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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사.전적벽부.부처.청춘(새무얼 앨만)

doll eye 2017. 9. 23. 22:26

 

귀 거 래 사 /  도연명

 

돌아가리라.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버렸다.

 

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없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았다.

 

이제는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그릇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가네.

 

길손에게 고향이 예서 얼마나 머냐 물어보며

새벽빛이 희미한 것을 한스러워한다.

 

마침내 저 멀리 우리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어린 것들이 대문에서 손 흔들어 나를 맞는다.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

 

어린 놈 손 잡고 방에 들어오니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

 

술 단지 끌어당겨 나 스스로 잔에 따라 마시며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마냥 의기 양양해 하니,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

 

날마다 동산을 거닐며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문이야 달아 놓았지만 찾아오는 이 없어 항상 닫혀 있다.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여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저녁빛이 어두워지며 서산에 해가 지려 하는데

나는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 있다.

 

 

돌아왔노라.

 

세상과 사귀지 않고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하겠다.

세상과 나는 서로 인연을 끊었으니,

다시 벼슬길에 오라 무엇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익으며 시름을 달래련다.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고 일러 주니

앞으로는 서쪽 밭에 나가 밭을 갈련다.

 

혹은 장식한 수레를 부르고

혹은 한 척의 배를 저어

 

깊은 골짜기의 시냇물을 찾아가고

험한 산을 넘어 언덕을 지나가리라.

 

나무들은 즐거운 듯 생기있게 자라고

샘물은 졸졸 솟아 흐른다.

 

만물이 때를 얻어 즐거워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나의 생이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아, 이제 모든 것이 끝이로다..!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죽어 신선이 사는 나라에 태어날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좋은 때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고,

때로는 지팡이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한다.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이랴.

 



출처: http://byulnaro.tistory.com/11 [Suis la lumière]

 

 

전적벽부----소식

 

 

https://search.naver.com/p/crd/rd?m=1&px=217&py=957&sx=217&sy=110&p=TNkVbwpVuFZssvD64Esssssssc4-248666&q=%C0%FC%C0%FB%BA%AE%BA%CE&ssc=tab.nx.all&f=nexearch&w=nexearch&s=JdUkw0ukl524oilKnO7OuQ==&time=1506208800513&a=blg_1st*i.tit&r=1&i=90000003_00000000000000337A009D30&u=http%3A//blog.naver.com/yoony7777%3FRedirect%3DLog%26logNo%3D221090192688&cr=3

 

 

부처,고타마 싯다르타다

 

불교의 중심인물은 신이 아니라, 인간 고타마 싯다르타다.

불교 전통에 의하면 고타마는 기원전 500년경 히말라야에 있던 작은 왕국의 후계자였다.

고타마는 29세에 가족과 재산을 뒤로하고 한밤중에 왕궁을 빠져나왔다.

그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으며 집 없는 방랑자로 인도 북부를 구석구석 떠돌았다.

그는 6년에 걸쳐 인간 번뇌의 핵심과 원인과 치유법에 대해 명상을 했고,

마침내 그 번뇌의 원인은 불운이나 사회적 불공정, 신의 변덕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번뇌는 사람의 마음이 행동하는 패턴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고타마는 다음과 같이 통찰했다.

마음은 무엇을 경험하든 대개 집착으로 반응하고 집착은 항상 불만을 낳는다.

마음은 뭔가 불쾌한 것을 겪으면 그것을 제거하려고 집착하고,

뭔가 즐거운 것을 경험하면 그 즐거움을 지속하고 배가하려고 집착한다.

그러므로 마음은 늘 불만스럽고 평안에 들지 못한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를 몇 년씩 꿈꾸지만, 실제로 찾았을 때 만족하는 일은 거의 없다.

상대가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는가 하면 좀 더 나은 사람을 찾을 수 있었는데 너무 값싸게 안주했다고 느낀다.

 

고타마는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만일 즐거운 일이나 불쾌한 일을 경험했을 때 마음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거기에는 고통이 없다.

