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정민우2.

금융을 말한다-돈경제얘기.정민우

doll eye 2017. 10. 17. 17:58

直talk(78)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98)

直talk(74)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서문

<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를 시작하며

  • 입력 : 2017.09.07 17:09:02    수정 : 2017.09.07 17: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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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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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라는 사람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본부장이 롤모델로 생각한 몇 사람들 중에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 구글을 한번 찾아보면 알겠지만 어마어마한 분이다. 하지만 그런 천재성에 관심이 있지는 않다. 사실 이 사람의 인생(정말 스스로 빛나는 인생이다)을 담고 싶었다. 그중 가장 담고 싶었던 것은 생업을 가지면서도 지식추구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동인도 회사에서 서기로 입사해 35년간 근무한 사람이고 대학교육을 일체 받거나 가르친 경험도 없는 사람이다. 본부장이 좋아하는 작가 콜린 윌슨은 물론이고, 여러분이 중고등학교때 배운 공리주의의 창시자 벤담이나 진화론적 윤리학으로 유명한 헤르베르트 스펜서 같은 사람들이 모두 민간 사상가다. 고등교육이라고 하는 대학을 이용해 지식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실재적인 체험과 사색'을 통한 좀더 현실감 있는 이슈를 전달하는 것이 이들이 추구해온 지식 추구의 목적이었다. 더구나 스스로 생업이 있었기에 경제적인 궁핍의 걱정도 없이 매우 왕성하게 저술 및 세미나 활동을 했던 이들은 언제나 자신의 연구 활동이 이상론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또한 너무나 현실적 성공을 담론으로 담는 것도 자제했다. 아마 그들이 실제적 성공까지 거머쥐었다면 아마도 본부장이 할 일이 하나 없어졌을 테니 오히려 다행이다. 본부장은 여기에 성공 담론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전작<본부장이 말한다>, <본부장이 시대를 말한다>가 본부장의 실재적인 '조직 생활' 성공 체험과 그것에 대한 사색을 글로 옮긴 거라면 앞으로 써나갈 <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는 학창시절부터 금융권 밖에서만 막연하게 보아왔던 '돈'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을 실제 업무적으로 취급하고 또 개인적으로 벌어보고 또 굴려보면서 생각한 것들을 젊은 여러분들에게 전달해주자 한다. 금융은 바닷물과 같다. 망망대해의 엄청난 물 위에 있어도 내가 먹을 한 모금의 생수는 없는 것이다. 전 세계의 물은 먹을 물과 활용하는 물이 있듯이 돈도 내 것과 내가 활용할 돈이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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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으로서 우리가 왜 자유로워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省察)한 에세이, JS 밀의 '자유론'

금융 참 어렵다?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금융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사실 17년 동안의 본업이지만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업계의 내로라하는 고수들도 많고 돈 많이 번 사람들도 무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도 금융에 대해서 말하라면 말하기 힘들다고 할 것이다. 아니면 그게 비정상이다. 옥스퍼드 총장이 대학문턱도 안 간 존 스튜어트 밀 보다 '자유'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부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밀이 쓴 자유론(on Liberty)은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그리고 문학적 가치로 봐도 역사적인 석학들이 지금도 최고로 인정하는 걸작이다. 거기에 분량도 매우 적다. 하지만 밀이 이야기하는 '자유론'은 여지껏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은 독창적 에세이였다. 밀이 자유에 대해 독창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자유 무역의 반대인 '독점' 기업의 상징이었던 '동인도 회사'에서의 35년간의 근무가 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실제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동인도 회사의 독점적 지위를 주식회사의 폐해로 이야기하며 흥분하며 일갈한다. 밀이나 본부장같이 '준비된'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넌센스(non sense)- 넌센스는 금융권에서 본부장만큼 본 사람도 드물다-한 상황을 매일 체험함으로써 실제 중요한 커먼 센스(common sense)가 보인다.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또는 재경부, 한국은행에 계신 분들이나 하버드 대학 경영학과 박사님들을 금융의 전문가라고 일반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 훌륭한 분들이다. 하지만 본부장은 단순한 지위로 전문가의 순위를 매기고 싶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생애에 그 문제에 대해서 깊이 있는 체험과 사색을 반복하며 차곡차곡 축적하였다가 분별력이 최정점일 시기에 정리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느냐다. 하늘은 천재(天才)에게 육감(六感)을 주지만 범인(凡人)에게는 오감(五感)만 준다. 그러나 천재들은 여섯가지를 다 사용하지 않고 여섯번째만 사용한다. 범인은 다르다. 다섯가지를 다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오감을 모두 오래동안 적절히 사용하면 얼마든지 천재성에 버금가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무엇이든 대중에게 공감되어야 빛이 나고 그 공감은 흥미로 이어진다. 오히려 오랜 경험을 통한 체험과 사색의 재미를 천재들은 모른다. 본부장이 <본부장 시리즈>에서 늘 강조해온 인간의 유한함 즉 한계 상황이 대중들에게는 곧 흥미로움이다. 지금껏 본부장이 공감과 놀라움, 감탄, 감동을 이야기 했다면 <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에서는 이 '흥미로움'을 개인의 인생의 이슈별로 금융이라는 소재를 통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결국 금융이라는 것도 개인의 인생이 끝나면 함께 끝나는 매우 개인적인 담론이기 때문이다. <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는 실전 재테크를 말하는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실전 재테크를 이야기 해줄 차례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다만 돈에 대한 흥미로움을 먼저 느껴보고 갈급함을 이후에 가지는 게 올바른 순서다. 명심해라. 훌륭한 콘텐츠라는 것은 새로운 창조물이 아니라 올바른 순서로 되어있는 조합이라는 것을. 따라서 차후 그 갈급함을 해소시켜줄 <본부장이 여유를 말한다>를 반드시 저술할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75) 시즌 3 <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돈이란 무엇인가(1)
종이 돈이 주는 안락함 속에 잊혀져 가는 돈의 진짜 역할

  • 입력 : 2017.09.12 21:35:48    수정 : 2017.09.12 22: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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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돈이 주는 반듯함에 대한 동경이 자본주의를 지켜준 분별력의 원천이다

돈이 귀한 시절이 있었다. 모두가 돈을 보면 안 쓰고 모아두려고 했던 70~80년대 말이다. 돈이 참 귀하던 시대이다. 돈이 귀했던 이유는 생산수단과 생산물 모두가 귀했기 때문이다. 호모사피엔스가 지구를 독점하고 서로 공생하면서 화폐는 존재했다고 보면 된다. 서로 살기 위해 무엇인가를 주고 받았을 테니 말이다. 생활을 위해 말이다. 생활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개인이 하고 싶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생활도 없다. 군대 생활이라도 각자가 하는 개인적 자유가 존재하고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꺼리를 우리는 술 한 잔 하면서 듣고 싶어하는 것이다. 단체 생활도 단체에서 하는 개인 생활을 의미한다. 이러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항상 거래가 필요하다. 내가 무엇인가를 주어야 저쪽에서도 그것을 통해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간은 혼자 있을 때 생활의 즐거움도 반감된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자유는 늘어나지만 그 자유를 느끼고 싶어지는 욕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결국 단체나 사회 생활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자아를 더욱 발현시키고 싶어하게 되어있고 그런 자아의 발현을 위해 생활이 필요하며 그 생활을 위해 화폐가 필요하다. 생활이 풍요로워질수록 돈이 흔해진다. 돈은 지구상의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값어치로 표현해내는 수단이다. 50억년 전부터 만들어진 것을 발견하면 돈이 생기고 50만년 전부터 무엇이든 발명하면 돈이 생긴다.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에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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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되는 아메리카 신대륙의 발견

수많은 발견과 발명을 따라 돈은 만들어졌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16세기 대항해 시대가 만들어 놓은 세계질서의 현상이다. 어마어마한 발견이 있었다. 일단 코페르니쿠스가 태양계를 발견했다. 태양계도 잠재적인 가치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바스코다가마가 인도를 발견하면서 인류가 가지는 잠재적 가치는 빛의 속도로 증가했다. 발견하면 이동하게 되고 더 많은 생활이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이란 잠재 가치의 끝없는 발견을 말한다. 먼저 보는 자에게 기회가 있는 이유는 가치를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하는 말인 먼저 본 사람이 임자란 말은 맞는 말이다. 먼저 본 자는 가치를 본 자이고 그 가치를 보고 무엇인가와 바꿀 가치를 머리에 떠올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은 노력하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를 정확히 화폐적으로 정의해주는 말이다. 그저 먼저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과 바꿀 것인지 결정만 하면 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사는 생활 방식이다. 이것을 지구상에 제일 잘했다는 사람들이 유대인, 아라비아인, 인도인, 페르시아(이란)인 그리고 중국인이라고 하지 않은가. 중국인이 뭐든 다 먹는다는 것은 뭐든 가치 있게 본다는 말이다. 뭐든 가치 있게 보는 사람에게 돈은 그저 따라오게 되어 있다. 지구에서는 발견과 발명만 하면 부가가치가 생기니 말이다. 우주든 어디든 인간이 사는 그 어느 곳도 이 말은 정확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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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야무지게 쥐려고 하는 순간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의 스포츠, 야구

사실 발명(發明)과 발견(發見)도 한자로 보면 그 말이 그 말이다. 다 보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모든 욕망은 대부분 눈에서 나오고 권력욕은 귀에서, 애욕은 코에서 그리고 이들을 잠재울 분별력은 손에서 나온다. 그래서 눈이 좋으면 돈이 벌기기 쉬운 것이고 귀가 얇으면 재물을 포기하고 권력을 잡으러 돌아다니게 된다. 화려한 냄새에 쉽게 유혹당하는 사람은 언제나 구설에 놓이게 된다. 해결방법은 오로지 손에 있다.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불필요한 것을 잡지 않는 자는 언제나 기회가 오면 잡을 수 있다. 매사에 무엇이든 야물딱지게 잡는 버릇을 들이도록 하자. 인류 문명사를 유심히 보면 돈을 야무지게 잡을 수 있게 만든 시대나 문명이 발전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구 문명이 동양 문명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은 대항해 시대에 발견과 발명한 모든 것에 대한 가치를 매기고 일반적으로 통용될 화폐를 적극 제작한 것에서 기인할 수 있다. 중국도 16세기 정화가 이끄는 해양 탐험대를 보내 인도를 거쳐 아프리카까지 갔다 왔다. 유럽보다 늦은 발견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유럽 제국들처럼 발견물들을 표현할 단위가 매우 엉성했다. 대중들에게 무엇인가를 표현하려 할 때 가장 빨리 이해가 되는 것이 얼마 정도의 값어치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마르코 폴로가 전 유럽인들을 전율케 한 것은 <동방견문록>에 쓴 금은 보화에 대한 기록 때문이지 사회제도나 풍습 등의 기술이 아니었다. 재미있는 것은 <동방 견문록>은 대부분 중국의 이야기인데도 유럽인들은 오히려 인도를 주목한 이유도 인도를 묘사할 때는 길거리에 나뒹굴었다는 금은 화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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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국 파운드화의 인물은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으로 통일되어 있다. 상식으로 알아두길 바란다.

화폐란 내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은 욕망이다. 그 욕망을 야물딱지게 즉 분별력 있게 잡을 수 있게 만든 게 종이 화폐이다. 지폐는 17세기 영국과 스페인의 운명을 가르게 된다. 대항해시대의 초기 진입자인 스페인은 후발 주자 영국에게 패권을 빼앗기고 결국 나폴레옹의 프랑스에게 점령되어 유럽의 맹주자리를 완전히 내놓게 된다. 인류역사상 최대의 발견인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토르데시아스 조약으로 그것에 대한 독점권까지 얻었지만 말이다. 이유는 아메리카의 금과 은 자체를 국내로 바로 유통시키면서 자국 화폐경제의 건전한 성장을 오히려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돈이 라는 것이 교환이 가능한 상징물이 되었을 때는 그 값어치가 계속 탄력적으로 상승하지만 캐내야 할 가치자체가 되어버리는 순간 화폐는 탄력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조선 후기 전황이란 사회행태와 같다고 보면 된다. 돈을 손에 쥐고 통용시킬 상징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곶간에 가두고 모아놓을 가치 자체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금융업으로 밥 먹고 사는 나라가 영국과 네덜란드인데 그 역사의 기원이 바로 그들이 화폐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로 이러했기 때문이다. 화폐를 그러한 상징물로 완전히 한정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 지폐이다. 인간이 욕망에 대한 분별력을 지키게 만들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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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가치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황금. 분별력을 잃게 만드는 황금 빛

지폐가 주는 안락함은 사실 인간의 분별력에 대한 믿음이다. 반짝이는 귀금속을 바라보면 인간은 분별력을 잃게 마련이다. 지폐에 쓰여져 있거나 그려져 있는 것을 유심히 보면 어떠한 느낌이 드는가. 영화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처럼 몸 안 깊숙이 감추거나 거기에 정신과 몸이 황폐해진 골룸처럼 무안한 집착을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제시하게 만드는 시각 디자인이다. 종이 돈은 나의 신분을 증명해주는 증서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이 돈은 감추어지지 않고 오히려 돌아다니게 되고 종이 돈을 일찍 만든 나라들이 신대륙 발견의 선발주자들을 제치고 패권을 잡게 된다. 지폐가 금화나 은화를 대신하면서 인간이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욕망에 충실할 수 있는 진정한 자본주의 발전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지폐에 쓰여있는 것에 대한 대중들의 호감도가 약해지면서 지폐가 주는 안락함도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통화를 발행하는 정부의 신뢰가 예전과 달리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지폐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제 먼 옛날 손에 잡히지 않는 인물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5만원건을 신사임당으로 한 것은 이미 5만원권을 통화가 아닌 재물로 보겠다는 취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실제 대한민국에서 5만원권은 그런 용도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지 않은가. 마치 금화처럼 말이다. 그래서 색깔도 가장 인간의 분별력을 떨어뜨리는 황금색이다. 그냥 듣고 넘어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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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추구할 귀중함이 점점 없어져감을 말해주는 전자 화폐의 등장. 귀중함이 아니라 편리함의 시대

오늘날 지폐가 초창기 지폐와 다른 가중치가 느껴지는 이유는 결국 지폐를 만드는 사회 공동체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돈이 흔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돈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돈으로 살만한 귀중함이 없어진 것이다. 어린 시절 돼지 저금통 안의 동전이 간절했던 이유는 그것으로 우리가 귀중하게 여길 만한 것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통상 기축 통화라고 하는 달러화, 엔화, 유로화 그리고 예전의 마르크화는 그 통화를 발행하는 나라들이 제시하는 귀중함에 대한 동경과 믿음으로 그 위치를 차지했다. 돈은 그 자체의 가치가 없어야 그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하는 것이다. 돈이 가치를 매길 귀중한 생산물들이 계속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고 그 시스템을 관리하는 신뢰받을 정부와 공동체의 롤 모델이 없다면 돈의 역할은 우리의 분별력을 혼미하게 만든 존재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요즘 종이 돈에 대한 대체물로 비트 코인 등 전자 화폐의 통용이 계속 제기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살아온 사회가치의 귀중함이 이제 예전만 못하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근대 이후로 급속히 발전하여 20세기에 숙적 공산주의를 무너뜨리며 그 정점을 찍은 자본주의에 대한 좀 더 다른 시각을 요구하는 세계적 요구로 이어질 것이다. 


直talk(76)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돈이란 무엇인가(2)
종이 돈이 준 부자의 꿈

  • 입력 : 2017.09.20 21:14:38    수정 : 2017.09.20 21: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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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just money, it’s made up, pieces of paper with pictures on it so that we don’t have to kill each other just to get something to eat.” 영화 ‘마진콜’에서 제레미 아이언스 가라사대 '니들 지금 나 때문에 온전히 밥먹고 사는거야'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 날은 정치적으로 중부 유럽의 강자, 독일이 유럽의 수많은 방해꾼들을 넘어 통일이 되는 날이기도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냉전체제가 해체되어 자본주의의 승리를 선포한 날이다. 냉전의 문제는 19세기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봉쇄에서 20세기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산주의의 봉쇄로 이어지는 유럽 자본주의 시스템(사유 재산 제도)의 방어 문제였다. 프랑스 나폴레옹이 만약 황제를 지칭하지만 않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공주를 왕비로 얻지만 않았다면 러시아 제국은 민심의 이반으로 아마 나폴레옹에게 졌을 것이고 러시아 황제는 100년 먼저 민심의 심판을 받아 공산주의는 그 터전 자체를 잡지 못하고 냉전도 없었을 것이다. 냉전을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문제로만 보지만 매우 경제적인 문제이다. 물론 후에 방법론으로 가면서 전형적인 정치적 이슈로 변질되었지만.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이고 경제적인 문제라는 것은 '기득권의 문제'다. 정치는 힘이고 경제는 돈이라는 아마추어 같은 정의는 집어치우라는 말이다. 전쟁도 대부분 기득권의 문제이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본부장이 봤을 때 순수한 정치적 문제만으로 보이는 전쟁은 1차 세계대전과 같이 촘촘히 엮여진 국가간 동맹으로 유럽제국(諸國)이 자동 개입해 얼떨결에 시작되어 지금도 발발의 이유가 불가사의한 전쟁, 2차 세계대전과 같이 민족의 자존심을 걸고 상대방의 무조건적 파멸을 목표로 한 무제한 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과 같이 완전한 민족해방 전쟁, 마지막으로 테러리즘 전쟁이다. 모두 20세기에 벌어진 광적인 해프닝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전쟁들이다. 그 외에는 대부분 기득권에 대한 방어를 위한 전쟁이다. 기득권은 무조건 돈 문제다. 정치는 기득권을 가진 자나 기득권이 없는 자 모두가 가진 마지막 자존심을 이용하는 게임이다. 결국 인간이 인간을 죽고 죽이는 일은 돈이라는 것이 개입되면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본부장의 아버지는 경찰 출신이신데 어릴 적 뉴스를 보다가 살인사건이 나오면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살인 사건의 80%는 치정(배신당한 이성에 대한 복수) 사건이라고 말이다. 그 만큼 자존심이 밥 먹여 주지는 않지만 목숨을 좌지우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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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은 실제 금융 회사에서는 새삼스러워 일부러 하지도 않는다. ‘모두가 사기꾼이지만 한발 뒤쳐지면 정말 사기꾼 된다.’

자본주의라는 것은 말 자체에서 이미 돈을 전제로 만들어진 신념체계이다. 일반인이 언뜻 듣기에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매우 인간적이고 따듯한 캐치 프레이즈를 제시하는 것처럼 들린다. 모두가 다 공평하게 잘 살기 위해 공산(共産), 즉 생산 수단을 공평하게 나누자는 말이니 말이다. 그런데 칼로 정확하게 나눌 수 없으니 공유(共有)하자는 것이 공산주의다. 수렵시대에는 산과 들을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몸이 생산 수단이었기에 각자의 역량에 따라 생산물이 천차만별이었다. 농경시대에는 곡식이 자라는 땅이 생산 수단이었고 산업시대에는 기계가 생산수단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본이 생산수단이 되기 시작했다. 산업시대에는 노동자가 빚을 내서 사업을 하거나 집을 사지 않았다. 교육이 대중화되지 않아 미래에 대한 안정된 꿈을 꿀만한 직장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자본은 언제나 산업가의 선택을 기다리는 신세를 면하기 어려웠고 실제로 둘은 하나였다. 하지만 대중사회가 되면서 자본은 스스로 대중에게 직접서비스를 할 수 있을 만큼 대중의 기대 수준이 높아졌고 또한 스스로의 생산 능력도 갖추게 되었다. 지식시대가 되면서 생겨나기 시작한 전문직의 출현은 지식이 생산 수단이 됨을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지식시대는 자연히 디지털 시대를 촉발하기에 이른다. 정보의 활용만큼 중요해진 게 정보의 저장 능력이기 때문이다. 즉 지금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의 저장 능력이 생산 수단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 만큼 컴퓨터와 로봇 등의 첨단 기계화를 통한 제조업 혁명을 통해 제조 프로세스 비용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공정과정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갔던 산업시대와 달리 현재는 자본이 곧 산업이 될 수 있는 초간편 프로세스의 시대인 것이다. 하지만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다는 말은 돈이 가진 배타적 차별성 또한 없다는 말이다.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하찮은 돈의 양면성이 극명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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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란 사실이 아니라 그런 느낌이 중요한 사람들이 고르는 파란 알약. ‘富者感의 시대’

요즘 흔히 부자감(富者感)라고 하는 말이 있다. 지금 스스로가 차별화된 생산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는 말이다. 돈이 흔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돈의 힘은 작았으나 돈을 가진 자의 힘은 컸다. 반대로 돈이 흔한 지금의 시대에는 돈을 가진 자들이 워낙 많아 변별력이 없으나 돈 자체의 힘은 예전보다 더 크다. 부자라고 느끼게 되는 이유가 시대별로 다르다는 말이다. 산업 전반의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쏟아져 나오는 상품들의 제고비용을 줄이고 남아도는 돈을 더 많이 놀리기 위해 자본이 생각해낸 것은 제품을 살 수 있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이다. 차별화된 생산수단이 데이터의 저장 용량인 현재의 시대에서 돈의 단순한 보유는 스스로가 부자라는 생각을 들지 못하게 한다. 오히려 돈의 소비를 통한 유용한 데이터의 습득과 저장으로 스스로를 부자라고 인식하게 만든다. 결국 데이터 시대에서는 돈의 소비를 통한 포만감을 부자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대중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모 재벌 그룹 회장이 현재 건강이 안 좋아서 병원에 누워 아무런 소비를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지금 좀 더 아름다운 외부 데이터의 인식을 위해 100만원을 쓸 수 있는 자신이 더 부자라는 식의 발상이다. 요즘 틈만 나면 멀리 해외여행을 가려고 장사진을 이루는 공항 풍경을 보면 이들이 누리는 부자감(富者感)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좀 더 나은 외부 데이터 인식을 할 수 있는 상황을 계속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본인들의 오감에 너무나도 충실하고자 하는 시대.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식만이라도 럭셔리하게 살고자 스스로 온몸에 튜브를 꼽고 인공 부화기로 들러가는 것을 선택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이게 바로 지금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부자감(富者感)을 보여주는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돈의 무제한적인 공급으로 인해 누구나 거머쥘 수 있게 된 부자의 꿈인 것이다. 돈은 이제 그저 종이일 뿐이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하나뿐인 나의 인생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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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짜리 럭셔리한 생활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게 만들어준 현대 금융의 필살기 ‘평생같은 하루를 살아라’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급 저택이나 승용차를 모기지 또는 리스같이 미래의 돈을 당겨서 당당하게 구매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갚아야 할 고통보다 누리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다. 70~80년대에는 누구도 빚을 내서 생활한다는 식의 생각을 타부, 즉 금기로 생각했다. 빚을 갚는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의무인 시대였기 때문이다. 개인의 신용이라는 것이 스스로에게 매우 중요한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 개인들이 자신의 신용에 대해 걱정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추가 대출을 받지 못할 것에 대한 공포 말이다. 개인 파산이나 회생에 대해 이들이 예전보다 너그럽게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스스로의 과거보다 지금이 더 어려워 보이는 스스로를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 부모들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였던 것들을 지금의 시대는 힘들어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날이 바로 서두에서 말한 1989년11월 9일이다.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시작된 영혼 없는 자본의 독주 말이다. 지금껏 그나마 애써 분별력을 지켜가며 도덕성을 유지하려 해왔던 금융기관들이 이제 온갖 희한한 파생상품들을 쏟아내면서 그들이 그동안 자제해왔던 악마(?)의 필살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지금 당신들이 즐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임을 속삭이며 전화 한 통이면 돈다발이 떨어지는 광고처럼 말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의 일성은 사실 영화 제목처럼 이미 예전의 분별력을 잃은 금융회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비비안 리(스칼렛 오하라役)는 그들이 좋아하는 쪽과 완전히 반대의 뜻으로 한 얘기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直talk(77)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돈이란 무엇인가(3) 피라미드가 주는 힌트

  • 입력 : 2017.09.26 10:27:45    수정 : 2017.09.26 19: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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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좌)와 13개의 올리브와 화살을 쥐고 있는 독수리(우)는 각각 우주(神)의 섭리와 인간의 의지를 상징한다. 사진출처: Google



미국 달러화 뒷면에는 피라미드와 독수리, 1개의 화살과 올리브 잎 그리고 눈동자가 그려져 있다. 우여곡절 끝에 새로 만들어진 자본주의의 제국, 미국의 화폐이니만큼 디자인에도 꽤 신경을 썼을 것이고 그게 상징하는 의미도 각별했을 것이다. 눈동자는 그리스에서는 지혜를, 올리브는 평화, 화살은 힘 그리고 독수리는 그리스 로마는 물론이고 니체마저도 절대적인 존재로 상징한 동물이다. 모두가 그리스로마 문명의 뿌리를 둔 서구 유럽의 상징물들로 다분히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피라미드는 갑자기 무엇인가 말이다. 이집트 문명에서 그리스 로마가 영향을 주었을 수는 있어도 직접적인 영향은 없어 보인다. 그리스 로마 문명의 핵심은 상대적인 '균형감'이다. '균형'은 매우 불안한 상태로 보이지만 절묘한 조화 즉 부조화 속에서 조화를 이루려는 인간의 의지이다. 그리스나 로마는 강한 공동체적 정체성을 가졌지만 언제나 다양성을 추구했고 가장 많은 신을 모셨지만 가장 인간 지향적인 사회였다. 반면에 이집트 문명의 핵심은 절대적인 '안정감'이다. '안정'은 오히려 인간답지 못한 신의 영역이다. 열역학 제 2법칙 ‘엔트로피’의 관점에서 보면 안정된 상태는 소멸과 죽음 그리고 종말의 상태이다. 시작은 불안이고 끝이 안정인 것이다. 하지만 시작은 개연성이지만 끝은 확실성이다. 우주가 생겨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소멸할 가능성은 100%이기 때문이다. 즉 피라미드가 상징하는 것은 절대적인 우주적 이치에 대한 자발적 동의를 의미하고 이것은 신의 섭리에 아래에서만 무엇인가를 도전하겠다는 매우 종교적인 겸허함이다. 결국 그리스 로마는 인간사회가 가진 정치적 개연성을 이집트는 자본이 가진 숫자적인 힘의 절대성을 보여주는 문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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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집중이 가능했던 고대인들은 현대인보다 더 발달된 수학적인 사고력을 가졌을 것이다. ‘자본은 계산된 집중력의 산물이다’ 사진출처: Google



최대 5000년 전부터 만들어졌다고 추정하는 이집트 피라미드는 외계인의 작품이라고 할 만큼 거대한 위용과 더불어 추정되는 제작 과정의 난해함 때문에 미스터리 한 건축물의 대명사로 인식된다. 우리가 고고학을 통해 이러한 고대의 상징적 건축물이나 그림 등을 조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지금을 사는 우리가 과거에 살던 우리가 중요시 했던 것을 알아내 우리의 미래를 보기 위함이다. 우리의 부모라도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은 같은 시대를 살기 때문이다. 큰 모형은 동일한 작은 모형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는 폴란드 태생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Benoît B. Mandelbrot) 의 ‘프랙탈 이론’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오히려 가장 가까운 것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인류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오히려 지구에서가 아니라 저 멀리 보이는 달에 비친 지구의 그림자(월식)를 보고 나서이니 말이다. 수 천년 전에 만들어진 피라미드는 사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추정하기에 충분한 완성된 하나의 상징물이다. 실무자가 보기에 오늘날 은행, 증권, 보험회사가 지향하는 지고지순한 불변의 목적은 오로지 많은 돈을 유치하는 것이다. 무조건이다. 예전엔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 교육받은 몇몇 전문가만 알았지만 지금은 구글에도 자세히 나오는 것이 자산운용방법이고 시장에 전문가가 널렸다.(얼마 전에는 왠 대학생 둘이 찾아와 본부장에게 자금운용 오퍼를 던지더라) 간단히 말하면 돈의 규모가 커지면 그 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자연히 생기게 마련이다. 전문가란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의 피라미드를 보기 위해 이집트로 간 고대 그리스인들부터 오늘날의 수많은 관광객처럼 말이다. 당시 기술에서 피라미드를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은 그다지 신빙성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피라미드는 정교한 계산이 만들어낸 집중력의 결과이지 첨단 기술의 복합체가 아니다. 지금을 사는 현대인에게는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 일과를 한다는 것이 혐오스러운 고역일지도 모르지만 고대인에게 그것은 매우 겸허한 의식처럼 고되지만 하기 싫은 일은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한 가지 일만 하게 되면 머리 속에 남는 것은 정교한 계산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논리적 사고력이 지금을 사는 현대인보다 100배는 높을 것이라는 것에 본부장은 추호의 의심이 안 생긴다. 우리가 쓰는 피타고라스 정리는 천재성의 산물이 아니라 오랜 집중력의 결과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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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만큼 자본의 습성을 잘 설명해주는 모형도 없다. ‘돈은 불안정을 증오한다’ 사진출처: Google



피라미드의 기반을 구성하는 각 벽돌의 계산된 모양과 배치는 오늘날 금융사가 모집하는 금융상품과 매우 흡사하다. 모든 금융상품은 대부분 구좌라는 단위가 있다. 상품들이 가지런하고 반듯한 단위로 배치되어야 쌓아 올리기 쉽고 또 많이 쌓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적으로 매우 정교해야 더 커질 수 있는 것이고 커져야 더 많은 돌(돈)이 모여든다. 처음이 어렵지 이미 커진 다음에는 알아서 굴러가는 것이 금융회사의 경영이다. 그래서 대형 금융사 일수록 이익을 얼마나 내느냐의 문제지 이익을 못 내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물론 글로벌 기준으로 봤을 때 대한민국 금융회사는 어처구니 없는 이익률을 보이고 있지만) 왜냐하면 피라미드는 하나만 쌓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매우 크고 웅장한 피라미드가 만들어지면 그 소문을 듣고 돌들이 계속 그 주변으로 운반된다. 처음에는 아니지만 시간이 갈수록 대부분 자발적으로 돌들이 모인다. 피라미드에 들어가는 모든 돌들에는 돌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진다. 계좌 주인과 접수자의 이름들이다. 실제 피라미드가 완성되면 피라미드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는 유무형의 혜택들이 약속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지켜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먼저 들어온 돌은 나중에 들어오는 돌을 전제로 존재의 의미가 결정된다. 계속적인 돌이 들어온다는 가정하에 일정 규모이상의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설계자들의 치밀한 계산과 실무자들의 지속적 실행이 이루어진다. 피라미드라는 것은 크기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금융사의 기본 형태이다. 모든 숫자는 0을 사이에 두고 대칭을 이루고 있다. 즉 끝없이 움직이며 체감하거나 체증하려 하는 것이 숫자의 본성이며 이러한 숫자들을 우리가 사는 3차원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모양인 삼각형으로 시각화 시켜 놓은 것이 피라미드이다. '0'의 오른쪽으로 오로지 체증만 하는 구조. 기획자 즉 금융회사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이익이 담보되는 모형이다. 설계도만 만들어 놓고 돌에 이름만 적어 주면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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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도 예전에 안정된 피라미드 구조였는데 요즘은 좀 불안하다. ‘내일의 돈으로 오늘의 피라미드를 쌓고 있다’ 사진출처: Google



흩어지지 않고 가장 많이 쌓아 올릴 수 있는 모형은 우리가 중력의 영향을 받고 사는 3차원 세상에서는 피라미드밖에 없다. 숫자는 체증 또는 체감하지만 자본은 오로지 체증한다. 이유는 피라미드 구조이기 때문이다. 규모가 커질수록 가능성도 커지고 또한 안정성도 커지는 자본의 속성과 너무도 닮아 있다. 인간이 돈에 대해 안락함을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불안정이나 부조화를 지향하지만 돈은 언제나 안정과 조화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자본은 만들어지면 끝없이 안정을 찾아 떠난다. 자본에게서 안정이란 커지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금융사에 돈을 넣어두고 돈이 늘어나지 않는 것을 부자연스러워하는 것은 그래서 상식적이다. 늘어난 돈을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보고 싶어 하는 인간이란 존재(물론 21세기는 반대로, 보고 싶어하지 않고 쓰고 싶어하지만)로서 돈은 늘어나야 하는 것이다. 모두가 바라는 일은 언제나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있는 금융사의 돈은 밀려들어오는 돌들처럼 늘어만 갔고 이젠 완성된 위용으로 더 많은 돌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더구나 미래의 돌들까지 예약해 놓은 상태이니 말이다. 지금 돌이 없는 자들에게 피라미드 밑단에 이름을 미리 써주는 대신 나중에 돌을 2개 가져오게 약속한 상태. 앞으로 가져올 돌들을 담보로 수 천 개의 피라미드 건설이 예정되어 있는 상태이고 설계자들은 신이 나서 있지도 않은 돌을 가지고 만들 새롭고 거대한 피라미드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을 생각에 잠을 설쳐가며 설계를 한다. 이게 바로 모든 금융사의 기본 공식이라고 보면 된다. 이해해라. 학자는 어렵게 설명해야 밥을 먹고 살겠지만 현장 총책임자의 눈에는 그저 너무나도 간단해 보이니 말이다. 명심하자. 돈은 내가 불리지 않으면 나를 떠나 자신을 불려줄 자를 찾아 나서는 극도의 보수주의자다. 물론 리스크 없이 말이다. 넌센스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래서 리스크는 리버럴한(?) 고객이 지고 보수적인 우리의 금융회사는 완벽한 수익을 얻는다. 너무 열 받지 마라. 다 수업시간에 배우지 않았는가? 리스크를 버리라고 말이다. 많은 돈을 쥐고 교과서적으로만 살면 천문학적 이익은 못 내는 게 병신인 곳이 금융권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금융권이 한심한 거다. 이건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 하겠다. 점점 더 흥미로운 금융 현장의 세계로 함께 들어 갈 테니 말이다.


