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미술회화

족보 없는 화가의 작품이 828억

doll eye 2022. 2. 5. 13:33

81년생 컴퓨터 공학도가
14년간 날마다 하나씩 그린
JPG 묶음파일이 828억원!

◆ 미술시장 완전정복 / ① 투자 신세계 NFT ◆

'아트테크'가 최근 젊은 부자(Young&Rich)에게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와 함께 4대 투자처로 꼽힐 정도입니다. 투자의 의미를 찾으면서 수익까지 얻고 싶은 MZ세대 투자자를 위해 미술시장을 깊이 있게 분석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당신을 미술시장의 '인싸'로 만들어드릴 미술시장 완전정복의 첫 주제는 대체불가토큰(NFT) 미술 투자입니다.



2020년 10월 15일 비플이 그린 `인투 더 엔터`. 비플은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를 그림의 소재로 자주 이용한다. 연작 `모든날들-첫 5000일`중 하나이다. [사진 제공 = 비플 홈페이지]
미술사학자 언스트 곰브리치는 미술을 '끝이 없는 이야기'로 정의했습니다. 2021년은 대체불가토큰(NFT) 미술의 원년이었습니다.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막대한 유동성을 빨아들였습니다. 미술이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여야 한다면 NFT를 눈 감고 무시해선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NFT 미술의 투자가치는 있을까요? 몇 가지 이야기로 답을 대신해 보겠습니다.

▶피카소, 바스키아, 그리고 비플



`NFT의 제왕` 비플
지난해 세계 미술 경매시장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 작품은 파블로 피카소가 연인 마리 테레즈를 그린 '창가에 앉은 여인'이었습니다. 작년 5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340만달러(약 1234억원)에 팔렸죠. 1932년작으로 피카소 전성기 대표작이란 점이 높은 가치를 만들었습니다. 경매 기록 2위는 '검은 피카소' 장미셸 바스키아의 작품으로 9310만달러(약 1111억원)에 팔렸습니다. 2018년 루이비통 미술관 전시를 통해 유명해진 자화상, 해골, 죽음의 이미지를 담은 바스키아의 대표작입니다. 뒤를 이어 10위권에는 산드로 보티첼리, 마크 로스코, 알베르토 자코메티,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잭슨 폴록 등이 올랐습니다. 모두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작가들이고 20세기 이후 현대미술이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놀라운 건 8위에 오른 'NFT의 제왕' 비플(Beeple)입니다. 작년 3월 11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모든날들-첫 5000일'이 6930만달러(828억원)에 팔리면서 미술계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족보'도 없는 작가가 별안간 진기록을 쓴 것입니다.

비플의 본명은 마이크 윈켈만(40)입니다. 그는 14년 전 매일 새로운 디지털 그림을 하나씩 그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컴퓨터 공학도 출신 웹디자이너로, 미술에 관한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그는 그저 그림을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무모한 도전에 나섰고, 5000점이 넘는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비플은 '사이버펑크(첨단 기술시대 저항 문화)'를 테마로 시네마 4D와 같은 모델링, 비주얼(시각효과)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가상세계의 이미지를 주로 작업합니다.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선 이렇게 작품관을 밝혔습니다.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에는 기술과 관련한 이상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또한 기술이 낳은 해괴하고 의도치 않은 결과였습니다."

NFT로 작품을 팔기 전 비플은 작품을 인쇄해 개당 100달러 이하에 팔기도 했습니다. 꾸준한 노력과 소통으로 비플은 유명해졌습니다. '모든날들'의 가치는 14년간 성장해온 작가 일생의 조각을 소장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나옵니다. 현재는 스페이스X, 애플, 루이비통 등의 브랜드와도 협업하고 콘서트 디자인도 참여할 만큼 슈퍼스타가 됐습니다. 미술가는 시대를 불문하고 장벽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영역으로 사회를 이끄는 사람들입니다. 피카소는 3만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 당대 최고의 스타로 일생을 풍미했고 새로운 사조를 열었습니다. 성실함과 미술계를 흔든 화제성에서 비플은 '21세기 피카소'란 별명도 어울릴 법합니다. 다만 작업 방식은 앤디 워홀과 더 닮았습니다. 팝아트는 엘리트주의 문화를 비판하며 대중문화를 뮤즈로 삼아, 대중의 참여를 끌어낸 첫 번째 미학이었습니다. 워홀이 팝아트의 창시자가 아니었음에도 팝아트를 대중화한 작가라는 점에서도 NFT를 대중화한 비플은 닮은 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NFT는 디지털 아트의 총아입니다. 워홀은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로 사진을 변형해 인쇄한 초기 디지털 아트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 NFT 미술의 가격은 무엇이 결정할까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인애널리시스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NFT시장은 410억달러(약 49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2020년 NFT시장이 100억달러였던 걸 감안하면 매년 '퀀텀 점프(폭풍 성장)'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2020년 실물 미술시장 규모가 500억달러(약 59조원)인 걸 감안하면 NFT시장은 현물 미술시장을 위협할 정도로 거대해진 것입니다. 지난해 NFT시장의 거래액 10위권은 비플과 엑스카피(Xcopy)가 독차지했습니다. 비플은 '모든날들' '휴먼 원' 등 4점을 톱10에 올렸고, NFT 미술의 대부 엑스카피도 '오른쪽 클릭으로 저장해봐'라는 풍자적인 작품을 660만달러에 팔아 4위에 오르는 등 3점을 올렸습니다. 기성미술은 진품이 지닌 오라(Aura·광채)에서 가치가 나온다면, 이미지 파일·동영상으로 제작된 NFT 작품과 복제품은 완전하게 동일합니다. 전자가 복제할 수 없는 데서 가치가 생긴다면 후자는 많이 복제되고 유명해질수록 가치가 올라갑니다. NFT의 가격을 높여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창작자의 명성과 작품의 스토리입니다.

