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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회 이효석 문학상 / 대상 '제 꿈 꾸세요' 작가 김멜라;매경

doll eye 2022. 8. 21. 22:27

2022 이효석문학상] "거대한 세계에 바늘로 구멍 뚫기…그때의 자유가 글 쓰게 해"

귀엽고도 앙증맞게 그려낸
사후 세계 사람들의 이야기

좋은 기억만 남기고 떠나려
지인의 꿈에 나오는 마음들

죽음의 진지함 걷어낸 자리
엉뚱한 상상과 따뜻한 정서

"소설은 내게 숨쉴 자유 줘
해방감 느끼며 꾸준히 쓸 것"


올해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김멜라 소설가를 18일 서울 충무로에서 만났다. [이충우 기자]사람들이 죽음에 관해 본원적으로 품고 있는 감수성이란 이런 것이다.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슬픔. 김멜라 단편 '제 꿈 꾸세요'는 저 감정의 위계를 역전시킨다. 귀엽고 흐뭇한 발상, 그리고 그 발상을 닮은 따뜻한 문체로. 서울 충무로의 한 카페에서 18일 만난 김멜라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떠나는 마음을 소설에 담았어요. 마지막 안부를 주고받음으로써 마음이 채워질 때 우리는 또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심사위원 5인에게서 '만장일치 5표'를 받아 이효석문학상 대상작으로 선정된 단편소설 '제 꿈 꾸세요'의 줄거리는 이렇다. 30대 여성이 의도치 않은 사고로 홀로 사망한다. 죽음을 30초, 15초 남겼을 때 '챔바'라는 녀석이 기타의 육촌뻘인 악기를 메고 나타나 노래를 부른다. 이어 챔바는 '다른 사람의 꿈'으로 떠나자고 한다. 사후세계에 발을 디딘 외로운 사람들, 이른바 '길손'들의 운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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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이 꿈에 나타났다는 얘기는 많은 이들에게서 실제로 구전돼 왔다. 김멜라는 이 같은 꿈들의 여러 회고를 뒤집어, 친구와 가족의 꿈에 나타나길 원하는 '죽은 사람'의 입장에 선 것이다. '내가 죽으면 나는 가족과 친구에게 어떤 마지막 꿈을 만들어줄 것인가.' 소설 속 죽은 '나'도 결론을 내린다. 꿈에서나마, 마지막으로 그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고. 어쩌면 '나'보다 오래 머물며, 그들의 마음을 떠돌 꿈을 선물하겠다고.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언제나 많은 말들이 있잖아요. 때로 힘들게 떠난 분들에게는 추측과 비난이 있기도 하고요. 좋은 기억, 좋은 순간을 간직하게 해주고 싶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생각했어요. 꿈을 꾸는 사람의 마음과 그 꿈으로 가는 '나'의 마음. 안부를 건네고 떠날 수 있다면 마음이 있지 않을까요."

두 번의 심사에서 '제 꿈 꾸세요'가 극찬을 받은 건 죽음을 무겁게 다루지 않는 놀라운 상상력 덕분이었다.

읽어보면 도저히 망자의 죽음을 다룬 소설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랄하고 귀엽다.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감수성이다. 일종의 저승사자인 챔바는 눈길을 걸으며 "굴러가면 굴러갔지 난 더 못 걸어요"라고 투덜대고는, 이어 "오익오익, 잘 따라와요"라고 귀여운 잔소리를 해댄다. 청량한 외피를 입었지만 그렇다고 가볍기만 한 소설은 아니다.

"죽음은 무거운 주제, 다루기 힘든 일이잖아요. 챔바는 죽음 직후 혼란에 빠진 사람을 안내하는 캐릭터인데, 사실 그도 아픔이 있었어요. 아픔을 겪었던 사람이 아픔을 겪은 사람을 찾아와 엉뚱한 말로 분위기를 전환시켜주죠. 가상의 의성어 '챔바챔바'에서 가져온 이름이에요. 응원하는 느낌이지 않나요?(웃음)"

김멜라 소설의 특장점은 경계선에 선 인간이나 규범을 벗어나 있는 인간이 새로운 감성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첫 소설집에서 "얼어붙은 결정론적 세계를 깨뜨리는 방정식"(김건형 평론가)이란 평이 뒤따르기도 했다. 성(性), 장애, 생사의 경계선에 선 인간들, 나아가 기존 규범을 뒤집어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우리는 일상과 시선에 갇혀 살아요. 하지만 넓게 바라보거나 저 너머를 상상하면 숨 쉴 틈이 생겨요. 현실을 좀 더 받아들이는 건 나와 다른 존재를 허용하거나 이해하는 시선을 유지할 때가 아닌가 싶어져요. '제 꿈 꾸세요'도 삶과 죽음을 단절시키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김멜라 작가의 본명은 김은영이다. 이가 빠진 자국을 뜻하는 스페인어 'mella'와 동의어이지만 아직 이름의 정확한 뜻을 밝힌 적은 없다.

다만 비밀스러운 뜻이 담긴 저 필명처럼, 그는 소설 속 인물의 이름에도 깊은 의미를 부여해 왔다. 앙헬, 체, IS, 모모…. 그의 인물은 마치 현존하는 사람만 같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도 좋지만 특징이나 관계에서 오는 느낌이나 분위기, 이를 가까운 지인이 친근하게 부르는 별명 같은 게 있잖아요. 현실에서도 소설에서도 가장 많이 듣는 건 이름이에요. 이름에 특히 신경을 써요."

소설은 소설가가 내린 하나의 답이 아닌, 소설가 자신이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라고 믿으며 한 작품씩 남겨 김멜라는 여기까지 왔다. "의문을 제기할 때, 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나 상황을 볼 때 소설을 쓰고 싶어져요." 작가로서 느끼는 해방감이 김멜라가 글을 계속 쓰게 하는 동력이었다.


"소설을 쓴다는 건 거대한 세계에 작은 바늘구멍 하나를 내는 것만 같아요. 하지만 그 구멍을 통해 느끼는 자유와 숨 쉴 수 있는 기쁨이 계속 쓰게 만드는 힘인 것만 같습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김멜라 작가는 오래전 기억을 떠올린다. "봉평 이효석문학관에 답사를 와서 봉평 막걸리를 마시고 누웠던 적이 있어요(웃음). 친구들과 언덕에서 하늘을 보며 정말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었죠. 그분의 이름을 추념하는 문학상을 받은 게 제게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신은 우연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축복을 주지 않으신다'(최윤 소설가)는 말씀을 기억해요.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이 상에 제게, 또 제 개인의 기쁨을 넘어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늘 고민하며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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