돈이란 무엇인가(4) 돈의 맛은 도시의 맛

  • 입력 : 2017.10.12 17:33:08    수정 : 2017.10.12 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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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 동맹으로 냉전 종식을 이끌며 신자유주의의 토양을 제공한 미국과 영국의 두 정상 <마가렛 대처(좌)와 로널드 레이건(우)> <사진출처: 구글>



냉전해체 이전만해도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앞서 말한 대로 냉전은 경제 논리로 시작했지만 진행되면서 철저한 정치논리 즉 자존심 문제로 변질됐다. 따라서 20세기만큼 경제적인 풍요와 정치적인 이데올로기 문제가 병립한 시대도 없다. 그 병립이 깨진 것이 1989년 냉전의 해체이다. 우리가 지금 너무나 당연시 여기는 돈에 대한 느낌은 20세기로 넘어오기 전의 세상에는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지금 같으면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은 절대 콜럼버스의 황당무계한 말만 믿고 천문학적인 돈을 쥐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대의 상식(가능성이 90%가 안 되는 일에는 돈을 쓰지 않는다)에 맞는 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돈 냄새 잘 맞기로 유명한 네덜란드인들이 선수를 빼앗겼을까. 하지만 20세기 후반으로 넘어오면서 돈은 언제든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태세를 갖추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얼굴을 비추려 하지 않기 시작했다. 언제나 손쉬운 곳에만 손짓을 한다. 무엇이든 너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문제이다. 20세기 이전 인간에게는 뭐든 쉽게 손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무엇이든 공을 들여서 집중해야 본인이 생각하는 것의 결과물을 손에 쥘 수가 있었다. 그래서 지식시대이전인 산업시대까지도 공정과정이 긴 것에 대한 일종의 경외심이 생겼다. 공정이 길 수록 사업의 안정성이 높아지고 우수한 제품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많아진다고 말이다. 아마 이 부분이 오늘날의 M세대와 그들의 부모세대가 갈등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부모세대는 M세대보다 훨씬 본능에 집착했지만 본능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았다. 반면 M세대는 명분에 굉장한 집착을 하지만 행동방식은 매우 본능적이다. 여기서 본능적이라는 말은 '쉽게'란 뜻이다. 너무 쉬운 방식을 마치 죄를 짓는 기분으로 여겼던 것이 1989년 이전의 세계였다. 신자유주의는 뭐든 쉽게 하는 시대다. 그걸 쉽게 해준 것이 바로 장벽의 해체 이후 급속히 이루어진 글로벌화다. 글로벌화는 다시 도시화, 디지털화, 서비스화로 이어진다. 이중 나머지 둘을 촉발시킨 것이 바로 도시화다. 도시화가 만든 것이 바로 돈인 것이다. 욕망의 집합체인 도시가 만들어 낸 가장 쉬운 욕망의 실현 수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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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빠지면 빈지갑이 아니고서는 헤어나올 수 없다는 명품도시 프랑스 <파리> <사진출처: 구글>



요즘 나오는 헐리우드 영화 중 도시이야기가 아닌 것을 본 지가 까마득하다. 주말이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산과 들을 향해 떠나도 입고 있는 옷이나 자동차는 죄다 도시인임을 자랑하는 명품 브랜드일색이다. 해외 여행을 가도 도시를 걷고 싶어서 가는 것이지 초원을 벗삼고 싶어 가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왜 이토록 도시에 열광하는 것일까. 20세기까지는 인간들이 넘쳐나는 도시를 떠나 전원 생활을 하는 것이 모든 성공한 이의 로망이었다. 나이 들어 성공하면 부부가 으레 전원주택을 짓고 꽃을 함께 가꾸는 생활 말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전원 주택 짓는 순간 홀아비가 된다고 한다. 부인들이 안 따라오니 말이다. 도시가 주는 '쉬움' 즉 돈의 맛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도시를 가야 적든 많든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쉽게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인들은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소비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도 오직 돈으로 하는 소비 말이다. 물물 교환 시절에는 인간이 모두 평등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생산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의 시대가 되면서 스스로 뭘 생산할 줄 아는지 완전히 망각한 채 오로지 뭘 소비할 지에만 골몰한다. 이 참에 여러분들도 내가 생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게 가장 확실한 노후준비다. 아마 생각 자체로도 어리둥절 할 것이다. 한번도 그러한 고민을 해보지 않았기 떄문이다. 라면을 잘 끓일 수는 있지만 라면을 만들 줄은 모른다. 사실 매우 간단한데도 말이다. 생산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유는 생산과 곧바로 돈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는 곧바로 돈이 떠오른다. 서두에서 말한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이 콜럼버스에게 쥐어준 돈은 생산을 위한 투자였다. 발견이라는 일종의 창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소비를 위한 단순 욕망의 분출이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지금의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 것이다. 1969년에 한 달착륙을 지금도 안 하는 이유는 음모론이 아니라 그것이 이제 더 이상 전 세계인들을 자극하는 소비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엘빈 토플러가 만들어낸 신조어 '프리슈머' 즉 생산자가 곧 소비자라는 말은 이제 틀린 말이다. 이제는 99%의 소비자와 1%의 생산자인 것이다. 저성장을 주도하는 생산 없는 소비의 전성시대다. 갈수록 생산할 줄 모르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오로지 소비하고자 한다. 구글이 연결시키면 우리는 아무 할 일이 없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할 일을 제쳐두고 오로지 소비만을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전화 한 통이면 천장에서 돈이 떨어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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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대출은 성장을 담보로 한 대출이었지만 현대의 대출은 그저 현상유지를 위한 것이다. <사진출처: 구글>



금융권에 오래있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다. 눈앞에 돈이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돈을 불리는 것이 재테크라고 말이다. 전문가로서 말해주겠다. 아니다. 자신이 번 돈을 안 빼앗기고 지키는 것이 재테크다. 그 만큼 불리기가 어렵다. 돈은 돈이 많아야 불릴 수 있다. 이런 이치를 20대에 깨치면 부자가 된다. 30대에 깨치면 중산층이다. 40에 깨치면 그냥 운동 열심히 해라. 몸이라도 건강해야 현상유지라도 할 테니 말이다. 1억의 10%는 천만원이지만 10억의10%는 1억이다. 그래서 먼저 많이 벌어야 한다. 남의 돈 가지고 돈을 불리는 것이 사업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절대 귀담아 들어서는 안 된다. 왜 남의 돈으로 사업을 해서는 안 되는 지 간단한 예로 말해주겠다. 보험사의 경우 약관 대출이라는 것이 있다. 보유 계약의 적립금을 담보로 최대 50%정도까지 대출을 해주는 것이다. 돈을 담보로 돈을 대출하는 것이다. 이런 대출 상품들은 당장 급히 돈이 아쉬워 목적성 금융상품(보험, 적금, 주택 청약저축 등)을 해지하지 못하도록 상품의 적립금을 담보해 대출을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적립금을 인출해서 대출금을 상환할 수 없도록 장치를 해두었다. 적립금도 인출하지 못하게 하고 대출도 최대한 갚지 못하도록 하는 일석이조의 수단인 것이다. 돈 빌려준 금융사는 돈을 되도록 천천히 갚고 이자를 최대한 오래 내기를 바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다. 남의 돈으로 사업을 하는 동안 대출금이 점점 불어서 나중에는 겉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가는 대부분의 경우들이 그래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업은 자기 돈으로 해야 한다. 돈도 돈이지만 사업 전 워밍업도 할 겸 말이다.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 말하건대 약관대출 받아 완전 상환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금융권이 대출 상품에 목을 매고 저축은행이 온갖 불법을 동원하고 얼마 전 난리 난 것처럼 정치인들의 뒷돈까지 대주며 시장에 진입하려고 기를 쓰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대출원금은 절대 갚지 못한다. 따라서 이자는 꼬박꼬박 들어오게 되어있다. 한달 월급의 절반을 대출금과 원금을 갚는데 쓰는데도 소비는 줄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시화의 덕을 금융권이 가장 톡톡하게 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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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하고 있는 인간의 욕망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 <배트맨> <사진출처: 구글>



뉴욕이 세계 금융의 중심지가 된 것은 가장 표준화된 도시화가 이루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도시화라는 것은 욕망의 표준화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이 표준화되지 않아 보일 때 불안해 하고 반대로 일반적으로 남들도 다 하는 정형화된 것이라고 말해질 때 안심한다. 도시화는 그래서 인간에게 안락을 주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욕망 표출을 최대한 정당화시켜주는 표준화된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함께 하는 나쁜 짓은 덜 나빠 보이니 말이다. 도시에서는 하루를 평생처럼 살고 전원에서는 평생을 하루처럼 산다고 한다. 아기자기한 맛이 끝도 없다. 그래서 도시 생활을 청산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어딜 가도 이처럼 쉽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전세계인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가서 두 번 놀란다고 한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나라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보수적인 생활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일반 미국인들의 생활을 보고 한번 놀라고 그런 타 지역 미국인들이 뉴욕이라는 곳을 보고 놀라며 관광하는 모습에 한번 더 놀라는 것이다. 우리가 영화 등 미디어로 아는 미국은 뉴욕이고 전체 미국인의 삶과는 완전히 다르다. 실제로 뉴욕을 제외한 미국에서는 신용카드도 잘 쓰지 않고 대부분 현금을 많이 사용하며 해만 떨어지면 모두 집에 들어가 잘 준비를 한다. 도시화가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이제는 영국인이 아니라 '런더너'이고 미국인이 아니라 '뉴요커'인 것이다. 도시화가 진전되었다는 것은 그 도시의 시민들이 돈의 맛을 알고 돈 쓸 마음의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소득이 높아서가 아니라 도시가 편리한 소비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경기에도 잘되는 산업이 있다. 소위 '월간 산업'과 '잔돈 산업'이다. 매달 자기도 모르게 돈이 꼬박꼬박 빠져나가도록 만들어 놓은 이동통신사 같은 회사들과 푼돈으로 기본적 욕구를 풀어주는 편의점 체인 같은 회사들이다. 모두 도시 생활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인 '손쉬움'을 파는 회사들이다. 손이 쉬워지는 맛이 바로 돈의 맛인 것이다.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79)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돈이란 무엇인가(5)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보는 눈

  • 입력 : 2017.10.23 10:26:34    수정 : 2017.10.23 21: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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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은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것 (사진출처:구글)



'Priceless'라는 단어가 있다. 예전 영어 시험에 많이 나오던 단어다. 보기에서 very cheap를 고르면 오답이다. very expensive가 아마 정답이었을 것이다. 값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하다는 말인데 매우 재미있는 단어이다. 실제로 요즘은 ‘매우 웃기다’라는 말로도 쓰인다. 오죽하면 그렇겠는가. 시대를 넘어오면서 인간에게 이 priceless한 대상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다. 토마스 칼라일은 인간은 세가지를 가장 동경하는데 이 세가지가 바로 'beauty', 'power', 'wisdom'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중 아름다움을 최종적으로 동경하고 이를 위해 힘과 지혜를 추구한다고 했다. 이것이 본래 인간이 가지는 근원적 욕망의 실체인 것이다.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바로 고귀함의 추구이다. 고귀한 존재가 되기 위해 권력과 지혜를 원하는 것이니 말이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석권한 가장 큰 의미가 바로 이 고귀한 존재라는 것에 대한 독점과 세습의 부정이었다. 톨스토이의 명작 ‘전쟁과 평화’에서 서자출신 귀족가문의 상속자인 피에르가 재력가이면서도 나폴레옹을 숭배한 이유가 바로 이점이다. 기존 질서의 '귀함'에 대한 세습의 부정 말이다. 물론 극에서는 나중에 전쟁의 참상을 알고 나폴레옹을 부정하지만 말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들의 집착은 그래서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인류가 오랫동안 가져온 최고의 집착이니 말이다. 프랑스 파리가 대혁명을 겪고 수많은 왕과 귀족들의 목을 자르고 시민의 도시가 된지 300년이 넘은 오늘날 전세계적인 명품의 도시가 된 것은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서민들의 욕망도 결국 고귀함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이 고귀함을 얻고 싶은 욕망을 가로막는 모든 체제나 종교 이데올로기는 멸망했다. 유럽 귀족 질서의 몰락처럼 로마 카톨릭의 멸망은 종교 조직 내에서 신분제를 만들었기 때문이고 공산주의의 몰락은 노동계급 내에서 신분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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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이후 유럽의 '게임의 룰'의 변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 바로 '포커'게임 (사진출처:구글)



귀해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으로 전 세계는 지금 명품 러시다. 특히 신흥개발국에서 그 기세가 엄청나다. '이제 나도'라는 생각에 지금 중국에서는 그야말로 난리다. 처음에는 일본에서 시작해서 대만, 홍콩, 싱가포르 그리고 한국을 거쳐 중국까지 온 것이다. 곧 있으면 동남아시아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 특히 머리에 히잡을 쓰고 다니는 국가에서는 그것이 공식적으로 벗겨지는 시절이 호경기의 시대일 것이다. 사우디나 이란 등이 그 좋은 대상이 될 것이다. 유가가 더 폭락하거나 대체에너지 시장이 열리면 아마 곧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이 세가지를 갖기 위해 돈을 가지려 했던 것이 16세기 대항해 시대의 시작이다. 여기에 기름을 뿌린 것이 로마 카톨릭이 그 권위를 잃은 것이다. 헨리키신저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질서의 시작이 30년 전쟁의 끝인 '베스트팔렌 조약'이라고 한 것은 정확한 말이다. 종교가 군림해온 구질서의 몰락을 가져왔으니 말이다. 스페인이 대항해 시대의 ‘퍼스트 무버’였음에도 그 주도권을 유지하지 못한 이유도 구질서편에 섰기 때문이다. 지는 해를 바라보다면 결국 혼자 외로운 밤을 맞이하는 법이다. 이 시기 유럽의 '게임의 룰'의 변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 바로 '포커'게임이다. 가장 높은 게 왕이고 그 다음이 하트(성직자)와 스페이드(기사), 다이어몬드(상인), 마지막이 클로버(농민)다. 시대의 축소판이다. 이것마저 무너트린 것이 나폴레옹이다. 물론 본인이 황제를 지칭하기 전까지 말이다. 우리가 '포커'나 카지노에 미치는 이유는 또 다른 차원의 '귀함'에 대한 동경이다. 가장 높은 패를 쥐고 돈을 따 결국 상대의 돈을 다 탕진 시키고 마지막으로 푸르게 빛나는 블루칩을 눈앞에 전리품으로 펼쳐두고 그 아름다움을 즐기며 마지막까지 음미하는 게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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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이 생기면서 단순히 그전에 없었던 시장이 열린 것이 아니라 기존 방식의 커뮤니케이션 시장이 죽는 것이다. (사진출처: 구글)



인간 욕망의 모든 상징이 여기 다 들어있다. 아름다움, 권력, 지혜의 향연이다. 그래서 도박에 미친 사람을 구제하기가 힘든 것이다. 아무리 예쁜 여자도 도박에 빠져 해쓱해진 남자를 유혹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이미 더 귀한 아름다움을 보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을 방송에서 보다가 어쩌다 실제로 보면 하나같이 초췌하다. 한때 방송을 주름잡던 어느 유명 방송인도 정치인으로 수년을 보내고 나면 얼굴이 빛을 잃는다. 오로지 본인만 그것을 보지 못한다. 이미 그 세계의 아름다움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빼앗긴 것이다. 도박이나 정치뿐만이 아니다. 돈에 사로잡힌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식과 예술을 일견 존경받을 유일한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승부사적 기질이 필요 없는 분야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건 현장형 인재의 길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승부사적 기질이 바로 사업가적 기질이니 돈을 벌려면 반드시 이것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어본 사람으로서 말해주는 것이지만 돈은 아름다움도 지혜도 권력도 가져다 주지만 그 자체를 벌려면 오로지 승부사적인 기질이 있어야 한다. 머리가 나쁘거나 못생겨서 또는 몸이 불구라서 돈을 못 버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벌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를 이기고 빼앗아 오겠다는 마음 말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은 이해하나 세상에 그런 시장은 없다. 새로운 시장이 생겨도 기존 시장은 피해를 입는 것이다. 페이스북이 생기면서 그저 없었던 시장이 열린 것이 아니라 기존 방식의 커뮤니케이션 시장이 죽는 것이다. 따라서 승부사적 기질이란 내가 이 포커판에서 게임체인저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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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나지 않는다면 인간이 가장 마지막에 소비를 줄이는 것이 옷이다 (사진출처:구글)



계속적인 불경기에 사람들이 집을 줄여나가고 있다. 아마 먹는 것도 줄여나갈 것이다. 가장 마지막에 줄이는 것이 옷이다. 옷은 인간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귀함을 선사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귀함에 대한 가장 공평한 공유가 허락된 것이 옷이다. 의복에 대한 집착은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가장 눈에 띄는 것이다. 물론 진짜 부자는 최고급 음식에 초고층 펜트하우스에서 살고 옷은 청바지를 입고 다니지만 어디까지나 상류층 이야기이다. 경제는 상류층이 대변하지만 돌리는 것은 대중이 돌리는 것이다. 상류층도 대중들의 취향을 주시하며 돈을 벌고 또 그 취향을 선도해나간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귀함에 대한 추구이니 말이다. 이미 귀함을 가진 자는 대중들의 귀함에 대한 욕구를 알지 못한다. 자기보다 더 귀한 사람만 쳐다보기 때문이다. 인간이 중력이 작용하는 3차원에 사는 이상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니체의 초인도 결국 중력을 극복하는 자를 초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여기서 중력이란 사회 도덕을 의미하고 결국 도덕이란 ‘귀함’의 기준이다. 천체물리학이나 고고학, 생물학 등 18세기 유럽의 지식인들이 그토록 전세계, 심지어 우주를 찾아 헤맨 것은 사실 우리 인간이 왜 귀한지에 대한 증거를 찾기 위함이었다.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은 인간의 ‘귀함’에 대한 자랑질인 셈이다. 그리고 그 귀한 인간 중에 가장 귀한 자들의 나라임을 뽐내는 것이다. 까르띠에 광고에 항상 루브르가 빠지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까르띠에나 뤼이비통이 전달하려는 메세지는 결국 돈으로 살수 없는 것을 사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돈으로 셀 수 없는 가치를 돈으로 살 수 있게 했으니 원가에 비해 엄청난 돈을 요구하는 것이고 그래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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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는 그날까지 귀하고 싶어하고 그것이 힘들면 사후라도 귀해지고 싶어한다 (사진출처:구글)



이것은 비단 명품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주위를 돌아보면 널려있는 것이 이러한 ‘귀함’마케팅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야 기꺼이 돈이라도 내놓게 만드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손쉬움’을 주는 마케팅도 사실 귀함이라는 것을 실현시켜주는 것이다. 귀한 자만이 원래 손쉬움이 허락된 유일한 존재이니 말이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공평하게 살면 좋겠다고 해서 만든 공산주의가 실패한 것도 사실 모두가 평등해지길 모두가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결국 시샘의 이데올로기였다. 내가 귀하게 되지 못할 바에야 끌어내리겠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나폴레옹이 제국만 만들지 않았어도 공산주의가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에서 정권까지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누구도 완전 평등을 원치 않으니 말이다. 성공이란 것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나의 성공을 바라게 만들면 된다. 모두가 평등해지길 원했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 그래서 본부장이 10명중 8명의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1명의 사람이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죽는 그날까지 귀하고 싶어하고 그것이 힘들면 사후라도 귀해지고 싶어한다.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모두가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이 구절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이 지구상에서 흥행한 이유는 모두가 천국 또는 극락에 가지 못하며 죽은 자들 중에도 서열이 매겨져 나중에 응당 대접을 차별적으로 받기 때문이다. 누구나 도덕률을 극복하면 초인이 된다는 니체가 관심은 끌지만 대중적인 인기가 없던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니체의 생각은 10명중 1명이 가지는 생각이다. 남의 귀함과 나의 평범함을 인정하지 못하면 영원히 돈 벌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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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하게 비관하지도 낙관하지도 않는 균형잡힌 눈을 가져라 (사진출처:구글)



돈은 가장 안정된 사고방식의 사람을 지향한다. 안정된 사고란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것이다. 과도하게 비관하지도 낙관하지도 않는 균형 잡힌 상태 말이다. 그러한 상태로 세상을 바로 보면 ‘귀함’이 보인다. 그리고 그 눈을 가지고 승부사적 기질로 행동하는 자에게 돈이 따라 붙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없는 곳이 바로 금융권이다. 그래서 본부장이 늘 답답해하는 것이다. 그저 동네 전당포 주인의 눈과 철밥통, 공무원의 행동력을 가진 자들로 가득 차있는 곳이라고 누가 생각이라도 했겠는가. 대한민국 금융 이대로가면 그야말로 끝이다. 핀테크고 스마트 금융이고 먼저 ‘귀함’을 보는 눈을 가진 ‘실전형’ 금융인부터 양성해야 한다. 이 부분은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하자. 여러분들이 알고 싶은 돈의 본질은 사실 보잘 것 없다. 대수로울게 없다는 것이다. 돈은 피 같은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피의 성분이 아니라 피가 어떻게 돌고 어디로 가는 지이다. 서점에 가서 아무 재테크 책을 펼쳐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있다. 현금의 흐름이다. 돈이 나에게로 흐르게 하는 물꼬를 트란 얘기다. 지갑안에 있는 현금은 따지고 보면 죽은 돈이다. 지갑을 나와 흐르는 돈이 살아있는 돈인 것이다. 흐른다는 것은 지향점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함’이라는 지향점을 찾아 말이다. 하지만 실제 대부분 ‘귀함’이 돈으로 거래됨은 물론이다. 이런 이치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현장의 본부장이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바로 실체적 흐름이다. 왜 돈이 들어오는 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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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누가 안정감을 잃고 있고 누가 귀함을 통해 새로운 안정감을 찾는지를 똑똑히 보아야 한다. 게임은 언제나 체인지 되고 있다. (사진출처:구글)



1990년말 외국계 금융사들이 물밀듯이 들어와 엄청난 성장세를 이루었던 것은 사실 그동안 대형 국내 금융사가 가진 안정된 이미지가 심하게 손상되면서 그들이 가진 귀한(?) 다국적 글로벌 회사 이미지에 안정감을 입혀 마케팅을 한 것이 주요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껍데기뿐인데 말이다. 론스타 사태가 그 증거 아닌가. 사무실에 전화 한 통 갖다 놓고 여직원 한 명에 무슨 외국사의 연락소라고 사기치던 검은 머리 외국인 사장의 모습이 역력하다. 웃음만 나올 뿐이다. 하지만 하나 배워야 할 게 있다. 시장에서 누가 안정감을 잃고 있고 누가 귀함을 통해 새로운 안정감을 찾는지를 똑똑히 보아야 한다. 게임은 언제나 체인지 되고 있다. 그것이 체이지 될 때마다 돈은 우리를 배신한다. 그래서 부지런해야 한다. 귀찮니스트에게 미래는 없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살아갈 미래시대는 돈의 배신이 더 잦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따지고 보면 얼마 안 된다. 로마가 만들어질 때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인류는 아름다움의 기준, 즉 귀함의 기준을 완전히 세웠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모두가 그것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형국이다. 바뀐 것은 없다. 다만 그때 그때마다 게임의 룰만 바뀌는 것 일뿐. 여러분들이 굳이 게임체인저가 될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물론 본부장은 그 길을 가고 있지만 현장에서 보면 게임체인저의 삶은 그저 고달프니 말이다. 다만 무엇이 귀하고 왜 귀한지에 대해 개념을 가질 수 있는 또렷한 정신을 언제나 유지해 주길 바라는 바이다. 그것만 가지고 있어도 평생 돈 걱정 없이 산다.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80)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재테크란 무엇인가(1) 재테크의 허상(虛像)

  • 입력 : 2017.10.30 17:00:44    수정 : 2017.10.30 20: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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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사용하면서부터 논리적 사고를 하고 싶어하는 것은 매우 인간적인 행동이 되었다 사진출처: Google



SF영화를 보다 보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는 말로 날아가는 총알을 맞춘다는 표현을 종종 쓴다. 그런데 그런 표현을 쓴 다음에는 항상 결말은 그 일을 완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 이 표현을 쓰기로 작정한 것 자체가 결과를 예측하게 만든다. 이미 결과를 만들어 놓고 시작했다는 말이다. 결과를 만들어 놓은 상태는 상식적 사고가 필요 없는 상태이다. 오로지 만들어 놓은 프로세스대로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영화 감독같이 전체 프로세스를 다 알고 있는 상태 말이다. 여러분이 이런 상태에 놓인 자라면 굳이 물밑의 이해관계를 보기 위한 훈련을 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본부장이 말한다’와 ‘본부장이 시대를 말한다’에서 상식적 사고란 것은 귀납적 추론이 그 기본에 있다는 말을 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Inductive reasoning'말이다. 그렇다고 데카르트의 연역적 추론 즉 'Deductve reasoning'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둘 다 논리적 사고(logical thinking)라는 영역 안에 있는 합리적 판단을 위한 진실(사실이 아니라 진실)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귀납적 추론의 핵심은 포괄적 '경험'에 있고 연역적 추론의 핵심은 집중적 '의심'에 있다. 사실 둘이 합쳐져야 완벽한 완성품이 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완벽함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작 뉴튼이 프린키피아에서 첫 번째로 이야기한대로, 움직이는 모든 물체는 관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연역적 추론을 하다가 귀납적 추론을 하는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유는 인간은 결과지향적인 것 같지만 매우 방법지향적이다. '나만의 성공 방식'이라는 것이 명확하길 바라고 그 방식이 아닌 것으로 성공하는 것을 거부한다. 일관성이 밥 먹여 주냐고 하지만 다들 그 일관성에 매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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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는 最善이 아니라 次善을 선택하는 '보편타당'한 프로세스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그 프로세스 중 하나인 <다수결의 원칙> 사진출처: Google



귀납적 추론이란 '나만의 방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본부장이 말한다’에서는 '평범한'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언제나 보편 타당한 일반론을 따라가는 것이니 말이다. 역사상으로 보면 그리스 로마 문명의 전통이 바로 이러한 일반론을 따르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 옳다라고 여겼다. 이게 민주주의의 지고지순의 원리인 다수결의 원칙을 만들어 냈다. 이때 이 다수결의 위험성을 경고하다가 죽는 사람이 소크라테스다. 플라톤도 이러한 대중편향적인 정치가 사회에 주는 해약을 경고하고 절대적으로 중립적인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철인(천재 또는 현명한 소수)이 정치를 독점하는 '철인 정치'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 독재라고 하여 가장 금기시 되는 발상이다. 결국 대중은 가장 올바른 방법이냐를 따지고, 철인 또는 천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냐를 따지기 때문이다. 본부장이 여러분에게 이전의 저서에서 귀납적 추론을 강조한 이유는 이 방법이 '합의 즉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추론 방식이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미 과정에서 승리한 추론방식이다. 반면 연역적 추론은 '논란 즉 의심'을 불러 일으키는 추론 방식이기에 이미 시작부터 패배한 추론 방식이다. 인간이 혼자 산다면 무조건 연역적 추론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공감이 불필요한 최선책을 찾아 나서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부장은 지난 17년간 공적 영역에서는 귀납적인 사고를, 사적 영역에서는 연역적인 사고를 연습하고 살았다. 이유는 그것이 사회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인간에게 허락된 가장 균형감각에 맞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착이 되면 사회적 인간이라는 호모 사피엔스는 매우 이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사실 ‘본부장 시리즈’의 집필 의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극히 사적 영역인 재테크 분야에서는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본부장이 그토록 강조해온 균형감각이라는 것을 살짝 내려놓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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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셔티브를 잡는다는 것은 자기만의 논리라는 내부 에너지가 충만해야만 가능하다 사진출처: Google



재테크라는 것을 하나의 기술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뭐 대단한 필살기말이다. 학창시절에는 금융권에 들어가면 돈을 버는 기술을 쉽게 배울 수 있을 것같이 보인다. 은행, 증권, 보험 그리고 그 밖의 제2, 3금융권에 있으면 손쉽게 돈이 돌아다니는 원리를 알게 될테니 말이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면 전국의 부동산 정보를 금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알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까지는 맞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본인만의 판단 영역에 맡겨진다. 이유는 성공확률이 반반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반이라는 것은 매우 개념적인 표현이다. 사실 10분의 1정도이다. 이 세상의 성공확률은 뭐든 10분의 1에 가깝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개념이 좀 틀리다. 생각하는 10명 중 행동하는 한 명이 성공한다는 말이다. 재테크에서 성공하는 개인 고객들의 행태를 오랫동안 관찰해온 본부장이 말해주겠다. 조직에서의 리더의 결단은 귀납적 사고를 통한 공감의 결단을 해야 하고 개인의 정치적, 경제적 결단은 언제나 연역적 사고를 통한 희소성의 결단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 결국 조직은 남과 같이 가는 길로, 개인은 남이 가지 않는 길로 가는 것이다. 경험상으로 보면 재테크 성공의 길은 언제나 후자이다. 재테크라는 것이 가지는 대중적 허상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남들이 하니 나도 빨리 해야지가 아니라 나들이 하던지 말던지 해야 하는 것이다. 재테크를 하는 마음가짐은 언제나 자기본위를 유지해야 한다. 금융권에 근무하다 보면 가장 멍청한 사람이 조직관리는 자기 본위대로하고 재테크는 남의 본위로 한다. 필패의 생활 방식이다. 재테크라는 것은 그래서 연역적 사고로 해야 한다. 포괄적 경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관된 논리로 하는 것이다. 마치 앞서 말한 SF영화의 감독처럼 그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결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지금의 고통을 참을 수 있다. 남이 하니까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하지 말던지 하는 것이 성공하는 재테크의 마인드다. 사업도 개인 사업이라면 이 방법을 써야 한다. 주도권 즉 이니셔티브라는 것은 먼저 생각한 사람이 아니라 먼저 결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가지는 것이고 이게 재테크의 유일한 성공 필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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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된 논리의 소유자였지만 일반적 논리는 갖지 못해 많은 비판도 받았던 잡스의<일관성> 사진출처: Google



한때 장기투자라는 말이 마치 불변의 성공 방식처럼 불려졌었다. 오래 묻어 놓으라는 말일 것이다. 앞서 말했던 대로 20세기는 격동의 시대였다. 어느 시대나 격동의 시대가 아니었던 때는 없지만 20세기만큼 인류가 많이 돌아다녀야 한 시대도 없다. 전쟁으로 가지고 있던 땅이나 재산이 하루 아침에 남의 것이 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던 사람들은 언제나 지닐 수 있는 재산을 선호했다. 무엇인가를 묻어 놓는다는 것을 금기시 했던 사람들 중에 반대로 그것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돈을 벌었던 것이 그 계기가 되어 생긴 말이다. 일부러 묻어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본인만의 개똥철학에 따라 '일관된 논리'로 묻어둔 사람들이 대부분이더라. 지금의 '일반적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결과를 예측한 '일관된 논리'말이다. 앞에서 얘기 했듯이 둘은 하나의 싸이클이지만 함께 얼굴을 맞이 할 수는 없는 관계이다. 장기투자의 법칙은 당시만해도 일반적 법칙이 아니었던 것이다. 돈이 돈을 번다는 지금 유행하는 말이 30년 전만해도 말도 안되는 말이었다. 80년대에는 돈을 쥐고 있는 사람은 바보였고 기업이든 개인이든 최고의 사업 실력을 돈을 융통해올 수 있는 능력으로 봤다. 즉 대출능력 말이다. 당시 이자가 10%이상이었던 이유는 그 이자를 주고도 돈이 간절히 필요한 사람이 많았단 말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뉴스를 장식했던 기사가 대부분 무슨 무슨 불법대출이었다. 엘리트 같은 사람들이 양복입고 수갑차고 사진 찍힌 제목이 대부분 이 죄목이었다. 본부장도 어릴 적에는 도대체 불법대출이 뭐길래 저렇게들 하는지 몰랐다. 나중에 금융권에 있으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불법대출이란 금융사가 고객 돈을 특정인에게 그냥 주는 것이었다. 대부분 회수가 안되기 때문이다. 배임이고 횡령이요 파렴치한 범죄였다. 길거리 할머니가 김밥 팔아 맡긴 돈을 누군가에게 뇌물을 받고 그냥 주고 모르는 척하는 행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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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업은 가장 도덕적인 직업적 사명(使命)의식과 스스로 빛나는 인격(人格)을 요구하는 최고급 서비스업이다 사진출처: Google



도덕적인 금융인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살인보다 나쁜 짓이다. 살인은 우발적일 때도 있지만 이건 무조건 알고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에 범죄 금액이 50억 이상이면 5년 이상의 징역을 주게 되어있는데 아마 이 법으로 그렇게 오래 살고 나온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모 재벌 그룹 오너들이 고객이 투자한 회사 돈 수 천억 원을 해외에 빼돌리고도 하루도 징역살이 없이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돈에 관련된 범죄에 관대한 나라인지 알 수 있다. 금융 후진국인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예전 어린 시절 80년대였을 것이다. 과외 몰래 하다 걸려 수갑차고 포승 줄에 묶여가는 안경 쓴 서울대 누나가 TV에 나오는 것을 봤던 기억이 난다. 불쌍한 누나다. 당시에 본부장이 살던 강남에서 자기가 배우던 학교 선생님들에게 과외를 받지 않고 서울대를 가는 애는 왕따였다. 머리가 좋아 혼자 공부를 잘해도 욕 먹는 게 대한민국이다. 나쁜 짓도 함께하면 괜찮은 나라이기에 금융 범죄만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례가 또 있을까. 몇 단계만 거치면 돈 안받은 사람이 없고 결국 서민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입고 금융감독원 앞에서 거품물고 기절하는 것이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 하루에 몇 번이나 돈을 쓰라고 전화가 온다. 돈을 빌리기 싫다고 해도 이렇게들 돈 쓰라고 난리다. 돈 가지고 하고 싶은 것이 그만큼 없다는 말이다. 돈이 무슨 못생긴 무수리도 아니고 하루라도 데리고 있거나 보고 싶어하지 않는 시대다. 금융사는 못빌려줘 난리고 개인은 더 못 빌려써서 난리고 기업은 돈을 국내외로 꽁꽁 숨겨둔다고 난리다. 이런 시대의 재테크 방식은 오로지 자신만의 방식이 최고다. 남이 하던 거 하다가는 남 좋은 일만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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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하고 허황된 망상을 버리고 명확한 자신만의 방향성을 가져야만 재테크에 성공할 수 있다 사진출처: Google