작년 4월 데이스트롬이란 회사는 바스키아의 '프리 콤 위드 파고다'란 작품의 NFT를 경매에 올렸습니다. 실물을 폐기할 권리도 주어졌으니 디지털화된 진품만이 남는 경매였습니다. 하지만 입찰자는 나오지 않았고 저작권 분쟁 논란만 남기고 경매는 취소됐습니다. 수집가들조차 바스키아의 진품을 폐기하길 꺼린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NFT는 미술관에 소장되지 못해 가격 상승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올 1월 미국 시애틀 NFT 뮤지엄이 문을 열었습니다. 두 명의 테크기업 창업자가 30개의 디스플레이를 걸고 NFT 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뉴욕 현대미술관 같은 대형 뮤지엄이 비플의 작품을 소장하는 건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걸림돌은 과도한 가격일 테지만요.

이쯤에서 엑스카피의 작품 제목처럼 근본적인 질문이 남습니다. 공짜로 얻을 수 있는데 왜 NFT를 사는가? 'NFT 사용 설명서'를 쓴 블록체인가이즈의 창업자 맷 포트나우의 대답입니다. "다른 미술품처럼 NFT도 사람을 감동하게 할 수 있다. 사이버펑크에서 영감을 받은 비플의 NFT가 사람들이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과 감각에 대해 반향을 불러일으켰듯이 NFT가 사물에 대한 더 큰 이해를 드러내는 렌즈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NFT에는 중간 거래상이 없다



▶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NFT와 기성 미술품의 거래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NFT는 현금 대신 이더리움·클레이튼 등 변동성이 큰 가상화폐로 거래됩니다. 갤러리와 경매·아트페어를 통하는 대신 오픈시(opensea) 등의 NFT거래소가 이용되는 점도 다르고, 수수료도 상대적으로 저렴합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미술의 가치를 평가하고 시장 가격을 형성하는 갤러리스트와 큐레이터·비평가의 존재 유무입니다. 실물 미술은 미술사적 중요성과 함께 보관 상태, 진품 여부도 가격의 중요 요소가 됩니다. NFT는 디지털 아트인 만큼 파손에서도 안전하고 소유권을 블록체인으로 보증해 '짝퉁' 위험에서는 자유롭습니다.


2020년 1월 1일 그린 `테이크 왓 유 원트`. 비플은 대중문화를 적극 차용해 잔혹 동화 같은 현실을 그린다. 연작 `모든날들-첫 5000일`중 하나이다. [사진 제공 = 비플 홈페이지]
NFT 신진 작가들은 "젊은 작가라면 무조건 뛰어들어야 하는 시장"이라고 말합니다. 10년 이상 경제적 궁핍을 감수하며 전시와 홍보를 해도 1점을 팔기도 어려운 기성 시장과 달리 NFT는 오늘 당장 누구나 작품을 팔 수 있습니다. 화랑과 수익을 나누지 않고 재판매 때에도 음원처럼 로열티가 지급되는 장점도 있죠. 작가들에게는 '멋진 신세계'가 열린 셈입니다. 게다가 NFT는 20세기 후반 이후 미술계를 지배한 미디어아트와 사진예술 거래에도 적합합니다. 'NFT는 처음입니다'를 쓴 팝아티스트 김일동은 "다양한 NFT 플랫폼이 등장해 창작자와 대중의 편의에 맞게 개방되고 있다. 이미 NFT 작가를 지향하며 원래 활동한 영역을 넘어 디지털 매체를 다루는 새로운 작가군도 생겼다"고 설명합니다.

▶ 튤립 버블의 끝과 NFT의 미래



2020년 3월 26일 그린 `슈퍼 전파자`.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비플 작품에서 풍자의 대상으로 종종 등장한다. 연작 `모든날들-첫 5000일`중 하나이다. [사진 제공 = 비플 홈페이지]
최근 NFT시장은 낙타의 등처럼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치 17세기 튤립 버블(거품)처럼 정점에서 터진 뒤 오랜 시간 횡보를 하는 '민스키 모멘트'의 두려움이 커지는 중입니다. 작년 11월 국내에서도 XXBLUE를 통해 장콸의 '미라지 캣3'이 약 3.5비트코인(약 2억5400만원)에 판매되는 기록을 썼습니다. 시장이 과열될수록 미술 투자의 본질에 집중해 옥석을 가리는 투자가 필요합니다. 마치 2018년 비트코인처럼 NFT 미술시장은 큰 조정을 받는 '죽음의 계곡'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시 부활한 이후엔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2021년 3월 비플의 `오션 프런트`는 니프티게이트웨이에서 600만달러에 거래됐다. [사진 제공 = 비플 홈페이지]
NFT가 미술시장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거래방식뿐 아니라 메타버스와 블록체인, 웹 3.0의 개념을 미술시장에 도입시켰다는 점입니다. NFT 미술은 영향력이 커질 메타버스 내부에서 소장·거래될 수 있는 엄청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맷 포트나우는 "NFT의 미래는 밝다. 현재는 과소평가된 디지털아트가 향후 미술계를 장악할 것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NFT가 미래에 디지털 경제로 이어지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세계 최대 NFT 마켓 오픈시의 사용자 수는 작년 말 87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오픈시가 1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한다면, 시장 규모는 현재로선 추산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일찍이 엑스카피는 "모든 사람이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NFT에 매혹됐다고 했습니다. 개방성과 예술의 가치 확산 등 인류가 추구해온 철학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NFT 미술은 미래가 밝다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물론 그날이 오기까지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요.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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