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이슈 칼럼 담론

이슈.이국종교수

doll eye 2017. 11. 23. 21:15

'저는 칼을 쓰는 사람입니다'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칼이 뜨거운 물건인지 차가운 물건인지를 나는 늘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는 칼을 코에 대고 쇠비린내를 몸속 깊이 빨아넣었다"

소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평생 옆구리에 칼을 차고 살았던 무인. 그에게 칼이란 사람을 지켜내기도, 베어내기도 하는 두렵고도 두려운 무엇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칼을 이야기한 또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칼을 쓰는 사람입니다"

카메라 앞에 선 그의 입에서는 기자들의 예상과는 사뭇 다른 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외과 의사가 쓰는 칼과 살인자가 쓰는 칼은 칼 잡는 각도만 다를 뿐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칼을 쓰는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데에만 집중하고 싶다…

그는 의사로서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세상에 내놓은 것이죠.

탈출한 북한 병사에 대한 지나친 관심… 영화 같은 스토리를 기대했던 언론들…과도한 신상 털기와 의료진의 영웅화…

이 모든 것들은 실제 칼을 쥐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었을 테니까요.

의료진이 정작 갈망했던 것은 북한 병사가 아니었더라도, 또한 부유한 권력자의 지인이 아니더라도 언제라도 중증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국가적인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그리고 오늘도 이른바 작심 발언을 이어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이 자리에 계신 언론인들이다…"

이런 그의 말을 달리 표현하자면 언론, 당신들도 칼을 쓰는 자들이 아니냐… 하는 것이겠지요.

언론이 자신에게 주어진 그 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어떻게 흘러갔는가를 우리는 지난 몇 년간의 과정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바.

언론이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청년의 신상과 좋아하는 노래와 몸속에 있는 기생충… 따위뿐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언론은 또 다른 칼잡이의 입을 통해 듣게 되었고, 그래서 언론은 쥐어진 칼을 다시금 유심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습니다.

"칼이 뜨거운 물건인지 차가운 물건인지를 나는 늘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는 칼을 코에 대고 쇠비린내를 몸속 깊이 빨아넣었다"

오늘(22일)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내가 적폐인가"…귀순 병사 살려낸 이국종 교수 '격노'

뉴스1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환자 인권은 목숨 살리는 것"
"한쪽은 빨갱이, 다른 한쪽은 친미주의자라고 비난"

(수원=뉴스1) 최대호 기자,권혁민 기자 = "한쪽은 저를 두고 '빨갱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친미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요즘에는 저보고 '적폐'라고 말한다."

이국종 교수(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가 '격노'했다.

22일 오전 아주대병원 아주홀에서 진행된 귀순 북한군 병사의 건강 상태와 관련한 2차 브리핑 자리에서다.

그는 2011년 '아덴만의 여명' 작전 당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기적적으로 살려낸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 13일 심각한 총상을 입은 채 귀순한 북한군 병사도 2차례 수술 끝에 목숨을 건져냈다.

이국종 아주대학교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 센터장이 2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 내 아주홀에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지역으로 귀순하다 북한군의 총격으로 부상을 입고 헬기로 긴급 후송된 북한 병사의 회복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2017.11.22/뉴스1 © News1 오장환 기자

이 교수는 이날 브리핑에 앞서 사과부터 했다.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들을 꺼내 놓기 위해서였다.

그는 "국가적으로 주목받는 일을 하다보면 불협화음이 터지는 것 같다. 오늘 환자브리핑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들이 굉장히 자괴감 든다. 의사들은 절대 환자들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말이 말을 낳는다. 충분한 정보를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자제해왔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이 교수는 "제가 북한 환자 치료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전에도 더스트오프(미 육군 의무항공기)팀이 (북한 환자)데리고 와 살린 적 있다. 이번에는 소문이 나니까 이렇게까지 일이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자의 인권 중요하게 생각한다. 환자들로 이벤트를 벌여 뭔가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느니 (의사)관두고 만다"고 덧붙였다.

이는 귀순 병사 수술과 관련해 인권침해 논란 등 외부의 비난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이국종 아주대학교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 센터장이 2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 내 아주홀에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지역으로 귀순하다 북한군의 총격으로 부상을 입고 헬기로 긴급 후송된 북한 병사의 회복 상태를 설명 중 생각에 잠겨 있다. 2017.11.22/뉴스1 © News1 오장환 기자

이 교수는 대한민국 헌법조항까지 PPT로 준비해 기자들에 보여주며 "제가 헌법을 들여다 본 건 몇십년 만에 처음이다. 제가 환자 프라이버시(privacy)를 위해 동의서도 받는다. 익명성 하에 (수술장면)공개하는 것이다"며 "이런 게 안 되면 대한민국 의료계는 발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가 정말 '환자 팔이' 하는 것이냐"며 일각에서의 비난에 대해 반문하듯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발언 중에 지금까지 일체 공개하지 않았던 석해균 선장 수술 장면도 사진으로 공개했다.

그는 "석 선장은 '외상센터가 발전할 수 있다면 자신의 몸을 바치겠다'고 했다"며 "의사 입장에서 볼 때 환자의 인권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환자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대한민국 수많은 의사가 '이국종이 별것 아닌 환자 데려다 쇼한다'고 비난한다. '니 주제에 신문에 나오고 그러면 되겠냐'는 식이다"며 의학계 내부에서 자신에 대한 평가절하 상황이 발생하고 있음을 폭로했다.

그는 "지난해 국정감사 때에는 저를 비난하는 문자들이 돌기도 했다"며 당시 문자를 기자들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환자 상태를 듣기 위해 찾아온)기자들에게 정말 죄송하다. 무릎이라도 꿇겠다. 국정감사 때 비난 글 올리신 분은 대한민국 오피니언 리더다. 제가 빅5 병원의 의사였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고 하소연 했다.

특히 "시민단체 한쪽에서는 저를 '빨갱이'라 하고, 한쪽에서는 '친미주이자'라고 한다. 요즘엔 '적폐'라고 부른다"며 격양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북한 청년이 남한에 와서 보고자 했던 것은 자기가 어디서 다치든 30분 내로 중증외상센터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나라를 보고 온 것이라고 저는 생각한다"며 "누구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고 한다. 전 반대다. 사람만 보고 간다"며 "(언론에서)도와 달라. 도와주지 않으면 한국사회 발전 못 한다"고 당부했다.

이 교수는 "(저는)오늘이라도 공문 하나 내려와서 그만하라고 하면 두 번 다시 이 자리에 있지 않을 거다"며 "제대로 된 정책이 만들어지고 아무런 방해 없이 저 같은 말단 노동자들에게 전달돼 사회가 잘 개선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sun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