부동산 투자로 돈 버신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대부분 갈비집 같은 음식점으로 시작한 분들이다. 돈이 귀한 시기에 뼈빠지게 돈을 벌어 투자처를 부동산으로 결정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손에 아무 것도 쥐지 않고 투자만으로 돈을 버는 것으로 착각들을 한다. 투자라는 것은 빌린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선택한 투자에 실패해도 지금 당장 수입이 있어 정상적인 생활을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딘가에 투자를 하려면 사생결단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투자한 것만큼만은 망해도 좋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재테크라는 것은 마음을 내려놓은 사람이 성공하는 법이다. 강남재건축 아파트로 돈을 벌고자 한다면 벌레 나오는 거지같은 아파트에서 살면서 주차난으로 시달려도 괴로워하지 않을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한마디로 무엇이든 몸이 고달플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보듯이 알마니 양복입고 외제차 타고 하얀 서류에 싸인하고 다니면서 재테크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한마디로 허상에서 깨어라. 자기만의 일관된 논리를 실천하는 길은 이처럼 여유로운 마음가짐과 고단한 행동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에 꼭 필요한 것이니 말이다. TV에서 나오는 재테크의 여왕들은 실제 고행의 여왕들이지 진짜 우아한 여왕은 아니다. 본부장은 그 길이 꼭 부러운 길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옆에서 보면 돈 벌자고 젊은 시절 다 보내고 나이 들어서 쥐고 있는 돈 때문에 자식들에게나 형제들에게 눈총 받고 살고 있는 모습에 사뭇 처연마저 느끼기까지 한다. 아무리 부모나 형제라도 가진 돈이 없었으면 기대도 하지 않을 텐데 재산이 있는 게 눈에 보이니 뭐든 서운한 것이다. 그들의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서 그다지 여유로운 자태는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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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쓸 돈이 많은 것도 축복이지만 집중할 것이 있는 생활도 나쁘지 않은 노후이다.<老年의 앙리 마티스> 사진출처: Google



진정한 노후준비는 쓸 돈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할 줄 아는 것을 준비하는 것이다. 금융권이 돈을 모으기 위해 노후 준비에 대한 허상을 너무 지나치게 미화시켜놓았다. 마치 손 하나 까닥 안하고 무슨 19세기 귀족처럼 사는 것을 당연한 노후의 모습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살려면 얼마를 다달이 준비하라는 식으로 끌어 모은 돈이 어마어마하다. 어차피 돈 가진 사람들의 세대를 굽어보면 오늘날 386세대들이니 마케팅전략 한번 정말 잘 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노후에 그렇게 아무 짓도 안하고 골프만 치고 아이들과 우아한 저녁식사만 하다가는 몇 달도 못 가서 지루해서 힘들 것이다. 물론 돈이 많은 것은 노후의 축복이지만 없다고 우울해 할 필요는 없다. 진짜 축복은 건강한 몸으로 할 줄 아는 것을 하며 죽는 그날까지 호기심을 가지는 삶이니 말이다. 나이 들어도 귀납적 추론과 연역적 추론을 할 수 있는 할아버지보다 멋진 노인은 없을 것이다. 돈이 있고 없다는 것이 궁극적인 인생의 성공을 결정한다는 단순논리에 매몰되어 깊이 없는 이해타산적 사고와 편협한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노인만은 되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자신에게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지구 반대편의 국제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노인이 진정한 노후준비가 된 것이다. 재테크의 진정한 목적은 20대는 40대처럼 살고 40대 이후부터는 20대처럼 영원히 사는 것이다. 이게 목적이 아니고 오로지 돈이 목적인 재테크라면 계획이 아니라 마음가짐부터 다시 짜야 한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 유명한 로버트 기요사키(본부장이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처럼 임대 건축물을 수천 채 가지고 대한민국의 모 선박 왕처럼 배를 수 백 척 가지고 있는 것같이 오로지 돈만을 목적으로 수천억씩 모으는 것도 사업가적인 기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걸고 인생이란 도박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승부사적 삶을 즐기며 말이다. 여유라는 단어는 평생 생각하지도 말고 말이다. 물론 본부장은 이러한 집중적인 삶도 좋다고 본다. 다만 매우 리스크를 사랑해야 할 것이다. 아주 많이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삶이 전체 인생으로 봤을 때는 재테크의 허상에 빠진 삶보다는 훨씬 덜 리스크함을 말해두고 싶다. 후회는 없을 테니 말이다.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81)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재테크란 무엇인가(2) 돈 불릴 생각 말고 모아라

  • 입력 : 2017.11.06 16:19:11    수정 : 2017.11.06 21: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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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도 일반룰의 기반 위에 생각해야 길이 보인다 ‘나침반 바늘의 방향은 언제나 북쪽이어야 한다’ (사진 출처: 구글)



영국의 아이작 뉴턴이 우리가 사는 3차원의 세계를 수학적 공식으로 조목 조목 설명하며, 자연계가 운행하는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프린키피아 또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제시하고 나서 얼마 안되어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아지에는 ‘질량보전의 법칙’을 세상에 소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일의 물리학자 클라우지우스가 '엔트로피'로 유명한 ‘열역학 제 2법칙’을 내놓는다. 이때부터 오늘날 우리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기본 논리인 '세상에 새로운 것이 없다'라는 것이 정설이 되었다. 세상에 새로운 것이 없고 오로지 삶의 절대적인 기준만이 존재하게 되며 심지어는 모든 에너지는 결국 완전 소멸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심리적으로 인간은 서로를 협력자 보다는 경쟁자로 보기 시작하며 끊임없는 소유를 위한 전쟁으로 돌입한다. 이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나오면서 잠시나마 절대적인 기준에 대한 오류의 가능성과 제3의 방법에 대한 장밋빛 기대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사실 아인슈타인의 공적을 흔히들 원자폭탄의 기본 이념을 제공한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맨해튼 계획’을 이끈 오펜하이머나 그 밖의 실제 완성품을 만든 독일 과학자들이 들으면 매우 서운할 얘기다. 원자폭탄과 아인슈타인은 사실 큰 관련이 없다.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새로운 개념은 과학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철학에 가깝다. ‘상대성 이론’은 결국 뉴튼의 ‘프린키피아’처럼 세상의 이치를 규명하는 과학적 기준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동양 철학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사물을 보는 관점이라는 개념을 과학에 접목시킨 시도라고 보면 옳다. 사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이 이론적으로 완성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여기에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 결국 관찰자가 누구냐에 따라 같은 세상도 달리 보이고 심지어는 보이는 것 자체도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 이 두 이론의 핵심이다. 지금 들으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혼란스러움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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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가 있는 쪽으로 흐르는 에너지를 느낄 줄 알면 돈이 보일 것이다. ‘무엇인가를 움직일 에너지 가격이 돈이다’ (사진 출처: 구글)





돈의 세계도 이렇듯 절대적인 기준과 상대적 관점이 존재한다. 돈에 있어서 절대적 기준은 대부분 물리학의 일반 법칙과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고 보면 맞다. 돈에도 관성의 법칙과 가속도의 법칙 그리고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다 들어맞는다. 돈은 우리가 사는 3차원의 생태계에 적응해서 만들어진 가치체계이기 때문이다. 결국 많은 돈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거나 돈이나 에너지는 모두 가장 안정된 상태를 지향한다는 면에서 같다. 에너지는 언제나 양에서 음으로 흘러 결국 완전 소멸을 목표로 달린다. 지구상의 모든 에너지가 소멸하면 지구의 가치는 제로가 되고 돈은 무의미한 존재가 된다. 결국 돈이라는 것은 에너지를 표시하는 단위인 것이다. 우리가 땅을 사서 투자를 하는 이유는 땅이 에너지를 내는 것이 아니라 땅을 통해야만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산업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가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을 에너지라고 하고 그것만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겼다'<死孔明走生仲達>라는 삼국지의 고사는 죽은 공명은 개인의 생체에너지를 다했지만 죽은 공명을 통해 누군가를 움직이게 한 에너지가 생겼기에 역사가 이루어진 것에서 생겨난 것이다. 지금도 그 고사를 인용해서 글을 쓰고 있으니 이 또한 에너지를 발생시킨 것이다. 물론 이 발생된 에너지는 창조된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원래 있던 것을 사용한 것이고 이제 써버린 에너지는 음의 에너지가 되어 다시는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인류는 부단히 발견하고 발명해야 지금의 돈의 양을 유지할 수가 있다. 인구가 줄어들고 산업이 축소되면 돈이 표시해야 할 대상도 그 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결국 세상에는 돈이 표시해야 할 것들이 이미 정해져 있다. 다만 발견되지 않고 묻혀있을 뿐이다. 결국 묻혀있는 것을 파내야 돈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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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걸 보지 말고 보이는 것을 보라. ‘서커스는 서커스일 뿐’ (사진 출처: 구글)





여기서 인식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돈만이 내 돈인지 앞으로 들어올 돈도 내 돈인지 말이다. 물론 여기서 들어올 돈은 내가 3차원에서 존재하고 또 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될 때만 가능할 것이다. 자 본부장이 말한 이야기를 잘 알아들었다면 이제부터 돈을 누가 주는 것 또는 알아서 자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돈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냥 종이일 뿐이다. 주변에 흐르는 가치(value)라는 것을 향해 움직이는 에너지(energy)를 표시하는 종이 말이다. 따라서 돈은 절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금융권에서 여러분들을 향해 유혹하는 고수익 상품이라는 것은 사실 그들이 만들어낸 고도로 계산된 이벤트이다. 인위적으로 흥미를 유발시켜 흥미있는 이벤트라고 포장하는 서커스 같은 것이다. 실제 들어가서 보면 대부분 실망이다. 결국 관중들은 사람구경만 실컫하고 나온다. 뭘 본지도 기억도 안 난다. 금융권 자체는 절대 돈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앞에서 말한 서커스와 같은 것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돈을 번 이유는 그들이 주목한 산업들이 성장하고 그러한 산업들이 가치를 쏟아내면서 돈의 양도 많아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주목할만한 산업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어제까지 창출은 가치는 이미 소멸한 가치이고 에너지다. 이미 음의 영역으로 넘어갔다는 말이다. 에너지를 기울일만한 가치들이 계속적으로 창출되지 않으면 돈은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가만히 있으면 돈은 줄어들 뿐이다. 자 여기서 여러분이 금융상품을 통해 투자를 해서 돈을 불리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하나는 명심해야 한다. 모든 투자는 8대 2의 법칙으로 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이 비율이 무엇인가. 상식적 사고의 비율 즉 일반룰 또는 자연룰의 비율이다. 여기는 8은 원금만 보존하겠다는 것이고 2는 리스크를 지더라도 수익을 내겠다는 의지이다. 돈은 언제나 안정성을 따른다고 했다. 결국 20%는 잃을 수도 있고 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하지만 80%는 무조건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서커스는 서커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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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는 축구가 아니라 야구처럼 확률을 인정해야 승리한다. ‘자본주의의 스포츠, 야구’ (사진 출처: 구글)





재테크라는 것은 사실 자기가 돈을 불리겠다는 것에 목적을 두면 필패이고 돈을 모으겠다는 생각을 하면 승리한다. 돈을 모은다는 것은 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돈을 번다는 것을 월급을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월급도 많이 받으면 좋겠지만 돈이 어떻게 생성되는 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월급도 많이 받는 거다. 뜬금없는 일만 하니 월급도 안 오르고 급기야는 그 알량한 직장마저 잃어버리는 것이다. 사업을 하던, 월급쟁이를 하던지 간에 돈이 될만한 것을 해야 한다. 돈이 될 만한 것은 당연히 에너지를 쏟을 만한 가치가 있는 모든 일이다. 도처에 널려있는 것이 이런 일이다.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잘 못 보는 이유는 매사에 유심히 보는 것을 잘 못하기 때문이다. 돈을 모으는데 8을 두고 불리는 데에 2를 투입한다는 자세를 가지고 밸런스를 맞추어야 한다. 재테크란 것은 가는 길이지 목적물이 아니다. 스포츠로 이야기하면 시간이 정해져 있는 축구가 아니라 확률이 정해져 있는 야구와 비슷하다. 야구는 아무리 잘 하는 팀도 최약체와 만나서 3번중 1번은 지는 확률 스포츠다. 아무리 잘 치는 타자도 3번중에 1번밖에 안타를 못 친다. 자연룰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불린다는 생각은 야구로 보면 3할에서 4할을 치겠다는 생각과 같다. 말이 쉽지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걸 잘해야 승자가 되는 것은 맞다. 승자가 되려면 강자가 되어야 한다. 인생의 팁을 하나 주마. 인생에서 절대 역전승을 염두에 두고 승부를 하지 마라. 역전승은 한번이면 족하다. 압승을 거둘 수 있는 강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강자는 하루 만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제의 강자는 오늘도 강자일 가능성이 여전히 높은 것이다. 천재지변이 없다면 말이다. 명심하자. 재테크라는 것은 돈을 불리는 것이 아니라 모으는 것이다. 재테크를 일회적인 승부로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지구라는 곳에서 정해진 기본적 자연법칙 위에서 우리 각자가 겪어내야 할 통과의례적 과정이고 습관이란 말이다. 진정한 승부사는 그래서 단판승부에 연연하지 않는다. 최종적인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미리 보고 실천하는 사람인 것이다.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82)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재테크란 무엇인가(3) 금융상품의 매매 타이밍은 하늘도 모른다

  • 입력 : 2017.11.14 10:32:20    수정 : 2017.11.14 20: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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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선택은 스스로 하라. 그리하면 언젠가는 길이 보인다(사진 출처:구글)>



금융업계는 물론 부동산업계에서도 늘 말하는 것이 매매 타이밍이다. 언제 사고 파느냐는 것이다. 투자의 기본이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고대부터 내려오는 불변의 진리다. 불변의 진리라는 것들을 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보통 일반적으로 실천이 어렵다는 것이다. 투자의 귀재들이 보통 하는 말들이 가치투자를 해서 오래 동안 묻어두라고 한다. 그리고 주식을 계속 사기만 하고 팔지는 말라는 말도 한다. 다 맞는 말이었다. 워런 버핏의 스승이었던 가치투자{균형 잡힌 상태에서 사실(Fact)이 아닌 진실(Truth)을 보고 결정한 선(善)한 투자를 말한다}의 대가 벤자민 그레이엄을 아는지 모르겠다. 벤자민 그레이엄의 '善'한 가치 투자 비법은 구글에서 찾아보면 바로 나오니 참고하기 바란다. 증권업계에서는 '요다'같은 사람(본부장이 보기에는 다스베이더지만)이라고 한다. 워런 버핏이 루크 스카이워커인지는 모르겠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5’에서 루크 스카이워커를 데리고 요다가 수련에 들어갈 때 했던 말이 있다. '이 아이는 안되겠어. 참을성이 없는 아이야'라고 말이다. 승부사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야기 한 것이다. 요다가 가르치려는 것은 어떤 무술도 지식도 아니다. 항상 강조하는 것은 똑같다. 화를 내지 말 것, 주변을 살피는 눈을 가질 것, 그리고 자신감을 잃지 말 것이다. 가장 어려운 말이다. 본부장이 늘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실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로 유명한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가 UC 버클리에서 학생을 들을 가르치며 한 말이다. 현재 초강대국 미국을 있게 만든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중 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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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발 주자에게 허락된 유일한 기회는 혼란이 올 때이다. 물론 그것도 준비된 자에 한해서지만 (사진 출처:구글)>



오늘날 미국의 세계경제적 위치는 벤자민 그레이엄이나 로버트 프로스트 같은 '요다 세대'가 지향했던 이른바 '균형잡인 자아'를 아마도 그 다음 세대였던 조지 루카스나 워런 버핏 세대가 루크 스카이워커처럼 세대를 넘어 철저히 따른 결과이다. 16세기 대항해 시대부터 21세기 초까지 유지된 질서를 선도한 진리(균형 잡힌 인격)말이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로 보던 스타워즈에서 기억나는 사람은 오로지 다스베이더이다. 그 외에 등장인물들이 하는 말들은 하나도 기억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도 몰랐다. 포스의 균형이니 어둠의 힘 등등 모두 어려운 말들이었다. 나이가 40대가 되어서야 그 말뜻이 무엇인지 알겠더라. 특히 돈을 만지는 금융권에서는 더 실감나는 이야기다. 금융권만큼 악당들이 많은 곳도 없다. 금융인이나 투자자 모두 말이다. 포스의 균형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곳이다. 카오스(Chaos) 즉 혼란만이 존재한다. 스타워즈에 설정된 환경보다 더 한심하다. 나쁜 놈은 욕을 먹지만 이 더러운 환경을 묵묵히 살아낸다. 선한 놈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선한 척 하는 놈이 문제다. 어디나 이런 부류가 가장 문제다. 삼국지에서 실용적인 조조는 대의명분을 중히 여기는 유비를 보고 위선적인 사람이라고 욕한다. 어둠의 제국의 로드 베이더가 된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제다이 마스터 오비완과의 결전에 앞서 제다이를 위선적인 악이라고 한다. 모두 같은 이유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선함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다. 여기서 선(善)이란 구성원 모두가 좋은 상태 즉 공공선(公共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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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결단은 조금 다르다. 마치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이 틀린 것처럼(사진 출처:구글)>



결국 이 세상이 균형 잡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인 것이다. 여기 나쁜 놈에는 본부장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고 당당히 말한다. 스스로에게 나쁜 놈의 피가 흐르는 것 같으면 무조건 금융권으로 오기 바란다. 무조건 대접받는다. 하지만 명심해라. 나쁜 놈이 나쁜 게 아니라 무능한 놈이 나쁘다. 무능하면 주변 동료와 고객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신이 몸담은 회사를 엿 먹이게 된다. 그럼 어떤 사람이 무능한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쁜 결단마저도 내리지 않는 선한 척하는 사람 말이다. 여러분들이 착각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차분하게 행동하라는 것은 편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편안(便安)하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역량이 뒤떨어져가고 있다는 말이며 더불어 조직의 역량도 마찬가지다. 편안이 아니라 평안(平安)하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결단도 마찬가지다. 편안한 결단은 있을 수 없다. 편안한 자는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 우리가 관료주의나 행정편의를 욕하는 이유는 누군가 편안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만큼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명심하라. 절대로 자신을 편안하게 나두지 마라. 돈이 원하는 안정된 상태란 인간자체 또는 조직 안에서 긴장감이 감도는 균형감이 유지되는 상태이다. 가장 돈이 서식하기 좋아하는 상태이다. 돈은 당장이라도 에너지가 튀어 나올 상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에너지 충만 상태가 유지된 기업이 되어야 비로소 기업윤리가 자랄 수 있고 그래야 금융회사가 그 기업에 가치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본부장이 왜 그토록 실전형 인재를 외쳤는줄 아는가. 실전형 인재로 구성된 기업이라야 제대로 된 가치투자가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고 이것이 바로 균형 잡힌 자본주의 환경을 만드는 금융인, 나아가 기업인의 숭고한 의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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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작은 것이 큰 것을 이기는 시대(사진 출처:구글)>



하지만 바로 숭고한 의무가 저버려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20세기 내내 승승장구하며 21세기로 넘어오면서도 15년 넘게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던 이러한 가치투자의 귀재들이 이제 줄줄이 물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 생태계의 질서가 바뀌고 있다는 말이다. 10년 전부터 대체투자란 말이 크게 유행해왔다. 한마디로 주식은 이제 끝났다는 말이다. 주식이 끝났다는 말은 규모의 경제가 끝났다는 말과 동일하다. 여러분들이 대장주라고 좋아하는 거대 기업의 주식들이 인기가 많은 이유는 변동성을 타지 않기 때문이다. 몸집이 워낙 크니 웬만한 경제적 환경의 변화에도 잘 견디고 또 자체 자금도 풍부해서 자사주가를 스스로 방어할 여력마저 있다. 결국 손해 볼 염려 없이 들고만 있으면 이익을 보니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런데 이런 황금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이유는 몸집이 큰 놈들만 너무나 많다. 거대 공룡이 한 두 마리가 있을 때는 생태계 안이 자율적으로 크기 별로 번성하며 적절히 먹이사슬의 위계질서도 잡히고 거대공룡끼리도 자체적으로 성장할 공간이 아직 남아 있어 어느 정도 내일이 예측되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마가 망한 이유는 어린 아이 같은 탐욕과 나태함이라고 에드워드 기번은 말했지만)에서인지 거대 공룡만 들끓는 환경이 되다 보니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에너지가 대부분 방어적으로 사용된다. 지금의 기업 환경이 딱 이 모습이다.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쌓아놓지만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다. 안심하고 투자할 대상을 찾지 못하고 당장의 먹거리만 찾아 다닌다. 결국 그 큰 몸집을 지탱할 근육은 없어지고 살만 찌다가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결과를 맞이한다. 조직이라는 것도 생명체와 같아서 한번 편하자고 들면 다시 긴장할 수 없다. 다시 긴장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린다. 그게 공룡 멸종의 이유다. 무슨 혜성이 떨어졌다는 말은 다 헛소리라고 생각하자. 오히려 혜성이 떨어졌다면 몇몇 살아남은 공룡은 더 강하게 진화되어 번식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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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투자는 이제 기업이라는 조직자체의 대내외적인 비효율적 요인들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사진 출처:구글)>



대체 투자라는 것은 니치 마켓 투자라는 개념을 넘어 기업 말고 원자제등 직접 생산물에 대한 투자를 직접 소비자가 하자는 말이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의 정유기업이 매우 경쟁력이 있을 때는 한국산 정유제품이 가격대비 품질이 매우 뛰어 났지만 이제는 한국기업의 노후화(사실 나태화가 맞을 듯)로 최근 노동 생산성 및 경영 효율성(지금 한국기업은 이 두 가지가 꾸준히 하락 중)이 좋아진 중국 정유제품이 더 가성비가 좋아졌다. 하지만 중국 기업의 경영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해도 사회주의 경제체제(사유재산이 언제든 부정될 수 있다)에 대한 불신을 안고 중국 정유기업에 투자하자니 아예 중국 석유에 투자하는 것이 대체투자다. 즉 대체투자는 이제 기업이라는 조직자체의 대내외적인 비효율적 요인들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여러분들은 하나는 알고 둘부터 백까지는 모른다. 즉 완제품이 나오기 이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 말이다. 지금까지 이런 것들이 문제되지 않고 수많은 국내외 투자의 대가들이 마치 자신이 마이다스의 손 인 양 계속된 투자 성공을 이룬 이유는 그만큼 제조 및 유통 물량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 흐르는 물이 줄어들다 보니 강물 안에 있던 오 만가지 오물들이 다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유유히 흐르던 아름다운 강물은 간데없고 오물천지의 도랑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이미 편안함에 젖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다시 비가 많이 내리고 물이 많아지면 다 없어질 거라고 말이다. 문제는 아무도 그것을 정리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가 너무나 편안해졌다. 기업들 말이다. 정부시스템은 이미 편안해 진지 200년이 지났기에 차라리 포기하는 편이 빠르다. 절대 투자해서는 안되고 믿어서도 안 되는 대상이라는 말이다. 그나마 기업들이 지구상의 발전을 이끌 만큼 덜 편안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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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만들어진 세계질서는 기업윤리의 시대였다. 이제는 좋은 시절 다 갔다.(사진 출처:구글)>



하지만 기업마저 이제 그 길로 접어 들었다. 즉 제품의 가성비가 문제가 아니라 그 제품을 만드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심지어는 심리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것이다. 마치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벌면서 돈이 없어 힘들 정도로 너무나 돈이 들어갈 곳이 많은 것처럼. 천문학적인 수익을 내는데도 왜 상장지수는 항상 제자리인지 이제 납득이 갈 것이다. 기업마저도 돈을 벌어 주식을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자기 집구석 돌아가는 꼴을 훤히 보면서 어떻게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나겠느냐 말이다. 본부장이 탑메니지먼트 미팅을 하다가 이 얘기하는 바람에 부사장한테 핀잔을 들은 말 '내 자식이 들어왔으면 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처럼(자기 자식이 절대 들어와서는 안될 회사를 만들면서 남의 자식들에게는 태연하게 행동하는 분들이 참 많다). 세상 이치는 다 똑같다. 가문이나 기업이 오래가려면 조직 구성원이 자꾸 바뀌고 순환이 되어야 한다. 18세기는 아담 스미스가 이야기한 분업이 결국 기계를 만들게 했다. 21세기는 반복작업이 주는 전문성이 불필요한 시대라는 것이다. 17세기부터 21세기 초까지 버텼던 기존 질서(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만들어진 세계질서는 기업윤리의 시대였다)도 이제 종말을 향해가고 있다. 기업윤리가 꺼져가면서 가치투자(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신뢰를 가진 투자)도 꺼져버릴 것이다.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것은 매매 타이밍이 아니라 사실 사람이었던 것이다. 20세기까지는 그저 조직 안의 게으른 몇몇 사람 정도가 문제였다면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뭔가에 항상 바쁜 모두가 문제이다. 십 년 전엔가 기업의 재무 재표를 보지 말고 사무실을 들여다 봐야 한다는 말을 워런 버핏이 했었다. 그때는 아직도 희망이 있었다. 이제는 그 말도 추억이다. 앞으로는 사무실이 아니라 실제 돈과 현물이 거래되는 현장을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겠는가. 아예 기업을 건너뛰고 직접 현장에 가서 사버리면 그만일 것을 말이다.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83)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재테크란 무엇인가(4) 재테크는 목적(目的)가 아니라 절차적 수단(手段)이다

  • 입력 : 2017.11.21 15:17:24    수정 : 2017.11.21 21: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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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21세기의 사회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알랭드 보통> 사진출처:구글



얼마 전 모 대기업 탑매니지먼트 중 한 분이 자살을 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기업의 내밀한 부조리를 덮어쓰고 죽었다는 말부터 본인의 말 못할 개인적 회한이 있었다는 말까지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직급도 직급이지만 인간의 나이로 이제 70가까이에 다다른 노신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선택을 할 때에는 그만한 심적 고통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한 평생 바라는 것이 무병장수(無病長壽) 부귀영화(富貴榮華) 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의 기준에 부합되는 정도에 따라 겪는 인간의 모든 육체적 정신적 상태를 길흉화복(吉凶禍福) 희노애락(喜怒哀樂) 이라고 한다. 아마 죽는 순간 이 모든 상황들이 순식간에 지나갔으리라. 금융권에 종사하다 보면 특이한 현상이 있다. 일반인들의 기준에서 보면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누린 분들이 오히려 노년에 더 심각한 허무함을 느끼는 모습 때문이다. 대기업이나 공직에서 최고위직을 지내신 분들일수록 더하다. 몸담은 조직의 아우라(후광)나 개인적 위세가 컸던 분들 말이니 말이다. 이들의 인생은 한껏 속도감 있게 지나온 소위 고속도로나 공항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직의 모든 구성원은 물론 자신마저 어느 한 곳에 눈 돌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 오면서 이런 속도감에 무척이나 흐뭇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흐뭇함을 뒤로하고 그들이 느낀 그 회한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지나온 것들과 앞으로 있을 것들에 대한 허망함이 아니겠는가. 과거에 대한 허무감이 회한이고 미래에 대한 허무함을 절망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가 한꺼번에 오면 보통 인간은 목숨을 끊는 것이다. 본부장이 관리하는 본부 안에서도 그런 경우가 두 번이나 있었고 고객의 경우도 좀 있었다. 이유는 대부분 경제적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극도의 허무함이다. 물론 본부장도 겪어본 바가 있지만 그 느낌을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여러분은 알 필요도 없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나 알랭드 보통의 ‘공항에서의 일주일’같은 책들이 아마 그런 류의 사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본부장도 좋아하는 책이다. 느리게 사는 것은 싫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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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필살기를 자신 있게 꺼낼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사진출처:구글



어렵게 잘 살아온 분들이 하나 둘씩 허무함을 느끼는 것에 대한 이유는 대부분 그들의 20대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다 똑같다. 나이 드신 그분들의 20대때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아직 잘 모르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당연히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기성세대들이 자신들만 아는 인생의 속 이야기를 안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성세대들이 선대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미덕(니체가 이야기하는 도덕률)은 하루라도 먼저 시작해서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일로 채우다가 죽는 날까지 일하다가 가는 것이다. 사실 근대질서가 형성되면서 만들어진 신의성실과 소명이라는 두 개념에서 만들어진 진짜 훌륭한 미덕이다. 본부장도 처음 부분은 절대적으로 찬성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일한다는 것에도 일단 찬성한다. 이왕 하는 거 하루 종일 일해야지 능률도 잘 오른다. 문제는 마지막 부분이다. 언제까지 그렇게 할 것이냐이다. 모든 것이 다 때가 있다라는 말은 언젠가 늙고 죽으니 젊을 때 자신만의 필살기를 준비하란 말이다. 인생에서 필살기라는 것은 세가지다. 더 이상도 없다. 첫째 본인의 몸을 완벽하게(건강은 기본이라는 얘기) 활용할 만큼의 돈, 둘째 탁월하게 잘하는 가치 창출 영역, 셋째 승자의 경험이다. 이 세가지를 갖추게 될 때까지가 여러분의 재테크 과정이라는 것이다. 분명이 이야기했지만 재테크는 자신의 소득을 불리는 것이 아니라 알뜰하게(80%의 안정성과 20%의 위험성으로) 모으는 것이다. 불린다는 말은 돈이 주체이고 모은다는 것은 돈이 객체이다. 부동산 투자든 주식 투자든 번다고 생각하고 시작해야 개념적으로 정리가 완벽해지고 더 효과적인 결과가 나온다. 본부장 말을 명심하고 듣고 따라 해라. 불리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소중한 인생 자체를 확률에 맡길 수는 없다. 확률은 언제나 절차적 수단이어야 한다. 여러분이 인생을 온전하게 살 준비가 될 시점까지 여러분은 커리어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절대 경거망동을 해서는 안 된다. 40대까지는 되도록 검소(본부장은 41세에 차를 샀다)하고 또 겸손(위아래로 모두)해야 한다. 물론 돈을 버는 양을 늘리기 위해서 미친 망아지처럼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노코멘트이다. 본부장의 젊은 시절 일할 때 별명이 '미친 망아지'였으니 말이다. 여러분에게 이런 준비된 시기는 보통 40대(시간적으로 20대부터 성공해야 40대에 준비가 된다)에 펼쳐진다. 물론 준비된 시기이므로 당연히 끝난 게 아니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그때부터는 여러분의 세가지 필살기를 통해 진정한 인생의 투자를 해야 하는 시기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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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하기 직전까지 지휘봉을 놓지 않은 '행복한'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진출처:구글



본부장이 가지고 있는 재테크라는 것에 대한 개념은 인생이라는 4악장 교향곡을 연주하는 데 꼭 필요한 악기라고 말할 수 있다. 악기라는 것은 관현악 연주에 필수적인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건 이제 시작인 것이다. 어떤 악기라도 능력 없는 연주자든 아니든 손에는 쥘 수 있는 소품이다. 하지만 자기 꺼 라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 제아무리 새 스트라디바리우스도 10년을 함께해온 중고 바이올린만 못한 것이다. 돈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돈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오래 동안 많은 공을 들였느냐 이다. 그리고 이 악기가 준비되었을 때 연주가 어떻게 연주하고 지휘자가 어떻게 지휘하느냐가 진짜 본 게임이다. 앞서 말한 노신사에게 찾아온 허무감을 카타르시스(淨化)로 바꿀 수 있는 길은 오직 인생이라는 교향곡을 4악장까지 결말을 짓는 것이다. 기승전결 말이다. 비발디나 차이코프스키가 괜히 사계(四季)를 작곡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생을 이 네 가지 단계로 완성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그가 무슨 직업을 가졌든 부모가 누구이든 중요하지 않다. 미리 준비만하면 누구라도 멋지게 인생을 완성했다는 포만감을 즐기며 말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지금 본부장이 가르쳐주는 것은 업계의 어떤 이도 이야기해주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들도 이미 다 알고 있다. 다만 말해주지 않을 뿐이다. 이유는 나도 말하지 않겠다. 업계의 불문율이니 말이다. 상도의(商道義)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요즘 그런 게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본부장에게는 있다. 다스 베이더 경이 마지막에 반기를 든 것도 상도의 때문 아닌가. 다만 본부장은 양심과 정의 그리고 상식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최대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명심해라. 재테크는 절대 절차적 수단이 되어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TV채널에 나오는 재태크의 여왕들도 자신이 쌓아온 부가 이제 보니 얼마나 허무했으면 돈도 안 되는 출연료 받아가며 방송출연 하겠는가. 부동산 재벌 트럼프가 수많은 논란 끝에도 인기를 모으고 있는 여러 이유는 그가 부동산이란 가장 원초적인 재산축적수단을 자신의 인생을 완성하기 위한 절차적 수단임을 진정성 있게 보여준 결과이다. 물론 그가 재산 축적을 하지 못했다면 트럼프라는 바이올리니스트를 스타로 만들어줄 바이올린도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트럼프가 끝까지 성공하려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완성품으로 만드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재테크라는 기술을 써야 한다는 것을 그의 소신으로 지키는 것이다. 여러분도 이러한 골든 룰을 분명이 알고 있어야 돈도 잘 모이는 것은 물론 나중에 나이 들어 스스로를 책망하는 극도의 회한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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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나를 살린다. 사진출처:구글



'20대는 40대처럼 40대는 20대처럼'이라는 말은 '가르치지 말고 리드하라'라는 말과 함께 본부장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사는 좌우명이며 더불어 전세계 청년들에게 전수하고자 하는 진리(眞理)이다. 전자가 재정적인 부분 후자는 업무적인 부분을 감당하는 정의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최대한 돈을 일찍 벌어서 오래 동안 유지하고 죽는 날까지 스스로 빛나는 자가 되라'는 말이다. 어떤가. 주변에 이 문장에 부합되는 분들이 많이 보이는가. 대부분은 둘 다 안되거나 간혹 둘 중 하나만을 가까스로 성취한 자들일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대부분 인생의 시작 시점에서 제대로 된 인생교육{재정(Finance)적이고 업무(Career)적 금기사항(골든 룰) 그리고 승자의 법칙(최고의 가치)}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부장은 여러분들이 모든 것을 다 거머쥐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글로벌 시대에서는 이것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다른 이의 들러리가 되거나 스스로의 자립기반이 없는 방랑자의 신세를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본부장이 잘 쓰지 않는 저작거리 말(본부장은 욕을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로 '듣보잡' 말이다. 지금 20~30대인 여러분들이 꼭 명심해야 할 것들이다. 본부장이 이토록 재테크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뜬구름 잡는 말을 계속 쏟아내는 이유다. 이제 집중할 이유가 생겼으니 돈을 일찍 모으(벌)기 위한 여러분의 집중력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될 것이다. 본부장의 성공 법칙 중 하나인 집중 아이디어 실행에서 집중이란 것은 바로 주변 정리를 의미한다. 주변 정리란 공간적인 시간적 그리고 개념적(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에서 쓴 바로 그것) 정리가 끝나야 한다. 이것이 끝나면 무엇이든 빛(?)의 속도로 행할 수 있고 중력으로 인한 힘도 들지 않는다. 물 흐르듯한 자연스러움이 연출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자연스러움의 미학(美學)은 가장 강력한 정치학(政治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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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으로 가장 위협적이지만 운용상으로 가장 위험한 전략무기인 ‘핵 잠수함’사진출처:구글



