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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신문 생태계 급변…구닥다리 규제는 여전"

doll eye 2021. 8. 21. 14:03

미디어 법·제도 전문가 최경진 가천대 법대 교수

알고리즘이 뉴스 주목도 결정
모든 규제 전반적으로 손 봐야

언론중재법 같은 벌칙보다는
정정·반론시스템 정비가 우선

  • 신찬옥 기자
  • 입력 : 2021.08.20 17:24:4
  • "1인 크리에이터가 쓴 기사와 지상파나 중앙 일간지가 보도한 기사가 있다면, 둘 중 어느 것이 파급력이 클까요. 예전 같으면 비교가 안 되겠지만,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누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느냐는 '알고리즘'이 어떻게 노출시키느냐에 달렸거든요. 앞으로는 '미디어'라는 개념 자체가 재정의돼야 할 겁니다."

    미디어 관련 법·정책 전문가인 최경진 가천대 법대 교수(46·사진)는 "이미 '알고리즘 시대'가 됐다. 미디어 산업을 규제하든 진흥하든, 이를 간과하는 한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 대부분이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플랫폼으로 뉴스를 접하는 상황에서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노출될지를 결정하는 알고리즘의 힘이 절대적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 업계와 콘텐츠 업계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첫 화면에 인기작들을 노출시키고 내가 좋아할 법한 프로그램을 추천해 주는 시대다.


    미디어 전반을 규제·진흥할 단일 기구가 필요하다는 최근 여론과 관련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최 교수는 "얼마 전까지 단일 부처가 필요하다고 봤다. 하지만 알고리즘의 영향력이 점점 확대되는 상황에서 자칫 '정보·미디어 통제'가 훨씬 더 강력해질 수 있기 때문에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디어는 앞으로 더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데 일원적 규제와 점진적 규제의 조화가 불가피하다. 특히 내용 규제를 안 할 수는 없겠지만, 고도의 공공성을 요하는 영역을 제외하고는 시장 진입과 소유 규제는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게 맞는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1998년 국내 최초로 '전자상거래와 법' 전문서를 출간했고 전자상거래, OTT와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 신산업이 등장할 때마다 법 제도와 정책 마련에 브레인 역할을 해왔다.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에서 활동해왔고, 개인정보전문가협회 회장과 개인정보보호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특히 방송법, 신문법, 인터넷TV(IPTV)법, 정보통신망법까지 미디어 규제 전반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미디어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규제가 미처 따라잡지 못한 '틈새'의 부작용과 그로 인한 갈등이 속속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OTT 업계가 자신들은 단순 정보 전달 업체일 뿐 콘텐츠 자체에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최 교수는 "그렇게 책임 회피식으로 말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면서 "KBS 수신료 문제도 그렇고, 최근 미디어 업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사회 전체적으로 '투명성'을 증진시킬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논란이 큰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입장은 명확했다. 최 교수는 "아직 국회 본회의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국민적 컨센서스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숙의해야 한다"며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할 규제도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번 후퇴되면 다시 되돌리기 힘든 것이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 그중에서도 '표현의 자유'다. 위축시키는 건 한순간이지만 회복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모르지만, 이런 규제는 한다 해도 아주 피치 못할 비상 상황에 일시적이고 제한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가 말하는 '피치 못할 비상 상황'이란 예를 들어 코로나19가 확산되는 가운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는 근거 없는 뉴스 같은 것을 말한다. 언론중재법이 정조준하고 있는 이른바 '가짜 뉴스', 허위 조작 정보 규제 움직임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 교수는 "정부는 언론이 가짜 뉴스를 만드니까 견제해야 한다고 하는데,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누구도 완전히 증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자는 100% 진실을 증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이 생기면 국민의 알 권리와 정의를 위해 문제 제기를 하는 직업"이라며 "판사도 100% 진실을 알지는 못하지만 헌법이 양심에 따른 재판을 보장해 주는 것처럼 미디어 표현의 자유도 양심의 영역 속에서 최대한 보장해 줘야 한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맞는 정정·반론 시스템 정비 등 대안 마련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신찬옥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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