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오후 12시 국회의사당 중앙홀(로텐더홀)에서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문재인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김재훈 기자
[김세형 칼럼] 제19대 문재인 대통령은 유권자 열 명 중 네 명이 지지한 소수파 대통령이다. 그래서 통합을 강조한 것은 당연하다. 통합에 걸맞은 국정 운용을 하자면 적폐 같은 편가르기 용어는 입에 담지 말고 담담하게 개혁해 나가는 게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취임 100일에 요란한 평가가 내려졌듯이 문 대통령도 초반 100일 능력 위주 인사, 탕평 그리고 기자회견 같은 소통을 얼마나 잘 활용했는지를 보고 점수를 매길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의 말대로 대선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전 지구적으로 분노와 소외(잊힌 사람들)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21세기적 현상이기에 모든 새 대통령들은 어렵다.
문 대통령의 첫 고비는 트럼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 및 새로운 관계 설정이고 둘째 고비는 경제 및 일자리 창출이 될 것이다.
한국 대선에 관해 파이낸셜타임스(F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은 "미국에 노(No)라고 말하는 인물" "호전적인 김정은 정권의 북한과 대화를 강조하고 미국과 긴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 등 가시 돋친 문장들을 구사했다. 전 세계적인 우파 정권들의 시대에 한국이 10년 만의 보수에서 진보로 선회하니 그런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가 보다.
특히 트럼프와의 회담은 인맥이 영향을 미쳤다. 일본, 중국이 트럼프의 사위 제러드 쿠슈너와 딸 이방카 라인을 잡아 성공했고 독일은 앙겔라 메르켈이 어려움을 겪은 다음 이방카를 특별 초청했다. 트럼프는 당선 5일 후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의 창업자와 만난 자리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유일하게 외국 기업인으로 초청했었다. 그때가 한국이 트럼프 패밀리와 커넥션을 가질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특검 박영수가 그 기회를 차 버렸다.
한국 대선 12일 전 트럼프가 "사드 배치 비용 10억달러를 한국에서 받고 싶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재협상하고 어려우면 폐기해버릴 것"이라고 발언한 것은 누가 당선될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시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기선을 제압하고 여의치 않으면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도 쉽게 할 수 있다는 트럼프 특유의 '압박 기술'을 발휘한 게 틀림없다.
한중 관계는 사드 배치를 전후해 급속 냉각됐다. 중국 관영언론은 "사드 배치를 단행한 데 대해 두고두고 보복할 것"이라고 고위 관계자들을 인용했다. 중국에는 할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손자가 3대에 걸쳐 한다는 속담이 있다. FT는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재고할 것이라고 썼다. 사드는 문재인-시진핑 회담의 시험대가 될게 분명하다. 미중의 관문을 통과하면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의 위안부 재협상 문제도 만만찮은 난제다. 그것은 아직 꺼진 불이 아니다.
문 대통령에게 트럼프, 시진핑, 아베는 2020년대 문을 열 때까지 함께 갈 동행자들이다. 그리고 이 3국의 도움이 없이는 한국은 북핵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고 경제 활성화 문제도 절대로 풀 수가 없으며, 일자리 문제 해결은 더더욱 안 될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은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이며 미·중·일 관계 재설정 성공 여부가 경제를 잘하기 위한 필요조건임을 직시해야 한다. 문재인정부는 경제 흐름상으로는 행운아다. 취임날 미국 애플의 시가총액이 8000억달러를 처음 뛰어넘었다. 10년 만에 세계 경제가 기지개를 켜고 불끈 일어서는 순간에 출발은 좋은 징조다. 시장 회복기에는 기업이 잘 뛰게 하는 국가가 성공한다. 거기에서 부(富)가 생성되고 일자리가 창출된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서 따온 공리로 아예 잊어버리는 게 좋겠다. 비정규직 정책도 OECD를 벤치마크하는데 마찬가지로 OECD를 잊어버려라. OECD 국가는 34개 회원국의 집합체다. 그런데 미국 일본 한국 캐나다 호주 멕시코를 제외하면 전부 유럽 국가들이다. 아주 잔챙이 유럽연합(EU) 회원국들도 있다. EU의 기본은 사회주의 시스템이고 작년 브렉시트 이후 올해 선거에서 프랑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에서 줄줄이 사회주의가 패하고 보수가 승리했다. 무엇을 말하는가. 기존 OECD 방식이 틀렸다는 반성이다.
트럼프나 이번 프랑스 선거의 마크롱이나 모두 기업들이 뛰게 하자는 정책을 최대한 구사하겠다고 강조한다. 법인세를 35%에서 15%로 낮추고 미국은 심지어 상속 증여세 폐지까지 발표했다. 마크롱도 프랑스 법인세를 33%에서 25%로 인하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한국 대선 공약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대기업을 옭죄는 근로이사제, 집중투표제, 대표소송제를 도입하겠다고 벼른다. 대기업의 손을 오랏줄로 묶어 강물에 던져놓고 생환하라는 격이다. 장담하건대 대기업 정책을 잘못 다루면 문재인정부의 일자리 창출은 실패한다. 대기업을 묶으면 일자리는커녕 해외로 본사를 옮기거나 다음 정부까지 투자를 않고 기다릴지 모른다.
트럼프는 벤처기업인과 단체 회동을 갖고 곧 1~10위 대기업 CEO를 불러 일자리 창출을 당부하고 전 세계 큰 기업인들은 모두 따로 만나 미국에 투자를 부탁했다. 도요타 알리바바 프랑스 독일 기업인들이 불려가 약속을 하고 왔다. 한국의 대통령에겐 그런 호령을 할 위세가 없다.
경제는 대기업, 중소기업(창업벤처) 두 날개로 날아가는 것이다. 미국의 최대 기업 월마트는 70만명을 고용하지만 2~10위는 칼라일, KKR, 블랙스톤 같은 민간펀드(PE)들이 각각 60만명 선을 고용한다. 한국은 최대가 삼성전자, 현대+기아차 두 기업이 10만명이 약간 넘고 3위 LG전자는 3만8000명에 불과하다. 한국은 대기업을 더 키워야 한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에서 대약진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 방면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개인정보보호법에 막혀 미국 중국에 비해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은 출발조차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것을 새 정부가 풀어내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앞의 두 과제-즉 외교(북핵), 일자리 창출에 성공하고 세 번째로 검찰개혁을 필두로 공권력 과잉에 대한 개혁, 그리고 헌법 개정까지 간다면 큰 성공이다. 그렇게 해낸 정부는 없었다.
문재인정부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없어 100일 성과로 평가하기엔 이르고 6개월, 1년 후가 중요하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과 그후 기업, 조세정책 등 전개에 따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같은 외국 신용평가기관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재조정할 것이다. 여기에서 합격점을 받으면 성공이다. 반면 세계 경기는 양호한데 한국만이 신용등급이 하향되는 일이 있으면 정말이지 고약해진다.
[김세형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