방송을 보다 보면 재테크의 귀재들이라고 나와서 어디다 투자할지, 작금의 문제는 무엇인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뭐 사실 거의 맞는 말들이다. 이론만으로도 저렇게 말을 잘하는 것을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어떤 분인지는 모르지만 방송에 나와서 거짓말은 안 할 것이라고 믿고 하는 말이다. 본부장은 양심상 못하는 것도 있지만 직책이 있으니 더 조심스럽다. 오히려 무슨 무슨 전문가라면 좀더 말하기가 수월할 것이다. 방송에서 패널로 나오는 국방문제 전문가들 얘기를 들으면 뭐 거의 핵잠수함 하나 도입해서 운용하는 것은 무슨 껌 씹기다. 만약 현직 핵잠수함 함장이 나와서 발언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가 듣고자 하는 속 시원한 말은 절대 듣지 못할 것이다. 그가 확답할 수 있는 말은 오로지 핵잠수함의 올바른 운용을 위한 리스크 제거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일 것이다. 사실이다. 실제로 그가 그 자리에서 그런 대답 100마디를 하는 것보다 실제 핵잠수함을 제대로 운용하는 것이 사회 전체를 위해서 더 올바른 길이다. 또한 그가 보기에는 모든 것이 그저 확답하기 어려운 이슈들뿐일 것이다. 본부장이 보기에 성공적인 재테크라는 것은 핵잠수함을 운용하는 것과 같다. 이론적으로는 안전성에 있어서 너무나도 완벽함은 물론 전략무기로서의 상징적 가치와 전술적 운용도 간편한 무기지만 자체적 위험부담이 매우 크기 때문에 만들어져서 운용하다가 한번이라도 사고가 날 경우에는 전체 상황을 종결시킬 정도의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들이 재테크를 위한 효과적인 툴을 선택할 때 나름 안정성과 수익성 모두가 높다고 생각해서 골랐겠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살상효율이 높고 안전한 무기는 없는 것처럼 투자 수익율이 좋으며 안전한 재테크 툴도 없다. 만약 여러분이 재테크 툴을 잘못 운용하여 여러분만의 필살기가 준비되어야 할 시점을 넘겨버릴 경우 그 재테크 툴은 이제 그 자체가 힘든(?) 목적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부러워하는 그저 편해 보이는 건물임대업자들의 고충을 한번 들어보면 앞으로 여러분의 재테크 관념이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재테크 툴이 절대 여러분의 상전이 되게 만들지 마라. 재테크라는 것은 결국 각자에게 허락된 장소와 시간이라는 한도 내에서만 이루어지고 통용되는 포커판의 칩과도 같은 것이다. 포커처럼 모든 필살기가 준비되는 새벽 1시부터가 진짜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임하란 말이다. 새벽 1시 이전에는 중년처럼, 이후에는 청년처럼 포커를 치면 필승이다. (참고로 본부장은 인생이 포커판이라 실제 포커는 시시해서 하지 않는다). 본부장 말대로만 한다면 인생 내내 돈이란 돈은 저절로 여러분에게 찾아와 문을 마구 두드릴 것이다. 하지만 함부로 문을 열어 주지는 말아라. 안에 있는 놈들까지 꼬여서 데리고 나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걸 숱하게 보아온 본부장의 말이 현실감 있게 들릴 나이가 되면 이미 늦은 것이다. 납득이 안되더라도 무조건 따르기 바란다. 평생 돈 때문에 낭패를 보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최고의 재테크임을 깨닫는 날에 여러분은 리얼 세상에서 재테크의 왕이 아니라 신이 되는 것이다. 방송에 나오는 재테크의 신은 현실에는 없는 신이다. 다시 말한다. 모두 20대는 40대처럼, 40대는 20대처럼 살기 위해 재테크하자.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84)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재테크란 무엇인가(5) 재테크는 생활과 어우러진 일반룰의 이해로 완성된다

  • 입력 : 2017.11.27 16:59:30    수정 : 2017.11.27 20: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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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래서 고생 끝에는 반드시 보답도 온다. <신뢰는 공들인 나의 시간이 주는 것이다> 사진출처:구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있다. 버는 건 막 벌어도 쓰는 것을 잘 써야 한다는 말로 주로 쓰였지만 사실은 정승처럼 지켜가며 쓴다는 말이다. 전편에서 말했듯이 재테크는 목적이 아니라 절차적 수단이라고 했다. 그만큼 통과의례적인 절대 시간이 요구되는 분야다. 재테크를 투자라기 보다는 지킨다는 개념으로 이야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투자라고 생각하면 자꾸 떠올리게 되고 들여다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정작 본업에 소홀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려면 차라리 투자를 본업으로 해야 한다. 나중에 투자라는 것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논하겠지만 투자는 직업이어야 한다. 경영자는 경영의 성과(成果)를 통해 연봉으로 돈을 벌고 노동자는 정해진 노동의 대가(代價)로 번다. 성과(成果)라는 것은 변동성이 있지만 대가(代價)라는 것은 확정적이다. 그래서 노동자가 안정된 직위인 것이다. 경영자나 임원은 그래서 불안한 직위인 것이다. 여기서 투자자가 가장 위험성이 큰 직위로 모든 결정에 따른 비용(費用)을 전담하고 거기에 따른 수익(受益)을 본인이 독점한다. 결국 직위에 맞는 정확한 단어를 써야 한다. 경영자는 성과를, 노동자는 대가를, 그리고 투자자는 수익을 목표로 전업으로 일하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나 임원 그리고 경영자도 개인적인 투자를 하는 것을 말릴 수는 없다. 문제는 적절한 비율을 찾을 수 있느냐다. 노동자가 업무에 소홀하고 투자에 열을 올리는 것은 신의성실의 의무에 위배되어 규칙위반이다. 임원이나 경영자가 개인적인 투자 때문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투자 수익 금액보다 더 큰 연봉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일선에서 보면 대부분 오래 못 가더라. 모든 걸 다 바쳐도 성과라는 것이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명예와 돈 그리고 권력을 다 가지면 안 된다고 했다. 주변의 심각한 견제를 받기 때문이다. 투자는 그래서 전업으로 해야 한다. 다만 그게 쉽지 않으니 제 2 금융권이 생겨난 거다. 원래 개념상 제 1 금융권 즉 은행은 돈을 융통해주고 제2 금융권은 대신 투자 또는 운용해 주는 거다. 투자은행이나 저축은행 모두 은행이 아니라 각각 투자 운용사와 대부회사다. 은행이라는 말 때문에 매우 권위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은행을 가장한 매우 리스크가 큰 회사들이다. 결국 은행이라는 것은 단지 돈을 융통해주는 회사가 아니라 매우 신뢰할 수 있는 안정성 있는 금융사를 의미한다. 그 신뢰가 바로 오랜 '시간과의 싸움'에 의해서 생긴 것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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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에 번 돈을 끝까지 가지고 가는 사람을 본 적이 별로 없다. <돈은 버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사진출처:구글



재테크라는 것을 이런 시각에서 시작해야 한다. 흔히들 재테크를 이야기할 때 순간에 일확천금을 버는 것을 이야기한다. 무엇이던지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다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되어있다. 그렇다고 속도감 없이 느긋하게 살다가 모든 기회를 놓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라는 말이다. 쉽게 말해 나의 개인적인 장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보라. 먼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파악해 보자. 물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아직 여러분은 유명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명인이 되었다고 마냥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앞에서는 아양을 떨어도 뒤에 가면 깎아 내리기에 여념이 없다. 결국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신변잡기적인 이야기 말고 공신력 있는 주변 친구들 중에 가급적 상식적 사고를 하는 친구 한 명을 골라 이야기 해보라. 금방 나의 장점 및 객관적 위치 즉 전투력을 알 수 있다. 나의 객관적인 전투력을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가 있다. 재테크는 결국 철저히 나 개인의 인생에 연동되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투자를 하려면 남을 보고 재테크를 하려면 나를 관찰해야 한다. 재테크는 지키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창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시중의 싼 이자로 대출을 받아 부동산에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이건 재테크가 아니다. 투자다. 쉽게 말해 투자는 자기가 아니라 남들이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이다. 결국 투자심리라는 악마의 유혹이 나의 자산 가치를 상승시켜준다. 재테크와 투자를 정확히 구분을 해야 한다. 투자는 결정 후 투자 수익에 반하는 손해와 수반 비용을 각오를 하고 덤벼드는 것이고 재테크는 무조건 이익을 예상하고 가는 것이다. 수반 비용마저 거의 미미한 정도로 생각하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부동산 투자라고 하지 부동산 재테크라는 말은 틀린 것이다. 기대 심리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투자나 재테크나 모두 시간이 요청된다. 투자에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투자심리가 조장될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테크에 시간이 필요한 것은 투자심리의 문제가 아니다. 보편적인 일반룰에 따르는 자연 발생적인 시간의 문제이다. 굳이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다. 이미 자신의 일상적인 소득이 있는 사람이기에 그저 생활을 하며 지낼 뿐이다. 그래서 재테크는 생활의 발견을 통한 일상을 무던히 지낼 수 있는 스스로의 분별 있는 상태가 중요한 것이다. 물론 이건 투자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지만 투자에서는 자신만 분별 있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기에 필요조건일 뿐 충분 조건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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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울 땐 웃어라, <글로벌 시대에 심각하면 지는거다> 사진출처:구글



사실 재테크에 실패했다고 본인 스스로를 타박하는 중, 노년 신사들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10명중 8명은 자신의 번 돈만큼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어찌 보면 번 것의 몇 배를 만들어도 시원치 않을 젊은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의아한 이야기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세상에는 일반적인데도 내가 접하지 못하는 사실과, 반대로 매우 특수하지만 항상 접하는 사실이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후자의 정보를 듣고 산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가 미디어 매체가 지향하는 선정성과 우리 스스로가 가지는 선정적 편향성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이슈를 자꾸 외면하고 왜곡된 정보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자꾸 재테크에 실패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재테크의 ‘또순이’는 이 일반적인 정보를 정확히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다. 보통 이들의 생활을 보면 대체적으로 규칙적이며 소시민적이다. 거대담론을 싫어하지만 언제나 유쾌하다. 소설 ‘크리스마스의 캐럴’에 나오는 주인공 스크루지 같은 부자는 사실 드물다. 그렇게 우울하거나 심각한 재테크의 달인을 본부장은 본 적이 없다. 그만큼 경제적인 생활도 안정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정서적으로도 매우 양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간단한 재테크 툴도 기본적인 공부가 필요한데 이 간단한 공부마저도 할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는 사람들이 본부장이 보기엔 대부분이다. 여러분이 공부라는 말에 겁을 집어먹는 모양인데 걱정 붙들어 매라. 그저 일상의 소소한 정보를 취합해 나가도록 해라. 신문이든 방송이든 생활 잡지든 다 좋다. 거창한 재벌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스타들의 황제 재테크 이야기도 이제 하지 말자. 오로지 소소한 이슈들에 눈과 귀를 집중해 보자. 절대로 가진 것을 잃지 않음은 물론이고 적잖은 수익도 낼 것이다. 은행 증권 보험사에서 만드는 모든 상품이 금융감독원 상품인가를 받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세상에는 나만 특수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활이 다 일반룰에 적용을 받는다. 그리고 그 생활을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즐기는 자만이 재테크에 성공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85)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금융이란 무엇인가(1) 호모 사피엔스가 만든 경제 공동체의 핵심 가치, 신용

  • 입력 : 2017.12.04 10:56:13    수정 : 2017.12.04 13: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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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잃으면 절반을 잃지만 신용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신뢰와 신용’ 사진출처:구글



자 여기는 자카르타다. 본부장도 금융권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저 막연한 분야가 금융이었다. 도대체 무얼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한 고객 유치나 응대만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 아주 개념이 모호한 분야 말이다. 공장이 필요 없는, 종이와 펜의 비즈니스라고도 하고 무에서 유를 만드는 투자나 운용의 미학이라고도 하지만 매우 보수적인 분야라는 것이 금융에 대한 본부장의 기본 개념이었다. 개략적인 얘기지만 사실 다 맞는 말이다. 그 정도 정의도 못 내리는 금융권 종사자가 아직도 어림잡아 절반은 될 테니 말이다. 사실 금융이라는 것은 물과 같은 개념이다. 어떤 용기에 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그 스타일과 용도가 틀려지는 분야이니 말이다. 앞에서 돈의 개념을 이야기하면서 말했지만 돈은 언제나 안정을 추구한다고 했다. 자연계에서 물이 언제나 아래로 흐르고 안정되길 원하듯 말이다. 모 은행에서 35년을 일하시고 은퇴하신 선배님께 들은 얘기지만 금융은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이 매우 난처한 분야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 전반에서 활약하신 선배님들의 공통된 의견이 하나 있다. 신용을 잃으면 끝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신용이라는 것이 가지는 가치는 절대적이다. 공산주의가 역사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인간의 본성을 무시했기 때문이고 그 본성의 핵심인 '개인의 존재가치 구현'에 필수적인 부분이 인간이 서로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는 '상호 신뢰 구축'이다. 과거부터 보아왔던 오늘 만난 그에 대한 믿음 말이다. 50만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완전히 손아귀에 넣게 된 원동력이 바로 이러한 '상호 신뢰 구축'을 위한 언어 능력에 탁월했던 것이라는 것은 이미 ‘본부장이 시대를 말한다’에서 밝힌 바 있다. 이 '상호 신뢰(Trust) 구축'을 금융에서는 신용(Credit)이라고 한다. 신뢰(Trust)나 신용(Credit) 모두가 다 믿음(Belief)이란 공통점이 있지만 업무적인 측면으로 들어가면 조금 차이가 있다. 신뢰(Trust)라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용어이다. 본부장이 누차 이야기했지만 정치라는 것은 공동체적 자존심의 영역이다. 돈 문제로 해결되지 않는 분야라는 것이다. 반면에 신용(Credit)은 매우 경제적인 분야이며 엄밀히 말하면 상당히 개인적인 분야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법인, 즉 기업도 경제적 실체를 인정하기에 이러한 신용의 범주에 당연히 들어간다. 결국 신뢰라는 말은 국가나 국제기구나 단체에서 쓰는 말이고 신용은 기업과 개인에게 쓰는 말이다. 물론 개인이나 법인에게도 신뢰라는 말을 쓰기는 하지만 비경제적인 의미로 주로 쓰인다. 즉 신용이라는 말은 극히 경제 활동적인 측면이 강하다. 돈은 사람의 얼굴과 과거의 행적을 가리며 찾아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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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경색은 돈 문제이지만 신용경색은 근본적 문제이다. ‘금융경색과 신용경제’ 사진출처:구글



아이러니한 것은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자본주의의 최종적 승리를 자축하는 분위기(프란시스 후쿠야마 ‘역사의 종언’, 토마스 프리드만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등에서 보듯이 말 그대로 세상 다 끝난 것처럼 말이다)에서 갑작스럽게 급반전하여 자본주의의 위기를 말하는 분위기다. 1989년 냉전해체로 비롯된 자본주의의 승리가 위기로 탈바꿈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신용경색이다. 어려운 말 써서 미안하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어렵게 이야기한다고 어렵게 생각마라. 다 폼 잡는 거다. 원래 신용경색이라는 말은 돈이 안 돈다는 뜻이다. 피로 따지면 빈혈로 피가 안 돌거나 피가 너무 많아도 혈관이 막힌 동맥경화, 이 두 가지다. 피가 없으면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해서 정상인에 가까운 피가 생성되게 하면된다. 문제는 몸이 노후해지거나 운동량이 적고 먹기만 해서 혈관이 막혀 터져버리는 경우이다. 차라리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은 쉽지만 오래된 '유(有)'에서 새로운 '유(有)'를 만드는 뒷수습이 힘든 것이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기가 얼마나 힘든가 말이다. 일본 경제가 힘들어진 것도 60, 70년대 고도성장의 후유증을 80년대에 접어들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잘못이 크다. 소위 프라자 합의를 통한 엄청난 엔고로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돈의 환락을 느끼게 된다. 이거 이야기하다 보면 너무 길다. 간단히 말해 전세계에 화폐가 주는 위력을 제대로 보여준 통화 정책 실험 국가가 바로 일본이었고 양적완화니 아베노믹스니하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실험해서 지금은 미국이나 유럽까지 이 장난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말하자면 요즘 말로 뽕(몰핀)을 맞은 것이다. 몰핀은 원래 죽어가는 사람이나 위급한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주는 응급 마약인데 이걸 운동부족의 비만이지만 아직 건강이 펄펄 넘치는 사람에게 주니 어찌 되겠는가. 요즘의 신용경색이란 돈의 양이 너무 많아서 야기된 것이다. 돈의 양이 많아지면 당연히 골고루 퍼져야 하는데 이게 우습게도 몰리는 곳으로만 몰리는 것이다. 이유는 본부장이 말하지 않았나. 돈이란 녀석은 언제나 안정된 곳 즉 남이 가는 곳만 가는 녀석이다. 예전 전세계의 대부분 왕들이 갖은 산해진미를 먹고 살면서도 오래 못살고 각종 성인병에 시달린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자본주의의 위기를 초래한 신용경색은 결국 돈의 양이 많아져 돈의 값어치는 떨어졌지만 돈의 위력(소위 돈의 갑질)이 비정상적으로 커진 이유다. 아담 스미스가 지적했듯이 돈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그저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가치를 표시해주는 종이인데 말이다. 피가 중요하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영양소를 옮기는 붉은 물이다. 결국 신용이라는 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를 얼마나 정확히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현대에는 오히려 건강한 사람은 조금씩 자주 아프다. 이유는 몸이 바로 바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현대인들은 자신의 몸이 정상이 아닌지도 모르고 살다가 큰 화를 초래한다. 신용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재앙을 미리 알려주는 시그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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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를 한번 무시한다고 파국이 생기는 일은 없다. 단지 파국이 시작된 것일 뿐이다. ‘일반룰 즉 금기사항(Taboo)을 저버린 자에게 찾아오는 것은 파멸’ 사진출처:구글



지각 있는 경제인 또는 금융인들이 양적완화나 무분별한 금리인하를 경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동차를 운행하는데 이상센서가 시끄러우니 아예 소리가 안 나게 해버리는 것이다. 물론 요즘 자동차는 워낙 안전 센서가 많아서 웬만한 것들은 무시해도 그럭저럭 운행이 되니 자연스럽게 그리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 바로 재앙은 시작된다. 오로지 감(感)으로만 가는 것이다. 앞으로 닥치는 모든 것을 재수에 맡기는 사람이 모는 자동차를 타고 가는 승객은 그저 불행한 사람일 뿐이다. 일반룰 즉 금기사항(Taboo)을 저버린 자에게 찾아오는 것은 파멸이다. 본부장이 이렇게 쉽게 정의해주니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시험에서는 이렇게 답해서는 안될지 모른다. 교수들은 맞는 말을 쓰는 것보다 자기 말을 쓰는 것을 더 반기기 때문이다. 사실 본부장 같은 엘리트 금융인중 이렇게 글까지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을 교수들은 잘 알고 있다. 실무를 챙기기도 바쁠뿐더러 워낙 돈독이 오른 금융업 종사자들이 이런 돈 안 되는 짓을 할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 맞는 말이다. 내가 이상한 거다. 본부장이 그런 열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글을 자카르타 시내 한가운데 비 오는 밤 12시에 혼자 쓰고 있겠는가. 20대의 열정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본부장은 17년 전에도 이 시간에 호텔방에 홀로 앉아 창 밖으로 보이는 비 오는 이국(異國)의 밤풍경을 바라보며 균형감각과 분별력을 다짐하는 어른스러운 사람이었다. '20대는 40대처럼 40대는 20대처럼'을 실천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만큼 듣기 어려운 기회이니 잘 새겨들으라는 말이다. 제목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이 사는 공동체 사회의 핵심가치가 왜 신용인지 말해주마. 인간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삶의 이유인데 그 실현된 것이 무엇으로 표현되길 가장 바라는 줄 아는가. 바로 숫자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집트 피라미드가 말해주는 인간본성의 진실이다. 자신이 만들 창조물이 숫자와 같이 정확하게 평가 받길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평가 받은 자신의 작품이 누군가에게 간절히 원하는 대상이 되길 바라는 것이 인간본성이다. 현생인류가 오늘날의 영화를 누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공동체를 무리 없이 번영시킬 줄 아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무리(無理)없이'이다. 공동체가 무리 없이 유지되려면 인간본성에 반하는 가치를 제어하는(인체에서 백혈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자정(自淨)제가 필요하고 그게 바로 신용(Credit)인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신용이 바로 백혈구 역할(보통은 적혈구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문제가 시작된다)을 하는 것이고 여기에 이상이 생기면 재앙이 시작되는 것이다. 자 명심하자. '신용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은 단순히 신용카드 빚을 갚지 못해 독촉장이 날아오는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독촉장이 날아올 때 대책을 세우라는 균형 잡힌 시그널인 것이다. 신용 그 자체는 그저 작은 부속품인 것 같지만 어찌 보면 전부인 핵심가치이다. 신용문제에 있어서는 개인이든 나라든 다를 건 아무 것도 없다.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86)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금융이란 무엇인가(2) 국제공항(International Airport)에서 잠시 배우는 금융전문가의 첫걸음

  • 입력 : 2017.12.12 10:10:55    수정 : 2017.12.12 19:4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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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도시화가 만든 첫 번째 환상이다. <자카르타 국제 공항> 사진출처:구글



택시의 창 밖을 바라보니 어느덧 밤이다. 다시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했다. 돌이켜보면 벌써 12번째 인도네시아 여행이라 이제는 매우 정겨운 자카르타 국제공항이다. 사실 자카르타 국제공항의 정식 명칭은 수카르노 하타 국제 공항이다.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를 구글에서 찍어보라. 매우 근엄한 얼굴의 중년의 신사가 검은색 선그라스를 끼고 밀리터리룩의 유니폼을 입고 서있다. 머리에 각진 베레모자도 썼다. 정말 멋진 사진들이 많은데 가장 멋진 사진은 케네디 대통령과 공항에서 무개차를 타고 함께하는 장면이다. 수카르노 대통령은 본부장이 그룹핑 능력을 갖춘 실전형 인재로 인정하는 분으로 반둥에서 비동맹 회의를 개최한 인물로 유명한 사람이다. 사실 반둥 회의는 딱 한번 열렸다. 어찌 보면 매우 일회적인 이벤트였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어지간히도 회자가 되어왔다. 2차대전이 끝나고 50~60년대에 모든 국가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그룹핑에 고심해야 했다. 이름하여 1세계, 2세계로 나뉘는 이념 그룹핑 말이다. 1세계는 미국과 서유럽국가들로서 자본주의 질서를 표방하는 국가들이고 2세계는 소련과 그 위성국가인 공산주의 국가군이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1,2세계에 속하지 않은 국가가 각각 2차대전의 승전국과 패전국이었던 중국과 일본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제 3세계 국가들의 성격은 대부분 아시아,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들이다. 식민지 시절의 회상은 그들에게는 아주 지긋지긋한 것이었다. 독일은 패전국이었기에 둘로 나뉘어 서독은 1세계, 동독은 2세계로 배분되었고 향후 천 년 안에는 다시는 합쳐주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중국은 공산주의로 통일되었고 심지어는 한국전쟁에서 수 십만 명의 지상군까지 투입할 정도로 1세계와 각을 세웠지만 자신을 소련과의 그룹핑으로 정의하지 않으려 했다. 일본도 패전을 했는데도 분할되지는 않았지만 수년간 미국의 통치를 받는 피점령국신세를 겪어야 했다. 당시 승자였던 맥아더 장군에 대한 패자인 히로이토 천왕의 굴욕적인 태도를 집중해서 만든 영화 ‘선(SUN)’을 보면 당시 일본의 분위기가 거의 식민지였음을 알 수 있다. 모두가 상처받은 자존심에 대한 회복을 바라던 시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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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계와 3세계 수장의 만남. <자카르타 공항에서 미국 케네디 대통령과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 사진출처:구글



이긴 자는 오로지 미국뿐. 대영제국이라고 자신만만했던 영국도 미국이 아니었으면 독일에게 망신을 톡톡히 당할 처지로 전락했고, 세계 최고 민족이라고 자신만만하던 독일은 17세기 30년전쟁이후의 폐허상태로 다시 돌아갔다. 로마 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며 추축국으로 독일 편에 섰던 이탈리아는 유럽국가라는 것마저 의심을 받는 지경에 처한다. 프랑스는 6주만에 전통적인 라이벌 독일에게 수도 파리를 점령당하는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치욕을 겪는다. 앞서 이야기한 중국은 섬나라고 나라취급도 안 해주던 일본에게 영토의 절반을 내주고 정부군은 거의 궤멸상태로 전락했다. 미국을 제외하고 이 전쟁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은 나라는 러시아뿐이었다. 워낙 낙후된 국가로 유럽으로 쳐주지도 않았던 국가의 면모를 2차대전의 승리로 일신하며 얼떨결에 초강대국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전쟁 중 보여준 경이로운 능력은 어마어마한 생산능력이었다. 전면전이었던 2차대전은 이전에는 없던 소모전이었고 개전 이후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협상을 통해 승전을 확인했던 이전의 전쟁과 달리 상대의 초토화를 통한 존재의 절멸을 목표로 한 2차대전은 생산력이 국력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모두가 치욕을 겪어야만 했던 2차대전 종전 이후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골몰했던 것은 자존심 회복이었다. 경제재건이든 국가간 동맹이든 심지어는 다시 또 전쟁이든 모두가 관심을 가지는 최종적 목적은 구겨진 자존심 회복 싸움이었다. 이런 국제적 심리의 축소판이 바로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이 보여준 비동맹 회의이다. 가담하는 국가군들의 당시 형편으로 보면 그다지 위협적인 움직임도 아니었지만 당시 중간자들의 그룹핑 시도로서의 전략적 이니셔티브는 매우 효과적이었고 그 자체가 이 동맹에 가담한 국가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기에 충분했다. 중국과 일본도 이 동맹에 가담하는 제스처 이후 각각 미국의 화해 모드와 폭 넓은 지원을 대폭 이끌어내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잠시 스크린처럼 머리 속을 지나가고 다시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서 수속을 기다리고 있는 본부장이다. 하지만 국제공항이라는 존재는 금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모티브 역할을 지금 이순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여러분에게는 참 다행한 일이다. 조금이라도 쉽게 형상화 시킬 수 있게 해주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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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계와 2세계 그리고 3세계 국민들이 모두 모이는 자카르타 국제 공항. <수카르노 하타 국제 공항> 사진출처:구글



머리에 색색 가지 히잡을 쓰고 허리에 잘록하게 핏(Fit)이 들어간 제복을 즐기는 인도네시아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하찮은 일을 하더라도 유니폼을 입는 직업을 즐기는 현지 남자들이 제법 멋을 내며 서있다. 과거 이 나라에서 350년간 주인행세를 해온 네덜란드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가급적 흰색 셔츠에 단정한 바지를 입고 점잖게 앉아 주변을 의식하고 있다. 모두가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인도네시아도 엄청난 내홍을 겪는다. 그러한 혼란 와중에 국내의 화교들이 엄청 박해를 박아 많은 중국인들이 인도네시아에서 폭동으로 죽었다. 그 이후로 중국인들은 절대 외적으로 부유한 티를 내고 다니지 않는다. 한국인들도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사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예전 같지 않다. 한국 대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해본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이 한국 기업의 독특한 문화에 혀를 내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별로 기대를 하고 있지 않는 덕에 한국인들도 어디 가서 행세하고 다니는 것 같지는 않다. 대부분 현지인들 눈치를 많이 본고 있는 모양새다. 일본인은 아예 공항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20년 전만해도 어딜 가나 일본어로 수다 떠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아쉽다. 아베 총리의 양적 완화로 일본 돈이 예전만 못하기도 하거니와 지난 20년동안 크게 돈 번 사람도 별로 없다. 미국인들도 잘 안 보인다. 갈수록 미국 밖을 나오기 싫어하는 터라 나와도 독일 정도나 이탈리아다. 여러분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동남아 국가들은 서로 별로 다니지 않는다. 가뜩이나 심심한데 서로에게 별로 흥미로울 게 뭐가 있겠는가? 자타르타 공항에 앉아서 눈앞에서 흘러가는 광경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세상 돌아가는 게 보인다. 유독 중동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사실 느낌이 사우디 아니면 이란이다. 둘은 하고 다니는 것과 흥에 겨워 돌아다니는 모습이 거의 같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매우 싫어한다. 사우디는 원래 상황이 좋았지만 요즘 이란은 예전 이란이 아니지 않은가? 분위기 정말 좋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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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모여있는 곳을 가야 돈이 보이고, 사람을 볼 줄 알아야 금융이 보인다. <국제공항과 금융> 사진출처:구글



사업은 남이 하기 싫어하거나 못하는 것을 하면 돈 번다. 머리가 좋던지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정치는 남들의 원한을 풀어주면 성공하다. 하지만 금융은 이 둘을 섞어야 한다. 즉 금융은 정치논리와 경제논리를 합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금융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논리다. 언제나 사이에 걸쳐져 있는 매개물 역할을 잘해주어야 하는 것이 금융인 것이다. 정치와 경제의 경계를 넘나드는 매개물 말이다. 경제논리로만도 풀 수 없고 정치논리로만은 더더욱 아니다. 국제공항에서는 자존심도 보이고 똑똑함도 열정도 보인다. 하지만 하나 안 보이는 게 있다. 적절함을 담는 분별력 말이다. 이건 원래 보이는 게 아니다. 왜냐면 그걸 보고 있는 바로 나 스스로이기 때문이다. 본부장이 이러한 분별력을 키우기 위해 단련하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공항에 일찍 와서 시간 보내기, 그리고 드라마를 무음으로 해놓고 눈으로만 보기 말이다. 사물을 눈으로 보면 욕심이 생기지만 행동을 눈으로 보면 분별력이 생긴다. 말을 귀로 들으면 격한 감정이 생기지만 상황을 귀로 들으면 절제를 알게 된다. 여러분들은 글의 첫머리에서 국제 공항을 언급했을 때 영화에나 나오는 국제금융가들의 허식을 상상했을 것이다. 국제 금융가, 말이 멋있지 절반은 사기꾼에 가깝다. 금융전문가라고 자처하는 그들끼리도 서로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들이 한 번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소위 인생 루저로 내려앉은 보통사람들의 눈물뿐이다. 본부장이 원하는 금융전문가의 진정한 모습은 이런 비정한 욕심쟁이가 아니다. 금융업의 본질은 바로 우리 인간의 ‘행동’과 그가 만들어내는 ‘상황’을 정확히 읽어 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이다. 앞서 본부장이 말한 '순서'대로 여러분들도 말할 수 있는 때가 오면 여러분들도 이미 금융전문가다. CFA 자격도 진정한 금융전문가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바로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있고 귀를 믿을 수 있으며 말하는 순서에 자신이 있는 것이 금융전문가로 가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87)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금융이란 무엇인가(3) 흑백논리보다는 차라리 회색논리가 낫다

  • 입력 : 2017.12.18 16:50:22    수정 : 2017.12.18 2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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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논리'가 아닌 '회색논리'로 금융사기를 치는 영화 ‘아메리칸 허슬’ 출처:구글



본부장은 어린 시절 매우 부유함도 그리고 매우 가난함도 겪어보았다. 요즘 흑수저라는 말이 있지만 본부장은 사실 금수저였다. 본부장은 어린 시절 사진이 많다. 본부장 시절에는 어린 시절 사진이 많은 사람일 수록 부잣집이다. 어려운 시절에는 사진 찍는 것도 사치인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80년대는 전세계적인 경제호황으로 자산가치가 급등을 하고 중산층들이 경제적 자신감을 가지던 시기이다. 요즘 하는 나쁜 짓들은 대부분 다 80년대에 나온 것이라고 보면 된다. 남들이 다 잘사는 시절부터 서서히 못사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본부장 집안 같은 사람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을 유독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어려서부터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낙으로 살아온 터라 그런 류의 사람들에 대한 나름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인생을 너무 흑백 논리로 본다는 것이다. 부자 아니면 집시가 되길 원하고 대통령이 아니면 시인이 되길 원한다. 어린 시절 동화책이 우리에게 준 영향이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화의 세상에는 중간층이 없다. 마녀 아니면 공주고 대마왕이 아니면 기사다.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법 없이도 살만한 사람들이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언제나 천사처럼 웃고 있다. 물론 이런 동화의 목적이 무엇인 줄은 대충 짐작이 가지만 금융업의 마인드와는 완전히 대조되는 정신세계라고 할 수 있다. 동화의 목적이 세상을 아름답게 보라는 것인데 마치 세상의 모든 악을 퇴치하라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종교에는 악마가 있지만 세상에는 선도 악도 없다. 오로지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서로 약속한 것 즉 법을 위배한 것을 처벌할 뿐이다. 그 외에 것은 무엇을 해도 좋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적절함과 부적절함뿐이다. 무신교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힘들겠지만 기독교를 창시한 예수가 전세계를 공감시킨 이유는 이전의 고대 종교 같은 이분법이 아닌 현실에 맞는 다원주의적인 가르침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본부장이 시대를 말한다’에서 말했듯이 그림 형제의 백설공주는 원래 스페인 최고의 전성시대에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통치한 필리페 2세의 사랑이야기이다. 실화는 원래 계모가 착하고 아름답고 딸이 못된 것으로 되어있다. 그 딸이 착한 계모에게 독을 바른 사과를 먹이고 죽여 그 벌로 집에서 쫓겨나 지나는 착한 왕자인 필리페 2세를 꼬셔서 결혼에 성공하지만 그 품성을 못마땅하게 여긴 부왕 칼5세가 며느리를 독살하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막장드라마다. 동화만큼 원작도 선정성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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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주었지만 기존의 세상을 빼앗아간 ‘스마트폰’ 출처:구글