 

당신이 슬픔을 경험하되 그것이 사라지기를 원하는 집착을 품지 않는다면, 당신은 계속 슬픔을 느끼겠지만

그로부터 고통을 당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슬픔 속에 풍요로움이 있을 수 있다.

기쁨을 느끼되 그것이 계속 유지되며 더 커지기를 집착하지 않는다면,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고 계속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모든 것을 집착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타마는 집착 없이 실체를 있는 그대로 느끼게끔 훈련하는 일련의 명상기법을 개발했다.

이 방법은 우리 마음이 "지금과 다른 어떤 경험을 하고 싶은가?" 보다

"지금 나는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온 관심을 쏟도록 훈련시킨다.

이 같은 마음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는 추종자들에게 살생, 음행, 도둑질을 피하라고 했는데

이런 행동은 반드시 집착(권력과 감각적 기쁨, 그리고 부에 대한) 의 불을 지피기 때문이었다.

불이 완전히 꺼지면 집착은 완벽한 만족과 평온의 상태와 자리를 바꾸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열반이다.

(열반은 문자 그대로 '불 끄기' 란 뜻이다.)

 

열반에 이른 사람은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다.

이들은 실재를 극도로 분명하게 경험하며, 환상이나 망상에서 자유롭다.

이들도 분명 불쾌함이나 고통에 맞닥뜨릴 테지만, 그런 경험은 이제 아무런 정신적 고통을 일으키지 않는다.

집착이 없는 사람은 고통받지 않는다.

 

 

고타마는 열반에 들었으며 고통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부처는 '깨달은 자' 라는 뜻이다.

부처는 모든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여생을 바쳤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한 가지 법칙으로 요약했다.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난다는 것,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있다는 것,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고통은 집착에서 생긴다' 는 것은 불교도들에게 보편적 자연법칙으로 이해되고 있다.

 

 

                                                                                                                  -<사피엔스> 중 12. 종교의 법칙



출처: http://byulnaro.tistory.com/8 [Suis la lumiè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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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2:39] 청춘...새무엘 얼만 - 맥아더가 몇살 때 한국전에
참전했는지 아시나요?ᆢ

그는
1880년생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그의 나이 만 70세 때죠!

그가
집무실 벽에놓고
즐겨 읽은 "청춘"이란 시를 옮깁니다ᆢ

 

□  청   춘   □
                  [새무엘 얼만]

청춘은 인생의
어떤 시절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ᆢ

그것은
장미빛 볼, 붉은 입술 그리고
유연한 관절의 문제가 아니다ᆢ

그것은
의지와
상상력의 우수성, 감성적 활력의 문제이다!ᆢ

청춘이란?ᆢ
인생의 깊은 샘의 신선함이다ᆢ

청춘은
욕망의 소심함을 넘는 용기와
타고난 우월감과
안이를 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청춘"은 때때로
이십세의 청년보다
육십세의 노인에게 존재한다!ᆢ

단지 연령의 숫자로
늙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황폐해진 우리의 이상에 의해
늙게 되는 것이다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을 버리는 것은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ᆢ

고뇌! 공포! 자기 불신! 은
마음을
굴복시키고 흙속으로 영혼을
되돌아가게 한다!ᆢ

육십이든
열 여섯이든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는 경이로운 것에 대한 매혹, 
무언가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
삶 속의 환희가 존재한다면ᆢ

희망! 희열! 용기! 와
힘의
메시지를 갖는 한ᆢ

그대의
젊음은 오래 지속되리라!ᆢ

안테나가 내려지고
그대의 영혼이
냉소의 눈과 비관의 얼음으로
덮이면ᆢ

이십세일지라도
늙은 것이다!ᆢ

그러나
그대가 안테나를 올리고,
낙관주의의 물결을 잡는다면
그대 팔십세일지라도
청춘으로 살 수 있으리라!

 

더글러스"맥아더"는
이 글을
벽에 걸어놓고 읽으면서 젊음을 유지 했다고 합니다!ᆢ

우리의 "청춘"은
마음 속에 있음을"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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