 겸비해야 한다. 이러한 롤모델 덕택에 브라질은 국가 캐릭터 즉 지위를 비약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킨다. 세상은 냉혹하다. 냉혹하다는 것을 다르게 얘기해 주마. 세상은 치열한 자리다툼이라고 보면 된다. 좀 더 좋은 자리에 위치하려는 축구선수처럼 국가, 기업, 개인 그리고 그 밖의 단체들이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본부장이 벌써 21번째 나라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유는 한가지다. 역사를 공부하지 말고 역사를 만들어라. 현실을 겁내지 말고 현실을 파악해서 이용해라. 역사가도 외교관도 아닌 기업가인 본부장이 여러분에게 역사나 국제정치를 논하는 것은 본부장이 20여년동안 현장에서 느낀 현실과 이론을 여러분에게 개념적으로 설명하기 위함임을 명심해라. 본부장이 구현하는 최고의 관리시스템의 그 첫 시작점에 바로 롤모델의 설정이 위치하고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 자부심과 자기비하로 가득 찬 조직의 차이에는 언제나 적절한 롤모델의 존재 여부가 빛을 발한다. 혹자는 이를 영웅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본부장은 영웅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다. 사실을 사실적이지 않게 만드는 단어이다. 본부장은 여러분들이 조직이나 또는 다른 누군가의 롤모델이 된다면 언제라도 스스로의 임무를 다했다고 믿고 너무나도 기분 좋게 역사의 물결에 몸을 맡길 수 있다. 부디 분발해서 본부장이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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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의 예수상과 브라질 국기는 국가이미지 신장에 큰 역할을 했다.

포르투갈 브라간사 왕가가 리오 데 자네이루에서 리스본으로 돌아가고 브라질이 독립한지 100년이 지난 1922년 9월 7일 독립 기념일에 맞춰 리우의 상징인 코르코바도 예수상이 세워진다. 아무리 봐도 멋진 건축물이며 파리의 에펠탑이 주는 메세지 능력에 필적하는 상징물이다. 본부장이 보기에는 브라질 국기 또한 명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먼저 녹색이라는 색깔은 원래 유럽에서도 멋쟁이들이 쓰는 색깔인 만큼 대담한 시도다. 거기에 노랑색도 국기에 쓰기에 녹색만큼 과감한 색깔이다. 또한 가운데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가 아닌 리우에서 바라보는 푸른 밤하늘의 별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기에 글자를 쓴다는 발상을 한다. 보통 국가 최고의 상징물인 국기에 글자를 쓰는 경우는 일부 이슬람 국가들의 국기 이외에는 잘 없는데 말이다. 포르투갈어로 질서와 진보를 녹색으로 써 놓았다. 결론적으로 브라질 국기는 현실적으로로 역사적 자산이 충분치 않은 근대 신생 국가의 캐릭터 업그레이드를 위한 최고의 선택인 듯하다. 나중에 녹색이 농업과 삼림자원을 노랑색이 광물 자원을 상징한다는 말을 듣고는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가운데 푸른 밤하늘의 별이 브라질 공화정이 선포되던 1889년 11월 15일 8시 30분의 리우의 밤하늘이라고 하니 앞서 들은 자원 같은 이야기들을 잊게 만들어 준다. 너무 가까이 보지만 않으면 너무나 멋진 것들이 많은 나라가 브라질이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 갈 비행기 티켓이나 한번 더 확인해 봐야겠다. 리우의 밤하늘의 23개의 별과 함께 정말 그렇게 푸른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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