금융의 세계에서는 가장 금기시 되는 것이 바로 선정성이다. 본부장도 휘하 조직에게 항상 당부했던 부분이 선정적인 사고와 말투 그리고 심지어는 식습관까지도 가지지 말 것을 당부했다. 듣는 입장에는 매우 불합리해 보였을 것이다. 먹고 싶은 맵고 짠 음식이나 고소하고 기름진 음식이 주는 풍미까지도 간섭한다고 말이다. 사실 속으로는 본부장도 먹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의도는 어디까지나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인드를 좀더 효과적으로 연상시켜주고 싶었다. 자극적인 음식 자체가 무슨 마인드에 영향을 끼치겠느냐 만은 그만큼 금융업의 마인드가 균형감각을 요하는 업종이라는 것이다. 적응되기 쉬운 젊은 20대와30대에 이런 훈련을 시켜주고 싶었다. 선정성에 너무 쉽게 적응해버리면 삶이 무료하고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앞서 말한 국제 공항에서의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은 감각적인 재미와는 매우 거리가 먼 것이다. 어찌 보면 매우 무료하고 지루한 습관이다. 그러나 이런 무료함을 추구하는 습관을 가져야 스스로의 삶이 익사이팅 해진다. 공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일은 스티브 잡스가 만든 세상을 보는 창문이 나온 이후로 똑같다. 눈앞에 기상천외한 영감을 줄 수 있는 광경이 있는데도 조그만 창을 통해 누군가에 의해 가공된 정보를 접하고자 한다. 스스로 분석하는 것보다는 타인이 분석해준 기사나 타인이 편집해준 동영상을 통해 스스로 일일 섭취해야 하는 정보의 식사를 너무 급조하려 한다. 급조된 정보의 섭취에 적응되어가면서 여러분들은 이제 스스로 무엇인가를 섭취할 손과 발등 스스로 타고난 오감에 대한 감각보다는 오히려 육감에 의존하고자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시대는 오감보다 육감이 존중 받던 시대다. 히틀러가 만약 오감을 조금만 더 중요시 여겼다면 극단적인 인종주의를 선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몇 분만의 관찰로 독일민족과 다른 민족과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음을 금세 알아차렸을 테니 말이다. 술과 담배 또는 자극적인 음식을 일체 즐기지 않으며 분별력을 지키려 했던 최악의 통치자마저도 오감을 통한 정보 습득에 실패하면서 역사상 가장 분별없는 지도자로 낙인 찍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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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이 편협해지면 어떤 재앙이 오는 지를 보여주는 영화 ‘마진콜’ 출처:구글



금융업에서 가장 금기시되어야 하는 마인드가 바로 세상을 선과 악만으로 나누는 흑백논리이다. 옳고 그름과 아름다움과 추함만으로 인간을 구분할 수 있어서는 안 된다. 금융업이 최상위의 서비스업인 이유는 그다지 편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금융업이 편협해지기 시작하면 그때가 재앙의 시작이 된다. 영화 ‘마진콜’에서 케빈 스페이시가 하는 말처럼 말이다. 예전 젊은이들이 금융업이 좋아 보였던 것은 그저 돈 벌기 쉬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업계에 들어오고 나서는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환경에 혀를 내두르고 만다. 자기가 생각했던 일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10명중 8명이다. 대부분 너무나 지루해한다. 이게 바로 방송 미디어의 악영향이다. 지금도 TV채널을 돌리면 기가 차다. 나오는 직업들에 대한 엄청난 미화들 말이다. 어느 하나 그 직업들에 대한 숨막힐 것 같은 고충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날이 서있는 군복을 곱게 차려 입은 장교나 사무실에서 마냥 농담이나 하고 있는 기자들, 화장을 곱게 한 여의사의 얼굴 그리고 매우 익사이팅한 하루를 사는 금융업 종사자들을 다룬 콘텐츠 말이다. 끝없는 기대가 우리를 끝없이 현실과 동떨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육감을 통한 기대보다는 오감을 통한 관찰과 분석이 다시 필요한 시대이다. 흑백논리보다는 차라리 회색논리가 낫다. 기회주의자나 이중인격자를 상징하는 회색논리는 사실 모두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는 세계관이다. 물론 총천연색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더욱 좋겠지만 말이다. 자신의 세상만큼은 총천연색으로 보길 바란다. 하지만 남을 바라볼 때는 회색이라도 바라보면 다행이다. 대부분이 흑과 백으로 보고 있다. 지금 당장 스마트폰을 열고 기사검색을 해보라. 어떤가. 대부분이 어떤 사실에 대한 매우 경도된 입장을 취하는 기사들 일색이다. 앞과 뒤를 자르고 자극적인 단어만을 엄선하여 올려놓았다. 자 명심하자. 금융업의 마인드는 바로 그 잘려진 앞과 뒤의 글을 연상할 수 있는 마인드이다. 이들이 왜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려 하는지 그 의도까지 알아차릴 수 있는 마음가짐 말이다. 자 이제부터 우리 세상을 회색으로 보자. 비록 그대로는 못 보더라도 무엇이 존재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88) 시즌 3 <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금융이란 무엇인가(4) 소녀의 얼굴로 찾아온 마녀, 금융 수수료

  • 입력 : 2017.12.27 10:32:59    수정 : 2017.12.27 21: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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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이라는 무기로 무장한 금융기관은 이제 정치권력만큼 강한 권력이다. <뉴욕 월스트리트> 사진: 구글



세상에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존재가 둘이 있다. 정부와 금융기관이다. 모두 일정한 주기로 따박 따박 돈을 거두어들일 명확한 명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정치권력, 후자는 신용이라는 정당성으로 말이다. 매년 대선이나 총선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정부기관의 수장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남의 돈 가지고 생색내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말이다. 도심의 길거리 마다 붙여놓은 정당 현수막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무슨 무슨 사업을 위한 예산 배정에 성공했다는 내용인데 마치 자기 돈을 기부했다는 말처럼 생색을 낸다. 사실 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쓰는 것인데 말이다. 이런 생색을 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돈이 정기적으로 꼬박 꼬박 들어오기 때문이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수지 맞는 장사를 하는 기관은 정부일 것이다.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투자를 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아무런 이윤 창출 없이 쓰기만 해도 자기 할 일을 다 한 것이니 말이다. 있는 돈을 쓰는 것도 균형 있게 쓰지 못해 파산을 하는 지방정부를 보면 인생 참 쉽게 사는 것 같다. 정상적인 기업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상상할 수도 없는 호사로움이 아닌가. 애써 밖에 나가 돈을 벌지 않고 운영만 잘해도 되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보다 한 수 더 뜨는 곳이 있다. 바로 금융기관이다. 정부기관은 그나마 언론이나 감찰기관에 의해 감시라도 당하는데 금융기관은 그야말로 내 돈이 들어가도 어떻게 쓰여지는지에 대해 알 길이 없다. 게다가 내 돈을 넣어두고 주인 행세는 금융기관이 하는 것이다. 본부장이 앞서 말했듯이 정치는 자존심의 영역이고 경제는 신뢰를 넘어 신용의 영역이다. 정부는 내 돈을 내고 돈이 아니라 주인 행세하는 자존심으로 돌려 받으라는 것이다. 반면 금융기관은 주인 행세는 내가 할 테니 너희는 신용으로 받아가란 말이다. 얼마 전 모 금융 당국의 고위 공직자가 한 말이지만, 우리가 금융회사를 통상 금융기관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누구든 금융기관을 잡으면 누군가에게 신용이라는 평가를 강행할 수가 있다. 법을 어기지만 않으면 경찰서 문턱을 평생 갈 일이 없는 사람도 금융기관과 거래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구조가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정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부여 받은 것이지만 마치 신용은 금융회사로부터 부여 받는 것같이 느껴진다. 사실 신용은 개인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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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저금통의 미소가 의미심장하다. 사진:구글



어린 시절 돼지 저금통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붉은 색 돼지는 언제나 지긋이 웃고 있다. 돈만 생기면 그 저금통에 돈을 넣고 싶은 이유가 어찌 보면 그 돼지의 미소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치 대단히 바람직한 일을 한 것처럼 말이다. 금융업이 돈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돈을 거두어들이는 일이 매우 합당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돼지 저금통의 돈은 스스로를 위해 써본 적이 별로 없다. 돼지 배를 갈라가면서 써야 할 일은 대부분 큰 일이었고 돌이켜보면 그 일에 크게 도움도 안 되는 돈이었다. 차라리 개인적으로 썼으면 알차게 썼을 돈을 말이다. 붉은 돼지의 미소는 어찌 보면 그런 소시민들에 대한 비웃음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늘날 금융권에 대한 달관의 헛웃음일수도 있다. 남의 돈 가지고 생색내기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돈을 불리니 말이다. 물론 일반 기업이 이익을 내는 것만큼 칭찬받을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문제는 이익이 고객에게 선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융 서비스의 선진화는 궁극적으로 서비스 이용자가 좀더 생산적인 고민을 할 수 있게끔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후진국형 금융서비스로 갈수록 수수료체계가 매우 약탈적이다. 말하자면 금융회사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망하게 하는 것이다. 미국의 금융사가 망했단 말을 들을 때마다 미국은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후진국 금융사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개인이 망하는 것이다. 그만큼 리스크를 회사가 떠 안았다는 말이다. 금융회사가 망하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것이 후진국이다. 어떤 회사든 망할 수 있고 망하면 또 다른 회사가 인수하거나 공적 자금이 투입되어 영업을 지속하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금융경색이 일어난 것이지 금융인프라는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서민들에게는 아무 문제(5000만원 이상 예금계좌에 넣어두는 서민이 많지 않기에)도 없다. 물론 공신력을 갖추지 못하고 외형만 은행 역할을 하는 저축은행과 같은 경우에는 문제가 좀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은행의 계좌는 대부분 일반계정으로 구성되어 운용되기 때문이다. 일반계정이라는 것은 회사의 운명과 함께 가는 돈이라는 것이다. 일반 회계기준으로 돌아가는 계좌다. 반면에 투자 수익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계좌인 특별계정은 일종의 외주 계좌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해당 금융사가 망해도 계좌 안의 돈에는 이상이 없다. 물론 투자 수익이 엉망이어서 계좌가 깡통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앞서 은행이 오랫동안 쌓여진 공신력이 필요한 기관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영을 잘 못해서 망해도 누가 대신 사고 싶은 공신력 있는 브랜드가 구축되어 있으면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다. 미국 AIG처럼 말이다. 물론 아무 기관도 안 망하고 어떤 개인도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이 최고지만 그런 일은 자본주의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절차적 과정의 정당성만을 담보로 불확실하지만 보편 타당한 결론을 당연히 받아들이기로 맹세한 사회계약이니 말이다. 확실하고 특정한 결론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고 과정상의 정당성을 찾아가는 사회주의와는 그래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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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공공의 영역이 되어버린 금융 수수료의 세계<종이돈과 금융 전산화의 총아(寵兒),ATM> 사진:구글



앞서 예를 들었듯이 각 정당들이 공공서비스를 확충했다며 길거리에 내걸은 정책 광고 현수막은 그래도 생색내기를 위한 모양새라도 잡은 것이다. 국민이 주인이다라는 것을 겉으로라도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니 말이다. 공공 서비스에도 물론 시행을 위한 적잖은 사업비가 투입될 것이다. 공적 영역에서 서비스를 위한 사업비도 매우 방만한 경향이 다분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돈을 가지고 누가 큰 부자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원래 민간업체입장에서 정부 입찰이란 게 정확은 한데 지속성은 희박하다. 뭐든 돈을 벌려면 사업의 지속성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그게 힘들기 때문이다. 바로 이 사업의 지속성이 가장 확실히 담보되는 것이 금융 서비스에 대한 사업비인 금융 수수료다. 모든 금융상품에는 수많은 수수료가 녹아 있다. 일반 급여 소득자가 유리 지갑이라고 하는 이유는 세금이 알아서 공제되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세 같은 간접세와도 같은 직접세인 꼴이다. 금융 수수료도 이와 같다. 우리가 공공기관에 가는 경우보다 금융기관에 가는 횟수가 더 많을 수록 나보다는 타인인 누군가는 부자가 되어간다. 문제는 그 부자가 공정경쟁이 아닌 독점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 문제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폐해가 독점이라고 한 것은 이미 300년전부터 제기된 사실이다. 이러한 독점 중에 자본 독점의 폐해가 가장 심각하다. 그야말로 개인은 꼼짝없이 갇히는 꼴이 된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말처럼 철인(哲人)이라는 현자(賢者)의 독재는 이상적일 수도 있지만 돈 앞에서 과연 스스로 현자(賢者)일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여러분이 ATM기에서 1만원을 뽑아도 1300원을 내야 하는 것은 사업시작에 따르는 리스크를 감안하면 합리적인 가격일 것이다. 기계설치와 관리에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 어느 시점에 가서는 1300원은 소비자입장에서는 불합리한 가격이 될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 가격이 불합리하다고 말할 길이 없다. 시장 안에서 모두가 그 가격을 받기를 강요 받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결국 사업의 지속성이 확보된 독점자본은 고객돈의 유치가 아닌 수수료만으로도 돈을 벌어간다. 물론 아직도 후진국의 경우는 이 금융 수수료 수입이 매우 적다. 아직 일반적인 개인 계좌 유치의 단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수수료 마진도 선진국에 비해 아직 낮은 편이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적으로 빠르게 상승할 것이다. 당연한 수순이다. 문제는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약탈적인 수수료인가 아니면 추가적인 가치창출을 가능하게 하는 고차원적인 금융서비스인가는 나라마다 다를 것이고 거기에 따라 각각 선진국과 후진국으로 스스로의 입지를 달리할 것이다. 금융서비스 시스템만 잘 정비해도 국가 경쟁력이 매우 향상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사회 투명성과도 직결되는 부분이다. 보통 그 사회가 투명하다는 것은 그 나라의 정치 수준만큼이나 금융시스템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종이 돈과 금융 전산화의 위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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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만큼 극도의 금융경색을 경험한 나라도 드물다. <독일은행 국유화를 선언하는 히틀러> 사진:구글



급격히 상쇄시킨다. 말하자면 공공서비스 수수료인 세금처럼 금융 수수료의 공적 관리는 그래서 필수적이다. 독점에 따른 대체제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공적 관리라는 것은 통제가 아닌 비상식의 척결을 의미한다. 즉 공정 경쟁을 통한 합리적 가격이 결정되게 해야 한다. 아울러 자본주의 역사상 전통적인 민간영역이었던 금융권이 이미 공공영역임을 명백히 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이러한 경제정책을 들고 나와 성공한 것이 바로 히틀러다.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국가전복의 상황에서도 매우 조심스럽게 여겨졌던, 서구 자본주의 역사상 처음 시도된 정부의 은행 국유화(히틀러에게 자본을 댄 영미 금융가들에게는 완전히 패닉이었겠지만) 말이다. 전세계에서 독일만큼 금융경색을 제대로 겪어본 나라도 없다. 독일의 예를 보면 금융이라는 영역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곳인지 알 수 있고 또 그것이 적절하고 합리적으로 해결되었을 때 사회전체가 얼마나 일사불란하게 역동성 있어지는지도 보여준다. 특히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겪은 엄청난 고난의 뒤에는 소수의 몰지각한 부유층 유대인의 금융 독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실제로 유대인들중 부유층은 대부분 유럽을 탈출했고 어쩔 수 없이 남은 가난한 유대인들만 엄청난 고난을 치루었지만). 문화국가들로만 모여있다고 자부하던 유럽대륙에서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폭력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을 우리는 좀더 사회시스템적으로 주목해야 한다. 인간이 가장 폭력적이 될 때는 자신이 시스템적으로 매우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자각할 때다. 인간은 혼자만의 개연적이거나 운명적인 불행에 대해서는 그것을 되도록 겸허하게 받아들이려 애쓰지만 시스템적인 불합리에 의한 불행에 대해서는 오히려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한다. 그리고 그러한 시스템적 불합리를 가장 근접하게 불 수 있는 곳이 바로 금융이라는 점을 우리는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언제라도 마녀로 돌변할 수 있는 금융회사의 이중성을 간과하고 방치한다면 그땐 이미 늦을 테니 말이다. 한번 변해버린 모습은 다시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89)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금융이란 무엇인가(5) 제로섬(zero-sum) 게임보다 더 나쁜 윈윈(win-win)게임

  • 입력 : 2018.01.03 16:11:38    수정 : 2018.01.03 21: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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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내내 매일 파티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바로 화폐(금융) 만능주의의 시작이다. (사진출처:구글)



‘본부장이 시대를 말한다’에서 공공선(公共善)이라는 말을 했었다. 영어로 직역하면 'public good'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본부장이 의도하는 뜻은 'common wealth'에 더 가깝다. 공공의 의미에서 좋은 일이라기 보다는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모두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는 뜻 말이다. 실제 'Common Wealth'를 대표적으로 쓰는 데가 영연방이다. 구성원들에게는 매우 안심이 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뭐든 이익이 될 만한 것을 나눈다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무엇보다도 특히 당부했던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독점의 폐해이고 두 번째는 화폐(금융)만능주의다.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초까지 전세계를 호령하던 스페인 제국이 급속히 쇠퇴하게 된 이유나, 비록 제국에서 보통국가로 안전하게 회귀하는 연착륙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300년 대영제국의 영화를 내준 영국이 이에 해당된다. 모두가 자국이 국제 금융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다음은 미국의 차례일 것이다. 모두가 한때 막강한 제조업 생산력을 자랑하던 나라들이었지만 점점 편하게 돈벌이 하게 해주는 화폐(금융)산업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도 이 유혹을 버티다 못해 아예 자기 나라의 막강한 화폐 마르크(전세계 최고의 신뢰도를 가진 화폐)를 포기해버린 나라가 독일이다. 정말 대단한 나라다. 아예 편한 길로 가는 길을 폐쇄해버린 것이다. 화폐만능주의가 해로운 것은 생일파티와 비유할 수 있다. 여러분도 모두 경험해봤겠지만 생일 파티 날은 큰 돈들이지 않고 스스로가 매우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이다. 여러 친구들이 선물을 들고 와서 하나씩 꺼내놓으면 마치 큰 부자라도 된 느낌 말이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이 되었을 때 오는 그 허망함 또한 기억할 것이다. 한 여름 밤의 꿈과 같은 느낌 말이다. 하지만 만약에 이 생일파티를 일 년 내내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이 바로 금융 중심지의 환상이다. 매일 파티의 주인공인 나는 사람들에게 파티를 제공해주고 사람들은 그 파티를 즐기기 위해 오히려 비용을 기꺼이 제공하려 들 것이라는 계산 말이다. 결국 난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그저 즐기기만 하고 남은 음식과 선물 심지어 파티회비까지 쌓여만 간다. 파티를 위해 부른 일용직 시종들을 마치 나의 전용 시종들로 착각하기에 이른다. 어느덧 파티의 주인공만이 아니라 파티 자체를 가지고 여러 가지 사기들을 칠 생각까지 하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이미 파티의 주인공은 스스로 무엇을 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자기가 하던 사업에도 영 관심이 없어진 것은 물론이고 사업을 보는 눈마저 매우 둔해져 버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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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통일과 바꾼 세계최강 화폐 ‘도이치 마르크]. 하지만 이것은 신의 한 수였다. (사진출처:구글)



스페인은 아예 다 때려치우고 파티만 즐기기로 한 것이고 영국은 파티를 업(業)으로 바꾼 것이며 미국은 파티에 오지 않는 친구를 왕따 시켜버릴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오늘날 금융업은 바로 이 파티에 초대할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그럴싸한 티켓을 발부하는 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아직까지도 금융 본연의 업무에 가장 충실한 나라가 스위스일 것이다. 고객이 맡긴 돈을 오로지 고객의 수익만을 위해 운용하기 때문이다. 꿩 먹고 알 먹는다거나 도랑치고 가재 잡는 식으로 좋은 게 좋은 짓을 안한다는 말이다. 이런 짓을 지구상에서 체질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독일은 그래서 금융업 자체를 내심 매우 경계하고 있다. 그 폐해를 지구상에서 가장 톡톡히 본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 금융이 가장 신뢰가 가는 것이다. 칼의 무서움을 아는 무사가 얼마나 믿음직스러운가 말이다. 독일이 세계최고의 공신력을 자랑하는 마르크를 포기하고 독일 통일을 얻었을 때 모르는 사람들은 독일이 자국의 경제를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짧은 생각이었다. 건강한 사람은 하루 밤만 자도 다시 생기 있는 얼굴을 가질 수 있다. 앞서 ‘화폐란 무엇인가’에서 본부장이 말했듯이 독일은 '화폐라는 것은 단지 우리가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내면 자연히 생겨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통일 독일 후 막대한 통일비용이 들어가는데도 전혀 놀라지 않을 수 있는 힘도 바로 그런 실체를 볼 수 있는 눈 때문이다. 돈 자체만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면 독일은 절대 통일을 하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21세기의 대한민국이 막대한 통일비용이 두려워 통일을 주저하는 것처럼 말이다. 공공선(공공선) 또는 'common wealth'는 물위의 것 즉 돈만을 바라보는 자에게는 상상이 되지 않는 단어다. 다같이 성공할 수 없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는 것 자체를 증오하기 때문이다. 화폐만능주의가 주는 무서운 저주는 바로 니가 죽어야 내가 산다라는 신념이다. 포카를 치더라도 모두가 즐겁게 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눈앞에 돈을 보지 않고 그들의 얼굴과 나의 얼굴을 함께 보고 연상하는 것이다. 눈이 밑으로 떨어지고 돈에만 고정되는 순간 돈도 잃고 함께 치고 있는 친구들과도 원수들이 된다.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언제나 마녀가 될 수 있고 한번 마녀가 되면 다시는 소녀가 될 수 없는 것이 돈(금융)이기 때문이다. 결국 국제금융은 앞에 말한 '파티'와 같고 국내금융은 '포카'와 같다. 본부장이 하고 싶은 말은 그 파티를 생일날만 해야 된다는 것이고 포카는 최대한 모두가 즐길 수 있게 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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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이 보기에는 모조리 적발해서 징계를 내리고 싶었던 장면이다. (사진출처:구글)



국제금융은 어차피 힘의 논리이기에 불법이라는 것 자체를 따질 게재가 없다고 치더라도 국내금융에서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아예 이들이 포카를 칠 때 각자 카드를 그려서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서로가 서로의 패를 그저 웃으면서 바라봐줄 뿐이다. 영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보면 금융 상품 영업사원 개개인들의 엄청난 밀어내기(현장에서 그런 비슷한 것들을 모조리 적발해온 본부장이 보기에는 완전한 부실계약이다) 실적들을 포상하기 위해 사무실에서 매우 과도한(?) 축하파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일이 이야기하기에도 낯뜨거워 그냥 넘어가겠다. 영화 ‘마진콜’에서는 영업실적에 눈이 멀어 애초부터 잘못된 상품설계로 휴지나 다름없는 부실 금융 상품을 다른 고객사들에게 떠넘겨버리고 그저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거대 금융기업 회장인 제레미 아이언스의 얼굴은 경악을 금치 못할 뻔뻔스러움이지만 사실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의 눈에는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선수들이 사기꾼(영화에서 그는 첫째가 되던지 아니면 둘째 똑똑하던지 그것도 아니면 마지막으로 사기를 치라고 한다. 사실 사기를 치라는 적극적 방조이다.)이기 때문이다. 허위계약영업 문제는 금융권의 고질적인 병폐이고 이제는 이런 영업행태를 가정하지 않고서는 연초의 사업계획서자체를 작성하지도 못 할 정도이다. 그야말로 종이 위의 숫자를 맞추어 구색을 맞추자는 말이다. 금융권에서는 모든 직급의 사람들이 실적에 의해 평가됨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하위직급인 경우는 투명하게 평가를 하기가 쉬운데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불투명해진다는 것이다. 평가의 잣대를 조금만 바꾸어도 최하의 실적이 하루아침에 최고의 실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유혹을 떨칠 수 있는 사람들을 금융권의 고위직에 앉혀야 하는데 문제는 이게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본부장이 ‘정본부장의 직톡’ 25번째 글'인격자(人格者)가 되어라'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이 말은 무조건 사실이다. 하지만 유독 금융권에서는 훌륭한 사람이라도 이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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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모두가 즐길 수는 있어도 모두가 이길 수는 없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된다. (사진출처:구글)



허위계약영업은 회사의 이익에 정면으로 반하는 명백한 '배임행위'이고 사회적으로 공신력을 지켜야 할 금융기관이 절대 범해서는 안되는 '사문서 위조행위'이다. 이러한 행위는 보통 적극적인 지시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적극적 방조'라는 좀 더 덜 불법적으로 보이는 행태로 자행된다. 금융업계에서 2인자라든지 오른팔이라든지 하는 분들은 바로 윗사람을 위해 언제라도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는 자를 말한다. 문제는 이게 범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그저 과도한 영업행위를 한 것처럼 훈계의 대상으로 모양새를 그럴싸하게 갖추는 것이다. 모든 게 독점적인 시장행태 때문에 나오는 결과이다. 쉽게 말하자면 금융권은 카지노 장과 같다. 게임 장 입장이 허락되어 칩을 교환해준 사람만 게임을 할 수 있다. 돈이 아무리 많다고 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카지노 장이 오히려 공정할 수가 있다. 카지노 주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든 게임 참가자들을 동등하게 철저하게 감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게임장의 주인이 없다. 최대한 합법적으로 포장해서 시장의 모든 금융회사들이 현상유지를 하게 도와준다. 결국 피해는 칩을 바꿔줘야 하는 카지노가 보는 것이다. 그리고 바꿔준 그 카지노의 돈은 모두 국민 개개인의 돈이다. 이건 겉보기엔 윈윈(win-win)게임으로 보일지 몰라도 사실 올다이(all-die)게임이다. 공공선(Public good)에 위배되는 그들만의 공공선(Common wealth)인 것이다. 너무나 안락하고 좋은 단어인 'Common Wealth'가 결국 그 영역 밖의 존재들의 희생 위에서 번영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본부장은 오히려 회사가 망하고 고객 개인이 망하지 않는 사회가 선진국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금융당국에서 들으면 식은 땀이 날 이야기이다. 회사 하나 망하면 그 뒷처리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그냥 죽지 말고 식물인간이라도 살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비용은 누군가가 낼 테니 말이다. 금융권을 간절히 지망한 많은 초년생들이 막상 회사에 들어와 좌절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금융인으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정의(正義)는 물론이고 정의(定義)조차 없으며 선(善)은 고사하고 선(線)도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서류상의 정확성만이 남아있다. 자리보존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위직급들이 밤을 세워가며 할 서류작업이 많아지는 것이다. 정말 불쌍해서 못 봐 줄 지경이다. 도대체 이 전산화된 시대에 왜 이렇게 서류작업이 많을까 의아해할 것이다. 이상은 여러분의 상식적 상상에 맡기겠다. 모든 게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절차로 진행된 것이라면 순식간에 끝날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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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는 탁월함이나 정확함이 아니라 올바름이어야 한다. (사진출처:구글)



금융인은 엘리트이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엘리트는 탁월함이나 정확함이 아나라 올바름이어야 한다. 금융은 가재잡고 도랑을 치는 것까지는 용납하더라도 최소한 그 작업을 스스로의 개념과 철학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이다. 나중에 그것에 대해 물을 때 본인만의 확고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금융업은 최고의 서비스업이고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공신력 있다고 믿어지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전국민이 다 그러는데 왜 나는 안되나 라는 말이 허용되어서는 안되는 신성한 업(業)이다. 마치 법조계나 교육계처럼(요즘 여기도 장난 아닌 일탈 중이다)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말을 많이 하는 자가 높게 평가 받지 못하는 이유는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전통적인 금기(禁忌) 때문이다. 우리사회의 몇몇 영역(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은 법전에 적혀있는 것만 법이 아니라 전체사회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 또한 법이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금융권이다.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강요할 위치에 있는 모든 영역은 다 자신만의 모럴과 개념을 따라야 하고 그 모럴과 개념은 상식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 선진금융은 도심 한복판에 최첨단 빌딩을 몇 개 더 짓는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금융권 종사자가 국제적 평균을 월등히 상회하는 도덕적 책임감을 가지고 세계 금융인들이 그 나라의 금융인들에게 존경심을 느낄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사람의 입 소문이라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일주일이면 전세계가 알 테니 말이다. 비록 변두리 허름한 사무실이지만 고객의 돈에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이 배운 공정한 룰의 범위 안에서 자신이 기꺼이 책임질 재량권을 소중하게 행사하는 그런 금융이 바로 선진 금융이다. 유리 빌딩에 멋스러운 명품 슈트에 명품 넥타이를 매고 자신의 재량권을 오로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만 쓰고 고객을 위해서는 그저 '예스' 또는 '노'의 도장만 찍을 줄 아는 이기적인 금융이 후진금융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선진금융이 정착되면 자연스럽게 선진사회가 올 것이다. 그들이 그 사회발전의 롤 모델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롤 모델이 간절히 그리운 시대다. 이 시대에 오로지 출세하기 위한 금융권이 아닌 올바름의 기준이 되기 위한 금융권이 하루 빨리 오길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 진정한 우리사회의 공공선(公共善), 'Common Wealth'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90)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부자(富者)란 무엇인가(1) 스스로 빛나려는 주체성(主體性)의 화신(化身)

  • 입력 : 2018.01.08 10:14:02    수정 : 2018.01.08 20:5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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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까지 동화책에서 보았던 좋다는 상징물은 다 모였다. ‘로스 차일드 家의 상징’ 사진출처: 구글

이 세상 돈 많은 사람 무지 많다는 얘기는 귀따갑게 들었을 것이다. 사실이다. 돈이 아주 없는 사람보다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이 세상에 부자가 많은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죽지만 돈은 안 죽기 때문이다. 죽은 부자는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한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는 말이 나온 이유가 바로 이거다. 본부장 경험상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무일푼으로 죽지는 않더라. 어딘가 자기도 모르는 금융상품은 물론이거니와 빚을 물려 주려면 재산도 물려주어야 하기에 어떻게든 남은 금전은 발생한다. 혹자는 태어나는 자가 죽은 자보다 많다고 하지만 인류 역사를 통찰해보면 근래 300년동안 늘어난 인구가 지금의 지구상 인구이다. 사실 부는 살아 있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인간이 발명하고 발견해내는 것만 가치 있는 것이지 우리가 모르는 것의 가치는 추정만 할 뿐 부가 아니다. 결국 지난 300년의 인구 증가로 인해 만들어진 어마어마한 부의 양과 그들이 남기고 죽은 부가 누군가에게 집중된 것들의 총량의 증가가 바로 부자들이라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이다. 부자가 3대를 못 간다는 말은 사실 헛말이 아니다. 여기서 3대란 보통 200년을 말하는 것이다. 로스 차일드家가 세상에 부자의 이름을 밝힌 것도 1800년대 들어서이고 크게 성장한 게 나폴레옹 실각(워털루 전쟁 때 영국군 총사령관 웰링턴 장군과의 인연으로 가문의 전 재산을 나폴레옹 패배에 걸고 대박이 났다)때부터이니 이제 200년이 다 되어간다. 워낙 큰 부자이니 일반적 평균보다는 오래가지 않겠는가 생각할 수 있겠으나 어림없는 소리다. 히틀러가 멸망한 것은 아직 망할 때가 안된 로스차일드를 상대로 너무 서두른 탓이다. 하지만 지금 유럽을 보라. 도이치 자본의 막강한 힘을 말이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단행한 것이 그 첫 시그널이라고 보면 된다. 혹자는 부자가 삼대를 못 가는 이유를 부자 아버지를 둔 자식들이 방탕해서 그렇다고 곧잘 말한다. 웃기는 말이다. 아버지가 부자라서 방탕할 사람은 부모가 가난해도 방탕하다. 요즘 금수저가 잘나가는 이유는 금수저들도 열심히 살기 때문이다. 부자가 200년을 못 가는 이유는 유리하던 시대가 바뀌기 때문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본부장이 보기에는 200년정도마다 역전된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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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부터 지금까지 케인즈학파가 경제학의 주류를 이루게 된다. 즉 돈은 그냥 돈일 뿐이게 된 것이다. ‘세계 대공항’ 사진출처:구글



얼마 전 조선 영조(英祖) 시절 이인좌의 난(亂)을 주제한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다. 여러분은 사극을 매우 싫어하니 아마 거의 보지 않았을 것이다. 학창시절 본부장은 역사를 재미있어 했지만 당시에 같은 반 친구들 중에도 역사 시간을 끔찍하게 싫어한 친구들이 많았다. 보통 이유가 오로지 한가지다. 현실 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일견 사실이다. 살아보니 옛날에 역사 좋아했던 친구들보다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물질적으로는 훨씬 잘 살고 있다. 본부장만 예외다. 그 이유는 본부장이 누구도 쓸 수 없는 이 글을 쓰는 이유와 일맥상통하다. 바로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성공할 수 밖에 없는 필승의 법칙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성공까지는 개인의 역량에 달렸겠지만 말이다. 이 이인좌가 난을 일으키고 나서 영남(경상도) 세력은 박정희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을 때까지 권력의 근처에도 못 가게 된다. 대부분이 서울 출신들이 서울을 장악하게 된다. 지금하고는 완전히 반대로 말이다. 얼마 전 서울시청 고위공무원 출신을 보니 대부분이 경상도를 비롯한 지방출신이라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인 것이다. 당시가 1728년이고 5.16쿠데타가 1961년이니 거의 30년 에누리하고 200년이다. 1929년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기에 30년의 시간차가 이해도 될 것이다. 당시 경제 대공황이 일어나 전세계 경제가 한번 뒤집어진 것을 감안한다면 200년 주기 설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1929년을 기점으로 뉴욕의 마천루에서는 이전에 잘나가던 분들이 많이들 빌딩옥상으로 조용히 올라가 계단을 통하지 않고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1층으로 내려오셨다. 그 여파[돈이나 유가증권 같은 종이가 아니라 실물자산(real asset)을 찾아 영토가 넓은 미국은 삽을 들었고 그렇지 않은 독일과 일본은 총을 들었다]는 고스란히 전세계로 퍼졌고 일본과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자가 30대를 못 간다는 말을 사람들이 하고 다닌 것은 그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특수한 여러 일들을 보고 일반적인 원칙을 발견해나가는 것을 ‘귀납적 사고’라고 한다. 그리고 귀납적 사고가 모든 상식적 사고의 시작이고 이후 연역적 사고(일반적 법칙에서 특수한 사실을 유도)로 발전해서 두 사고(思考)가 합쳐져 ‘logical thinking’, 즉 논리적 사고의 바탕이 됨은 본부장이 이미 ‘본부장이 시대를 말한다’에서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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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나 만큼 열심히 포카를 치고 있다는 ‘붉은 여왕 효과. 하지만 '스스로 빛나는 자'의 패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 사진출처:구글



