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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불교 모두 고향 가는 여정"

doll eye 2022. 2. 16. 17:41

초기불교 전공한 박문성 신부

사제서품 후 인도철학 박사
명상가 틱낫한 스님 사상과
기독교 비교한 책 번역 출간

"위험 무릅쓴 관대함으로
이웃 종교에 다가가야
세상에 `내 것` `네 것` 말고
`우리 것` 알려주는 게 종교"

최근 틱낫한 스님과 가톨릭 신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을 비교한 책 '깨어있음-지금 이 순간에 대한 탐구'(브라이언 피어스 지음·불광출판사)가 출간돼 관심을 끌었다. 불교 전문 출판사에서 가톨릭 신부가 쓴 책이 출간된 것도 화제였지만 더 눈길을 끈 건 번역자였다.

역자인 박문성 마태오 신부(55)는 동국대 불교대학에서 인도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불교와 힌두 경전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 전문가였다. 그는 '관대함'이라는 단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이웃 종교를 만난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쓴 관대함'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오해와 배타적인 시선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틱낫한 스님은 스스럼없이 그리스도교 용어를 사용해 부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스님이 그리스도교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박 신부가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신학교 2학년 때 인도 사상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풀이한 '종교박람회'라는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관심을 갖게 되어서 그리스도교의 '지금'과 불교의 '찰나'라는 시간 개념을 비교하는 논문을 쓰게 됐죠. 그 과정에서 한국인들 종교 심성의 뿌리인 불교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 신부는 이미 석사 학위가 있었기 때문에 동국대 인도철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할 자격이 있었지만 학부 2학년으로 편입했을 정도로 기초부터 탄탄히 공부를 시작했다.

"이번 책을 번역하면서 '억지로 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저자 피어스 신부의 문장을 여러 번 떠올렸습니다. 따지고 보면 제가 초기불교를 공부한 것도, 이 책이 불교출판사에서 나온 것도 그 '놀라운 일' 중 하나입니다."

박 신부는 가톨릭과 불교가 수행에 있어 비슷한 점이 많다고 말한다.

"가톨릭 수도원과 불교 승단은 모두 공동체를 이루며 수행한다는 점과 가톨릭은 피정, 불교는 안거를 한다는 점에서 같아요. 또 두 종교는 모두 가난의 정신과 무소유, 수도 규칙과 계율, 고행과 탁발 등을 근간으로 수행합니다. 그 때문에 가톨릭 수도자가 사찰 체험을 할 때 위화감 같은 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물론 두 종교 간 근본적인 차이도 분명하다. 수행의 목적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가톨릭이나 불교 수행 모두 '고향으로 가는 여정'입니다. 하지만 틱낫한 스님이 말씀하셨듯이 불교도의 고향에는 부처님이, 그리스도교의 고향에는 예수님이 계시죠. 그리스도교는 구원을 받아 하느님을 만나 함께하는 것이고, 불교는 해탈하여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수행에서의 강조점도 좀 달라요. 불교는 개인 수행에서 출발해 이웃에게 자비를 베푼다면, 그리스도교는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해 내적 해방을 얻습니다."

박 신부는 고도화된 첨단 문명시대 종교의 역할은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현대 문명의 중심엔 컴퓨터가 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의 연산에는 0과 1만 있습니다. 컴퓨터의 연산과 달리 세상에는 0과 1 이외의 다른 것도 있음을 종교는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세상엔 내 것과 네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것'도 있음을 가르침이나 삶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 것'을 인정해야 관대함과 평정심이 생깁니다."


박 신부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과 불경 구절도 서로 닮았다. 박 신부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보살펴준다'(이사야서 43장)는 성경 구절과 부처님이 열반에 들면서 제자들에게 한 '스스로를 섬으로 해서 스스로를 의지처로 삼고 남에게 의지하지 말라. 법을 섬으로 해서 법을 의지처로 삼고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을 좋아한다.

"두 말씀 모두 주위에 휘둘리지 말고 두려움 없이 자기가 가야 할 여정을 계속하라는 의미입니다. 비록 지금 고통이 나를 짓누르고 있더라도 말입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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