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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역사

doll eye 2020. 8. 12. 14:41

BC 3,000년 경부터 페니키아인()이 오늘날의 레바논 해안지대에 거주하며 티레, 시돈, 바일 등의 많은 도시국가를 건설하였다. 교역과 염색업으로 융성했던 이들은 주변 강대국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로마 등의 지배를 받았고, 로마시대에는 그리스도교가 널리 수용되었다. 그러나 7세기에 들어와 이슬람교도인 아랍인에게 정복당하자 아랍화,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북부에는 그리스트인(마로나이트파), 남부에는 이슬람인(드루즈파)이 가주하는 가운데 예루살렘에 이르는 관문이라는 이유로 셀주크 투르크와 십자군의 전쟁터가 되었으며, 1516년 오스만 투르크의 레바논공국이 되었다. 1860년 드루즈파가 마로나이트파 1만 명을 학살하는 종교 갈등을 경험하였지만 봉합되었고, 영국과 프랑스군이 1918년 오스만터키를 패배시킨 후 시리아에 편입된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1926년 독립운동이 결실을 이루어 시리아에서 분리·독립, 위임통치에서 자치권을 획득하였다. 1943년 정계 및 종교지도자 간 국민협약(National Pact, 불문()협약)이 채택되어 독립 후의 정부 각 종파 간 권력 배분 합의가 타결되면서 1944년 1월 독립하였다.

독립 후 친서구적(西)이며 보수적인 그리스도교도와 아랍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급진적 이슬람교도 두 세력의 대립 위에 정부가 세워짐으로써 정치는 안정을 잃었다. 1948년 5월 제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에 참전하고 전쟁 결과 15만 여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유입되어 베이루트 주변에 난민촌이 형성되었다. 그후 미국의 군사·경제원조를 받아들이고자 한 일이 이슬람교도들의 반발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1958년 5월 샤문이 헌법을 개정하고 재선을 꾀하자 대규모적인 내란이 발생하였다. 이에 샤문은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파병을 요청, 미해병대가 상륙하였고, 샤문이 사임함으로써 내전은 끝났으나 정치적 혼란은 그대로 잠복하였다.

1969년 레바논·PLO간 카이로 협정체결에서 PLO의 남부레바논 (Arqub지역)으로부터의 이스라엘 공격이 허용되고 PLO의 레바논 국내문제 개입 배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후 요르단에 있던 PLO는 ‘검은 9월’사건 이후 1970년 베이루트로 본부가 옮겨왔으며, 레바논 국내 팔레스타인 난민이 30만 명으로 증가, 레바논 남부는 사실상 정부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국가 속의 국가’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고 PLO를 도발하기 위하여 레바논 팔레스타인 기지에 공격을 가함으로써 레바논의 국론은 기독교계의 기지 분쇄와 회교계의 기지 지지로 양분되었고 마침내 내전으로 다시 격화되었다.

레바논 정부는 PLO를 탄압하게 되었고 그 결과 다른 아랍 여러 나라, 특히 강경파인 시리아와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1973년 4월 정부군과 팔레스타인 게릴라 사이에 대규모 충돌이 있었으며, 같은 해 일어난 제4차 중동전을 통하여 PLO가 국제적 지위를 확립한 가운데 1975년 그리스도교 우파가 팔레스타인인()이 탄 버스에 테러를 가함으로써 레바논 전역이 내전에 빠졌다. 이후 사분오열된 그리스도교 및 이슬람교의 각파들은 각기 무장 민병대()를 내세워 정부군·PLO·이스라엘 등과 끊임없이 충돌하였으며 곳곳에서 수많은 테러가 계속되었다.

이스라엘군이 빈번하게 레바논을 침공하여 점령과 철수를 거듭했고, 각 정파 간의 정전협정은 그때마다 이해를 달리하는 반대파에 의해 무산되었으며, 시리아를 주축으로 하는 아랍평화군(ADF)도 테러로 인하여 주둔과 철수를 거듭하면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특히 1982년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격은 PLO튀니지로 축출하였으나 베이루트를 비롯한 레바논 전역이 거의 황폐화되었다. 또 군소정당이 난립, 정정이 매우 불안한 가운데 1982년과 1989년 국회가 선출한 대통령이 선출 직후 테러로 폭사하는 등 극한 사태로 치달았다.

그러나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레바논 사태는 정부군에 맞서 저항을 계속해 온 그리스도교 민병대의 장군 미셸이 1990년 정부군의 대규모 포격에 항복, 망명함으로써 극적인 전기를 맞았다. 이와 함께 아운이 지휘한 1만 5000명의 민병대가 항복하고 15년 이상 내전에 참여해온 각 무장단체들이 베이루트에서 철수하기로 합의했으며, 그리스도교 마론파와 이슬람교 수니파 등 민병조직의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거국내각이 1990년 12월 출범함으로써 내전을 종식시키고 재건을 모색하였다. 2005년 5월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에서 철군하자 레바논 각 정파들은 시리아의 철군도 요청하였다. 2004년 10월 시리아군의 철군에 대한 유엔의 결의가 있었으며 2005년 베이루트에서의 대규모 시위 결과 마침내 2005년 시리아군도 철군하였다. UN 권고안 1701에 따라 이제 헤브볼라의 무장해제가 남아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레바논의 역사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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