본부장이 유치하게 200년 경제 주기설 같은 도참(圖讖)사상을 설파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부자의 위치가 바뀌는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자 함이다. 경제적 포지션의 변화가 다가올 때 그 기회를 잡는 사람들을 우리는 승자(winner), 즉 부자(富者)라고 말한다. 자수성가로 부자가 되는 것도 물론 어렵지만 부모에게 재산을 물려받아 부자가 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경쟁자들인 형제들도 문제지만 부를 물려주는 당사자인 부모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주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아직 경험이 적어 금융권 안에서 회자되는 부잣집들의 속사정을 잘 모를 것이다. 매우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다. 세상에 부모의 뜻에 따르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한가지도 없기 때문이다. 물려주는 부모도 자신이 어렵게 만든 부를 결코 쉽게 물려주지 않는다. 그 많은 형제들 중 누구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까? 바로 물려준 재산을 잘 지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더욱 불려줄 것 같은 자식일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그대로 있는 것을 필연적으로 거부한다. 열역학 제 2법칙(엔트로피 이론)에서 세상 만물은 가만이 있어도 소멸을 위해 돌진하기에 부단히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 쪽박을 차게 된다는 것을 부자 아빠들은 잘 알고 있다. 옥스퍼드 수학과 교수인 루이스 캐럴이 그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언급한 ‘붉은 여왕의 가설 또는 효과’도 근현대의 지식인들이 성공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우리의 부모들에게 어려서부터 귀아프게 들은 '남보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불변의 가르침 말이다. 여러분들이 밤하늘의 우주를 바라보면 반짝이는 별들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별에 집착하는 이유는 별은 스스로 반짝이기 때문이다. 우주시대가 열리면서 우리가 그토록 찬양하는 푸른 행성인 지구는 사실 별이 아니다. 그리고 우주에서 보면 푸르게 보이지도 않는다. 특수 망원경으로 촬영을 해서 푸르게 보이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다 아는 얘기일 것이다. 부자라는 존재는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다.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앞서 ‘돈이란 무엇인가’에서 이야기 했듯이 돈은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매개물일 뿐이다. 따라서 에너지가 만들어지지 않는 곳에서는 돈은 즉시 빠져 나오려고 한다. 평가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부자아빠들이 자식들을 바라볼 때나 회사의 면접관들이 면접자를 바라볼 때 그리고 돈 가진 투자자가 투자 대상을 물색할 때 마음속으로 가지는 기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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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가장 밝은 별은 북극성이 아니라 시리우스다. 스스로를 태워 엄청난 빛을 발하는 ‘시리우스 성단’ 사진출처:구글



에너지라는 것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는 영원한 동경의 대상이고 또 가지고 싶은 매력적 대상이다. 사람들의 착각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돈 자체가 에너지라고 말이다. 돈이면 다 된다고. 그러면 그 돈은 어디서 온 것인가? 돈은 인간이 좋아할만한 에너지를 찾아내는 사냥개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영화 ‘메트릭스’에서 인간을 찾아내려는 촉수로봇들처럼 말이다. 그 사냥개들은 끊임없이 에너지를 찾아 다닌다. 요즘 세상은 사냥감은 희박해져 가고 있는데 사냥개만 많이 돌아다니는 꼴이다. 사냥감이 없으니 사냥개도 줄여야 정상인데 오히려 사냥개를 더 늘렸다. 인간의 에너지에 대한 욕망을 절대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 사냥개는 먹이를 많이 먹여야 하는 비용이 드는 존재였으나 요즘은 사냥개가 먹지도 않고 돌아다닌다. 필요하면 그냥 만들어내는 로봇 사냥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붙어있는 사냥개가 많을수록 부자처럼 보이는 것이다. 실제 사냥개 수가 주인에게 준 에너지 획득의 기쁨은 알 수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매우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냥개가 아직 사냥감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에너지를 만들어낼 가치 있는 존재를 찾은 사냥개들이 그에게 붙어 돌아오지 않으니 말이다. 또한 돈을 많이 가질 수는 있어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언제부턴가 에너지를 만들어 낼 가치 있는 것들인지 확실치가 않은 것이다. 요즘 돈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이제 알겠는가. 스스로 돈이 없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하는 엄청난 소비를 나부터 멈추면 된다. 자 문제는 바로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이다. 탐욕이 스스로가 무엇이 필요한지 망각하게 만든 것이다. 스스로 빛나는 자의 인생은 언제나 고난이다. 부자의 길은 조직생활을 잘하는 직장인의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대기업에 사원으로 들어가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임원을 하고 결국 대표이사를 한다는 것을 부자(富者)가 되는 길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조직에서의 성공 특히 금융권에서의 성공은 철저하게 자신을 버리는 고행의 길이다. 반면에 부자(富者)가 되는 길은 스스로만의 브랜드(영역)를 가지고자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또다른 고행의 길이다. 금융인(人)과 금융주(錢主)-본부장이 근무했던 회사에서는 이런 분들을 보통 전문용어로는 'Global Investor'라고한다-는 틀린 것이다. 금융인은 금융주(錢主) 즉 투자자의 영원한 직원일 뿐이다. 앞서 이야기한 <금융이란 무엇인가>가 직업적인 금융인의 시각을 다루었다면 지금 이야기하는 <부자를 말한다>는 본부장이 금융권에서 바라본 이 시대 전주(錢主) 즉 부자들의 시각을 살짝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첫번째 정의(定義)자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이 바로 부자(富者)는 대부분 '스스로 빛나는 자(者)'라는 것이다. 즉 스스로 빛나려는 주체성(主體性)의 화신(化神)말이다.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91)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부자(富者)란 무엇인가(2) 작은 즐거움에도 사로잡힐 준비가 된 어른스러운 아이

  • 입력 : 2018.01.15 14:37:14    수정 : 2018.01.15 20: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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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차일드家의 5개의 화살뭉치 이야기는 사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출처:구글



로스 차일드家의 상징물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5개의 화살묶음으로 된 그림이 하나 있다. 로스 차일드 형제들의 단합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화살 때문에 나중에 미국 달러화 뒷면에 있는 화살과 동일시하여 로스 차일드가 미국을 조정한다는 음모론 까지 대두된다. 이런 로스 차일드는 독일어로 '붉은 방패'인 롯트쉴트를 영어식으로 부른 이름이다. 한마디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람이 아니고서는 'Rothschild'를 모두가 로스(Roths)家의 아이들(child)인 줄 알았을 것이다. 로스 차일드 이야기를 자꾸 하는 이유는 이왕 부자를 알려면 부자의 왕을 모델로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다. 이름에 이미 방패가 있으니 주로 화살을 통해 그들의 공격성과 협동을 강조했을 것이다. 원래 협동이라는 것 자체가 공격성을 내포하고 있으니 말이다. 수렵시대이나 농경시대에는 자녀가 큰 재산이었다. 집안에서 일손은 언제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수렵이든 농사일이든 많이 공들일수록 더 자기 주머니로 들어오는 노동집약적(산업시대가 와도 이 패턴은 계속 이어진다.) 일이기에 좀더 쳐다보면 볼수록 할 일이 더 많아지는 법이니 땅을 가진 아버지의 눈에 아들들의 몸놀림은 그저 느려터져 보일 뿐이다. 정보화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을 농경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산업화를 통해 부를 쌓은 기성세대가 이해 못하는 이유다. 움직일 수록 더 기회가 생기고 그럴 수록 부(富)는 더 늘어만 간다. 절대로 가만이 있을 수 없는 이유다. 젊은 세대들이 멍하니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 기성세대들이 보기에는 그 시간에도 자기 것을 만들 수 있는 부(富)가 우주공간으로 사라지는 것만 같을 것이다. 본부장이 보기에는 두 진영의 마음가짐 모두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둘 다 이해도 된다. 관점의 문제인데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속도를 보는 관점이다. 젊은 세대는 빠른 오답보다 느린 정답을 더 원한다. 그만큼 옳고 그름의 문제에 민감하다. 물론 자신의 기준에서 말이다. 나이든 기성세대는 그냥 빠른 행동을 원한다. 그게 정답이든 아니든 아무 문제가 안 된다. 오로지 즉각적 행동이 곧 정답이다. 어떠한가? 기성세대가 이런 사고방식을 가졌을 것이라고는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여러분에게는 부모이거나 윗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속마음을 절대 발설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들의 속내를 재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아직까지 부자들이란 분들은 여러분들보다 먼저 산 기성세대와 또 그들보다 미리 산 옛날세대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들이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가 없다. 그들이 이미 그런 옳고 그름에 관심이 없이 행동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항상 서로 답답했던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그 답답함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생존본능으로 완전 무장된 기성세대들의 논리적 타당성은 점점 퇴색되어갈 것이다. 모두가 생존 이후의 삶에 더 큰 관심을 가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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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유니콘 사이에 화살을 불끈 쥔 손이 그려진 방패밑으로 ‘협동, 성실(자조), 근면’.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새마을 운동 문구다. 청년들은 잘 모르겠지만. 출처:구글



자본주의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19세기이후부터 부자의 가장 대표적인 표준이 된 로스차일드 모델을 많은 후발 금융 가문들이 따랐다. 산업혁명으로 기업이 노동력 확대문제에서 해방되고 나니 남은 것은 기계를 사서 돌릴 자본이 필요했다. 아마 이때 금융 자본이 돈 무지하게 벌었을 것이다. 생산자는 생산에 전념하다 보면 어느 순간 돈에 대한 개념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영역확대에 치중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원래 기업이 이익을 내야 하는 집단이긴 하지만 그것이 최종적 가치는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은 무분별한 영역 확장의 우(憂)를 범하게 된다. 이런 리스크를 막기 위해 주주들로 구성된 이사회를 두는 것이다. 부자들 중 금융업을 시작한 부자들이 가장 원조부자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돈이 먼저 있던 사람이 나중에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금융을 제공했을 테니 말이다. 결국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유럽에 기반을 둔 금융회사들의 비율이 압도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전세계적으로 국적에 대한 관념이 가장 무의미한 것이 종교와 금융이다. 로마 카톨릭에서 국적은 하위개념일 뿐이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세계 어느 곳을 불문하고 종교는 끊임없이 개종의 대상을 찾고 금융은 돈 투자하거나 빌려주고 결국 거두어들일 대상을 찾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엄청난 번영을 이루었던 일본이 가장 힘들어 했던 것도 금융이었고 현재 G2라고 불리는 중국이 앞으로 더욱 곤욕을 치를 분야도 금융일 것이다. 자본주의 성숙단계에서 가장 시간을 요하는 부분이 무엇이겠는가. 기술개발이나 기계를 만들고 아니면 아무 것도 없는 공터에 공장을 확충하고 돈을 빌리는 노력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힘들기 때문에 지구상에 대부분의 나라가 후진국으로 머무는 것이다. 유교문화권으로 전통적으로 근면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들었던 경험이 있는, 노동력이 풍부했던 동아시아 지역이 그래서 그나마 신흥국으로 부상한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성숙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요하는 것이 바로 금융이다. 금융은 그야말로 그 사회의 복합문화다. 돈은 종교나 인종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따지지 않고 찾아가지만 금융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혼자 있으면 다 똑같다. 하지만 그들만의 시스템이 만들어진 후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백인, 흑인, 동양인이 세 명만 같이 살면 문제가 없을 공간에 각각 10명씩 살면 문제는 달라진다. 모여 사는 존재이기에 인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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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을 통해 반드시 승부를 가려야 한다. <선택의 일반화(一般化)> 출처:구글



유럽이나 미국은 금융의 성장기간이 길다. 그리고 그 기간 중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전쟁 그리고 탐험이다. 전쟁과 탐험은 인간에게 언제나 선택을 요구한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의 기로 말이다. 잘못된 선택은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가문 전체의 파멸을 의미하기에 언제나 신중해야 했고 또 신속해야 했다. 유럽에서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게 함락되면서 시작되고 30년전쟁으로 촉발된 기존질서의 해체와 새로운 질서와 함께 찾아온 것은 엄청나게 긴장된 환경으로의 변화였다. 이전 질서에서는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소수의 희생양이라는 것을 통해 다수의 대중들이 직접적인 생존경쟁에서 벋어나 있었으나 새로운 질서에서는 다수의 대중이 그대로 생존경쟁이라는 긴장된 환경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 이후로 400년동안 서구는 자본주의 성숙에 가장 중요한 부분인 금융의 성숙화를 경험하게 된다. 바로 '선택의 일반화(一般化)'다. 대영제국 발전의 기초가 두 가지가 있다. 하이드 파크와 엘리자베스 1세다. 전자는 영국신사들이 선택하기 전 거닐었던 공원이고 후자는 역사의 기로에 선 조국에 내밀어진 운명의 선택지를 받아 들고 과감하게 동그라미를 친 군주이다. 그리고 대영제국 확장의 첨병이 2가지가 있다. 영국 금융조직과 MI6다. 금융 기관과 첩보 기관이 얼마나 선택에 일반화되어 있어야 하고 또 신속하게 결단해야 하는 기관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로스차일드家가 유럽대륙에 뿌려놓은 정보망이 만약 정확한 판단을 통한 선택을 내리지 못했다면 결코 나폴레옹의 패배를 미리 예상하고 오늘날의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동아시아 국가들이 겪는 가장 큰 스트레스가 바로 선택의 고통(苦痛)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이들은 선택이라는 시험지를 받아들여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는 물론이고 개인들도 안정 또는 정체된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제한된 방어적인 활동을 해왔다. 국가 엘리트들 또한 국가간의 국제적 관계나 국내적 사회시스템을 주체적으로 바꾸려는 의지도 부족했지만 그럴만한 한계상황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이러한 구조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웠던 일본의 경우도 선택의 순간에는 여지없이 순조롭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단과 선택은 틀린 것이다. 결단이란 무리적인 행동에 기반을 둔 결정행위라면 선택은 일상적인 사고방식의 문제이다. 그래서 결단이란 정치적인 영역인 것이고 선택이란 다분히 일상적인 생활에 기반한 사회적인 부분이다. 일본이나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에서 특히 편의점 문화가 발달하고 있는 것도 바로 어려운 선택을 회피하고 쉬운 선택을 하고 싶은 이 지역 국가들의 사회적 단면이다. 아시아 문화는 이렇게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게끔 답을 정해주는 문화에 역사적으로 너무나 익숙해 왔다. 그리고 그러한 쉬운 선택이 결국 옳은 선택이라는 것이라는 자신도 모르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처럼. 자본주의적인 삶은 사실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삶과 일치한다. 그래서 궁극적 행복을 위한 절차적 고행이나 희생을 신성시한다.(스티브 잡스가 동료인 매즈니악과 조직 내 불화를 일으킨 요인도 사실 사물을 바라보는 종교적 시각차였다. 그는 동양의 선(禪) 사상에 근거해서 주로 생각했다.) 이슬람교들이 가장 기독교를 비판할 때 주로 쓰는 비난이다. 자타르타 공항에서 만난 한 사우디아라비아 신혼 부부가 초롱초롱한 눈을 뜨고 한 말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정말 이들 말대로 천년 만에 이슬람의 전성시대가 다시 올지는 미지수(未知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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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해 본 경험상 눈이 동그랗게 튀어나오고 코가 크며 입이 도톰한 관상이 모험심이 강하다. <프랜시스 드레이크> 출처:구글



본부장이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를 말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역사상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가장 글로벌화된 세대이다. 민족이나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자신만의 내면적 휴머니즘에 근거해 움직인다. 따라서 언제든지 선택가능하고 무엇이든지 결단할 준비가 되어 있다. 다만 그것이 보편적인 기준에 올바르다면 말이다. 얼마나 훌륭한 말인가? 얼마 전에 결정된 브렉시트는 영국 내 기성세대들의 옛 추억을 위해 젊은 세대의 희생을 강요한 것이다. 400년 동안 지속되어온 국가주의 같은 편가르기는 이제 무의미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에서 더 이상 추가적인 생산적인 가치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도 1대를 넘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생체적인 부모마저도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일반적인 객체로 인식될 것이다. 반대로 생체적인 가족보다 더한 존재가 출현할 것이다. 반려동물이 그런 현상을 대변한다. 이러한 형식적인 가족의 해체가 결국 국가의 해체로 일어지기까지 순식간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족도 인정 안하는 개인이 국가를 인정하겠는가. 이것은 단순한 동기부여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지금의 기성세대들이 험한 꼴을 보지 않으려면 매우 잘 해야 한다. 하고 싶은 얘기 너무 많이 하지 말기를 당부 드린다. 반면에 젊은 M세대들은 이제 '마음속의 이야기를 절대 다 하지 않는다'는 19세기 대영제국 시절 영국신사들이나 갖는 어른스러움마저 체득한 상태이다. 여기에 가장 무서운 무기가 하나 더 있다. 너무나도 사소하고 작은 즐거움에 사로잡힐 줄 안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심각하면 진다고 했다. 이들만큼 거기에 잘 부합되는 세대도 없다. 잡스가 만들어놓은 전세계가 하나로 어딘가로 이어지게 한 웜홀이 본부장도 사실 무섭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의 기성세대들이 귀따가울 정도로 늘 하는 말처럼 '이것도 현실이다'라는 것이다. 다만 이것은 기성세대의 부자들이 익숙한 극복할 대상으로서의 현실이 아니라(극복하기에는 그 끝을 알 수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오히려 올라 타고 일단 가 보아야 할 미래인 것이다. 마치 지금은 너무나 익숙한 비행기 여행이 40년전만 하더라도 하늘에 기도를 하고 타야 할 운송수단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굶어 죽기 직전인 영국을 등지고 대서양을 출발해 전세계 일주를 했을 때 그의 마음 속에는 사실 배고파도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조촐하지만 너무나 따듯한 고향의 벽난로가 간절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그 벽난로를 포기하게 만든 것은 미지의 보물뿐 아니라 사실 배위에서 맡아보는 시원한 바다 바람이었을 것이다. 어떤 시대이든 처음과 나중에는 공통점이 있다. 2000년전, 1000년전, 400년전, 300년전, 200년전 그리고 앞으로의 올 시대의 처음에는 언제나 '작은 즐거움에도 사로잡힐 준비가 된 어른스러운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어느 시대의 마지막에서 지루함과 무료함에 몸부림치는 풍요로운 세대를 생각하지 못할 세상을 보여줄 것이다.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92)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부자(富者)란 무엇인가(3) 대담, 예리, 솔직, 소박하게

  • 입력 : 2018.01.23 14:13:27    수정 : 2018.01.23 16: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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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그의 저서 ‘의상예찬(衣裳禮讚)’에서 독일인의 근성을 대담, 예리, 솔직, 소박으로 정의한 ‘토마스 칼라일’ 사진출처:구글



토마스 칼라일은 이례적으로 경쟁국 독일을 예찬한 근대 영국 지식인으로 유명하다. 그가 쓴 ‘프랑스 대혁명’(친구인 JS 밀에게 초고를 맡겼다가 실수로 소실되어 그 방대한 책을 처음부터 다시 쓴다. 이를 계기로 더 큰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은 나중에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토마스 칼라일이 독일인의 네가지 근성(믿거나 말거나로 외계인이 독일인이 무서워 지구침공을 미룬다고 할 정도이고 실제 미국 내 다수의 지식인들도 인정하는 부분)을 정의한다. 대담, 예리, 솔직, 소박이다. 앞의 두 단어는 '전사의 기질' 부분이고 뒤의 두 단어가 '시인의 영혼' 부분이다. 본부장은 타고 난 승부사적 기질 탓에 승리도 역전승을 싫어하고 성공도 우연한 성공(로또나 상속 같은)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물론 평가는 한다. 세상에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도토리 키재기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본부장의 소신이기에 다르게 평가를 하는 것이다. 이겨도 압도적으로 이길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고 전체 인생이나 사업에 있어서 성공을 위한 계획도 80%이상 달성확률로 짜야 한다. 우리가 부자를 말하면 보통 유대인, 아랍인, 인도인, 페르시아(이란)인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인을 주로 예를 드는데 사실 그 뒷맛이 시원하지가 않다. 말하자면 이들에 대한 지역사회 사람들의 시선이 그다지 곱지는 않다는 말이다. 마치 계산에 있어서 치밀하고 흥정에 있어서 악착같음(사실 이중에서 유대인은 계산은 치밀할지 모르나 흥정의 달인 같지는 않다)에 대해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주변사람에게 욕먹어가면서 부자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민족들인데 이상하게 그 나라 자체는 그다지 부자인 듯하지는 않다. 국민들이 그렇게 이익에 밝고 흥정에 달인이라면 나라전체도 부국이 되어야 할텐데 말이다. 오히려 작지만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그나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이 소위 잘사는 나라군에 속한다. 아무리 큰 부자도 처음에는 소상인으로 시작해 시장안의 숨겨진 가치를 발견해내면서 차츰 부자가 되어간다.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던 아라비아 및 오스만 투르크 제국, 동로마가 멸망하기전 아시아와의 무역을 독점한 이탈리아 상인들을 생각해보자. 그 옛날 전세계 무역을 틀어쥐고 있던 나라들이 왜 지금은 아무런 존재감도 없는지 궁금할 것이다. 돈이라는 것은 가치를 좇는 사냥개일 뿐이다. 스스로가 가치가 되어야 그 사냥개들이 날 버리지 않고 다시 찾아 온다.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 내는 상인은 로스차일드(처음에 유럽에 5개 지점, 큰아들부터 막내까지 프랑크푸르트, 빈, 런던, 나폴리, 파리 순으로 시작한 금융 상인이었지만 나중에 최고 금융 브랜드로 성장)처럼 거부(巨富)이 되는 것이지만 남의 가치만을 찾아 다니는 어리석은 상인에게 집 나간 사냥개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차이는 결국 지속 가능한 가치(sustainable value)를 만드느냐에 달려있고 운에 맡긴 간발의 역전승이 아니라 압도적 승리를 위해 준비해온 덕택이다. 본부장이 판단하기에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를 자극할 불변의 가치는 인간적 한계상황의 극복을 담은 드라마틱 콘텐츠와 우주 또는 신(神) 등의 초자연에 대한 경외를 담은 신비주의적 콘텐츠이다. 그 밖의 어떤 형태이든 지속 가능한 가치에 대한 선점만이 스스로를 역사 속에 사라지는 티끌로 만들지 않을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것이 확보되지 않는 한 그게 누구든 움켜쥐고 있는 현재의 부가 모래처럼 흩어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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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완전 패망하여 전 국토가 갈갈이 나뉘어진 나라를 추스려 다시 일어나 스스로 빛나는<독일> 사진출처: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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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이후 독일이 걸어온 수많은 영광과 치욕을 묵묵히 지켜본 ‘브란덴부르크 문’ 사진출처:구글



본부장이 독일을 부자의 예로 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가치창출을 통해 부가 형성된 사례로 가장 우수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전세계의 사냥개들이 독일로 모여들고 있다. 군사적 패권이나 압도적 광활한 영토를 통한 자급이 가능한 경제구조, 그리고 주목할만한 통합과정으로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 글로벌 캐릭터, 지속 가능한 국가 사회적 가치를 넘어 불변의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자세, 청교도적 건국이념에 따른 '신의 섭리에 대한 복종'의 태도까지 겸비한 미국을 보면 독일의 사례가 좀더 분명해진다. 30년 전쟁으로 구석기시대로 돌아간 대지에 국가란 형체는 나폴레옹 몰락 때까지도 갖추지 못했다. 독일이라는 나라의 재건도, 프랑스 나폴레옹에게 혼쭐 난 주변국들 특히 영국이 유럽에서 패권국이 나오지 못하게 하고 러시아의 유럽 팽창을 막고자 추진한 것이다. 후에 히틀러의 집권을 영미계 자본이 초반에 도운 이유도 파시즘보다 볼셰비키 즉 공산주의가 더 싫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독일분단(동서로 분리되어서 망정이지 만약 남북, 남쪽의 바이에른과 북쪽의 프로이센은 지금도 원수인데 그 둘로 갈렸으면 지금도 통일 못)이 단행되고 다시 통합되는 과정도 오로지 주변국들의 이해관계에 좌지우지 될 수 밖에 없던 불운한 국가였다. (프랑스는 독일 통일을 끝까지 반대, 유럽의 안정을 바라는 영국과 미국은 중립이고 연방해체위기의 러시아는 방조였다) 하지만 지난 400년동안의 이러한 국가적인 부침 속에서도 끊임없이 살아 역동 쳐 다시 일어나는 독일의 비결이 특별한 능력을 타고나지 않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가장 현실적으로 답습할만한 부자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주변의 도움이나 시대적인 운이라는 외생적 변수에 종속되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의 내재적 역량에 모든 포커스를 집중하여 지금도 지속 가능한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 독일의 현재를 보라. 본부장은 독일의 문화적, 인종적 우월성 같은 불필요한 논란이 될 만한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현대의 문화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것은 오히려 프랑스일 테고 인종적 우월성이라는 관점은 이미 본부장이 ‘본부장이 시대를 말한다’에서 말했듯이 피는 어떠한 것도 결정짓지 못한다는 본부장의 신념에 비추어 천박하기 이를 때 없다. 유전적인 문제는 개인의 건강상태나 불치병의 발병에는 영향을 줄 수 있어도 인간이 천부로 물려받은 (오성, 悟性)에 의한 열정, 인성, 균형감각 그리고 판단력 등에는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고 본부장은 다시 한번 여러분께 주지하는 바이다. 따라서 혹시 여러분이 본부장이 정서적 독일 편향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절대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지금 분명한 것은 오로지 독일이라는 국가를 통해 우리가 가져야 할 부자의 조건을 배우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적절한 처신일 것이라고 본다. 본부장은 누차 강조하지만 지구 안의 사건 사고에 대한 어떠한 편견을 가지지 않는 외계인의 관점에서 ‘본부장 시리즈’를 집필 중이다. 따라서 본부장의 출신 국가를 비롯한 모든 태생적 조건도 ‘본부장 시리즈’ 집필방향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밝히는 바이다. 오로지 목적은 한가지로 우리 청년세대들이 물밑의 이해관계를 보고 사실이 아니라 진실에 눈을 돌림으로써 균형감각을 갖춘 '실전형 인재'가 되길 바랄 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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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엄마들이 아이들의 잠을 깨우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 2012 런던 올림픽 개막 공연 사진출처: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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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면 아이들을 재우는 엄격한 가정 내 규율을 가진 영국. 2012 런던 올림픽 개막 공연 사진출처:구글



독일인들은 자식들에게 유독 인색한 부모로 유럽에서 유명하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자식들에게 충분한 만큼은 고사하고 일반인 만큼도 경제적인 지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가정마다 사정이 틀리겠지만 다른 문화권에 비하면 매우 인색한 편이라고 한다. 영국도 독일 만큼은 아니지만 자식들에게 엄격하다. 얼마 전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 행사에서 아이들을 재우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전세계 사람들이 이 장면을 이해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영국은 아이들을 8시에 재운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아이들이 밤늦도록 게임이나 만화영화를 보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에 비하면 매우 엄격한 가정풍경이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나 에밀리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보면 영국보육의 엄격함이 짐작이 된다. 유럽은 북쪽으로 갈수록 강인함과 자립심을 강조하는 국가문화가 있고 남으로 갈수록 조금 의존적으로 흐른다. 그리스사태만 문제가 아니라 스페인, 이탈리아까지도 사실 재정 적자 문제가 심각하다. 모두가 너무 좋은 게 좋은 식이다. 현지에 가보면 남자들이 무슨 조각미남처럼 잘 생겼지만 가만히 행동거지를 보고 있으면 매사에 무엇이든 전념한다기보다는 살짝 들떠있다. 겉멋이 들었다고 할까. 무엇이든 단번에 핵심을 휘어잡아야 한다. 월드시리즈에 나간 선발투수가 야구공을 다부지게 집어들 듯이 말이다. 본부장은 엄격한 규율 안에서 무조건 일을 많이 하고 근면 성실해야 한다는 노인 같은 취지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미 지식창조사회를 넘어 지식공유사회이기에 예전처럼 노동집약적으로 일하는 것만 능사가 아니다. 모든 것이 공유되고 검색되는 초지식 사회에서 가장 희소가치가 높은 것은 내적 균형과 대치(對峙) 상태의 유지다. 여러분이 이것만 유지된다면 조금 과장해서 일하지 않고 얼마든지 놀아도 본부장은 걱정하지 않는다. 노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감을 잃어가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번 잃은 자신감은 다시 찾기가 매우 어렵다. 영화에서 보면 실의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지옥훈련을 하고 철인3종경기를 하면서 잃었던 자신감을 찾아오는 것처럼 나오는데, 물론 사람에 따라 도움이 되겠지만 일반적으로 자신감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자신만의 완성된 박자를 잃지 않는 것이다. 일본의 검성(劍聖) 미야모토 무사시가 말한 '상대를 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박자로 이기는 것'이라고 한 말은 여러분들이 꼭 마음에 새겨야 할 명언이고 본부장도 항상 가슴에 담고 사는 말이다. 박자를 찾으면 자신감도 돌아온다. 자신만의 박자를 찾아라. 그걸 찾게 해주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적절한 긴장 유발(독일이나 영국 부모가 그토록 모질게 자식들을 다룬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들은 아시아국가 부모들의 유난스러운 과잉보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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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가장 잘 적응해가고 있는 클래식 장르 ‘발레’ 사진출처: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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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 없이 '전사의 기질(氣質)과 시인의 영혼(靈魂)'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예술 장르 ‘발레’ 사진출처:구글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내적 균형상태가 무너지지 않게 지켜줄 절대적 개념의 발견이다. 앞서 운을 띄운 '전사의 기질과 시인의 영혼'이란 단순히 멋있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전사(戰士)'와'시인(詩人)'은 모두 자신만의 원칙(이것을 본부장은 최고의 가치, Crown Jewel이라고 한다)의 완성이라는 목표를 위해 인생을 걸고 사는 사람들의 전형(典型)이다. 전사(戰士)는 조직의 지시에 의해 누군가와 기계적으로 대담하게 대결해야 하고 또 반드시 이겨야 한다. 타협이 없는 게이머인 것이다. 비굴함이나 안락함이란 있을 수 없고 오로지 자신의 몸과 오감을 예리하게 준비해두었는지를 매일 체크해야 하는 사람이다. 또한 '시인(詩人)'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사물의 깊이를 파악하고 본인만의 육감을 끌어내고, 그것을 솔직하게 말하기 위해 주위의 누군가에게 비겁한 모습을 보이기를 꺼리기에 언제나 자신을 소박한 환경에 두고자 한다. 이 둘은 모두 스스로 날이 선 상태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부자가 되려면 하버드 MBA를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전사의 기질과 시인의 영혼'을 터득하고 몸으로 항상 준비해야 한다. 사냥개들이 따르는 주인은 자신을 좋아만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릴 준비가 된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당당하게 갈 길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해 대담하게 책임지는, 오감이 생생하게 살아있고 육감이 번득이는 주인이다. 여러분들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그와 친한 친구가 되길 바란다. 당신에게 부를 가져다 줄 유익한 정보로 가득 차 있을 테니 말이다. 돈은 안락함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함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안전함은 균형에서 나오고 그 균형은 언제나 절묘한 '힘의 대치(對峙)'(‘본부장이 시대를 말한다’ 프랑스 편에서 말한 절묘한 양면성과는 지향하는 목적이 다르다. 프랑스적 양면성은 오히려 세련된 멋을 위해 위험함을 추구함이지만 균형을 위한 절묘한 힘의 대치는 오히려 안전함을 추구한다)에서 나오는 것이다. 여러분의 경제적 성공은 사실 내적인 힘의 대치 곧 균형인 '전사의 기질과 시인의 영혼'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여러분이 세계 역사로부터 배울 것은 연대별 왕들이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오로지 유사(有史)이래로 벌어진 수많은 힘의 대치와 균형을 통해 여러분의 내적인 힘의 대치와 균형을 가늠하고 추스르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여러분이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은 바로 이걸 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런 눈을 가지게 만드는 최고의 마음가짐인 '대담', '예리', '솔직', '소박'을 책상머리에 크게 적어 두길 꼭 당부한다. 본부장의 당부를 곧바로 실행한다면 반드시 여러분의 인생이 부자(富者)의 길로 달음질 할 것을 굳게 약속하는 바이다.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93) 시즌 3 <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부자(富者)란 무엇인가(4) 가르치지 않고 리드한다

  • 입력 : 2018.01.30 11:40:13    수정 : 2018.01.30 20: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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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은 가능한 많은 책을 보길 바란다. 나이 들면 읽고 싶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미 세상의 때가 너무 묻었다’ 사진출처:구글



