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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베이컨에서 시작한 영국 현대 미술

doll eye 2020. 3. 19. 11:48

프랜시스 베이컨에서 시작한 영국 현대 미술

  • 심정택
  • 입력 : 2019.10.17 06:01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내 침대(My Bed, 1988)` /사진=flickr
▲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내 침대(My Bed, 1988)' /사진=flickr
[요요 미술기행-27] 지난여름 지인이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Goldsmiths College)으로 연수를 갔다. 골드스미스는 아트와 미디어로 유명한 곳이며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yBa는 1980년대 말 이후 나타난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을 지칭한다. 흔히, yBa 군단으로 일컬어지는 이들은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 마크 퀸(Marc Quinn), 채프먼 형제(Jake and Dinos Chapman), 게리 흄(Gary Hume),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등 영국 현대미술의 주역들을 일컫는다.

yBa 작가들은 대부분 런던 동쪽 뉴크로스(New Cross) 지역에 위치한 골드스미스 출신으로 1988년 졸업을 앞둔 허스트가 동료들과 함께 기획한 '프리즈 Freeze'라는 전시를 통해 알려졌다. 런던 도클랜드(Dockland) 지역 빈 창고 빌딩을 빌려 준비한 '프리즈'전은 yBa 탄생의 기원이 되었다.

이 전시를 계기로 광고계 재력가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1943~)는 이들 젊은 작가 군단의 작품을 사들였고, 1992년 자신의 갤러리에서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oung British Artists)'라는 전시를 가졌다. 1997년 로열 아카데미에서 열린 '센세이션(Sensation)'전으로 yBa는 이목을 집중시키며 영국 현대미술 부흥을 알렸다. 미술 부흥은 작가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장이 형성되어야 한다. 영국은 미국, 중국(홍콩 포함)에 이은 세계 3위권의 미술 시장을 갖고 있다. yBa는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을 배제하고 스펙터클한 형태 새로운 개념 미술을 선보였다.

yBa 스타 중 첫 번째는 '프리즈' 전시를 기획한 허스트(Damien Hurst, 1965~)이다. 뉴욕의 MoMA에서 컬렉션하면서 유명해졌다. 작품 명이 길다.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허스트는 청년 시절 장례식장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위에는 죽음의 이미지만 가득했다. 그가 경험한 메시지는 간결하고 명료하다. 그는 골동품 가게에서 매매되는 19세기의 해골을 사서 8000여 개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었다. '삶은 순간이고, 인간은 결국 죽는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라틴어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허스트의 해골 작품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화두를 제시한다.

여성 작가 에민(Tracey Emin, 1963~)은, 자신의 상처를 공개적으로 고백한다. 자신이 겪었던 폭력적인 경험들과 이별하는 과정을 표현한다. 대표작인 '내 침대(My Bed, 1988)'는 자신이 쓰던 침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으로, 주변에는 스타킹, 속옷, 콘돔, 피임약 등 성(性)적인 사생활을 암시하는 오브제가 널려 있다. 이 작품을 처음 보고서는 충격을 받았다.

프랜시스 베이컨 `루치안 프로이트에 관한 세 개의 습작`
▲ 프랜시스 베이컨 '루치안 프로이트에 관한 세 개의 습작'
이제 yBa는 영국 작가와 해외 작가들까지 포함하는 용어로 그 폭이 확대되었으며 현대미술사의 주인공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이 느닷없이 세계 현대 미술의 강자가 된 게 아니다. 2차대전 후 영국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 독일 태생 루치안 프로이트(Lucian Freud, 1922~2011),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라는 걸출한 3인방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도 세계 미술 경매시장에서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2013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는 베이컨이 친구 프로이트를 그린 1969년작 '루치안 프로이트에 관한 세 개의 습작'이 1억4240만달러에 팔리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됐다.

리차드 해밀턴(Richard Hamilton), `도대체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매력 있게 만드는가?`(Just what was it that made yester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
▲ 리차드 해밀턴(Richard Hamilton), '도대체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매력 있게 만드는가?'(Just what was it that made yester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
최초의 팝아트 작가로 불리는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 1922 ~ 2011)도 영국 미술의 튼튼한 자산이다. 팝아트는 1950년대 중반 영국에서 태동한 뒤 1960년대 미국에서 꽃피기 시작했다.

앞선 시대의 추상표현주의가 개인적인 작품 형식을 추구했다면, 팝아트는 이름에서 보여지듯 대중적(popular)인 특성을 지녔다. 해밀턴은 팝아트를 '일시적이고, 값싸고, 대량 생산적이고, 상업적인' 미술 양식으로 이야기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만화, 영화, 잡지 형식이 팝아트의 표현 수단으로 활용됐고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 등 모습을 담으며 사람들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었다.

1956년 그의 초기작 '도대체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매력 있게 만드는가?'(Just what was it that made yester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는 남녀가 있는 실내를 보여준다. 온통 대량소비시대 물품으로 넘쳐난다. '토스터'를 소재로 한 작품 '토스터기(Toaster, 1966-7) & (Toaster deluxe, 2008)' 는 1960년대 독일 브라운의 디자이너 디터 람스(Dieter Rams)가 개발한 전자제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토스터기도 팝아트적 관점으로 보면 작품이 된다. 작품의 대상으로서 이러한 상품을 '발견된 오브제(objet trouve)'라고도 부른다.

해밀턴은 1966년 테이트 갤러리에서 열린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 ~ 1968) 회고전의 큐레이팅을 맡을 만큼 뒤샹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해밀턴은 비틀스의 '화이트 앨범'으로 알려진 9번째 앨범(1968년 발매) 'The Beatles' 커버 작업을 맡았다. 이 앨범이 '화이트 앨범'으로 불리는 이유는 'The Beatles'라는 표시 의외에 아무런 디자인이 없다. 팝아트는 동시대를 반영하기에 항상 있어 왔다. 동시대 풍속화이면서 역사화이기도 하다.

해밀턴의 작품을 지난 1월 말 독일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에서 접했다. 특별전으로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2인전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던가. 처음보는 호크니의 드로잉 작품들만 들여다보았다. 해밀턴이 호크니에게 끼친 영향을 고려해 보지 않았다.

글로벌화는 여행의 자유화를 가져왔다. 먹고살기 바쁜 서울의 도시 빈민보다 지방의 중농 이상 시민들이 해외여행을 더 자주간다. 미술관을 들르게 되면 그 미술관의 상설전보다는 특별전을 반드시 먼저 보라고 권한다. 상설전은 다시 그 도시를 들러도 볼 수 있지만 특별전은 생애 딱 한 번뿐이기 때문이다.

[심정택 작가]

※참고자료-현대 미술의 이단자들(마틴 게이퍼드), 웹사이트(www.tate.org.uk/art/artists/richard-hamilton-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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