삼국지에서 제갈공명만큼 배짱 좋은 투자자도 드물다. 아무 밑천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호기롭게도 천하를 삼등분 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비록 실패했지만 그 유명한 출사표를 던지고 위 나라에 대한 북벌(北伐)을 기획하며 거의 멸망에 가깝게 몰아세웠으니 말이다. 일견 매우 대담성 있는 인물 같지만 사실은 사마의가 평가했듯이 매우 조심성 있는 사람이다. 가진 것이 없는 자가 큰 성공을 이룰 유일한 방법은 극도의 조심성과 대담성뿐이다. ‘본부장이 시대를 말한다’에서 말했듯이 초한지는 '조심성'이 빛났고 삼국지는 '대담성'이 빛났다. 부자(富者)가 되는 길에 이 두 가지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부자가 더 큰 부자가 되는 길은 지금까지 이룬 것을 버리는 길밖에 없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가 더 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오버 하라는 말이 아니다. 공명이 대담할 수 있는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준비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유비가 삼고초려 할 정도로 스스로 출사를 꺼렸던 이유는 사실 너무나도 출사를 바랬기 때문이다. 옛말에 '때리는 시어머니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다' 과도한 겸양은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이다. 고사한 만큼 더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명은 너무나도 나가고 싶을 만큼 스스로 준비된 상태였다. 굳이 공명의 사례를 들지 않고 본부장의 경험으로만 봐도 어린 나이에 많은 책을 읽으라는 말은 너무나 옳은 말이다. 평생 공부라고 하지만 40대가 넘으면 책을 보아도 집중이 잘 되지 않을뿐더러 애써 집중해서 읽더라도 그 뜻이 깊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만큼 세상의 때가 많이 묻었기 때문이다. 호기심 많은 어린 시절 읽어둔 책 한 권이 나이 들어 읽는 수백 권의 책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공명의 경우가 바로 이러하다. 신출귀몰한 공명의 책략이 재미있어 삼국지를 손에서 놓지 못한 기억이 한번씩은 있을 것이다. 아니면 드라마라도 말이다. 그러한 공명의 신기에 가까운 전략의 매력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전개된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억지스러운 것이 없는 준비된 자의 여유로움 말이다. 다 한가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엇이든 미리 유심히 보고 마음속에 차분히 자신만의 언어(단어)로 준비한 것이다. 여러분들같이 젊은 나이에 너무 판에 박힌 것들이나 응용된 결과물을 많이 보면 정신건강에 치명적이다. 특히 요즘 TV를 장식하고 있는 선정적이고 일회적 흥미위주의 방송프로그램은 정확히 말하자면 삼국지 중 공명과 완전히 반대되는 캐릭터인 원소나 조진과 같은 사람으로 만들 가능성이 매우 크다. 피상적인 사실(事實)에 과도하게 겁을 먹거나 반대로 필요이상으로 고무되어서 물밑의 진실(眞實)를 보지 못하고 대사(大事)를 그르치거나 가벼운 인정에 얽매여 자신에게 진정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을 몰라보는 사람으로 말이다. 본부장이 일전에 한 토론 방송에 대해서 취준생이 가장 보지 말아야 하는 프로로 지목한 이유는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출연진의 인격적 완성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로지 그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표현의 편리성'에 더 큰 문제를 두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너무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솔직하다는 것이 모두 좋은 것인 줄만 알 것이다. 나의 마음 속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이 상대방이나 제 3자 그리고 사회 전체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나 자신의 잘못에 관한 것 외에는 없다. 심지어 나 개인의 잘못도 그것의 발설이 선량한 제3자에게 피해를 줄 소지가 있거나 사회의 선량한 미풍양속에 위해를 끼칠 수 있다면 그것마저도 자제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의도가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거나 개인적 이익에 부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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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 초반부터 80세가 넘은 나이까지 옷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발전시켜온 샤넬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사진출처:구글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도 말이지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도 말이다. 인간에게 말이란 의복과 같다. 의식주중에서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만들어 주는 것은 의복이다. 말은 의복처럼 반드시 격식에 맞게 구사되어야 한다. 마치 자신이 옷을 벗고 싶다고 거의 알몸에 가까운 복장으로 도심을 활보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말은 인간을 가장 멋지고 고귀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최고의 축복된 선물이기에 너무나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공명은 이 사실을 어린 시절 초야에 묻혀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말이라는 것이 주는 엄청난 위력을 말이다. 말은 입 밖으로 나올 때는 남을 흥분하게 만들고 스스로 간직하면 나를 대담하게 만든다. 흥분과 대담은 틀리다. 흥분은 침착함이 수반되지 않은 불안정한 감정상태이다. 제갈공명이 극중에 화내는 장면은 세 곳 정도에 불과하다. 첫째 이릉 전투에서 유비의 70만대군이 혹서(酷暑)기를 피해 습지에 진을 쳐서 이를 노린 육손의 화공에 괴멸되었을 때, 둘째 한중 정벌 중 가정전투에서 마속이 사마의에게 패하여 유명한 읍참마속을 실행할 때, 마지막으로 상방곡에서 사마의 군대의 괴멸을 눈앞에서 놓치고 한탄할 때이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웬만하면 분별력을 잃지 않는 사람이 공명이었다. 공명의 가공할 분별력의 근원은 세상사의 허실(虛實)과 기정(奇正)의 이치를 터득하였고 그것의 최고의 무기인 말의 허실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말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자신감도 좌절감도 희망도 절망도 주는 매우 가공할 무기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은 일체유언조(一切唯言造)라는 말과 같다. 모든 인간의 마음은 말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천하의 군웅인 관우도 형주가 함락되었다는 말에 혼전하고 분별력을 잃고 만다. 비록 중요한 요충지라 할지라도 사실 형주는 또 다시 찾으면 되는 것인데 말이다. 한번 허물어진 분별력은 다시 돌아오기가 어렵다. 말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말을 아껴야 한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기가 빠진다는 말은 당연한 것이다. 기가 빠진 사람은 균형감을 잡을 수 없고 결국 자신만의 경도된 생각에 의지하고 만다. 정치인이나 유명논객들이라는 사람들이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스스로 균형을 잡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본부장도 정당의 전당대회장이나 정부의 경축일 기념행사에 가끔씩 꼭 참여한다. 무슨 허세를 부리거나 시간이 남아돌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유명인사라고 하는 분들의 좋은 이야기도 들으면서 스스로의 분별력을 일깨고 균형감을 더욱 새롭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간혹 한 나라의 리더 노릇을 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스스로의 균형이 무너진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바로 그들의 말에서 섞여 나오는 그들의 자화상이다. 말을 많이 하면 기(氣)가 빠지는 이유는 자신의 말을 하지 않고 남의 말을 하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가 미리 보고 생각해보고 경험해본 말을 한다면 절대로 그러한 불쾌한 느낌을 상대방에 주지 않을 것이다. 공명이 유비는 물론이고 삼국지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말하는 양에 비해 질이 월등히 좋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논란을 가져올 애매하거나 불필요한 말을 전혀 하지 않았고 오로지 일반적 상식과 대의명분에 근거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나간다. 그러한 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당장 눈앞의 비난에 겁을 내지 말아야 한다. 명심해라. 당장 눈앞의 비난은 시간이 가면 오히려 스스로에게 득이 됨을 말이다. 당장의 안위를 위해 비난을 피해가는 순간 여러분은 소위 '루저의 삶'을 살게 됨을 반드시 명심하기 바란다. 물론 요즘 정치인들처럼 '의도적인 분란'을 일으키는 모습에서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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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사회적 롤 모델이 되기에 충분히 준비된 인격자에게만 유효하다. 근대 영국 리더들의 사상적 바탕이 된 ‘자조론(自助論)’ 사진출처:구글



시대를 통틀어 대부분의 부자들은 수다쟁이가 거의 없다. 공명처럼 말이 주는 위력을 알아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할 말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저 습관이다. 일부러 말을 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의지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린 시절부터 길러오거나 나이 들어 스스로 어떠한 계기에 의해서 대오각성(大悟覺醒)한 습관 말이다. 명심해라. 이들이 누군가에게 가르치듯 이야기하는 경우를 잘 본 적이 없다. 보통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자는 스스로 성취욕이 없는 자라고 보면 된다. 스스로 성취욕이 없는 자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열정이 바로 성취욕이다. 지구상의 어떤 부자도 성취욕으로 그 자리에 올랐다고 보면 맞다. 여러분들이 취직이 안돼 걱정하고 있는 걸 본부장도 잘 알고 있다. 사실 취직해서 월급 받고 승진해서 윗자리에 오르는 것이 누구나 바라는 것일 테지만 그것이 부자가 되는 길은 아니다. 우리가 방송에서 보는 대기업의 높은 자리에 오른 분들도 몇몇을 제외하고는 경제적으로 빠듯하게 산다. 본부장은 마음만은 부자란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여러분들이 현실에서 진짜 부자로 살았으면 좋겠다. 여러분 중 한 명이 취직하면 1명의 소득이 생기지만 한 명의 부자가 생기면 여러 명의 소득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인색한 스크루지 같은 부자도 한 명 이상은 고용을 하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다시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을 보면 주인공 스크루지가 차라리 요즘 졸부들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남에게 인색하지만 자신에게도 엄격한 모습에 사실 내심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남에게 인색한 것도 물론 정서적으로는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자신에게는 관대하다 못해 흥청망청 하면서 남에겐 인색한 모습은 모두의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본부장이 원하는 진정 아름다운 부자의 모습은 과거 자신의 성공담만 늘어놓으며 남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나 반대로 남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인색한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묵묵히 리드하려 하는 자이다. 굳이 큰 조직의 고위 관리자가 되어서 누군가를 이끌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진정한 리더는 조직의 리더가 아니라 스스로 팔로워를 만들고 그들을 리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조직체계나 수당구조라는 틀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관계에서 나오는 팔로쉽은 가짜 리더쉽에 의한 결과다. 건전한 자본주의는 수완이 좋아서 남들보다 먼저 얻은 정보로 먼저 자리 차지한 사람이 성공할 수 없는 사회다. 그리고 이미 21세기는 그런 사회로 진입되었다. 열린 사회는 누군가가 만든 그럴싸한 정치적 용어가 아니라 이제 진짜 리얼이다. 이 시간을 빌어 본부장이 진정한 보수와 진보에 대해 정의해주마. 진정한 보수란 본인이 이미 성공하였다 할지라도 기존의 고착화된 시스템에 의지해 스스로 체제에 숨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공정 경쟁의 가치를 존중하여 언제든 출발선으로 다시 올 자신이 있는 전사 같은 의연함을 말하고, 진정한 진보는 공정한 경쟁은 당연한 것이고 그 이상의 불평등까지 개선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기존의 시스템을 해체할 수 있는 시인 같은 솔직함이라고 보면 옳다. 요즘 마치 보수는 가진 것을 안 내놓으려고 발버둥치는 욕심쟁이로, 진보는 일안하고 얻으려는 게으른 사람으로 서로 매도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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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성', '커리어' 그리고 '돈'을 가진 과거세대의 부자를 상징하는 ‘다스 베이더’ 사진출처: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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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팔로워 모두와 함께 웃을 수 있는 미래세대의 부자 ‘올바름의 리더들’ 사진출처:구글



기성세대가 가진 부(富)의 세가지 원천은 '희소성', '커리어' 그리고 '돈'이다. 이 세 가지가 막강한 기존 부자의 핵심 가치인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여러분에게도 기회가 오기 시작했다. 앞에서 본부장이 말한 것처럼 부자가 스스로 힘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기 때문이다. 사실 기존 부자의 힘은 절대 약화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힘을 내부에서 지탱할 내면의 힘을 함께 키워 가느냐이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나오는 어둠의 힘은 '다스 베이더 경"이 인정했듯이 실로 막강하다. 하지만 어둠의 힘의 가장 큰 약점은 닫혀있다는 것이다. 닫힌 세상에서는 지속적인 힘의 순환이 불가능하고 결국 스스로 너무 강해지다가 파멸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창이 열린 세상이 도래했다. 한번 열린 창은 이제 다시 닫히기란 어렵다. 이제는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려는 자는 성공하기 힘들다. 기계적인 가르침이란 언제 어디서든 얻을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이제 스스로를 희생하고 리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예전처럼 남몰래 숨어서 이익만 취하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태도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 진정성을 갖춘 팔로워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열린 사회라는 것은 급조된 기회주의자에게는 재앙이고 미리 갖추어진 자에게는 기회이다. 지금 젊은 여러분들은 기성세대의 성향은 빨리 파악하되 절대 그 성향을 따라 해서는 앞으로 부자가 될 수 없다. 기동성이 돈이 되는 시절은 세상이 열리기 전의 시대이다. 이미 모바일 세상이 기동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가진 기동성을 가지고 승부하려 해서는 승산이 없다. 여러분들에게 지고의 비책을 전해주마. 향후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스스로에게 투자를 하도록 해라. 땅이나 집 같은 부동산 투자나 주식투자는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관심만 갖고 있어라. 하지만 육체적 노력이나 재산 그리고 시간을 오로지 본인의 내면적 깊이의 완성과 통찰력 그리고 커뮤케이션 플랫폼 구축에 전념하길 바란다. 스스로 빛나는 자는 혼자 생각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강력한 팔로워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팔로워는 예전처럼 우매하거나 나약하지 않다. 이제 21세기의 팔로워들은 유심히 보는 눈을 가지고 명확하게 사물을 관찰할 수 있다. (본부장이 방송이나 책으로 하도 강조 했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팔로워를 설득할 방법은 스스로 인격자가 되는 길 외에는 없다. 요즘 부동산 광풍이 부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자신의 인격이나 통찰력과는 상관없는 오로지 투입되는 돈의 양으로만 승부할 수 있는 묻지마 투자의 마지막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이전 시대의 포커판에서는 먼저 좋은 자리에 앉거나 무조건 많은 돈을 가지고 크게 베팅하는 자가 승자가 되었지만 앞으로의 포커판에서는 인간적인 유쾌함으로 구성원들과 호탕하게 즐기며 새벽까지 분별력(이런 사람들이 자본의 힘 앞에서 많이들 무릎 꿇어왔다)을 유지할 수 있는 준비된 자가 승자다. 열린 세상에서 가장 큰 희소성은 올바름이란 말이다. 400년전 정해진 신분의 시대에서 노력의 시대로 세계질서가 바뀌었다면 이제는 아무리 훌륭한 실력의 소유자도 능력적으로 부족하지만 올바름의 소유자에게 무릎 꿇게 되는 시대로 바뀔 것이다. 이유는 인간은 언제나 시대적인 희소성의 가치에 손을 들어주기 때문이다. 올바름의 소유자란 그냥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 자신이 가야 할 것을 준비하고 자신이 왜 그런 길을 가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반문하고 어떻게 그것을 이루어 왔는지를 주변의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만이 팔로워들의 자발적 동의를 얻어 구태여 가르칠 필요 없이 리드할 수 있는 21세기의 부자의 모습이라고 본부장은 확신한다.

민우 이사장의 直talk(94)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부자(富者)란 무엇인가(5) 희소성(稀少性)과 대중성(大衆性)을 겸비하라

  • 입력 : 2018.02.05 10:33:45    수정 : 2018.02.05 20:3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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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인 실수로 최고의 위치에서 아버지 보탄으로 부터 내쳐지는 발퀴리 중 아홉번째 딸 ‘브릔힐데’ 사진출처:구글



전세계적인 열광적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는 독일의 근대 오페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인간은 권력과 사랑,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다. 즉 사랑과 야망의 딜레마 말이다. 80년대 드라마 제목으로 쓰였을 법한 문구다. 사랑을 선택하면 권력을 내놓아야 하고 권력을 선택하면 사랑을 내놓아야 하는 딜레마 말이다. 하지만 ‘발퀴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등의 작품을 보면 대부분 그가 말한 것의 반대로 순차적 해피엔딩(한번은 야망으로 한번은 사랑으로) 끝을 낸다. 동시에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결국 두 가지의 성공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오페라 ‘발퀴레’에선 무자비한 전쟁의 여신이자 최고의 신 보탄(북유럽의 제우스)의 막내 딸인 브릔휠데와 영웅 지크프리트와의 숙명적 사랑을 이야기하며 아버지의 총애를 받던 9번째 발퀴레가 사소한 실수로 버림받았다가 영웅 지크프리트를 만나 사랑의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는 지칠 줄 모르는 야망에 대한 저주로 영원히 죽지도 못하고 바다를 떠돌아야 하는 운명에 빠졌다가 7년에 한번 뭍에 올라 자신을 사랑해주는 여자, 젠타의 헌신적 선택을 받아 사랑으로 구원받는다는 내용이다.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후에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유령선 '프라잉 더치맨'의 주요 모티브가 된다. 여러분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개인적인 사랑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특히 부(富)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략결혼을 하든 아니면 연애와는 담을 쌓고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것으로 말이다. 세계최초로 아카데미상과 노벨상을 모두 받은 19세기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성공은 냉혈한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만큼 여러분이 알고 있는 부자와 실제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본부장이 보기에 가장 안타까운 말은 경제적 성공을 위해 결혼이나 사랑을 미룬다는 청년들의 말이다. 흔히들 하는 말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결코 그 말을 지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의 결말은 보통 자신들의 소중한 청춘을 다 소진하고 나이든 중년의 시기를 홀로 맞이한다. 보통은 돈이 없이 말이다. 대부분 그토록 부을 거머쥐겠다고 사랑이나 결혼까지 포기해가며 무엇을 했나 후회를 한다. 요즘은 부모님들도 그런 자제들을 말리지 않는 추세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기도 하겠지만 남들에게 보이기에 멋지게 결혼을 시키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세월은 완성된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또한 더 명심해야 할 것은 사랑과 결혼은 즐기거나 안식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적인 고생을 스스로 선택하는 행위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에 문제시되는 결혼이나 출산 기피현상은 그러한 전형적인 접근방식의 오류에서 나오는 문제이다. 영화 ‘매트릭스’ 에서 인류가 빨간 알약을 먹고 리얼한 세상을 사는 것을 마다하고 파란 알약을 먹고 거짓된 삶을 선택하는 이유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은 부자가 되거나 크나 큰 권력을 거머쥐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내게 주어진 삶을 감사히 살아 내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저마다 가진 가치가 있다고 본부장은 굳게 믿고 있다. 여러분에게 그런 가치를 제대로 보게 하기 위해 지금껏 ‘본부장이 말한다’시리즈를 집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본 수많은 부자들을 종합해보면 그 모양새나 취향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 무엇보다도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신만의 사랑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행운은 못생긴 얼굴로 찾아온 미녀라고 했다. 자신의 진실한 사랑의 감정을 믿고 눈에 콩깍지가 덮여 선택한, 남이 보기엔 못생긴 얼굴의 그녀도 나중에 보면 나의 인생 및 경제적 성공에 둘도 없는 역할을 하는 복덩이가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인생의 선택에 감사해하며 남은 인생을 잘 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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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적 역사마저 평면으로 담아내는 다차원적 눈을 가진 피카소의 ‘게르니카’ 사진출처:구글



부의 성취는 절대 2차원적 산술 공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반드시 3차원적 기하 공식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3차원적 기하공식이란 보이지 않는 면을 반드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을 계기로 인간의 머리는 3차원을 넘어 다차원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아직 인간의 눈은 2차원적이다. 아무리 3차원 도형이라도 인간의 눈에 보이는 부분은 평면으로 보이게 된다. 우리가 지구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방법은 인공위성에서 보는 우주만원경이 아니라 메르카토르 도법을 이용한 평면 지도뿐이다. 전체를 보고 가늠할 수 없는 지도는 실제적 사용에 있어서는 무의미하다. 그래서 영화에서 보면 지구본을 보고 항로를 결정하지 않는 것이다. 스티브잡스의 아이폰이 성공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잡스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입체가 아니라 면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인류의 머리를 다시 2차원적 평면으로 돌려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 장의 엷은 면으로도 우리는 지금 세계를 굽어보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한쪽 면에서 보면 못 생겨 보이는 것이 입체로 보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가정을 보여주는 미술사조가 바로 파블로 피카소가 창시한 입체파다. 피카소의 그림이 인정을 받게 된 이유는 어찌 보면 아인슈타인 덕분이다. 19세기말 20세기초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핵심은 우리가 보는 현실세계가 과연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다. 대중들이 느끼는 그 무엇인가의 불명확한 실체를 그저 간단한 용어로 명확하게 정의해준 대가(代價)로 그는 자신은 물론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론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에 예술적으로 부응한 대표적인 사람이 파블로 피카소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그런 시각에 대한 정확한 정의(定義)다. 야수파의 앙리 마티스 또한 그런 맥락에서는 같고 오히려 예술적 가치는 더 한층 깊음에도 이름을 입체파로 짓지 않았기에 영원한 라이벌이라고 하지만 마치 피카소에 버금가는 화가처럼 되어버렸다. 초현실주의의 살바토레 달리 또한 실력에 못지않은 자신만의 시각적 정의(定義)에 대한 선점으로 과분한 인기를 누렸다. 그만큼 이름 즉 캐치프레이즈의 선점은 매우 중요하다. 여러분들도 향후 이점을 꼭 가슴에 새기고 살기 바란다. 사조나 유행은 언제라도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먼저 선점하고 길러온 자신만의 캐치프레이즈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인생에서 한번은 성공한다. 인생은 원래 한번 이상 성공하기 쉽지 않다. 자신의 명운을 어디에 두느냐는 각자 개인적 선택의 몫이다. 본부장도 이 부분은 선뜻 정의하기가 힘들다. 다만 웬만하면 20대는 40대처럼 살고 40대는 20대처럼 살기를 당부한다. 20대에 성공한 사람도 40대에 와서는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을 수 있고 40대에 성공하더라도 60대까지 성공을 유지하고 있을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평생을 실패의 리스크가 없이 사는 방법이 바로 앞서 말한 ‘2040,4020’의 방식이다. 검성 미야모토 무사시의 말처럼 '내가 쥐고 있는 칼 때문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움직이는 박자 때문에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은 실로 명언이다. 박자를 잡아내는 방법에는 스스로를 정의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스스로를 정의하기 싫은 사람은 결국 어떠한 시도도 할 수가 없다. 그를 움직이는 생의 박자가 없기 때문이다. 피카소가 입체파를 정의했을 때 사람들이 비록 처음에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음은 자명하다. 8살짜리 그림을 그리기 위해 60세까지 그림을 그려왔다라는 그의 말처럼,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림을 그려놓고 걸작을 그려놓은 것처럼 그가 행동했던 이유는 자신이 선택한 캐치프레이즈, 즉 정의(定義)에 대한 지극한 예(禮)를 다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5만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 중 대부분이 입체파라는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그린 그림들이다. 대충 계산해봐도 하루도 쉬지 않고 그려도 불가능해 보이는 작품의 수이다. 피카소가 자신이 선택한 시각의 정의(定義)에 대해 얼마나 진정성 있는 자세를 보였는지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가 그런 확고한 자세를 보였기에 그는 남이 보지 못하는 또 다른 면을 생각하며 3차원의 입체(立體)를 2차원의 면(面)으로 하얀 도화지의 여백을 채워나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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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성과 대중성이라는 양 날개를 겸비하고 양손이 비어있는 자만이 갈 수 있는 길 ‘부자(富者)의 길’ 사진출처:구글



‘부자의 길’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의 저주를 받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나 발퀴레가 겪은 고난의 근원은 보이는 대로 행했기 때문이다. 본부장은 ‘본부장이 말한다’에서 실전형 인재의 첫번째 스탭으로 미리 보는 사람이 될 것을 당부했다. 미리 보는 사람은 지금 보는 사람이 겪어야 할 혼란을 겪지 않기 때문이다.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만든 해양지도는 이미 수많은 탐험가들이 미리 본 세계의 모습이다. 그 지도가 있었기에 오늘날 세계는 실로 하나가 될 수 있었고 60억 인구가 조금이나마 부의 평균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물론 세계화의 공과(功過)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말이다. '디지털화'와 '글로벌화' 그리고 '도시화'로 요즘은 필수적으로 느껴지는 '실시간'이라는 본능적 유혹은 우리에게 분별력의 부재라는 저주를 남겼다. 19세기 빅토리아 시절 영국 신사들이 무언클럽에 혼자 앉아 미지근한 위스키에 시원한 얼음을 넣어주려는 노집사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현실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분별력을 흐트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실시간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는 없다. 부자의 길은 한쪽으로는 '희소성'이란 날개를 그리고 또 한쪽으로는 '대중성'란 날개를 펴고 양손이 비어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길이다. 여기서 ‘희소성’이 바로 자신만이 선택한 사랑에 대한 정의(定義)고 ‘대중성’이 바로 세상에 대한 야망의 표출이다. 한 쪽의 날개만 가지고는 절대 정확한 방향을 유지할 수 없다. 자신만의 사랑의 대상이 절대 돈이나 권력 같은 야망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한쪽 날개가 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반드시 사랑을 선택하고 그 사랑을 위해 시간과 돈 그리고 정열을 쏟는 것을 아까워하지 마라.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인생을 후회하는 자의 대부분은 자신의 시간을 헛되게 쓴 것에 대한 부분이 가장 크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 그 시간의 낭비나 시도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대부분 자신만의 사랑이 없었던 것에 대한 한탄이다. 본부장은 이 사랑의 대상이 꼭 이성(異性)이라고는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부자는 불행하다. 본인 스스로 뿐 아니라 주의의 사람들 누구도 그러한 상태를 높게 평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행복하고 불행하고는 모두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결정 난다.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도 ‘스스로의 만족’ 그리고 ‘관계의 만족’ 이 둘을 모두 얻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여러분이 진정 부자의 길로 들어서서 삶의 끝까지 그 길을 통해 나오고 싶다면 희소성과 대중성의 날개를 절대 명심하길 바란다. 성공이 냉혈한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한 버나드 쇼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명예와 부를 거머쥐고90세가 넘게 살다 죽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묘비명에 써달라고 한 말이 지금도 세상에 회자된다. '우울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쇼의 비명(碑銘)은 사실 그의 진실된 비명(悲鳴)일 것이다. 인생은 먼저 잡는 자가 임자라는 말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본부장이 말한 ‘2040,4020’은 젊은 여러분이 사랑과 야망을 모두 거머쥐고 진정 후회 없는 부자의 길을 가길 바라는 본부장이 여러분을 위해 드리는 '승자(勝者)의 화수분(河水盆)(원래는 진시황 설화에 나오는 하수분(河水盆)의 변형이다)'임을 꼭 명심하길 바란다.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95)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빚이란 무엇인가 (1) 빚의 개념이동(槪念移動)

  • 입력 : 2018.02.12 13:53:36    수정 : 2018.02.12 20: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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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와 중세 유럽의 기독교와 중동의 이슬람교까지 대부업을 죄악시했고 심지어 샤를 마뉴 대제는 아예 법으로 대부업을 금지시켰다. ‘대부(貸付)업의 해악(害惡)’ 사진출처:구글



지금은 금융업 자체가 최고의 돈벌이지만 500년전 대항해 시대가 시작될 때, 금융의 원래 목적은 금융업 자체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산업들이 스스로 돈을 벌게 도와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산업진흥이라는 거창한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개인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에 오로지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서민들의 구휼(救恤)말이다. 그래서 중세에서 금융업은 주로 수도사들이 담당을 했다. 그만큼 영리가 목적이 아니라 어려운 서민도 돕고 수도사들이 오로지 신앙에만 전념하며 수도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금융업의 시작이었다. 당시는 종교인을 제외한 그 밖의 계층{왕, 귀족(기사), 농민}이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를 매우 금기시하고 또한 천시했다. 하지만 사회가 원활히 돌아가려면 누구든 이 부분(오늘날 금융업 종사자들은 자신들이 사회 윤활유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을 담당해야 했고 그걸 담당할 계층이 당시에는 오로지 유태인뿐이었다. 본부장은 유태인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에는 솔직히 관심 없다. 특정 민족이 원래 문제였던 게 아니라 특정 민족에 대한 차별이 문제의 시작인 것이다. 만약 충분한 시간을 두고 특정 인종이나 민족이 역사적으로 다른 인종이나 민족들에게 차별 받는 역사를 겪지 않았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다채로운 내적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 유태인들도 모두가 천시하는 금융업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고 세상이 이야기하듯이 그다지 영악스러운 민족 또한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라비아인들 역시 대상(隊商)으로 성장하게 된 이유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북아프리카 대륙의 사막화 때문이었다. 먹고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편견은 공공의 적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도 가장 경계해야 할 적(敵)이다. 유연한 사고는 부자의 첩경이다. 피아(彼我)식별이 잘 된다는 것은 오히려 자기편의(便宜)적인 편견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좀더 안전하고 신뢰 가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 '적절과 부적절'의 판단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 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가 바로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국을 예로 들면 옳고 그름 즉 정의의 문제를 그렇게 자주 이야기하는데도 왜 수 십 년째 국가의 청념도나 경쟁력은 항상 제가리 걸음을 하고 있을까. 금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능력이나 신용을 보지 않고 무조건 대출금에 상응하는 담보를 요구하는 것은 적절과 부적절에 대한 판단보다는 내부의 규범적 기준에 따른 판단에 기대고자 하는 편의주의적 편견이라는 측면이 더 강한 것이다. 안전성이라는 자기편의적 옳고 그름의 기준만으로 의도나 절차의 부적절한 판단에 대한 평가가 유보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로는 오늘날과 같은 열린 시대에서 국가나 개인 모두 부자의 길에 들어 설 수 없다. 자기 방어적인 의도(경직된 사회일수록 사기꾼이 판친다. 사기는 순진해서 당하는 것이 아니라 편향된 사고 때문이다)가 너무 지나친 자와는 누구도 진정성 있는 논의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만이나 사기라는 방법을 쓸 가능성이 훨씬 높다. 지금 주변의 우리 사회 전체가 겪는 문제를 유심히 보면 아마 그 말뜻이 이해가 갈 것이다. 물론 옳고 그름이라는 정의에 대한 담론 조차 없는 사회는 더 말할 가치도 없는 것이겠지만 우리의 목표는 우리가 속한 국가나 기업 또는 단체가 타인의 롤모델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러분도 그러한 스스로의 눈높이에 대한 집착만은 절대적으로 유지하길 바란다. 오히려 자신의 편견에 대한 집착은 완전히 버리고 말이다. 자 이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빚에 대한 편견도 함께 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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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자산(資産)을 가진 귀족계급의 상징 에슐리 윌키스(우)와 미래 자산인 신용(信用)을 추구하는 젠틀리의 상징 레트 버틀러(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사진출처:구글



일반인들에게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빚에 대한 생각을 묻는다면 10명중의 8명은 부정적일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러하다면 여러분은 현재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금융권에 들어올 인재로서 면접을 보았다면 첫 번째 관문은 합격인 셈이다. 본부장이 지금껏 이야기했던 상식적인 인재란 10명 중 8명의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10명중 1~2명이 할 수 있는 행동으로 옮기는 결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빚을 내는 것에는 부정적인데 대부분은 과도한 빚을 지고 있다. 현실이 어려우니 그럴 것이겠지 라고 말하면 금융권적 상식으로는 오답이다. 일반적 기준을 먼저 말해주마. 개인의 경우 빚은 자산의 10%안에서 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왜냐면 바로 갚을 수 있는 가장 용이한 비율(인류의 역사적 경험으로 10분의 1은 가장 편안하게 인정되는 비율)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넘을 경우는 계속 자산을 청산해서 빚을 줄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법인의 경우는 최대 자산의 50%를 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일반 룰이다. 여러분이 카지노를 가보면 알겠지만 동전던지기처럼 블랙잭이든 룰렛이든 모든 경우의 수의 기본은 성공 확률 50대 50 에서 시작한다. 사업의 성공 확률도 모두 거기에서 시작을 한다. 자 문제는 개인이 일반적 상식의 수준에 미달하는 정도의 자산에 비해 더 많은 부채를 지고 있을 경우는 어떻게 하느냐다. 본부장은 ‘금융을 말한다’의 서문에서 미리 말했듯이 이 글의 서술을 경험적 사실에 더 많은 비중을 둘 것을 예고했다. 금융은 결국 개개인의 인생에 결부된 이슈이고 학문이 아니라 사회현상이나 행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무나 많은 다양성과 특수성이 존재한다. 말하자면 수많은 개인적 사례에서 일반론을 찾아가야지 반대의 방법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본다. 한 사람의 인간 자체가 너무나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이 자신의 소득과 상관없이 10%의 부채 룰을 지킬 수 있는 자산은 한화로 17억원 정도이고 유로화로 100만 유로 정도가 적정 기준이다. 주의할 것은 이 룰은 자산 자체만 이야기할 때만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소득이라는 우호적 변수가 빠져있기 때문이다.(19세기 들어 영국에서 귀족계급이 젠틀리라는 신흥 계급에 밀린 것도 현재의 자산(資産)보다 일정한 미래 소득과 거기에 따른 신용(信用) 확보 때문이었다) 자산이 1000만원인데 부채가 1000만원이고 소득이 월 300만원이라면 비록 자산대비 100%의 부채라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일반 룰은 보통 6개월치의 월 소득의 합이 적절하고 최대로 1년치 월 소득의 합까지가 한계라고 보면 된다.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론을 말하는 것이다. 가령 월 소득이 1000만원인 사람은 자산과 상관없이 5000만원의 부채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으며 1억원까지도 적절하다고 본다. 물론 소득이 중간에 끊기지 않게 해야겠지만 말이다. 사회의 고용구조가 매우 경직되어 있어 이직이나 창업이 용이하지 못한 국가일 수록 일반롤에 의한 기준을 이야기하기가 매우 힘들어질 것이다. 본부장이 앞서 금융이 그 국가의 시스템적 경쟁력을 볼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매년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발표하는 국가 경쟁력 항목 중에서 가장 관심 있게 보는 항목이 바로 국가 청렴도와 금융 경쟁력인 것이다. 이 둘은 상관관계가 거의 100%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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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은 새끼를 낳지 못한다고 했다. 금융업에서 누군가의 과도한 소득은 현재 또는 미래 누군가의 손실이다. ‘금융자본주의의 위기’ 사진출처:구글



앞에서 말했듯이 금융경색이라는 것은 돈의 문제이고 신용경색이라는 것은 신뢰의 문제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선진국에서 주로 일어나는 것이 전자요 후진국이 후자일 것이다. 금융위기라는 것도 특별한 경우(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대표적)를 제외하고는 후진국에서 일어나는 경우보다는 선진국에서 주로 일어난다. 고혈압이라는 성인병이 영양과다에서 오는 것과 같다. 금융업이 발달을 해야 금융위기도 오는 것이고 금융업의 발달은 사회 시스템의 투명성 즉 옳고 그름의 문제에 앞서 적절 부적절의 문제를 중요시하는 사회적 공감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니얼 퍼거슨이 ‘위대한 퇴보’에서 말했듯이 자본주의가 기본기가 망각된 채로 1989년 냉전해체 이후 근 30년간 승리감에 도취된 결과, 부적절함은 물론, 옳고 그름이라는 기초적인 규범적 기준에도 부합되지 못하여 지금의 금융위기를 초래한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모든 금융위기는 사실 빚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도 과도한 빚에 의한 모기지 상품이 재앙의 단초가 되었고 1997년 외환위기도 국내로 유입된 외환이 쉽게 빠져나가게 만들어놓은 부분(일명 선진국 자본의 ATM기가 되었다고 할 정도)이 매우 큰데 기축 통화국이 아닌 국가들의 경우는 적정 외환보유고 유지 자체가 빚을 지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사실 개도국은 국경을 벗어나면 아무 쓸모가 없는 자국 통화 때문에 매우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 조지 소로스 같은 사람들이 환투기로 돈을 버는 주 대상이 바로 비(非)기축 통화국들이다. 소로스가 달러는 물론이고 엔화를 가지고 환투기한다는 얘기는 없으니 말이다. 국제 사회도 일반 사회처럼 불쌍한 사람들의 약점 잡아서 사익을 챙기려는 사람(토마스 홉스가 ‘리바이던’에서 이런 기생충 같은 짓 못하게 하려고 정부가 필요하다고 한 것이 아닌가)들이 너무나 많다. 선진국 특히 미국(1997년 외환위때 선진국들은 엄청난 호황이었다)을 예로 보면 90년대의 호황을 지나고 성장 여력이 떨어지니 빚을 내서 소비를 하거나 집을 사서 실물자산을 늘리라는 사회분위기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 2000년대 들어서이다. 한마디로 잠재성장률을 넘어선 성장을 독려하다 보니 결국 거품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거품이라는 것에 주로 일조(一助)를 하는 것이 금융권이다.(거품이란 것도 금융이 발전한 선진국에나 있는 것이다). 금융권은 최대한 모기지 같은 대출 상품을 많이 팔아 수수료를 통해 이익을 내면 그만이기 때문에 나중에 고객이 돈을 갚는다는 전제하에선 장부상에선 일단 엄청난 이익을 내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수익은 나중에 들어올 돈이 다 들어온다는 것이 전제(前提)조건인데도 나중 일은 나중에 맡겨버린 것이다.(다윗이 말한 '이 또한 지나가리라'처럼 세상의 좋은 말을 왜곡해서 자기 편의(便宜)로 합리화하는 곳이 금융권임을 본부장은 줄곧 보아 왔다). 전 세계적으로 IFRS4(국제보험회계기준)같이 금융권에 대한 회계기준의 엄격한 개선을 요구하고 나서는 이유도 바로 금융의 자기 편의적 성향에 대한 심각한 우려에 있다. 따지고 보면 너무나 상식적인 말인데도 말이다. 보험사로 예를 들어 말하자면 지금처럼 계속 생산인구가 줄어들어 신규 보험가입이 줄어들 것이 예상됨에도 당장 장부상으로 영업이익을 내는 것에만 신경을 쓸 뿐 장래에 기가입자에게 적립금을 나눠주어야 하는 시점에 가서 과연 그 돈을 모두 줄 수 있느냐는 것은 누구도 진정한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험계약은 보험사가 미래고객을 담보로 기고객에게 빚을 진 것이다. 그때는 그때의 사장과 임원들이 알아서 하겠지라는 마인드가 완전히 없다고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물론 본부장은 그들이 내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략 알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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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인간의 노동력보다 신용 그리고 신뢰가 중요해진다. 3대 SF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 원작 ‘아이 로봇’ 사진출처:구글



시대가 발전하면서 빚의 개념도 달라졌다. 과거의 빚을 현재의 노동으로 갚으려는 개념에서 현재의 빚을 미래의 노동을 넘어 빚으로 갚으려는 개념으로의 이동 말이다. 디지털 혁명 이전의 닫힌 사회의 개념에서는 현재의 노동은 가치가 있지만 미래의 노동은 무가치한 것이다. 반대로 디지털 혁명 이후의 열린 사회의 개념에서는 미래의 노동은 물론이고 빚도 가치가 있다. 연결과 유대만으로도 가치창출이 계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대항해 시대 이후 지금까지의 발전이 현생 일류인 호모사피엔스가 누리는 것의 대부분인 것처럼 디지털 혁명 이후의 발전은 그 외연이 어디까지일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먼 미래엔 인류가 육체노동에서 해방(저주가 될 수도 있수도 있지만) 됨으로써 인류의 정신과 육체가 분리될 것으로 예측한 3대 SF 거장(로버트 A. 하인라인, 아서 C. 클라크와 함께)인 아이작 아시모프가 그의 소설 ‘파운데이션’에서 말한 내용이 이제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술적으로는 인공지능 로봇의 출현 때문이다. 금융권적 시각으로 보면 인간의 육체노동이 곧 의미가 없어지는 세상이 온다는 또 다른 증거가 마이너스 금리다. 금리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돈이 추구의 대상이 아닌 오로지 소비나 거래의 수단(돈은 새끼를 낳지 않는다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돈의 진정한 기능)이 됨을 말한다. 생산물이 너무나 많아 돈이 일일이 그것들을 다 가치 매길 수 없는 상태(반대로 고대나 중세처럼 생산물이 아예 없어도 돈은 무가치하다) 말이다. 인간이 가상현실로 더욱 빠져들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 심해질 수 있다. 리얼 세상에서 생산물이 남아도는 것이다. 이쯤 되면 빚이 우리가 아는 그 빚이 아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본부장이 신용을 강조한 것이다. 신용관리가 좋으면 향후 이러한 미래의 빚을 아주 쉽게 유치할 수 있게 되고 미래는 노동력의 우위가 아니라 신용의 우위로 부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신용은 신뢰가 받쳐줘야 하는 것이고 말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여러분은 빚 관리(스스로 신변관리부터 평판관리까지 다 신경 써야 한다. 미래는 기성세대들처럼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것이 용납되는 사회가 아니다)를 매우 잘해야 함을 명심해라. 소탐대실(小貪大失)이란 말이 있다. 당장의 작은 빚을 가급적 잘 관리하여 미래의 큰 빚에 있어서 우선권을 가지라는 것이다. 본부장이 앞서 빚의 일반 룰에 대해 장황하게 말해준 이유가 바로 '과거의 빚'에서 '미래의 빚'으로의 '개념 이동(槪念 移動)'이라는 포석을 깔고 한 말임을 여러분은 빨리 눈치채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시장이 만약 향후 지속적 고금리를 대세로 예측했다면 어디선가 이상한 사기꾼들이 찾아와 가급적 많은 빚을 지고 자산을 왕창 사서 명의를 변경 후 갚지 않고 개인회생을 하거나 파산신고(이미 이러고 있는 자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여러분은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를 할 것을 여러분에게 권할 것이다. 고금리로 간다는 것은 자본이 귀해진 만큼 자산도 귀해진다는 의미이다. 있어서는 안되는 큰 물리적 재앙이 있지 않고서는 가능성이 현격히 떨어진다. 일부러 지구상 주요 국가의 생산수단을 모두 폭파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앞으로는 빚을 지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경쟁력이 없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빚을 안지는 것은 개인의 자유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시대가 지금 오고 있다.(사회적 지위상 더 이상 자세히 말해줄 수 없음을 이해해주기 바라고 여러분들이 더 잘 예측하리라고 믿는다) 여러분에게 주는 인생의 꿀팁이니 꼭 명심하기 바란다. 빚의 개념 이동(槪念 移動)으로 신용(信用)관리가 자산(資産)관리보다 중요한 시대다. 이제 문제는 빚 많다는 것이 아니라 신용이 없다는 것이다.

민우 이사장의 直talk(96)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빚이란 무엇인가 (2) 마이너스 금리의 이해(理解)

  • 입력 : 2018.02.19 09:58:16    수정 : 2018.02.19 18: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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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스 금리 시대를 이끈 것은 부자에 대한 동경(憧憬)이었다. 플로스 금리시대의 대표적 경제학자 토마스 멜서스의 ‘인구론’ 사진출처:구글



18세기를 마감하고 19세기를 맞이하는 유럽에서 보나팔트 나폴레옹, 호레이쇼 낼슨, 바이런과 함께 가장 핫한 이름은 ‘인구론’을 발표한 토마스 멜서스(1766~1834)란 사나이였다. 그는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으로 늘어난 노동 생산성보다 인구 증가율이 더 높아져 식량이 부족할 것을 걱정한 영국의 천재 경제학자다. 멜서스는 당시에 프랑스의 리카르도와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경제학자였다. 지금은 아이를 낳지 않아서 걱정이라 이 이론이 인기가 없지만 당시는 물론이고 20세기말까지도 가장 위력적인 경제 보고서였다. ‘인구론’은 흥행면에서는 일단 대성공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멜서스는 지식혁명과 디지털 혁명이 인간의 관심사를 먹고 마시는 쪽이 아닌 개인의 내면적 가치와 욕망의 실현(이 둘은 결국 인간이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게 했다)으로 집중시킬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한마디로 요즘같이 너무 개인적이라 결혼이나 출산도 안하고 많이 먹지도 않으며 오로지 조그만 창(窓)만 손에 들고 쳐다보고 있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하지만 얼마 전까지 중국이 유지해왔던 1자녀 정책이 바로 이 멜서스의 인구론에 기초한 정책임을 안다면 그는 정말 천재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러한 인구증가의 예감은 그보다 백 년 전인 에드먼드 헬리에 의해서도 예감되었다. 그는 우리에게 헬리 혜성의 발견자로 유명하지만 보험업계에서는 최초의 보험 요율을 만든 사람으로 더 유명하다. 자신의 탐사선을 만들어 저 멀리 북극해까지 돌며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다녔지만 인구증가로 인한 보험계약의 증가를 필연적인 사실로 보고 지금으로 말하면 보험회사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다. 사실 19세기 사람들에게는 21세기의 세상이 인구의 감소와 에너지 가격의 하락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서프라이즈한 얘기이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하라리 교수는 호모 사피엔스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산업)혁명으로 지구상에서 오늘날의 지위를 거머쥐게 되었다고 했다. 한마디로 서로 소통하며 방법을 찾아내 먹고 살만해지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소통(疏通)의 화신(化身)인 호모사피엔스가 디지털 혁명을 통한 '가상현실과 인공지능'이라는 것과 조우하기 전까지만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 과연 호모사피엔스의 세상이 계속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그것이 계속 지속되기 위해서는 현생 인류가 고대부터 번성해왔던 비밀의 봉인(고대 바빌론의 갈가메쉬 서사시가 경고한 음(陰)의 세계 인식)을 깨트리지 말았었어야 했다. 이것 때문에 인구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 무슨 계시록을 쓰는 것 같지만 사실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21세기 들어 인구 감소와 거기에 따른 에너지 수요 감소에 대한 우려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본부장이 앞서 돈은 가치와 에너지를 찾아 다닌다고 했다. 가치는 인간들이 보는 눈의 숫자가 많을 수록 많아지고 에너지는 인간의 손과 발이 많아져야 증가한다. 손과 발이 움직임을 덜하면 입도 덜하게 되고 손발이 아예 안 움직이면 입은 그 자연히 쉬게 된다. 가상현실(가상현실은 인공지능과 그 뿌리와 목표가 같다)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을 움직이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 매트릭스’시리즈는 가상현실로부터 벗어나 호모 사피엔스로 끝까지 남고자 하는 사람들의 사투이고,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인간의 탐욕(처음에는 개인의 가치추구와 노동력 창출이 목적이었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하기 싫게 만드는 편리성에 대한 집착)이 만든 인공지능에게서 살아남기 위한 사투이다. 둘 다 인류가 자신이 만든 것에서 스스로 해방되기 위해 쓰는 안간힘이다. 니체가 이야기한 초인처럼 자신이 만든 도덕률에서 벗어나 본연의 인간으로 스스로 돌아오려는 인간의 처절한 모습과 같을 것이다. 고대에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빛나는 자였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은 오히려 인간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반감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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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이끈 것은 부자들에 대한 분노(憤怒)이다.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경제학자 마이클 샐던의 ‘정의’ 사진출처:구글



인류 역사상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요즘만이 아니었다. 중세에는 전쟁이나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으로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인구는 지금이나 그때에도 가치와 에너지의 상징이었다. 현생인류가 고대와 중세를 오면서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그토록 바랬던 것과 달리 근대에 와서 인구 증가를 두려워했다는 것은 바로 잉여생산물 즉 자본에 대한 독점적 소유욕 때문이다. 중세까지도 자본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즉 잉여생산물이 없었다는 것이다. 농업과 공업 생산성이 늘면서 인간의 노동력이 주는 존재감은 약해지고 자본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이로써 인간은 마이너스 즉 까먹는다는 개념을 터부시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꿈도 못 꾸던 어렵게 가진 자본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 두려웠던 것이다. 중세는 땅과 인간과 가축만이 재산이었지만 근대에서는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잉여생산물을 만들 생산수단인 자본이 재산이었다. 이로서 인류는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금융업이라는 것에서 합법적으로 종사할 수 있게 되었고 금리라는 단어에 지금까지 목을 매고 살아오게 된 것이다. 플러스 금리는 잉여생산물에 대한 인간의 집착을 상징한다. 하지만 마이너스 금리는 반대다. 이유는 생산성의 급속한 발달로 언제든지 잉여생산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한 푼도 없는 노숙자도 밥은 먹고 살고 친구에게 밥 산다고 하는 말이 이제는 그렇게 고맙게 여겨지지 않는다. 여유로워서가 아니라 기본적인 풍요로움의 기준이 높아졌다. 요즘 부자란 말을 잘 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부자에 대한 집착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착이 떨어져가기에 경제의 활력도 당연히 떨어져가는 것이다. 근래 부동산 폭등이나 가계대출 증가를 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이끌어가는 이유는 이러한 저 활력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서이다. 좋게 얘기하면 구성원 모두가 안빈낙도하며 만족하고 살고 있는 것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포기한 것일 것이다. 둘 다 맞다고 본다. 가진 자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가진 자에 대한 분노(憤怒)가 더 큰 시대이다. 마이클 샐던의 '정의론'이 인기를 끈 것은 멜서스의 '인구론'이 인기를 끌었던 것과 정반대의 상황 때문이다. 마이너스 금리라는 것은 국민들이 자본에 대한 집착도가 거의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건 부자들에게도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자신이 애써 모은 자본이 하찮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안타까울 것이다. 모두가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게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플라톤이나 헤럴드 라스웰의 말처럼 호모사피엔스는 정치적 동물이다. 정치적 동물이란 다중 속에서 자신의 존재적 가치에 대해 가장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인간을 경제적 동물이라고는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마이너스 금리의 의미는 사회의 주도권이 자본가들의 영역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자본가가 가진 자본에 대해 누구도 탐내지 않는 시대라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다. 양의 자본을 포기하고 음의 자본을 선택하는 것이다. 바로 이 음의 자본이 정치라는 공공의 영역이다. 공공의 영역은 마이너스를 감당할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공공영역은 파산이라는 개념이 없다. 만약 그런 개념이 있었다면 미국은 10년전 아니 베트남 전쟁 당시 이미 파산이었다. 미국은 양적 완화정책을 몸소 보여주면서 전세계에 '음의 자본'이라는 실체를 보여주었다. 앞으로 많은 국가들이 '음의 자본'이라는 정치적 영향력을 경험할 것이고 또 그렇게 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많은 자본가들이 이를 억제하기 위해 엄청난 로비를 할 것도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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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심리와 노동 의욕을 고취시키기고 시장내 경제주체들이 한시라도 돈을 쥐고 있게 하지 않으려는 정부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 사진출처: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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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자본가들의 생산수단 독점을 차단하려는 ‘공유 경제 시대’ 사진출처:구글



결론적으로 마이너스 금리는 국가의 목소리가 매우 커지는 현상을 불러올 것이다. 지금까지는 제로 금리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국민들에게 마이너스 금리의 존재는 중앙 은행보다 정부의 힘을 실감하게 해 줄 것이다. 특히 자본가들에게 말이다. 돈의 위력이 약해지는 만큼 돈의 양은 많아진다. 주가가 고평가 될 것이고 기업들은 자금조달이 쉬워질 것이다. 하지만 자본가들에게 문제는 풍부한 자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호모사피엔스들을 데리고 새로운 일을 벌이기가 싶지 않아졌다. 고비용이 요구되는 인건비와 추가적인 운영비(사고나 재해에 의한 추가비용은 물론 사내 복지 요구 증가와 업무에 따른 비용 자체의 증가로 인해 거대 기업마저도 대부분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불가능하다)로 인해 무슨 일을 벌이든 지속적인 기대 수익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향후 지속적으로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서민들도 쉽게 돈을 빌려 할 게 없기는 마찬가지다. 본부장이 왜 실전형 인재를 강조했는지 이제는 알아야 한다. 과거처럼 자본 탄력적인 경제가 아니다. 자본이 가장 흔하지만 가장 기대 수익이 떨어지는 시대이다. 이제는 다시 노동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그것도 차별화된 노동으로 말이다. 노동자들이 자본가들보다 맘 편한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하지만 그것도 이미 고용되어 있는 자들의 얘기고 미고용자들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말이다. 자 걱정마라. 이제 이런 시대도 곧 끝날 것이다. 정부가 이런 구조를 넋 놓고 바라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제 일부 자본가의 기회 또는 생산수단 독점이 정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곧 생산수단으로서 자본의 분산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것을 위한 추가적 정책안에는 반드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들어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착각하지 말아야 할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신문을 보면 마치 시장 경제의 시대가 도래하여 정부나 공공영역이 시장의 주요 주체에서 밀려나는 것과 같은 기사를 볼 것이다. 매우 위험한 전망이다. 똑똑한 여러분들은 오히려 반대로 진행될 것임을 눈치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시장 경제의 시대는 마이너스 금리라는 말이 나오게 되기 직전까지의 시장을 말하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시장경제와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요즘 자주 쓰는 '공유 경제'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의 시장경제는 소유권의 보장이 가장 기본전제 조건이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철저히 지켜질 것이다. 다만 소유한 자본을 가지고 독점적인 기회를 가지지는 못할 것이다. 즉 재산은 가지더라도 생산수단까지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유 경제 시대에서는 누구도 혼자 독점할 수 없다. 정부가 앞으로 가장 눈 여겨 볼 분야가 바로 공정한 기회라는 부분일 것이다. 이제 예전처럼 기업이 세금을 많이 낸다고 해도 비용처리 (앞으로 갈수록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다)를 통한 세금 환급을 빼고 나면 정부가 남는 게 없기에 친기업적 정책도 한계에 다다랐다. 방법은 공유 경제를 통한 실질 경제 인구의 수를 늘리려 세수를 늘리고 마이너스 금리를 통해 돈을 절대 오래 들고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미 정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나라안의 어떤 경제 주체도 소외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모두 다 참여시켜 활동하게 한다고 해도 예전같이 부자가 되겠다고 의욕을 불사르는 노동력이 아니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투자 심리나 노동 의욕 모두가 떨어져있는 지금 상황에서 가장 유효한 방법은 모두가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만간 그것을 위한 정부의 액션이 곧 시작될 것이다.


우 이사장의 直talk(97)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빚이란 무엇인가 (3) 빚의 경제학

  • 입력 : 2018.02.26 13:54:41    수정 : 2018.02.26 17: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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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근대(近代) 경제 질서 구축에 공헌한 경제학자들 사진출처:구글



경제학이라는 것은 원래 개인을 잘 살게 만드는 '부자학(富者學)'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부를 증가시키려는 '사회과학'이다. 아담 스미스의 명저 ‘국부론’의 제목처럼 말이다. 경제학의 고전학파에게 개인은 이미 스스로 잘 살고 싶어 안달 나 있는 이기적인 존재이다. 오히려 이기적인 존재이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경제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기준이 생기기 때문이다. 인류가 중세에서 근대로 접어 들면서 가지게 된 가장 큰 고정관념은 '이전보다 더 성취하고 싶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인간의 성취욕이라는 것이 극에 다다를 때가 플러스 금리 시대의 시작이고 이 성취욕이 서서히 사라져갈 때가 마이너스 금리 시대의 시작이다. 19세기까지 경제학이란 배운 어른들이 하는 가상 현실 게임이었다. 세상에 있지도 않은 이상적인 이야기를 아무 근거도 없이 그럴듯한 가설로 발표하고 주변에서 박수 치거나 조롱하는 게임 말이다. 여러분도 한번은 읽어봤을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보면 18,19세기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가지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다. 바로 어떻게 하면 사회 구성원들의 경제활동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말이다. 이걸 통화정책으로 할 것인지 재정정책으로 할 것인지를 가지고 근래 100년전부터 말싸움을 해온 것이다. 요즘은 케인즈 학파 즉 재정주의자가 대세다. 사회 불평등이 심해지고 복지에 대해 정부에 기대려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정부의 힘은 강해지기 때문이다. 통화주의자들은 인간의 주체적인 성취욕을 좀더 근본적으로 믿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재정주의자들은 인간이 가진 나태함에 더 주목을 한 사람들이다. 모두 에드워드 기번이 말했듯 과거 그토록 잘나가던 로마가 폭삭 망한 이유인 '어린아이다움'과 '나태함'을 각각 제어할 방법을 찾아내려 한 것이다. 결국 경제학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매우 현실적인 분야 같지만 사실 매우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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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신용은 나를 옥죄는 족쇄가 아니라 내게 힘을 실어주는 경제파워다. 사진출처:구글



지난 500년동안 인류에게 부채는 악(惡)이었다. 사업을 해도 부채를 지지 않고 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해왔었고 부실기업이라는 것의 기준은 부채비율로 정해졌다. 자본잠식의 상황보다 부채비율 100%를 더 심각하게 본 적도 있었다. 심지어 돈을 빌려주고 받지 않는 것도 악으로 생각한 시대. 빚을 지지도 말고 주지도 말자란 말이 가장 보편화되던 시대 말이다. 20세기는 인간이 빚이라는 것에 대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인식을 깨트리는 세기였다. 세계 초강대국들은 앞다투어 빚을 지기 시작했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들은 자국의 GDP에 가까운 부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특히 소위 기축통화 국가들은 독일을 제외하고는 정부부채에 대해 관대함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 여러분들이 상식적으로 알아둘 것이 공산주의국가는 빚이라는 개념이 없다. 빚이라는 개념이 중세에 그 개념조차 약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회가 공유경제에 가까울수록 빚의 개념은 약하다. 따라서 생산수단을 함께 공평하게 공유하는 공산주의의 경우는 장부상 부채란 개념 자체가 없어진다. 빚이라는 것은 생산수단이나 자본의 사유화가 가능한 사회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파산할 수 없다는 말은 고전 경제학자들에게는 매우 유감스러운 말이겠지만 사실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국가인 미국이 초월적인 부채에도 파산하지 않는 것은 그 이유이다. 과거 방송으로 곧잘 나오던 국가부도사태라는 것은 국가가 대외지불수단이 없다는 말이지 국가가 파산하여 청산된다는 말이 아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국가라는 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존귀한 법 인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인간보다 더 존귀한 법 인격은 국가다. 국가가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말은 국가가 개인보다 못하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위의 개념이라는 말이다. 철의 여인 대처 수상이 자국민들의 절반 이상에게 욕을 먹은 이유는 대처가 가진 국가 빚의 개념에 대한 욕이었다. 역사적으로 대다수의 국민들은 국가가 균형예산을 집행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적자를 무릅쓰길 바란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는 적자라고 찾아와 돈을 달라고 할 빚쟁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고 설령 있다 하더라고 또 빌려서 지불하면 그만이다. 국가는 필요할 때 공공의 이익을 명분으로 영토내의 모든 필요한 재산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는 권한(물론 함부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다음 선거에서 질 것이니 말이다)이 있고 심지어는 타국과 채무를 이행하지 않고 전쟁을 할 권한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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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인 전쟁 비용도 빚으로 모두 해결된다는 것을 알아버린 20세기의 정치가들 사진출처:구글



20세기에 일어난 2차에 걸친 세계대전과 한국, 베트남, 중동에서 일어난 전쟁은 모두 빚의 전쟁이었다. 개인이라면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차에 걸친 세계대전이 그토록 소모전이었던 이유는 국가가 빚으로 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군대가 전 유럽을 제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류최초로 근대적 국가 수행 전쟁이었기에 가능했다. 당시는 국가가 국민을 무상으로 총동원한다는 것 자체가 신개념의 발상이었다. 모두 나폴레옹의 덕분이다. 국가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해 준 사람 (히틀러가 후에 이걸 그대로 따라 한다)이니 말이다. 모두 '국가 빚'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전에는 경제학이라고 하지 않고 정치경제학이라고 했었다. 당시에는 가장 많은 돈을 가진 군주의 자금적인 결단이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말이다. 하지만 근대에 경제학이 따로 분리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가 빚의 개념을 알게 되면서다. 빚이란 개념을 발견하면서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자신들의 학문적 존재감을 여지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정치라는 것은 과거의 유산에 대한 이해관계를 규명하는 것이고 경제는 미래의 유산에 대한 이해관계를 예측하는 것이다. 근대는 한마디로 경제학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 경제학의 시대를 열어준 개념이 '국가 빚(부채)'의 존재이다. 경제가 힘들어졌다는 말은 이제 국가가 빚을 더 이상 내기가 힘들어졌다는 말이다. 경제강국이라는 말은 국가 빚을 질 여력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말이다. 유럽의 경제강국 독일의 비밀은 국가가 빚에 허덕이지 않아 앞으로 유럽 대륙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정책적 여력이 많이 남아있다는 데 있다. 본부장이 자산관리보다 신용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바로 이런 사실 때문이다. 개인이나 국가의 신용은 스스로를 돈이 마르지 않는 샘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미국이 전세계를 상대로 빚잔치를 하면서도 그 어떤 나라도 미국에게 채권을 재촉하지 않는 이유는 미국이 가진 신용 때문이다. 신용이란 빌려간 돈을 잘 갚는다는 것을 넘어 내 돈이 저기 가 있다는 것 자체에서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이상형인 배우자에게는 모든 재산이 아깝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빚의 개념이 없었더라면 미국은 오늘날 같은 강대국의 면모는 물론이고 연방국가로서 미합중국을 이루지도 못했을 것이다. 미연방정부가 당시 형편없는 군 리더쉽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지도력을 가진 남부의 반란군을 상대로 인원이나 물자 등 모든 측면에서 압도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신용이라는 개념을 먼저 알고 빚을 전쟁에 과감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담스미스가 화폐나 귀금속에 집착하지 말고 생산수단에 집중하라고 한 이유는 신용이라는 것이 과거보다는 현재 그리고 현재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에서 나오는 것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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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경제제재란 신용제재이다. 사진 출처:구글



지구상에서 모든 생산수단의 왕이 국가인 이유는 가장 지속가능한 생산주체이기 때문이다. 20세기까지가 국가만이 빚에 대한 독점적 사용권한을 가진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개인에게도 이러한 권한이 생기는 시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신용이 준비된 개인의 경우는 거의 무한대의 신용한도를 가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전에 국가나 거대 기업만이 누렸던 특권이 개인에게도 허용될 것이다. 본부장이 지금껏 상식적 사고를 중요시 여기며 20세기에 점철되었던 인간의 과격한 폭력성을 경계한 이유는 21세기는 바로 상식에서 권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제 사회전체가 성장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고 고도성장이란 것은 포기한지 오래다. 근대 이후 20세기까지는 미래의 발전을 담보로 국가나 기업이 무한 신용을 사용했지만 성장의 발동이 커진 지금의 시기에는 소비의 주체인 개인을 지금처럼 방치할 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정부와 기업 모두가 정말 파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마 미래에는 기업이 가장 규제를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개인을 옥죄어왔던 여러가지 규제가 기업에게 돌아갈 것이다. 국가는 여전히 자신의 위치를 유지할 것이다. 다만 이제는 국가가 이전처럼 기업의 편을 들지 못하고 개인의 편을 들기 시작할 것이다. 뉴스에 자주 나오는 용어인 경제규제란 신용규제다. 가지고 있는 자산의 동결보다 더 무서운 것이 향후 빚을 못 지게 하는 것이다. 시장 안에 돈이 남아도는 데 자신만 자기 돈을 써야 하니 그 심정이 어떨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는 손과 발이 달린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사람이 아니다. 신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뉘어 철저하게 차별을 받을 것이다. 향후 신용의 판단 기준은 매우 광범위해질 것이다. 지금처럼 돈 빌려주고 잘 갚는 걸 넘어 시회법규를 잘 지키고 이웃들에게 좋은 평을 듣는 공공 친화적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구성원에게 더 많은 신용한도가 부여될 것이다. 또한 빚을 갚는 방법도 현금이 아닌 다양한 공동체적 활동으로 대체될 것이다. 현금을 빌려 현금으로 갚는 방법이 점점 사라지고 현금은 주로 소비의 도구로 쓰이고 신용을 나타낼 많은 단위들이 생겨날 것이다. 본부장이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왜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했는지 이제 깨달아야 한다. 지난 어느 세대보다 정의감과 사회적 연대를 중요시 여기면서도 합리적인 경쟁을 수용하는 세대이기에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빚의 시대'에 가장 잘 적응할 것이며 공유가 아니라 소유나 독점의 타성에 젖은 이전의 세대들은 적응하기 매우 힘든 모습을 보일 것이다. 본부장은 근대가 인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분별력과 상식적 사고'의 기준을 확립해 준 것이라고 본다. 인간이 이토록 독립적으로 스스로 빛나는 존재일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하지만 근대가 준 최악의 유산 또한 인간의 무차별적인 폭력성이었다. 이러한 폭력에서 비로소 해방되면서 지속적 성장을 꿈꿀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새로운 '빚의 경제학'을 마주하게 될 밀레니얼 세대의 유토피아적 미래이다. 그리고 이런 미래를 절대로 디스토피아로 변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가 물려받은 빛나는 '근대성(近代性)'을 밀레니얼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줘야 할 신성한 의무가 아직 기성세대에게 아직 남아 있다는 것 또한 명심해야 한다.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98)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를 마치며

살아오면서 이번처럼 치열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실전적 진실과 현실적 유익함에 대한 고민도 한 몫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망각이 더욱 두려웠다. ‘본부장이 말한다’, ‘본부장이 시대를 말한다’에 이어 ‘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를 곧바로 써야만 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러한 망각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본부장 시리즈’의 최고 가치 즉 크라운 주얼(Crown Jewel)은 이제 사회를 시작하는 20, 30대들에게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 가지고 있던 또렷한 개념들이 무뎌지는 것을 느끼면서 하루라도 빨리 완성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몸을 떨었다. 애초부터 다짐했던 것처럼 절대 구글에 있는 것은 쓰지 않겠다는 본부장의 원칙은 이번 ‘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에서도 유감없이 적용하였다. 사실 ‘본부장이 말한다’가 실전형 인재의 기준을 말하고 ‘본부장이 시대를 말한다’가 보이지 않는 물밑의 이해관계를 말했다면 ‘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는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여러분들이 꼭 알아야 할 경제적 현실감각을 말한 것이다. 절대로 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공유하며 리드하겠다는 스스로의 좌우명에 따라, 이 책을 읽고 여러분들도 나를 따라 자신만의 에세이를 쓸 수 있게 만들고 싶었기에 책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지식전달이 아니라 훈련에 맞추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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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올바름의 롤모델을 평가해주어야 할 시대이다. 사진 출처:구글



이 책을 마지막으로 본부장은 다시 검은 마스크를 쓰고 광선검을 휘둘러야 하는 차가운 현실에 마주할 것이다. 그래서 책을 써오면서 조바심도 많았지만 참으로 행복했고 또 안락했다. 지인들에게도 마치 원래부터 작가였던 사람인양 행세해보기도 했지만, 본부장은 뼛속까지 현실의 칼 바람을 맞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제야 본연의 나로 돌아간다는 홀가분한 마음마저 들기도 한다. ‘본부장 시리즈’를 시작할 때부터 책의 분량은 이미 정확하게 정해져 있었다. 이 책은 나의 상상을 쓰는 픽션이 아니라 냉엄한 현실의 경험을 쓰는 것이었기에 스스로가 모르는 것을 공부해서 쓴다거나 하는 식을 철저하게 배격하였다. 따라서 나만의 현실경험에 따른 사색의 끝에 다다르는 순간 이 책의 진도는 끝나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이가 들거나 직위가 상승하여 세상을 보는 눈이 탐욕의 고정관념으로 무뎌지기 전에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푼 것은 '올바르게 성공하기'였다. 이유는 지금껏 현장에서 보아온 잘난 사람들을 뒤집어 보면 처음의 성공을 끝까지 잘 유지하는 사람이 참 드물었고 또 유지했다고 하더라도 노후에 치욕적인 비판을 받으며 지난 날을 후회하는 분들도 많았다. 모두 올바로 성공하는 길을 버리고 아무 개념 없이 성공에 급급해왔던 결과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 목표인 사람들의 나라는 좋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목표인 사람들의 나라를 이길 수 없다. 올바른 성공이란 사회의 롤모델이라는 훌륭한 모티베이션을 만들어준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오로지 자신을 위해 '까놓고' 말하고, '솔직히' 말하며, '막말'하는 사회가 된 이유는 그러한 '올바름의 롤모델'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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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승리보다 지속적 페어 플레이 능력이 최후의 승자를 만들어 준다. 사진 출처: 구글



올바름은 남을 위한 배려다. 그리고 성공은 그 배려를 받은 타인들이 주는 빛나는 선물이다. 올바름으로 성공하기가 정착되지 않은 사회는 오히려 옳고 그름에 더 몰두한다. 적절함이라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진정한 올바름이라는 것을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고 승자독식을 위한 시시비비만 가려왔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리더들만큼 정의를 부르짖으며 정의롭지 못한 것에 창피해하지 않는 사람들도 드물다. 이제는 옳은 목표보다 적절하고 올바른 과정을 이야기해야 할 때다. 앞으로 전 세계가 더욱 첨예하게 자국의 이익을 이야기할 것이기에 더더욱 사회통합에 힘을 쏟아야 한다. 국가 내에서 공정한 경쟁을 위한 시스템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며 남의 편이라는 편견에 의해 올바름의 소유자들이 경쟁에서 도태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따라서 우리의 기성세대들도 고도성장기에 공공연하게 묵인되어왔던 불공정한 룰들을 이제는 모두 일소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만의 브랜드를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의 한류가 '한국의 색다름'이었다면 이제부터의 한류는 '한국의 올바름'이어야 한다. 초월적인 인터넷 환경으로 모든 것이 급속히 식상해져 가는 사회이다. 맛있고 예쁜 것들이 급속히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더 맛있고 더 예쁜 것에 대한 추구는 이제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전혀 희소성을 갖지 못할 것이다. 이제 인류에게 남은 유일한 희소성은 적절함을 갖춘 올바름이다. 적절함을 갖춘 공정 사회가 되지 못하면 우린 국제 사회에서 그다지 매력 없는 나라로 전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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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보다 불공정에 더 관심이 집중 될 것이다. 사진 출처: 구글



이제는 적절함과 올바름이 경쟁력인 시대인 것이다. 지금까지 성공의 보증수표였던 선택과 집중이라는 과도함은 20세기를 마지막으로 정리될 것이다. 그 끝을 향해 달려가는 근대(近代)질서가 인류에게 준 가장 고귀한 선물인 '상식'에 충실한 적절함과 올바름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득세할 것이다. 앞으로 전세계적으로 기업규제가 강화될 것이고 금융업종은 더더욱 심할 것이다. 불평등보다 불공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규모의 경제를 이끌어온 성장주의적 금융업은 이제 그 운을 다하고 금융업에서 다시 도덕주의가 꽃을 피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금융이 글로벌화를 멈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덕적인 검증을 받은 외국 금융사가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계좌를 확보한 자국 금융사보다 더 선호를 받을 수도 있다. 금융업계에서 가장 촉망 받는 엘리트 기준은 이제 유능함이 아니라 인격을 갖춘 인재이다. 회사내 한 직원이 저지르는 한번의 도덕적 실수가 수 만 건의 계약해지보다 위험할 수 있다. (이제는 금융사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고객이 계약을 해지하면 좋아하는 경우가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보험사의 경우는 수 십 년 전의 계약을 해지시키고자 별별 방법을 고안해내고 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다시 한번 당부한다. 여러분은 지금 눈앞에서 보편화되어 있는 현상만을 보고 피상적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본부장이 지금까지 이야기한 말들을 반드시 뒤집어보길 바라고, 특히 한번 무너진 신뢰와 신용은 다시 회복되기 쉽지 않다는 것을 가슴에 담고 매사에 남을 위한 사려 깊은 언행을 하는 인재 그리고 리더가 되길 바란다. 그 동안 본부장의 글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준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 이제 새로운 세상을 차지할 여러분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